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세계사 : 사건편 - 벗겼다, 세상을 뒤흔든 역사 벌거벗은 세계사
tvN〈벌거벗은 세계사〉제작팀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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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된 사건들이 역사 의식과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의의 확장을 가져다주기에 적절할 조합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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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세계사 : 사건편 - 벗겼다, 세상을 뒤흔든 역사 벌거벗은 세계사
tvN〈벌거벗은 세계사〉제작팀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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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세계사] 시리즈는 경제편에 이어 이번 사건편까지 두 번째 만남이다. 사실 경제편보다 전쟁편과 사건편, 잔혹사편이 더 혹했는데 그건 최근 전쟁이 주목되고 전쟁의 파장이 어떠한지가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전쟁을 다룬 다른 책들도 물론 흥미로웠지만 [벌거벗은 세계사 사건편]은 무엇보다 가장 관심이 갔던 청일 전쟁과 러일 전쟁, 제1차 세계대전, 세계 대공황, 핵폭탄 개발과 실제 사용한 역사, 냉전 시대, 걸프 전쟁까지를 다루고 있어 일관되게 근현대의 전쟁들을 한국인의 관점에서 다시 볼 수 있는 기회라 독서열이 이는 책이었다.


물론 본서에는 근현대의 전쟁만이 아니라 그리스 신화와 트로이아 전쟁, 그리고 동양인 누구나의 뇌리에 깊이 아로새겨져 있을 고전이자 역사인 삼국지를 담고 있기도 하고 페스트라는 인류 역사 최초의 팬데믹을 다루고 있기도 하다.


그리스 신화 1에서는 신화의 해설 중 이오를 유혹하는 제우스가 헤라에게 들키자 이오를 암소로 변신시키고, 눈치를 챈 헤라가 그 암소를 요구하여 가둬두었다가, 제우스가 이오를 헤르메스를 통해 탈출시키는 과정이, 유럽의 지명들에 담겨 있는 것이 흥미로웠다. 그리스와 이탈리아 반도 사이의 지중해 바다인 ‘이오니아해’, 이스탄불의 아시아와 유럽의 해협인 ‘보스포로스 해협’(보스는 그리스어로 암소 포로스는 길)은 모두 암소로 변한 이오가 헤라가 보낸 쇠파리떼를 피해 도망가던 지역들을 가르킨다. 그리고 이후 재회한 제우스와 이오는 에퐈포스라는 아들을 낳고, 그 아이가 이집트에 새 도시를 건설하며 이오가 이집트의 여신 이시스가 되었다는 신화도 있다. 그리스 신화 1, 2와 트로이 전쟁을 강의한 김헌 님은 이 신화가 그리스 문명과 이집트 문명, 그리스 문명과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맥락에 있는 페니키아 문명)과의 관계를 읽는 연결점이 되었다고 이야기하지만, 어찌 보면 타 문명을 자신의 문명의 곁가지로 보거나 예속하려 한 심리적 강압이나 정복욕이 작용했다고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제우스가 유혹하려던 에우로페라는 다른 여성은 제우스가 흰 소로 변해 태우고 유럽 전역을 누볐다고 하는데 에우로페 EUROPE라는 이름 자체가 현재의 유럽을 칭하게 되기도 했다고 하니 이오에서도 그렇고 에우로페 이야기에서도 그렇고 신화를 통해 유럽인들 사이의 결속이 이어지기도 했다고 생각된다. 집단 무의식 저변에 서로를 아우르는 스토리가 흐르고 있는 것이 유럽인이구나 하는 경계에 이르는 내용이었다.


그리스 신화 2에서 헤라클레스의 이야기는 올림포스 신들과 거신족의 전쟁에서 헤라클레스가 스토리 전체의 마스터키가 되는 것으로 인간이 신의 영역까지 영향력을 미친다거나 신을 돕고 끝내 신이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를 통해 신탁에 의지해 살면서도 결코 신의 가축이나 노예가 아니라 신적인 존재가 될 수도 있다고 인간의 가치를 정의하고자 한 것이 아닌가 싶다. 물론 헤라클레스는 애초에 반인반신이었지만 그럼에도 그의 신화가 그리스 대중의 무의식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기독교가 확산하기 이전에는 유럽인들의 결속과 자긍심, 자기 정의에 그리스 로마 신화가 심대한 영향을 미쳤을 테지만 그 영향이 기독교가 끼치는 영향과 비교해 나쁘지 않았다고 여겨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기독교는 신과 인간을 완전히 분리하고 인간이 아닌 신본주의로서 신의 노예나 종의 위치에 놓인 것이 인간이라 이야기하고, 거룩한 진멸을 이야기하며 유일신을 신앙하지 않으면 멸종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그리스 신화는 유럽인들에게 때론 신을 도울 수도 있는 가치있는 존재가 인간이며, 유럽은 하나이고 유럽과 세계는 연결되어 있다고 가르치는, 기독교보다 인간과 세계에 대한 나은 정의를 전하지 않았나 생각되었다.


페스트라는 인류 역사 최초의 팬데믹은 그 시작부터가 몽골군의 페스트 환자를 유럽 전초지에 쏘아넘기는 생화학 테러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유럽인들은 자신들의 처지에 두렵고 불안함을 느끼자 그것을 분노로 변이시켜 유대인들이 페스트를 퍼트렸다며 학살하고 페스트 환자들을 자연요법으로 치료하던 마녀들을 학살하기까지 했다. 게다가 페스트가 퍼질 때 고향을 떠났던 부유층들은 페스트가 잠잠해지자 돈으로 사람을 사 자신의 집으로 실험용으로 보내 얼마간의 기간 동안 그들이 죽지 않고 살아있는 것을 확인하면 집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인간을 기니피그나 모르모트처럼 이용한 것이다.


여기서 미국이 일본에 두 차례(히로시마, 나가사키)에 걸쳐 핵폭탄을 투하한 경우나 독일군의 홀로코스트와 일본군의 난징 대학살, 간토(관동) 대학살 등이 떠오르기도 했고 일본 731부대의 마루타 실험 등이 떠올랐다. 하지만 유사한 사례는 전 세계 대다수 분쟁과 충돌에서 셀 수도 없이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휴먼 카인드]나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등의 책들이 인간의 악한 본성을 부정하다시피 하며 기존의 연구들의 결과를 부정했지만, 특정 상황 하에서의 실험인 연구가 아닌 실제 인류의 역사는 인간의 악한 면을 부정할 수 없다고 이야기해주는 것 같다. 물론 긍정적인 가치를 인류사에서 찾지 못할 것도 없겠지만, 단지 인간은 부정적인 소식과 부정적인 사실에 더 민감하게 진화해왔기 때문에 그런 사실에 더 민감한 것이라는 단정만으로 간과하기에는, 인간의 악성을 직시하게 해주는 역사들은 잠시만 기억을 더듬어봐도 바로 떠오를 사건들을 숱하게 인류의 뇌리에 각인시켜주었다. 인간의 악한 면모를 부정하고 선한 면모만 부각할 것이 아니라 악한 면을 인정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한 면도 있다고 인식하는 것이 맞는 접근이 아닌가 싶다.


청일 전쟁과 러일 전쟁은 그 사이에 놓인 조선이란 나라와 한민족의 처지가 안타깝기도 했지만, 변방의 약소국이었던 일본의 발전이 상징하는 바도 있었다고 생각된다. 우리의 선조는 삼국통일 이후 조선에 이르기까지 외세에 굴하며 살아남아 왔다. 하지만 그 이전에는 상고사까지 논하지 않더라도 고구려도 신라도 백제도 세계적인 문화를 구가하던 나라들이었다. 한국은 이제 겨우 선진국이 된 나라이기도 하겠지만, 오랜 변방의 외떨어진 섬나라 일본이 한 시대를 떨쳐 일어났던 것처럼, 아니 그보다 더하게 한국도 일어설 수 있으리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역사이기도 하다. 아직은 단언할 수 없겠지만 만약 상온초전도체가 실제 구현되었고 상용화 가능하다면 우리나라 우리민족은 새로운 역사의 장을 열고 새 시대의 선두가 되는 나라이자 민족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그건 운명이자 진정한 인적 자본의 결과일 것이다. 이 나라는 (낱낱의 시민들에게) 들인 공보다 더한 이윤을 뛰어난 개인들을 통해 얻게 된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은 역사적 맥락도 중요하겠지만 우연, 달리 말해 운명이란 것도 인류에게 얼마나 처절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말해주는 것 같았다.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 부부가 사라예보에 가지 않았다면, 그들이 1차 테러 시도를 당한 후 경호원들이 실려 간 병원에 안보상의 이유로 가지 않았다면, 또 그들 부부를 태운 운전기사가 실수로 경로 이탈을 하지 않았다면, 1차 세계대전은 없었을 것이다. 비스마르크를 독일 새 황제가 퇴임시키지 않았거나 좀 더 대신의 말을 귀담아듣는 새 황제였더라도 말이다. 그 당시에는 우연의 연속이었다 말하겠지만 다른 시간에서 보면 그것은 운명이었다고 해석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위정자의 결정을 피치 못할 것이라 보지 않고 그들의 선택으로만 이루어졌다고 단정 짓는다고 해도 그 전장에 끌려간 남성들, 사지의 전장터에서 죽어가는 군인들에게 세계사의 흐름은 분명 운명인 거다. 그 전쟁으로 인해 가정에서 일터로 나서야 했던 가정주부들에게도 마찬가지일 테고 말이다.


핵폭탄의 경우 일본이 자신들이 핵 공격을 받은 최초의 나라라고 피해자로 자리매김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내용의 책들을 본 적도 있다. 그런데 본서를 통해 각 피폭지에 대거 거주한 사람들 대다수가 강제 징용된 한국인들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피폭 피해자도 일본인에 비해 한국인의 규모가 더욱 상당했다는 것도 본서를 통해 처음 알게 된 사실이다. 역사의 피해자는 왜 우리여야 했을까? 이런 의문을 가진 민족들이 세계 곳곳에 많겠지만 그에 대한 답이 주어지는 시대가 곧 오리라 생각된다.


냉전 시대와 걸프 전쟁에서의 미국의 역사는 만행에 가까웠다고 생각된다. 쿠바 대통령을 암살하려던 것이나 이란을 침략하는 이라크를 지원한 것 등이 말이다. 본서를 통해 미국의 대전략에 유익하면 어떠한 악인도 악한 집단도 미국의 동맹이며, 과거의 우방도 미국의 이익에 방해되면 절대악이 되는 신비를 보았다. 미국을 [불량국가]나 깡패국가로 칭하는 노암 촘스키 씨 같은 미국의 지성이 있는 까닭도 새삼 일깨워졌다.


인류에게 새로운 시대가 밝게 올지 어둡게 올지 몰라도 분명 어느 순간 여명은 밝아올 것이다. 그때 미래의 우리는 이 시대까지의 역사에서 과연 교훈을 찾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며 사는 존재다. 하지만 어떤 실수는 치명적이기에 뚜렷이 각인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각인되지 않았다면 기록을 통해 일깨워야 하리라. 분명한 건 새로운 시대가 올 것이고 그때 우리는 지금과는 달리 대처해 나가야 할 거라는 점이다. 똑같은 상처를 같은 자리에 다시 남길 필요는 없을 테고. 같은 상처가 반복되는 과정이 인류의 존속을 위태롭게 할 치명상으로 남게 될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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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차 세계대전은 이미 시작되었다
에마뉘엘 토드 지음, 김종완.김화영 옮김 / 피플사이언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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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마지막 남은 카드는 이제 핵 밖에 없다는 경고를 하고 있는 시점에 이 전쟁의 이유가 대전략적 차원에서 무엇인지 해당 국가들의 선택은 어떻게 될지 짐작해 볼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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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한 부의 시대가 온다
폴 제인 필저.스티븐 P. 자초 지음, 유지연 옮김 / 오월구일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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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원제에서도 광란의 20년대가 다시 오고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고 저자가 세계적인 경제학자이나 백악관 경제고문도 역임한 전력이 있는 분이라 많이 기대하고 읽은 책이다. 그래서 감상은 어땠을까? 그건 리뷰의 후반 즈음으로 미뤄놓고 책을 읽고자 했던 이유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지금 시대 상황이 생성형 AIBCI 기술 등이 실제 적용되고 있거나 적용되기 직전인 상황이고 인구절벽과 동시에 찾아오는 실업대란, 사회공학기술에 기반한 대중통제를 앞두고 있고, 세계가 팬데믹으로부터 영향과 전쟁의 도가니임에도 매우 평온하게 대중이 받아들이는 시점이기도 하다. 초반의 그 두려움과 불안이 익숙해지자 바로 둔감해지고 안일해진 것이다. 세계 이곳저곳이 올바름이 없는 정치적 올바름 문제로 사회의 기준도 자기 정체성도 대혼란과 붕괴의 도상이다. 그 과정과 함께 마약에 도시들이 침몰하고 있고 10대들의 뇌는 녹아내리고 있다. 사실 이보다 더 불안하고 동요하게 만드는 시절이 흔치 않았을 텐데도 대중은 너무나도 평화롭다.

 

사회적 경제적 불안과 혼란이 체험되고 전망되는 시절에 본서는 1920년대의 부가 물결치던 시절이 다시 오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생각했다. 위기가 기회라는 말처럼 이런 대혼돈의 시절에 부라도 구축할 수 있다면 내적 안정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1920년대의 끄트머리는 대공황의 효시인 시기가 아니었나? 절망과 기회는 동시에 오며 기대와 좌절 또한 한 꾸러미에 있을 수 있기에 침착하고 차분히 시절을 바라보고 감당해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저자는 앞으로의 시절 어쩌면 현재부터의 시절이 광란의 20년대를 다시 보는 것과 같으리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기에 중상류층에게는 기회의 시절이라고 말한다. (저자분아! 중상류층이 아니라 미안해) 저자는 서두에서 잠시 경제학도가 되었던 첫 시절에 경제의 희소성을 배운 이야기를 하며 자신은 한정된 재화로 인한 기회의 한계를 믿지 않았다고 기술이 발전하며 부는 무한대가 될 것이라는 식의 이야기를 한다. 이것을 경제 연금술이라고 말이다. 책 전반이 저자의 경제 연금술적인 관점을 풀어놓은 내용이지만 그것이 딱히 통찰력 있는 담론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게 이 시절을 살아가고 있는 누구에게나 상식이란 생각이 더 들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무한한 부를 약속하는 경제 연금술적인 배경을 6개의 경제적 기둥으로 설명하고 그러한 부의 발전이 이루어지는 배경을 6개의 사회적 기둥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그런데 읽고 보면 경제적 기둥과 사회적 기둥으로 딱히 나눌 필요가 있었나 싶다. 어쨌든 전문가들은 나누기를 좋아하는 관계로 그런가 보다 했다.

 

◇ 6개의 경제적 기둥

 

1. 기술 주도의 부

2. 에너지혁명

3. 구조적 실업

4. 로봇이 온다

5. 긱 이코노미

6. 보편적 기본소득

 

◇ 6개의 사회적 기둥

 

1. 밀레니얼 세대의 도약

2. 공유 혁명

3. 소비자 잉여

4. 국민총행복

5. 중국의 도전

6. 러시아의 와일드카드

 

이 사안들 중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누구나가 길게 서술하라고 한다고 주저할 사람이 있을까 싶은 주제들이다. 그렇다면 전문가다운 남다른 식견이라도 담겨 있어야 했던게 아닐까 싶지만 저자의 이야기들은 모두 상식을 벗어나지 않는다. 대중 누구나가 인식하고 있는 이상의 이야기가 없다. 물론 상식을 재확인하거나 그걸 포괄적으로 담론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는 과정이 나쁠 건 없다. 그렇더라도 전문가의 저작에 대중이 손을 뻗는 이유는 상식 이상의 통찰을 기대하기 때문일 거다. 책의 내용을 요약하고 정리하는 과정이 기억과 회상을 돕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일깨움이 있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본서의 경우는 그냥 일반인 누구나가 짐작하거나 기존에 알고 있는 상식을 곱씹어 보는 것보다 나을 게 없다는 게 큰 취약점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요약도 정리도 생략한다.

 

본서를 통해 상세하고 치밀한 미래 예측을 기대했던 바람이 발암을 가져오는 느낌이다. 그래도 이 시대의 상식을 재확인하고 싶은 분들과 긍정적 세계관을 다시 갖추고 싶은 분들께라면 일독의 의의가 있을 책이라고는 생각된다. 리뷰의 이 마무리가 마음에 안 드시는 분들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아무쪼록 애정하는 책들과 함께하는 평안의 독서 되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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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01 10: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하라 2023-08-01 17:30   좋아요 1 | URL
금방 첫 회를 읽고 왔습니다.^^

응원 댓글을 남기려 했는데 두 번 다 실패하고
여기 댓글을 남깁니다.

첫 집필과 첫 소설 완결을 축하드립니다. scott님^^
앞으로도 자주 뵙고 저도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그해 여름의 수수께끼>가 많은 관심과 사랑 받기를 응원드립니다.^^
 
자유 의지는 없다 -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지배하는 자유 의지의 허구성
샘 해리스 지음, 배현 옮김 / 시공사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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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과론과 결정론 사이에서 갈등하던 내게 언뜻 작은 일깨움을 준 책이다. 왜 이전부터 비선형적인 인과가 설득력있게 다가왔었는지 알 것 같았다. 절판되어 아쉽지만 도서관 대여로라도 인연이 닿는 분들이 많으셨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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