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아스 파괴에 관한 간략한 보고서 - 16세기 중남미 정복과 관련한 유럽인의 양심선언, 북스페인 라틴총서
바르똘로메 데 라스 까사스 지음, 최권준 옮김 / 시타델퍼블리싱(CITADEL PUBLISHING)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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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티는 1492년 인도 항로를 찾아 항해에 나선 콜럼버스(Columbus)가 카리브해의 서인도 제도에서 발견한 땅 중 하나이다. 이 섬에는 원주민이 살고 있었지만, 콜럼버스 일행은 에스파냐(스페인)의 영토라는 의미가 담긴 ‘에스파뇰라(Española)로 이름 붙였다. 이 섬에 당도한 에스파냐의 정복자(conquistador)들은 수백 명의 군대와 개를 동원하여 원주민을 무자비하게 학살했다. 콜럼버스와 에스파냐의 목표는 오직 금이었다. 원주민들은 백인들이 옮긴 전염병 때문에 거의 멸종됐고, 정복자들은 아프리카에서 흑인들을 노예로 강제로 끌고 와 금 채굴에 나섰다.

 

정복자를 ‘항해가’ 또는 ‘모험가’로 부르던 시절이 있었다. 그들은 남다른 모험 정신을 가진 자, 용기 있게 떠나는 자, 광대한 꿈을 가진 자였다. 그러나 새로운 세계에 대한 야심만만한 꿈은 잔인한 정복욕이 되었다. 정복자들은 무자비하게 원주민들을 학살하고 금을 약탈했으며 토착 문명을 파괴한 자리에 자신들의 문명을 주입했다. 한 세계가 다른 세계를 발견(또는 관찰)하는 대항해 시대는 결코 낭만적이지 않았다. 발견과 정복은 결국 타인의 땅을 침입하여 빼앗는 모험이며, 대항해 시대의 모험은 본질적으로 침입과 약탈의 습성을 닮았다.

 

대항해 시대 이후 불붙은 유럽의 식민지 정복은 신의 이름으로 야만을 단죄했다. 도시 문명이 발달한 유럽이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원주민을 바라보는 시선은 철저히 자기중심적이고 일방적이었다. 과연 그들의 주장처럼 ‘야만’은 발견된 것일까. 약탈 행위와 원주민 학살이 진정 그들이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문명화를 위한 사명’ 때문이었을까. 콜럼버스와 동시대에 살았던 라스 카사스 신부(Bartolomé de Las Casas)는 일찍이 문명이 남긴 땅의 상처를 보듬으며 정복자들이 저지른 반인륜적 행위를 규탄했다. 그가 쓴 《인디아스 파괴에 대한 간략한 보고서》에는 에스파냐 정복자와 군인들의 잔인한 만행이 적나라하게 기술되어 있다. 콜럼버스는 카리브해에 흩어져 있는 여러 섬을 인도의 일부, 즉 인디아스(Indias)라고 믿었다. 그래서 유럽인들은 카리브해 쪽 지역을 서인도, 진짜 인도를 동인도라고 불렀다. 콜럼버스가 발견한 항로 덕분에 서인도 제도는 유럽인의 활동 무대가 되었다. 반면에 원주민들에게는 수난의 역사가 시작되는 비극의 무대였다.

 

라스 카사스의 책은 단적으로 말하면 에스파냐의 카리브해 정복사가 아니라 카리브해 원주민들의 피착취사다. 에스파냐의 정복자들은 원주민에게 복음 전파를 위해서는 살육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원주민은 천성적으로 미개하여 이성으로는 설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성과 사리 분별력이 있는 기독교인들은 ‘야만인들’에게 우월한 문화를 강제로 부여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원주민의 권리와 정체성을 둘러싼 에스파냐 정복자들의 식민주의적 관점은 에스파냐의 식민지 정복 사업과 식민지 통치 정책을 놓고 벌어졌던 ‘라스 카사스-세풀베다 논쟁(바야돌리드 논쟁)에서 이미 모습을 드러냈다. 에스파냐의 인문주의자 세풀베다(Juan Ginés de Sepúlveda)는 유럽인의 원주민 정복을 지지했다. 라스 카사스는 원주민도 ‘하느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인간’이므로 그들이 태생적으로 노예가 될 수 없다고 반박했다.

 

라스 카사스는 직접 서인도 제도의 섬을 다녀온 적이 있다. 그는 에스파냐 기독교인들의 만행을 가까이서 지켜봤다.

 

 

 기독교인들은 말을 타고서 그들의 칼과 창으로 원주민들을 학살하고 괴상한 잔혹함을 저지르기 시작했습니다. 에스빠냐인들은 마을로 들어가서 마치 우리에 갇힌 어린 양들을 공격하는 것처럼 어린이, 노인, 임산부, 아직 배를 가르지 않은 산모도 내버려두지 않고 공격하였습니다. 에스빠냐인들은 누가 단칼에 사람을 두 동강 내는지 혹은 말뚝으로 머리를 자를 수 있는지 창자를 들어내는지 내기를 하곤 하였습니다. 젖을 먹고 있는 젖먹이를 두 발을 잡고서 어머니의 젖가슴에서 떼어내어 바위에 머리를 내동댕이쳤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갓난아이를 뒤로 강에 던지고서는 웃고 조롱하면서 어서 발부둥치라고 말하곤 하였습니다. 어떤 이들은 자신 앞에 있는 모든 갓난아이들을 그 어머니와 함께 칼로 찔렀습니다. 구세주와 12사도를 기념하여 거의 땅에 발이 닿도록 13개씩 교수대를 설치해놓고 장작에 불을 지펴 산 채로 태워 죽였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몸을 마른 짚과 함께 묶고는 불을 질러 태웠습니다.

 

(『에스빠뇰라 섬에 대해』 중에서, 23쪽) 

 

 

에스파냐인들의 ‘원주민 씨 말리기’는 신의 이름으로 자행된 폭력이었다. 정복자들은 원주민들에게 믿음을 강요했고, 저항은 처절하게 응징했다. 이후 수백 년 동안 복음과 총칼로 무장한 서구 문명의 탐욕 앞에 공존은 없었다. 사실 ‘신대륙 발견’이라는 표현에는 서구 중심적 시각이 반영되어 있다. 유럽인에겐 새로운 대륙이지만, 그 땅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원주민들이 전통과 문화를 가꾸며 살아왔다. 유럽인들은 십자가와 총포를 들고 땅에 ‘상륙’했지, 발견한 것은 아니었다. 라스 카사스의 책은 유럽 중심의 잘못된 세계관과 편견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수준에 미치지 못했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대항해 시대의 어두운 이면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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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12 16: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11-13 08:15   좋아요 0 | URL
그렇죠. 라스 카사스 신부가 유럽의 식민지 약탈 문제를 공론화해도 정복자들은 침략과 약탈을 멈추지 않았어요.
 
얼굴은 예술이 된다 - 셀피의 시대에 읽는 자화상의 문화사
제임스 홀 지음, 이정연 옮김 / 시공아트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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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은 어떻게 봐야 하나. 화가의 의도, 구성 방식 등 여러 사항이 있지만, 그것이 정답일 수는 없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상투적이지만, 그냥 천천히 하나하나씩 세심하게 바라보는 일이다. 자화상에는 화가의 기술적 숙련성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성격이나 관심 그리고 화가가 속한 한 시대의 풍경까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러므로 자화상은 화가 개인의 얼굴이고, 역사이고, 기억이다. 화가가 살아온, 살아낸 자취들로 자욱하다. 따라서 자화상은 책이다. 《얼굴은 예술이 된다》는 예술가의 ‘얼(spirit: 정신)과 ‘굴(form: 형상)을 담는 미적 표현으로 예술가의 자화상에 초점을 두고, 중세부터 시작된 ‘셀피(selfie)’ 문화 읽기를 시도한다. 이 책이 주목한 것은 자화상에 남아있는 예술가의 흔적, 즉 자기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이다. 그들은 어떻게 이 세상을 표현했고, 어떻게 자기 삶을 살고 갔을까? 예술도 적어도 세상의 변화를 감지하면서 동시에 삶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한 방식이다.

 

미술사에서 자화상의 발전은 거울의 발명과 기술력에 의존해서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 있다. 고대에는 은이나 청동, 금속을 가공해서 거울을 만들었고, 오늘날에 쓰이는 유리 거울은 17세기 유럽에서 그 절정을 이루었다. 그림과 거울은 의미적인 면에서 다양함을 전해준다. 인간 존재와 거울의 갈등 관계, 즉 선악의 문제, 보는 자와 보이는 자의 양면적 관계 속에서 늘 화가들은 고민해 왔으며 자화상을 통해 내면적 자아를 표출해 내기도 했다. 그런데 이 책은 유리 거울에 비친 상(象)을 똑같이 그리는 자화상의 일반적 정의가 자화상에서 확인할 수 있는 화가의 다양한 변주를 축소한다고 강조한다. 책의 저자는 자화상의 의미를 조금 더 확장하여 접근한다. 그는 또 거울 기술의 발달과 자화상은 크게 관련이 없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이제까지 통용되어 온 ‘거울 신화’는 자화상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중세 시대 미술의 참모습을 가려왔다. 그래서 이 책은 흔히 ‘암흑의 시대’로 알려진 유럽 중세를 찬란한 빛의 미술을 꽃피운 시대임을 강조하면서 중세에 나온 자화상들을 소개한다. 중세의 자화상은 수도원에서 제작한 필사본에 많이 등장한다.

 

책은 사회적 상황에 따라 예술가들의 ‘자신’에 대한 인식과 표현 방식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보여준다. 대부분 예술가는 아틀리에에 있는 거울을 유심히 바라보면서 자신의 모습을 화폭에 똑같이 재현한 건 아니었다. 15세기까지 예술가들은 자화상에 자신을 드러내더라도 (유심히 살펴보지 않으면 발견하기 힘들 정도로) 주변 인물로 등장하거나 심지어 다른 인물로 위장한 모습으로 묘사되곤 했다. 이 시대 예술가들의 사회적 지위는 그다지 높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술가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면서 자신의 재능과 명성을 직설적으로 표현한 자화상이 등장한다.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r)는 화가로서 분명한 자의식이 담긴 자화상을 그렸다.

 

‘얼’, 즉 정신(영혼, 기분,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기에 그것을 시각화한다는 것은 사실 말도 안 되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림이란 이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것, 보일 수 없는 것을 어떻게든 시각화하고자 애쓰는 일이다. 시스티나 대성당 천장화는 미켈란젤로(Michelangelo)의 재능보다 혼(spirit)이 담긴 걸작이다. 미켈란젤로는 4년 동안 엄청난 작업의 진행 계획을 짜고 거기에 따라 일을 진행해나갔다. 천장 밑에 세운 작업대에 누운 채 천장에 물감을 칠해나가는 고된 작업이었다. 이로 인해 눈과 목에 이상이 생기기도 했지만, 그는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혼자서 4년 만에 이 대작을 완성했다. 몸을 혹사할 정도로 힘든 작업에 불만이 많았던 미켈란젤로는 한껏 몸을 뒤틀며 그림을 그리는 모습의 캐리커처를 통해 자신의 심정을 표현했다.

 

카라바조(Caravaggio)는 자신의 그림에 등장하는 살인자 혹은 살해당한 자의 얼굴을 자신의 얼굴로 묘사했다. 그의 작품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을 보면 다윗이 잘린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있다. 다윗은 젊은 카라바조를, 골리앗은 중년 카라바조를 의미한다. 젊은 카라바조가 타락한 중년 카라바조를 살해하는 의미로 해석되는 이 그림 속에 실제로 살인을 저지르기도 했던 화가의 참회가 반영되어 있다.

 

온전히 ‘나’를 소재로 그림을 그리는 일은 아무래도 어렵다. 수많은 자화상을 남긴 고흐(Gogh)는 동생에게 보낸 편지에 자신을 아는 것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자신을 그리기도 어렵다”고 고백했다[주]. 우리는 거울 안에 비친 제 모습으로부터 내면을 찾아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거울은 내 외모를 잠깐 확인하게 해줄 뿐이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에는 ‘굴’만 있다. 내가 생각하는 ‘나’, 즉 ‘얼’은 이미 거울 속에 없다. 이 책에 나오는 자화상 대부분은 전통적인 자화상과 거리가 멀다. 예술가들은 자신의 모습을 똑같이 그리기보다는 참신하고 개성 있는 형태(다른 사람으로 변장하거나, 가면을 쓰거나, 얼굴 형태를 변형하는 방식)로 구현하면서 내면의 깊이를 전달하려고 했다. 따라서 자화상은 끊임없이 거울을 깨고 변화하지 않으면 틀(거울에 비친 상)에 갇히고 마는 장르이다. 자화상이 참된 예술로 구현되기 위해서는 예술가 자신만의 시간도 필요하지만, 자신의 모습을 다양하게 변주할 수 있는 상상력도 필요하다. 훌륭한 자화상이란 완성되었어도 ‘지금도 나를 찾고 있는’ 그림이다. 자화상은 시간과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내면의 감정을 가시화하는 현재진행형 예술이다.

 

 

 

[주] 제임스 홀, 이정연 옮김, 《얼굴은 예술이 된다》, 시공아트, 3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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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09 16: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11-12 12:55   좋아요 0 | URL
저도 그래요. 게다가 읽어야 할 책들이 많아서 북플 접속이 뜸해졌어요. ^^;;

페크pek0501 2018-11-10 18: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타인에 대해 알기 어려운 만큼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알기 어렵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어떤 경험을 하면서 또는 책을 읽으면서 또는 다른 방법으로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에 있다고 할 수 있을 뿐, 다 알았다고 마침표를 찍을 수는 없겠지요.
어제와 다른 오늘의 내가 있고, 오늘과 다른 내일의 내가 있을 테니까요.

cyrus 2018-11-12 12:57   좋아요 0 | URL
글을 쓰면서 과거에 했던 생각과 지금의 생각이 조금씩 달라졌다는 걸 느껴요. ‘나‘에 대해서 글을 쓰려면 자서전 같은 글 한 편으로는 안 되겠어요. ^^
 
화가는 무엇으로 그리는가 - 미술의 역사를 바꾼 위대한 도구들
이소영 지음 / 모요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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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실력이 탄탄한 화가라면 재료와 도구에 구애받지 않고 훌륭한 작품을 완성할 수 있다. 화가들은 당대 최신 도구와 재료를 사용하는 데 누구보다 앞선 ‘얼리 어답터(early adopter)였다. 미술사의 여러 거장은 그럴듯한 그리기 방식만을 만든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그림을 그리기 위해 필요한 재료와 도구를 직접 선정하면서 이용할 줄 아는 진정한 예술가들이다.

 

《화가는 무엇을 그리는가》서양 미술사를 빛낸 진정한 조연들에 대한 책이다. 화가가 주연이라면 화가들이 사용한 재료와 도구가 조연이다. 대부분의 미술사는 주연에 집중돼 있다. 그러나 이 책은 화가들이 즐겨 썼던 미술 재료와 도구를 통해 미술의 흐름을 읽어나가도록 한다. 화가들은 특별한 재료와 도구를 가진 것이 아니고,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을 이용하여 작품을 만든다.

 

 

 

 

 

 

인간은 불을 도구로 사용하여 다른 동물들과는 차별된 지점을 갖게 되고 인류로서 살아가게 된다. 인류학자들은 불을 사용하여 요리하며, 인류가 크게 진화했다고 주장한다. 이런 불의 이용은 인류의 먹을거리 행태에도 큰 획을 그었다. 그뿐만 아니라 불은 동굴에서 사는 인간에게 ‘그림 그리는 방식’을 안겨주었다. 인간이 사용한 최초의 미술 도구는 ‘불’이었다. 구석기 시대 인간들은 불빛을 조명 삼아 동굴 벽화를 그렸다. 화려한 유채색은 아니지만, 동굴 벽화에서 발견되는 붉은색과 갈색도 그림의 역사에서 빠뜨릴 수 없다. 인간이 사용한 최초의 채색 안료는 붉은색 황토에서 추출한 물질이다. 인류 최초의 그림 쇼베(Chauvet) 동굴 벽화를 비롯한 라스코(Lascaux) 동굴 벽화 등 고대 구석기 시대 벽화는 대부분 곱게 간 황토로 만든 안료로 그려졌다.

 

 

 

 

 

 

유화가 나오기 전에 화가들이 많이 사용한 물감은 템페라(tempera)였다. 안료에 달걀노른자 등을 섞어서 만드는 템페라는 중세 이후에 유행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최후의 만찬』은 템페라로 제작된 작품이다. 템페라로 그린 그림은 빨리 마르는 것이 장점이지만, 이 때문에 색이 매우 불투명하고 강력해 계속 그림을 그려도 섞이지 않는다. 달걀은 템페라 물감의 중요한 재료였다. 책의 저자는 템페라를 ‘부엌에서 태어난 물감’이라고 말한다. 어쩌면 이 역사적인 물감을 만든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화가가 아니라 ‘부엌에서 일하는 여성들’이었을 것이다. 템페라는 오래 보관할 수 없다. 여성들은 날마다 부엌에 가서 달걀노른자와 안료를 섞는 지루한 일을 반복했을 것이다.

 

화가들은 템페라 그림의 장단점을 보완한 이후로 다양한 재료와 기법을 이용해 그림을 제작한다. 이로써 목제 패널화, 판화, 캔버스에 그린 유화 등이 출현하게 된다. 기하학적 원근법을 특징으로 하는 근대 회화는 사진과 같은 원리로 작동되는 광학 장치, 즉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에 기초하고 있다. 렌즈와 거울을 사용하면서 간편하게 들고 다닐 수 있는 나무 상자 형태로 발전한 카메라 옵스큐라는 18세기에 이르러 화가들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았다.

 

화가들은 손에 쥘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쓴다. 물감의 쓰임새도 다양하다. 손바닥이나 발바닥, 물건 등에 묻혀 꾹꾹 찍기도 하고, 문지르거나 뿌리기도 한다. 신문지, 모래, 돌멩이, 심지어 고철 기계 등 그림을 그리거나 공예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것이라면 일상생활 속의 모든 것들이 다 ‘미술’이 된다. 헤겔(Hegel)은 모든 사람이 예술가가 되는 순간 예술은 끝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술비평가 아서 단토(Arthur Danto)는 헤겔이 말하는 ‘예술의 종말’을 ‘예술가들의 해방’으로 해석했다. 지금도 예술가들은 일상적인 것을 예술로 변용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주3]. 허무맹랑한 소리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인간이 지구를 떠나 우주에서 생활하는 시대에도 예술가들은 우주를 소재로 작품을 만들 것이다. 팝 아트(Pop Art)의 거장 로버트 라우션버그(Robert Rauschenberg)는 나사(NASA)의 초청으로 아폴로 11호 발사대에 접근할 수 있었던 예술가 중 한 명이었다. 그는 나사가 추진하는 유인 우주 탐사 계획 ‘아폴로 프로젝트(Apollo Project)에서 인류가 지구를 넘어 우주로 새롭게 도약하는 희망의 증거를 발견했고, 아폴로 프로젝트를 주제로 한 연작 석판화를 제작했다. 이 작품을 만들기 위해 라우션버그는 나사가 제공한 수백 장의 우주 사진을 이용했다.

 

우리 사회는 변화에 관대하지 않다. 새로운 것을 추구하면 너무 지나치게 바꾸려고 한다면서 다소 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이 있다. 과연 그럴까. 변화의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게 능사일까. 변화를 지향하지 않는 세상에서 창조라든가 예술이라든가 하는 말은 가당치도 않다. 그렇지만 ‘얼리 어답터’인 예술가들은 변화와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훌륭한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 그 순간 그들은 자신들이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미의식을 구현하기 위해 새로운 재료와 도구를 찾아보거나 이것저것 다 사용해볼 것이다. 예술을 갈구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재료와 도구는 어디에나 있는 법이다.

 

 

 

 

[주1] 로잘린드 마일스 《최후의 만찬은 누가 차렸을까》 (동녘, 2005)

 

[주2] 카트리네 마르살 《잠깐 애덤 스미스 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 (부키, 2017)

 

[주3] 아서 단토 《일상적인 것의 변용》 (한길사,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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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8-11-07 1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상적인 것의 변용, 을 생각하니 예전에 책에서 보았던 변기가 생각나네요. 변기로도 작품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줬지요.

cyrus 2018-11-09 12:12   좋아요 1 | URL
똥도 예술 작품의 소재가 된 적이 있어요. 이탈리아의 예술가는 캔에 담은 자신의 똥에 ‘예술가의 똥’이라는 이름을 붙여 전시했어요. ^^;;
 

 

 

영국의 정령(spirit)의 나라다. 정령이 탄생한 배경이 된 고대 켈트인(Celts) 문화가 뿌리 깊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각 지방마다 특색을 갖춘 정령들에 대한 전설이나 민담이 전해진다. 기원전 6세기경 켈트인이 유럽에서 건너와 브리타니아(Britannia) 섬, 즉 현재의 영국에 정착했다.

 

 

 

 

 

 

 

 

 

 

 

 

 

 

 

 

 

 

* 박영배 《켈트인, 그 종족과 문화》 (지식산업사, 2018)

* 크리스티안 엘뤼에르 《켈트족》 (시공사, 1998)

 

 

 

카이사르(Caesar)가 기원전 55년에 브리타니아를 원정하고, 클라우디우스(Claudius) 황제가 다시 브리타니아를 정복한 후 400년 동안 로마의 지배를 받았다. 4세기 후반 게르만인(Germanen)의 대이동이 시작되어 로마군이 밀려났고, 이 기회를 틈타 게르만인의 일파인 앵글인(Angles)과 색슨인(Saxons)이 브리타니아를 침공했다. 그들은 섬에 사는 켈트인을 정복하고 거기에 왕국을 세우는데 그 나라가 지금의 영국, 즉 잉글랜드이다.

 

 

 

 

 

 

 

 

 

 

 

 

 

 

 

 

 

 

 

* 카이사르 《갈리아 전쟁기》 (사이, 2005)

* [절판] 리처드 루드글리 《바바리안 : 야만인 혹은 정복자》 (뜨인돌, 2004)

 

 

 

 

우리에게 가깝게 느껴지는 서양 신화는 어렸을 때부터 접해온 그리스 로마 신화다. 반면 로마인과 게르만인의 압박으로 밀려난 켈트족 신화는 낯설게 느껴진다. 카이사르는 자신의 저서 《갈리아 전쟁기》에서 켈트인들을 ‘수염도 제대로 깎지 않으며, 바지를 입은 야만인들’로 묘사했다. 그러나 켈트인들을 바라보는 카이사르의 시선에는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만들어진 서구 주류 역사의 편견이 반영되어 있다. 야만인, 즉 바바리안(barbarian)의 어원은 고대 그리스어의 ‘바르바로이(barbaroi)’에 있다. 이 말은 ‘그리스인들과는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라는 뜻을 담고 있었다. 그런데 이 중립적인 말이 그리스와 로마를 침략한 일군의 다른 민족들을 가리키게 되면서 야만 · 폭력 등의 부정적인 의미가 덧붙여졌다. 《바바리안 : 야만인 혹은 정복자》 (뜨인돌)《켈트인, 그 종족과 문화》 (지식산업사)는 켈트인이 로마 못지않은 훌륭한 문화를 가진 민족이었음을 보여주는 책이다. 켈트인의 문화적 수준은 로마보다 높았다. 켈트인 사회는 여성과 노약자를 존중할 정도로 권위적이지 않고 개방적인 사회였다. 따라서 바바리안은 그리스인과 로마인의 시각에 의해 왜곡된 단어이다. 그리스 · 로마인들은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을 ‘야만’이라는 이름의 울타리에 가뒀다.

 

 

 

 

 

 

 

 

 

 

 

 

 

 

 

 

 

 

 

 

 

 

 

 

 

 

 

 

 

 

 

* 이케가미 료타 《도해 켈트 신화》 (AK커뮤니케이션즈, 2014)

* 모리셰 료 《켈트 신화 사전》 (비즈앤비즈, 2014)

* 조지프 제이콥스 《켈트족 옛 이야기》 (현대지성사, 2003)

* 다케루베 노부아키 《켈트. 북구의 신들》 (들녘, 2000)

 

 

 

카이사르의 갈리아 원정이 성공하면서 갈리아는 로마의 영토로 편입되었고 켈트인은 자치권을 잃었지만, 켈트의 문화적 영향력은 사라지지 않았다. 켈트 신화와 켈트 문화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곁으로 성큼 다가와 있다. 미국의 축제 기념일로 알려진 핼러윈(Halloween)은 고대 켈트인의 풍습에서 유래했다. 그리스 로마 신화가 20세기 이전 서구 문학의 대문호들에게 영감을 줬다면, 상대적으로 환상적이고 초자연적인 색채가 짙은 켈트 신화는 게르만 신화와 함께 20세기 판타지 문학에 상상력을 제공했다. 서구 판타지 문학에 기본적으로 등장하는 마법사들은 켈트족의 드루이드(Druid) 사제들의 모습에서 유래한 존재이다. 흔히 ‘서양의 요정’으로 많이 알려진 엘프(Elf), 난쟁이와 거인족도 켈트 신화에 기대고 있다. 켈트 신화에는 싸움에서 패한 대지의 여신 다누(Danu)의 일족이 도망가서 새로운 낙원을 만들고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종족’, 즉 요정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요정을 믿지 않는 어른들을 위한 요정 이야기》

(책읽는귀족, 2016)

*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켈트의 여명》 (펭귄클래식코리아, 2008)

 

 

 

켈트 신화는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에 살았던 ‘게일인’ 신화와 잉글랜드와 웨일스에 살았던 ‘브리튼인’ 신화 등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켈트 신화가 낯설어서 선뜻 읽기가 망설여진다면, 정령이나 요정이 등장하는 아일랜드의 구전 민담을 읽어보는 것이 좋다. 아일랜드의 시인 예이츠(Yeats)는 게일인 신화와 민담을 수집하여 고대 켈트인의 문화유산을 복원하는데 큰 노력을 기울였다.

 

정령과 요정은 단순히 상상 속의 존재가 아니다. 요즘은 요정 이야기나 신화를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치부되지만, 그 속에는 먼 과거에서 긴 시간을 거쳐 인간이 이룩한 문화와 풍습, 그리고 풍부한 상상력이 녹아들어 있다. 신화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 한정되어 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만 너무 오래 붙들고 있을수록 서양 문화의 표준을 그리스 로마 신화에 두게 되고, 그 틀을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켈트인이 호전적인 민족이라서 켈트 신화에 그들의 잔인한 본성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묘사된 신들은 난폭하거나 잔인하며 교활하거나 방탕하다. 세대를 거듭하면서 축적된 인류의 신화를 ‘문명’과 ‘야만’으로 분류하고, 다른 민족의 신화와 그 속에 담긴 문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태도야말로 고대 그리스인들이 만든 이분법의 아류이다. 우리는 아주 오래전에 만들어진 ‘오만한 문명’의 고약한 버릇을 따라 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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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8-11-06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제가 좋아하는 용정과 전설 민담이야기네요.님이 적었듯이 앵글인과 색슨인(합쳐서 앵글로색슨족-현재 잉글랜드의 주류)가 브리타니아를 침공하여 거거살던 켈트인들을 스코틀랜드로 쫒아냈지요.현재는 영국인이지만 중세시대까지만 해도 앵글로색슨족과 켙트족들은 현재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로 나위어 피터지게 싸웠는데 비록 잉글랜드과 스코틀랜드를 병합했어도 민족이 틀려선지 지금까지도 스코틀랜드는 독립을 추구하는것 같네요.
참고로 바바리아하면 저는 코난(아놀드 슈왈츠제니거가 나온 영화-원작소설도 있음)이 생각납니다.

cyrus 2018-11-07 12:12   좋아요 0 | URL
호전적인 야만인 이미지를 대중에게 부각시킨 결정적인 영화가 <코난 더 바바리안>이지요. ^^

syo 2018-11-06 1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루스 박사님이시다..... 모르는 게 없으시다지?!

cyrus 2018-11-07 12:15   좋아요 0 | URL
박사님은 무슨... ㅎㅎㅎ 몇 주 지나면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된 내용, 기록했던 내용들 다 잊어버립니다. 글에 썼던 내용을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어서 독서모임을 자주 참석하려고 해요. 내가 알고 있던 내용을 말로 표현하지 않으면 잊어버려요. ^^;;

카알벨루치 2018-11-07 12:18   좋아요 1 | URL
맞아요 아는건 말로 표현해야 기억이 남는게 맞아요~ㅎㅎ

카알벨루치 2018-11-06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시루스 박사 존경삘!

cyrus 2018-11-07 12:16   좋아요 1 | URL
대단한 게 아닙니다. 그냥 책에 있는 내용을 요약, 정리했을 뿐입니다. 문제는 이렇게 정리한 내용은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립니다. ^^;;

페크pek0501 2018-11-07 19: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cyrus 님을 응원합니다. 짝짝짝!!!

cyrus 2018-11-09 12:12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
 

 

 

지난주 토요일에 안과에 다녀왔다. 내 눈에 문제가 있어서 간 건 아니다. 어머니 대신에 갔다. 올여름에 부모님이 종합 검진을 받았는데, 어머니가 녹내장 진단을 받았다. 다행히 증상은 심각하지 않았고, 조기에 치료를 받으면 나을 수 있었다. 정밀 검진을 받은 이후로 어머니는 정오 12시, 자정마다 안약을 넣고 있다. 한 달 전에 받은 안약이 거의 다 떨어져서 안과에 가서 새 안약을 처방받아야 했다. 그런데 며칠 전에 어머니가 허리를 삐끗해 집에서 쉬어야 했고, 내가 대신 안과에 가게 됐다.

 

점심시간을 피하고 오후 2시경에 안과에 도착했는데, 역시나 진료 및 처방을 받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오후 3시까지 안과 의사가 수술하는 시간이라서 안약 처방을 받으려면 한 시간 정도는 기다려야 했다. 아, 이럴 줄 알았으면 휴대폰 보조 배터리를 챙겨올걸.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면서 한 시간을 그냥 보내기가 너무 아까웠다. 다행히 기다림의 지루함을 달래줄 녀석이 있었다. 책이었다.

 

그런데 안과에 비치된 책들의 상태가 썩 좋지 않았다. 일단 어른이 읽을 만한 책이 많지 않았다. 문고의 절반은 아동용 책이었다. 아동용 책의 상태도 좋다고 할 수 없었다. 90년대에 나온 위인전, 동화책이 많았다.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한 번쯤은 스쳐서 만났을 법한 책들이 있었다. 더 놀라운 건, 1984년에 나온 여성 잡지의 부록도 꽂혀 있다는 사실이다. 헌책방에 있을 만한 책들이 안과에 있다니. 어머니가 다니는 안과는 의료서비스가 좋아서 환자들 사이에 입소문이 난 곳이라고 한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이 안과는 환자나 손님의 문화 활동을 위한 서비스가 부족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의사의 진료 및 처방을 기다리면서 책을 읽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안과의 책장은 안과를 찾는 손님이나 안과에서 일하는 의료인들의 눈길을 받지 못하는, 볼 품 없는 장식품으로 전락했다.

 

 

 

 

 

 

 

 

 

 

 

 

 

 

 

 

 

 

* 크리스티안 뒤셴, 카르멩 마루아 《시루스 박사 1》 (비룡소, 1998)

 

 

 

그래도 낡은 책장에 시간을 때우기 위해 읽을 수 있는 책은 있었다. 내가 어렸을 적에 읽은 《말하는 백과사전 시루스 박사》 1권이었다. 이 책은 어린이를 위한 백과사전이긴 한데, 여러 분야를 항목별로 담고 있는 기존의 백과사전과 다른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어린이의 질문에 시루스 박사가 친절하게 대답해주는 대화체 형식의 백과사전이다. 책은 총 12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1권부터 12권까지 다 읽어본 적이 없다. 읽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주1]. 그래서 이 책의 부제는 ‘말하는 백과사전’이다. 시루스 박사는 백과사전적 인물이다.

 

1권의 뒤표지에 시루스 박사의 별명이 적혀 있다. 별명이 많다. ‘호기심 많은 어린이의 골키퍼’, ‘말문이 막힌 부모님들을 위한 구원 투수’, ‘지쳐 버린 보모를 위한 시간 도둑’,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기억력(을) 증진(하는) 책’, ‘선생님의 오른팔’ 등이 있다.

 

 

 

 

 

 

시루스 박사의 ‘비밀 무기’는 ‘펜티엄급 지식과 푸근한 마음’이다. ‘펜티엄’이라…‥. 90, 2000년대에 인텔(Intel)을 먹여 살린 CPU 상표명 아닌가.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는 단어이다. 시루스 박사는 어린이들의 어떤 질문에도 성실하고 진지하며 정확하게 대답을 해준다. 그는 어머니 같은 푸근한 마음으로 어린이의 호기심을 소중히 여긴다. 그래서 박사는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아이들의 질문에 절대로 ‘모른다’라고 대답하지 않는 삶의 원칙을 지키고 있다. 이 책의 머리말은 요슈타인 가아더(Jostein Gaarder)《소피의 세계》(현암사)에 나오는 구절을 인용하면서 시작된다.

 

 

 

 

 

 

 

 

 

 

 

 

 

 

 

 

 

* 요슈타인 가아더 《소피의 세계》 (현암사, 2015)

 

 

 훌륭한 철학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단 한 가지 소질은 놀라움을 느끼는 것이다…‥. 그러므로 철학자들과 어린 아이들은 이 소질을 공유하고 있다. 철학자들은 평생 아이처럼 섬세한 마음을 간직한 사람이라고까지 해도 좋을 것이다.

 

 

 

‘놀라움을 느끼는 것’이란 ‘세상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을 발견하는 일이다. 《소피의 세계》는 노르웨이의 한 작은 마을에 사는 소녀인 소피가 어느 날 발신인 없는 의문의 편지를 받는 것으로 시작된다. 정체불명의 발신인은 자신을 철학자라고 소개하면서 소피에게 철학을 가르쳐준다. 소설은 “너는 누구니?”, “세계는 어디서 생겨났을까?” 등 인간 존재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풀어나가는 식으로 전개되면서 문명의 근간이 되는 철학적 뿌리를 알려준다. ‘소설로 읽는 철학’이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소설은 철학의 장벽을 낮춰 우리의 삶에 가까이 끌어들인다. 《소피의 세계》는 노르웨이에서 1991년에 처음 출간되었다. 1994년 독일에서 번역 출간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시루스 박사》는 1995년 캐나다에서 나온 책이다.

 

 

 

 

 

 

 

 

 

 

 

 

 

 

 

 

 

 

* [아직 안 읽은 책] 크세노폰 《키루스의 교육》 (한길사, 2015)

* [아직 안 읽은 책] 크세노폰 《키로파에디아》 (주영사, 2012)

 

 

 

‘시루스’는 고대 페르시아 제국을 이끈 키루스(Cyrus)의 이름을 따온 것이다. 고대 역사가인 크세노폰(Xenophon)은 자신의 책 《키로파에디아(Cyropaedia)에서 키루스를 인자하고 이상적인 군주로 묘사했다. 키루스는 바빌로니아를 정복한 후에 ‘키루스의 원통’으로 알려진 세계 최초의 인권선언문을 발표하면서 노예로 잡혀있던 유대인들을 해방했다. 《시루스 박사》의 저자 크리스티안 뒤셴(Christiane Duchesne)은 어려서부터 키루스라는 이름을 좋아해서 자신의 분신인 박사의 이름을 ‘시루스’라고 정했다고 한다. 키루스는 라틴어 발음이고, 영어식 발음은 ‘사이러스’이다. 그런데 프랑스에서도 ‘cyrus’를 ‘사이러스’라고 발음한다. 크리스티안 뒤셴은 영어와 프랑스어를 공용어로 쓰는 캐나다에서 태어났다. 정확한 원어 발음을 따른다면, ‘시루스 박사’가 아니라 ‘키루스 박사’ 또는 ‘사이러스 박사’라고 해야 한다. ‘시루스’는 독일식 발음이다[주2].

 

 

 

 

 

이미 눈치를 챈 독자들도 있겠지만, 내 닉네임은 《시루스 박사》에서 따온 것이다. 내가 2010~2011년에 알라딘 서재 블로그에 열심히 글을 남겼을 때, 닉네임의 의미를 궁금해 하는 분들이 많았다. 그래서 닉네임의 유래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었다. 책에 나오는 시루스 박사처럼 다양한 분야에 호기심을 가지면서, 세상의 모든 지식을 알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필명을 ‘cyrus’로 정했다. 《시루스 박사》의 편집부의 말에 따르면 박사는 ‘우리가 필요할 때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환상적인 대머리 아저씨’라고 한다. 탈모를 겪는 ‘스피드왜건’인가. 그나저나 나도 탈모가 진행 중인데, 20년이 지나면 ‘환상적인 대머리 아저씨’가 되겠군. 흠좀무. 역시 이름이나 닉네임은 그 사람의 운명을 만드는 것 같다.

 

 

 

 

[주1] 로얼드 호프만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까치, 2018)

 

[주2] 참고: 네이버 독일어사전, ‘시뤄스’를 빠르게 발음하는 것처럼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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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8-11-05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너무 찰떡닉네임이다.....

cyrus 2018-11-05 17:00   좋아요 0 | URL
알라딘이 망하더라도 죽을 때까지 이 닉네임을 계속 사용할려고 합니다. ^^

stella.K 2018-11-05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득이나 눈이 안 좋은데 책까지 좋으면 눈이 더 나빠질 것 아니니? 그냥 그렇게 생각야지 뭐. 사이러스는 영어식 발음 아닌가? 난 시루스가 좋던데...ㅋ
그런데 탈모가 진행중이라고? 걱정되겠다. 관리 잘 해라.ㅠ

cyrus 2018-11-05 17:02   좋아요 0 | URL
아버지가 원형 탈모에요. 다행히 저는 원형 탈모는 아닌데, 이마 부위의 머리카락이 점점 많이 빠져요.. ㅠㅠ

카알벨루치 2018-11-05 1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이러스박사님 !!!! 시루스 박사님 ㅎㅎㅎ

cyrus 2018-11-05 17:04   좋아요 1 | URL
저는 ‘카알벨루치‘의 의미가 궁금합니다. ^^

카알벨루치 2018-11-05 18:41   좋아요 0 | URL
이야기 들어보면 웃으실껄요 ㅋㅋ

cyrus 2018-11-06 12:03   좋아요 0 | URL
뭔가 재미있는 의미가 있을 것 같은데,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정말 궁금하네요.. ^^

포스트잇 2018-11-05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키루스보다는 시루스라고 불러야겠네요, 박사님ㅎㅎ

cyrus 2018-11-06 12:02   좋아요 0 | URL
시루스 박사님 말고 ‘시루스 아저씨’라고 불러주세요.. ㅎㅎㅎㅎ

페크pek0501 2018-11-07 1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은 젊은 분으로 알고 있는데 탈모라니요... 글자를 너무 봐서 그런 게 아닐까요? 책 읽을 때나 글 쓸 때.

이름이나 닉네임이 운명을 만든다면 저도 닉네임을 다르게 하고 싶군요. ㅋ

cyrus 2018-11-09 12:15   좋아요 1 | URL
탈모는 젊은 시절부터 진행된다고 합니다. 두피가 훤하게 보일 정도로 머리카락이 빠진 건 아니지만, 아무런 이유 없이 머리카락이 한 두 개씩 빠질 때마다 걱정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