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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닦고 스피노자 - 마음을 위로하는 에티카 새로 읽기
신승철 지음 / 동녘 / 2012년 11월
평점 :
힐링하니까 청춘이다?
비정규직으로 일하던 한 청년이 여자 친구와 헤어졌다며 ‘앞으로 연애와 결혼도 포기하기로 했다’고 고개를 들지 못했다. 자기도 비정규직인데 여자 친구도 백수라서 만나면 만날수록 서로 불안한 상황이 더 증폭되기만 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젊은이들이 이 같은 가슴 아픈 고민을 안고 있는데 이들을 ‘삼포(三抛)세대’라고 한다. 세 가지를 포기한 세대들이란 의미인데 대체적인 의미는 연애, 결혼, 출산을 지칭한다. 제대로 된 취업을 할 수 없고 취업을 한다고 해도 대부분이 비정규직이니 버거운 생활비용 때문에 연애, 결혼, 출산도 포기 하거나 기약 없이 미루는 세대들이란 말이다. 몇 년 전 고용 불안으로 인해 ‘88만원 세대’란 말이 나오더니 이제는 청년 세대들로부터 가족 구성에 필요한 통상적 세 단계를 포기한다는 ‘삼포세대’란 말이 나오니 우울하고 또 우려된다. 불안과 스트레스, 우울증 등 정신적인 이유로 자살을 생각해본 20대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힐링(healing)이라는 단어가 우리 생활에 흔하게 등장하고 있다. 최근에 국립중앙도서관에서 2012년 한 해 가장 많이 이용된 도서 80권을 발표한 적이 있었다. 지난해 국립중앙도서관에서 가장 많이 빌려본 책이 혜민 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었다. 2011년에 1위를 지킨 김난도의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2위에 머물렀다. 이와 같은 결과를 통해 2012년의 화두가 ‘힐링’과 ‘청춘’이었음을 알 수 있다.
스피노자가 들려주는 힐링법
치유의 바람은 새로운 흐름의 전주곡이다. 힐링이 인문학 연구 전반으로 확산되었다. 작년 한국연구재단 주최 ‘2012년 인문주간’의 주제가 ‘치유의 인문학’이다. ‘치유의 인문학’, ‘인문 치료’, ‘철학상담치료’ 등 이름은 조금씩 달라도 지향하는 바는 같다. 인간성 상실과 내면의 상처로 인한 ‘마음의 병’ 혹은 ‘문화적 질병’의 치유가 목표다. 인간 연구가 본령인 인문학의 사회적 역할을 넓히는 일이다. 실용적 가치가 적다는 이유로 후순위로 밀렸던 인문 정신이 삶의 위기를 계기로 하여 삶의 가치를 회복해 줄 근원적 자원으로 활용되는 셈이다.
'청춘', '힐링', '인문학'. 이 세 가지 화두를 적절하게 버무린 책이 있다면 바로 <눈물닦고 스피노자>이다. 이 책은 형식이 독특하다. 미래에 대한 불안함에 괴로워하는 20대 청년, 철수가 우연히 고시원 화장실에서 네덜란드의 철학자 스피노자를 만나 매일 밤 철학 상담을 한다. 진짜 철학자가 매일 밤에 '철학 상담치료'를 해주는 것이다. 스피노자는 자신이 저술한 책 <에티카>의 일부 내용을 소개하여 현대사회가 만들어낸 다양한 마음의 병을 치유하기 위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요즘 제가 쓰고 있는 《에티카》 내용 중 <2부. 정신의 본성과 기원에 대하여>에서 정리 19를 보면 ‘인간 정신은 오직 신체가 받는 변용의 관념에 의해서만 인간 신체 자체를 인식하며 또 그것이 존재하는 것을 안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 의미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p 29~30)
젊은 세대들은 사회가 규정한 현실에 얽매이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안정적인 근로의 직장에만 들어가면 여생을 편안하게 지낼 수 있고 돈만 있다면 잘 살 수 있다는 물질만능주의 성향이 강하다. 자신의 능력에 맞지 않게 높은 연봉을 받을 수 있는 대기업, 공기업이나 공무원과 같은 안정직 취업을 선호하고 많은 시간에 취업 준비에 투자한다. 그러나 구직자들이 선호하는 대기업과 공기업 등 괜찮은 일자리는 '낙타가 바늘구멍 뚫기'식 경쟁의 장이 된지 오래다. 젊은 세대는 승자독식이 굳어진 살벌한 전쟁터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통을 감수한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젊은 세대의 마음은 점점 지쳐가고 자조적으로 변하게 된다.
스피노자는 타인에 대한 사랑과 신체 변용을 통해서 낯선 환경 속에서 자신만의 욕망의 흐름에 맡긴다면 불안을 종식시킬 수 있다고 봤다. 변용이란 신체가 외부의 물체를 만나 딱딱하거나 부드러워지는 것을 뜻한다. 쉽게 말하자면 타인의 입장을 중심으로 생각한다면 그동안 인정하기 못했던 자신에 대한 존재의 불안함을 떨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신체 변용을 통해서 나 자신의 욕망에 맡겨 능동적인 삶을 살아가라고 스피노자는 말한다.
현대사회의 새로운 불치병으로 등장하고 있는 우울증에 대해서 스피노자는 단순히 마음에서 비롯된 개인적인 문제로만 보지 않는다. 거대한 사회 구조를 형성하는 억압된 인간 관계망에서 우울증의 원인을 찾는다. 외부와의 관계에 예속되면 자신의 욕망을 제대로 발현할 수 없다. 자신이 원하는 욕망을 표출하지지 못한다면 슬픔의 감정을 갖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우울증인 것이다. 욕망은 곧 자신이 사랑하는 감정을 표상하여 실행으로 발현되어야 한다. 그러기 우리 스스로 나를 둘러싸고 있는 관계망을 재배치해야 한다. 자신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관계망으로.
“관계 자체가 예속과 복종의 관계처럼 아예 사랑과 욕망의 힘을 좌절시키는 방향에서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그것이 언제까지고 슬픔의 관계에만 머물러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 관계를 기쁨의 관계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아직까지 기억에 없고 전혀 해본 적이 없는 색다른 사랑의 실천에 나설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이란 미지의 것을 향한 욕망의 흐름과 같은 것입니다. 둘 사이에서 무엇인가 새로운 이야기가 나오고, 새로운 상상이 떠오르고, 색다른 무엇에 도전하고 싶은 생각이 들도록 기쁨의 관계를 만들어보세요. 창발적인 관계망은 가능합니다. 그것은 두 사람의 욕망이 증대되고 촉발되는 관계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p 61~62)
작년에 청춘들이 ‘힐링’에 열광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안과 좌절의 그늘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가. 힐링하는 방법을 명사나 책을 통해서만 찾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힐링을 남들이 하는 걸 따라 맞출 필요 없다. 우리 삶에 작은 변화를 주는 힐링을 스스로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 새로운 분야, 새로운 사람을 만나 기쁨의 관계를 구축하는 삶의 과정도 힐링이 될 수 있다.
긍정의 힘을 보여줘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명제를 예로 들면서 완벽한 인간의 이성적 사유와 주체성의 존재를 증명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 명제는 최종 확인을 위해서는 수많은 '나'가 있어야 하고 그 수많은 '나' 중에 또 주체가 필요하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스피노자는 '나'라는 주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를 작동시켜주는 관계가 중요하다고 한다. 정신적 상실을 망각으로 바꾸는 힐링만으로는 마음의 불치병을 완전히 치유하기가 어렵다. 상실을 자기 안에 수락하고 그 과정에서 어떤 자기를 변용해내는 방식을 택하며 자기 세계를 재배치해야 한다. 자기를 삶의 주인으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을 변화시키는 힘이 필요하다.
스피노자의 힐링 철학을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감정적 고통의 원인을 아는 것이며, 하나는 다른 감정으로 대치하는 것이다. 감정적 고통을 극복하는 것은 오로지 이보다 더 강력한 긍정적인 감정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부정적인 감정은 끈질기게 커지며, 괴로움에 괴로움을 더할 뿐이다. 우리 스스로 긍정적인 경험을 간직하고 자신의 정서를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
“자신이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동안, 사실은 그것을 하기 싫다고 다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실행되지 않는 것이다.” 불행한 삶을 살다간 바루흐(Baruch, '축복받은 자'라는 뜻의 히브리어) 스피노자의 말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긍정의 힘을 외면한 채 막연하게 먼 곳에서만 힐링을 찾으려고 하는 현대인들을 경고하는 듯하다. 나를 위한 셀프 힐링은 아깝지 않다. 감정적 고통을 벗어날 수 있는 축복은 우리 가까이에 있다. 그것이 바로 긍정의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