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출근길.
아침형 인간이랑 거리가 먼 나는 겨우 눈을 떠 샤워를 하고
머리도 말리지 않고 "튀어" 나왔다.
출근 시간에는 왠 10분 차이가 그리 큰지...

통근버스를 놓치고 버스 정류장에 서 있는데,
집 없는 개 한 마리가 그 이른 시간에 버스 정류장을 서성이며 먹을 껄 찾는다.
잘 모르긴 해도 품종이 좋은 개 같다.
한 때는 애견센터에서 미용도 하고 귀여움도 받았을 듯....
어쩌다 저렇게 버려졌을까....아침부터 마음이 좋지 않다.

순딩이 같은 개가 쿵쿵 거리며 열심히 먹을 껄 찾지만
길에는 잔뜩 떨어진 은행나무 잎들과 쓰레기 밖에 아무 것도 없다.

개는 먹을 껄 찾다가 지쳤는지, 포기했는지 순하디 순한 자세로 살그머니 앉는다.
아...그 체념의 눈빛이란.....
한 번 쓰다듬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 개는 툭 치기에도 너무 지저분했다.

혹시 가방 속에 먹다 남은 과자라도 없나 뒤져 보았다.
군것질 거리 자주 들고 다니는데, 하필 아무 것도 없었다. 껌 하나 밖에...
버스 정류장에는 "K 마트"라는 편의점 비스무리하게 생긴 작은 가게가 하나 있는데 문을 닫았다.
닫혀 있는 문 안을 들여다 보니,
호빵 기계 안에 하얀 호빵이 몇 개 들어 있다.
(주인은 전원 끄지 않은 채로 퇴근하고, 전날 재고를 그 다음날에 파나 보다.쩝)

그 호빵 기계가 밖에 나와 있다면,
그 가게가 문을 열었다면 호빵을 사 줬을 텐데...
그 순하디 순한 개에게 호빵을 사주고 싶었다.
하하호호 호빵, 하하호호 호빵.

그 개가 차라리 일명 "잡종" 누런 개라면 마음에 덜 걸렸을 지도 모른다.
한 때는 사랑을 많이 받았던,
그저 주인이 쓰다듬어 줄 때 주인에게 착 안겨 행복해 하던,
그런 순하디 순한, 생활력이 떨어지는 개를 보니 마음이 좋지 않다.

독일어에 "Alles in Ordnung"이란 말이 있다.
직역하자면 "모든 것이 질서 안에 있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다." 이쯤 되겠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되고 있다, 계획대로 되고 있다 ..이런 말이다.
독일 애들, 이 말 참 좋아하고 많이 쓴다. Alles in Ordnung!!!

근데....참....어디로 튈지 모르는, 변수로 가득 찬 세상에 살면서
말끝 마다 "Alles in Ordnung!"을 힘껏 외치는 독일 애들을 보면 이상할 때가 있다.

새벽 버스 정류장을 킁킁 거리는 그 개도 한 때는
세상이 "Alles in Ordnung"이라고 느꼈을 텐데...

처세술 책들을 보면
가장 중요하다고 하는 게 "긍정의 힘"이다.
삶을 향한 긍정적인 자세.... 정말 중요하다. 그럼...

하지만, 자신의 일은 무조건 잘 될 것이라는,
또는 무조건 착착 잘 되어야 한다는,
자신의 작은 세상은 그저 안전하다는,
모든 것이 제 자리에 있다는 그런 믿음은
이 변수로 가득한 세상에서 너무 무모한 게 아닐까?

출근 길에 만난 그 순한디 순한 개는 지금쯤 뭘 좀 먹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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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11-15 1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순하디순한 개 입에 호빵이 하나 들어갔으면 참 좋았겠는데...
수선님의 마음이 따땃합니다.^^

이리스 2005-11-15 1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출근길에 다리가 부러졌는지 심하게 낑낑거리며 다리 쪽을 불편하게 움직이며 앉은 눈처럼 하얀 마르티스를 보았더랬죠. 유기견협회에 연락해서 그 쪽에서 데려갔습니다. 그 가여운 강아지. 버려진다는 건 이래저래 참으로 쓸쓸하고 또 두려운 일입니다. 언젠가 나와 헤어진 남자친구를 우연히 다시 만났을 때.. 버림 받은 강아지같았다는 말을 듣고 한참을 자책하며 울었던 기억이...

날개 2005-11-15 1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손가락은 좀 어떠신지......^^

야클 2005-11-15 2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런 저런. 나도 배 고파서 슬픈 표정 짓고 있는 길거리 개들 보면 새우깡 사주고 가는데요... 지금쯤 배 좀 채웠길 바래봅니다.
그리고....
분발하십시오.
크리스마스는 지금도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습니다. ^^V

바람돌이 2005-11-15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때 길거리에서 차에 치여 다리를 다치고는 낑낑대는걸 발견하고 주워다가 우리집에서 한달쯤 키웠던 멍멍이 삼돌이가 생각나는군요. 주인을 찾는다고 방을 붙이고 다녔는데 전화오는거라고는 보신탕을 노리는 것 같은 이상한 아저씨들뿐이고... 결국 집에 있는 시간이 없던 우리는 삼돌이를 한달만에 시어머니 아는 분 집으로 입양 보냈습니다. 그 녀석 병원비로 한 20만원 깨졌던 것 같은데..(개는 보험이란게 없더라구요. ) 한달이라도 꽤 정이 들었었는데.... 삼돌이는 지금쯤 잘 살까요? ^^

2005-11-15 22: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천리향 2005-11-16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만 딱 보고 '저는 갈치조림을 먹었습니다' 할 뻔 했어요.

어릴 때 팔뚝만한 잡종 강쥐 또순이를 델꼬 와서 송아지만큼 키워놨더니
내가 학교 간 사이에 오마니가 보신탕 집에 팔아 먹은 기억이 나네요.
그 다음에는 토끼를 주워와서 키웠는데 귓병 나서 죽고
새끼 고양이를 키웠는데 비 맞고 열병 나서 죽고
병아리 얻어와서 영계로 키웠더니 어느 복날 밥상 삼계탕으로 환생~

아아 따끈한 호빵 먹고 시포라 왈왈

kleinsusun 2005-11-16 1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네...정말 호빵을 사주고 싶었어요. 그 개는 지금쯤 어데 있을까요? 날이 추운데....

낡은구두님, 바쁜 출근길이었는데도 유기견협회에 연락하셨군요.
저 같으면....아마...불쌍하다고 생각하면서 종종 걸음쳐서 회사 갔을꺼 같아요.
낡은구두님 글을 읽으니 부끄럽네요. 낡은구두님은 참 섬세한 사람 같아요.

날개님, 기부스 풀고 밀린 술을 마시고 있답니당.랄랄라~

kleinsusun 2005-11-16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클님, 야클님의 현재 score는? 저는.....호홋^^.

바람돌이님, 님은 정말 복 받으실 꺼예요. 불쌍하다는 생각으로 지나치는 많은 사람들 중, 바람돌이님은 개를 데려다 키우시고 입양까지 시켜 주셨네요. 아...부끄럽사옵니다. 삼돌이는 지금쯤 신나게 놀며 자~알 살고 있을꺼예요.

속삭이신님, 살짝꿍 말씀드릴께요. 부끄부끄^^

지노님, 아....어렸을 때 슬픈 사연들이 많았네요.
그 때 마음 많이 아프셨죠?
오늘 오후는 따뜻한 호빵 하나 드시면서(팥이 더 맛있죠? 전 야채는 별로...ㅎㅎ)
여유있는 시간 보내시길...

2005-11-16 20:2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