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있었던 선배들과의 술자리.
난 앞에 앉은 선배에게 대뜸 이렇게 물었다.

"오빠는 지식인이야?"

선배는 나의 쌩뚱 맞은 질문에
약간은 당황해 하며, 약간은 어이없어 하며 대답했다.

"그게....항상 고민이지."

선배는 E여대 교수다.
당근 "지식인" 또는 "식자"로 분류된다.

어렸을 때,
"산타 할아버지"가 진짜 있을까?...넘넘 궁금했다.

요즘 애들이야 4살만 되도 안다고 하던데,
어리숙한 나는 국민학교 3학년이 되서야 알았다.

요즘...도대체 지식인이란 뭘까? 정말...궁금하다.

주위에 박사들이 왜 이렇게 많은지?
회사에도 박사들이 드글드글,
거래선들의 명함을 받으면 이름 앞에는 한결 같이 PhD,
(이런 사람들한테 Mr.라고 하면 디~따 싫어한다!)
오랜만에 송년모임에라도 나가면 너도 나도 박사, 적어도 석사.

도대체....석사가 연구소에 가면 뭘할까?
비이커를 닦을까? 궁금하다.

얼마 전에 만난 모대학의 젊은 국문과 교수가 말했다.
지식의 환원은 윤리라고!

내색하진 않았지만 난 그 자리에서 충격을 받았다.
뻘쭘해서 맥주를 쭈~욱 들이켰다.

"지식의 환원은 윤리!"라고 말할 수 있는
그의 자신감이 부러웠다. 진정.

그의 말을 듣고 생각했다.
난 "환원"할만한 지식이 있을까?

생각하고 또 생각해 봐도,
<톡톡 무역 영어>를 날림으로 쓰거나
"비즈니스 매너" 정도를 야매로 강의하는 정도 밖에는 없을 것 같다.
해외영업"만" 10년했으니까.
나름대로 열심히! 온갖 스트레스와 굴욕을 참아가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병호 아저씨(그 또한 박사!)의 <명품인생을 만드는 10년 법칙>처럼
"명품인생"이 되지는 않았다.

어쨌든.... 도대체....지식인이란 뭘까?

선배는 사르트르의 <지식인을 위한 변명>을 읽어보라고 했다.
그런데....그 책을 읽을 생각을 하니....
웬지... 웃음이 난다. 으허허허.

요즘....공부가 하고 싶다. 너무나.
왜 학교 다닐 때 공부 안했던 인간들은 뒤늦게 공부가 하고 싶은걸까?

술 많이 마신 다음 날 갈증이 나는 것처럼 공부가 하고 싶다.
그런데....공부를 하고 싶은 동기의 "진정성"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식증 환자들처럼 마구 책을 먹어치우고 싶다. 우적우적.

"연구공간 수유+너머"의 김윤식 선생님 특강을 신청했다.
<한국근대문학사의 두 공간에 대하여>.

어쩌면....
사치일수도, 허영일수도, 또 한번의 삽질일지도 모른다.

그래도....공부가 하고 싶다.

- 어느 방황하는 회사원의 넋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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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천자문 2006-12-18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어 사교육을 받을 형편이 안되는 저소득층 어린이들에게 무료 영어교습 자원봉사를 한다면 그것도 훌륭한 환원이 되겠지요.

지식인이란 진리를 깨닫고, 자신이 깨달은 진리를 세상에서 구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 아닐까요? 문제는 그 '진리' 가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점이겠지만..

드팀전 2006-12-18 1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지식인에 주눅들지 마세요.지식 월급쟁이들이 태반이니까요... 제가 예전에 놀 때 사회학 강사 샘들과 좀 어울렸는데...애네들 문제가 뭐냐면 뭐 술먹다가 부르디외니 푸코니 뭐 이래요...그게 익숙한 친구들이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지만 제가 보기엔 '책'으로 만난 그것들 외엔 별로 자기를 표나게 하는 방법이 없어서인것 같더군요....저도 학문에 대해선 왠지 모를 존중감같은게 있긴 한데 ..흔히 빠진 박사,석사님들께 그다지 존중감이 생기지 않더군요.대략 아이큐 세자리되고 교수 사회의 드으러움을 버틸 비위만 있으면 할 수 있을 것 같아요.그렇게 자신있으면 저보고 해보라구요? 넵..전 비위가 약해서 못합니다.
제가 얼핏 기억하는 하이쿠 중에 그런게 있더군요.세상 어디에나 부처도 있고 똥파리도 있다.뭐 그런내용.지식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별 쓸데 없이 술자리에서 '환원은 윤리'..나원 책보시느라 술자리 윤리는 배우지 못하셨네.^^ 술자리 윤리 1장..지 잘났다고 지가 쓰는 용어로 남들 잘 모르는 말 하면 썰렁해진다.폭탄주 세 잔 연거푸 마시기 벌칙

마늘빵 2006-12-18 2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르트르 <지식인을 위한 변명> 읽어봤는데 글쎄 그거 가지구 뭐가 나올까 모르겠어요. -_- 좋은 책이긴 한데. 지식인을 뭘까, 나는 지식인일까, 저도 고민입니다.

반딧불,, 2006-12-18 2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8625252

놓치기 너무 아까워서 슬쩍..^^


kleinsusun 2006-12-18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린님, 요즘에는 초등학생들도 영어를 배우더군요.
(주변에 어린애들이 없다 보니 몰랐거든요. 최근에야 알았어요.)
몇달 전, 모 천사원에 갔었는데 초등학교 5학년 아이가 방학숙제를 하고 있었어요.
영어를 좀 가르켜 달라고 해서 옆에 앉았는데, "small" "short"같은 기본적인 단어도 읽지 못해서 놀랐어요. 이렇게 사교육이 극성인 세상에.... 같은 반의 다른 애들하고 갈수록 편차가 얼마나 커질까요? 머지 않아.....따라잡을 수 없게 되겠죠.
그때 큰 충격을 받았어요.
천사원 선생님께 아이들 영어 지도에 대해 상담했는데,
아이들의 편차가 커서 1:1 지도를 해야 한다고 하시더군요.
솔직히.......많이 망설였어요. 일주일에 세번은 해야 할 것 같은데, 그 정도 시간을 확보할 수 있을까, 시작했다가 못하면 어떻할까.......결국 시작을 못했어요.
마음 한켠에 부채로 남아 있었는데...예린님의 댓글을 읽으니 생각이 많아지네요.
아뭏든...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kleinsusun 2006-12-18 2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팀전님, 음하하하. 역시.....드팀전님의 유머와 위트는 쵝~오!^^
"술 자리의 윤리"란 또 어떤 게 있을까요?
혹시 한겨레 신문에서 베트남의 "평등한" 술자리에 대해 읽으신 적 있으세요?
호칭을 직급으로 부르지 않고 그냥 "형" 이런걸로 부르면서 다함께 먹고 마시는?
술자리 윤리 2장. 회식은 즐거워야 한다! 회식 때 잔소리하지 말자! ㅋㅋ

아프님, 음....<지식인을 위한 변명>을 읽으셨군요.
아프님 서재에 리뷰가 있나요? 가봐야 겠어요.^^

반딧불님, 감사합니다.^^

드팀전 2006-12-18 2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베트남 그거 좋네요.안그래도 저희 회사가 종종 술먹으면 도제식 분위기가 되는 지라 저는 1차끝내면 도망가지요.그런데 왠걸..며칠 전에 후배랑 술먹는데 그 후배보다 더 어린 후배에게 똑같은 짓을 하더군요.'니들 열심히 해야된다.' 뭐 가르치듯이 말이죠.그래서 한마디 했슴돠.그딴짓 하지마라.애들도 나이 먹고 다 지들 생각있는데 왜 시키지도 않는짓 하냐.그랫더니 그 후배가 취한 목소리로 '선배도 이제 후배가 아니라구요.그러니까 선배로써 뭔가 이야기를 해주고 그래야된다구요' 라고 하데요.어찌나 제 위에 선배들이 하는 짓을 그대로 따라하는지..그 친구가 한 말 중에 '결국 힘의 논리가 그런거 아닌가요' 라는 말에 분기탱천하여 막 뭐라 해주었답니다.
답답한 녀석 같으니라구.술자리 윤리 2장 중에 하나는 님 말씀처럼 '선배랍시고 또는 나이 먹었다고 훈계하지 않는다.'입니다.별 예정도 없으면서 무슨 의무감처럼 선배랍시고...그냥 술이나 맛있게 쳐드시지.

kleinsusun 2006-12-18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맞아! 공감 110%
별 애정도 없으면서 잔소리 하기는!
글쿠 또 하나! 회사 돈으로 술 먹으면서 자기가 내는 것처럼 생색내지 말아야 한다! ㅋㅋ

2006-12-19 08: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깐따삐야 2006-12-19 0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가 식자인줄 아는 사람이 지식인 아닐까요. ㅋ 요즘은 머리만 커졌지 몸둥이는 게을러져서 네** 지식IN같은 얄팍하고 잡다한 지식인들만 넘쳐날 뿐... 우직한 생활인이 그리운 시대에요.

비로그인 2006-12-19 0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식인 미워!

프라즈나 2006-12-19 1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차라리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를 읽고 지식인과 회사원(정확히 구분되는 개념인지는 나도 의문이지만^^..)의 실존에 대해 생각해보시거나... 아님, 촘스키가 말한 지식인의 정의를 웹에서 검색해 보심이..(잘은 기억안나지만 뭐, 박사 학위 따위가 지식인을 정의하는게 아니다..정도의 정의가 생각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