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남 오빠에게 (어나더커버 특별판)
조남주 외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11월
평점 :
품절


 

헨릭 입센(Henrik Ibsen)의 희곡 《인형의 집》의 주인공인 로라가 인형처럼 길드는 삶을 거부한 지 13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내년이면 《인형의 집》 초연 140주년이 된다. 그렇다면 지금 로라의 딸들은 태어난 가정에서, 결혼한 가정에서, 혹은 직장에서, 넓게는 사회에서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을까.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사회적 역할이 크게 확대되고 있지만, 남성 중심적인 문화가 견고한 분야에선 여전히 여성을 차별하는 인습이 남아 있다. 여성은 동등한 존재로서가 아닌, ‘남성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라는 인식 역시 뿌리 깊게 남아 있기도 하다. 따라서 제도적인 측면에서 여성의 권리가 많이 신장하였지만, 여전히 남성보다 불평등한 위치에 놓여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러한 인식 구조는 남성 작가들의 문학 작품에 명백하게 드러난다. 문학 작품 속 여성은 남성 중심적인 사회의 희생양이 되어 온갖 수난과 역경을 그대로 감내하는 순종적인 모습으로 형상화되기도 한다. 결국, 가부장제에 순종하는 여성이 끝내 도달하게 되는 최종 목적지는 가정이다. 남성 작가들이 작품에서 그려낸 여성은 엄연히 존재하는 차별에 눈을 감고 있거나 남성 중심적 사고가 반영된 남성 작가의 분신으로 묘사된다. 남성 작가들의 작품에서 여성이 어떻게 그려지고 있는지 비평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는다면 문단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남성 작가들의 견고한 가부장적 인식은 쉽게 깨지지 않을 것이다.

 

《현남 오빠에게》(다산책방, 2017)에 수록된 7편의 단편 소설은 모두 ‘페미니즘’에 방점이 찍혀 있다. 그러나 소설 속 페미니즘은 한 가지 색이 아닌 각각 다른 빛깔을 띠고 있다. 소설집의 표제작인 조남주『현남 오빠에게』‘오빠가 여자의 삶을 알아?’라는 물음이 담겨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여주인공이 남자친구인 ‘강현남’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주인공은 현남의 청혼을 거절한다. 현남에게 보내는 편지 속에 그녀가 청혼을 거절하게 된 여러 가지 이유가 나와 있다. 편지에 남긴 여주인공의 구구절절한 사연은 여성 독자의 가슴을 먹먹해지게 한다. 그것이 우리나라 여성들이라면 한 번쯤 겪어본 익숙한 경험들이기 때문이다. 현남은 보호자 위치에 서서 여주인공을 대했고, 그러한 상황이 익숙해질수록 여주인공이 자기 인생을 결정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은 좁아진다. 그런 와중에 현남은 그녀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모른 채 청혼한다. 조남주는 일상 속에 뿌리 깊은 여성 문제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만든다.

 

그러나 이 ‘이야기’에 공감하지 않는 일부 남성 독자는 소설 속 남자 인물의 이름에 딴죽을 건다. 그들은 ‘현남’이 우리나라 남성을 비난하는 은어인 ‘한남’의 다른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작가는 공식 석상에서 그런 의도로 제목을 정하지 않았다고 분명하게 밝혔다. 하지만 이 소설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작가의 말에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한다. 우리는 종종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확정 편향’에 빠지기 쉽다. 그래서 어떤 현상이나 단어를 바라볼 때 논리적 · 분석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신념과 편견으로 판단해버린다.

 

최은영『당신의 평화』는 ‘아내’와 ‘엄마’로서의 삶만 살기를 강요하는 사회적 굴레가 얼마나 강력하게 여성들의 자아를 옥죄는가를 포착해낸 작품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유진은 ‘여자로서의 삶’을 억누르면서 살아가는 엄마 정순의 순종적인 모습을 지켜보면서 자란다. 유진은 가부장제에 순종하는 여성을 ‘현명한 아내’, ‘현명한 어머니’로 미화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낀다.

 

 

 “난 너희 어머니, 현명한 분이라고 생각해.” 그가 말했다.

“평생 시어머니 모시고 살면서 갈등도 없었고, 아버지 내조도 잘하셨고, 자식들 똑바르게 잘 키워냈고.”

“현명하다는 게 뭐지.” 유진이 물었다.

“가족을 위해서 자기를 앞세우지 않고, 희생하는 거. 나 좋게 봐.”

“엄만 행복하지 않았어.”

[중략]

 

그가 말했던 현명한 아내, 현명한 어머니란 무슨 의미였을까. 참고 참고 또 참는 사람, 남자가 하는 일에 토를 달지 않는 사람, 남자와 아이들에게 궁극의 편안함을 제공하는 사람. 자기 욕구를 헐어 남의 욕구를 채워주는 사람. 자기주장이 없거나 약하므로 갈등을 일으킬 일도 없는 사람…‥ 그가 ‘현명함’이라는 말을 입에 올릴 때마다 유진은 거부감을 느꼈다.  (『당신의 평화』 50~51쪽)

 

 

‘현명한 아내’, ‘현명한 어머니’는 가족의 공동체적 평화를 유지하게 만드는 존재이다. 가부장제는 여성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가부장제에서 여성은 자기희생을 도덕적 이상으로 간주했다. 가부장제 속 여성의 정체성에는 자아 개념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남편, 자식을 중요하게 여기는 상황에서 여성의 자아는 희미해진다. 따라서 여성은 자기 자신이 진정으로 누구인지 깨닫지 못하게 되고 그런 상황 속에서 사회경제적 지위를 얻는 것은 요원할 수밖에 없었다.

 

김이설『경년(更年)』은 문학 작품에서 좀처럼 다루지 않은 ‘자식을 둔 중년 여성의 고충’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작품이다. 주인공은 자기 아들이 또래 여학생들과 문란한 성관계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들의 행동에 고민한 주인공은 남편과 상의해보지만, 남편은 ‘아들에 먼저 접근한 여자아이들이 문제’라고 말하면서 아들을 두둔한다. 우리 사회에는 남편의 시선으로 청소년 연애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은 청소년의 성관계를 ‘일탈’로 보고, 그 일탈을 부추기는 원인 제공자로 여학생을 지목한다.

 

최정화『모든 것을 제자리에』는 앞서 소개된 단편들과 달리 상당히 난해하다. 이 작품에 나오는 여주인공 ‘율’은 주변 사람들의 시선에 맞춰 강박적인 자기 검열을 하는 여성의 모습을 상징한다. 도덕적 엄숙주의를 강조하는 사회는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면서 여성의 행동을 평가한다. 남성이 인정하는 도덕적 잣대는 여성 차별, 여성 혐오를 변호하는 배경이 된다. 손보미『이방인』여성 경찰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누아르 분위기의 소설이다. 작가의 변에 따르면 소설 설정과 관련된 여러 가지 제한을 두는 바람에 소설을 어렵게 썼다고 밝혔다. 그래서인지 이야기의 개연성이 매끄럽지 않다. 나는 구병모『하르피아이와 축제의 밤』이 『현남 오빠에게』 못지않은 문제작이라고 생각한다. 표제작에 대한 독자들의 지대한 관심이 높아서 그런 것일까. 구병모의 소설이 크게 주목받지 않은 듯하다. 인류가 만들어 낸 축제가 늘 즐겁고 유쾌한 건 아니다. 전쟁 승리에 도취한 전근대적 국가의 남성들은 여성을 '전리품'으로 취급했고, 향략적인 축제를 즐기기 위해 자신들을이 약탈한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이용했다. 심지어 약탈한 여성을 잔혹하게 죽이는 비인륜적인 축제도 있었다. 작가는 그런 '남성들만 누리는 축제'의 의미를 전복시켜 독자들, 특히 남성 독자를 불편하게 만든다. 김성중『화성의 아이』‘SF 페미니즘 소설’이다. 이 작품에 출산은 고귀한 생명의 탄생을 이끌어내는 가장 아름다운 행위로 묘사된다. 그러나 ‘출산의 아름다움’에 초점을 맞춘 소설의 결론은 비판의 여지가 있다. 왜냐하면 출산이 ‘아내 또는 엄마가 되기 위한 여성성’을 수행하기 위한 과정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일곱 명의 작가들은 단편소설을 통해 페미니즘과 소원한 일상 속의 다양한 여성들에게 ‘말하지 못했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여성 독자들은 이야기를 읽으면서 대리만족을 느끼고, 작품 속 여성들과 같은 감정을 경험하게 된다. 앞으로 이런 페미니즘 소설이 많이 나와야 한다. 그리고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작품에 주목하는 페미니즘 비평도 활발히 이루어져야 한다.

 

 


댓글(7)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삭매냐 2018-03-15 14: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7편 모두 스펙트럼이 달라서 읽을 만했다고 생각합니다.

비슷한 스타일의 작품이 또 나왔으면 좋겠네요.

cyrus 2018-03-16 16:10   좋아요 0 | URL
네, 페미니즘 소설이 많이 나와야 합니다. ‘페미니즘은 돈이 된다’고 말하면서 비아냥거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페미니즘 정착을 위해서라면 저는 기꺼이 돈을 지불할 수 있습니다.

아다모 2018-03-15 1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리해주신 글들을 읽어보니 이 작품 꼭 읽어보고 싶네요!^^

cyrus 2018-03-16 16:12   좋아요 0 | URL
읽으면 금방 이해할 수 있는 단편이 있고, 여러 번 읽어도 이해가 안 되는 단편도 있어요. 소설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저 스스로 의심했을 정도였어요. 그래서 이 책을 두 번 이상 읽었어요. ^^;;

2018-03-15 22: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3-16 16:16   좋아요 1 | URL
저는 어렸을 때 드라마에 여직원이 커피 타는 모습을 보고 저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대중매체에 묘사된 성차별을 접하게 되면 그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지 못해요. 오히려 편견으로 남게 되죠. 편견을 제거하려면 일상 속 성차별이 무엇이 있는지 알아봐야 합니다. 페미니즘을 공부하면 그동안 너무나 쉽게 당연하게 여긴 일상 속 성차별, 성희롱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어요.

2018-04-22 13: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드스타킹이 읽을 다섯 번째 책은 마리아 미즈(Maria Mies)《가부장제와 자본주의》(갈무리, 2014)입니다. 이틀 전인 월요일(3월 12일)에 첫 번째 모임을 가졌습니다. 이 날에 새로운 두 분이 스몰토크에 찾아오셨어요. 저는 이 날 사정이 있어서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책 1장까지 다 읽고, 토의 내용들을 정리했어요. 그런데 모임 당일에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기는 바람에 모임에 불참하게 됐어요. 그동안 준비했던 것들이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냥 묻히기가 너무 아까워서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1장에 대한 개인적 견해를 단상 형식으로 정리하려고 합니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첫 번째 모임 공식 후기는 내일 공개될 예정입니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는 1986년에 출간되었고, 1999년에 개정판이 나왔습니다. 한국어판에는 1986년 초판본 서문, 1999년 개정판 서문, 그리고 한국어판 서문이 실려 있습니다. 레드스타킹 멤버가 개정판 서문을 읽어보니 좋은 내용이 많았다고 말했습니다. 정말 그 분이 하신 말이 맞았습니다. 개정판 서문에 마리아 미즈가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를 집필하게 된 이유가 나옵니다. 먼저 한국어판 서문부터 살펴보죠.

 

 

 자본주의적 가부장제는 세계적 차원에서 이전보다 훨씬 더 고약하게 자연을 파괴하고 있다. 이런 폭력의 결과로는 기후 변화를 개선할 수 없고, 지구의 자원 고갈과 원자력으로 인한 오염을 회복시킬 수가 없음을 오늘날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자본주의적 가부장제 패러다임의 직접적인 결과이다. 이 패러다임은 끝없는 자본축적을 추구하는데, 이는 진보와 “좋은 삶”의 전제조건이라고 여겨지고 있다. (한국어판 서문, 5쪽)

 

 

 대다수 여성은 남성과의 평등을 우리의 주요 목표로 생각했다. 대부분의 페미니스트는 자본주의를 그렇게 비판하지 않았고, 가부장제만 주로 다루었다. 그들은 이 체제 내에서 남성과 평등해지기를 원했다. 그들은 남성이 우리 사회에서 갖고 있는 정치경제적 기회와 권력과 권위를 똑같이 갖기를 원했다.

그러나 오늘날 현실을 보면, 가난한 국가나 부자 국가나 상관없이 여성은 남성과 평등하지 않다.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으로 전혀 평등하지 않다. 왜 그런가? 몇몇 여성이 꼭대기까지 올라갔고, 국가나 정부의 수장이 되기도 한 것이 사실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들이 이런 목표에 닿을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지배적인 자본주의-가부장제 체제를 문제 삼지 않았기 때문이다. 권력구조에 여성이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여성이 많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이 체제에서 더 많은 권력을 갖게 된 여성도 여성에 대한 차별이나 성차별적 · 가부장적 문화를 거의 바꾸지 못했다. (한국어판 서문, 6쪽)

 

 

  맑스는 가사노동을 “재생산” 노동이라고 불렀다. 그에게 이 노동은 임금노동자의 “생산노동”과는 대조적으로 “잉여가치”를 생산하지 않는 노동이었다. 일부는 여성의 가사노동을 남성의 임금노동과 동등한 수준에 놓기 위해 “가사노동에 임금을” 요구하기도 했다. 나와 다른 이들은 이보다 한 걸음 더 나가서, 자본주의의 계속적인 자본축척과정을 위해서는 왜 이런 무급노동이 필수적인지를 연구했다.

 동시에 나는 식민지민과 자연이 같은 방식으로 취급되고 있음을 발견했다. 자본은 그들의 “생산”을 아주 적은 비용으로 전용했다. 예를 들어, 방글라데시나 멕시코 같은 국가에서 젊은 여성은 서구 시장에 공급할 의류 등을 세계에서 가장 싼 임금을 받고 생산했다. 이는 자본주의 초기부터 여성 노동이 남성의 노동보다 가치가 낮은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가능했다. 방글라데시처럼 가난한 국가에서도 여성 노동은 더 저렴하다. 이곳에서 여성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 임금을 받는다. 오늘날 이런 심한 착취는 폭력 및 가장 잔혹한 노동환경과 결합되어 있다. 이런 노동환경은 그들의 생명까지 위협한다. (한국어판 서문, 7쪽)

 

 

남성 중심 사회는 뿌리 깊은 가부장제 사회구조였습니다. 이 때문에 각종 차별이 생기고 여기에서 뿌리 깊은 여성 억압이 생기게 된 겁니다. 자본주의는 가족,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와 일치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자본주의 발달 이후 공 · 사 영역 분리의 성별화가 가속화되면서 남성의 삶은 더욱 공적인 것이 되었고 여성의 삶은 더욱 사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가정’과 ‘일’이 분리되는 성별 노동 분업 현상이 생겼다는 것이 마르크스주의자들의 해석입니다. 가정은 자본주의 사회의 안식처가 됩니다. 여성은 집 안에 머물면서 가사노동을 하게 되고, 남성에게 예속됩니다. 가부장제는 여성의 가사노동에 대한 비용을 줄이는 데서 시작됐습니다. 마르크스주의자 또는 마르크스 페미니스트들은 자본주의에 의해 태동된 가부장제가 남녀 성차별을 심화시킨다고 보고 생산과 노동, 가족 등 각 영역에서의 여성억압을 폭로했습니다. 반면에 남녀평등을 주장한 자유주의 페미니스트들은 가부장제를 비판했지만, 자본주의 비판에 소극적이었습니다.

 

식민지 통치를 경험한 아시아 대륙의 여성들의 삶은 여러 차원에서 고단합니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환경에서 집안 살림을 챙기고, 직장생활에도 충실해야 하며 일부 빈곤층 여성은 생계를 위해 타국에서 이주노동자로 지내면서 힘겨운 삶을 살아가기도 합니다.

 

미즈는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가사노동에 임금이 지불되지 않는 현실을 분석하고 비판합니다. 그녀는 자신의 연구가 자유주의 경제학과 마르크시즘 경제학 모두 넘어서는 도전이라고 밝혔습니다. 여성 억압을 ‘부차적 문제’로 보는 마르크시즘 역시 한계가 있었던 거죠.

 

 

 자본주의적 가부장제의 정치경제학에 대해 이론적으로 처음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은 자본주의 아래서 가사노동의 역할을 분석하면서였다. 이 운동은 1980년 무렵에 시작되었다. 가정에서 여성이 무급으로 하는 돌봄 노동과 양육이 남성 임금을 보조할 뿐만 아니라, 자본의 축적에도 기여한다는 점이 명백해졌다. 게다가 여성을 가정주부로 규정함으로서, 내 방식으로 말하면 ‘가정주부화’함으로써 가정에서 여성이 하는 무급 노동은 보이지 않는 것이 되었고, 국민총생산에도 기록하지 않으며, 자연스러운 것, 즉 ‘공짜’로 여겨졌다. 여성의 ‘가정주부화’가 가져온 것은 이것만이 아니다. 여성이 임금노동은 남성, 이른바 부양책임자를 보충하는 것으로 여겨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개정판 서문, 20쪽)

 

 

미즈는 무급 가사노동에 임하는 여성들을 가리켜 ‘가정주부화’라고 표현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무급 가사노동 담당자는 ‘주부’가 된 여성입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현실을 분해하여 연관성 없는 사건들, 시간들, 사회적 요소들의 조립으로 이해하려 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우리가 주변에서 인지하게 되는 물질적이고 비물질적인 모든 것들이 인식을 ‘구성’하는 것임을 강조함으로써 현실의식의 기반을 흔들어 놓으려고 했다. 세계의 물질성이 해체되면서 새로운 이상주의가 탄생했다. 이 이상주의는 모든 현실은 결국 가상일 뿐이라고 선언한다. 포스트모던 페미니즘은 자본주의적 가부장제의 체제를 극복한다는 여성운동의 오랜 목표를 포기했다. 이제 유일한 목표는 젠더 평등이었다. 이는 여성이 갈망하는 것은 남성과 동등한 몫을 차지하는 것일 뿐이지, 체제에 도전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였다. ‘체제’라는 용어도 현실성이 없는 것이라는 이유에서 폐기되었다. ‘주류’ 혹은 ‘주류화’에 참여하는 것이 새로운 목표가 되었다.

  이런 포스트모던 이데올로기는 1980년대와 1990년대의 신자유주의의 정치경제와 딱 어울리는 것이었다. 이를 추종했던 페미니스트는 ‘주변부에서 벗어나’ ‘주류’의 어딘가에 둥지를 틀 수 있기를 기대했다. (개정판 서문, 29~30쪽)

 

 

저는 이 내용에 언급된 ‘포스트모던 페미니즘’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되지 않았어요. ‘포스트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는 들어봤어요. ‘포스트 페미니즘’과 ‘포스트모던 페미니즘’이 같은 의미로 봐야 할까요? 일단은 저는 이 두 가지 용어를 같은 의미로 보려고 합니다.

 

 

 

 

 

 

 

 

 

 

 

 

 

 

 

 

 

* 소피아 포카 《포스트 페미니즘》(김영사, 2001)

 

 

 

《포스트 페미니즘》(김영사, 2001)에 따르면 포스트 페미니즘의 시작점은 1968년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로 보고 있습니다. 이 날 프랑스의 ‘정신분석과 정치’ 그룹 회원들은 주류 페미니즘을 거부하는 행진 시위를 벌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주류 페미니즘은 남녀평등만 주장하는 자유주의 페미니즘을 의미합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이 주목받기 시작한 1960년대 말부터 기존 페미니즘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형성되었습니다. 포스트 페미니스트들은 남녀 이분법을 강화시키는 자유주의 페미니즘이 여성의 지위를 축소한다고 비판했습니다. 미즈와 같은 학자들은 ‘포스트 페미니즘’이라는 용어가 1980년대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다고 말합니다. 미즈는 신자유주의 경제학에 종속된 포스트 페미니즘도 비판합니다.

 

 

 

 

 

 

 

 

 

 

 

 

 

 

 

 

 

 

 

*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여권의 옹호》(연암서가, 2014)

* 브누아트 그루 《올랭프 드 구주가 있었다》(마음산책, 2014)

 

 

 

1장(‘페미니즘이란?)은 페미니즘의 전반적인 역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메리 울스턴크래프트(Mary Wollstonecraft)는 여권신장의 당위성을 프랑스 혁명의 민주주의 이념에서 찾으려고 했습니다. 그녀는 《여권의 옹호》(연암서가, 2014)를 발표하여 여성해방 운동의 기치를 내걸었습니다. 프랑스의 올랭프 드 구주(Olympe de Gouges)는 혁명으로 일궈낸 자유와 평등이 남성에게만 해당되자 ‘여성인권선언문’을 발표했습니다.

 

 

 

 

 

 

 

 

 

 

 

 

 

 

 

 

 

* 정진희 엮음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여성해방론》(책갈피, 2015)

 

 

 

계몽주의 · 자유주의적 이념에 기반한 자유주의 페미니즘 외에도 마르크시즘 및 사회주의 페미니즘도 여성주의 운동에 무시하지 못할 파급을 가져왔습니다.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은 여성의 불평등이 지배계급인 남성, 종속계급인 여성을 층위로 하는 계급적 착취구조에 있다고 파악했으며 여성의 경제적 독립을 강조했습니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에 언급된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스트는 클라라 체트킨(Clara Zetkin)입니다.

 

1장은 페미니즘의 발전 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사실 이보다 더 중요한 내용이 있습니다.

 

 

페미니스트는 성폭력상담소, 학대받는 여성을 위한 보호소, 페미니스트의료센터 등의 자조 활동을 통해 도움을 주고자 했다. 여성이 남성의 물리적 심리적 폭력에 대한 두려움 속에 살고 있는 한 여성은 새로운 의식을 발전시킬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이 점차 분명해 졌다. 또한 이 차원에서는 법률 개혁이나 국가적 지원도 소용없다는 점도 분명해 졌다. 여성이 남성의 폭력을 피해 국가나 경찰의 보호를 요청하려고 해도, 남성이 가족이라는 사적인 영역에서 여성에게 가혹행위를 하는 것에 대해서는 국가가 간여하지 않음을 곧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1장 86쪽)

 

 

공공영역에 여성이 참여하고, 참정권을 얻고, 임금노동에 참여하는 것으로는 폭력에 기초한 것으로 보이는 가부장적 남녀관계의 기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성차별적 폭력 문제를 둘러싸고 운동이 진행되면서 개별 남성의 명백한 ‘사적’ 침해와 가족, 경제, 교육, 법, 국가, 대중매체, 정치 등 ‘문명사회’의 중심 제도와 ‘기둥들’ 사이의 조직적인 관련에 대한 여성의 인식도 높아졌다. 개인적으로 다양한 양상의 남성 폭력을 경험하면서 여성은 강간, 아내 구타, 희롱, 여성에 대한 성희롱, 성적 언어폭력 등이 일부 남성의 빗나간 언행이라기보다는 남성 체제, 혹은 가부장적인 남성의 여성에 대한 지배의 일부라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런 체제에서 노골적인 물리적 폭력과 간접적 혹은 구조적 폭력 모두 ‘여성이 제자리를 지키게 하는’ 수단으로 여전히 흔하게 사용되었다. (1장 87~88쪽)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페미니스트들이 ‘미투 운동’의 본질을 흐리게 한다고요. 과연 그럴까요? ‘미투 운동’에 동참하는 페미니스트들이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1장 86, 87~88쪽을 읽어보라고 말해주고 싶군요. 그동안 남성 중심 사회는 여성의 (성)폭력 문제를 외면했습니다. 미투 운동은 여성의 삶을 능멸하는 가부장적 남성의 지배 논리에 대한 분노와 저항입니다. 당신이 미투 운동을 ‘남성’을 공격하기 위한 여성의 집단적 감정 표출로 본다면 미투 운동의 본질을 잘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리먼 다이슨의 의도된 실수 - 과학과 인문학의 논쟁 그리고 미래
프리먼 다이슨 지음, 김학영 옮김 / 메디치미디어 / 2018년 2월
평점 :
절판


 

 

프리먼 다이슨(Freeman Dyson)은 다재다능한 과학자이다. 스물네 살에 그는 상대성 이론과 양자 역학을 양자 전기 역학적으로 통합한 ‘슈뢰딩거-다이슨 방정식’을 발표했다. 물리학에서 독보적인 업적을 남긴 다이슨은 우주까지 손을 뻗친다. 그는 인간이 거주하는 우주 문명을 상상했다. 다이슨은 ‘이름값’을 하는 과학자이다. 이름(Freeman)대로 다이슨은 자유로운 사고와 상상력으로 여러 분야를 두루 섭렵했다. 이 ‘자유로운 사람’의 지적 영역을 살펴보는 것처럼 흥미진진한 일이 또 있을까? 그리고 그것이 프리먼 다이슨이라면 더 무엇을 말하랴?

 

오늘날의 사회를 과거와 가장 크게 구별 짓는 요소는 정보화, 그리고 과학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이다. 이것들은 첨단으로 달려가는 우리의 물리적 조건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면에서도 큰 변화를 일으키며 여러 분야에서 기존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인식의 틀을 요구한다. 《프리먼 다이슨의 의도된 실수》(메디치미디어, 2018)는 과학, 역사, 사회학 등 여러 가지 분야의 책을 통해 살펴봄으로써 학문의 주류를 재고하고, 미래의 흐름을 보는 새로운 통찰을 제시한다. 이 책은 서평지에 발표된 서평들을 모은 것이다. 유전공학, 환경보호론, 독일 V2 로켓 개발자 베르너 폰 브라운(Wernher von Braun), 리처드 파인먼(Richard Feynman), ‘원자폭탄의 아버지’로 알려진 오펜하이머(Oppenheimer) 등을 주제 삼아 관련 서적들에 대한 풍성한 서평들을 담았다. 다이슨은 책을 평론하는 데만 머물지 않는다. 그는 책을 쓴 저자들의 주장을 반박하거나 책의 오류를 바로잡는다.

 

대부분 사람은 자신의 누적된 경험과 직관이라는 이름 아래에 진리를 사실로 믿으면서 살아간다. 어떤 의심이나 질문도 하지 않고 말이다. 《의도된 실수》는 인문학과 담을 쌓은 과학이 독보적 위치를 점한 상태에서 인류의 지혜를 제공하려는 상황을 비판한다. 인문학과 과학, 둘은 원래 하나였다. 다이슨은 과학, 역사, 철학이 별개의 분야가 나뉜 현실을 지적한다. 그의 지적은 과학과 인문학을 별개의 분야로 대하는 우리 사회에 그대로 통용된다. 전공자를 제외하고는 자연과학 전 분야에 대해 국내 지식인 사회는 대부분 무지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부는 사회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인문학을 알아서 뭐하느냐며 되레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우리는 전문가가 말하는 진실을 막연하게 믿는다. 다이슨은 그러한 착각과 오판이 어떻게 그리고 왜 일어나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자신이 치밀하다고 믿는 전문가들도 빠질 수 있는 인식의 함정에 관해 이야기한다. 먼저 그는 지구온난화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환경보호주의가 교조적 사고로 변질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지구환경이 나빠지고 있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런데 이 같은 상식을 뒤엎는 ‘회의적 환경주의자’들의 반론이 만만치 않다. 회의적 환경주의자들은 전 세계 주요 기관의 통계자료를 근거로 환경단체와 과학자들이 제기하는 환경위기가 과장돼 있으며, 경제발전에 따라 오히려 환경이 개선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환경 위기론을 믿는 사람들은 회의적 환경주의자를 ‘위험한 견해를 가진 환경의 적’으로 취급한다. 그러나 다이슨은 이들이 ‘열정적인 환경운동가’라고 말한다. 회의적 환경주의자들은 지구온난화 문제에만 편중된 대중의 인식이 사회적 불평등과 같은 현실적 위기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고 염려한다.

 

핵무기라는 가공할 대량살상무기에 대응하는 미사일방어체계의 존재 자체를 회의하는 다이슨의 주장이 눈길을 끈다. 그는 핵무기와 미사일방어체계가 ‘군사적 환상’이라고 말한다. ‘군사적 환상’이란 전쟁의 승리를 유도하는 군사 기술 및 무기를 찬양하는 경향을 의미한다. 군사적 환상에 빠진 군인들은 군사 기술이 초래하는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인지하지 못한다. 군인뿐만 아니라 투철한 안보 정신을 가진 시민들도 군사적 환상에 빠지기 쉽다. 흔히 자신을 ‘애국 보수’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미사일방어체계가 북한의 핵무기에 맞설 수 있는 최선의 전략 무기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그들의 주장은 비현실적으로 낙관적이다. 북한처럼 핵무기를 사랑하는 국가들은 방어 전략을 뛰어넘을 수 있는 핵무기를 만드는 데 전념할 것이다.

 

다이슨은 과학과 인문학 간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동시에 그동안 ‘정설’이라고 믿어왔던 것들도 무너뜨린다. 그는 나치 독일에 협력한 전범으로 알려진 베르너 폰 브라운을 옹호하기도 하며 <충돌하는 우주>라는 제목의 책을 써서 창조론과 흡사한 지구 탄생설을 주장한 임마누엘 벨리코프스키(Immanuel Velikovsky)의 상상력을 높이 평가한다. 벨리코프스키는 각종 신화 속 내용을 근거로 우주와 지구의 기원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려고 했으나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와 같은 회의주의자들은 그의 주장을 ‘사이비 학문’이라고 비판했다.

 

거침없이 나오는 그의 독창적인 주장은 비판을 부르기도 한다. 다이슨의 절친한 동료 과학자인 스티브 와인버그(Steven Weinberg), 행동경제학의 창시자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 등이 다이슨의 서평에 대해 비판적인 반응을 보였다. 다이슨의 서평을 읽은 일반 독자들도 그의 주장을 반박하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다이슨은 이 책에서 자신에게 보낸 전문가와 일반 독자들의 반박 편지 전부를 공개했다. 다이슨은 자신의 주장도 검증 대상이 될 수 있으며 언젠가는 자신의 확신이 ‘실수’로 분류될 수 있다고 말한다. 전문가들도 인간이므로 어리석은 판단을 내릴 수 있고, 문제점이 많은 학설을 끝까지 고집하는 경향이 있다. 전문가를 추종하는 대중은 그들의 착각조차 ‘진리’로 인정한다. 다이슨은 전문가와 대중이 공통으로 저지르는 ‘실수’를 극복하기 위해선 상반된 학설과 관점을 공평하게 검증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과정이 이루어지는 과학이야말로 ‘건강한 과학’이다. 따라서 다이슨은 자신의 주장을 ‘의도된 실수’라고 표현했다. 그는 자신의 주장이 ‘틀린 생각’으로 판명된다면 인류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할 것이고, 그러한 과정이 인류의 존엄성을 지키면서 학문을 발전시키는 길이 될 거로 확신한다. 인생 막바지(현재 그의 나이는 94세이다)에 동료와 독자들의 비판을 한 몸으로 받으면서 대담한 주장을 내세우는 노학자의 의도적인 글쓰기가 존경스럽다. 그런 점에서 《의도된 실수》는 독자들에게 의미 있는 조언을 주고 있다. 과학이든 철학이든 학문을 이해하는 인간은 겸손해야 한다는 것.

 

이 책에는 교양 과학에 관심 많은 독자에게 익숙한 인물과 책들이 나온다. 파인만의 일대기를 다룬 로렌스 크라우스《퀀텀맨》(승산, 2012)과 그래픽 노블 《파인만》(서해문집, 2011), 제임스 글릭《인포메이션》(동아시아, 2017) 등이 있다. 《의도된 실수》 말미에 다이슨이 서평에서 언급한 도서들을 정리한 목록(제목은 ‘프리먼 다이슨이 경의를 표한 책들’)이 있다. 이 도서목록이 독자 스스로 다이슨이 언급한 책들을 읽으려는 동기를 촉발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다. 하지만 독서 동기 촉발의 측면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프리먼 다이슨이 경의를 표한 책들’에서 국내 번역본 제목을 소개하지 않았다. 그리고 ‘역자 후기’와 색인이 없다.

 

책 130쪽에 메리 셸리의 소설 《프랑켄슈타인》 발표 연도를 ‘1817년’이라고 잘못 적혀 있는데, 정확한 발표 연도는 1818년이다. 이걸 다이슨의 실수로 봐야 하나, 아니면 책을 만든 출판사 편집자의 실수'인가?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삭매냐 2018-03-15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키피디아를 검색해 보니 <프랑켄슈타인>의 출판 연도
는 1818년 1월 1일이라고 되어 있네요.

하지만 다 쓴 건 1817년 4/5월이라고 하니 아마 약간의
착오가 있었던 게 아닐까요 :>

그나저나 19살 때, 이런 책을 썼다니 대단하네요 정말.

cyrus 2018-03-16 16:18   좋아요 0 | URL
소설이 최종적으로 다 마무리된 상태에서 정식으로 발표한 연도가 1818년일 것입니다. 메리 셸리의 어머니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도 그렇고, 아버지인 윌리엄 고드윈도 대단한 사람들이에요. ^^
 

 

 

 

지난주 목요일 대구는 하얀 눈으로 뒤덮었습니다. 폭설이 내린 이후로 사흘이 지난 지금, 대구는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3월인데 대구는 여름 날씨입니다. 이틀 전인 일요일도 날씨가 무척 좋았습니다.

 

레드스타킹 멤버들을 알게 된 이후로 요즘 저는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평소에 서점, 도서관, 헌책방을 전전하던 제가 처음으로 독립영화관에 가게 됐습니다. 대구 동성로에 독립영화관 오오극장이 있습니다. 곽병원 근처에 있어요. 오오극장 안에 커피 및 각종 음료, 술을 주문할 수 있는 삼삼다방이 있어요. 그래서 영화를 예매할 수 있고, 커피와 술을 주문하여 상영관 안에서 마실 수 있답니다. 이런 좋은 곳이 있었다니! 솔직히 저는 대구에 독립영화관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제가 책바보라서 진짜 바보예요. 오오극장에서 나와 경상감영공원 쪽으로 가면 레드스타킹 아지트이자 독서인들을 위한 안식처인 스몰토크가 있습니다.

 

 

 

 

 

지난 일요일(311) 오오극장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피의 연대기>김보람 감독님이 참석하는 관객과의 대화(GV)’가 진행되었습니다. 오후 2시 영화 상영 후 GV가 시작되었습니다. 김 감독님이 오오극장에 찾아온 건 두 번째입니다. 지난달에 이미 삼삼극장에서 GV가 진행된 적이 있었는데요, 저는 이날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GV 진행은 영화를 좋아하고, 영화 지식이 풍부한 레드스타킹 멤버가 맡았습니다.

 

<피의 연대기>여성의 월경, 즉 생리에 대한 모든 것을 솔직하게 보여준 영화입니다. 영화 제목의 피는 생리 혈을 의미합니다. 생리 혈. 이 단어를 듣자마자 기분 나쁘고, 불쾌한 기분이 드나요? 초경을 경험한 여성들은 생리를 한다는 것 자체를 창피하게 느꼈을 것입니다. 생리 혈이 새어나왔을까 걱정 안 해본 여성들은 없을 것입니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 생리를 부끄럽고 비밀스러운 것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생리가 여성들만의 영역이고 감추어야 한다는 고정관념 때문이죠. 그리고 생리는 당연히 몸의 현상인데, 부모나 학교는 이를 가르쳐주지 않았어요. 여성들은 생리에 대한 정확한 정보 없이 빨간 날을 경험합니다. 그래서 초경을 당황스러운 일로 인식하게 됩니다.

 

<피의 연대기>는 여성들마저 쉽게 공유하지 못한 생리를 공론의 장으로 드러낸 작품입니다. 영화는 생리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알려줄 뿐만 아니라 여성 운동과 생리대의 상관관계를 조명합니다. 무상으로 생리대와 탐폰을 공급하는 법안을 도입하자는 의견이 나오면 대부분 남성은 이러한 반응을 보입니다.

 

내가 낸 세금이 왜 여성들을 위해서 써야 되는 거죠?”

무상 생리대 정책이라니? 이거 빨갱이 정책 아닌가요?”

생리를 특권으로 여기는 여성들이 좋아할만한 정책이군요.”

 

무상 생리대 법안 도입뿐만 아니라 생리 휴가를 보장하는 법을 반대하는 남성들도 있어요. 이들은 무상 생리대 지급, 생리 휴가 도입을 찬성하는 여성들에게 메갈충이라고 부르면서 비난합니다. 그들은 무상 생리대, 생리 휴가가 여성들을 위한 특혜라고 주장합니다. 과연 그들의 말이 맞을까요?

 

 

 

 

 

 

 

 

 

 

 

 

 

 

 

 

 

 

* 김보람 생리 공감(행성B, 2018)

* 박이은실 《월경의 정치학(동녘, 2015)

* 글로리아 스타이넘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현실문화, 2002)

 

 

 

생리와 생리통 그리고 생리에 대해 불편한 시선을 보내는 사회 속에 살아가는 여성들의 심정을 이해한다면 생리가 특혜라고 말할 수 없어요. 생리는 여성만 경험할 수 있는 특혜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몸의 현상입니다. 그런데 남성 중심 사회는 여성의 생리를 기피했고, 생리 혈에 대한 불편함을 감추지 못했어요. 과거나 지금이나 생리의 자를 쉽게 입 밖으로 내지 못하고 있는 여성들이 있는데, 생리가 여성의 특권이라 말할 수 있을까요? 김 감독은 자신의 책 생리 공감(행성B, 2018)생리를 기피하는 문화가 여성을 억압하는 점을 날카롭게 짚어냈습니다.

 

 

생리는 몸의 일이다. 여성의 몸, 특별히 질 그리고 질에서 흘러나오는 피는 오랜 세월 금기시되었다. 말할 수 없는 것은 말하지 않는 것이 되고, 그것에 대한 경험은 공유되거나 기록되는 대신 잊히고 삭제된다. 이토록 오랜 시간 이 피를 금기시한 사회는 인구의 절반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린다. 방치했다. 몸에서 흘러나오는 자연스러운 피를 창피하고 부끄러운 일로 만들었고 그 피를 처리하는 데 들어가는 노동과 비용 그리고 고통은 모두 여성 개인의 몫으로 남겨 뒀다. (프롤로그, 9)

 

 

영화에 박이은실 님이 출연합니다. 박이은실 님은 예전에 월경의 정치학(동녘, 2015)을 펴낸 적이 있습니다. 김 감독님은 자신의 책에 월경의 정치학을 인용했습니다. 월경의 정치학생리를 남녀 모두 불편하게 만드는 금기로 규정하여 여성을 억압하게 만드는 인류 역사와 사회 구조를 분석한 책입니다. 이 책은 역사적 터부에 가려 언급이 금기시돼온 생리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보여줍니다.

 

글로리아 스타이넘(Gloria Steinem)남자가 월경을 한다면이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글을 통해 남성이 생리를 하는 세상을 상상했습니다. 그녀가 내린 결론은 이렇습니다. 그녀는 월경이 분명 부럽고도 자랑할 만한 남성적인 일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에 나오는 내용에 따르면 초경을 한 소년들은 드디어 남자가 되었다고 좋아합니다. 정부는 사회 발전에 헌신하는 남성을 위해서 생리대를 무료로 지급합니다. 종교인들은 남성이 흐르는 피가 죄를 씻어 내리는 신성한 반응이라고 말하고, 월경이 없는 여성들은 불결한 존재라고 규정합니다. 생리를 특혜라고 주장하는 분들이라면 아주 좋아할 만한 유토피아군요.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생리는 여자만 경험할 수 있습니다. 남성들은 여성의 생리를 부러워했던 걸까요? 남성 중심사회는 오랫동안 생리를 불결한 것, 수치스러운 것으로 여기게끔 했습니다.

 

<피의 연대기>는 생리대를 통해 여성들이 살고 있는 생리 기피 사회, 생리대의 역사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대기업이 만든 일회용 생리대만 선택하고 착용해야 하는 여성의 경험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영화의 연장선이라 할 수 있는 생리 공감에서는 생리를 안 할 권리에 대한 논의로 이어집니다. 저는 영화를 보기 전에 책을 먼저 읽었어요. 영화를 못 보신 분이라면 김 감독이 쓴 생리 공감을 읽으면 됩니다. 책에 영화 속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피의 연대기>생리 공감에 아쉬운 점이 있다면, 여성 장애인의 생리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점입니다. 생리를 경험하는 장애인 여성들만의 불편함이 분명 있을 것입니다. ‘비장애인 남성인 저는 장애인 여성들의 생리 경험을 잘 모르기 때문에 그 문제에 대해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습니다. 김 감독님도 여성 장애인의 생리 문제를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고 공감했지만, 여성 장애인의 생리 문제를 영화로 만들 능력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비장애인 여성인 자신이 여성 장애인의 생리 경험을 주제로 영화를 만든다면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생리하는 여성의 몸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 그것 또한 혐오예요. 생리는 몸이 변화하면서 생기는 현상이므로 건강한 생리를 위해 필요한 도움을 받는 건 당연한 인간의 권리입니다. 여성들은 생리를 혐오하는 문화에 반항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여성들은 생리를 있는 그대로, 당당하게 이야기해야 합니다.

 

 

 

 

 

Trivia

 

 

 

GV가 끝난 후에 감독님의 친필 사인을 받았습니다.

 

 

 

 

 

 

 

 

 

삼삼다방에 연회비 3만 원을 내면 영화 관련 도서들과 영화 DVD를 대여할 수 있습니다. ‘책 덕후인 제가 삼삼다방에 있는 책들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죠. 책 구경하다가 아우구스트 베벨(August Bebel)여성론(까치, 1990) 제본 판을 발견했어요. 저는 이 책을 가지고 있어요.

 

 

 


댓글(3) 먼댓글(0) 좋아요(3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tella.K 2018-03-13 1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캬~! 너는 남자면서 어떻게 이렇게까지 여성에 대해
지대하게 관심을 갖는지 감탄을 넘어 경의를 표하고 싶다.

그런 남자들이 30년 전이나 후나 꼭 있어.
30년 전엔 그럼 남자들 면도기 무상으로 지급하라고 해서
무산됐다는 얘기 있었는데 말야.
무상은 고사하고 싸게라도 팔았으면 좋겠다.
우리나라 생리대 고급화 전략을 쓰면서 값만 올려놨잖아.
생리대의 유해성은 아직 완전히 해결되지도 않았으면서.
네가 아는지 모르겠는데
일반 생리대가 또 점점 사라지고 있어.
울트라라고 얇고 흡수력이 좋은 게 매대를 점령하고 있지.
작년까지만 해도 반반 정돈데 지금은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어져 버렸더군.
내 말은, 지금 일반 생리대의 유해성이 아직도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울트라는 약품처리를 더했으면 더했지 덜 하지는 않았을 거 아냐?
그런데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그걸 할 수 없이 써야한다는 게 말이되니?
이런 전략을 쓰는 거 남자들이지 여자들일까?
다음 모임은 언제 가 될지 모르겠지만 기회되면 얘기 좀 해 봐봐.

cyrus 2018-03-14 12:12   좋아요 0 | URL
제가 지금은 ‘비혼주의자’이지만, 독신으로 산다고 해도 여성의 경험을 모르고 살아갈 수 없어요. 제가 자주 연락하고 만나는 사람들 대부분 남자라서 여자에 대해서 잘 몰라요... ㅎㅎㅎ 여자에 대해 잘 모를수록 여자에 대한 편견을 가지게 되고, 여성을 ‘혐오’하게 돼요.

남자인 제가 생리대를 얘기하면 ‘맨스플레인’이 될 수 있으니 간략하게 말할게요. 일회용 생리대를 거부하고 ‘생리컵’을 착용하는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해요. 생리컵 이외에도 ‘대안 생리대’가 아주 많아요. <생리 공감>에 다양한 대안 생리대와 생리컵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나와 있어요. ^^

북깨비 2020-06-12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 제목을 방금 처음 보고 맨 처음 든 생각이..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 남자 화장실 청소는 누가 할 것인가.. 제가 여지껏 실수로 문을 연 남자화장실이나 너무 급해서 들어간 (비어 있던) 남자 화장실이나 남녀공용 화장실이나 여자 화장실과는 달리 너무 지저분하고 냄새가 심해서 ㅠㅠ 결벽증이 약간 있는 저는 남자는 역시 월경이 없는 것이 낫지 않은가.. ^^;; 물론 그게 논점이 아니지만 책 제목을 본 순간 제일 먼저 머릿속을 스친 생각이라 끄적여 봅니다.
 
생리 공감 - 우리가 나누지 못한 빨간 날 이야기
김보람 지음 / 행성B(행성비) / 2018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남성에게 생리는 아주 낯설다. 남성들은 생리를 그 날’, ‘마술 등으로 부르며 부끄러운 것으로 취급한다. 어느 남성 종교인은 기저귀 찬 여자는 교회 강단에 설 수가 없어!’라고 말하기도 한다. 여성의 삶에서 생리는 천덕꾸러기다. 어떤 사람은 짜증을 내는 여성에게 너 오늘 그 날이지?’라며 놀리듯 묻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생리 중인 여성이 앉았던 자리에 앉지 않는다고 말한다. 생리를 바라보는 시각은 시대나 문화권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신성하지 못하거나, 불결하고, 더러운 것으로 인식한다. 심지어 여성 자신도 그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몸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인 경우가 있다. 건강한 여성이라면 누구나 생리를 한다. 그런데 생리는 함부로 말해선 안 되는 것, 추한 것으로 치부된다. 소녀들은 생리대를 사러 간 가게에서 남들이 볼세라 조심스레 검은 비닐봉지에 담아 나오기도 한다. 여성이라면 한 번쯤은 생리를 하지 않고 살 수는 없을까?’라고 생각해봤을 것이다.

 

 

 

 

 

 

여성의 몸과 생리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 <피의 연대기>(2018)를 연출한 김보람 감독생리는 불결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신체 현상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생리할 때 일어나는 몸의 변화를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생리하는 내 몸을 자랑스러워하자는 게 <피의 연대기> 제작의 취지이다. 김보람 감독은 자신의 책 생리 공감에 자신을 여성으로 받아들이게 된 생리 경험아무렇지도 않게얘기를 한다. 저자는 이런 과정을 통해 자기 몸에 집중하게 되며 스스로 몸과의 관계 맺기를 배워 가는 소중한 기회를 얻는다. 생리 공감은 고대부터 숨겨져 온 비밀스러운 빨간 날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저자는 피 흘리는 존재로 살아간 피 자매를 음지에서 해방해주려고 한다.

 

생리 공감을 읽지 않았더라면 1년에 여성이 흘리는 피의 양이 500밀리리터 콜라 한 병정도이며, 평생 흘리는 피의 양이 우리 몸 전체 혈액의 3배 정도라는 사실을 모르고 살았을 것이다. 피임약은 여성 해방을 촉진한 가장 큰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그렇지만 실질적으로 여성해방을 이룩한 것은 피임약이 아니라 생리대와 탐폰이다. 일회용 생리대와 탐폰의 등장은 피임약만큼이나 여성에게는 해방그 자체였다. 생리대는 여성의 활동성을 높여주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그러나 여성을 열등한 존재로 인식하는 남성들은 생리대를 여자들만 차는 기저귀정도로 생각한다. 그깟 생리대나 탐폰이 뭐 그리 대단하냐고 생각하기 쉽지만, 여성의 생리를 생각해보면 생리대의 위력을 깨닫게 된다.

 

여성들은 일회용 생리대를 사용하지만, 그것에 대해 알려진 것은 의외로 적다. 정확한 원료와 제조법 등은 대기업들의 제조 비밀이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모두 일회용 생리대를 사용했다. 그러나 일회용 생리대는 많은 문제점이 있다. 시중에 판매된 생리대에서 발암 물질과 피부 자극을 유발하는 성분들이 검출되었다. 생리대 기업의 광고는 표백된 하얀색을 여성의 순결, 즉 깨끗함과 연결하면서 위험성을 보지 못하게 한다. 대량생산되는 생리대를 통해 큰 이윤을 얻는 남성 중심의 경제 체제가 여성의 몸을 관리하고 있고, 여성의 건강을 위협한다.

 

이제 피 자매들은 일회용 생리대의 편리함만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녀들은 자신의 몸에 맞는 생리대를 착용하고 싶어 한다. 몸이 원하는 생리대를 착용하는 것은 여성 건강에 매우 중요하다. 생리 공감은 가르치거나 설득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오히려 여성 독자 스스로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 난 지금까지 어떻게 생리를 하면서 살아왔지?’라는 생각을 하도록 만든다. 남성 독자는 생리 공감을 읽으면서 직접 경험하지 못하는 생리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다. 그러면 생리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무지에서 벗어나야 함을 알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여성들이 생리의 소중함과 생리대의 위험성을 드러내놓고 말하지 못했던 것은 월경은 더럽고 창피하며 말할 수 없는 것이라는 압력 속에서 침묵을 강요당해왔기 때문이다.

 

생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은 자신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긍정하고 즐길 수 있는 첫걸음이다. 여전히 생리를 폄하하는 몇몇 남성들이 있다. 그들은 무상 생리대 보급과 생리 휴가를 여성을 위한 특혜라고 주장한다. 그들의 논리대로 생리가 여성의 특혜라면 왜 생리를 불결한 것으로 취급하고 생리하는 여성을 무시하는가?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속담이 틀린 것 같지는 않다.

 


댓글(9) 먼댓글(0) 좋아요(3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yo 2018-03-13 1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이러스님 페미니스트 되는 소리가 서울까지 들립니다. 멋쟁이.

cyrus 2018-03-13 17:24   좋아요 0 | URL
레드스타킹을 회사라고 하면, 전 신입 사원이에요. 제가 이런 말을 하니까 멤버들이 저보고 ‘인턴’이라고 하더군요. 아직 모르는 게 많고 배워야 할 게 많습니다. 대구에 오시면 저한테 댓글로 말씀해주세요. 매주 월요일에 독서모임이 있어요. 그 날에 맞춰 syo님을 특별손님 자격으로 모임에 초대하겠습니다. ^^

syo 2018-03-13 17:31   좋아요 0 | URL
ㅎㄷㄷ.... 무섭다...

2018-03-13 16: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3-13 17:27   좋아요 0 | URL
어떤 사람은 생리를 남성의 몽정과 동등하게 보더군요. 남성의 몽정은 성적 쾌감이 느껴야 나오는 신체 현상이죠. 몽정을 생리와 비슷하다고 주장하는 건 무식한 소리입니다. 이렇듯 생리를 잘 모르는 남자들이 많습니다.

stella.K 2018-03-13 1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여기에 더 자세히 썼구나.ㅋ
블로그에라도 여성의 생리와 미투에 대해서 시끄러울 정도로
얘기를 더 많이 해야하는데...
여긴 너무 점잖은 것 같아.ㅠ

cyrus 2018-03-14 12:17   좋아요 0 | URL
책을 읽으면서 페미니즘과 여성 문제를 이해하는 것, 직접 사람들을 만나면서 페미니즘과 여성 문제를 이해하는 것. 두 가지 상황을 비교하면 차이점이 많아요. 독서모임에 참석하거나 페미니즘 관련 강연을 들어보면 책에 나오는 페미니즘 지식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돼요. 페미니즘과 여성 운동에 대한 폭넓은 논의가 진행되려면 결국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봐야 해요. 알라딘 같은 온라인 공간은 논의가 진행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 아니에요. 한 번 토의가 시작되면 ‘진흙탕’으로 변하지요.. ㅎㅎㅎ

2018-03-14 10: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3-14 12:19   좋아요 0 | URL
제 글을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글을 인용하셔도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