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막내동생이 "첫 출장"을 갔다. 홍콩으로.

첫 출장!
정말....."첫 사랑"만큼이나 설레는 일이다.

막내동생은 벌써 한 달 전부터 들떠 있었다.
별의 별 걱정을 다하고,
무슨 옷을 입을지 고민하고,
아빠, 엄마 선물을 뭐할지 의논하고,
홍콩 일기예보를 거의 매일매일 보다시피 했다. 귀여운 것!

아침 비행기라 동생은 5시 조금 넘어 집을 나섰다.
아빠는 동생의 거대한 트렁크와 갖가지 짐들을
공항 리무진 정거장까지 들어다 주시고 들어오셨다.

오늘 아침에 보니
우리 아빠......많이 늙으셨다.
내 "첫 출장"이 오버랩되면서 아침부터 가슴이 짜~안했다.

시드니로 떠난 첫 출장 때,
난 동생 보다 10배는 더 호들갑을 떨었다.
일주일 출장 가면서 커다란 트렁크 2개를 들고 갔다.
동생은 전시회에 필요한 회사 샘플 때문에 짐이 많지만,
그 때 내 트렁크는 다.....옷들로 가득 차 있었다.
(선배들에게 이민 가냐는 놀림을 엄~청 받았었다.ㅋㅋ)

첫 출장에 설레였던 건 나만이 아니었다.
어린애 같은 딸내미가 출장을, 그것도 해외출장을 간다는 사실이
아빠,엄마에겐 신기할 뿐이었다.

그 땐 인천공항이 아니라 김포공항이었는데,
아빠,엄마는 공항까지 나오셔서 손을 흔들며 배웅을 하셨다.
시드니 일주일 출장이 아니라,
시드니 올림픽에 출전하는 태극전사의 부모님 같았다.

아빠,엄마의 표정에는 신기함, 대견함, 흐뭇함 및 걱정, 불안 등
만감이 교차하고 있었다.

진~짜 필요 없다고 하는데도,
회사에서 일당도 나오고, 카드도 있고, 현금도 충분하다고 하는데도,
아빠는 한사코 용돈을 주셨다.
(아.......언제 그렇게 또 용돈을 받아 볼까? 가 버린 날들이여, 다시 오라!)

그랬던 때가 있었다.
첫 출장에 잔뜩 설레여 잠을 설친 막내동생처럼
그랬던 때가 있었다. 내게도.

어느새~
장필순의 노래처럼 어느새~

신입사원은 과장이 되었고,
"서른 즈음에"를 들으며 눈물 흘리던 나는
넉살 좋게 윙크까지 하며 "골든 30대"를 외치게 되었고,
첫 출장에 설레여 잠 못 이루던 나는
비행기 타는 걸 지하철 타듯이 대수롭지 않게 느끼게 되었으며,
공항까지 나오셔서 태극전사 부모님처럼 하염없이 손을 흔들던 울 아빠,엄마는
현관에서 "언제 오냐?"는 한 마디로 그 애틋했던 배웅의 절차를 혁신적으로 개편하셨다.

그리고 어느새~
막내동생의 첫 출장에 잊고 있던 첫 출장의 기억을 떠올린 나는
나의 대학 입학, 첫 출근, 첫 출장에
나 보다 더 설레여 하시던, 더 가슴 벅차 하시던
부모님을 생각하며 반성했다.

그 모든 순간을 함께 해주신,
그 모든 순간에 나 보다 더 기뻐해 주신 부모님께
제대로 고맙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지.

- 막내 동생의 첫 출장 날, 잊고 있던 나의 첫 출장을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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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06-11-14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의 첫 해외 출장도 그랬어요. 전 신입사원이 아니라 대리가 되서 본사 출장가는 거였고, 신입사원 때부터 뻔질나게 해외를 드나들던 동생보다 해외출장은 늦게 간 거였지만, 부모님은 무척 대견해하셨고 공항까지 태워다주셨더랬죠.
그 시절이 좋았어요~ 에너지와 의욕이 넘쳤던 시절!

blowup 2006-11-14 1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선 님의 다이어리를 보고 있으면,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의 리스트가 떠올라요.

이리스 2006-11-14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나도 입사하고 한참 있다가 해외출장 갔는데. 미국 출장이었구 짐은 별로 많지 않았던 것 같아. 올 때 많아졌을 뿐. 각종 자료와 참고서적들이 가득.. --;

kleinsusun 2006-11-15 0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riny님, 전 지금도 에너지와 의욕이 넘쳐요. 호홋~^^

namu님, 그렇게 말씀하시니...부끄부끄^^ 오늘 아침 출근길에 첫출장 갔던 날을 떠올리면서 부모님께...참 고맙고도 미안했어요. 새까맣게 잊고 있었답니다.

구두님, 정말? 자료와 참고서적들만? 구두랑 가방들은 없었구? ㅋㅋ

2006-11-15 01: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잉크냄새 2006-11-15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대리때 첫 해외출장을 중국으로 다녀왔지요. 전 설레임도 두근거림도 없었고 내일 회사안가니까 마음 놓고 술 마셨다가 비행기 안에서 술냄새 폴폴 풍겼다죠.

2006-11-15 13: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태우스 2006-11-15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막내동생의 출장을 기화로 부모님의 사랑을 생각하시는 모습, 아주 아름답습니다.

마태우스 2006-11-15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생분이 아무리 귀엽다 해도 수선님보다 귀여울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비로그인 2006-11-15 15: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출장보다는 여행이 좋다, 라고 생각하는 저는 매우 숙연해집니다. 후훗.

kleinsusun 2006-11-15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크님, 비행기 못타면 어떻할까...는 걱정되지 않으셨어요? ㅋㅋ
역시...소심한 저랑 다르시군요, 용감한 잉크님!^^

마태님, 오....전 마태님의 칭찬을 먹고 살아요. 음하하하.

Jude님, 물론...저도 출장 보다 여행이 훨~씬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