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넌 부모님한테 미안하지도 않냐? 얼마나 걱정하시겠냐?
내가 결혼한건 90%가 부모님 생각해서야.
부모님 생각을 해야지."

얼마 전 만난 친구 H가 말했다.
도대체 말이 되는 소린가...하면서 들었던 말인데,
어버이날이 되니 한 귀로 흘려 버렸던 H의 말이 떠오른다.

어버이날, 부모님 생신, 설날, 추석.... 이런 날이 되면 솔직히 마음이 불편하다.
부모님께 미안한 마음, 죄책감 같은 게 느껴진다.
부모님 친구분들 댁에는 어버이날이라고 손주들이 와서 뛰어 다닌다는데,
난 또 배시시 웃으며 크지도 않은 선물을 내밀 뿐이다.

지난 주 화요일, 회사 사람들과 술을 마시다가 어버이날 무슨 선물을 하냐고 물어 봤다.
대개 비슷했다. 현금. 액수 조차 다 비슷했다.
지방에 부모님이 계신 사람들은 온라인 송금을 하기도 했다.

난 한 번도 부모님께 현금을 드린 적이 없다.
우리 엄마는 현금을 드리면 "저금해라!" 하시면서 내 통장에 넣어 버리고,
백화점 상품권을 드리면 "니 옷 살 때 보태서 사라." 하시면서 돌려 주신다.
이러니....무슨 날이 될 때 마다 선물을 고민할 수 밖에 없다.

올해도 한참을 고민했다.
어버이날 며칠 후가 또 엄마 생신이라 따블로 고민했다.

동생이 제안했다. "우리 가족 여행가자, 어때?"

엄마, 아빠는 우리가 결혼이 늦다고 말로는 별 구박을 다하지만,
우리랑 노는(?) 걸 넘 좋아하신다.
우리랑 나들이 가는 걸 무척 좋아하신다.

동생 말을 듣고 제주도, 경주 그런 유명 관광지를 알아 봤는데,
역시나...5월의 모든 주말은 이미 만원이었다.
또....다섯 명이 제주도, 경주에 가려면 비용도 장난이 아니었다.

고민하다가 서울 근교 OOO호텔의 패키지 티켓을 샀다.
방 2개 + 스파 입장권 10장.

그래서....다가 오는 주말에 우리 엄마, 아빠는
귀여운 손주들의 재롱 대신,
과년한 딸들과 조용히 온천을 즐기게 된다.

엽기적인 어버이날 선물이다.
나만의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장 큰 선물은 함께 하는 "시간"이 아닐까?


사랑하는 엄마,아빠.
이번 어버이날에도 사위는 커녕 남자친구 하나 못 데려와서 죄송해요.

그래도...이것 만은 알아주세요.
어버이날 선물을 얼마나 고민했는지...
작은 기쁨이나마 드리려고 나름 얼마나 머리를 굴렸는지...
몇십만원 온라인 송금하는 것 보다 몇십배의 시간이 들었다는 걸....

저 어렸을 때,
신발 짝짝이 구별하는 데도 오래 걸렸쟎아요.
그래서 맨날 툭하면 넘어지고...그 덕에 별명도 배삼룡이고...
그렇게 다른 애들보다 더뎌서 걱정했는데....결국 공부 잘했쟎아요. 그죠?

지금도 남들 보다 더디지만,
아직 제 짝을 못 만났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어렸을 때 더뎠지만 결국 공부 잘했던 것처럼
지금도 더디지만 단단한 제 자리를 찾을꺼예요.

저를 믿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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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nerist 2006-05-08 0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홧, 근데 열장이나요? ㅋㅋㅋ
올해 어버이날 선물은, 엄니한텐 회사 노동절 선물로 나온 상품권을 그대로 헌납했구, 아버지껜 형하고 돈 합쳐서 나이키 런닝 슈즈 하나 사드렸다우. 나도 내년엔 온천 티켓으로 한 번 밀어볼까? 며느리나 빨리 델꾸 와라 구박하실지 모르겠지만. 히힛.

등 박박 잘 밀어드려요. 피부미용에 좋다잖아요. 그나저나, 내일 출근하려면 일찍 주무셔야할텐데. 좋은 꿈 꾸세요. 씨익 앤드 화알짝 ^_^o-

2006-05-08 01: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5-08 01: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06-05-08 0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 수선님을 믿으실겁니다. :)

클리오 2006-05-08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 친구랑 놀지 마세요.. =3=3=3

BRINY 2006-05-08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우리 엄마는 현금봉투랑 온라인 송금이랑 다 아주 좋아하시는데!

icaru 2006-05-08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모님과 함께하는 느긋하고 단란한 온천.. 좋은데요~
근데...님...어릴적에 배수선이셨구나~ ㅎㅎ..구엽네요~

마늘빵 2006-05-08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편지가 참 좋은데요. 전 여친한텐 닭살짓 잘 하면서 부모님한텐 무뚝뚝해서 그런편지 못써요.

끼사스 2006-05-08 1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생은 정말 아름답군요. ^^

kleinsusun 2006-05-09 0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너야, 내년에 델꾸가면 되쟎아.ㅎㅎㅎ
너 지금 자랑하는거지?^^

속삭이신님, 음하하하. 이렇게 정곡을 찌르시다니...네, 저 공부 잘했다고 자랑하는 자랑 페이퍼예요.ㅎㅎㅎ

숨어계신님, 부끄럽긴요. 님은 항상 효도하시쟎아요.^^

다락방님, 아마도....I hope so.^^

클리오님, 그 친구는 만날 때 마다 제게 스트레스를 줘요.ㅠㅠ

BRINY님, 저희 엄마도 현금을 좋아하시면 좋겠어요.^^

icaru님, 네...저 어릴 적에 배씨였어요.ㅎㅎㅎ
어찌나 엎어지고 자빠졌는지...근데 지금도 잘 넘어지고, 먹는 것마다 흘려요.^^

아프락사스님, 엄마한테도 눈 딱 감고 닭살을 떨어 보세용!^^

훈성님, 감사합니다.^^ 훈성님의 어버이날은 어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