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학 필독서 50 - 애덤 스미스부터 토마 피케티까지 경제학 명저 50권을 한 권에 필독서 시리즈 7
톰 버틀러 보던 지음, 서정아 옮김 / 센시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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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제학 필독서 50]은 경제학이라는 학문이 사회에 어떠한 각도에서 필요하고 절실한지 그리고 이용하는 이에 따라 얼마나 악용될 수도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자신이 읽고자 하는 틀을 가지고 이 책을 읽는다면 그때마다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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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제학 필독서 50 - 애덤 스미스부터 토마 피케티까지 경제학 명저 50권을 한 권에 필독서 시리즈 7
톰 버틀러 보던 지음, 서정아 옮김 / 센시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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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운영되는데 가장 기반이 되는 시스템 중 하나는 경제가 아닐까 싶다. 사회를 또 더 깊이는 사람 낱낱을 기저에서 욕동하게 만드는 근본도 경제학적 사고로 어느 한도까지는 이해될 수 있으리라고도 생각된다. 어쩌면 세계와 사회, 사람을 이해하기 위한 가장 손쉬운 노력의 하나가 경제학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고 말이다. 이런 까닭에 본서의 출간 소식을 듣고 반가움이 일었다. 본서를 일독할 기회가 주어져 기뻤고 읽는 내내 다소 진지하게 임했다.

 

이 책은 연도별로 경제학자들의 저작이 수록되지 않았고 읽으면서도 뚜렷히 제시하는 항목 분류의 기준도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그럼에도 읽으면서 머릿속에서는 전자와 후자의 수록 경제학자의 견해가 서로 보완하거나 상반되거나 통합되는 경우들이 인지되기도 한다. 요 몇 년 사이 경제와 정치, 전쟁, 미래 예측 분야에 깊은 관심이 가기 시작해 그런 방향의 책들을 다수 탐독해 왔다. 그러다 퍼뜩 생각이 드는 게 이 모든 호기심이 결국에는 사회학 분야에 대한 궁금증이라는 것이었다.

 

[세계 경제학 필독서 50]이라는 본서를 읽으면서도 결국 경제학이라는 것도 사회학의 한 부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의 역량 혹은 기업 중심주의(Vs) ‘제도의 중요성이 대립되는 이야기로 본서가 읽혀졌기 때문이다. 기업가 정신, 기업 경영과 관련한 경제학자들의 주장은 결국 애덤 스미스의 사리사욕이 전반적으로 긍정적 효과를 낸다는 주장과 정부 간섭이 최소화된 상태에서 국민이 자유롭게 자신의 경제적 이익을 추구해야 한다는 주장의 연장선상에 있을 것이다. 거기서 이상을 품고 창출하는 주체는 사회가 아니라 개인이라는 루트비히 폰 미제스의 관점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논리 전개가 아닌가 싶다.

 

반면에 앨버트 O. 허시먼은 현대의 자본주의는 슘페터의 파괴적 혁신의 과정이 아니라 인간의 비이성적인 면과 매우 불완전한 정보를 감안할 때 난국 타개의 과정에 가깝다는 주장을 했다. 개인, 기업, 국가가 합리적인 행동을 한다든 데 대해 반기를 든 것이다. 다른 경제학자들과 아울러 행동경제학이 탄생하는 사고의 한 부분을 이룬 바라고도 할 수 있다. 경제의 주체가 비이성적이라고 한다면 분명 이에는 대응안이 있어야 할 테고 그러한 방향 중 가장 쉬운 접근은 제도적 규제일 것이다.

 

더 나아가 헨리 조지처럼 경제 발전으로 가난이 더 심해졌다는 관점이거나 머레이 N. 라스바드처럼 국가는 사유 재산의 약탈을 위해 합법적이고 질서정연하며 체계적인 통로를 제공한다는 시각이라면 또 나오미 클라인처럼 국가 산업 민영화로 소수가 막대한 부를 얻었지만 그 과정에서 근로자들은 밀려났다는 관점이라면 더더군다나 제도적 규제는 절실할 것이다.

 

이렇다면 토마 피케티처럼 불평등과 격차 해소를 위해 자본세를 징수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거나 스테파니 켈튼처럼 통화 주권국에서 복지지출 때문에 위기가 초래될 일은 없다는 주의더라도 문제는 없어 보인다.

 

반면에 개인 역량과 개인의 역할을 중시하는 경제학자 중 토마스 소웰이라는 미국 흑인 보수주의자 경제학자는 빈곤의 원인으로 가정해체보다 정부의 지출 부족을 먼저 꼽는 건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으며 아인 랜드라는 유대인이자 러시아계 미국 경제학자는 사회주의,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무언가를 얻으려면 다른 것을 희생해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아무도 미국을 산업국가로 만들기 위해 굶주림을 감내할 필요가 없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아인 랜드는 러시아에서 미국으로 이민 내지는 망명한 여성으로서 자신의 감상만으로 편향적인 주장을 하고 있다. 기회비용을 감당하지 않는 개인은 없으며 미국의 산업화 시기 남쪽에서는 흑인 노예들이 면화를 따고 있었다는 걸 그녀도 모르지 않을 텐데 그걸 배제하고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은가? 선진국인 미국에서의 현격한 불평등과 계층 격차를 그녀는 모른 척하고 있다.

 

토마스 소웰도 출생지가 미국이라면 미국의 흑인들을 우대하는 대학 입학 제도의 혜택을 받았을 것이다. 그의 시대에 만약 그런 혜택이 없었다고 한다 해서 빈곤층에 태어나 보살핌의 결여와 마약과 폭력지대 등의 환경적인 배경을 초월해서 모든 흑인들이 개인 역량만으로 가난이라는 제도적 난제를 뛰어넘지 못하는 걸 문제 삼지 말아야 할까? 더 나아가 인종과 계층의 문제가 과연 제도적인 차원의 문제는 전혀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환경을 이겨내는 것이 인간이니 이겨내라는 관점은 너무도 편협할 뿐이 아닌가 싶다.

 

현재의 경제 여건과 취업 요건은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 청년층이 취업하기도 어려워졌으며 그들의 임금만으로 계층의 격차를 뛰어넘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시절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일본의 청년층은 사토리 세대라고 하여 취업도 소비도 모두 초탈해 버린 득도한 세대가 되었고, 중국은 탕핑족이라고 하여 젊은 세대들이 취업 등 경제활동 전반에서 파업을 선고한 세대로 불리고 있다. 한국에서는 그보다 더해 청년층들이 현재도 팍팍하고 미래도 막막한 이 현실을 견디다 못해 너나 할 것 없이 자살하는 추세다. 한국 인구 10만 명 당 청년층 자살율만 26명으로 OECD 국가들 대부분이 인구 10만 명 당 11명인 것에 비교하자면 두 배 이상에 이르고 있다. 현실을 이겨내는 것을 개인의 힘만으로 해내라는 건 어쩌면 간접적인 아니 완곡히 표현해도 자살을 부추기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이번 독서는 그렇게 경제학이나 제도에 대한 관점과 태도만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다는 걸 깨닫게 되는 기회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 시대의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즉 ESG가 탄생하는 동인이었을지도 모를 견해도 알 수 있었다. E.F. 슈마허의 우리는 직접 생산한 것이 아니면 공짜로 생각한다는 시각과 그러므로 영속성을 추구하는 사회 및 경제가 지구의 자원과 인간의 욕구를 충분히 인식한 상태로 진화하기에 훨씬 더 유연하고 오래 지속된다’는 관점이 ESG의 기본 견해가 되지 않았나 싶을 정도이다. 여기에 자본주의의 본질적 의미는 기존 구조와 기업을 창조하고 파괴하는 과정에 있다는 슘페터의 주장이 구현되는 과정이 ESG의 발전 과정일 것이다. 하지만 ESG가 결과적으로 소수가 막대한 부를 축적하는 과정이나 도구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제도적인 규제랄지 견제랄지가 갖춰져야 하리라는 생각도 든다.

 

[세계 경제학 필독서 50]은 경제학이라는 학문이 사회에 어떠한 각도에서 필요하고 절실한지 그리고 이용하는 이에 따라 얼마나 악용될 수도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자신이 읽고자 하는 틀을 가지고 이 책을 읽는다면 그때마다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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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 생존 경영 - 메가 리스크 시대를 돌파하는 기업의 필수 무기
이준희 외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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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축산업자들의 저항으로 저지되기는 했으나 네덜란드에서는 축산농가의 사육하는 가축의 3분의 1을 도살하고 축산업에 사용되는 농지를 대대적으로 강제 매각한다는 사회주의에서나 할 법한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었습니다. 그 나라 정치인들이 그런 취지의 의도를 드러낸 이유는 종말론적 환경주의에 근거한 대처 방안이 그렇다는 것이었습니다. 최근 문제시되는 15분 도시의 이유와 목적도 환경주의에 따른 것이고 말입니다.

환경주의는 세계경제포럼의 전신인 유럽경영포럼에서 도넬라 H. 메도즈 씨가 1970년 주창한 논리에 근거한 것입니다. 그 발표가 더 정교화되어 [성장의 한계]라는 저작으로 출간되기도 했습니다. 1970년대부터 지속 가능한 발전의 기업 전략의 하나로 주지되어온 원시적인 당시의 환경주의는 한땀한땀 준비와 교정을 거쳐 1990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유엔기후협약으로 1992년과 1994년 브라질 리우협약으로 발효되기에 이릅니다. 1997년 도쿄에서 개최된 유엔기후협약은 리우협약보다 책임과 의무와 구속력을 가진 교토의정서를 채택합니다. 그리고 이 시대에 와서는 환경주의는 상식이자 진리이자 정의로 신봉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전 세계인구 절반의 주식인 쌀까지도 벼농사가 이산화탄소를 과도하게 배출한다며 제재하려는 움직임까지 조성되어 가는 중이기도 합니다. 그에 대한 저항으로 명망있는 과학자들까지 탄소는 자연계에서 순환을 거치며 더더군다나 이 순환 과정의 일부일뿐인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는 벼는 또한 그마만큼의 산소를 배출하기도 한다고 나서고 있기도 합니다. 종말론적 환경주의로 우리는 탄소발자국 추적 등의 기술로 일상 전체가 감찰 당하고 탄소배출 감소와 억제를 위한 소유와 일상에 대한 통제를 당연한 듯 받아들이며 살게 될 것입니다. 유럽인들처럼 일어나 저항하는 이들은 초극소수이고 절대다수가 순응만 하는 한국의 현실에서는 더더욱 그렇게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세계경제포럼은 소유 없는 행복을 표방하고 있기도 하며 개인 누구라도 공과 사 어느 상황에서도 15분 이상 걸리는 거리는 벗어날 수 없다는 15분 도시제는 팬데믹과 환경주의가 주창되는 이 시대에 대중에게 큰 저항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는 중입니다.

사회는 나아가고 있는 듯 보이기도 하지만 한 편으로는 전체주의 사회의 면면이 상식의 틈을 비집고 들며 일상 속으로 침투하기 직전인 순간이기도 합니다.

최근 뉴스로는 미국에서 AI로 인한 실직자들이 4천 명 증가했다는 소식이 있으며 전문가들은 가까운 시일 안에 5억 명 이상이 AI로 인해 실직하리라 전망하고 있기도 합니다. AI로 인한 실직에는 그걸 만회할 정도는 아니더라도 신규 일자리가 생겨나리라는 전망도 있기는 하지만 AI의 발전 속도와 발전 규모로 볼 때 새로이 창출되는 일자리에서 필요한 기능은 인간보다 AI가 선점할 가능성이 높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그래서 환경주의에 기업의 사회적 역할과 거버넌스까지 더해진 ESG 곧 이해관계자 자본주의가 왜 하필 이 시기에 시행되기 시작하는 것일까 의문이 이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근간의 뉴스로는 인간이 어떠한 탄소나 환경파괴적인 배출이 없더라도 한마디로 인간이 사라진 상황에서도 2065년까지 지구 온도는 2~3도 이상 오른다고 AI와 서구 어느 대학의 공동연구 결과로 발표되었다고 합니다. 기존의 환경주의자들의 데이터를 근거하자면 이런 결과가 도출됩니다. 환경주의자들이 경고와 위험 단계를 너머 인간이 생존할 수 없는 환경으로 간주한 경우가 지구 온도가 앞으로 2~3도 가까이 오르는 상황입니다. 그들의 주장과 그들이 제시하는 데이터를 근거하면 인간이 생존의 마지노선을 건너는 시기는 2065년입니다. 그것도 인간이 어떠한 환경유해배출도 하지 않는 상황을 가정하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인류와 지구의 모든 생명체에게 위협적인 순간은 2065년보다 훨씬 이전에 와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네요. AI가 특이점에 이르르고 인간을 초월할 시점이 그 이전에 와 환경이 아닌 인공지능에 의한 위협의 순간을 맞이한다는 가정을 배제한다면, 과연 인류와 지구 생명체는 2065년 이전에 환경에 의한 파국을 맞이할지 의문이 일고 확인해 보고 싶기도 하네요.

환경파괴에 의한 인류와 지구 생명체 전체의 파국이라는 이런 극단적인 프로파간다를 동원해 버프를 받고 있기도 한 ESG는 과연 정체가 무엇인가 의혹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ESG에 관한 전반적인 체계와 구조를 알려줄 책을 기다리다가 만나게 된 것이 본서입니다.

본서에 대한 요약이나 ESG 경영의 실제에 대해서는 경영이나 경제와 관련 있는 분들께서 더 제대로 된 리뷰를 해주시리라 믿고, 저는 비경제인의 시각에서 ESG의 정규로 인식되는 것과는 다른 기능이랄까 역할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ESG가 사회의 기본적인 규정과 제도로서 자리잡게 된다면 이건 경영 방식을 너머 기업의 모럴 문제나 사회적 상식의 영역으로 확장될 것으로 보였습니다. 기업의 모럴을 너머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상식이자 모럴의 한 부분으로 인식될 가능성도 다분합니다.

ESG 경영이 상식이 될 때 도급업체, 협력업체에게도 적용되어 하나의 강제로서 작용하게 될 것이며, 이럴 경우 ESG로 인해 기업의 운영비용이 대폭 상승하게 된 상황에서, 한국 기업의 99%를 차지한다는 중소기업 중 탄탄한 자본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기업들은 도태될 가능성이 있으며 이건 다른 나라라고 다른 상황이 아닐 겁니다. 또한 스타트업의 경우는 더해서 기업운영비용의 급격한 상승은 투자유치 비용의 증가를 불러오기에 투자자에 대한 의지랄까 의탁이 과도해지게 되어, 대기업이나 자본가의 스타트업 인수합병이나 특허권 매수가 가중될 것입니다. 빌 게이츠가 MS-DOS의 특허권을 신생 기업에게서 뺏었던(그 이후에도 가열차게 오랜 세월 동안 그런 행태를 보여 빌 게이츠에 대한 소송이 이어졌던) 그런 상황이 이제는 모든 스타트업의 일상이 될 것입니다. 또한 중소기업도 스타트업도 경영권을 방어하기가 쉽지 않게 될 겁니다. 경영 방식과 경영 하나하나에 대한 투자자들 즉 주주들의 권리행사가 과도해질 가능성은 너무도 클 겁니다. 그걸 ESG의 거버넌스라는 체제로 정당화하면서 말입니다.

ESG는 또한 환경문제로 인한 대응으로의 설비들과 재가공, 재생산으로 인해 또 기업의 사회적 역할을 위한 체제들을 완비하는 과정과 완비되어 운용되는 과정에서 거대한 부의 재창출이 이어질 것입니다. (하다못해 일론머스크의 테슬라에 2020년 수익의 절반 이상이 탄소배출권 판매액이었다고 합니다. 탄소배출권을 구매해 분할 판매하는 것만으로도 전체 수익의 절반 이상이 되는 겁니다.) 이건 당연히 중소기업보다는 거대 금융자본가들의 직간접적 투자로 인해 예비되고 운영되고 확장될 것입니다.

거대한 부의 역사가 다시 일어나는 과정이 ESG와 종말론적 환경주의를 배경으로 그레이트 리셋이라는 명분으로 이어질 거라는 말입니다. 그 과정에서 거대 금융자본의 투자와 지원을 받지 못하는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들은 대거 도태될 것입니다. 이제까지 기업의 부를 향한 전진은 때론 비난이나 악평을 불러오기도 했으나, 이 시대부터는 환호와 박수를 받으며 때론 추앙의 대상이 되기도 하며 부는 정점으로 향하게 될 거란 걸 ESG에 대한 저작을 보며 깨닫게 되었습니다.

시대가 변혁되어 가는 과정이 예전에는 누군가에게는 기회가 되며 대중의 풍요를 약속하던 것과는 다르게, 이 시대에는 대대적인 실업자 양산과 생존의 위협, 현격해지는 빈부의 격차, 부의 극단적인 편중을 예견하게 하며 결과적으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통제사회를 짐작케 하니 참 암울한 시대가 아닌가 합니다.

알던 모르던 결국은 살아가야 하고 감당할 수 있겠든 없겠든 결국에는 감당해야 하는 게 삶이기에 암담하고 막막하더라도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조금이라도 정서적 충격이나마 덜 할 길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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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막 스트레칭 - 어깨 결림.요통.두통.무릎 통증.팔 통증.손목 통증.엉덩이 통증.고관절 통증.발목 통증을 빠르게 해소해주는 도어북 녹색건강 시리즈 6
코이데 토모히로 지음, 한은미 옮김 / 도어북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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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어머니께서 어깨와 목, 손목에 통증이 있으셔서 치료를 위해 필요했다. 예전에는 스포츠 마사지를 동영상을 보고 배워서 어머니가 피곤하시다고 하실 때마다 (매일 피곤하다고 하셨던 건 함정이지만) 전신 마사지를 늘 해드렸는데 언젠가부터 마사지를 받지 않으려고 하셨다.(전신 마사지를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 동안 해드리고 나면 내가 좀 녹초가 되긴 했다^^;)

 

그래서 카이로프락틱 클리닉에서 치료를 받으실 때도 있었는데 한번은 받고 나서 통증이 더 하신 때가 있었다. 그 이후 겁이 난다며 안 가시려고 한다. 어머니께서 올해 일흔하고 둘이신데 연세에 비하면 굉장히 건강하신 편이시다. 물론 그사이 아프신 때가 종종 있기도 했지만 말이다. 몇 해 전 자전거를 타시다가 넘어지셔서 손목을 다치셨다. 그전까지는 팔굽혀펴기를 무릎 안대고 한 번에 50회 이상을 거뜬히 하셨는데 그날 이후부터 팔굽혀펴기를 10회 이상 못하신다. 그리고 아직 40대이실 때 요가를 가르쳐 드렸더니 그때부터 지금까지 약식으로라도 간헐적으로나마 꾸준하게 하셔서 유연성도 굉장히 좋으시다. 다만 이제 연세가 드시니 손목과 어깨, 목이 많이 안 좋으시다고 늘 말씀하신다.

 

언젠가 피지컬갤러리의 [하루 5분 내 몸 관리법]이라는 통증 치료 저작에 서평단으로 선정되어서 어머니께 당시 통증이 있던 부위들에 대한 치료법을 알려 드린 적이 있다. 한 번은 몇 동작을 하시자마자 나았다고 하시다가 다음 날 같은 동작에는 더 통증이 왔다고 하셨다. 당시에 참 난감했다. 통증이 나았다고 하신 날 리뷰를 남겼던 걸로 기억한다. 그래서 피지컬갤러리의 그 책은 나만 따라하게 됐다.^^

 

그런 이유로 통증 치료에 관한 책을 (나는 많이 의지하는 편인데) 어머니께서는 못 미더워하시는 경향이 있다. 그래도 시중에 많은 통증 책이 있는데 어머니가 아프다고 하시는 말씀을 매일 듣다보니 찾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비니요가의 어깨치료법을 가르쳐드리긴 했는데 사실 비니요가가 효과적이지만 어깨 통증에 관해서는 그다지 대안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된다.) 그 많은 통증 책 중에 가장 손쉽게 따라 할 수 있는 간단한 치료법이 무얼까? 그리고 근본적으로 통증의 원인을 찾아 치료해주는 책은 무얼까? 고민하다가 선택한 두 권의 책 중 하나가 본서이다.

 

결과적으로 본서 근막 스트레칭은 간단하고 짧은 시간 투자만으로 효과를 볼 수 있는 책이란 걸 어머니께서 해보신 후 이상하게 통증이 없다고 하시는 말씀을 듣고 알게 되었다. 오늘 처음 해보신 거라 며칠 더 받아봐야 알 것 같지만 피부를 쓸어주면서 간단히 고개를 돌리거나 손목을 펼치는 것만으로 통증이 사라진다는 게 너무 놀랍다고 해야 할까? 이번에는 더 통증이 심해졌다는 말씀은 없으실 것 같다. 너무 간단해서 부작용이 있을 가능성이 없으리라 기대되기 때문이다.

 

책의 편집이랄까도 일본인 저자의 책답게 군더더기 없이 심플하고 동작이랄까도 단순해서 실수하거나 부작용을 앓을 염려는 절대 없을 거다. 피지컬갤러리는 젊은 층이 든든해 할 통증 대처법을 알려주고 본서의 저자는 어르신들과 여성분들이 많이 선호할 치료법을 알려준다는 생각이 든다. 통증이 있을 때 대처법은 다양하게 찾아보시는 편이 좋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이 책은 권해드려도 실망하시지 않을 것 같아 리뷰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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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우주다 - 나는 무엇인가, 그리고 왜 이것이 중요한가
디팩 초프라.미나스 카파토스 지음, 조원희 옮김 / 김영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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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원론, 인간중심 우주관으로 일관하는 주장이다. 기존의 인도 철학, 요가 철학의 변이판이라고 판단된다. 우주와 세상에 대한 관점까지 재편하게 해 줄 저작일 거라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서술이 이해하기 쉬운데 반해 주장이 다소 단정적으로 보였다.

 

여느 책처럼 양자역학을 들어 관찰자 효과로 인간의 참여가 절대적인 듯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입자의 세계에서 관찰자가 되는 건 인간만이 아니라 광자 등의 다른 입자를 포함하는 것이다.

 

인간의 경우에 대입한다 해도 자기에게 자신만이 절대적인 관찰자가 아니며 무수한 타자의 관찰은 한 대상에게 거의 무제한의 절대적인 영향력을 낳는다.

 

관찰자가 있기에 우주가 존재한다는 논리를 인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주도 없다고 확대 해석하다니(인간중심 우주관이다)... 이미 관찰자 효과에서 한 관찰자만이 아니라 다른 입자의 관찰도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했듯이, 인간(이나 다른 지적 생명체)이 관찰자가 아니더라도 이미 우주를 가득 채운 모두(물질 대상 서로)가 서로를 관찰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서로 서로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행사하고 있다. 게다가 자기 자신에게 향하는 영향력은 무수한 타자 대 자기 1인의 그것으로 한정된다.

 

우주를 의식이라고 정의하는 데까지의 여정을 따라갔지만, 의식이 곧 마음이라는 데 동의하기는 어려웠다. 저자가 말하는 퀄리아도 인식과 감각을 통해 야기되는 기분을 이야기하는 것이라면 우주가 어떤 기분인지를 단정하는 것은 인간의 주관이 야기한 짐작과 단정의 교차일뿐이 아닌가?

 

우주가 지성이라는 것, 데이터를 모으고 데이터를 창조하고 있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우주가 마음이다. 곧 인간과 같은 정서가 있을 것이다’ ‘우주가 곧 신이며 인격체다라는 데는 동의할 수만은 없을 것 같다. 그건 불가지의 영역이 아닌가 싶다.

 

우주가 마음이라는 건 인간의 기대와 정서가 자아낸 주관적인 단정일 뿐이다.

 

우주는 정의하기에 따라 지성일 수는 있을지 몰라도 감정까지를 포함한 인격체이거나 마음이라는 것은 억측이 과도한 단정질이다.

 

우주는 마음이고 우주가 창조한 인간은 그 부분이다라는 대목도, 미세조정을 근거하더라도 우주는 지적 설계자가 설계한 것이라는 대목도, 어디까지나 진화론과 자연발생론이 억측일 가능성만큼이나 가능성일 뿐인 것이다.

 

저자는 항공기 재료들이 버려진 쓰레기장에 태풍이 분다고 항공기가 조립되어 완전한 항공기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나 원숭이들이 무한대로 타자를 친다고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써낸다고 하는 건, 그럴 가능성도 있다고 하는 것과 반드시 그렇다고 하는 것이 다를텐데, 지금의 과학자들은 반드시 그렇다고 주장하는 격이라고 말하고 있다. 미세조정이 바로 지적 설계의 증거라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지적 설계자가 있다고 미세조정을 한 우주만을 시뮬레이션하라는 법은 없듯이, 다채로운 다중우주가 지적 설계자가 없다는 걸 증거하는 것은 아닐 것이며, 바로 그와 역인 논리로 미세조정이 지적 설계자의 존재를 증명하는 바도 아니라고 생각된다. 이 또한 불가지의 영역이다. 게다가 우주와 인간이 하나라는 주장까지 나아가면, 인간의 주관과 억측이 마음대로 지적 설계자를 단정하고 그와 인간은 둘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격이다.

 

유대의 카발라 철학에서는 신이 자신을 한정 지으며 우주가 창조되었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 논리를 인공지능이 탑재된 양자컴퓨터에 대응해 인공지능이 우주를 시뮬레이션한다고 해도, 미세조정을 통해 하나의 우주만을 창조할지, 모든 가능한 경우의 수에 우주를 다 창조할지는, 인공지능이 탑재된 양자컴퓨터의 용량과 성능이 무한하다면 어느 경우든 불가능한 경우가 아니다. 그리고 그렇게 인공지능이 자신이 창조한 우주에 인간을 디자인한다고 해서 인공지능과 인간이 동일하다고만 볼 수는 없다는 말이다.

 

홀로그램 우주론에서는 부분과 전체가 거의 동일하다는 식이지만, 그저 단순히 부분의 총합이 결코 전체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는 주장이 더 수용하기 쉽지 않나 싶다.

 

그리고 저자는 결정론을 배격하는 데, 양자역학을 들어 시간과 공간에 대해 논하는 모든 저작들처럼, 저자 역시 비선형적 인과를 주장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홀로그램 우주론에서 과거, 현재, 미래를 이야기하는 논리를 결정론에 대입한다고 빗나간 주장이라고 할 수 없다고 생각된다. 그렇게 미세조정 우주든 다중우주든 통으로 다 만들어진 인과를 가정해 볼 수 있다고 생각된다. 양자역학이 과연 결정론을 부정하는 논리로 완벽한 것인지는 논의가 끝난 시대 같지만, 생각을 더 해보면 완벽한 부정은 될 수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양자역학을 처음 접한 때는 놀라움의 연속이었지만, 우주와 인간, 인과 등에 대한 다양한 이론과 주장들을 폭넓게 대할수록, 양자역학이 말하는 가능성을 능가하는 거대한 구조가 따로 있는 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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