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첫눈이 내린다. 그것도 함박눈이.... 고등학교 때,눈이 내리면 애들은 강아지처럼 날뛰며 좋아했다. 현관으로 몰려가서 펄쩍펄쩍 뛰며.... 학교가 여남공학이라(그 때는 아무 생각 없었는데, 남녀 공학이란 말이 싫다. 왜 항상 모든 단어에 자동적으로 남자가 앞에 오는지 모르겠다.주민등록번호도 왜 남자는 1이고, 여자는 2인지...화난다.)가끔씩 눈싸움을 하다가 다치는 애들도 있었다. 무식하게 던졌다. 참...그땐 다들 기운도 좋았다. 애들이 그렇게 펄쩍펄쩍 뛰며 좋아할 때, 내 친구 수경이는 걱정을 했다. 혹 눈으로 미끄러운 길을 지나다가 할머니가 넘어지시기라도 할까봐... 수경이는 할머니와 살았다. 할머니는 거의 매일 학교에 도시락을 갖다 주셨다. 가끔씩 치킨도 사다 주시고, 일식집에서 회덮밥도 사다 주셨다. 고3 때인가? 수경이 할머니가 안계신 날, 수경이 집에 친구 6~7명이 모여 밤을 새며 논 적이 있었다.뭐...집에는 서로 돌아가며 전화를 해주고,밤을 새워 공부를 한다고 말했던 것 같다. 애들은 다들 너무 신나서 어쩔 줄을 몰랐다. 피자도 사오고, KFC에서 치킨도 사오고,떡볶이도 만들어 먹고 밤새 얘기를 했다. 그 때, 친구 B가 야한 비디오늘 빌려 보자고 했다. 우리 모두는 정말 디따 순진했는데, 야한 비디오라고 빌려온게 <변강쇠>였다.아...너무나 실망스럽게도 <변강쇠>는 전혀 야하지 않았다.그저 좀 황당할 뿐...이대근.원미경 주연이었는데, 그 둘이서 방에 들어가면 장면이 바뀌면서 폭포가 흘러내리는 장면이나 온 마을이 흔들리는 장면 이런게 나왔다. 변강쇠랑 한번 잔 과부네 집에서는 그 다음날 초상이 치러졌다.우리는 "도대체 이걸 누가 빌려왔어?" 하며 비디오를 빌려온 친구를 나무랐다. 정말...우리는 너무나 순진했다. 지금...<변강쇠>를 빌려온 친구 B는 애가 셋이다. ㅎㅎㅎ 친구 수경이의 할머니에 대한 사랑, 할머니의 수경이를 향한 사랑은 정말...진정...극진했다. 그래서 수경이는 눈이 오는걸 좋아하지 않았다.오직...할머니 걱정 뿐이었다. 올해 5월, 수경이는 결혼을 했다.수경이 할머니는 분홍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계셨다. 난 너무 반가워서 수경이 할머니를 꼭 안아드렸다. 그리고...수경이 할머니는 여름에 돌아가셨다. 수경이 신랑에게서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 정말 깜짝 놀랐다. 그 다음 날 저녁,신촌 세브란스.초췌한 얼굴의 수경이가 있었다. 서로 얼굴을 보자 마자 눈물이 났다.우리는 안고서 엉엉 울었다. 영안실 앞 벤치에 앉아 수경이가 말했다." 할머니는 내 전부였어." 첫눈이 오니까, 내 친구 수경이가 생각난다. 그 때 본 이후로 수경이를 한번도 만나지 못했다.올해가 가기 전에는 꼭 만나야 할텐데...수경이는 수경이를 아주아주 사랑하는,결혼식 때 피아노를 직접 치며 <신부에게>를 부른 멋진 신랑이 있다. 둘이 이번 크리스마스, 또 첫눈 오는 오늘을 아주아주 행복하게 보냈으면 좋겠다. 수경이가 행복하면, 멀리 계신 수경이 할머니도 행복하시겠지... 수경아, 넌 내가 정말 정말 사랑하는 친구야. 니가 첫눈 오는 날 많이 많이 행복했으면 좋겠어.05년 첫눈 오늘날, 사랑하는 친구 수경이를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