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없는, 눈코 뜰 새 없는 생활이 계속 되고 있다.
집에 가면 기절하다시피 잠이 든다.
"잠이 든다" 보다는 "쓰러진다"가 적당한 표현인 듯...

잠들기 전에 조용히 앉아 자신의 호흡을 지켜보며 명상을 하라고,
잠들기 전에 일기를 쓰며 하루를 찬찬히 돌이켜 보라고,
잠들기 전에 스트레칭을 하며 하루의 피로를 풀어 주라고
TV와 신문과 수많은 책들과 수많은 사람들은 말한다.

매일매일 단 15분씩의 명상이 당신의 삶을 바꾼다고,
매일매일 단 15분씩의 일기 쓰기가 당신을 성공으로 이끈다고,
매일매일 단 15분씩의 스트레칭이 당신의 몸을 바꾼다고
TV와 신문과 수많은 책들과 수많은 사람들은 친절하게 설명한다.

그런데...
그렇게 하고 싶은데....
매일매일 하면 삶이 달라진다는 거
해보진 않았지만 당근 그러리라 생각되는데
실제로 집에 가면 그냥 쓰러져서 잠이 든다.

다음주는 방콕 출장,
그 다음다음 주는 일본 출장,
그 다음다음 주는 유럽 출장이 잡혔다.

설레이기도 하고 조금 흥분도 하고 해야 할 텐데,
왠지 스케쥴이 나를 집어 삼키는 것 같은 압박감이 든다.
걸음 빠른 배려 없는 남자랑 헉헉 되며 걷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주말엔 내가 휘말려 들어가고 있는 일상의 가속도에 제동을 좀 걸어야 겠다.
정말이지 가만히 앉아서 찬찬히 정리를 해야 겠다.
안 해도 될 일은 과감히 머릿 속 목록에서 빼 버리고,
하기 싫은데 별 쓸데 없는 의무감으로 하려 한 일도 빼 버리고,
거절을 못해서 만든 허접한 약속도 취소하고,
일상을 최대한 단순하게 만들어야 겠다.

그리고 밤에 집에 들어오면
스트레칭을 하든 명상을 하든
좀 "relax"하는 시간을 가져야 겠다.
아침에 가뿐하게 일어나기 위해서....

그런데....
참 이상한 건...
정말 이해되지 않는 건...
이렇게 바쁘고 정신 없는데
바쁘면 아무 생각 없는 게 정상인 것 같은데...

외.롭.다.
나....정말 토낀가?

아침에 커피를 마시면서 선배가 말했다.
그래서 토끼는 키울 때 두 마리를 키워야 한다고...
왜 그걸 몰랐을까...
잠시 우리랑 살다간 토토가 생각났다.
(토토 : 몇년 전 키우던 토끼 이름, 토끼중의 토끼란 뜻으로 내가 지었다.)
토토는 그 때 외로워서 죽었을까?

외롭다.
허접한 관계성에 의존하지 말자! 라고 하면서도
슬슬 약해지는 내 자신을 발견한다.

외롭다고 허접한 관계성에 의존하면
정작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나지 못한다.
의존적인 허접한 관계에서 더 피로해지고, 결국 더 외로워진다.
그럼 또 허접한 관계에 의존하고....
그런 악순환이 계속된다.

그러니...
이 봄에...
다 꽃구경 하고
주말 마다 예식장이 미어 터지고
놀이공원에는 손을 꼭 잡은 커플들이 넘쳐 나고
카페들은 소개팅하는 어색한 남녀들로 자리가 없을 때,

이 때...한 번 본격적으로 외로워 보자.
8월의 한 여름까지 살아 있으면...
나는 토끼가 아니다. 하하...

댓글(11)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로드무비 2005-04-22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수선님, 많이 외로우시구나.
어떡한다죠?
요즘 왜 수선님 리뷰가 안 올라올까 생각했답니다.
외롭다고 당황하면 안돼요.
그나저나 외국 출장 줄줄이......
수선님을 부러워하는 사람들 많다는 것 잊지 마세요.
그럼 조금 덜 외로워지려나?^^

로드무비 2005-04-22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커피 한잔 어때요?ko-hi-.gif

 


icaru 2005-04-22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돈나 좋아하세요~? 안 좋아하실 수도...
아무튼 이 여편네가 기 불어넣는데는 한 일가견 하는 것 같습니다...
8월의 한여름까지...넉끈히 계시라고 기 한 방 불어넣구 가요~~~~!!




야클 2005-04-22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화창한 봄날에 즐겁게 지내셔야 되는데...

거칠은 벌판으로 달려가자♬ ↖^^↗
힘내세요.
곧 지나갑니다. 힘든 일이든, 외로움이든. ^^

물만두 2005-04-22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자!

돌고개쇼로 외로움 떨치시길^^


마냐 2005-04-22 1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히히. 여기 정신못차리구 쓰러지는 사람 또 있어서...반갑슴다. 그렇게 미친듯이 한 계절을 보내고나면, 또 나름 여유를 값지게 누릴 줄 알게 되는 거 같아요. 어떤 상황에서든 행복해질 가능성이 높아지는거죠. (자기합리화의 귀재임다)

옛말에 틀린거 없다고, 바쁘고 많은 사람들에게 부대끼면 정말 군중속 고독이 생기더만여. 언젠가, 고개를 들어 사무실 전체를 조망했는데, 내가 속을 털어낼 인간이 안 보이더라구요. 그렇게 늘 술마시고, 웃고, 떠들었는데.....가끔 그럴 때가 있더이다. 결혼을 해도, 등돌리고 코고는 옆지기 옆에서 외롭고, 엄마랑 노는 대신 컴퓨터게임을 하겠다는 애들을 보며 외롭고, 어느새 양만 늘고 질이 떨어진 내 인간관계에 외롭고......가만 따져보면, 객관적으로 외로운게 아니라 주관적으로 외롭죠. 그리고, 다시 '울증' 대신 '조증'이 시작되더군요. 수선님은 바쁘시다니까....덜 앓고 지나가실걸루 기대함다. 힘내세요.

드팀전 2005-04-22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회사 일많이 시키네....벌어서 편법증여할꺼면서(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자!!)
뭐 바빠서 놀 시간이 있겟나..... 외로울때 놀아줘야되는데.놀이가 인간을 얼마나 건강하게 하는데 놀지도 못하고 쓰러질 정도로 일을 시켜대냐... 주말에 노새요.그냥 놀아요.몸으로 하는 거루다가 놀아요.
좀 다른 이야긴데...언젠가 그냥 삶이 외롭고 허망하고...뭔가 잘못살고 있는 거 같구.그런생각이 든적이 있어요.한달정도 그랬나봐요.문득 학교에 가고 싶었어요.그래서 오랜만에 옛날에 다니던 학교를 다녀왔죠.그냥 슬슬 구석구석 걸어다녔어요.자주 친구들과 앉아있던 벤치에서 담배도 피우고 지나가는 한참 어린 후배들도 바라보고 한 두시간 그냥 바라보다 걷다가 생각하다 그랬네요.의기소침했었는데 왠지 기운이 나더라구요.나름대로 치열하게 살았던 시절도 생각나고 아픈 기억도 떠오르고 지금은 다른 길을 가는 친구들의 모습도 보이고.
지나가는 아이들 모습에서 그 시절 내모습과 고민들도 오버랩되고...
그러다가 정말 문득 ...뜬금없이 정전되듯이...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 너 열심히 잘살아왔구나." "지난 시절도 그렇게 잘 해왔으니 그걸 믿어도 되겠다.""지금 잠깐 힘들었지만 더 어려운고민들도 자알 버텨왔구나.다 쓸모없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했지만 그 외롭고 답답한 시절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주었구나." .."그래.앞으도도 나의 인생이 곤란을 겪기도 하겠지만 또 그속에서 뭔가 얻어서 자..알 살겠구나." "널 믿는다.잘 해왔어"....... 그런 생각들이 막들어서 눈시울이 뜨거워졌어요.혼자 자뻑하는 걸 수도 있었지만. 학교를 내려오는 길은 올라갈때와 다른 느낌이엇어요.그 짧은 시간에 조금 큰 거죠. ..... 님에게도 그런 경험이 언젠가 찾아갈 겁니다.힘내세요.잘해왔어요.!!!!

2005-04-23 01: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kleinsusun 2005-04-23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어요.
"우리 수선님이 많이 외로우시구나". 따뜻한 느낌! 엄살피는 애처럼 느껴졌어요.제가.....고맙습니당.기분 up!

복순이 언니님, 마돈나 언니의 눈빛에서 에너지를 땡겨왔어요.
열정적인 마돈나 언니. 그렇게 다 태우면서 살고 싶어요.

야클님, 요즘 술 많이 마신다구요? 너무 과음은 조심하세요.
전 지금 위염으로 약 먹고 있거든요. 즐거운 봄날 보내세요!

물만두님, 돌고래가 뽀뽀하는 사진을 올리시면 어떻해요??? 허걱.... ^^

kleinsusun 2005-04-23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냐님.'양만 늘고 질은 떨어진 인간관계" 정말 적나라한 표현이네요.
정신 못차리고 쓰러지는 사람...바로 저....주말을 맞이하여 일어납니다. 아자!
오늘 부터 "조"증이 시작된다는 일기예보가...^^

드팀전님, "다 쓸모없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했지만 그 외롭고 답답한 시절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주었구나." 읽으면서 눈물이 핑 돌았어요. 드팀전님 글은 항상 제 맘에 와닿네요. 의미 없는 시간은 없겠죠, 그죠? 네...맞아요. 저 잘해왔어요. 스스로에게 박수를, 짝짝짝!

2005-04-23 14:0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