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한 종합병원의 영안실로 조의를 다녀왔다. 상무님의 장모님이 돌아가셨다. 오랫동안 투병생활을 하셔서 그런지 가족들은 침착해 보였다.
영안실 앞에는 자녀들의 이름이 쭉 써 있었다. 아들1명, 딸 4명, 그리고 그들의 배우자 5명. 울 상무님은 막내사위다.
그런데 참 이상한건 영정 앞에 서서 조문객들과 인사를 하고 절을 하는 사람들은 아들 1명과 사위 4명, 다섯 명의 남자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슬픔은 딸들이 가장 클 텐데 50~60세인 딸들은 음식을 나르고 손님들을 챙기느라 정신이 없었다.
상무님을 찾아온 문상객들이 제일 많았다. 상무님 앞으로 온 수많은 弔花들, 수많은 조문객들... 삼성그룹의 임원이라는 타이틀에 맞게 엄청나게 많은 조문객들이 찾아왔다.
팀에서는 시간표를 만들어서 오전/오후/저녁/야간 반을 만들었다. 나는 오후반이었다. 오후반 3명은 차 한대로 같이 이동, 병원에 도착했다. 식사를 하고 손님들과 인사를 하고 약간의 시간이 흘렀다.
같은 오후반이었던 김 과장님이 말했다. " 우리 교대해 주자. "
오전반이었던 강 과장과 김 대리가 영안실 안 데스크(조의금 내고 이름 쓰는 곳)에 앉아 있었는데, 그 사람들과 교대해 주자는 말이었다.
같이 있던 Bruce 대리는 흔쾌히 "예,그러죠" 대답했다. 그런데 나는....그렇게 흔쾌히 대답할 수가 없었다. 왜냐구?
조문을 수도 없이 많이 가 보았지만, 그 데스크에 여자가 앉아 있는 것을 한번도 보지 못했다. 내가 거기에 앉으려 하면, 누군가가 나에게 "여자는 앉는 거 아니예요." 이런 말을 할까 봐, 이런 말을 들을까 봐 두려웠다.
세상에서 제일 듣기 싫은 말이 " 여자는 안 된다." "여자라서 안 된다." "여자가 어디서..." 이런 말이다. 여태까지 영안실 안의 데스크에 남자들만 앉았는지 여자들도 앉았는지 그런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내가 거기에 앉을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막상 닥치고 보니 " 내가 앉아도 되는 것인가? " 이런 생각이 든 것이다. 정말 별의 별 고민을 다한다.쩝...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잠깐 자리를 비웠다. 다행히 강 과장과 김 대리가 그냥 자기들이 계속 하겠다고 해서 나랑 같이 간 일행들은 교대를 하지 않고 식당에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밤 늦게까지 있었는데, 약속이 있었던 Bruce 대리와 나는 6시가 조금 넘어서 같이 나왔다. 우리는 서울로 나오기 위해 좌석 버스를 탔다. 일산에서 당산역까지 나란히 앉아서 얘기를 했다. ( Bruce 대리는 내가 회사에서 가장 좋아하고 친한 사람 중 한 명이다.)
수선 : 있쟎아요... 영안실 안에 조의금 내는 데스크 있쟎아요... 거기에 여자가 앉은 거 본 적 있어요? Bruce : (갸우뚱 갸우뚱 하다가) 없는 거 같은데.. 본 적 없어요. 근데...왜 그래요? 수선 : 아까 김과장님이 교대하자 그럴 때요, 같이 들어갔다가 누가 "여자는 앉으면 안돼요." 그럴까 봐 걱정했어요. Bruce : ( 좀 놀란 표정으로 ) 그랬겠다.... 정말 그랬겠다.... 그런 생각은 한번도 못해봤네. 수선 : 이런 "헛갈림"을 하루에도 몇 번씩 느껴요. Bruce : Susan이 생각이 많겠구나. 남자들한테는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 Susan한테는 그렇지 않구나. Susan이 말하지 않았으면 생각도 못해봤겠네. 이런 문제는....
그렇다. 너무도 당연하고, 너무도 일상적이고, 아무 생각 없이 할 수 있는 일들이 내게는 그렇지 않는 경우가 많다.
어떻게 해야 되지? 헛갈릴 때가 많다. 답은 없다. 왜? 전례가 없으니까...
이런 일도 있다. 가끔씩 국내 거래선이나 공장에서 누가 방문했을 때, 우리 팀의 모든 사람들과 악수를 하면서 내겐 악수를 청하지 않을 때가 있다. 여자랑 악수를 하기가 뭐한가 보다. 요즘에도 그런 사람이 있냐고 웃을 수도 있겠지만, 이런 아저씨들 진짜 있다. 한두번 겪어 본 거 아니다. 심지어 내가 전화 받으면 말을 어정쩡하게 내려서 하는 사람도 있다. 예를 들어
수선 : 감사합니다. OOOOOO 성수선입니다. 전화 한 아저씨 : 영업 담당자 좀 바꿔요. 수선 : 어떤 제품 문의하시게요? 전화 한 아저씨 : OOO (제품 이름만 툭 말한다.) 수선 : 말씀하십시오. 제가 담당자입니다. 전화 한 아저씨 : 거....대리 쯤 되는 사람 좀 바꿔요. 수선 : 말씀하십시오. 성수선 대리입니다. 전화 한 아저씨 : ( 당황하며 ) 어.......영업에.....여자 분도 계시네요. ( 태도가 확 바뀌며 ) 저는 OOOO 누구라고 하는데요.
이런 일 정말 한두번이 아니다. 아직도 여자가 전화 받으면 갓 여상 졸업한 사무보조직 여직원인지 아는 사람이 유감스럽게도 한두명이 아니다. 그리고.... 자기 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 전화를 받건, 채 10살도 안 된 어린이가 받건 전화를 걸었으면 "존댓말"로 얘기하고, 자신이 누구인지를 먼저 말해야 한다는 "상식"을 모르는 사람이 한두명이 아니다.
으윽....쓰다 보니 하소연이 되었다. 쩝. 이런걸 쓰려던게 아니었는데....
나를 제외한 팀원 모두에게 너무도 당연하고 아무 생각 없이 할 수 있는 일이 내겐 고민이 될 때가 있다. 그런데 내가 고민한다는 걸 주위에선 모른다.
그래서....가끔은....외.롭.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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