랄랄라 하우스
김영하 지음 / 마음산책 / 2005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난 김영하의 일촌이다.
김영하의 일촌은 몇명이나 될까?
김영하는 가끔씩 일촌 파도타기를 할까?

작년에 우연히 김영하에게 cy 미니홈피가 있다는걸
알게 되었다.
호기심의 대마왕인 나는 냉큼 cy에 접속,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는 미니홈피를 발견했다.
일촌이 되면 더 보이는 폴더가 있을까 하는 욕심에
일촌을 신청, 다음 날 접속해 보니 일촌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더 보이는 폴더는....없었다.

작년엔 가끔 점심시간에 cy에 들어가곤 했는데,
언젠가부터 회사에서 cy접속이 차단되었다.
뭐...그런 기사가 신문에도 나고 했었다.
그러다 보니 원래 썰렁했던 내 미니홈피는
"최근 2주간 게시물이 없습니다" 가 항상 떴고,
덩달아 김영하 미니홈피에도 안가게 되었다.

그러다 얼마 전,
김영하가 미니홈피에 있는 글들을 엮어서 책으로 낸다는 말을 들었다. 낭독회도 하고....
평일 저녁에 강남 교보에서 하는 낭독회에는 가지 못했지만,
책은 주문했다.

누군가 말했다.
김영하를 좋아하지만,
이 책만큼은 사지 않고 서점에서 서서 읽겠다고....

사실 잡지 연재를 모아서 거기에 살포시 삽화만 곁들여
책을 내는 작가들을 보면 얄미울 때가 있다.
뭐....리메이크 앨범을 자주 내는 가수들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아하는 소설가가 책을 내면 일단은 지갑을 연다.
이런 희망도 가져본다.
안정된 수입으로 자질구레한 청탁을 쿨하게 거절하고
소설에 집중할 수 있기를....

김영하 산문집 <포스트 잇>을 읽으면서 가벼운 질투를 느꼈다.
어떻게 이 남자는 "캉가루표 구두약"(말푠가??) 같은
아무 것도 아닌 얘기도 재미있게 만들 수 있을까?

이 책 <랄랄라 하우스>도 마찬가지다.
한가한 주말에 쇼파나 침대에서 만고 편한 자세로 뒹굴거리며
가끔씩은 낄낄거리며 읽기에 딱 좋은 책이다.

고양이, 소년중앙, 때밀이, 말풍선, 스타벅스, 민방위, 예비군 훈련...
이런 일상적인 소재들을 가볍게, 또 짧게 썼는데도 재미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마구 기분이 좋아지는 부분이 있었다.
소제목은 <소설의 엔진>.

예전에 소설의 동력은 주로 "연애"였다.
<안나 카레리나>나 <마담 보바리>처럼...
이제 그 약발이 떨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새로운 소설의 동력은 무엇인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이것은 어쩌면 작가들의 착시현상은 아닐까.로라는 말한다.많은 작가들이 부업(혹은 본업)을 따로 가지고 있다.그들에게 있어 진짜 일은 글쓰기이며 다른 일은 글쓰기를 위한 하찮은 생계수단일 뿐이다.그렇게 살다 보면 글쓰기(혹은 예술)는 휘황한 아우라에 둘러싸인 것처럼 느껴지는 반면
직장은 그저 단순한 업무만 반복하는 지옥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들의 꿈은 글만으로 먹고 사는 전업작가가 되는 것이다......
(중략)........
그러나 우리 작가들은 그곳을 잘 모른다.
그러니 우리의 주인공들은 소설이 시작하자마자 직장을 나오는 것이다.이제는 우리의 주인공들을 직장에 머무르게 할 때인지도 모르겠다.대신 작가들이 그 속으로 들어가야 하겠지만.
(p206)

아하하하.
미래의 소설 동력은 "직장"이 될꺼라는 얘기다.
그런데 우리 작가들은 직장을 잘 모른다.안 다녀봤으니까...
그래서 한국 소설의, 특히 여자 소설가들의 주인공은
하나 같이 출판사 직원, 방송 작가, 잡지사 직원....다 이런거다.
자기들 직업이었으니까...

이제 소설의 새로운 동력이 "직장"이 된다면,
나의 숨가빴던, 또 힘들었던 회사생활도 싱싱한 에너지가 될 수 있겠지.....(물론 내가 소설을 쓴다면...)

한 선배가 아멜리 노통의 <두려움과 떨림>을 읽고 내게 말했다.
"너도 회사 생활 얘기를 이렇게 한번 써봐. 생생하게..."

아...이런 생각을 하니 저물어 가는 일요일 밤이 두렵지 않다.
내일도 씩씩하게 회사에 나가볼까?
리얼한 소설의 엔진 만땅 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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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9-04 21: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태우스 2005-09-04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수선님, 멋진 리뷰십니다. 사실 전 이렇게 사랑방에서 얘기듣는 것같은 리뷰가 좋습니다...

야클 2005-09-04 2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김영하씨 책은 나오자마자 늘 사서 본답니다.
그리고 수선님은 소설 보다는 수선도서관에 있는 글 같이 짤막한 신변잡기성 글이 더 어울릴듯.(혹시 습작하신 소설이라도 있으면 공개 좀 하시죠. ^^)

로즈마리 2005-09-04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괜히 땡겨서, 오빠가 돌아왔다, 사 놓고 아직 안 보고 있어요. 이 책이 저의 김영하에 대한 편견을 제거해주길 기대합니다만...^^;;;

끼사스 2005-09-04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갑자기 회사 다닐 맛이 나는군요. ^^: 전해 들은 얘기인데 김영하씨는 실제로도 "내가 재밌는 얘기 해줄까요?" 하며 시작할 만한 이야깃거리를 수도 없이 갖고 있다는군요.

플레져 2005-09-05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인용하신 부분...제가 밑줄 쫙쫙, 틈 나는대로 읽는부분이에요!
랄랄라~ ♪

2005-09-06 01:1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