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아스 파괴에 관한 간략한 보고서 - 16세기 중남미 정복과 관련한 유럽인의 양심선언, 북스페인 라틴총서
바르똘로메 데 라스 까사스 지음, 최권준 옮김 / 시타델퍼블리싱(CITADEL PUBLISHING)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아이티는 1492년 인도 항로를 찾아 항해에 나선 콜럼버스(Columbus)가 카리브해의 서인도 제도에서 발견한 땅 중 하나이다. 이 섬에는 원주민이 살고 있었지만, 콜럼버스 일행은 에스파냐(스페인)의 영토라는 의미가 담긴 ‘에스파뇰라(Española)로 이름 붙였다. 이 섬에 당도한 에스파냐의 정복자(conquistador)들은 수백 명의 군대와 개를 동원하여 원주민을 무자비하게 학살했다. 콜럼버스와 에스파냐의 목표는 오직 금이었다. 원주민들은 백인들이 옮긴 전염병 때문에 거의 멸종됐고, 정복자들은 아프리카에서 흑인들을 노예로 강제로 끌고 와 금 채굴에 나섰다.

 

정복자를 ‘항해가’ 또는 ‘모험가’로 부르던 시절이 있었다. 그들은 남다른 모험 정신을 가진 자, 용기 있게 떠나는 자, 광대한 꿈을 가진 자였다. 그러나 새로운 세계에 대한 야심만만한 꿈은 잔인한 정복욕이 되었다. 정복자들은 무자비하게 원주민들을 학살하고 금을 약탈했으며 토착 문명을 파괴한 자리에 자신들의 문명을 주입했다. 한 세계가 다른 세계를 발견(또는 관찰)하는 대항해 시대는 결코 낭만적이지 않았다. 발견과 정복은 결국 타인의 땅을 침입하여 빼앗는 모험이며, 대항해 시대의 모험은 본질적으로 침입과 약탈의 습성을 닮았다.

 

대항해 시대 이후 불붙은 유럽의 식민지 정복은 신의 이름으로 야만을 단죄했다. 도시 문명이 발달한 유럽이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원주민을 바라보는 시선은 철저히 자기중심적이고 일방적이었다. 과연 그들의 주장처럼 ‘야만’은 발견된 것일까. 약탈 행위와 원주민 학살이 진정 그들이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문명화를 위한 사명’ 때문이었을까. 콜럼버스와 동시대에 살았던 라스 카사스 신부(Bartolomé de Las Casas)는 일찍이 문명이 남긴 땅의 상처를 보듬으며 정복자들이 저지른 반인륜적 행위를 규탄했다. 그가 쓴 《인디아스 파괴에 대한 간략한 보고서》에는 에스파냐 정복자와 군인들의 잔인한 만행이 적나라하게 기술되어 있다. 콜럼버스는 카리브해에 흩어져 있는 여러 섬을 인도의 일부, 즉 인디아스(Indias)라고 믿었다. 그래서 유럽인들은 카리브해 쪽 지역을 서인도, 진짜 인도를 동인도라고 불렀다. 콜럼버스가 발견한 항로 덕분에 서인도 제도는 유럽인의 활동 무대가 되었다. 반면에 원주민들에게는 수난의 역사가 시작되는 비극의 무대였다.

 

라스 카사스의 책은 단적으로 말하면 에스파냐의 카리브해 정복사가 아니라 카리브해 원주민들의 피착취사다. 에스파냐의 정복자들은 원주민에게 복음 전파를 위해서는 살육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원주민은 천성적으로 미개하여 이성으로는 설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성과 사리 분별력이 있는 기독교인들은 ‘야만인들’에게 우월한 문화를 강제로 부여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원주민의 권리와 정체성을 둘러싼 에스파냐 정복자들의 식민주의적 관점은 에스파냐의 식민지 정복 사업과 식민지 통치 정책을 놓고 벌어졌던 ‘라스 카사스-세풀베다 논쟁(바야돌리드 논쟁)에서 이미 모습을 드러냈다. 에스파냐의 인문주의자 세풀베다(Juan Ginés de Sepúlveda)는 유럽인의 원주민 정복을 지지했다. 라스 카사스는 원주민도 ‘하느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인간’이므로 그들이 태생적으로 노예가 될 수 없다고 반박했다.

 

라스 카사스는 직접 서인도 제도의 섬을 다녀온 적이 있다. 그는 에스파냐 기독교인들의 만행을 가까이서 지켜봤다.

 

 

 기독교인들은 말을 타고서 그들의 칼과 창으로 원주민들을 학살하고 괴상한 잔혹함을 저지르기 시작했습니다. 에스빠냐인들은 마을로 들어가서 마치 우리에 갇힌 어린 양들을 공격하는 것처럼 어린이, 노인, 임산부, 아직 배를 가르지 않은 산모도 내버려두지 않고 공격하였습니다. 에스빠냐인들은 누가 단칼에 사람을 두 동강 내는지 혹은 말뚝으로 머리를 자를 수 있는지 창자를 들어내는지 내기를 하곤 하였습니다. 젖을 먹고 있는 젖먹이를 두 발을 잡고서 어머니의 젖가슴에서 떼어내어 바위에 머리를 내동댕이쳤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갓난아이를 뒤로 강에 던지고서는 웃고 조롱하면서 어서 발부둥치라고 말하곤 하였습니다. 어떤 이들은 자신 앞에 있는 모든 갓난아이들을 그 어머니와 함께 칼로 찔렀습니다. 구세주와 12사도를 기념하여 거의 땅에 발이 닿도록 13개씩 교수대를 설치해놓고 장작에 불을 지펴 산 채로 태워 죽였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몸을 마른 짚과 함께 묶고는 불을 질러 태웠습니다.

 

(『에스빠뇰라 섬에 대해』 중에서, 23쪽) 

 

 

에스파냐인들의 ‘원주민 씨 말리기’는 신의 이름으로 자행된 폭력이었다. 정복자들은 원주민들에게 믿음을 강요했고, 저항은 처절하게 응징했다. 이후 수백 년 동안 복음과 총칼로 무장한 서구 문명의 탐욕 앞에 공존은 없었다. 사실 ‘신대륙 발견’이라는 표현에는 서구 중심적 시각이 반영되어 있다. 유럽인에겐 새로운 대륙이지만, 그 땅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원주민들이 전통과 문화를 가꾸며 살아왔다. 유럽인들은 십자가와 총포를 들고 땅에 ‘상륙’했지, 발견한 것은 아니었다. 라스 카사스의 책은 유럽 중심의 잘못된 세계관과 편견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수준에 미치지 못했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대항해 시대의 어두운 이면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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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12 16: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11-13 08:15   좋아요 0 | URL
그렇죠. 라스 카사스 신부가 유럽의 식민지 약탈 문제를 공론화해도 정복자들은 침략과 약탈을 멈추지 않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