11분
파울로 코엘료 지음, 이상해 옮김 / 문학동네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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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로 코엘료의 <11분> (이상해 옮김/ 문학동네)를 일본 출장길에 읽었다.
출장이 8/30~9/1이었으니까, 벌써 한달 전이다.

출장 준비를 하느라 8월 29일 일요일에 12시가 넘어서 퇴근했다.
아침 비행기였기 때문에 잠을 제대로 못자고 부랴부랴 나갔다. 오후에 상당히 중요한 미팅이 있었기 때문에, 또 상무님이랑 같이 가는 출장이었기 때문에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비행기에서 미팅 자료들을 검토하다가,
피곤하기도 하고 좀 졸리기도 하고 해서
잠시 휴식을 취하는 차원에서 핸드백에 있던 <11분>을 꺼냈다.
작가의 말 정도만 읽고, 다시 미팅 자료를 검토하려 했는데
책장을 넘기다 보니 재미있어서 하네다 공항에 도착할 때 까지 쭉 읽어 버렸다.

이 글을 쓰는 지금,
1달 전 쯤 읽은 <씨네 21>의 칼럼이 생각난다.
누가 썼는지는 기억이 안나는데,
자기는 사람들이 다 욕하는, 모두가 욕하는 형편 없는 영화
<여친소>와 <긴급조치 19호>를 참 재미있게 봤다는 것이다.
평론가로서 <긴급조치 19호>를 보고 재미있다고 말하기가 참 어려웠단다. 그런 말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에.... 영화적 완성도를 떠나서 그냥 자기가 재미있게 봤기 때문에, <여친소>의 어떤 한장면이 자기에게 와닿았기 때문에 자기는 두 영화에 대해서 참 좋은 감정을 가지고 극장을 나왔다고 한다.

그렇다.
책이건 영화건 연극이건 콘서트건 뭐건
자기가 재미있으면 되는 거다.

평론가들이 "문제의식" "실험성" 들먹이며 아무리 극찬을 해도
나한테 재미 없으면 그만이다.
<긴급조치 19호> 처럼 극장 가서 돈내고 봤다고 말하기 조차 쩍팔린 영화를 보더라도, 내가 보고 좋았으면 된거다.

왜 허접한 <긴급조치 19호> 얘기를 이렇게 길게 하냐구?
<11분>읽고 실망한 사람들이 주위에 참 많다.
알라딘 리뷰들을 읽어보니 "명랑 창녀 성공기"라는 리뷰 제목도 있었다. 그 리뷰 읽으면서 한참을 깔깔거렸다. 사실 마리아가 명랑하지는 않지만, 말 그대로 11분의 줄거리는 창녀 성공기다. 줄거리를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똑똑한 창녀 성공기?".

사실 <연금술사>를 읽고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그 다음 작품으로 <11분>을 읽었다면, 실망하기에 딱이다,딱.
주인공이 창녀라 처음 부터 반감을 가지는 사람들도 있고, 읽기를 불편해하는 사람들도 있고, "똑똑한 창녀 성공기"로 끝나는 허리우드 영화식 결말은 읽는 사람들을 딸국질 멎을 만큼 놀래킨다.

사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을 읽으면서는 나도 실망을 했다.
왜 코엘료의 줄거리는 항상 이다지도 상투적일까?
누가 봐도 허리우드 영화 같은 줄거리.
<프리티 우먼> 보다 더 허리우드틱하다.
한술 더 떠 랄프는 이런 말까지 한다.
" 영화에서 처럼 낭만적이 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오,그렇지 않소?"

그런데.....
<11분>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오후에 미팅하는 동안 그 다음 내용이 뭘까 궁금할 만큼....
2박 3일의 그 바쁜 일정에 틈틈히 짬을 내어 다 읽었다.
정말....재미있었다.

<피에트라 강가에서 나는 울었네>를 읽으면서도 느꼈지만,
이야기꾼으로서의 코엘료는 그리 대단하지 못하다.
참신하지도 않고, 다 어디서 많이 들었던 것 같은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사람의 감정을 포착해 내는 능력에 있어서, 에너지를 발산하는 능력에 있어서 파울료는 대단한 작가다.

<11분>을 읽으면서 내가 밑줄을 그은 구절 중 두개.

가장 중요한 만남은 육체가 서로를 보기도 전에 영혼에 의해 준비되는 것이니까.
그러한 만남들은 우리가 한계에 도달했을 때,우리가 감정적으로 죽어 다시 태어날 필요가 있을 때 이루어진다.
그 만남들은 우리를 기다리지만,우리는 그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피한다.하지만 우리가 절망에 빠져 있을 때,우리에게 잃을 것이 아무것도 없을 때,아니면 우리가 삶에 열광해 있을 때,미지가 모습을 드러내고 세계는 흐름의 방향을 바꾼다.
(p183)

두려움보다도 더 못한 거요.그들은 노이로제에 걸려 있어요.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를 잘 이해하지 못하지만,사회가,친구들이,여자들이 섹스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건 알고 있으니까.
'섹스,섹스,섹스,이것에 생활의 소금이다',
광고,영화,책들이 끊임없이 외쳐대니까.
하지만 자신이 무슨 얘길 하고 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소.본능이 우리 모두 보다 강하기 때문에 그 짓을 하긴 해야 한다는 걸 알 뿐이오.
(p 333)

<연금술사>를 자아를 향한 여행이라고 한다면,
<11분>은 섹스를 통한 자기발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나한테는 그런한 만남들이 언제 나타나는 걸까?
아직 한계에 도달하지 않은 걸까?

수선이의 도서관

www.kleinsu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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