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아침, 눈을 뜨니...9시였다. 너무 놀라서,너무 황망해서, 너무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서, 그저 무기력하게...패닉 상태에 빠졌다. 핸펀을 보니 회사에서 온 부재중 전화가 5통! 후배에게 문자도 와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거예요?" 후배의 친절한 문자에 의하면 상무님이 디~따 열 받아서 "1팀은 긴장감을 가져!" 라고 마.구. 소리를 지르셨고, 상무님의 고함에 팀장님의 얼굴에 살기가 돌았다고 한다. 아....어쩌지? 데굴데굴 구르면서 응급실에 입원이라도 할까? UFO가 나타나서 나를 납치라도 해줬으면 좋겠다. 외계인들은 다 뭐하나? 나를 납치하지!도.저.히 출근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야말로 난...공포에 휩쌓였다.왜? 도대체 왜? 어쩌라고 알람 소리를 못들었을까? 제.대.로 미쳤다. 미쳤어!난 시간을 판 회사원. 나의 시간은 내것이 아니다. 그런데 어쩌자고, 도대체 어쩌자고, 늦잠을 잤단 말인가? 살기를 띤 팀장의 고함을 들을 생각을 하니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래도 어쩌랴?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고 집을 나섰다. 기왕 늦은거 어쩌랴...애써 모른 척 하며 버스에서 책도 읽고 음악도 들었다. Ray Charles가 "It was a very good year"를 열창하며 나를 위로했다. 아...고마운 Ray! 엘레베터를 타면서 부터 다시 공포에 휩쌓였다. 비.굴.하.게 눈치를 보며, 하얗게 질린 얼굴로 사무실에 들어갔다.다행히 팀장이 자리에 없었다. 살포시 가방을 놓고 자리에 앉아 pc 전원을 켜고, 죽은 듯이 가만~히 앉아 있었다. 전화가 마구 울리기 시작했다."성과장님! 메일 봤죠? 그 엑셀 쉬트 한번 열어봐요!" "성과장님! 가격 cfrm 하셔야죠!" "Susan! Can we have your quotation by today?" 차라리 다행이다 싶었다. 팀장에게 불려갈 시간이 없었으니까...점심시간이 됐다. 뭘 먹을 생각이 없었다. 그렇다고 텅빈 사무실에 앉아 있기도 싫어서 후배를 데리고 자주 가는 사람 없는 cafe에 갔다. 푹신한 쇼파에 앉아 코코아를 시키고 쩍 팔리게, 정말 쩍 팔리게, 후배 앞에서 엉엉 울었다. 잘한 거 하나도 없는데, 그냥...그렇게...너무나...서러웠다. 난 시간을 팔았다. 하지만......영혼은 팔지 않았는데.... 그런데......지각 한번에 너.무.도 비굴했고 또 비참했다. 요새 몸도 마음도 힘들었는데, 더 이상 들어가지 않는 가방에 옷을 꾹꾹 눌러 담듯 새어 나오는 감정을 꾹꾹 눌러 억제시키고 있었는데, 수욜의 지각 사건으로 눌러져 있던 감정이 폭발했다. 어쩔 줄 몰라하는 후배 앞에서 엉엉~울어 버렸다. 사무실로 돌아와 내내 불안했다. 팀장한테 언제 불려갈지 몰라서... 부르기 전에 먼저 가서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는 게 옳다. 그건.... 회사원의 FM이다. (물론 아예 지각을 하면 안되지만!) 하지만....도.저.히 내키지가 않았다. 지각했으면 그 시간 만큼 남아서 일하면 될꺼 아니야? 머리를 조아리며 "죄송합니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것 같았다. 제대로 미친 하루였다. 제.대.로!결국...팀장한테 불려 갔다. "넌... 생각이 있는거야? 과장씩이나 되가지고...뭐하는거야? 너 혼자 잘하면 돼? 팀 전체가 욕 먹는거 몰라?" 그 몇분이 하염 없이 길~게 느껴졌다. 그저 고개를 숙이고 죽은 듯이 서있었다. 목욜 저녁, 독일에서 함께 공부한 선배들과 송년회가 있었다. 난 선배들을 보자마자 말했다. "나 오늘...술 마시면 안돼!" 대학 교수님들인 선배들은 뭐가 그렇게 우습다고 껄껄 웃었다."야...그래도 학교가 낫네. 근데...너 참 고생한다.니가 그렇게 회사를 오래 다닐지 누가 알았냐? 음하하하"수요일 이후 계속 마음이 무겁다. 너무나...우울하다. 어제는 하루 종일 뒹굴거리며 잠을 잤다. 너무....지친다. 육상선수였으면 좋겠다. 그럼 그 힘든 마라톤을 하더라도 끝이 있잖아! 다 뛰고 쓰러진다 해도 42.195km를 뛰면 되는 거잖아!근데...난 끝이 어딘지 모르는 경기를 두 다리에 무식한 모래주머니를 차고 뛰고 있는 거 같다.헉,헉, 숨이 차~ 차라리 번잡한 송년회 일정으로 가득 찬 올해가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새해가 되면 뭔가 새로운 마음, 새로운 의욕이 생길까? 왜 이렇게...도망이 가고 싶지? 나를 납치하고 싶은 외계인, 나랑 어디 도망가서 살고 싶은 남자, 숨어서 나를 지켜보고 있던 키다리 아저씨... 어디 없나?난 시간을 팔았다. 그 당연한 사실을 잊지 말자. 한 순간도!"프로답게"이런 거창한 말 필요 없이, 욕 먹을 짓을 하지 말자. 스스로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