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 30분, 아직 어둑어둑하다.
호텔방이 반지하라 바깥 풍경은 보이지 않는다.

Joost van den Vondel 이라는 17세기 네덜란드 작가가 살았던
옛저택을 개조한 3층 짜리 작은 호텔이다.
반지하에 있는 이렇게 작은 방이면 싸지 않을까...생각되지만
하루에 170유로(20만원이 넘는다!)나 한다.

암스테르담 시내 한 복판인데다,
(반고흐 뮤지엄이 500m 이내에 있다)
세계적인 무역도시인 암스테르담의 호텔비는 살인적으로 비싸다.

어제 헬싱키에서 저녁 비행기를 타고 암스테르담으로 날아 왔다.
매일매일 비행기를 타는 건 굉장히 몸을 축나게 하는 일이다.
유럽 출장 마지막날 한국 가는 대한항공에서 몇번이나 "쌍코피"를 쏟았었다.

그래서 그 좋아하는 술도 자제하면서 조심한다. 아프지 않으려고.
커다란 트렁크랑 노트북을 들고 혼자 떠돌이처럼 돌아 다니면서
아프기라도 하면 정말 큰일이다.
객지에서 아픈거처럼 서러운 일은 없다.

어제 호텔에 도착했을 때
내 거대한 트렁크를 반지하 방까지 들어다 준
깡마르고 키 작은, 까무잡잡한 동남아계의 벨보이가 물었다.

"Are you from south Korea?"

그렇다고 대답하며 너는 어디서 왔냐고 묻자 "미얀마"라고 했다.
그는 묻지도 않은 말을 덧붙였다.

"My brother is working in Busan."

아...... 갑자기 가슴이 콕콕 찔렸다.
머나먼 미얀마의 가난한 형제들은
한명은 암스테르담 한 복판에서 짐을 나르고 있고,
한명은 부산의 영세한 방직공장 같은 데서 일하고 있을 것이다.
월급이나 제대로 받을까? 아프면 병원이나 제대로 갈 수 있을까?

자기 형이 한국에 있다며 반가워하는,
하얀 이를 드러내고 순진하게 웃는 깡마른 남자를 쳐다 보면서
괜시리 미안했다. 내가 그의 형을 착취하기라도 한것처럼.

지갑에서 5유로를 꺼내 팁으로 줬다.
5유로, 그러니까 6천원을 팁으로 주는 건 과도하다.
"부산"이라는 지명을 들었을 때 주사 바늘에 찔리기라도 한것 처럼 불편해서
허겁지겁 지갑을 열었다.
그렇게 하면 괜시리 미안한 마음이 조금은 편해질 것 같아서.
그러니까 나 편하자고.

좁아 터진 반지하 호텔방에 짐을 풀고,
인터넷 접속이 안돼 서비스 제공자인 swisscom 테크닉션이랑 두번이나 통화를 하고 나니,
긴장이 확~ 풀리면서 몸이 축 늘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Vondel의 서재에서 글을 쓰면 뭔가 영감이 떠오르지 않을까 해서
호텔 바에 노트북을 들고가 소설 비스무리한걸 한장 썼다. 하하.

8시가 되면 씩씩하게 나가 기차를 타고
HILVERSUM이라는 근교 도시에 가야 한다.
거래선의 사무실이 있는 곳으로.
좋은 결과가 있기를, 아자!

미팅을 빨리 끝낼 수 있으면
오후에는 반고흐 뮤지엄에 가볼 생각이다.
내 홈페이지 대문 그림을 그려주신 사랑하는 빈센트 오빠.

이렇게 또, 암스테르담의 아침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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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6-09-19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선니임, 몸 조심하세요 비행기 타는 거 정말 힘들잖아요. 글구 님이 쓰신 소설, 기대되옵니다. 담에 뵈면 내용 이야기해주시어요!!

2006-09-19 13: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06-09-19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요, 수선님.
돌아오시면 소설에 대해 이야기해주세요. 보여주셔도 좋구요. 헤헷 :)
건강 잘 챙기셔서 무사히 일 마치시고 최상의 컨디션으로 돌아오세요!

이리스 2006-09-19 1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하는 빈센트 오빠, 잘 만나구 와아~~ *^^*

2006-09-19 14: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moonnight 2006-09-19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고많으십니다. 맘씨도 고운 수선님. 언제나 씩씩하려 노력하시는 모습이 넘 아름다워욧! >.< 반고흐 뮤지엄. 수년전에 갔었어요. 암스텔담 떠나는 날. 수선님 글 읽고 있자니 은근히 그리워집니다. ^^; 잘 있나 대신 확인해 주시어요. 건강하시구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