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를 쓴지 1주일이 되었다.
태어나서 처음 쓰는 거다.

항상 과거를 돌이키며 "If"를 생각하는 건 사람을 우울하게 만들지만,
만약 가계부를 1년 전부터 썼다면,
OO카드의 프리미엄 회원은 되지 못했을 꺼다.
아무 생각 없다가 카드 청구서를 보고 놀라지도 않았을 꺼다.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각종 site들의 가계부.
참 잘~도 만들었다.
카드,현금 구분은 기본이고
일별, 주간별, 월별 비교 기능에
수입,지출,저축을 클릭 한방에 그래프로 보여 주고...
참....excel을 처음 봤을 때 만큼이나 "powerful" 하다.

근데....일주일 전까지 이런 게 있는지도 몰랐다.

가계부를 쓰니까 가장 좋은 점은
가계부 쓰기가 귀찮거나 또는 무서워서 가급적이면 돈을 안 쓰게 된다는 거다.

前 회사에 아주아주 짠돌이로 유명한 과장이 있었다.
항상 지갑에는 천원짜리 몇장 밖에 없었다.
사실 대기업 다니는 회사원들은 차비 빼고는 하루 종일 돈 안 쓰고 지낼 수 있다.
구내식당에서 밥 먹고, 커피/녹차 같은 음료들도 잔뜩 쌓여 있으니까...

그 과장이 딱 그렇게 했다.
점심은 항상 구내식당에서 먹고,
테이크 아웃 커피를 마신다거나 아이스크림을 쏜다거나 이런 일 절대 없고,
차비를 제외한 돈은 거의 한푼도 쓰지 않았다.

한 번은 그 과장이랑 같이 택시를 탄 적이 있다.
그 과장이 앞에 타고, 나랑 선배 한 명은 뒤에 탔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앞에 앉은 그 과장은 택시 아저씨한테
"감사합니다!" 큰소리로 인사하더니
그.냥 내렸다.

나랑 옆에 앉았던 선배는 잠시 서로를 멍하게 쳐다 보다가
급하게 돈을 내고 내렸다.

그 때, 그 선배와 나는 그 과장을 정말 진~하게 씹었다.
예전에 있었던 일 하나하나 들추어 내면서.
야근하다 포장마차에서 오뎅 같이 먹고 돈 안낸 얘기 같은
시시껄껄한 얘기들을 하면서...

난 그 "쪼잔한" 과장이 싫었다.
도대체 저렇게 아껴서 뭐할까? 그런 철 없는 생각을 했다.

그 과장은 지금쯤 알부자가 되었을 꺼다.
그 때 목동인지 강남에 꽤 큰 아파트를 분양 받아서 입주했었다.
또 그 대출금을 갚는다고 그렇게 아꼈고...

혼자 벌어서 대출금에 부인과 애들 2명.
그렇게 아끼지 않았다면 생활을 할 수가 없었을 꺼다.

남들한테 "쪼잔하다"는 말 들어도,
또 가끔씩 쩍팔림을 당해도,
그 과장은 그렇게 혹독할 정도로 자신의 지출을 통제했고,
그 아파트는 지금쯤 가볍게 2배는 올랐을 꺼다.

반면....
우아하게 테이크 아웃 커피를 들고 산책을 하고,
간식으로 하겐다즈 아이스크림을 먹고,
툭하면 택시를 타고,
카드 청구서가 나올 때 마다 갸우뚱 하며 "이렇게 많이 썼나?" 했던 나는?

씀씀이가 무진장 큰 친구가 하나 있다.
회사원 생활을 접고 프리랜서로 독립을 했는데,
돈 무진장 번다. 회사원 떄 보다 4~5배를 번다.

그런데.....그 때나 지금이나 저축이 없기는 마찬 가지다.
돈을 많이 벌수록 씀씀이도 같이 커지니까...
SM5 팔고, BMW5를 샀다.

재테크의 기본은 어떻게 수익률을 더 내느냐가 아니라,
"지출 통제"다.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고, 또 불변의 진리다.

가계부 쓴지 일주일.
일주일 하고 너무 비장하다.ㅎㅎ
(그래도 작심삼일은 넘겼다.)

p.s) 아빠한테 칭찬 받았다.
운동도 하고, 가계부도 쓰고 많이 달라졌다고...ㅎㅎ
"새해 특수 효과"는 언제까지 계속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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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2-10 1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쭈욱 쓰시면서 부자되세요^^

다락방 2006-02-10 1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지출 통제"
너무 어려운 일이군요. 그래서 더욱 공감합니다.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고 불변의 진리이지만 지키기는 결코 쉽지 않은 일.
그럼 저도 이제 가계부를 써볼까요? 헤헷 :)

플레져 2006-02-10 1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예쁜 가계부가 생겨서 1월 부터 쓰기 시작했어요.
보름을 못 넘겼지만...-_- 마음 한 구석엔 아직도 가계부가 걸려있어요.
겨우 두식군데도 식비가 제일 많이 들어요.
배달 문화가 잘 발달된 것도 괜히 불만~
알라딘에서 책 사는 버릇만 고쳐도 부자 될 조짐은 보여요. ㅎㅎ
다시 써야겠어요! 불끈!

클리오 2006-02-10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부자가 되고 싶긴 하지만, 후배들과 가는데 아이스크림 한번, 택시비 한번 못내는 부자는 싫어요. 물론 그래서 부자가 못되는거기도 하겠지만, 평생 부자의 목표지점이 없으면 평생 아끼고만 살겠잖아요. 그치만 수선님의 가계부 쓰기는 좋은 습관인 것 같네요. 저도 좀 써봐야 될텐데.. ^^

2006-02-11 00: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BRINY 2006-02-11 0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터넷 가계부가 그렇게 좋군요. 고려해볼까요. 3월부터.

세벌식자판 2006-02-11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계부 쓰면 확!실!히! 좋은 점.
받아야 할 돈을 절대 잊지 않는다. . . (^o^) 라는것... 헤헤헤

kleinsusun 2006-02-11 1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 물만두님도 부~자되세요!^^

다락방님, 오늘 저는 집에서 하루 종일 자고 지금 일어났더니 오늘은 가계부에 쓸게 없군요.ㅎㅎㅎ 다락방님도 한번 써 보세요. 처음이라 그런지 재미있기도 하답니다.^^

플레져님, 뭘 하다 안하면, 아님 해야 할 일을 미루고 있으면 마음에 "걸려" 있죠.
자꾸 생각나고 말이죠. 저도 일상 다반사로 겪는 일이라....알라딘에서 책 사는거는 자신을 위한 "투자"라고 볼 수도 있쟎아요.^^ 하루 종일 자고 지금 일어났더니 전 멍~해요.

kleinsusun 2006-02-11 1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클리오님, 이제 달랑 일주일 썼어요.ㅎㅎ 쭈~욱 써서 "습관"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클리오님도 한번 써보세요. 처음이라 그런지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해요.^^

어설프게 숨어 계신님, "기특하다"는 칭찬을 들으니 부끄부끄....^^
"엄마는 외계인" 디따 맛있어요. 먹고 싶당...

Briny님, 인터넷 가계부 정말 놀러워요. 제가 쓰는건 www.moneta.co.kr 에 있는 미니 가계분데요, Briny님도 함 보세요.^^

세벌식 자판님, 아....그 점도 있군요. 자판님도 가계부 쓰세요? ^^

세벌식자판 2006-02-11 1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계부 경력 5년차 입니다요~~~ ^^;
전 인터넷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가계부보다 그냥 엑셀을 써서 관리합니다.
뭐 특별한 노하우 같은건 없구요... 그냥 막쓰는거죠. ^^;

kleinsusun 2006-02-11 1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벌써 5년차라구요?
세벌식 자판님, 곧 재테크 책 한권 내는거 아니예요? ㅎㅎㅎ 홧팅!

세벌식자판 2006-02-11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헤헤 수선님도 화이팅입니다요~~~ ^o^

moonnight 2006-02-12 0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작년에 가계부 나름 열심히 쓰다가 시월쯤 되어서 포기했답니다. 흑흑. ㅠㅠ 올해는 아직 시작안했어요. 수선님 본받아서 불끈. 해 볼랍니다. ^^; 가계부 쓰면, 귀찮은 일도 많지만 내 씀씀이를 알게 된다는 점에서 확실히 좋은 거 같아요. 더 아끼게 된다고는 말 못하겠지만요. ;; 근데 저도, 그 과장님 입장, 이해 되긴 하지만 그렇게 되고 싶진 않은 거 있죠. (이러니 아직 돈을 못 버는 거겠지 -_-;)그냥..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밥도 맛있는 거 사주고 술-_-도 사주고 그렇게 살고 싶어요. 이러니 아직 결혼 못하고 있는 건가 싶기도 하네요. ^^; 좌우지간 우리 수선님 가계부 쓰시게 된 건 참 좋은 습관 같아요. 화이팅. ^^

2006-02-12 01: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2-12 21: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2-18 11:1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