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님되는 법
진산 지음 / 부키 / 2002년 6월
평점 :
절판


<마님 되는 법>(진산 지음/부키)을 읽다.

지난 주, 회사에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메일에 깔려 헉헉 거렸고,
잠시도 쉬지 않고 울려대는 전화에 경기를 일으켰으며,
05년 경영계획과 예산을 짜는데 기력을 탕진했다.
계속되는 야근 속에 짜증이 늘어만 갔다.
저녁을 먹고 사무실에 올라오다가 서점에 들렸다.
웃긴 책을 하나 사서 실컷 웃으며 퇴근길에 스트레스를 날려 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두리번 두리번 화끈하게 웃긴 책이 없을까 둘러 보았다.
진산의 <마님 되는 법>이 눈에 들어왔다.
언젠가 알라딘에서 "웃겨서 기절할 것 같은 책" 리스트에서 이 책 제목을 본 생각이 났다. 얇은 책이라 부담도 없었고, 몇장 넘겨보니 문장도 엽기적이고 신선한 것이 아주 발랄했다.
망설이지 않고 이 책을 선택(사실 바빠서 더 둘러볼 시간이 없었다), 사무실로 올라갔다.

저녁을 먹고 다시 사무실로 올라가는 기분은,
가짜 외출증을 만들어서 떡볶이 먹고 아이스크림 먹고 실컷 놀다가 야간자율학습을 하러 다시 학교에 들어가는 고딩의 애처로운 심정과 같다.
(요즘 고등학생들은 야자가 없단다.쫌만 늦게 태어날껄...쩝)

일을 꾸역꾸역 마치고(정확히 말하면 다음날로 미루고)
퇴근하면서 이책을 읽었다.
이 책.....진짜 웃긴다.
피곤해서 택시를 탔는데, 내가 하도 낄낄거려서 아저씨가 백밀러로 나를 힐끔힐끔 쳐다봤다.

<마님 되는 법>은 말 그대로 어떻게하면 결혼생활에서 삼월이가 되지 않고 마님이 되어,
떵떵 거리며 행복하게 사느냐 하는 법을 설파하고 있다.

"마님"이라는 호칭 때문에 거북하게 느끼는 사람도 있을테고,
남편을 "삼돌이"라고 부르는 호칭 때문에 어찌 하늘 같은 남편을 "삼돌이"라 칭하냐며 노발대발하는 어르신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한번 통쾌하게 웃기려다 보니 표현들이 가벼운건 사실이지만,
<마님 되는 법>은 웃기기만 할 뿐 속빈 강정 같은 내용 없는 책이 절대 아니다. 낄낄거리다가도 놓치기 아까운 충고들을 만나게 된다.

특히 남편감을 선택하는 기준에는 110% 동의한다.

첫째,각진 남자
누구에게나 잘 해 주는 사람은 누구에게도 잘 못해 주는 사람이다

- 정말 맞는 말이다.불고의 진리다.
난 아무 여자한테나 잘해주고, 툭하면 오해 살 일을 하면서 자기가 뭐 잘못했는지 조차 모르고, 맺고 끊고 못하고, 좋아하지도 않는 여자를 심심하다고 만나는 그런 흐리멍텅한 남자가 젤로 싫다.
진산의 첫번째 기준, 정말 110% 아니 120% 동의한다.박수!!!

둘째,거짓말 안하는 남자
이건 정말 만고의 진리다.
툭하면 거짓말 하는 남자는 아무리 돈이 많아도, 아무리 잘났어도,아무리 집안이 뜨리뜨리해도 다 필요없다. 부부는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동지적 결합이다. 툭하면 거짓말을 일삼는 남자는 만날 가치가 없다.

거짓말을 일삼는 남자.
재고할 필요가 없다. 짤라라, 단칼에!

셋째, 자존심 있는 남자.
자신의 일에 자존심과 책임감을 느끼는 남자

- 자존심 있는 사람이 상대방의 자존심도 존중할 줄 안다.
인간이 자존심을 상실할 때, 그 인생은 망가지기 시작한다.
자존심이 있는 사람만이 자신의 삶을 소중히 여긴다. 행복한 가정을 만드려고 노력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참고로,
사귀는 여자한테 돈 빌려 달라고 하는 넘들은
이유를 불문하고 다 짤라라!
그런 넘들은 둘 중 하나다.
궁지에 몰려서 자존심을 이미 다 팔아버린 넘이거나,
아니면 여자를 이용하는 파렴치한이거나...

진산이 제시한 세가지 기준을 너무 열렬하게 지지하는거 아니냐구?
천만에 만만에 말씀.
각진 남자, 정직한 남자, 자존심 있는 남자.
이 세가지는 내가 항상 생각해 오던, 좀더 거창하게 말하면 나의 가치관과도 일치한다.

진산은 무협작가다.
( 난 무협지를 읽어본 적이 정말 한번도 없다.그래서 인기작가인지 아닌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연재했던 내용들을 모아서 펴낸 책이라는데, 문장이 경쾌하고 가볍다 보니 내용도 같이 가볍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낄낄거리면서 챙기는 교훈이 쏠쏠한 책이다.

진산의 남편도 무협작가다.
마님(진산)은 삼돌이(남편)의 섬김을 받으며 재미있게 산다.
주위 사람들은 이런 마님을 부러워 하며,
마님이 되는 법을 전수해 달라고 졸랐단다.
그래서 이 책을 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진산은 "마님"이 되기에 최적의 조건에서 살고 있다.
정말로 모든 여자들이 부러워 하는 "완벽한 조건"이다.


마님은 친정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다.
경기도 한적한 곳에 집을 짓고,
일층에는 부모님이, 이층에는 마님과 삼돌이가 산다.
물론 마님의 아들은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넘치는 사랑으로 돌보아 주신다. 정말 더이상 완벽할 수 없는 조건이다.

이런 마님의 완벽한 생활환경을 읽으면서 강유원을 생각했다.

강유원이 자신의 서평집 <책>에서 조혜정을 신랄하게 비난한 것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문화>에 실린 조혜정의 글들을 읽고 강유원은 조혜정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조혜정은 시집살이를 하지도 않고 "일하는 아줌마"까지 있는 교수이기에, 주부의 주체적인 삶 운운하는 주장은 세상의 대다수 직장 가진 여성에게는 별다른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서평전문가 강유원의 글을 직접 인용해 보도록 하겠다.

그가 주장하는 것은 고작 '옆에서 지켜보니 안됐군.나는 이렇게 하고 있는데,한번 해보면 어떨까.물론 형편이 안 되면 어쩔 수 없지.' 하는 식의 입바른 이야기일 뿐이다.만에 하나 조혜정의 주장에 깊이 공감하여 그걸 실천에 옮기려는 사람은 살림을 맡아 하고 아이를 돌보아 줄 '아주머니' 부터 구해야 할 것이다. 강유원의 <책> p73 인용

만약 강유원이 <마님 되는 법>을 읽고 서평을 썼다면,
조혜정에 대한 비판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이렇게 쓰지 않았을까?

진산은 자신의 책을 읽는 불특정 다수의 수많은 여자들에게 호소한다. 마님이 되라고!
하지만 친정부모와 함께 살고있는, 아이의 양육을 친정 부모가 책임져 주는 그의 아주 특수한 조건을 고려할 때, 진산의 주장은 공허할 뿐이다.
대한민국에 친정 부모랑 같이 살고 있는 여자가 얼마나 되겠는가?
그것도 딸,사위에게 일절 간섭하지 않으며, 어떤 권리도 주장하지 않고 손주를 키우는 의무에만 충실한 쿨한 친정 부모와 말이다.
그러니 진산이 전하는 "마님 되는 법"은 "난 이렇게 살아.부럽지?"하는 자랑일 뿐이다.


그런데....이런 "패러디"는 웃기긴 하지만 쓸데 없는 상상인 것 같다.
두꺼운 인문사회과학 서적 읽고 "논거의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분주할 강유원이 이런 가벼운 에세이류를 읽지는 않을 테니까...

진산의 <마님 되는 법>은 표면상의 "가벼움"에도 불구하고,
결코 가볍지 않은 "가르침"을 선사하는 책이다.
어떤 기준으로 평생을 함께할 동지를 선택하고,
또 어떻게 그 동지와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며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지...

수선이의 도서관

www.kleinsu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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