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는 4월 중 가장 바쁜 한 주였습니다. 월요일(23일)은 레드스타킹 정기 모임, 목요일(24일)은 우주지감 정기 모임, 금요일(25일)은 ‘치유의 전복적 대화’ 토론회, 토요일(26일)은 ‘꽃보다 페미니즘’ 2강이 있었습니다. 일요일(27일)은 《과학혁명의 구조》 읽기 두 번째 모임이 있는 날인데 책을 읽지 않아서 불참했어요. 써야 할 후기가 잔뜩 밀려 있습니다. 오늘 근로자의 날이라 쉴 수 있어서 좋네요. ^_^

 

 

 

 

 

 

 

 

 

 

 

 

 

 

 

* 김재인 《인공지능의 시대, 인간을 다시 묻다》(동아시아, 2017)

 

 

 

우주지감 ‘나를 관통하는 책읽기’ 예순 한 번째 모임 선정도서는 《인공지능의 시대, 인간을 다시 묻다》(동아시아, 2017)입니다. 오전 모임은 4월 24일 화요일, 오후 모임은 4월 26일 목요일에 진행되었습니다. 저는 오후 모임만 참석했어요.

 

저는 이 책을 읽었을 때 ‘각주주검(刻舟求劍)’이라는 사자성어를 떠올렸어요. 물속에 떨어뜨린 칼을 찾으려고 그 위치를 뱃전에 표시해 놓았다가 나중에 그 표시를 보면서 칼을 찾는다는 뜻인데요, 변화하는 현실에 어둡고 낡은 것만 고집하는 상황을 비판할 때 인용됩니다. 《인공지능》은 서울대학교 공대생을 위한 교양 과목 강의 내용을 엮어 작년에 나온 책입니다. 저자가 몇 년 동안 강의를 하고, 강의한 내용을 정리한 책이 나올 동안에 세상은 엄청나게 많은 변화가 일어났어요. 우리는 잠시만 한눈을 팔아도 엄청나게 많은 변화가 이뤄지는 세상에 살고 있어요. 그래서 《인공지능》을 읽었으면서도 미래의 인공지능 시대를 전망한 저자의 해석이 갇혀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과연 내일의 문제(인공지능의 시대)를 어제의 해법(철학)으로 풀어낼 수 있을까요? 이 책이 인공지능의 등장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일시적으로 ‘위안’이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인공지능과 함께 살아갈 미래를 논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에드문트 후설 《유럽학문의 위기와 선험적 현상학》 (한길사, 2016)

* 에드문트 후설 《현상학의 이념, 엄밀한 학으로서의 철학》 (서광사, 1988)

 

 

 

 

 

 

 

 

 

 

 

 

 

 

 

 

* 피에르 아도 《고대철학이란 무엇인가》 (열린책들, 2017)

* 섹스투스 엠피리쿠스 《피론주의 개요 (천줄읽기)》 (지만지, 2012)

 

 

 

어떤 현상에 대한 분석, 특히 인공지능과 그 미래를 둘러싼 논의는 정확한 정보가 아닌 선입견 또는 잘못 알려진 정보에 의존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지한 논의 진행에 걸림돌이 되는 편견과 잘못된 정보에 벗어나려면 인공지능의 시대를 인식하는 우리의 태도는 ‘판단 중지(epochē, 에포케)’해야 합니다. ‘판단 중지’라는 용어는 현상학을 발전시킨 독일의 철학자 에드문트 후설이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만 사실 이 용어는 고대 그리스 시대에 활동한 회의주의자들이 즐겨 썼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회의주의자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피론입니다. 그래서 회의주의는 그의 이름을 따서 ‘피론주의’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피론은 많은 탐구를 해도 그것이 최종 진리라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우리가 판단해야 할 대상, 즉 인공지능은 기술 종류, 발전 상태와 조건 등이 워낙 다양합니다. 인공지능을 바라보고 그것에 대해 일률적으로 판단하거나 설명할 수 없어요. 낙관적이면 낙관적인 것만 보이고, 비관적이면 비관적인 것만 보게 됩니다. ‘판단 중지’는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자기중심적 마음을 경계합니다. 따라서 저는 인공지능 시대에 대한 김재인 씨의 입장(인간의 능력을 뛰어넘은 초인공지능이 실현하기가 쉽지 않다)에 동의하지 않았어요. 우리가 마주해야 할 인공지능 시대의 미래를 낙관적으로도, 비관적으로도 보지 않았습니다.

 

서론이 길어버렸네요.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인공지능》을 읽은 우주지감 멤버들의 의견 및 감상을 얘기해 보도록 하죠. 닷새가 지난 뒤에 후기를 쓰려고 하니까 어렵네요. 속기를 했습니다만 그 날 저녁 책방을 가득 채운 말들을 온전히 기억해내기가 힘드네요. 아무튼 생각나는 대로 써보겠습니다.

 

인공지능 시대의 미래를 비관적으로 보고, 이를 걱정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창식 쌤은 미래 사회에 ‘기계를 가진 자’와 ‘기계를 가지지 못한 자’로 구분되는 빈부 격차 문제가 일어날 거라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구도가 만들어지는 결정적인 원인이 바로 돈과 자본입니다.

 

완진 쌤은 인공지능이 발달하는 세 가지 요인을 언급했는데요, 하드웨어와 CPU, 그리고 ‘실수’였습니다. 인공지능도 실수와 결함이 있습니다. 알파고이세돌과 대전할 때에도 4번째 대국에서는 엉뚱한 실수로 패배했죠. 그런데 인공지능은 시행착오를 스스로 학습하여 실수를 줄이면서 발전을 거듭합니다. 창식 쌤은 인공지능이 실수를 통해 배우는 것, 즉 실수라는 경험도 학습하여 발전하는 인공지능의 향상이 때론 무섭게 느껴질 때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성은 쌤은 인공지능 미래에 대한 논의 없이 인공지능의 향상을 지나치게 긍정적으로만 보고, 거기에 이끌려 따라가는 듯한 사회적 분위기를 염려했습니다. 성은 쌤은 지금 현 상황을 율곡 이이‘십만양병설’로 비유해서 설명했는데요, 우리 사회가 미래 변화에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영신 쌤은 인공지능의 시대를 사는 인간이 ‘기계의 노예’로 전락될 위기에 놓여 있다고 말했습니다. 영신 쌤은 인공지능이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할까 봐 걱정했습니다. 영신 쌤도 성은 쌤과 마찬가지로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세상은 완전히 달라지고 있는데도 아무런 준비도 대책도 나오지 않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영신 쌤은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가 지속된다면 미래 세대들은 ‘준비 없는 미래’를 맞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저자는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이 할 수 있는 활동이 ‘창조성’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무언가를 창조하는 일은 인공지능이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죠. 정희 쌤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창조적인 일로 ‘독서’를 꼽았습니다. 반면 은경 쌤은 우리 사회는 여전히 ‘창조성’을 발현하기에 시간적으로, 환경적으로 모두 부족하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등이 창조성의 발현을 억누릅니다.

 

인공지능 시대를 마냥 두려워만 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 분이 있었어요. 호순 쌤은 이 책의 제일 마지막 문장(“이렇게 사는 건 재미있거든요.”, 367쪽)을 인용하면서 오히려 인공지능 시대가 오면 재미있는 삶이 펼쳐질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동익 쌤은 다양한 양상으로 변화하고 전개되는 세상 속에 다양한 삶을 선택할 수 있고, 그것을 존중하는 마음가짐이 잃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창식 쌤이 다음 달부터 베트남에 거주하면서 일을 하게 됐어요. 4월 독서 모임이 창식 쌤의 마지막 우주지감 모임이 되었네요. 토론을 마치고 난 후에 창식 쌤을 위한 송별회를 했습니다. 송별회 음식은 ‘야식 삼인방’이라 할 수 있는 치킨, 족발, 떡볶이였습니다. 새벽 12시까지 우주지감 멤버들은 음식들을 맛나게 먹으면서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나를 관통하는 책읽기’ 5월 선정도서

 

 

 * 오전 모임 : 2018년 5월 29일

화요일 오전 11시

 

 * 저녁 모임 : 2018년 5월 31일

목요일 저녁 7시 30분

 

 * 장소 : 책방 <읽다 익다>

       (오전 모임, 오후 모임)

 

 

 

 

 

 

다음 달 5월 우주지감 ‘나를 관통하는 책읽기’ 선정도서는 움베르토 에코《장미의 이름》(열린책들, 2009)입니다. 이 ‘어려운 책’을 누가 고른 거죠? 이 책을 또 읽게 될 줄이야…‥. 에코가 이야기 위에 수놓은 《장미의 이름》 속 지식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싶어서 4월 말부터 유럽 중세사 관련 책을 읽기 시작했어요. 이러다가 중세철학도 공부해야 할 판입니다. 저는 ‘계획 독서’를 하면 늘 실패했는데요, 다음 달 모임에 불참하면 《장미의 이름》 읽기에 실패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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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01 22: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5-02 13:22   좋아요 0 | URL
제가 일찍 왔었으면 책방에서 시간을 더 보낼 수 있었을 거예요.. 다음에 만날 땐 약속 시간에 늦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

곰곰생각하는발 2018-05-02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 저는 술모임의 연속이 전부인데 사이러스 님 모임은 그야말로 인문학적 모임의 연속이군요. 부끄럽습니다아..

cyrus 2018-05-02 13:24   좋아요 0 | URL
레드스타킹 강연 끝나고 뒷풀이로 술 모임이 있었어요. 레드스타킹 멤버 중에 술 좋아하는 분들이 많아요.. ㅎㅎㅎ

AgalmA 2018-05-02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할 거리를 많이 주지만 철학적 견지에서만 보려는 저자가 강하게 느껴져서 저도 아쉬웠는데 cyrus님도 비슷하게 느끼셨네요^^;
cyrus님도 다독에 다리뷰자이신데 레드스타킹 모임까지....참으로 정신 없으실 듯ㅎ;
힘내십시오^^!

cyrus 2018-05-02 17:35   좋아요 0 | URL
4월에 강연이 많아서 돌아다니는 일이 많았어요.. ㅎㅎㅎ 독서모임 활동하기 전에는 퇴근 후 집이나 도서관에 가는 일이 많았는데, 요즘은 카페나 강연장에 가는 일이 많아졌어요. ^^

stella.K 2018-05-02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바쁘구나. 난 레드 스타킹만 나가는 줄 알았더니.
나도 나의 정열을 바칠 독서 모임 하나 있었으면 좋겠군.ㅠ
그런데 세 군데 뛸려면 책 빡세게 읽어야 할 것 같다.ㅋ

cyrus 2018-05-02 17:40   좋아요 0 | URL
지금까지 살면서 이틀 연속(일요일, 월요일)으로 독서모임에 참석하는 건 처음이에요.. ㅎㅎㅎ 일정이 빠듯하지만, 독서모임 활동을 시작한 이후로 독서에 대한 자극을 많이 받아서 좋아요. ^^
 
얼굴은 인간을 어떻게 진화시켰는가
애덤 윌킨스 지음, 김수민 옮김, 김준홍 감수 / 을유문화사 / 2018년 2월
평점 :
품절


 

 

 

사과 같은 내 얼굴 예쁘기도 하지요. 눈도 반짝 코도 반짝 입도 반짝 반짝. 오이 같은 내 얼굴 길기도 하구나. 눈도 길쭉 귀도 길쭉 코도 길쭉길쭉. 호박 같은 내 얼굴 우습기도 하구나. 눈도 둥글 코도 둥글 입도 둥글둥글”

 

 

‘사과 같은 내 얼굴’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동요를 누구나 어릴 적 한 번 정도는 배워봤을 동요다. 사과 같은 얼굴은 앙증맞고 귀여운 아이들의 얼굴을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어릴 적에 동요를 듣고 있으면 정말 내 얼굴이 사과같이 예쁘긴 한지 생각한 적이 있었다. 얼굴 윤곽은 그 사람의 인상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다. 아름다운 얼굴에 대한 기준은 시대와 사회마다 다르지만, 호감 있는 얼굴은 얼굴 전체가 조화를 이루고 안정감을 준다. 우리는 스마트폰과 텔레비전을 보면서, 또 단순히 길을 걸을 때도 무심코 외모지상주의를 받아들이고 있다. 그 사람이 누구이든 무엇을 하든 어떻게 살아왔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단지 보이는 얼굴이 예쁘냐 아니냐에 초점이 있을 뿐이다. 외모가 사생활은 물론 취업이나 승진 등 인생의 성공까지도 좌우하게 된다고 믿는 사람들은 너도나도 다투어 외모 가꾸기에 나선다.

 

얼굴이 예쁘면 만사형통인가. 정말 얼굴은 꼭 필요한가. 인간에게 얼굴이 없다면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을까.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인간은 얼굴을 가지게 되었을까. 왜 얼굴에는 눈, 코, 입이 달려 있을까. 나는 얼굴이 있다는 사실을 당연하게 생각했지만, 얼굴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궁금하게 여긴 적이 없는 것 같다. 《인간을 어떻게 진화시켰는가》(을유문화사, 2018)는 이러한 궁금증을 해소한 책이다. 이 책은 얼굴의 해부학적 구조뿐만 아니라 얼굴이 탄생되는 진화 과정, 사회적 의미, 언어 능력 등 ‘얼굴이라는 세계’의 역사를 소개한다.

 

이 책을 쓴 저자는 진화생물학자이다. 저자는 ‘얼굴의 진화적 기원’을 설명하기 위해 생물학, 유전학, 뇌과학, 인류학 등 다양한 분야의 학문을 동원한다. 이 책에 다뤄진 내용이 너무나 다양하고 방대하다. 인내심을 가지고 읽어야 한다. 아니면 서론, ‘결론’에 해당하는 이 책의 각 장 끝부분 순으로 먼저 읽어도 좋다. 이 책에서 말하는 저자의 핵심 주장을 미리 파악하고 난 후에 얼굴과 관련된 지식을 총괄하여 정리한 ‘총론’에 해당하는 본문에 접근할 수 있다.

 

저자에 따르면 얼굴 진화의 핵심은 언어다. 언어는 인간에게 고유하다. 침팬지는 훈련을 통해 몇 개의 말을 배울 수 있지만, 얼굴 근육을 잘 움직일 수 없어 극히 제한된 단어만 발음할 수 있다. 얼굴 근육을 가진 인간은 언어를 통해 대량의 정보를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달할 수 있었다. 인간이 가진 얼굴 근육은 지구상의 어떤 동물보다 많다.

 

찰스 다윈은 표정이 진화의 산물이라고 했다. 다윈의 주장은 얼굴의 기원을 추적하기 위한 탐구의 시작점이다. 개가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리는 것은 막 공격을 하겠다는 신호다. 인간의 표정은 동물처럼 직접적인 표현이 아니라 상징적인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사용된다. 진화는 인간이 표정을 통해 무언가 얻고자 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졌다.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누군가에겐 직접 그의 입을 통해 기분 상태를 듣지 않더라도 조심하게 된다. 멀리 맹수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순간 자신도 모르게 공포감을 느끼는 표정을 지음으로써 다른 사람의 도움을 불러올 수 있다. 얼굴은 인류 초기에 형성된 진화의 산물이다. 인간은 진화하는 과정에서 초기 인류의 조상에 가까운 유인원에 속하는 호미닌(hominin)과 다른 형태의 얼굴을 가지게 된다. 얼굴에 자란 털이 사라졌고, 주둥이는 짧아졌다. 인간의 얼굴은 손과 입을 이용하여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됐다. 얼굴 표정과 말하기 행위가 활발해지자 얼굴 근육을 움직이게 하는 뇌의 신경 회로와 언어를 생산하는 또 다른 신경 회로가 서로 연결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얼굴이 완전히 발달하려면 그것을 촉진하는 화학적 물질이 필요하다. 신경능선세포에 의해 분비되는 섬유모세포성장인자8(FGF8)이 없으면 뇌가 만들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뇌가 발달하면 소닉 헤지호그(sonic hedgehog, SHH)라는 단백질이 분비된다. 이 물질은 얼굴의 형체를 결정할 뿐만 손가락과 발가락의 성장도 결정한다. 신경능선세포, FGF8, 그리고 SHH 이 세 가지 화학적 물질이 생소할 수 있지만, 알고 보면 인간의 생존에 직결된 신체 구조를 만들어내는, ‘절대로 없으면 안 될 존재’이다. 저자는 얼굴을 형성하는 유전적 기반을 설명하기 위해 타당성 있는 가설들을 제시하고, 비교 검토한다. 비록 확실한 결론을 내리지 않았으나 저자는 지금까지 나온 연구 결과들을 토대로 얼굴 발달에 관여하는 유전자가 최대 2만 개까지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아마도 새로운 연구 결과들이 나온다면 책 속 저자의 견해는 수정될 것이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로 진화할 수 있었던 것은 얼굴의 진화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인간은 상대방의 얼굴을 인식하고, 상대방의 표정을 읽으며, 자신의 표정을 만들어 내고, 자신의 말을 전달한다. 손뼉이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이, 얼굴도 마주쳐야 말이 나온다.

 

 

얼굴을 인식하는 능력은 그 자체로 다가 아니라 흔히 사회적 상호작용의 서막을 여는 역할을 한다. 두 사람이 마주쳤을 때 서로를 인식한 후에 일반적으로 적절한 얼굴 표정을 지으며 짧은 말을 주고받는다. 사실상 대부분의 얼굴 표정은 사회적 상호작용에서 특히 대화를 나누는 도중에 만들어진다. (361쪽)

 

 

사람과 사람이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면서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공유하며 마음도 나누는 행위라는 의미가 있다. 1인 가구가 많아지면서 혼자 밥을 먹는 사람이 늘고 있다. TV나 스마트폰, 컴퓨터를 앞에 두고 김밥을 먹고, 햄버거를 먹고, 라면을 먹는 사람이 많다. 집 바로 옆에 사는 이웃인데도 얼굴만 몇 번 마주치고, 말 한마디 한 번도 나눠본 적이 없는 사이가 되기도 한다. 매일 말을 맞대고 얼굴을 마주 보고 살면서 느낄 수 있는 따뜻한 유대감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이러면 더 많은 소통을 가능케 하는 사회성이 결핍된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다. 사회적 상호작용을 불러일으키는 기능이 사라진 일부 얼굴은 퇴화의 조짐을 보인다. 사람보다는 스마트폰을 더 좋아하고, 이웃과 단절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이 시대 속에 얼굴은 본심을 위장하는 ‘가면’으로 남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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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renown 2018-05-01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름답다.잘생겼다. 라는 미의 기준이 언제부터 생겨나 오늘날 성형열풍으로
이어졌는지, 또 차별의 기준이 되었는지 궁금해지는군요.^^

cyrus 2018-05-01 18:45   좋아요 1 | URL
제가 서론을 책의 주제와 전혀 상관없는 내용으로 쓴 것 같군요. 사실 이 책에 ‘미의 기준’을 다룬 내용은 없어요. 미의 기준은 아주 오래된 시절부터 존재했죠. 움베르토 에코의 <미의 역사>를 보면 시대별로 나타난 미의 기준들을 살펴볼 수 있어요. ^^

stella.K 2018-05-01 1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사람이 사랑을 많이 받고 살았는가 아닌가가
얼굴에 나타나잖아. 밝기도 그렇지만 표정이 풍부하거든.
그게 얼굴 근육을 많이 써서라잖아.

딴 얘기지만 엊그제 머리 짜르러 미용실 갖는데
헤어 디자이너들은 머리 카락에서 그 사람의 나이를
알아 맞히지 않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나더군.ㅋ

cyrus 2018-05-01 21:39   좋아요 1 | URL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해서 친구 이외에 낯선 사람을 만나는 일이 없어요. 그래서 낯선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 표정 관리를 못해요. 민망한 말을 듣거나 민망한 상황에 처하면 얼굴이 쉽게 붉어지고 그래요.. ㅎㅎㅎ

육안으로 머리카락을 보고 사람의 나이를 맞추는 건 불가능할 것 같아요. ^^;;
 
일곱 원소 이야기 - 주기율표의 마지막 빈칸을 둘러싼 인간의 과학사
에릭 셰리 지음, 김명남 옮김 / 궁리 / 2018년 2월
평점 :
절판


 

 

현대 화학의 발전은 주기율표의 등장으로부터 시작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소에 대한 연구와 관심은 오래전부터 계속됐지만, 화학의 지식이 폭발할 수 있도록 한 원동력은 바로 멘델레예프의 주기율표 제작이었다. 지금의 주기율표를 완성하는 데 기여한 사람이 멘델레예프다. 주기율표는 ‘화학의 지도’이다. 이 믿음직한 지도를 가지고 있어야 화학의 세계를 여행할 수 있다. 주기율표는 원소를 성질의 대칭성에 따라 배열한 것이다. 그렇게 성질에 맞도록 배열하다 보면 빈칸이 생기고, 여기에 들어갈 원소를 과학자들이 찾아낸다. 멘델레예프는 주기율표를 만들면서 빈칸을 그냥 두었다. 다른 과학자들과 달리 그는 빈칸에 다른 원소를 억지로 채워 넣지 않았다. 대신에 빈칸에 채워지게 될 원소의 이름과 성질을 예측했다. 그의 예측은 정확했다.

 

주기율표는 이과 계열 학생들에게 암기의 고통을 안긴다. 그러나 주기율표 때문에 고통받는 과학자들도 있다. 《일곱 원소 이야기》 (궁리, 2018)주기율표의 빈 칸을 채우려고 했던 과학자들의 노력과 시련을 상세하게 기록한 책이다. 이 책에 나오는 일곱 원소는 프로트악티늄(Pa), 하프늄(Hf), 레늄(Re), 테크네튬(Tc), 프랑슘(Fr), 아스타틴(At), 프로메튬(Pm)이다. 이 일곱 원소는 멘델레예프가 남긴 빈칸을 차지하고 있다. ‘멘델레예프의 숙제’에 도전한 수많은 과학자들은 빈칸에 채워질 원소의 정체를 규명하기 위해 옥신각신했다. 미국의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먼“무언가를 발견하는 즐거움보다 더 큰 상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발견하는 즐거움’을 만끽하면서 과학을 갖고 놀았다. 그렇지만 일곱 원소를 발견하기 위해 뛰어든 과학자들은 ‘발견하는 즐거움’을 느낄 새가 없었다. 그들에게 주어진 멘델레예프의 숙제는 ‘발견하는 즐거움’보다 더 큰 상, 즉 ‘명예’를 건 숙명의 과제였다.

 

프로트악티늄은 발견되기 전까진 ‘우라늄에 든 미지의 물질 Urx’로 알려졌다. 독일의 화학자 리제 마이트너오토 한, 프리슈 슈트라스만 이 세 사람은 우라늄의 핵분열을 발견함으로써 원자폭탄 제조의 가능성을 열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오토 한은 국가의 부름을 받아 독가스 연구에 차출되었다. 실험실에 남게 된 마이트너는 혼자서 연구를 수행했고, 이 과정에서 프로트악티늄을 발견했다. 이 물질을 발견하기까지는 그녀는 엄청 고생했다. 마이트너는 한에게 보내는 편지에 연구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악티늄 실험에 쓸 백금 용기들을 주문했으니 며칠 안에는 받을 테고, 받자마자 시작할 겁니다. (…‥) 역청 실험이 지연된다는 데 화내지 마세요. 정말로 의지가 부족해서 그런 게 아니라 시간이 부족해서 그런 거니까요. 나 혼자서는 우리 셋이 함께 실험하던 때만큼 많은 일을 해낼 수가 없습니다. 어제는 고무관 3미터를 무려 22마르크나 주고 샀지 뭡니까! 청구서를 보고 꽤나 충격을 받았죠. (141쪽)

 

 

마이트너는 두 사람이 해야 할 연구까지 혼자서 진행했다. 그러나 독일에 나치 정권이 들어섰고, 유대인이었던 마이트너는 교수직을 박탈당한 채 스웨덴으로 도피했다. 마이트너와 한은 서로 떨어져 지내면서도 계속해서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핵분열 연구를 이어나갔다. 하지만 마이트너는 자신의 업적이 오토 한에게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봐야만 했다. 한은 핵분열 발견의 공로로 1944년엔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마이트너가 세상을 떠난 후 1992년에 109번 원소가 발견되었고, 새로운 원소는 그녀의 이름을 따 ‘마이트너륨(Mt)’으로 명명되었다. 사후에 그녀의 업적이 재조명되었으나 지금도 여전히 프로트악티늄을 발견한 공로는 오토 한으로 알려져 있다. 이 책은 프로트악티늄의 정체를 밝히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마이트너의 외로운 노력을 부각한다.

 

하프늄을 먼저 발견한 공로를 차지하기 위해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독일의 과학자들은 ‘총성 없는 전쟁’을 치러야 했다. 하프늄을 발견한 디르코 코스터죄르지 헤베시는 독일의 화학자 닐스 보어가 소장으로 몸담은 덴마크 코펜하겐 연구소 소속 학자였다. 하프늄은 72번 원소인데 코스터와 헤베시가 하프늄을 발견하기 전에 이미 프랑스 학자 팀이 72번 원소는 ‘셀튬’이라고 발표했다. 코스터와 헤베시는 프랑스 학자 팀의 주장을 반박하는 논문을 발표했는데 여기서부터 ‘전쟁’이 시작되었다. 공교롭게도 이 시기는 제1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였다. 총성은 멈췄으나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유럽 국가 간의 앙금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랑스와 영국은 연합국을 형성하여 독일과 맞붙었다. 연합국의 과학자들은 전쟁 중립국인 덴마크를 독일과 같은 편으로 여겼고, 코스터와 헤베시의 논문을 재반박했다. 이 ‘진흙탕 싸움’에 그 당시 물리학과 화학을 대표하는 러더퍼드와 보어까지 휘말렸다.

 

 

새 원소를 둘러싼 끔찍한 진흙탕 싸움이 싫습니다. 죄 없는 우리까지 말려들고 말았지요. (보어가 러더퍼드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171쪽)

 

 

하프늄이 정식으로 인정받기 전까지 영국의 <런던 타임스>는 자기 나라 출신 과학자가 72번 원소를 발견했다면서 자화자찬하는 사설을 싣기도 했다. 국수주의에 취한 영국은 웃지 못할 ‘흑역사’를 남겼다.

 

《일곱 원소 이야기》는 원소를 둘러싼 과학자들의 치열한 경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과학, 아니 인간적으로 말하자면 과학 업적에 대한 관심이 뜨거우면 과학자들은 국수주의에 빠지게 된다. 이런 정치적 접근은 오히려 과학 연구의 진전과 과학 발전을 가로막는다. 과학자로서의 국수주의적 시각은 연구 자료를 오독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하프늄의 발견 사례처럼 ‘국가 싸움에 학자 머리 터지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 《일곱 원소 이야기》를 다 읽고 나서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다. 주기율표는 누구를 위한 것일까. 주기율표를 외워야 하는 학생? 아니면 주기율표의 빈칸만 보면 참을 수 없는 과학자들? 지금도 주기율표는 학생과 학자들을 괴롭히고 있다. '화학의 지도'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당분간 학생과 학자들은 주기율표를 만나면 학을 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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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6 17: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4-29 23:34   좋아요 0 | URL
고등학생 시절에 정기(중간, 기말)고사 화학 시험을 친 적이 있어요. 시험 범위에 주기율표가 포함되어 있었어요. 화학 시험치기 전에 진짜 열심히 외운 게 주기율표였어요.. ㅎㅎㅎ
 

 

 

 

지난 월요일(4월 23일)《피해와 가해의 페미니즘》(교양인, 2018, 약칭 ‘피가페’) 1, 2, 5장을 함께 읽는 모임이 있었습니다. 비가 많이 내린 날이라서 그런지 모임에 참석한 사람이 적었습니다. 저를 포함한 총 일곱 명이 참석했습니다.

 

우리 모임에 특별한 손님 한 분 오셨어요. 영남일보 소속 기자님인데, 대구에 있는 페미니즘 모임을 취재하러 왔습니다. 페미니즘 모임에 오래 활동한 레드스타킹 멤버들이 기자님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잘 하셔서 저는 인터뷰하는 과정을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실은 제가 말을 잘 하는 편이 아니에요. 저는  내심 조용히 묻어가길 바랐는데 기자님이 저에게도 질문했어요. 어떤 계기로 페미니즘을 공부하게 됐는지 물어봤어요. 저는 가부장제, 남성 연대(Homosocial)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됐고, 자연스럽게 페미니즘을 접하게 돼서 공부하기 시작했다고 답변했습니다.

 

오늘 영남일보 기사가 나왔어요. 이 기사에 레드스타킹과 경북대학교의 대학생 페미니스트 모임인 KFC(Kyungbuk University Feminist Club)가 함께 소개됐어요. 대구에 음지에서 활동 중인 페미니즘 모임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런 모임들이 더욱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습니다.

 

 

 

* [“위드유” 페미니즘 ‘열공’ 모임 늘고 있다]

영남일보, 2018년 4월 26일

http://www.yeongnam.com/mnews/newsview.do?mode=newsView&newskey=20180426.010210749320001

 

 

 

원래 저녁 7시 30분부터 독서 토론이 시작됩니다. 그런데 인터뷰 시간이 늘어난 관계로 8시 조금 넘은 뒤에야 토론을 시작했습니다.

 

 

 

 

 

 

 

 

 

 

 

 

 

 

 

 

 

 

* [레드스타킹의 선택] 권김현영 엮음 《피해와 가해의 페미니즘》(교양인, 2018)

 

 

 

이 책은 우리나라 페미니스트가 더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페미니즘 공부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독자에게는 읽기 어려운 책일 수 있습니다. 진○님은 이 책을 두 번 읽고서야 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특히 권김현영 님이 쓴 1장(『성폭력 2차 가해와 피해자 중심주의의 문제』)은 꼼꼼히 읽어볼 필요가 있어요. 멤버들은 1장에 단번에 이해되지 않는 몇몇 내용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효○ 님은 “피해자 중심주의에 벗어나라”는 권김현영 님의 입장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동안 여성들은 성범죄가 일어나면 피해자 여성의 입장을 이해해주고, 무조건 피해자의 편을 들어줬습니다. 피해자를 적극 지지해주는 것만이 페미니스트의 역할이고 성폭력을 근절하기 위한 정치적 운동의 목적으로 생각했던 거죠. 그런데 권김현영 님은 ‘피해자’와 ‘가해자’를 철저히 구분하면서 성폭력 문제에 접근하는 것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혜○ 님은 권김현영 님이 쓴 ‘들어가는 글’ 9쪽의 문장을 보자마자 슬펐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그 문장을 인용해보겠습니다.

 

 

 언제까지 페미니즘 정치학은 피해 경험의 공통성에서 의식 고양의 ‘땔감’을 구하고, 분노하고 폭로하는 정치를 반복해야 하는 것일까. 늘 같은 곳을 맴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수많은 문제적 개인들을 지목하면서 가해의 목록을 늘리고 피해 증거를 수집하며 억압받는 경험의 공통성에 천착하는 것은, 결국 여성을 피해라는 현실에 정박시키는 것은 아닐까.

 

 

‘의식 고양(consciousness raising)’이란 1960년대 급진 페미니스트들이 여성의 주체성을 찾기 위해 현실적인 문제점(가부장제 사회, 남성중심주의 문화)을 비판하고 그것에 대항하여 극복하려는 의식을 고취하는 운동 방식을 의미합니다.

 

 

 

 

 

 

 

 

 

 

 

 

 

 

 

 

 

 

* 앨리스 에콜스 《나쁜 여자 전성시대》(이매진, 2017)

 

 

 

의식 고양 운동을 전개한 급진 페미니스트들은 낙태 경험, 성폭력 경험 등을 공유하고 나누는 모임을 결성하거나 관련 집회를 열었습니다. 그녀들은 세상을 바꾸기 위해 이론에 갇히지 않고 현실에 맞서 싸웁니다. 하지만 70년대 전후 이후부터 급진 페미니스트의 입지는 좁아지고, 페미니즘 내 노선 분열이 장기화하면서 여성해방 운동은 ‘의식 고양’만 외치는 수준으로 그치고 맙니다. 급진 페미니스트 특유의 행동주의가 사라지면서 급진 페미니즘이 표방한 정치성(“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이다”)은 희미해지고 말았습니다. ‘급진 페미니즘의 전성기와 쇠퇴기’를 잘 보여준 《나쁜 여자 전성시대(이매진, 2017)는 의식 고양 운동을 효과적으로 전개하지 못한 급진 페미니스트들의 한계를 확인할 수 있는 책입니다.

 

다시 권김현영 님의 글로 돌아갑시다. 권김현영 님은 피해자의 경험 및 입장에 동일시하고, 피해 사실 폭로에 급급한 페미니즘 정치학이 피해 여성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혜○ 님은 피해 여성만 확인하는 수준에 머무르고 마는 페미니즘 정치학의 한계가 안타깝게 느껴져서 서글펐다고 했습니다. 지난번에 있었던 ‘경북대 미투’ 기자회견에 참석한 은○ 님은 성폭력 피해자를 만나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피해자를 연대하는 방식에 어려움을 느낀다는 것이죠. 은○ 님의 의견과 비슷한 내용이 권김현영 님의 글에 나옵니다.

 

 

피해 사실 공론화에 동참한 지지자들 역시 어려움을 겪는다. 용기의 대가가 신상 위협으로 이어지는 사회에서 피해자는 자신을 지지하고 연대했던 이를 가장 미워하기도 한다. 자신의 피해를 앞세워 대의를 확인하려던 건 아니냐며 피해자가 연대자를 비난하는 경우는 자주 목격하고 경험한 일이다. (26쪽)

 

 

저도 그랬습니다. 실제로 미투 운동을 계기로 성폭력 경험 사실을 폭로한 피해자를 만나 봤는데요, 피해자 마음속에 남아있는 정신적 상처를 건드리지 않고 피해자를 지지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잘 몰랐습니다. 그분이 담담하게 자신의 아픈 경험을 말했을 때 저는 어떠한 ‘조언’을 하지 않고, 경청만 했습니다. 저는 친족 성폭력 피해자인 일본 여성이 쓴 수기 《소생하는 영혼》 (현민시스템, 1996)에 있는 구절을 잊지 않았습니다.

 

 

 

 

 

 

 

 

 

 

 

 

 

 

 

 

 

* [품절] 호즈미 준《소생하는 영혼》(현민시스템, 1996)

 

  사람에게 ‘조언’은 필요 없다. 사람은 본래 자기 안에 회복에 필요한 모든 것, 답도, 힘도, 지니고 있다.

  정말 고통스러웠을 때 아무 말 없이 그저 가만히 울게 놔두었던 사람이 있었다. 설교, 조언, 위로, 일체 없이, 울음이 그칠 때까지 울게 놔두었던, 넉넉한 가슴의 소유자가 있었다. 그리고는 아무 말 없이 눈물을 닦아준 사람이.

  사람에게 재출발할 용기를 주는 것은 이런 부드러움이다.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도 나는 그 부드러움이 생각날 때마다 용기와 격려를 다시 얻게 된다.

 

(252쪽)

 

 

 

성폭력에 관한 편견이 강한 사람일수록 피해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인식이 낮아지고, 가해자와의 합의를 원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이러한 사회적 편견 때문에 성폭력 피해자들은 입을 열지 못합니다. 그리고 성폭력 피해자는 사회적 편견(“성폭력의 원인은 피해자의 몸가짐과 복장에 있다”)에 저절로 학습되어 착각하게 됩니다. “내가 잘못한 걸까?” 효○ 님은 자신이 감당해야 할 불명예와 사회적 편견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신고를 꺼리는 피해자의 상황을 ‘학습된 착각’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토론 시간이 부족해서 ‘문단 내 성폭력’ 문제를 다룬 2장과 정희진 님이 쓴 5장에 대한 깊이 있는 대화를 하지 못했습니다. 다음 주 월요일에 정희진 님의 글을 이어서 함께 읽기로 기약했습니다. ‘꽃페미’ 두 번째 강연(나영)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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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6 12: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4-26 17:02   좋아요 0 | URL
독서모임을 하면서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생기고 있네요. 이럴수록 더욱 겸손해야죠.. ^^;;

페크pek0501 2018-04-30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습된 착각이 많습니다. 영화 드라마 광고 등에서도 그걸 보면서 우리 머릿속에 입력되는 것들이 있어서 자신도 모르게 학습되어 버리는 거죠.
제가 읽은 책에도 그런 게 나옵니다. <재밌다고들 하지만~~>에.

cyrus 2018-05-01 11:53   좋아요 0 | URL
우리나라에 엄청난 흥행 기록을 세운 <건축학 개론>에 여성을 부정적으로 보는 남성의 시선, 또는 여성을 불편하게 만드는 장면이 많아요. 그런데 이런 문제 있는 장면을 그냥 지나치거나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제가 그랬어요. 영화를 호평하는 분위기에 나도 모르게 휩쓸리면 영화의 사소한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해요. ^^;;
 
인공지능의 시대, 인간을 다시 묻다 - 철학과 과학을 넘나드는 사고력 강의
김재인 지음 / 동아시아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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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컴퓨터가 대화를 나눈다. 대화 상대편이 컴퓨터인지 진짜 인간인지 대화 당사자인 사람이 구분할 수 없다면 그 컴퓨터는 진정한 의미에서 ‘생각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인공지능을 판별하는 기준으로 알려진 튜링 테스트(Turing test)이다. 영국의 수학자 앨런 튜링“과연 기계는 생각할 수 있을까?”라는 철학적 질문을 통해 진짜 인간의 반응과 컴퓨터의 반응을 구분하려고 했다.

 

하지만 미국의 철학자 존 설 ‘중국어 방(chinese room)’ 논증을 제시하여 튜링 테스트의 한계를 지적한다. 중국어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방 안에 있다. 방 안에는 중국어 문장을 만들 수 있는 컴퓨터 프로그램이 있다. 방 안에 있는 사람은 문틈으로 들어오는 중국어로 적힌 질문을 받으면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 답변을 보낸다. 질문자는 중국어 방에 있는 사람이 중국어를 잘 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중국어 방에 있는 사람이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할 줄 안다고 해서 그가 중국어에 능숙하다고 말할 수 없다. 존 설은 ‘중국어 방’의 역설을 들면서 튜링 테스트를 통과한 컴퓨터가 생각하는 능력을 가진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어느 쪽이 옳은지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 하물며 우리가 인간의 마음이나 의식을 100% 이해하는 건 아니다. 우리는 아직 스스로가 어떻게 자의식과 마음을 갖게 됐는지, 그것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규명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컴퓨터의 기능이 인간과 유사하다면 컴퓨터가 인간의 마음을 갖는다고 믿는다. 그리고 대부분 사람은 인간의 총체적 지적능력을 초월한 초인공지능이 어느 순간 우리 앞에 나타날 것이라며 두려워한다.

 

‘철학의 위안’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두 권의 책이 있다(한 권은 고대 로마의 철학자 보이티우스가 쓴 것이고, 또 다른 한 권은 알랭 드 보통의 에세이집이다). 우리는 철학이라고 하면 어렵고 지루한 학문으로 생각한다. 과연 철학은 인공지능 시대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차분하게 해줄 수 있을까? 철학이 편안함과 정서적 위안을 주는 차(茶)가 될 수 있을까? 위안까지는 아니지만, 우리 마음속에 맴도는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과 걱정을 가라앉히는 데는 철학만 한 게 없다. 《인공지능의 시대, 인간을 다시 묻다(동아시아, 2017)인공지능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존재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시도한다. 김재인이 서울대에서 강의한 ‘컴퓨터와 마음’이라는 제목의 철학 강좌를 정리한 책이다. 저자는 질 들뢰즈 연구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 책에 들뢰즈에 대한 언급(133, 174쪽)이 빠질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을 읽기 전에 지레 겁먹을 필요 없다. 이 책에서 들뢰즈는 저자의 논변을 ‘거들고 있는’ 엑스트라다. 사실 이 책에서 주연급으로 나오는 철학자는 플라톤데카르트다.

 

저자는 튜링의 오래된 질문, 즉 “과연 기계는 생각할 수 있을까?”에 대한 답변을 내놓기 위해 몸과 마음, 생각, 시간 등에 관한 주제들을 놓고 ‘사고 실험’을 시도한다. 인공지능 기술을 이해하는 것(과학적 접근법)과 철학적 성찰(인문학적 접근법)은 인공지능 시대를 바라보는 서로 다른 두 개의 창이 아니라 하나의 창구로 통하는 겹창이다. ‘마음’과 ‘의식’은 인간의 영원한 숙제요, 탐구대상이다. 고도의 과학기술을 자랑하는 시대지만 아직 마음과 의식의 헤아릴 수 없는 복잡성과 깊이에 대해 밝혀낸 것은 없다. 따라서 철학의 궁극적 목표는 결국 마음과 의식의 본질을 알고 그것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능력, 그 ‘내공’을 획득하기 위한 것인지 모른다. 저자는 이 ‘내공’이 실질적으로 우리가 배워야 할 것, 즉 ‘창조성’이라고 말한다. 문제를 제기하고, 어떤 일을 성취하기 위해 목표를 세우는 것 등의 창조적인 일에는 많은 시행착오가 따른다. 인공지능이 시행착오, 즉 ‘버그(Bug)’를 만나면 작동이 멈춘다. 창조적인 일은 인공지능이 해야 할 몫이 아니다. 따라서 창조성은 ‘인간다운 삶’을 위해 우리 스스로 지켜야 할 능력이다.

 

저자는 초인공지능의 등장을 두려워하는 일부 독자들을 안심시킨다. 그는 인공지능을 지나치게 ‘의인화’하는 분위기가 인공지능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고 지적한다. 튜링의 질문에 대한 저자의 답변은 이렇다. “기계는 (인간처럼) 생각할 수 없다.”

 

이 책은 저자가 소개하는 철학 용어와 철학자들의 입장들을 이해할 수 있으면 마치 실타래가 풀리듯 한 호흡에 끝까지 내달릴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철학과 과학을 넘나드는 사고력 강의’라는 부제를 감안하면 과학보다는 철학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느껴져서 아쉬움이 남는다. 그리고 너무나도 많은 철학적 내용을 다루다 보니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못한 채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는 부분이 보인다. 170~175쪽에 저자가 새뮤얼 버틀러《에레혼》(김영사, 2018)의 ‘기계들의 책’을 인용한 내용이 나온다. 버틀러는 기계를 하나의 ‘유기체’로 이해했으며 기계도 인간처럼 진화하여 ‘재생산(생식)’ 체계를 가진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저자는 이러한 버틀러의 생각을 ‘기계(기술)의 진화’를 예언하는 입장인 것처럼 설명했는데, 실은 버틀러는 ‘기계의 진화’를 부정적으로 생각했다. 그는 ‘기계의 진화’로 인해 인간이 기계에 종속되는 미래를 풍자하고 비판하기 위해 《에레혼》을 썼던 것이다. 따라서 《에레혼》의 ‘기계들의 책’은 기계의 진화적인 측면을 강조하기 위한 내용으로 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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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6 09: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4-26 11:40   좋아요 0 | URL
인공지능의 시대가 와도 불평등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거예요. 돈, 정보, 그리고 기술을 가진 자가 더 많은 이익을 가질 것이고, 이들을 중심으로 부가 편중될 것 같습니다. 인공지능 도입으로 일자리를 잃거나 그만 두어야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빈부 격차는 더욱 커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