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은 인간을 어떻게 진화시켰는가
애덤 윌킨스 지음, 김수민 옮김, 김준홍 감수 / 을유문화사 / 2018년 2월
평점 :
품절


 

 

 

사과 같은 내 얼굴 예쁘기도 하지요. 눈도 반짝 코도 반짝 입도 반짝 반짝. 오이 같은 내 얼굴 길기도 하구나. 눈도 길쭉 귀도 길쭉 코도 길쭉길쭉. 호박 같은 내 얼굴 우습기도 하구나. 눈도 둥글 코도 둥글 입도 둥글둥글”

 

 

‘사과 같은 내 얼굴’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동요를 누구나 어릴 적 한 번 정도는 배워봤을 동요다. 사과 같은 얼굴은 앙증맞고 귀여운 아이들의 얼굴을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어릴 적에 동요를 듣고 있으면 정말 내 얼굴이 사과같이 예쁘긴 한지 생각한 적이 있었다. 얼굴 윤곽은 그 사람의 인상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다. 아름다운 얼굴에 대한 기준은 시대와 사회마다 다르지만, 호감 있는 얼굴은 얼굴 전체가 조화를 이루고 안정감을 준다. 우리는 스마트폰과 텔레비전을 보면서, 또 단순히 길을 걸을 때도 무심코 외모지상주의를 받아들이고 있다. 그 사람이 누구이든 무엇을 하든 어떻게 살아왔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단지 보이는 얼굴이 예쁘냐 아니냐에 초점이 있을 뿐이다. 외모가 사생활은 물론 취업이나 승진 등 인생의 성공까지도 좌우하게 된다고 믿는 사람들은 너도나도 다투어 외모 가꾸기에 나선다.

 

얼굴이 예쁘면 만사형통인가. 정말 얼굴은 꼭 필요한가. 인간에게 얼굴이 없다면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을까.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인간은 얼굴을 가지게 되었을까. 왜 얼굴에는 눈, 코, 입이 달려 있을까. 나는 얼굴이 있다는 사실을 당연하게 생각했지만, 얼굴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궁금하게 여긴 적이 없는 것 같다. 《인간을 어떻게 진화시켰는가》(을유문화사, 2018)는 이러한 궁금증을 해소한 책이다. 이 책은 얼굴의 해부학적 구조뿐만 아니라 얼굴이 탄생되는 진화 과정, 사회적 의미, 언어 능력 등 ‘얼굴이라는 세계’의 역사를 소개한다.

 

이 책을 쓴 저자는 진화생물학자이다. 저자는 ‘얼굴의 진화적 기원’을 설명하기 위해 생물학, 유전학, 뇌과학, 인류학 등 다양한 분야의 학문을 동원한다. 이 책에 다뤄진 내용이 너무나 다양하고 방대하다. 인내심을 가지고 읽어야 한다. 아니면 서론, ‘결론’에 해당하는 이 책의 각 장 끝부분 순으로 먼저 읽어도 좋다. 이 책에서 말하는 저자의 핵심 주장을 미리 파악하고 난 후에 얼굴과 관련된 지식을 총괄하여 정리한 ‘총론’에 해당하는 본문에 접근할 수 있다.

 

저자에 따르면 얼굴 진화의 핵심은 언어다. 언어는 인간에게 고유하다. 침팬지는 훈련을 통해 몇 개의 말을 배울 수 있지만, 얼굴 근육을 잘 움직일 수 없어 극히 제한된 단어만 발음할 수 있다. 얼굴 근육을 가진 인간은 언어를 통해 대량의 정보를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달할 수 있었다. 인간이 가진 얼굴 근육은 지구상의 어떤 동물보다 많다.

 

찰스 다윈은 표정이 진화의 산물이라고 했다. 다윈의 주장은 얼굴의 기원을 추적하기 위한 탐구의 시작점이다. 개가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리는 것은 막 공격을 하겠다는 신호다. 인간의 표정은 동물처럼 직접적인 표현이 아니라 상징적인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사용된다. 진화는 인간이 표정을 통해 무언가 얻고자 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졌다.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누군가에겐 직접 그의 입을 통해 기분 상태를 듣지 않더라도 조심하게 된다. 멀리 맹수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순간 자신도 모르게 공포감을 느끼는 표정을 지음으로써 다른 사람의 도움을 불러올 수 있다. 얼굴은 인류 초기에 형성된 진화의 산물이다. 인간은 진화하는 과정에서 초기 인류의 조상에 가까운 유인원에 속하는 호미닌(hominin)과 다른 형태의 얼굴을 가지게 된다. 얼굴에 자란 털이 사라졌고, 주둥이는 짧아졌다. 인간의 얼굴은 손과 입을 이용하여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됐다. 얼굴 표정과 말하기 행위가 활발해지자 얼굴 근육을 움직이게 하는 뇌의 신경 회로와 언어를 생산하는 또 다른 신경 회로가 서로 연결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얼굴이 완전히 발달하려면 그것을 촉진하는 화학적 물질이 필요하다. 신경능선세포에 의해 분비되는 섬유모세포성장인자8(FGF8)이 없으면 뇌가 만들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뇌가 발달하면 소닉 헤지호그(sonic hedgehog, SHH)라는 단백질이 분비된다. 이 물질은 얼굴의 형체를 결정할 뿐만 손가락과 발가락의 성장도 결정한다. 신경능선세포, FGF8, 그리고 SHH 이 세 가지 화학적 물질이 생소할 수 있지만, 알고 보면 인간의 생존에 직결된 신체 구조를 만들어내는, ‘절대로 없으면 안 될 존재’이다. 저자는 얼굴을 형성하는 유전적 기반을 설명하기 위해 타당성 있는 가설들을 제시하고, 비교 검토한다. 비록 확실한 결론을 내리지 않았으나 저자는 지금까지 나온 연구 결과들을 토대로 얼굴 발달에 관여하는 유전자가 최대 2만 개까지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아마도 새로운 연구 결과들이 나온다면 책 속 저자의 견해는 수정될 것이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로 진화할 수 있었던 것은 얼굴의 진화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인간은 상대방의 얼굴을 인식하고, 상대방의 표정을 읽으며, 자신의 표정을 만들어 내고, 자신의 말을 전달한다. 손뼉이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이, 얼굴도 마주쳐야 말이 나온다.

 

 

얼굴을 인식하는 능력은 그 자체로 다가 아니라 흔히 사회적 상호작용의 서막을 여는 역할을 한다. 두 사람이 마주쳤을 때 서로를 인식한 후에 일반적으로 적절한 얼굴 표정을 지으며 짧은 말을 주고받는다. 사실상 대부분의 얼굴 표정은 사회적 상호작용에서 특히 대화를 나누는 도중에 만들어진다. (361쪽)

 

 

사람과 사람이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면서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공유하며 마음도 나누는 행위라는 의미가 있다. 1인 가구가 많아지면서 혼자 밥을 먹는 사람이 늘고 있다. TV나 스마트폰, 컴퓨터를 앞에 두고 김밥을 먹고, 햄버거를 먹고, 라면을 먹는 사람이 많다. 집 바로 옆에 사는 이웃인데도 얼굴만 몇 번 마주치고, 말 한마디 한 번도 나눠본 적이 없는 사이가 되기도 한다. 매일 말을 맞대고 얼굴을 마주 보고 살면서 느낄 수 있는 따뜻한 유대감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이러면 더 많은 소통을 가능케 하는 사회성이 결핍된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다. 사회적 상호작용을 불러일으키는 기능이 사라진 일부 얼굴은 퇴화의 조짐을 보인다. 사람보다는 스마트폰을 더 좋아하고, 이웃과 단절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이 시대 속에 얼굴은 본심을 위장하는 ‘가면’으로 남게 될지도 모른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prenown 2018-05-01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름답다.잘생겼다. 라는 미의 기준이 언제부터 생겨나 오늘날 성형열풍으로
이어졌는지, 또 차별의 기준이 되었는지 궁금해지는군요.^^

cyrus 2018-05-01 18:45   좋아요 1 | URL
제가 서론을 책의 주제와 전혀 상관없는 내용으로 쓴 것 같군요. 사실 이 책에 ‘미의 기준’을 다룬 내용은 없어요. 미의 기준은 아주 오래된 시절부터 존재했죠. 움베르토 에코의 <미의 역사>를 보면 시대별로 나타난 미의 기준들을 살펴볼 수 있어요. ^^

stella.K 2018-05-01 1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사람이 사랑을 많이 받고 살았는가 아닌가가
얼굴에 나타나잖아. 밝기도 그렇지만 표정이 풍부하거든.
그게 얼굴 근육을 많이 써서라잖아.

딴 얘기지만 엊그제 머리 짜르러 미용실 갖는데
헤어 디자이너들은 머리 카락에서 그 사람의 나이를
알아 맞히지 않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나더군.ㅋ

cyrus 2018-05-01 21:39   좋아요 1 | URL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해서 친구 이외에 낯선 사람을 만나는 일이 없어요. 그래서 낯선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 표정 관리를 못해요. 민망한 말을 듣거나 민망한 상황에 처하면 얼굴이 쉽게 붉어지고 그래요.. ㅎㅎㅎ

육안으로 머리카락을 보고 사람의 나이를 맞추는 건 불가능할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