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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리 공감 - 우리가 나누지 못한 빨간 날 이야기
김보람 지음 / 행성B(행성비) / 2018년 2월
평점 :
남성에게 ‘생리’는 아주 낯설다. 남성들은 생리를 ‘그 날’, ‘마술’ 등으로 부르며 부끄러운 것으로 취급한다. 어느 남성 종교인은 ‘기저귀 찬 여자는 교회 강단에 설 수가 없어!’라고 말하기도 한다. 여성의 삶에서 생리는 천덕꾸러기다. 어떤 사람은 짜증을 내는 여성에게 ‘너 오늘 그 날이지?’라며 놀리듯 묻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생리 중인 여성이 앉았던 자리에 앉지 않는다고 말한다. 생리를 바라보는 시각은 시대나 문화권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신성하지 못하거나, 불결하고, 더러운 것으로 인식한다. 심지어 여성 자신도 그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몸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인 경우가 있다. 건강한 여성이라면 누구나 생리를 한다. 그런데 생리는 함부로 말해선 안 되는 것, 추한 것으로 치부된다. 소녀들은 생리대를 사러 간 가게에서 남들이 볼세라 조심스레 검은 비닐봉지에 담아 나오기도 한다. 여성이라면 한 번쯤은 ‘생리를 하지 않고 살 수는 없을까?’라고 생각해봤을 것이다.
여성의 몸과 생리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 <피의 연대기>(2018)를 연출한 김보람 감독은 “생리는 불결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신체 현상”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생리할 때 일어나는 몸의 변화를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생리하는 내 몸을 자랑스러워하자는 게 <피의 연대기> 제작의 취지이다. 김보람 감독은 자신의 책 《생리 공감》에 자신을 여성으로 받아들이게 된 ‘생리 경험’을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를 한다. 저자는 이런 과정을 통해 자기 몸에 집중하게 되며 스스로 몸과의 관계 맺기를 배워 가는 소중한 기회를 얻는다. 《생리 공감》은 고대부터 숨겨져 온 ‘비밀스러운 빨간 날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저자는 ‘피 흘리는 존재’로 살아간 ‘피 자매’를 음지에서 해방해주려고 한다.
《생리 공감》을 읽지 않았더라면 1년에 여성이 흘리는 피의 양이 ‘500밀리리터 콜라 한 병’ 정도이며, 평생 흘리는 피의 양이 우리 몸 전체 혈액의 3배 정도라는 사실을 모르고 살았을 것이다. 피임약은 여성 해방을 촉진한 가장 큰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그렇지만 실질적으로 여성해방을 이룩한 것은 피임약이 아니라 생리대와 탐폰이다. 일회용 생리대와 탐폰의 등장은 피임약만큼이나 여성에게는 ‘해방’ 그 자체였다. 생리대는 여성의 활동성을 높여주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그러나 여성을 열등한 존재로 인식하는 남성들은 생리대를 ‘여자들만 차는 기저귀’ 정도로 생각한다. 그깟 생리대나 탐폰이 뭐 그리 대단하냐고 생각하기 쉽지만, 여성의 생리를 생각해보면 생리대의 위력을 깨닫게 된다.
여성들은 일회용 생리대를 사용하지만, 그것에 대해 알려진 것은 의외로 적다. 정확한 원료와 제조법 등은 대기업들의 ‘제조 비밀’이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모두 일회용 생리대를 사용했다. 그러나 일회용 생리대는 많은 문제점이 있다. 시중에 판매된 생리대에서 발암 물질과 피부 자극을 유발하는 성분들이 검출되었다. 생리대 기업의 광고는 표백된 하얀색을 여성의 순결, 즉 깨끗함과 연결하면서 위험성을 보지 못하게 한다. 대량생산되는 생리대를 통해 큰 이윤을 얻는 남성 중심의 경제 체제가 여성의 몸을 ‘관리’하고 있고, 여성의 건강을 위협한다.
이제 ‘피 자매’들은 일회용 생리대의 편리함만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녀들은 자신의 몸에 맞는 생리대를 착용하고 싶어 한다. 몸이 원하는 생리대를 착용하는 것은 여성 건강에 매우 중요하다. 《생리 공감》은 가르치거나 설득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오히려 여성 독자 스스로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 ‘난 지금까지 어떻게 생리를 하면서 살아왔지?’라는 생각을 하도록 만든다. 남성 독자는 《생리 공감》을 읽으면서 직접 경험하지 못하는 생리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다. 그러면 생리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무지에서 벗어나야 함을 알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여성들이 생리의 소중함과 생리대의 위험성을 드러내놓고 말하지 못했던 것은 ‘월경은 더럽고 창피하며 말할 수 없는 것’이라는 압력 속에서 침묵을 강요당해왔기 때문이다.
생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은 자신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긍정하고 즐길 수 있는 첫걸음이다. 여전히 생리를 폄하하는 몇몇 남성들이 있다. 그들은 무상 생리대 보급과 생리 휴가를 ‘여성을 위한 특혜’라고 주장한다. 그들의 논리대로 생리가 여성의 특혜라면 왜 생리를 불결한 것으로 취급하고 생리하는 여성을 무시하는가?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속담이 틀린 것 같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