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먼 다이슨의 의도된 실수 - 과학과 인문학의 논쟁 그리고 미래
프리먼 다이슨 지음, 김학영 옮김 / 메디치미디어 / 2018년 2월
평점 :
절판


 

 

프리먼 다이슨(Freeman Dyson)은 다재다능한 과학자이다. 스물네 살에 그는 상대성 이론과 양자 역학을 양자 전기 역학적으로 통합한 ‘슈뢰딩거-다이슨 방정식’을 발표했다. 물리학에서 독보적인 업적을 남긴 다이슨은 우주까지 손을 뻗친다. 그는 인간이 거주하는 우주 문명을 상상했다. 다이슨은 ‘이름값’을 하는 과학자이다. 이름(Freeman)대로 다이슨은 자유로운 사고와 상상력으로 여러 분야를 두루 섭렵했다. 이 ‘자유로운 사람’의 지적 영역을 살펴보는 것처럼 흥미진진한 일이 또 있을까? 그리고 그것이 프리먼 다이슨이라면 더 무엇을 말하랴?

 

오늘날의 사회를 과거와 가장 크게 구별 짓는 요소는 정보화, 그리고 과학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이다. 이것들은 첨단으로 달려가는 우리의 물리적 조건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면에서도 큰 변화를 일으키며 여러 분야에서 기존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인식의 틀을 요구한다. 《프리먼 다이슨의 의도된 실수》(메디치미디어, 2018)는 과학, 역사, 사회학 등 여러 가지 분야의 책을 통해 살펴봄으로써 학문의 주류를 재고하고, 미래의 흐름을 보는 새로운 통찰을 제시한다. 이 책은 서평지에 발표된 서평들을 모은 것이다. 유전공학, 환경보호론, 독일 V2 로켓 개발자 베르너 폰 브라운(Wernher von Braun), 리처드 파인먼(Richard Feynman), ‘원자폭탄의 아버지’로 알려진 오펜하이머(Oppenheimer) 등을 주제 삼아 관련 서적들에 대한 풍성한 서평들을 담았다. 다이슨은 책을 평론하는 데만 머물지 않는다. 그는 책을 쓴 저자들의 주장을 반박하거나 책의 오류를 바로잡는다.

 

대부분 사람은 자신의 누적된 경험과 직관이라는 이름 아래에 진리를 사실로 믿으면서 살아간다. 어떤 의심이나 질문도 하지 않고 말이다. 《의도된 실수》는 인문학과 담을 쌓은 과학이 독보적 위치를 점한 상태에서 인류의 지혜를 제공하려는 상황을 비판한다. 인문학과 과학, 둘은 원래 하나였다. 다이슨은 과학, 역사, 철학이 별개의 분야가 나뉜 현실을 지적한다. 그의 지적은 과학과 인문학을 별개의 분야로 대하는 우리 사회에 그대로 통용된다. 전공자를 제외하고는 자연과학 전 분야에 대해 국내 지식인 사회는 대부분 무지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부는 사회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인문학을 알아서 뭐하느냐며 되레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우리는 전문가가 말하는 진실을 막연하게 믿는다. 다이슨은 그러한 착각과 오판이 어떻게 그리고 왜 일어나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자신이 치밀하다고 믿는 전문가들도 빠질 수 있는 인식의 함정에 관해 이야기한다. 먼저 그는 지구온난화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환경보호주의가 교조적 사고로 변질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지구환경이 나빠지고 있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런데 이 같은 상식을 뒤엎는 ‘회의적 환경주의자’들의 반론이 만만치 않다. 회의적 환경주의자들은 전 세계 주요 기관의 통계자료를 근거로 환경단체와 과학자들이 제기하는 환경위기가 과장돼 있으며, 경제발전에 따라 오히려 환경이 개선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환경 위기론을 믿는 사람들은 회의적 환경주의자를 ‘위험한 견해를 가진 환경의 적’으로 취급한다. 그러나 다이슨은 이들이 ‘열정적인 환경운동가’라고 말한다. 회의적 환경주의자들은 지구온난화 문제에만 편중된 대중의 인식이 사회적 불평등과 같은 현실적 위기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고 염려한다.

 

핵무기라는 가공할 대량살상무기에 대응하는 미사일방어체계의 존재 자체를 회의하는 다이슨의 주장이 눈길을 끈다. 그는 핵무기와 미사일방어체계가 ‘군사적 환상’이라고 말한다. ‘군사적 환상’이란 전쟁의 승리를 유도하는 군사 기술 및 무기를 찬양하는 경향을 의미한다. 군사적 환상에 빠진 군인들은 군사 기술이 초래하는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인지하지 못한다. 군인뿐만 아니라 투철한 안보 정신을 가진 시민들도 군사적 환상에 빠지기 쉽다. 흔히 자신을 ‘애국 보수’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미사일방어체계가 북한의 핵무기에 맞설 수 있는 최선의 전략 무기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그들의 주장은 비현실적으로 낙관적이다. 북한처럼 핵무기를 사랑하는 국가들은 방어 전략을 뛰어넘을 수 있는 핵무기를 만드는 데 전념할 것이다.

 

다이슨은 과학과 인문학 간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동시에 그동안 ‘정설’이라고 믿어왔던 것들도 무너뜨린다. 그는 나치 독일에 협력한 전범으로 알려진 베르너 폰 브라운을 옹호하기도 하며 <충돌하는 우주>라는 제목의 책을 써서 창조론과 흡사한 지구 탄생설을 주장한 임마누엘 벨리코프스키(Immanuel Velikovsky)의 상상력을 높이 평가한다. 벨리코프스키는 각종 신화 속 내용을 근거로 우주와 지구의 기원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려고 했으나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와 같은 회의주의자들은 그의 주장을 ‘사이비 학문’이라고 비판했다.

 

거침없이 나오는 그의 독창적인 주장은 비판을 부르기도 한다. 다이슨의 절친한 동료 과학자인 스티브 와인버그(Steven Weinberg), 행동경제학의 창시자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 등이 다이슨의 서평에 대해 비판적인 반응을 보였다. 다이슨의 서평을 읽은 일반 독자들도 그의 주장을 반박하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다이슨은 이 책에서 자신에게 보낸 전문가와 일반 독자들의 반박 편지 전부를 공개했다. 다이슨은 자신의 주장도 검증 대상이 될 수 있으며 언젠가는 자신의 확신이 ‘실수’로 분류될 수 있다고 말한다. 전문가들도 인간이므로 어리석은 판단을 내릴 수 있고, 문제점이 많은 학설을 끝까지 고집하는 경향이 있다. 전문가를 추종하는 대중은 그들의 착각조차 ‘진리’로 인정한다. 다이슨은 전문가와 대중이 공통으로 저지르는 ‘실수’를 극복하기 위해선 상반된 학설과 관점을 공평하게 검증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과정이 이루어지는 과학이야말로 ‘건강한 과학’이다. 따라서 다이슨은 자신의 주장을 ‘의도된 실수’라고 표현했다. 그는 자신의 주장이 ‘틀린 생각’으로 판명된다면 인류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할 것이고, 그러한 과정이 인류의 존엄성을 지키면서 학문을 발전시키는 길이 될 거로 확신한다. 인생 막바지(현재 그의 나이는 94세이다)에 동료와 독자들의 비판을 한 몸으로 받으면서 대담한 주장을 내세우는 노학자의 의도적인 글쓰기가 존경스럽다. 그런 점에서 《의도된 실수》는 독자들에게 의미 있는 조언을 주고 있다. 과학이든 철학이든 학문을 이해하는 인간은 겸손해야 한다는 것.

 

이 책에는 교양 과학에 관심 많은 독자에게 익숙한 인물과 책들이 나온다. 파인만의 일대기를 다룬 로렌스 크라우스《퀀텀맨》(승산, 2012)과 그래픽 노블 《파인만》(서해문집, 2011), 제임스 글릭《인포메이션》(동아시아, 2017) 등이 있다. 《의도된 실수》 말미에 다이슨이 서평에서 언급한 도서들을 정리한 목록(제목은 ‘프리먼 다이슨이 경의를 표한 책들’)이 있다. 이 도서목록이 독자 스스로 다이슨이 언급한 책들을 읽으려는 동기를 촉발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다. 하지만 독서 동기 촉발의 측면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프리먼 다이슨이 경의를 표한 책들’에서 국내 번역본 제목을 소개하지 않았다. 그리고 ‘역자 후기’와 색인이 없다.

 

책 130쪽에 메리 셸리의 소설 《프랑켄슈타인》 발표 연도를 ‘1817년’이라고 잘못 적혀 있는데, 정확한 발표 연도는 1818년이다. 이걸 다이슨의 실수로 봐야 하나, 아니면 책을 만든 출판사 편집자의 실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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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8-03-15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키피디아를 검색해 보니 <프랑켄슈타인>의 출판 연도
는 1818년 1월 1일이라고 되어 있네요.

하지만 다 쓴 건 1817년 4/5월이라고 하니 아마 약간의
착오가 있었던 게 아닐까요 :>

그나저나 19살 때, 이런 책을 썼다니 대단하네요 정말.

cyrus 2018-03-16 16:18   좋아요 0 | URL
소설이 최종적으로 다 마무리된 상태에서 정식으로 발표한 연도가 1818년일 것입니다. 메리 셸리의 어머니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도 그렇고, 아버지인 윌리엄 고드윈도 대단한 사람들이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