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언어의 탄생과 추위의 정복-2

독일 막스 플랑크 진화인류학 연구소의 스반테 파보의 20028월 발표에 따르면, 20만 년 전 언어와 관련한 유전자가 두 가지 중대한 돌연변이가 일어나 해부학적 현생인류가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함께 퍼져나갔다고 한다. 저자는 이 변화가 현생인류의 언어능력이 발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것이라 보고 있다. 인간과 침팬지를 구분하는 돌연변이는비교적 늦게 진화되었으나 그 뒤 불과 1~2만 년 만에, 인간의 세대로 치면 800~1천 세대 만에 급속히 퍼져나갔다고 한다. 이와 함께 또는 이 이후 인간의 언어능력이 탄생하고 신장 되었으리라는 것이다.

 

다른 인류학적 증거와 현대의 수렵-채집 부족을 근거로 보면 인구 약 1~2천 명당 하나의 언어가 있다고 한다. 이 문장 다음 가로 안에 유럽인들이 오스트레일리아를 처음 발견했을 때 그곳에는 약 270가지의 원주민 언어가 있었다는 세부 정보가 있다. 이것으로 미루어 인간이 시베리아를 건너 알래스카로 갔을 무렵 세계 인구는 약 1천만 명이었으리라고 추산하고 있다. 이스트앵글리아 대학의 윌리엄 서덜랜드는 당시에도 언어 분포가 오늘날과 비슷했다는 가정 하에 당시 언어의 수를 6809가지로 추정하고 있다.

 

미국의 조셉 그린버그는 아메리카 원주민 언어를 에스키모-알류트어, 나데네어, 아메리카 원주민어의 단 세 가지 그룹으로 분류하고 있다. 아시아에서 아메리카로 세 차례의 이주가 있었다는 증거라고 하는데 최근의 DNA 증거에 따르면 아메리카로의 이주는 세 차례가 아니라 다섯 차례였으며, 한 번은 해안을 따라 이동했다고 한다. 최초의 아메리카인들은 배를 타고 베링 해협을 건넜을 거라는 증거가 있다고 하는데, 지금은 품절된 [몽골리안 1만 년의 지혜]라는 책은 북아메리카 원주민의 전승된 구술을 기록한 책으로 동북 아시아인들이 1만 년도 훨씬 전에 베링 해협을 건너 북아메리카까지 이동해 안주하게 된 경로가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인류의 언어 탄생을 유추해 보고 인류의 언어가 전파된 과정을 이러한 예로 돌아보고 있다. 그 후 기술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언어의 조상어라고 하는 노스트라틱어가 전 인류 언어의 공통 조상어는 아니라는 데 참 뜻밖이었다. 이 책을 저술 당시 세계 인구는 60억 명 정도였는데 그 중 노스트라틱어족에 속하는 언어를 사용하는 인구는 40억 명이었다고 한다. 그 외의 인구는 이 어족의 공통분모에 속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이기에 신박했다. 바스크어, 중국어, 수메르어, 하이다어를 포함하는 어족은 데네-시노-코카시아어라고 한다.

 

이를테면 동이족과 지나족의 지배권 싸움은 동일 민족 내에서의 분파가 이루어지고 난 후의 계승권 싸움이었던 게 아니라 애초에 전혀 다른 문명의 충돌이었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동이족을 원류로 하는 민족들은 이후에도 노스트라틱어족에 속하는 언어를 사용해왔음을 만주어나 카자흐스탄의 일부 종족 언어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이들 언어는 한국어나 일본어와 계열이 같지, 중국어와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중국이라는 국가로 문화가 전승되어 오기까지 숱한 문명적인 충돌과 흡수 통합이 이어졌고 소수의 동이 문화가 점조직적으로 남게 되고 대다수가 지나족의 문명에 통합되어버린 과정이 언어 발전과 분포의 양상으로도 짐작된다.

 

언어가 어떻게 정형화되었는지도 궁금하지만 본서에서는 아직 그에 대한 문제에까지 해답을 주지는 못하고 있고 다만 언어가 전파되는 과정과 언어의 계통이 큰 줄기로 이어져 있음을 담고 있다.

 

그리고 본서는 언어의 탄생만큼이나 흥미로운 의식의 탄생도 담고 있다. 직립보행의 한 가지 결과로 남성과 여성의 분업이 일어나며 핵가족이 형성되었고 고생물학자들은 이것만으로도 남성과 여성의 차이, 자아와 비자아의 차이에 관한 의식을 적어도 초보적인 형태로 자극하기에 충분했으리라고 말한다. 그 뒤 인간 집단의 규모가 점차 커지면서 협력과 타 집단과의 경쟁이 늘어나자 개인의 차이를 인정하게 되었고 자아의 감각이 계발되었다고 보고 있다. 현재의 조직 상태를 위해 미래 예측이 중요해졌을 것이며 친족을 식별하고 자신의 이익을 감추는 기술도 발달하며 자아 감각이 진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미시간 대학대학교의 동물학자 리처드 알렉산더는 자아*비자아, 현재*미래의 두 가지 요소가 의식의 근간이자 도덕성의 바탕이 되었다고 본다.

 

하지만 여기서 방점이 찍혀야 할 대목은 자아 감각이 진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부분이다. 자아 감각을 위한 기본 구성요소의 핵심이나 의식의 근간을 자아*비자아, 현재*미래의 두 가지로 본다면 더더욱 인간 외 동물들의 자아나 의식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기에 거기서 더욱 의식과 자아 관념이 세밀해지는 진화를 거친 것이 인간의 자아와 의식이다는 정도가 정확한 표현이 아닐까 싶다.

 

애완동물을 키워본 사람은 동물이 기뻐할 때와 실망할 때가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사육자가 놀아주던가 혼을 내는 행동들에 어떤 때는 크게 기뻐하고 크게 실망할 때가 있다. 자와 타의 구분이 있기에 (먹이를 뺏어 먹는다던가 하는) 타자보다 자신의 이익을 추구할 수도 있고 타자의 행위에 실망해 타자를 무시하던가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자타를 구분할 수 있다면 자아 관념은 당연히 내면에서 일어날 수 있다. 현재와 미래를 구분하고 미래 예측을 하는 관념 역시 집단 사냥을 하는 동물군에서 없다고 볼 수 없다고 본다. 사냥 중 사냥감이 어디로 이동할 것인가를 예측하지 못한다면 사냥감이 이동할 지역에 다른 무리를 미리 보내 사냥 몰이를 할 수 없지 않은가?

 

인간의 의식이 차별화되는 것은 타 동물들에게 없는 자아관과 현재와 미래를 구분하고 예측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더 세밀해졌다는 것 이상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다른 동물들의 언어에 비해 보다 구체화된 언어이기에 섬세하고 치밀하게 계획하고 구분하고 추상적인 사고를 할 수 있게 된 것이 가장 큰 차별화되는 면이지 언어만으로 자아상만으로 미래 예측만으로는 차별화할 수 없다. [언어가 있다. 자아상이 있다. 미래 예측을 한다.] 고작 이것만으로는 인간을 정의하는 기준으로는 부족하다. 인간은 그런 부분들이 다소 치밀해졌다는 것. 이것이 고작 다이자 절대적인 차별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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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언어의 탄생과 추위의 정복

이 장은 제목과는 달리 불의 이용보다는 언어 탄생에 더욱 주목하는 장이기도 하다. 솔직히 불보다도 언어의 탄생이 더 몰입하게 되는 주제이기도 하고 말이다. 저자는 도구의 발달과 집단생활로의 확장, 예술하는 인간으로의 진화 모두를 언어의 탄생에서 원인을 찾고 있다. 언어 없이 표준화된 도구, 동굴벽화, 구슬 등을 제작하기란 매우 어렵다고 하면서.

 

고생물학자들은 대형 짐승을 사냥하려면 고립된 인간이나 소규모 집단으로는 가능한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고 한다. 또 더 큰 집단이 성립하려면 계급이 있어야 하므로 역시 언어가 필요해진다고도 언급하고 있다. 두뇌의 용적과 사회 집단의 규모 사이에 관계가 있다는 사실도 지적한다. 두뇌의 크기는 저자의 말마따나 사회적 지능과 분명 관련이 있을 것이다. 다만 사자는 언어가 없이도 집단 사냥을 잘하고 있다는 조지 샐러의 말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된다.

 

계급이라던가 서열은 아직까지의 학자들이 언어가 없다고 생각하는 동물 세계에서도 흔하기 때문이다. 앞서 등장한 사자만이 아니라 늑대나 하이에나 등 무리 생활을 하는 포유류에서 서열이라는 계급 차가 있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하다못해 개미와 벌 등 곤충 세계에서는 더 확연히 드러난다. 그리고 언어가 없는 침팬지나 비버 더욱이 까마귀 같은 조류의 일종까지도 도구를 사용한다는 것은 이미 상식이 되었다. 그리고 짝짓기를 준비하는 조류 중 자기 집을 갖은 장식구로 인테리어하며 치장하는 사례도 있다. 집단생활과 도구 사용과 예술의 경우가 언어 없이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명백한 예들이 아닐까?

 

그러나 과연 언어를 인간만의 발성에 대해 한정적으로 정의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를 나는 묻고 싶다. 중국어의 경우 성조라 하여 말의 높낮이에 따라 하나의 발음이 여러 의미를 지니게 된다. 한국어의 경우 발음의 길이에 따라 다양한 뜻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눈이 겨울 철 내리는 눈인지 시각의 주체인 눈인지가 달라지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같은 발성도 문맥의 따라 어의가 달라진다. “내 말 알아들어?”의 말과 저 큰 말은 종류가 뭐야?”의 말이 같은 말이 아니듯이 말이다. 그렇다면 동물들의 그르렁거리는 소리도 길이와 높낮이와 연결 순서에 따라 얼마나 다양한 의미가 전달될 수 있는지를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구조적이며 다양한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발성이라면 그것이 원시적이라 할지라도 발전의 어느 단계에 있느냐가 문제이지 언어인 것은 명백할 것이다.

 

또 무리 생활을 하고 집단 사냥을 하는 동물들이 사냥을 계획하고 사냥 상황에서의 상황 판단을 하고 대처하는 데 필요한 사고를 공유하지 못하리라 보는 것도 다소 어폐가 있을 것이다. 추상적인 사고는 또 어떤가? 암컷 고릴라에게 수화를 가르치자 자신의 어미가 죽었을 때의 상황과 정서를 피력해 나갔다는 사례는 유명하다. 게다가 그 암컷 고릴라는 꽃은 아름답다. 나는 꽃이다.”라는 수화까지 했다. 결국 그 고릴라가 말하고자 한 것은 나는 아름답다.”는 명백한 삼단논법이었다는 결론에 이른다.

 

언어가 없이는 사고가 없다는 전제는 우리가 언어가 미치지 않는 영역에 대해서는 문제를 인식하고 판단할 근거를 찾지 못하기 때문에 가정한 것이다. 어린 시절을 돌아봐도 우리는 어떠한 단어를 배우기 이전에도 자신의 특정 심정을 말로 표현하기 답답해하다가 해당 단어를 배우고 나서야 미흡하지만 이런 표현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성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다. 기존의 어휘로는 표현 못 할 개념이나 심정을 느껴본 분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동물들도 자신의 심정을 발성 못 해서 그렇지 복잡한 구조로 사고와 정서를 지니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정도 해 보아야 하리라 생각된다.

 

언어는 더 세분화한 도구 제작과 사용, 조직 생활의 다분화, 사고와 정서 표현, 추상적인 사고의 명료화를 불러왔다는 것은 명백하다. 하지만 집단생활과 도구 사용과 예술의 효시가 언어 탄생이라는 데는 공감할 수도 없고 동의할 수도 없다. 미디어를 통해 보게 된 그림 그리는 원숭이와 코끼리들을 보면서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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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며 느낀 바만 짧게 정리해 보고자 남긴다.

첫 장인 [언어 이전의 생각]으로 들어서기 전 인간의 진화를 인식했던 역사 이야기를 [프롤로그]에서 언급하고 있다. [생각의 역사]를 다룬 내용이니 인간이 진화를 인식했던 대목도 진화 자체에 대한 내용만큼이나 중요하지 않았나 싶다.

 

짧게 여러 내용을 전하고 있지만 프랑스 박물학자 콩트 드 뷔퐁이 1779년 지구의 나이를 75천 년이라 계산했다가 나중에 168천 년으로 수정했다고 한다. 그는 발표하지는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지구의 나이는 약 50만 년이라는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프롤로그에서는 지구의 나이, 인류의 진화는 종교적 억압 속에 거듭 인식의 확장이 저지당해 왔었음을 알 수 있는 장이었다. 화석 등 유물의 발견은 중세부터 주목받아왔으나 17세기 초 르네상스 시대부터 골동품 연구와 과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대중의 의식이 확장되었던 모양이다. 당시의 부유한 골동품 수집가들의 지원이 없었다면 이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화석과 유물의 발견이 골동품 수집이란 기호와 만나 인류의 자신 역사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졌다. 언제나 그랬듯 종교는 발목을 잡으려 했지만 말이다.

 

1. 언어 이전의 생각

저자는 원시인류가 자아의 개념을 가지게 된 이유를 사람들이 사회적 상황에서 타인의 행동을 예측해야 하는 복합적 구조가 의식 진화의 주요한 메커니즘이 되어 그렇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자아상이 복잡하게 구성되기 시작한 것은 호미니드 이후일지 몰라도 동물에 가까운 원인(호미니드)들이나 동물 자체에게는 자아의 개념, 다시 말해 자와 타를 구분 짓고 자아상을 갖는 원시적인 관점이 과연 없었을 것인가 하는 의문은 남는다. 물론 동물이나 호미니드와 의사 소통이 가능하지 않을 것이기에 확인도 확신도 불가능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자아 개념이 없었다는 전제에 있어서도 같은 이유로 확인도 확신도 불가능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호모 에렉투스가 유라시아 전 지역으로 확산한 이후 약 70만 년 전 도끼의 표준화가 있었다고 한다. 고생물학자들의 전 세계 도끼 수천 자루를 조사한 결과 크기는 다양하다 해도 도끼들 대부분이 거의 동일한 비례로 만들어져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고고학자 V.고든 차일드는 표준화된 도구가 화석화된 생각이라며 이러한 표준화된 도구를 만들기 위해 인간은 개략적인 도구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야 했기에 추상적인 사고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힘의 역학적으로 가장 사용하기 효율적인 각도로 도구가 개량되어 온 결과가 아닌가 싶다. 아니라면 도끼의 발명 이전에 플라톤의 이데아설이나 융의 집단무의식이 말하듯 도끼의 원형상이 이미 원시 인류의 무의식 속에 먼저 자리잡아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심리학자 멀린 도널드는 에렉투스의 사회에서는 협동과 사회적 행동 조정이 종의 생존 전략에 중요했다며 언어는 없었지만 그들은 의도적인 모방, 표정, 소리, 창조성, 준거, 협동 무엇보다도 젊은 세대의 교육과 문화 변용을 가능케 했다는 점에서 질적인 변화였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원숭이처럼 상당히 고등한 동물이라 해도 생각을 상세히 공유하지 못하기 때문에 세계에 고립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고 원숭이 개체는 스스로 배우는 것만 알지 늙은 세대는 지혜를 자기 두뇌 속에 영원히 가둔 채 죽기 때문에 세대마다 늘 새로 시작해야 한다고 말이다.

 

하지만 [긴밀한 연결]이라는 신경유전학 대중서를 보면 새의 종류는 기억나지 않는데 그 새의 경우 아비 새와 단절되어 노래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는 경우 새의 노랫소리가 형편없어지고 다음 세대에서라도 다시 노래하는 법을 다시 배울 기회가 주어지면 노랫소리의 수준이 달라진다고 한다. 새도 가창수업을 따로 받고 그에 따라 가창력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셸드레이크의 형태장 이론에 대해 실린 대중과학 교양서의 경우 내 생각으로는 오류인 예가 실려 있는데 내용은 대략 이렇다. 한 번도 원숭이가 과일을 물에 씻어 먹는 사례를 목격하지 못한 어느 과학자가 한 원숭이 개체가 과일을 물에 씻어 먹는 것을 목격한 이후 다른 과학자들도 세계 각지의 서로 다른 시설들에서 원숭이가 과일을 물에 씻어 먹는 것을 목격했다는 것이다. 그를 두고 형태장 이론을 뒷받침하는 사례로 원숭이들이 다른 지역에 있었지만 정보가 공유되었다고 이야기하던 책이 있다. 하지만 나로서는 이건 심각한 오류라고 본다. 원숭이가 지구에 거주한 역사가 얼마인데 이제까지 과일을 물에 씻어 먹은 사례가 없었겠는가? 유럽 사람이 콧구멍을 파서 코딱지를 튕기는 걸 봤는데 한국 사람, 일본 사람도 그러더라고 형태장 이론의 완벽한 증거라는 말과 무엇이 다른가 싶다.

 

이미 개에게도 거울상 뉴런이 있어 인간의 하품이나 미소를 따라한다는 건 낯선 이야기도 아니다. 원숭이에게도 거울상 뉴런은 당연히 있지 않은가? 그들이 서로의 행동을 모방해 생존에 필요한 기술들을 전승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이쯤 되면 새도 다음 세대의 노래를 교육하는데 원숭이라고 에렉투스가 출현하기 전까지는 교육은 없었을 것이다라는 논리는 말이 되지 않는다고 본다.

 

오히려 인간과 다른 동물들의 차이는 필요와 재미 중 재미의 비중이 더 높아진 경향 때문이 아닌가 싶다. 본서에서는 보노보에게 뗀석기를 만드는 법을 교육하려 했지만 실패한 사례가 등장하는데 그건 보노보에게 필요도 재미도 없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안정된 사육 환경에서 언제든 먹이가 풍족히 주어지는 상황에 뗀석기는 보노보에게 전혀 필요도 없는 성가신 교육이다. 먹이 사냥에 필요한 돌깨기가 아니라면 그저 콘크리트 바닥에 던져 돌을 깰 수 있는데 무엇 때문에 보노보가 돌을 깨는 수고를 정교히 하겠는가? 원시인류는 스캐빈저 생활을 할 수도 있었지만 보다 풍족한 먹이의 확보가 필요했고 사냥 자체가 재밌었을 것이고 사냥 도구를 정교히 만드는 데서도 흥미를 느꼈다는 것이 진화의 촉매가 되었다고 본다.

 

필요와 재미(흥미와 만족감, 성취감의 밀도 상승) 이게 초기 원시인류와 타 동물을 다르게 진화시킨 가장 최우선적인 원인이 아니었을까 싶다. 도구를 만드는데 흥미도 만족도 못했다면 필요하다고 해도 게을러졌을 것이다. 함께 집단을 이루고 살아가는 데 필요만이 있고 흥미도 재미도 없었다면 또 무리 사냥에서 성취감을 느낄 수 없었다면 집단 사회의 양식이 지금과 같은 거대 규모로 확장되지 않았으리라 생각된다.

 

필요하기 때문에 조성되고 재미있기 때문에 완성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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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의 질문들 - 돈, 경제, 세상의 흐름을 알고 싶을 때
김경곤 지음 / 북스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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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경제상황은 초인플레이션이다 스태그플레이션을 앞두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있는 상황입니다. 반면 투자 전문가들은 짧은 시간 안에 급반등이 이루어질 것이라 예측을 내놓기도 하는 일반인들로서는 짐작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기도 합니다. 하나의 경제상황을 두고도 관점과 시각의 차가 너무도 크니 개미투자자들로서는 불안을 야기할만한 상황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러한 때에 거시경제적 시야는 생존과도 직결되는 문제가 아닌가 합니다. 


저자는 한국국방연구원에서 재정분석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하며 미국콜로라도 대학에서 거시경제를 강의하기도 한 인물입니다. 전공분야가 거시경제이고 국가에서 거시경제적 안목으로 재정을 분석하고 있는 인물이면서 외국의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거시경제를 이해하기 쉽게 가르친 경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론을 쉽게 풀어 설명하는 혜안과 실제 국가 경제에 운용하는 적용을 아우르는 경력을 모두 가진 인물이라는 이야깁니다.


실제 본서를 보면 무엇보다도 현실적인 질문들을 제기하고 그 질문들에 대한 답을 풀어준 난이도가 너무도 쉽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을 다룬 단원에서는 연이어 마시는 맥주잔에서 만족감이 줄어드는 것으로 한계효용이 줄어드는 것을 비유하고 있으며 금리인상의 대목에서는 정치인들이 파티를 더욱 즐기고 싶어할 때 중앙은행이 파티의 음악을 꺼버리는 것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비유만이 아니라 서술하고 있는 난이도 자체가 경제 비전공자들과 경제 지식이 없는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기에 저와 같은 경제 문외한들에게 접근하기도 이해하기도 쉬운 면이 이 책의 강점이라고 생각됩니다.


각 챕터는 모두 열두가지의 질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제하면 의문을 가질 법한 질문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몇가지만 예를 들자면 3장은 "인플레이션은 이자율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라는 제목이고 5장은 "왜 경제는 호황과 불황을 반복하는 것일까?"라는 제목이며  10장은 "채권과 금리와 가격은 왜 반대로 움직일까?"라는 주제입니다. 책 소개란에서 목차를 보시면 알겠지만 누구나 궁금해 해봤을 법한 질문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런 질문들은 GDP, 인플레이션, 이자율, 실업률, 경제변동, 통화정책, 재정정책, 환율(다시 환율2, 이자율2, 인플레이션2, GDP2로 총 12가지 주제로 이어집니다)이란 각 주제에 대해 대중이 관심을 가져봤을 의문을 제목 삼은 것입니다.


이렇게 12가지 질문과 그에 대한 설명으로 경제의 기초 정보와 지식을 쌓아가게 해주고 이러한 기초로 갖게 될 분석력이 생긴다면 저자가 부록편에 담은 주요 경제 데이터 검색방법도 쓸모가 잇을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조금 아둔한 사람으로 이 책만으로 경제 데이터를 통해 경제 지표를 분석하는 식견까지는 생기지 못한 것 같습니다만 저자가 의도하는 바와 저자가 경제에서 개개인이 추구해야 할 바까지 고려했다고 보인 것이 마지막 부록편이었습니다. 경제에 대한 눈을 가지고 초보적으로라도 경제를 분석하는 개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저자가 독자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사실 그러자면 [경제의 질문들]이라는 본서와 함께 다른 경제 저작들을 통해 깊은 공부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 본서가 거시경제를 바라보는 시야를 초보적으로라도 가져야 한다는 필요성을 일깨우는데 작은 도움이라도 되리라 생각되고 그것이 저자의 집필의도는 아니었을까 짐작하게 됩니다. 


경제 전공자들과 경제 분야에 있어 독학으로라도 어느 수준에 이른 분들이 아니라면, 초보적인 거시경제적 시야가 무언지 알고 싶은 분들이라면 본서를 한 번쯤 읽어보셔도 좋으리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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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임의 뇌과학 - 움직임은 어떻게 스트레스, 우울, 불안의 해답이 되는가
캐럴라인 윌리엄스 지음, 이영래 옮김 / 갤리온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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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캐럴라인 윌리엄스는 과학 저널리스트이자 에디터라고 하며 생물학 학사와 과학 커뮤니케이션 석사 학위를 지닌 인물로 [뉴 사이언티스트]에 정기적으로 과학 칼럼을 기고하는 인물이라고 한다. 그 외 이력은 더 있지만 그녀가 저술한 본서에 신뢰를 갖기 위한 정보로는 이 정도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녀가 전하는 움직임에 관련한 유익한 과학 지식은 전체 9장 중 8장까지 매장 이어진다. 9장은 최종 정리의 장이라고 할 수 있다. 프롤로그부터 저자는 지능 검사가 시행된 이후 1980년대까지 해마다 상승하던 사람들의 지능(IQ)이 1990년대 중반부터 감소하기 시작하더니 2000년 이후부터는 10년에 몇 점씩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저자는 그 이유를 정적인 생활, 움직임이 점차 감소하고 있는대서 들고 있다. 이렇게만 이야기하면 그저 억측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이후 펼쳐지는 본론의 장마다 이것이 억측이 아니라는 근거가 주어진다. 지능 이야기에서는 [이디오크러시]라는 영화가 이런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코미디였구나 하는 생각도 언뜻 들었다.

 

1장에서는 상식적으로 운동능력과 관련된 것으로 알고 있는 소뇌의 작용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소뇌의 작은 부분만이 움직임을 만드는 부분과 연결되어 있으며 그 외의 부분들은 사고와 느낌을 전문적으로 다루게 되어 있다는 정보는 자못 당황스럽기도 했다. 교육을 통해 알게 된 기존의 내용과 너무 상이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내용은 이후 연구자들의 연구를 인용해 전하는 인간의 생각은 움직임이 진화를 거치며 내면화된 것이라는 결론으로 확장된다. 움직임의 기능을 수행하는 뇌 부위가 사고와 느낌을 전문화하고 있는 부위이기도 하다면 움직임과 사고와 느낌은 유사선상에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결론도 낯설지 않은 것이지 않은가?

 

이미 1960년대부터 실험으로도 신체-정신 시스템이 우리 마음에 작용하려면 그 시스템이 미리 실제 세계의 움직임을 통해 훈련되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한다. 강해진 내적 경험은 세상 속 우리의 위치와 행동이 경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풍부하게 이해하게끔 도와주는데 이런 다양한 감각적 경험은 몸을 움직이고 세상과 신체적으로 상호작용하며 시작된다고 하는 연구도 있다.

 

과학자들은 이제 뇌를 주 컴퓨터로 보지 않고 몸 전체는 물론 주변 환경까지 아우르는 훨씬 큰 네트워크에 속한 하나의 "마디"로 여긴다고 한다. 이는 오욕칠정 즉 인간의 본능과 욕망과 감각과 정서를 뇌에서만 찾지 않고 오장육부 전체에 분포되어 있다고 보는 한의학의 전승과 다르지 않다. 이미 동양에서는 한중일이 따르는 한의학만이 아니라 인도의 아유르베다에서도 상식인 내용을 이제는 서양 학자들이 밝혀내고 있는 것이다.

 

2장에서 저자는 우리의 두뇌 시스템이 우리의 의도나 욕망이 지향하는 바와 달리 수렵과 채집에 맞춰져 있다고 주장한다. 그 근거를 행복감을 느끼는 호르몬인 엔도르핀과 러너스 하이 등 운동에서 비롯되는 만족감에 연결되는 호르몬인 엔도카나비노이드에서 찾고 있다. 인간은 움직이면서 행복하다는 것이다. 또 우리 발에 내장형 압력 센서가 있다며 이 센서가 박동하는 심장과 협력해 뇌에 더 많은 혈액을 보낸다고 한다. 뼈 건강이 두뇌 건강과도 연관 있다는 것도 상식이라지만 내게는 새로웠다. 골 질량이 줄어들면 인지력이 저하될 위험이 높아진다고 한다. 뼈 형성 과정에 분비되는 오스테오칼신은 애초에 뼈를 강화할 것으로 추정되었으나 정작 기억력과 관련 있다는 것이 실험으로 밝혀졌다. 오스테오칼신은 혈액을 통해 뇌에 메시지를 전달하려 분비된다고 한다. 이 과정은 일반적으로 기억을 전담하는 해마의 특수 수용기를 통해 이루어지는데 쥐 실험에 의하면 오스테오칼신이 부족한 쥐는 같은 상황이 주어져도 처음 해결안을 주었던 문제에서 다시 헤맨다고 한다. 알츠하이머 환자들은 오스테오칼신 수치가 특히 낮다. 이 성분의 양은 성인 초기에 최고치에 이른다고 하며 여성은 30세 남성은 45세부터 감소하기 시작한다. 오스테오칼신은 기억만이 아니라 근육과도 소통한다고 한다.

 

앞으로 향하는 게 사고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도 신선했다. 우울증이 있는 사람과 보통 상태에서의 사람은 걸음걸이도 다르다는 것도 유익한 정보가 아닌가 싶다. 타자의 정서를 판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울증이 아닌 상태의 걸음걸이로 바꾸어 의도한 정서를 유도해낼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이다.

 

전전두피질은 생각의 틀이라고 할 수 있을 고정관념 같은 사고를 하도록 유지하는데 이 부위는 성인 초기까지는 뇌의 다른 부분들과 완전히 통합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어린이들이 걷잡을 수 없는 상상력과 창의력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저자는 정리한다. 전전두피질의 활동은 빠르지 않은 속도로 자력으로 움직이고 있을 때 일시적으로 낮아진다. 저자가 보여주는 연구 데이터에 의하면 전전두피질이 활동을 멈춘 사람들이 창의적 제안을 두 배나 많이 내놓았다고 한다. 일상에서 사람들의 움직임이 줄어들면서 창의력도 저하되어 미국의 전미경제연구소는 수십년에 걸쳐 연구활동은 매년 늘어나지만 연구 결과는 부진해지고 있다고 한다.

 

3장에서는 1985년의 25~35세 학생들과 비슷한 나이대의 현대 남성들의 악력을 비교한 내용을 전한다. 1980년대 남성 악력은 53킬로그램이었던데 반해 밀레니얼 세대 남성들의 악력은 44킬로그램에 불과했다. 1998년 이래 근력은 20퍼센트 근지구력은 30퍼센트 감소했다고 하며 그 추세는 2008년 이래 가속되고 있다고 한다. 근육의 약화는 사망의 원인이 된다. 쌍둥이들에 관한 10년간의 연구로는 중년의 강한 근력은 더 나은 기억 기능, 더 민첩한 두뇌와 연관된다. 전체적인 근력의 지표인 악력은 해마의 건강한 활동에도 영향을 미친다. 근육 훈련은 삶을 관리할 수 있다는 느낌을 강화하면서 자존감을 높인다고 한다. 근력이 강해질수록 자존감이 높아지고 불안 증세가 줄어들며 수면의 질이 개선된다. 정적인 삶은 소위 "배경 감정"이라고 하는 보통 때의 일반적인 감정 상태를 우울 모드로 만들 수 있다. 불안과 우울증을 앓는 사람은 작업 기억 능력이 악화된다. 근력 훈련이 불안과 우울증을 낫게 하고 배경 감정을 우울 모드에서 벗어나도록 만들어 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일반적인 트라우마 외에 일생 동안 여러 번의 스트레스 경험을 한 후 발현되는 복합 PTSD에도 단 10주간의 요가 치료만으로 PTSD 기준을 충족하지 않게 되었다는 베셀 반 데어 콜크의 연구도 인상적이다. 이미 [몸을 기억한다]를 통해 알고 있던 내용이지만 움직임의 효과만을 다룬 본서를 통해 다시 보게 되니 새로웠다.

감정의 격변은 정서적 흉터만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근력도 저하시킨다고 한다. 이를 역으로 근력을 강화하면 심신을 건강한 상태로 되돌리는 데 도움이 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라 저자는 이야기하는데 이런 원인과 결과를 도치해 보는 시각은 일반적이지 않나 싶다. 트라우마를 남길만한 사건 직후에 근력 단련을 함으로써 트라우마나 스트레스가 애초에 깊숙이 자리 잡지 못하게 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고 한다.

 

4장에서는 박자가 뇌-신체 경로를 작동시킨다고 박자가 소리와 움직임에 관련된 뇌 영역 안에 동기화된 전기적 활성파를 통해 이런 일을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박자가 주는 충동에 몸을 실으면 누구나 만족감을 얻는데 춤은 거듭 도파민 분비를 유도한다. 마음 챙김 명상과 춤 치료는 정반대이면서도 뚜렷한 치유 효과가 있다고 한다. 마음 챙김은 사고와 정서에 관여하거나 그것을 바꾸려고 하지 않고 다만 알아차리지만, 춤은 움직임 속에서 감정을 극대화하고 사고와 정서를 대하는 반응에 변화를 줘서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만들 기회를 준다고 한다.

 

5장은 코어의 힘을 논하는 장이다. “바른 자세는 바른 마음 상태를 얻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바른 자세를 취하는 것 자체가 올바른 마음 상태를 갖는 것이다.”  일본 선불교 지도자 스즈키 순류의 말이라고 하는데 도가의 형전기장 形全氣壯의 원리와 같다. 자세라고 할 수 있을 참장 등을 통해 기를 기르고 바로 하는 양식과도 같은 이야기인데 이는 요가 아사나나 알렉산더 테크닉 등의 원리와 서로 통하는 바가 같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부신의 작용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부신(주로 부신수질)에서는 투쟁-도피 반응을 유발하는 아드레날린을 내보낸다 하지만 척수와 뇌에 이르는 직통라인을 갖고 있기도 하다. 저자는 놀라울 정도로 중요한 발견이라며 부신수질과 움직임이 연관된 두뇌 영역이 연결되어 있다고 이야기하는데 5장까지 읽고 나면 그리 놀랍지도 않다. 투쟁-도피 반응은 아니나다를까 당연히 불안과 공포 심리에 작용할 것이다. 움직임이 부신수질에 영향을 주고 부신수질은 투쟁-도피 반응을 자제하는 작용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척추와 횡격막도 장의 안정에 작용하고 장은 앞서 나왔듯 정서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코어의 단련은 정서를 안정화 시키는 것이다.

 

6장에서는 염증과 스트레스의 관계를 다룬다. 염증은 신전되지 않는 육체에서 다발하고 육체는 반복적이고 장기적인 스트레스에서 약한 염증 상태를 지속하게 된다고 한다. 염증은 노화와 암의 발생이나 면역 상태만이 아니라 무기력함, 고통, 혼자 무력히 남겨지고 싶은 질병 행동이라는 상태 등 정서에도 작용한다. 염증을 비활성화 상태로 만드는 성분들 중 레졸빈이라는 성분은 스트레칭을 하면 농도가 높아진다고 한다. 요가와 태극권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염증 수치가 낮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스트레칭과 움직임은 근막을 통해 림프로 들어가는 유체의 양도 전반적으로 높여 신경계도 안정화 시킨다.

 

다만 과신전 관절을 가진 사람들의 경우 투쟁-도피 반응이 민감하고 외부 감각 신호와 통증에 민감해 불안과 공황 장애가 16배나 많다고 한다. 또 감정 처리와 공포에 관여하는 뇌 부위인 편도체가 평균보다 크고 공간 내 신체 표현과 관련된 뇌 영역이 작다고 한다. 이런 사람들은 스트레칭이 아니라 근력을 단련해야 맞다. 또 현대 무용도 유익할 것 같다.

 

7장은 호흡 관련 장이다. 저자의 정보에 한 가지를 더 보태자면 느린 호흡으로 폐와 혈액의 작용으로 그리고 횡경막이 내려가며 장부에 안정감을 줘서 뇌파가 변하는 것만이 아니라 조식이던 지식이던 어느 호흡이라도 심장과 혈관계의 파장을 변화 시켜 뇌로 유입되는 파장에 쌍맥놀이 현상을 유도해 뇌파의 전반적인 패턴을 바꾸는 것이다. 리 샤넬라 씨의 [신비의 쿤달리니]에서도 그리고 내 기억이 맞다면 이차크 벤토프 씨의 [우주심과 정신 물리학]에도 첨삭 되어 있는 내용이다. 그리고 8장은 휴식이 꼭 정적일 필요는 없다는 정언으로 마무리하고 있다.

 

본서를 통해 움직임의 효용을 다시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무엇보다 앞을 향하는 움직임과 걸음과 자세와 의지적인 움직임이 요구되는 몸 수련이 필요함을 느꼈다. 그리고 스트레칭과 근력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걸 돌아보게 되었다. 잊지 않기 위해 또, 다시 편하게 돌아보기 위해 거의 요지는 다 정리했다.

 

정적인 생활이 컴퓨터의 등장 이후 조금씩 확대되다가 아이폰의 개발 이후 움직임과 멀어진 생활이 일상이 되어버리는 시대가 되었다. 이러한 시대에 대한 문제 제기만이 아니라 해법도 제시하는 책이라 활동이 적다 싶은 어느 분에게라도 필요한 정보가 담긴 책이 아닌가 싶다. 움직임이 필요하다고는 느끼지만 딱히 행동의 동인이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께 적극 권해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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