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 무법자 - 남자, 여자 그리고 우리에 관하여
케이트 본스타인 지음, 조은혜 옮김 / 바다출판사 / 2015년 3월
평점 :
절판


 

 

 

만화영화 <마징가 Z>에 나오는 아수라 백작은 반은 남자, 반은 여자 얼굴을 가진 악당이다. (그녀)의 모습은 자웅동체에 가깝다. 아수라 백작은 상황에 따라 유리한 얼굴을 들이민다. 자웅동체는 그리스 신화에도 등장한다. 전령의 신 헤르메스와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 사이에 태어난 헤르마프로디토스. 플라톤향연에서 고대 그리스의 비극 작가 아리스토파네스가 언급한 자웅동체를 인용한다. 플라톤에 따르면 태초에 인간의 성()은 두 개가 아니라 세 개였다고 한다. 여자와 남자, 그리고 이 둘이 합쳐진 자웅동체. 가장 완벽한 인간의 원형인 자웅동체는 신의 질투를 받아 반으로 분리된다.

 

강한 남자’, ‘예쁜 여자젠더 이분법(Binary gender) 사회가 만들어낸 전통적인 성적 규범이다. 이 사회에서 예쁜 남자강한 여자는 괴물 취급을 받았다. 고정된 남성성과 여성성을 강조하는 성적 규범이 무너지면서 남성 같은 여성’, ‘여성 같은 남성이 주목받기 시작한다. 여성과 남성의 역할에 대해 자유롭고 열린 사고로 양성(兩性)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남성이나 여성에 갇혀 있기보다는 필요하다면 다른 성의 장점을 받아들여 인생을 더욱 자유롭게 살겠다는 것이 바이섹슈얼(Bisexual, 양성애자)의 생각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아직 트랜스섹슈얼(Transsexual)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다. 트랜스섹슈얼과 트랜스젠더(Transgender). 거의 같은 뜻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여성학 및 퀴어 이론(Queer theory)에서는 두 단어의 의미를 구분한다. 트랜스섹슈얼은 성전환을 위한 의료 조치를 받고 싶은 사람 혹은 의료 조치를 받는 사람을 가리킨다. 흔히 수술을 통해 완전히 성전환한 사람을 트랜스젠더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의료 조치를 받지 않고 생물학적 성별을 거부하는 사람도 트랜스젠더에 포함된다. 이런 사람들은 이성의 옷을 입는 크로스드레서(Crossdresser)로 지내기도 한다.

 

이성애자가 많은 사회에서 게이, 레즈비언을 비롯한 성 소수자들에게는 수많은 편견이 뒤따른다. 그 모든 것을 감수하고 성 소수자들은 조심스레 벽장에 나온다. 그들은 조금 다른 삶을 선택하는 것이다. 성 소수자들에게 그 선택은 어떤 의미일까. 미국 성 소수자 운동을 주도한 레즈비언 페미니스트이자 MTF 트랜스젠더(male-to female transgender, 생물학적 성별은 남성이지만 성 정체성은 여성인 사람)케이트 본스타인젠더 무법자(바다출판사, 2015)는 독자들을 향해 도발적으로 묻는다. “왜 성 소수자는 남성’, ‘여성이라는 젠더 체제 중 하나만을 선택해야 하는가?” 또한,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왜 사람들은 젠더 체제를 포기하지 못할까?”

 

그녀는 젠더 체제를 해체하기 위해 젠더 무법자(Gender Outlaw)’가 되라고 말한다. 젠더 무법자는 젠더 없는 삶을 산다. 젠더 무법자는 남성또는 여성이 되는 것을 거부한다. 틀에 박힌 젠더 이분법에 억지로 맞추지 않는다. 젠더 무법자의 성 정체성은 유동적이다.

 

 

젠더 유동성은 자신이 무얼 하는지 인식하면서 길든 짧든, 어떤 변화를 겪든 간에 자유롭게 한 성별 아니면 무한한 젠더 중 여럿이 될 수 있는 능력이다. 젠더 유동성은 젠더의 규칙이나 경계 따위를 모른다. (92)

 

 

젠더 체제의 경직성은 성 소수자의 다양한 관계 맺기를 부정하고, 생물학적 여성과 남성의 결합만을 인정하는 문화의 편협함은 성 소수자의 삶을 불안하게 한다. 그녀는 젠더 없는 삶을 인정하지 않고 한쪽 성별(남성)이 또 다른 성별(여성)을 억압하는 젠더 체제를 저격한다. 특히 남성 특권은 젠더 체제를 지탱해주는 교활한 권력이다. 남성이 이 특권을 자발적으로 포기한다면 남성과 여성 간의 불균형한 역학 관계가 무너진다. 젠더 체제를 비판하는 저자의 입장은 여성 억압의 근본 원인을 탐구하여 여성을 억압하는 사회 구조 자체를 전복하려는 급진적 페미니즘과 닿아 있다.

 

젠더 무법자는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에 나온 퀴어 이론의 고전이지만, 개인의 젠더 선택을 지지하고, 젠더 체제를 허물어뜨리는 유희적 특성을 가진 대안으로 사도마조히즘(Sadomasochism)을 내세운 저자의 입장은 지금 봐도 급진적이다. 그래서 트랜스섹슈얼을 비판하는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은 여성 권리보다 성 소수자 권리 신장에 더 초점을 맞춘 본스타인의 여성 운동을 비판한다.[1] 그들의 공세에 맞서는 본스타인은 트랜스섹슈얼의 여성 운동을 배제하는 페미니스트를 젠더 체제를 유지하는 데 얽매인 분리주의자라고 응수한다. 젠더 무법자7장은 본스타인이 직접 쓴 퀴어 연극작품 숨겨진 아, 젠더이다.

 

성 정체성이 다르다는 이유로 개인의 권리나 능력이 억압받아서는 안 된다. 자신의 삶을 결정하고,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권리는 젠더 체제에 익숙한 이성애자가 독점한 것이 아니다. LGBT(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 역시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을 가지고 새로운 삶을 선택할 수 있으며 가슴을 울렁이게 하는 누군가를 사랑할 권리가 있다. 젠더 이분법은 절대로 바뀔 수 없는 체제라고 믿는 사람들, LGBT비정상적인 변태라고 믿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1] 쉴라 제프리스 래디컬 페미니즘(열다북스,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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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여자가 만든 치즈를 먹고 나서 배탈이 났다. 저 여자는 치즈에 사람을 해치는 마술을 부렸다. 저 여자는 분명 사악한 마녀다.”

 

이것은 황당한 이야기가 아니다. 치즈를 만든 여성을 마녀로 고발한 사람의 증언이다. 마녀로 고발된 여성이 마녀재판에 회부되면 무조건 죽게 된다. 고발 진술을 뒷받침할만한 증거가 전혀 없는데도 무고한 여성은 항변조차 하지 못한 채 유죄 판결을 받는다. 15세기부터 18세기 말까지 유럽에서 수만 명 목숨을 앗아간 마녀사냥은 종교적인 이유에서 시작되었다. 유럽인들은 마녀가 기독교 신앙을 버리고 악마를 섬기는 대가로 마력을 받아 인간 사회에 재앙을 불러오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마녀사냥은 종교적인 것이 아닌 다른 이유로 자행되었다.

 

 

 

 

 

 

 

 

 

 

 

 

 

 

 

 

 

 

 

* [절판] 브라이언 P. 르박 《유럽의 마녀사냥》 (소나무, 2003)

* [품절] 카를로 진즈부르그 《마녀와 베난단티의 밤의 전투》 (길, 2004)

* 쥘 미슐레 《마녀》 (봄아필, 2012)   

 

 

 

사람들은 두려운 상황에 놓이게 되면 불안을 해소하는 전략을 마련한다. 괜히 소리를 지르거나 무작정 폭력을 행사한다. 만일 불안을 해소하려 한다면 우선 당면한 사태에 대한 충분한 정보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불안을 일으키는 대상(또는 원인)이 파악되지 않고, 이 두려운 상황이 언제까지 지속할지도 예측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이때 흔히 나타나는 불안 해소 전략이 희생양(scapegoat)을 만드는 법이다. 공포를 분노로 바꿔 희생양을 향해 분출시킴으로써 공포의 긴장에서 벗어나려는 것이다. 내부 결속을 위해 희생양은 우선 밖에서 찾지만, 여의치 않을 경우 내부에서라도 만들어 낸다. 마녀사냥 광풍은 바로 ‘희생양 만들기’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유럽의 마녀사냥》(소나무, 2003)은 마녀사냥 광풍을 체계적으로 분석하여 발단 원인을 지배층(권력자, 성직자, 지식인 등)의 집단적 불안에서 찾는다. 유럽 근대 세계의 탄생은 미래에 대한 불안도 동시에 증폭시켰다. 16세기 종교개혁 운동은 근대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마르틴 루터는 성서가 종교적 권위의 유일한 원천이라며 교황의 권위에 도전했다. 루터가 시작한 종교개혁은 기독교 세계를 크게 분열시켰다. 그 결과 근 천 년 이상 교회가 누려오던 절대적인 권위가 크게 흔들리게 되었다. 그러나 종교개혁 이후에도 마녀사냥은 줄어들지 않았다. 루터와 칼뱅을 비롯한 종교 개혁가들은 성서의 가르침을 근거로 악마의 존재를 규정했으며 개신교의 악마론은 마녀에 대한 공포를 부추기는 데 일조했다. 따라서 종교개혁도 마녀사냥 확산에 기여를 했다고 볼 수 있다.

 

근대 유럽 국가의 특징은 국가 권력의 중앙 집권화이다. 그렇지만 근대 초기의 유럽 국가는 어느 정도 지방 자치권을 인정하고 있었다. 지방 권력은 마녀재판을 진행하는 주도권을 가지고 있었다. 종교개혁은 유럽의 사법제도에도 일정 부분 변화를 가져왔다. 마녀사냥이 가장 극심했던 16세기에 교황의 권위가 축소되면서 마녀재판을 주도한 교회 법원의 사법권이 지방 세속 법원으로 넘어갔다. 그리하여 지방 관리가 마녀 혐의자를 심문하여 처벌을 내릴 수 있었다.

 

《유럽의 마녀사냥》을 쓴 브라이언 P. 르박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영향을 받은 스콜라 철학이 마녀에 대한 유럽 지식인들의 믿음을 뒷받침한 지적 기반이라고 주장한다.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신봉한 지식인들은 마녀가 악마의 도움을 받아 흑마술을 부린다고 생각했다. 르네상스 시대에 중세 스콜라 철학에 도전한 신플라톤주의 철학이 등장했다. 신플라톤주의자는 인간 스스로 우주의 기운을 받으면 마술을 부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신플라톤주의는 유럽 지식층의 주류 학문으로 자리 잡지 못했고 스콜라 철학에 익숙한 기득권층의 태도를 바꾸는 데 실패했다. 이러한 학문적 변화가 있었음에도 마녀와 흑마술에 대한 믿음은 르네상스 시대까지 지속하였다.

 

쥘 미슐레는 마녀가 종교를 맹목적으로 믿는 지배계층의 희생양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르박은 미슐레의 해석을 ‘낭만적인 해석’으로 규정한다. 그리고 마녀를 기존의 사회 체제에 거부하는 반동 세력으로 보는 해석을 비판한다. 그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간단명료하다. 마녀들이 사회를 개혁하려는 목적으로 마녀 집회에 모인다는 증거가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16세기 이탈리아 지방의 농민들이 이단 심문을 받은 기록들을 토대로 마녀사냥을 분석한 카를로 진즈부르그는 자신의 책 《마녀와 베난단티의 밤의 전투》(길, 2004) 서문에서 미슐레의 마녀 연구를 언급한다. 그러나 진즈부르그도 마녀를 해석한 미슐레의 관점을 ‘반역적 마녀에 대한 낭만주의적 찬미’라고 평가한다.

 

 

진즈부르그는 ‘밤의 전투’로 알려진 베난단티(Benandanti) 비밀 모임이 어떻게 ‘마녀 집회(sabbath)’로 알려지게 되었는지 추적한다. 베난단티는 흉년을 부르는 마녀들에 대항하는 신성한 존재였다. 농민들은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각각 베난단티와 마녀로 연기하면서 서로 싸움을 벌이는 행사를 갖는다. 농민들은 베난단티가 승리한 그해에는 풍년이 든다는 미신을 믿었다. 베난단티 역할을 맡은 농민은 자신이 영적인 힘을 가진 존재인 것처럼 말한다.

 

 

저는 베난단티입니다. 왜냐하면 일 년에 네 번 사계재일 때 밤마다 싸우러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가기 때문입니다. 저는 보이지 않게 영적으로만 가고 육체는 남아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받들기 위해 나가며, 마녀들은 악마를 받듭니다. 우리는 서로 싸웁니다. 우리는 회향단으로 싸우고 그들은 수숫대로 싸웁니다.

 

(베난단티 역할을 맡은 바티스타 모두코의 진술, 진즈부르그의 책 51쪽)

 

 

베난단티 모임에 참석한 농민들의 증언을 확인한 이단 심문관들은 ‘풍요제’를 ‘악마를 숭배하는 마녀 집회’로 규정했다.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는 영적인 체험에 고백한 농민의 진술은 베난단티 모임을 불리하게 만든 원인이 되었다. 이단 심문관들은 농민들의 진술을 통해서 베난단티의 이단적 성격을 찾아내려고 했다. 결국, 농민들의 민중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 이단 심문관들은 농민들의 의식이 반영된 연례행사를 탄압했다. 즈부르그는 마녀 사냥 광풍 속에 왜곡되고 잊힌 베난단티 모임의 실체를 복원하여 지배계층에 억압받는 민중 문화에 주목한다.

 

하지만 진즈부르그의 해석도 르박의 시선에서 비켜갈 수 없다. 르박은 환상적인 요소가 강한 베난단티 역할자의 진술만 가지고는 베난단티 모임이 실제로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결과적으로 진즈부르그의 해석도 미슐레의 낭만적인 해석을 그대로 답습하는 데 그치게 된다.

 

르박과 진즈부르그의 마녀 연구는 “누가 마녀를 만들었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된다. 두 사람이 얻은 결론은 비슷하다. 민중이 마녀를 만들지 않았다. 지배계층이 마녀를 만들었고, 민중은 지배계층이 운영하는 이단 심문소가 남긴 기록(마녀로 고소한 사람들의 증언, 마녀 혐의를 받은 사람들의 진술)을 확인하면서 마녀에 대한 공포심을 느끼기 시작했다. 마녀가 존재하기 전에 마녀를 규정하는 논리들이 먼저 만들어졌다. 마녀를 규정하는 논리는 마녀가 아닌 시대적 불안을 제거하기 위해 동원된 희생양들만 양산했다. 시몬 드 보부아르의 명언을 빌리자면 ‘마녀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유럽의 마녀사냥은 한 사회가 비가시적인 특정 대상에 공포감을 느끼고 있을 때 그 사회가 빚어내는 비인간성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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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일 레드스타킹 독서모임에 참석하신 혜정님이 작성한 공식 후기입니다. 출처는 레드스타킹 공식 인스타그램입니다. 혜정님께 허락을 받고 블로그에 글을 옮겼습니다. 보충 설명이 필요한 용어에 각주를 달았습니다.

 

어제 작성한 후기에 스웨덴 출신의 크리스를 학생으로 잘못 소개했습니다. 크리스는 스웨덴 LUND 대학의 동아시아 & 동남아시아 센터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으며 페미니즘 석사 논문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대구 페미니즘 북클럽, 레드스타킹

https://www.instagram.com/feminism_talk/

    

 

 

 

 

 

 

 

 

 

 

 

 

 

 

 

 

오늘은 우리 북클럽에 처음 오신 분, 오랜만에 얼굴을 내미신 분, 한결같이 이 자리를 지켜주시는 분들, 그리고 무궁화호를 타고 서울서 오신 크리스까지, 레드스타킹 사상 최대의 인원이 스몰토크에 모였습니다.

젠더 무법자첫 번째 시간, (1장 우선 말해둘 것, 2장 씨앗 추려내기, 3장 힘 되찾기) 까지 읽으면서 레드 스타킹의 입으로 터져 나온 흥미진진한 의문들에 대해서 맛보기 나열을 해 볼게요.

 

 


 


* 섹슈얼리티(성적지향)은 무엇이냐?


- 섹슈얼리티는 성적 욕망을 둘러싼 느낌, 생각, 재현, 실천을 포함한다.


- 이 섹슈얼리티는 욕망과 쾌락과 밀접한 관련이 있고 사회문화적으로 부추겨지고 다양한 소비(, 시계 등), 권력까지 확장해서 연관시켜 볼 수 있다.


- 또한 파트너(상호작용)에 의해 성적 지향이 규정될 수 있다. 성적 지향은 유동적이다.

    

 



* 케이트 본스타인(젠더 무법자저자)은 왜 수술(MTF: male-to female)을 선택했을까?


- 남자로 태어났지만, 여자이고 싶은 것이 아니라 남자가 아닌 것은 확실하다, 라는 생각에서부터 고민이 시작되었다.


- 성기전환수술은 목숨을 건 위험한 수술이 아닌가? 이 수술자체가 특이하고 위험하다고 바라보는 것도 고정관념이 아닐까? 수술의 위험성보다 일상의 위험성이 더 크게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수술을 선택한 것은 아닐까? 과연 성기전환수술이 여느 성형수술보다 더 위험하다고 볼 수 있나? 성형수술의 확장선상에서 성전환 수술도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필사적인 위험을 감수한 수술이라기보다 자신의 욕망을 그대로 실천한 것은 아닐까? 개인마다 다양한 선택 가운데 하나일 뿐 이상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지 않을까?

 

 


 


* 여성성이란 뭘까?


- 사람마다 무엇이 되었을 때 발현시키고픈 상은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발현될 수 있다.

 

- 코르셋[1]을 거부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 행위가 나를 즐겁게 만들어준다면 좋은 것 아닐까.

    

 



* 여성과 남성은 어떻게 구분되는 것인가?


- 남자 성기를 기준으로 의사가 결정한다.

 

- 나바호 부족은 자신이 성별을 결정하는데 의견을 낸다.

 

- 아이를 얻은 부모에게 주로 처음 하는 질문은 아들이야 딸이야? 그에 대한 멋진 대답은, 몰라, 그 애가 아직 우리에게 말해주지 않아서라고 말해 줄 수 있다.

 

 


 


여러분들의 주옥같은 이야기들을 다 옮기지는 못했지만 오늘도 모임을 즐겁게 마치고 뿌듯해졌습니다. 저에게도 역시 페미니즘은 자신의 안과 밖을 구석구석 성찰하고 탐색하며 나를 찾아가는 수단인 것 같습니다.

 

 

 

 

[1] 여성의 허리를 보정하기 위해 만들어진 속옷. 남성이 만족하는 여성의 신체를 맞추기 위해 여성들은 코르셋을 착용했다. 코르셋은 여성을 억압하는 구시대적 물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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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8-02-15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 즐거운 설연휴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cyrus 2018-02-18 07:12   좋아요 0 | URL
서니데이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집에만 있으니 연휴가 금방 지나가버린듯한 느낌이 드네요. ^^
 

 

 

오늘 독서모임에 저를 포함한 세 분이 처음 참석하였습니다. 특별손님도 스몰토크카페(독서모임 장소)에 오셨습니다. 여성학 석사 논문을 준비하는 스웨덴 출신의 남성분이었어요. 이름은 크리스입니다. 모임 때 찍은 사진을 공개하지 못해서 아쉬워요. 크리스가 억수로 잘 생겼거든요. 크리스의 얼굴이 궁금하시다면 ‘레드스타킹’ 공식 인스타그램에 들어가 보셔요.

 

레드스타킹 회원님들은 영어 대화가 어느 정도 가능한 능력자들이었습니다. 크리스가 스웨덴 페미니즘 운동의 현재 상황에 대해 솰라 솰라 설명하는데, ‘영어 막귀’인 저는 1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영어를 마지막으로 공부한 지 언제였더라…‥.) 모임 첫 날부터 순탄치 않았습니다…‥. 배워야 할 것들이 너무 많군요.

 

‘후기’ 순서는 이렇습니다. 앞으로 후기를 이런 순서대로 작성하려고 합니다. 글의 초반부는 책 본문에 대해서 자유롭게 논의한 발언들을 소개했고요, 중반부는 책과 관련 없는 발언들을 정리했습니다. 어제 모임은 책과 관련 없는 내용이 많은 편이었는데, 그래도 다 함께 생각해볼 수 있는, 모든 사람이 알고 있어야 할 중요한 내용입니다. 글의 후반부는 제가 모임에 했던 발언을 짧게 소개하고, 발언 내용 중에 고쳐야 할 점을 일종의 소감문 형식으로 정리했습니다. 회원님들이 제 발언을 듣고 고쳐야 할 부분을 바로 잡아주셨는데, 그 점이 아주 좋았습니다. 지금까지 알라딘 블로그에 페미니즘을 주제로 쓴 글을 공개하면서 정중한 비판 의견을 들으려고 기다렸습니다. 나와 생각이 다른 분들의 의견을 듣고 싶었지만, 제 글의 댓글창에는 파리만 훨훨 날아다녔습니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쭉 조용한 상태로 유지될 것 같습니다. 이 상황을 계속 지켜보기 힘들어서 레드스타킹 독서모임에 참석하기로 했던 것입니다.

 

각설하고, 어제 모임에 나왔던 발언들을 모아 보겠습니다. 모든 분이 하셨던 말씀 전부 기억나지 않고,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도 있습니다. 그 점을 생각해서 가볍게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어제 독서모임 ‘공식 후기’가 레드스타킹 인스타그램에 공개되면 여기에 공유하겠습니다. 제 글이 미심쩍다고 생각하는 분은 ‘공식 후기’를 참고하세요.

 

 

 

 

※ 후기 구성 방식

 

[1] 책 본문에 대한 자유 발언들.

 

[2] 책과 관련 없는 자유 발언들.

 

[3] 내 발언의 문제점과 피드백(feedback), 보완해야 할 점.

 

 

 

 

 

 

[1]

 

 

 

 

 

 

 

 

 

 

 

 

 

 

 

 

 

 

 

 

 

* 《젠더 무법자》(바다출판사, 2015)를 읽으면서 단번에 이해하기 힘든 문장들이 많았습니다. ‘젠더 외부자(126쪽)’. 저는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와 닿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젠더 위반자’라는 말까지도 나옵니다. 저는 이 두 단어가 뭘 의미하는지 확실히 개념을 잡고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혹시 ‘젠더 외부자’가 트랜스젠더(《젠더 무법자》의 저자 케이트 본스타인)가 유동적 정체성(‘남성’, ‘여성’으로 구분되는 성별에 얽매이지 않는 것, 21쪽)을 깨닫기 전 상황을 가리키는 단어가 아닐까요?

 

* 유동적 정체성을 강조한 저자의 입장이 아나키즘(Anarchism: 무정부주의)과 상당히 유사하다는 걸 느꼈어요.

 

* 그런가요? 저도 아나키즘에 심취한 적이 있는데요, 유동적 정체성과 아나키즘 각각의 의미를 따져보면 두 개념 간의 유사점이 있다고 보기 어려워요.

 

* 이 책에 ‘섹슈얼리티(Sexuality)’라는 단어가 나와요. 그런데 지금까지 페미니즘을 공부를 해왔지만, ‘섹슈얼리티’가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요.

 

* 트랜스젠더 수술 과정을 묘사한 내용(39~45쪽)을 보기 전까지는 트렌스젠더 수술이 이렇게 위험한 것인 줄 몰랐어요. 저는 막연하게 트랜스젠더 수술이 여성의 성형 수술과 거의 비슷한 방식이라고 생각했어요.

 

* 비트렌스섹슈얼로 살아와 보니 트랜스섹슈얼이 처한 상황들에 공감하기 어려웠어요. 책에 밑줄 긋고 열심히 읽어봤지만, 제겐 여전히 이 책이 어려워요.

 

 

남성 크로스드레서는 게이고 성매매를 할 거라는 생각은 흔한 오해 중 하나다. 내가 만나 본 대부분의 크로스드레서는 주류에 속하는 직업과 경력을 갖고 있었고 사회적 지위도 높은 편에 속했다. 또한 기혼자이고, 이성애를 실천하고 있었다. (71쪽)

 

 

* 제가 실제로 남성 크로스드레서(Cross Dresser, 반대 성별의 옷을 입는 사람들, ‘남성 크로스드레서’라 하면 여성의 옷을 입는 남성을 뜻한다)를 만나봤는데요, 게이가 아니었어요.

 

 

트랜스섹슈얼들이 침묵한 또 다른 이유트랜스젠더 하위문화의 신화 때문이다. 그 신화란 트랜스섹슈얼이 두 명 이상이면 더 쉽게 트랜스섹슈얼로 보일 것이고, 그래서 패싱(Passing: 반대 성별에 맞춰 외모를 유지하고, 그 성별에 맞춰 행동하는 것)[1]이 안 될 거라는 것이다. 난 트랜스섹슈얼들이 서로를 엄청나게 위협하기 때문에 서로 멀어진다고 생각한다. (110쪽)

 

 

* 트랜스젠더들끼리 서로를 혐오한다고 해요. 이렇다 보니 트랜스젠더들이 성 소수자 운동(LGBT 운동)에 소극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 같아요.

 

* 트랜스섹슈얼을 여성 운동에 배제하는 문화주의 페미니즘(Cultural feminism)에 대한 내용을 보면서 ‘TERF(터프)’가 떠올랐어요. 저도 래디컬 페미니즘(Radical feminism, 급진주의 페미니즘)을 지향하지만, 성 소수자를 배제하는 래디컬 페미니즘의 분리주의적 태도에 동의하지 않아요.

 

* 오래전에 하리수가 자신의 삶을 공개하는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한 적이 있어요. 저는 그 방송을 본 적이 있어요. 방송에서 십자수를 하는 하리수의 모습이 나왔어요. 그 모습을 시청한 페미니스트들이 하리수를 비판했어요. 그들의 입장에 따르면 ‘남성이었던 여성’인 하리수가 십자수를 하는 모습이 고정적인 성 역할, 즉 ‘여성성’을 재현한다고 봤던 거죠.

 

 

어떤 트랜스섹슈얼들은 레즈비언 분리주의자로부터 배제되는 걸 억압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레즈비언은 트랜스젠더를 억압할 만한 경제, 사회적 자원을 갖고 있지 않다. 난 양쪽이 마주 앉아 서로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좀 진지하게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139쪽)

 

* 성 소수자 운동에 찬성하는 저는 139쪽 내용에 공감했어요. 하지만 저자의 해결책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건 사실이에요. 우리나라에는 여전히 성 소수자들끼리 차별하고 반목하는 단절된 상황이 남아 있거든요. 그래도 저는 이 내용을 보면서 성 소수자들도 연대하는 희망적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2]

 

 

* 여러분들, 그거 아세요? 1990년이 ‘백마 띠의 해’였어요. 그 당시 사람들은 1990년에 태어난 여자는 성격이 드세고 팔자가 사납다는 속설을 믿었어요. 낙태가 성행하던 시기라서 1990년에 태어난 여자아이를 낙태시키는 일이 많았다고 해요. 더 충격적인 건 과거 정부가 여성에게 낙태와 피임을 종용했던 시대가 있었다는 사실이에요. 1960년대에 산아제한정책의 하나로 ‘낙태 버스’까지 존재했었어요. 정말 끔찍한 일이에요.

 

* 페미니즘을 공부하면서 자연스럽게 내 마음속에 있는 ‘성적 욕망’을 경계하고, 스스로 검열할 때가 있어요. 이럴 때 정말로 답답해요.

 

* 혼자 괴로워하지 마세요. 나의 몸, 나의 성적 욕망을 긍정하세요. 성적 욕망은 절대로 나쁜 게 아닙니다. 자신의 진짜 모습, 진짜 감정을 솔직하고 당당하게 드러내세요.

 

 

 

 

 

[3]

 

 

 

 

 

 

 

 

 

 

 

 

 

 

 

 

 

 

 

저는 학교가 ‘젠더 지정’받기 쉬운 장소라고 밝혔습니다. 아이는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자신이 어떠한 성별인지 체득하는 것이죠. 이 얘기를 하면서 저는 ‘남녀평등 교육’이라는 표현을 썼는데요, 다른 분이 ‘남녀평등’이란 단어가 젠더에 대한 고정관념을 부추길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분은 《양성 평등에 반대한다》(교양인, 2016)를 언급하면서 ‘남녀평등’, ‘양성평등’의 허점을 알려줬고, 남녀 이분법적 젠더 범주를 해체하기 위해선 ‘성 평등’이라고 써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작년에 《양성 평등에 반대한다》를 읽은 저로서는 부끄러웠어요. 제가 그동안 얼마나 혼자서 ‘헛공부’를 했는지 깨달았어요. 페미니즘의 기본부터 다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섹슈얼리티’의 의미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분의 말씀에 공감했습니다. 페미니즘을 공부했을 때 자주 나오는 페미니즘 용어의 정의를 대충 이해하고 넘어간 적이 많았어요. 독서모임에 참석하기 전에 책을 꼼꼼히 읽으면서 책 본문에 나오는 단어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했는지 스스로 살펴봐야겠습니다.

 

 

 

 

[1] ‘패싱’이라는 단어를 비트렌스섹슈얼이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하고 싶은데, 이 용어의 의미 또한 꽤 복잡합니다. 개념에 대한 설명이 미흡해도 이해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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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13 19: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2-14 15:14   좋아요 1 | URL
‘평등’이라는 단어가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아요. 각각의 이해집단이 쓰는 ‘평등’의 의미가 서로 차이가 있거든요. 정말로 머리가 아플 정도로 생각거리가 많습니다.. ^^;;

나와같다면 2018-02-13 2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990년 ‘백마 띠‘ 의 기괴하고 무서운 성비를 우리는 봤습니다

말 못하는 동물이라 할지라도 적어도 자기 새끼중에서 암.수를 걸러내지는 않을텐데요

동성애를 비판할 때 들고 나오는 논리가 ‘자연의 섭리‘에 어긋난다는 것 입니다

얼마나 부자연스러운 논리인지

이미 무시무시한 성비를 봐 버렸는데..

cyrus 2018-02-14 15:21   좋아요 0 | URL
섭리라는 건 항상 고정 불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과 상황에 따라 변하기 마련입니다. 자연도 마찬가지죠. ‘자연의 섭리’가 불변하다고 믿는 사람들은 성별 또한 정해진 대로 죽을 때까지 변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애초에 말이 안 되는 논리입니다.

1990년에 낙태로 사망한 여성 태아의 수가 얼마인지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생각보다 높은 수치였습니다.

stella.K 2018-02-14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크로스 드레서가 그뜻이었구나.
나도 게이나 레즈비언인줄 알았는데.
<심야식당>에도 나오잖아.
뭐 옷 입는거야 자유라지만 그렇게까지 할 필요 있을까
싶기도 한데...

근데 진짜 1990년에 그런 일이 있었나?
오히려 백마 띠라고 막 띄워줬던 것 같은데.
인구감소를 우려해서. 내가 잘못 알고 있었나?ㅠ

댓글창에 파리가 날랐던 건 너만큼 이 분야에 대해 공부를 하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까?
근데 레드 스타킹 엄청 쎈덴가 보다. 영어를 기본으로 깔고 있다니.
잘 버틸 수 있겠니?ㅋㅋ

크리스 니가 잘 생겼다고 할 정도면
좀 아닌가보다.
난 그렇게 이해해.ㅎㅎㅎ

cyrus 2018-02-14 17:43   좋아요 1 | URL
개인의 취향이죠. 취향을 존중해야 합니다. 성전환 수술이 생각보다 비용이 비싸고, 위험성과 후유증이 큰 편이에요. 그래서 생물학적 성별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성전환 수술을 받지 않고 ‘크로스드레서‘ 방식으로 반대 성별의 삶을 살고 싶어 해요.

제 글이 보고서 스타일인데다가 글 한 편 길이가 워낙 길어서 정독하는 분들이 많지 않을 걸요.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A4 용지 한 장 반 분량의 글을 읽으면 집중력이 떨어진다고 해요. 짧은 글을 읽는 것에 익숙해지니까 적당한 분량의 글조차 제대로 못 읽는 것이죠. 그리고 알라딘 서재 안에서 서로 의견을 주고받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어려워요. 독서모임이 책을 읽고 난 뒤에 느낀 내 생각을 제대로 피드백 받을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에요.

레드스타킹 가입 조건에 영어 특기는 없습니다.. ㅎㅎㅎ 이 모임에 참석하면 페미니즘 영화도 볼 수 있어요. 회원님들이 페미니즘 영화에 관해서 대화를 나누는 걸 들어봤는데 처음 들어보는 제목의 영화들이 많았어요. 책 좀 덜 보고 영화 상식을 넓혀야겠어요.. ^^;;

psyche 2018-02-15 0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스타에 가서 보고 왔어요. 크리스가 얼마나 잘생겼는지 보려고 간 건 절대! 아닙니다.ㅎㅎ
가서 보니 젊은 남성분들도 몇분 계셔서 상당히 희망적이네요. 대구는 굉장히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인 곳인 줄 알고 있었거든요. 열심히 모여서 함께 공부하시는 분들을 보니 미래가 밝아보여 기쁘네요~

cyrus 2018-02-18 07:18   좋아요 0 | URL
페미니즘 독서 모임, 페미니즘 영화 모임 등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이런 모임에 참석해서 사람들과 대화를 해보면 혼자 책을 읽으면서 페미니즘을 이해하는 것과 차원이 다른 기분을 느낄 수 있어요. 페미니즘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혀집니다. 여러 사람과 페미니즘을 공부하니까 공부 의지가 쑥쑥 생깁니다. ^^
 
문명은 부산물이다 - 문명의 시원을 둘러싼 해묵은 관점을 변화시킬 경이로운 발상
정예푸 지음, 오한나 옮김 / 378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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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발전은 우연인가, 필연인가? 영국의 역사가 에드워드 H. 카(Edward H. Carr)‘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정의를 내리면서 ‘과거를 해석하면 미래를 통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과거란 현재의 시점에서 보면 이미 지나간 시간, 즉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순간이다. 이러한 과거에 인간이 한 일과 생각을 밝히는 것이 역사다. 역사는 인과관계라는 시간의 실타래로 엉켜 있다. 역사를 연구하는 일은 ‘원인’을 알아내는 일이다. 그러나 역사적 사건이 단일한 원인만을 갖는 것은 아니며, 여럿인 경우가 많다. 역사가는 이것들을 파악해 내고, 단순하게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정리한 후 역사적 사건 속의 상호관계를 파악한다. 이것이 역사가의 해석이다. ‘원인(들)’을 탐구하면서 역사적 사건들을 인과의 계열 속에 배열하는 것이 역사가 고유의 기능이다.

 

오랫동안 사람들은 인류 문명의 발달을 인간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데 익숙했다. 그들은 문명화되는 과정이 역사의 필연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했고, 문명이 번영으로 가는 길을 상승하는 계단처럼 매끄럽게 이어지는 단일한 경로로 간주하곤 했다. 이러한 필연성의 근저에는 모든 역사적 사건에는 원인이 있으며 같은 원인은 같은 결과를 이끈다는 믿음이 가정되어 있다. 80년대 대학가에서 카의 명저 《역사란 무엇인가》(까치, 2015)만큼 가장 많이 읽힌 역사책도 찾기 어렵다. 카가 이 책에서 보여준 역사적 필연성, 진보에 대한 확신, 그리고 역사를 주도해 나가는 인간의 주체성은 민주화를 열망하는 대학생들의 세계관에 부합되는 내용들이었다.

 

그러나 역사 속에서 원인과 결과 사이의 필연성을 찾는 일은 무의미하다. 90년대 들어 소련의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지면서 역사에 단일한 지향점과 목적이 있고, 역사적 진보를 논증할 수 있다는 믿음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문명의 발전이 지극히 우연일 수 있다는 생각이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중국의 사회학자 정예푸(鄭也夫)는 필연성을 찾으려는 문명사 연구에 비판적이다. 그가 쓴 《문명은 부산물이다》(37∞, 2018)는 문명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 책이다. 이 책의 결론부터 말하자면, 문명은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다.

 

정예푸는 문명 발전에 기여한 여섯 가지 핵심 요인족외혼, 농업, 문자, 종이, 조판인쇄, 활자 인쇄 등이 역사의 필연인지, 우연인지를 분석한다. 이러한 여섯 가지 요인들은 인류가 필요해서 만들어진 산물인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작은 우연들이 겹쳐져서 생긴 산물이다.

 

원시 인류 사회까지만 해도 같은 부족 안의 근친상간이 대부분이었다. 부부의 개념도 없었다. 이후 부족들 간의 접촉이 활발해지면서 족내혼이 일반화됐다. 인류학자들은 부족사회 안에서 근친상간 금기가 형성되어 족외혼으로 발전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예푸는 족외혼이 종족 퇴화를 막기 위한 목적에 의해서 생긴 것이 아니라고 반박한다. 그는 영국의 인류학자 웨스터마크(Westermarck)의 가설을 지지하면서 족외혼을 ‘외부에 대한 성적 취향’의 산물로 봤다. 웨스터마크는 같이 생활한 성장한 이성, 즉 가족 구성원에게 성적 매력을 느끼지 않기 때문에 족외혼이 보편화하였다고 주장했다.

 

수렵 및 채집 생활을 하고 있었던 인류는 야생 벼를 우연히 발견하여 그것을 땅에 심었다. 그들은 야생 벼를 수확하는 법을 습득했다. 그러나 식량이 부족해지는 비수확기는 이제 막 농업을 하기 시작한 인류가 겪는 시련이었다. 그것은 ‘농경사회’를 이룩하게 될 인류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하지만 인류는 한 곳에 정착하기 시작했고, 인구가 점점 늘어나고 있던 터라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농업을 선택했다.

 

문자의 발명과 종이의 탄생은 학문 발전과 지식 전달 수단으로, 인류의 문화 발달과 문화 형성에 아주 큰 공헌을 했다. 정예푸는 종이가 발명되기 이전의 시대에 주목하여 조판인쇄가 발달한 과정을 추적한다. 종이가 나오기 전에는 점토판에 도장을 찍는 관습이 있었다. 종이가 등장하면서 인류는 종이에도 도장을 찍었다. 종이에 도장을 찍는 행위는 조판인쇄의 기원인 셈이다.

 

《문명은 부산물이다》는 정독하기가 쉽지 않은 책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필자는 이 책의 3장(문자), 4장(제지), 5장(조판인쇄), 6장(활자 인쇄)을 훑어봤다. 왜냐하면, 저자가 인용하면서 설명하는 한자의 구조, 중국의 종이문화 및 각종 용어가 생소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 중국 문헌뿐만 아니라 서양 문헌들까지 참고하는 저자의 폭넓은 지식 편력에 깜짝 놀랄 것이다. 친절하게도 이 책의 역자는 독자들이 저자가 참고한 책들을 확인할 수 있도록 국역본 제목까지 알려줬다. 1장, 2장, 그리고 이 책의 결론에 해당하는 7장만 봐도 이 책에서 저자가 강조하려는 핵심 내용이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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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13 16: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2-13 17:39   좋아요 1 | URL
인간이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을 보면 인간은 ‘역사’ 속에 영원히 갇힌 존재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

페크pek0501 2018-02-14 10: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사란 무엇인가》를 읽고 감탄하던 때가 떠오릅니다.
역사뿐만 아니라 모든 건 해석의 문제인 것 같아요.
˝사실은 없다. 해석만이 있을 뿐이다.˝(니체)라는 문장을 새삼 생각해 봅니다.

cyrus 2018-02-14 15:22   좋아요 0 | URL
역사를 바라볼 때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지고 해석하면 좋은데, 이게 쉽지 않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