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솔직하게 살고 싶다
김지룡 지음 / 명진출판사 / 1999년 7월
평점 :
절판


김지룡의 책을 처음으로 읽었다.
김지룡이 쓴 다른 책들도 다 읽어봐야 겠다고 생각할 만큼, 재미있었고 또 유익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김지룡에 대한 아주 부정적인 선입견을 갖고 있었다.
그 선입견은....
"서울대" 출신이라는 덕에 일본 성문화 어쩌고 저쩌고 썰풀며 "문화평론가"라는 이상한 타이틀까지 만들어 대접을 받는다는 거다.
다른 사람이 했으면 시시껄껄한 야한 얘기로 끝났을 얘기를,
서울대에 게이오 석박사까지 한 덕에 "문화평론"으로 둔갑하는거 아닌가 하는 불신. 그렇다. 나는 김지룡에게, 또 학벌을 마케팅으로 내세우는 세태에 강한 불신을 갖고 있었다.

학벌을 마케팅 포인트로 사용하는 경우는 흔하다.
금나나가 과기고 출신에 의대생인 덕분에 좀 빠지는 외모에도 불구하고 미스코리아 진이 된거나, 한성주가 승마특기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고대 정치외교학를 다니는 "재원(?)"이러고 떠들며 미스코리아 진이 된거나,서경석이 서울대 재학생이라는 이유로 개그 콘서트에서 하이라이트를 받은거나 다 같은 맥락이다.
김태희 같은 미모의 탈렌트가 서울대까지 다니면 뜰 수 밖에 없다.

나도 대학 2학년 때,
개그를 해보지 않겠냐는 KBS PD의 제안을 받은 적이 있었다.
과후배랑 허접한 대학생 장기자랑 프로에 나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 우리가 한 개그를 눈여겨 본 PD가 한번 제대로 해보면 어떻겠냐고 우리에게 제안을 했다.

우리가 PD의 제안을 받은것은 우리가 특별히 웃겨서도 아니었고,
끼가 넘쳐 흘러서도 아니었고, 아이디어가 신선해서도 아니었다.

PD가 말했다.
개그맨의 고학력 시대가 온다고...
학교덕에 뜨기가 쉽겠다고....

우린 그말을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렸지만,
그 다음해에 서경석이 뜨기 시작하면서 PD의 말을 깨달았다.

그래서....
난 김지룡이 학벌 팔아먹고 사는 떠벌이라고 지레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일본 성문화 얘기로 떴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이 책을 안 읽었으면 억울했을 정도로, 나의 선입견은 쓸데없고도 근거없는 거였다.

책을 다 읽고난 지금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김지룡은 "문화평론가"라는 타이틀을 명함에 넣을만 하다고...

김지룡의 에세이는 단순한 신변잡기적 고백이 아니라
다른 사회와 확연히 구별되는 일본 성문화를 거시적으로 설명하고 있다.또한 솔직하게(아내가 상당히 기분 나쁠 정도로) 자신의 체험을 얘기하므로서 읽는 이의 관심을 유도하고 있다.
경영학 박사까지 수료한 김지룡은 저자의 입장에서 책이 팔릴 수 있는 미끼를 충분히 제공했다.

김지룡 보고 지저분하다, 이런 사생활을 고백하는게 부끄럽지도 않냐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많다. 또는 이것도 책이냐? 등등....
김지룡도 충분히 교양있고 어렵게 책을 쓸 줄 아는 사람이다.
김지룡의 책을 읽어보면 일본성문화에 대한 그의 지식이 결코 녹녹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김지룡은 이 책을 쓰기 위해 방대한 자료들을 조사했다는 것을, 결코 자신의 체험에만 의존하여 근거없는 썰을 푸는게 아니라는걸 알 수 있다.

누가 일본에서 겪은 자신의 무용담을 말하며
나 온갖 업소에 다 가봤고, 원조교제도 해봤다 하며 잘난 척을 한다면 그건 시시껄껄한 얘기다.

하지만 자신이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일본에 왜 이런 차별화된 성문화가 형성되었을까를 고찰하고
그것을 비판한다면 그건 "문화비평"이다.
책을 솔직하고 가볍게 썼다고 해서 무시해서는 안된다.
별것도 아닌 얘기를 참고문헌 잔뜩 붙여서 어렵게 쓰는 것 보다 훨씬 낫지 않은가?

이 책을 읽으면서 "섹스산업"과 "풍속산업"의 차이를 처음으로 알았다.
"섹스산업"은 여성의 섹스를 팔고,"풍속산업"은 남자의 "사정"을 보조하는 산업이란다. 즉,일본은 "삽입에 이르는 과정"을 파는 풍속산업이 "삽입"을 파는 "섹스산업"보다 훨씬 호황을 누리는 유일한 국가라는 것이다.

90년대에 들어오면서 일본의 풍속산업은 더욱더 발전했는데,
혁신적인 변화라면 "사정조차 원하지 않는 남자들"이 늘어났다는 것이다.풍속업소를 찾아오는 남자의 10퍼센트는 사정을 원하지 않는다고 한다.

피곤에 지친 이들이 원하는건 단지 "대화"라고 한다.

그들은 위로를 원한다.따뜻한 말 한마디를 원한다.그렇다고 '남자라는 알랑한 자존심'이 있는데 부인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기는 죽어도 싫다.그래서 풍속업소의 여자를 찾는다.그러면서 풍속산업은 힐링(치유) 산업,극단적으로 말하면 정신과 병동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단적인 예가 "애인 플레이"다.내용은 지극히 단순하다.
정말로 애인이 된 기분으로 대화를 나누며 일상적인 행동을 한다."자기 오늘 회사에서 뭐했어?","나 보고 싶었어?","자기 나 얼마만큼 사랑해?" 등등.애인들이 나누는 극히 평범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전부다......... 그렇지만 대화 이외의 서비스는 일절 제공하지 않는다.남자들은 15만원 이상을 주고 60분 플레이를 신청하고는 서비스 걸과 잡담을 나누다 돌아간다.
(p176)

이 부분을 읽다가 울뻔했다.
얼마나 외로우면 그럴까?
얼마나 힘들고 외로우면....
오죽 얘기할 사람이 없으면.....
왜 그렇게 강한 척 센 척해야 할까?
왜 가족한테도 말하지 못하고 서비스 걸한테 비싼 돈 주고 얘기를 해야 하는 걸까?

이들이 대화를 하려고 서비스 걸들을 찾는 심리는,
카운셀러를 찾은 심정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부장제의 폐단을 절실하게 느꼈다.
가부장제의 피해자는 여자, 남자 모두이다.
가족 앞에서 힘들다고 말도 못하는 남자들,
남자는 "강해야 한다", "울면 병신이다" 라고 어렸을 때 부터 교육 받은 불쌍한 남자들....
가부장제의 교육이 이들을 서비스걸들에게 보낸다.
모르고 만만한 여자에게 시시콜콜한 얘기를 하고나서 집에서는 위엄을 갖추고 부인이 한 밥을 먹는다.
" 애들은 자나?" 목소리를 깔고 말하면서....
얼마나 슬픈 현실인가?
가부장을 하고 있는 남자도 결국 가부장제의 희생자인 것이다.

곧 김지룡의 <나는 일본문화가 재미있다>를 읽을 예정이다.
유연한 사고방식을 가진 김지룡, 상당히 쿨한 남자다.

수선이의 도서관

www.kleinsu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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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리타 2004-10-04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문화 평론가로 알고 있던 사람이었는데 그를 다시금 보게 되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