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으며 느낀 바만 짧게 정리해 보고자 남긴다.
첫 장인 [언어 이전의 생각]으로 들어서기 전 인간의 진화를 인식했던 역사 이야기를 [프롤로그]에서 언급하고 있다. [생각의 역사]를 다룬 내용이니 인간이 진화를 인식했던 대목도 진화 자체에 대한 내용만큼이나 중요하지 않았나 싶다.
짧게 여러 내용을 전하고 있지만 프랑스 박물학자 콩트 드 뷔퐁이 1779년 지구의 나이를 7만 5천 년이라 계산했다가 나중에 16만 8천 년으로 수정했다고 한다. 그는 발표하지는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지구의 나이는 약 50만 년이라는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프롤로그에서는 지구의 나이, 인류의 진화는 종교적 억압 속에 거듭 인식의 확장이 저지당해 왔었음을 알 수 있는 장이었다. 화석 등 유물의 발견은 중세부터 주목받아왔으나 17세기 초 르네상스 시대부터 골동품 연구와 과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대중의 의식이 확장되었던 모양이다. 당시의 부유한 골동품 수집가들의 지원이 없었다면 이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화석과 유물의 발견이 골동품 수집이란 기호와 만나 인류의 자신 역사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졌다. 언제나 그랬듯 종교는 발목을 잡으려 했지만 말이다.
1. 언어 이전의 생각
저자는 원시인류가 자아의 개념을 가지게 된 이유를 사람들이 사회적 상황에서 타인의 행동을 예측해야 하는 복합적 구조가 의식 진화의 주요한 메커니즘이 되어 그렇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자아상이 복잡하게 구성되기 시작한 것은 호미니드 이후일지 몰라도 동물에 가까운 원인(호미니드)들이나 동물 자체에게는 자아의 개념, 다시 말해 자와 타를 구분 짓고 자아상을 갖는 원시적인 관점이 과연 없었을 것인가 하는 의문은 남는다. 물론 동물이나 호미니드와 의사 소통이 가능하지 않을 것이기에 확인도 확신도 불가능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자아 개념이 없었다는 전제에 있어서도 같은 이유로 확인도 확신도 불가능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호모 에렉투스가 유라시아 전 지역으로 확산한 이후 약 70만 년 전 도끼의 표준화가 있었다고 한다. 고생물학자들의 전 세계 도끼 수천 자루를 조사한 결과 크기는 다양하다 해도 도끼들 대부분이 거의 동일한 비례로 만들어져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고고학자 V.고든 차일드는 표준화된 도구가 ‘화석화된 생각’이라며 이러한 표준화된 도구를 만들기 위해 인간은 개략적인 도구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야 했기에 추상적인 사고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힘의 역학적으로 가장 사용하기 효율적인 각도로 도구가 개량되어 온 결과가 아닌가 싶다. 아니라면 도끼의 발명 이전에 플라톤의 이데아설이나 융의 집단무의식이 말하듯 도끼의 원형상이 이미 원시 인류의 무의식 속에 먼저 자리잡아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심리학자 멀린 도널드는 에렉투스의 사회에서는 협동과 사회적 행동 조정이 종의 생존 전략에 중요했다며 언어는 없었지만 그들은 의도적인 모방, 표정, 소리, 창조성, 준거, 협동 무엇보다도 젊은 세대의 교육과 문화 변용을 가능케 했다는 점에서 질적인 변화였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원숭이처럼 상당히 고등한 동물이라 해도 생각을 상세히 공유하지 못하기 때문에 세계에 고립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고 원숭이 개체는 스스로 배우는 것만 알지 늙은 세대는 지혜를 자기 두뇌 속에 영원히 가둔 채 죽기 때문에 세대마다 늘 새로 시작해야 한다고 말이다.
하지만 [긴밀한 연결]이라는 신경유전학 대중서를 보면 새의 종류는 기억나지 않는데 그 새의 경우 아비 새와 단절되어 노래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는 경우 새의 노랫소리가 형편없어지고 다음 세대에서라도 다시 노래하는 법을 다시 배울 기회가 주어지면 노랫소리의 수준이 달라진다고 한다. 새도 가창수업을 따로 받고 그에 따라 가창력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셸드레이크의 형태장 이론에 대해 실린 대중과학 교양서의 경우 내 생각으로는 오류인 예가 실려 있는데 내용은 대략 이렇다. 한 번도 원숭이가 과일을 물에 씻어 먹는 사례를 목격하지 못한 어느 과학자가 한 원숭이 개체가 과일을 물에 씻어 먹는 것을 목격한 이후 다른 과학자들도 세계 각지의 서로 다른 시설들에서 원숭이가 과일을 물에 씻어 먹는 것을 목격했다는 것이다. 그를 두고 형태장 이론을 뒷받침하는 사례로 원숭이들이 다른 지역에 있었지만 정보가 공유되었다고 이야기하던 책이 있다. 하지만 나로서는 이건 심각한 오류라고 본다. 원숭이가 지구에 거주한 역사가 얼마인데 이제까지 과일을 물에 씻어 먹은 사례가 없었겠는가? 유럽 사람이 콧구멍을 파서 코딱지를 튕기는 걸 봤는데 한국 사람, 일본 사람도 그러더라고 형태장 이론의 완벽한 증거라는 말과 무엇이 다른가 싶다.
이미 개에게도 거울상 뉴런이 있어 인간의 하품이나 미소를 따라한다는 건 낯선 이야기도 아니다. 원숭이에게도 거울상 뉴런은 당연히 있지 않은가? 그들이 서로의 행동을 모방해 생존에 필요한 기술들을 전승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이쯤 되면 새도 다음 세대의 노래를 교육하는데 원숭이라고 에렉투스가 출현하기 전까지는 교육은 없었을 것이다라는 논리는 말이 되지 않는다고 본다.
오히려 인간과 다른 동물들의 차이는 필요와 재미 중 재미의 비중이 더 높아진 경향 때문이 아닌가 싶다. 본서에서는 보노보에게 뗀석기를 만드는 법을 교육하려 했지만 실패한 사례가 등장하는데 그건 보노보에게 필요도 재미도 없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안정된 사육 환경에서 언제든 먹이가 풍족히 주어지는 상황에 뗀석기는 보노보에게 전혀 필요도 없는 성가신 교육이다. 먹이 사냥에 필요한 돌깨기가 아니라면 그저 콘크리트 바닥에 던져 돌을 깰 수 있는데 무엇 때문에 보노보가 돌을 깨는 수고를 정교히 하겠는가? 원시인류는 스캐빈저 생활을 할 수도 있었지만 보다 풍족한 먹이의 확보가 필요했고 사냥 자체가 재밌었을 것이고 사냥 도구를 정교히 만드는 데서도 흥미를 느꼈다는 것이 진화의 촉매가 되었다고 본다.
필요와 재미(흥미와 만족감, 성취감의 밀도 상승) 이게 초기 원시인류와 타 동물을 다르게 진화시킨 가장 최우선적인 원인이 아니었을까 싶다. 도구를 만드는데 흥미도 만족도 못했다면 필요하다고 해도 게을러졌을 것이다. 함께 집단을 이루고 살아가는 데 필요만이 있고 흥미도 재미도 없었다면 또 무리 사냥에서 성취감을 느낄 수 없었다면 집단 사회의 양식이 지금과 같은 거대 규모로 확장되지 않았으리라 생각된다.
필요하기 때문에 조성되고 재미있기 때문에 완성된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