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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단체는 모두 페미니스트다” 여성단체와 페미니스트 모두에 대해 일반인들이 가지고 있는 편견이다. 그 외에도 몇 가지 오해가 더 있다. 여성단체와 페미니스트는 여성의 권리가 불리한 문제가 발생하면 길거리 시위를 한다. 그들은 여성의 이익만을 주장한다. 심지어는 자기주장이 강한 드센 여자들이 모인 곳이라고 생각한다. 페미니스트는 여성과 남성이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사람들이다. 크게는 여성의 인권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이다.

 

 

 

 

 

 

<리얼뉴스>의 헤드라인, 그리고 문제가 많은 헤드라인을 자신의 트위터에 리트윗한 하지현 씨는 페미니스트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을뿐더러 오히려 그 편견을 강화하고 있다. 페미니즘 반대론자, 여성 혐오자, 일베 회원들이 페미니스트를 비난할 때 쓰는 흔한 레토릭(rhetoric)이다. 그리고 어설프게 페미니스트를 흉내 내는 남자들이 가끔 저지르는 논리적 오류이기도 하다.

 

<리얼뉴스> 헤드라인을 삼단 논법으로 재구성하면 이렇다.

 

 

대전제 : 여성 단체와 페미니스트는 강남역 살인사건에 분노했다.


소전제 : 흑산도 여교사 성폭행 사건은 강남역 살인사건처럼 여성을 상대로 남성이 저지른 범죄다.


결론 : 그러므로 여성 단체와 페미니스트는 흑산도 여교사 성폭행 사건에 분노해야 한다(관심을 가져야 한다).

 

 

<리얼뉴스> 헤드라인을 뽑은 기자는 페미니스트의 이중성을 지적한다. “페미니스트들은 흑산도 성폭행 사건을 알고 있느냐?”, “강남역 피해자를 추모한 사람들이 왜 흑산도 성폭행 사건 피해자에게는 위로하지 않는가?” 해당 헤드라인을 읽은 사람들, 그리고 페미니즘 반대론자, 일베 회원들은 강남역 살인사건에 분노했던 페미니스트들의 반응을 부정적으로 본다. 금방 쉽게 식어버린 페미니스트들의 ‘냄비 근성’이라고 비판한다. 하지현 씨는 페미니스트가 흑산도 성폭행 사건에 대해서 일말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드러내지 않았다는 이유를 가지고 페미니스트를 ‘쓰레기’로 비유하면서 ‘정의롭지 않은 사람’으로 매도한다.

 

반 페미니즘 정서를 부추기는 잘못된 생각이다. 강남역 살인사건과 흑산도 성폭행 사건은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될 천인공노할 일이다. 성별, 이념의 차이를 떠나서 인간이라면 가해자들의 만행에 용납을 못 하며 분노를 느끼고, 피해자에게 연민을 느낀다. 이건 보편적인 반응이다. 이러한 감정적 반응을 ‘포스트잇 시위’ 같은 행동으로 드러나지 않았다고 해서 페미니스트와 여성 단체를 겨냥해서 지적하는 것은 부당한 논증이다. 애초에 흑산도 성폭행 사건에 침묵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문제로 삼으려면 ‘포스트잇 시위’를 하지 않는 대중의 태도를 지적해야 한다. 그런데 ‘포스트잇 시위’를 하지 않는 수많은 사람 중에 유독 페미니스트만 거론하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리얼뉴스> 헤드라인은 ‘쓰레기’라고 생각하며 하지현 씨의 입장에 절대로 동의하지 않는다.

 

만약에 페미니스트와 여성 단체가 흑산도 성폭행 사건을 자주 언급하면서 남성이 저지른 성 범죄 사건의 심각성을 부각시켰다면, 과연 남자들이 어떠한 반응을 보일지 자못 궁금하다. 여러 가지 반응을 예상할 수 있다.

 

 

“요즘 여성들은 성 범죄 사건 일어나면 심각하게 과민 반응을 보인다.”

 

“페미충들이 또 다시 미쳐 날뛰기 시작합니다.” (일베 회원의 반응, 페미충은 페미니스트를 비하하는 일베식 표현)

 

 

여성이 피해를 보는 성 범죄 사건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고 싶은 여자를 만나면, 남자는 불편한 심경을 드러내면서 물어본다. “너도 페미니스트였어?” 페미니스트를 잘 모르는 남자는 페미니즘에서 느끼는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 그것은 페미니즘에 대한 편견 혹은 공포에서 비롯된 오해이다. 선입견이 사라지지 않으면 여성 차별 문제에 대해서 함께 고민하고 연대하는 기회가 사라진다. 하지현 씨가 페미니스트인지 아닌지 논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적어도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페미니즘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스스로 물어볼 필요는 있다. 어설픈 논리로 페미니스트를 비판하는 사람은 여성의 내면과 요구를 이해하지 못하는 여성차별주의자만 못하다. 여성(페미니스트)에 대한 편견을 인정하는 사람은 대화와 설득이 가능하지만, 여성을 잘 안다고 착각하거나 페미니스트를 무시하는 사람은 손 쓸 도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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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빵 2016-06-07 0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베는 논외로 하고 메갈리온은 싫습니다. 주장은 일면 옳지만 의도가 의심스럽기 때문입니다. 극단적 페미니스트들에게 반감도 들었지만 그들의 심정은 이해합니다. 한겨레에 칼럼쓰시는 분은 평화학주의자 비슷한 말씀을 하시는데 저는 의도를 은근히 가리는 것 같아서 싫습니다. 여성학학자가 좋지 않나 생각됩니다. 남과 여는 떼어놓고 살수 없는게 아닐까요? 서로 도와가며 싸워가며 아웅다웅 살아가는게 좋은 것 같습니다.

cyrus 2016-06-07 16:19   좋아요 0 | URL
저도 여성 혐오에 똑같이 대응하는 메갈리아의 태도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혐오를 혐오로 맞선다? 오히려 부질없는 갈등만 이어질 겁니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한쪽 성별의 단점을 부각시키면서 의도적으로 왜곡하는 것도 싫어합니다. 이건 총성 없이 남자와 여자가 서로 싸우는 기이한 전쟁입니다. 이 전쟁이 종결되기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 ㅠㅠ

마립간 2016-06-07 0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조금 전 글을 올린 것과 관련있기에.

`일베`, `페미니스트`, `하지현`, 모두 논외로 하고, (이글에도 언급된) `대중의 태도`에는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cyrus 2016-06-07 16:26   좋아요 0 | URL
어제 제가 밝힌 의견을 오늘 스스로 반박하는 입장이 우습지만, 지금 생각해보니까 언론의 태도에도 문제 있습니다. 지금 언론은 흑산도 성폭행 사건에 조용한 대중의 반응을 비판하기 전에, 자신들이 사건을 알리는 보도 방식을 반성해야 합니다. 사실 언론이 먼저 보도하기 전에 이미 많은 사람들은 흑산도 성폭행 사건에 대해서 알고 있었습니다. 인터넷으로 알려진 것이죠. 그리고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언론은 특종 감을 잡았다는 심정으로 흑산도 성폭행 사건을 마치 자신들이 직접 취재한 것처럼 보도했습니다. 저는 그런 언론의 태도가 마음에 안 듭니다. 자신들도 여태까지 사건이 일어난 사실을 몰랐으면서 일이 크게 알려지니까 대중이 사건에 관심 없다고 지적하고 있으니 어이가 없습니다.

포스트잇 시위까지는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흑산도 성폭행 사건 피해자를 안타깝게 생각하고, 뻔뻔한 가해자들의 태도에 분노를 표출하고 있습니다. 흑산도 사건 관련 뉴스 댓글들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증오하는 입 - 혐오발언이란 무엇인가 질문의 책 2
모로오카 야스코 지음, 조승미.이혜진 옮김 / 오월의봄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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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많이 거주하는 오사카의 거리에 “조선인들을 떠나라” “조선인은 기생충이다”라고 무시무시한 구호를 외치는 일본 우익단체의 시위가 부쩍 늘어났다. ‘재일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모임(이하 재특회)’ 회원들은 도쿄 신오쿠보(新大久保) 역 주변 한인 타운에 모여 매주 혐한 시위를 벌인다. 파리채로 태극기를 치는 퍼포먼스를 벌이는 이도 있다. 재특회는 2007년 설립돼 인터넷을 중심으로 반한 시위를 주도하는 단체다. 이 단체는 등록 회원이 1만여 명에 이르고 연 1,000만 엔에 이르는 기부금으로 운영된다. 전통적인 우익단체와 달리 소셜네트워크서비스로 시위 현장 동영상을 전파하고 온라인에서 지지를 호소하는 방법으로 세력을 급속하게 확장했다. 그래서 ‘넷우익(Net 우익)’으로 불리기도 한다. 5.18 민주항쟁을 폭동으로 폄훼한 ‘일베’와 흡사하다.

 

재특회가 반한 시위를 하는 일차적 명분은 ‘재일 한국인이 일본 내에서 특권을 누리고 있어서 그 특권을 폐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먼저, 특별 영주 자격을 철폐하라고 외친다. 재일 한국인은 특별 영주 자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중범죄를 저질러도 모국으로 추방당하지 않는다. 재특회는 이 법이 다른 불법 체류 외국인과 비교할 때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한국인을 비롯해 재일조선인, 외국인 등 특정 민족에게 증오 섞인 표현을 쏟아낸다. ‘혐오 발언(hate speech)’은 인종, 민족, 종교, 국적, 직업 등으로 나뉘는 특정한 집단에 대해 사회적 편견과 폭력을 부추긴다. 단순히 구호만 외치는 것도 아니다. 조총련계 학교에 난입해 난동을 부리기도 했다.
 
1923년 관동대지진 직후 조선인 학살은 혐오 발언이 부른 참극이었다. 흉흉해진 민심을 잡기 위해 일본은 조선인을 희생양으로 지목했다. 일본 언론은 한술 더 떠 조선인에 대한 적개심을 부추겼다. 그 결과 수천 명의 조선인이 학살당했다. 혐오 발언 수위가 점점 높아지는 재특회의 혐한 시위가 국제적인 관심사가 되고 있다. 오히려 한국 언론보다 미국, 유럽 언론이 더 많은 관심을 보인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나치가 자행한 인종차별 경험 때문인지, 혐한시위를 심각하게 보고 있다. 혐오 발언이 횡행함에 따라 우려스러운 것은 재일조선인들의 처지다.

 

국제사회의 비판에 대응한 조치로 해석되지만, 일본 내에서는 혐오 발언 규제 법률을 제정하라는 요구도 높아지고 있다. UN 사회권위원회는 일본 정부가 혐오 발언 규제에 나설 것을 권고한 바 있다. 일본은 차별금지를 법률로 제정할 것을 촉구하는 인종차별철폐협약(제4조)에 가입했지만, 헌법상 ‘표현의 자유’(제21조)를 이유로 법률을 제정하지 않고 있다. 반면 독일과 영국, 프랑스 등은 법률로 규제하고 있다. 남의 일인 것처럼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기에는 우리 사정도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는다. 일본이나 외신 언론을 받아 쓴 기사는 간혹 찾아볼 수 있지만, 직접 시위 현장이나 재일조선인 피해를 심층 취재한 기사는 보기 어렵다. 해외 현장이라는 어려움이 있긴 하지만, 이슈의 당사국 언론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미국이나 유럽 언론, 특히 중국 언론에 비해서도 혐오 발언에 대한 관심이 이례적으로 적다.

 

일본의 우익 정치가는 재특회와 손잡아 혐오 발언 선전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들은 재일조선인과 좌익은 일본의 명예를 해친다고 보고 있다. 물론, 혐오 발언을 반대하는 우익도 있다. 과거사에 대한 사죄를 일본의 불명예로 왜곡하는 것은 애국이 아니라 광적인 배타주의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1970년대부터 유신정권은 반한과 친북을 양산했다. 1980년대 말 민주화 이후에도 색깔론이 반복되고 있다. 진보 진영에 대해 마구잡이로 종북이라는 낙인을 찍는 어버이연합, 동성애와 다문화제도에 반대하는 일베의 모습은 일본에서 일어나고 있는 반일과 좌익 낙인찍기와 비슷하다. 또 미래를 위해 과거의 국가 폭력과 인권침해의 역사를 비판하는 것조차도 종북으로 매도하는 것은 일본 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반일, 좌익 낙인찍기와 유사하다. 일본은 혐오 발언을 심각하게 보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전혀 그렇지 않다. 소수자 및 개인에게 정신적 피해를 주는 혐오 발언을 그저 가벼운 농담으로만 인식한다. 김치녀, 홍어(광주를 비하하는 은어), 통구이(대구를 비하하는 은어) 그리고 세월호 사고 희생자와 그 가족들을 조롱하는 혐오 발언이 인터넷상에서 쉽게 남발되고 있다.

 

우리나라 시민사회가 그나마 조금은 이성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긴 하나 아직도 많이 미흡하다. 혐오 발언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바라보고, 적극적으로 비판하는 공감 여론이 깊게 형성되지 못한 상태다. 2012~2013년 일베 논란이 숱한 화제를 뿌렸을 때, MBC <100분 토론>에서 일베를 유해매체물로 지정되지 않은 것에 대한 주제로 토론이 진행된 적이 있었다. 이때 토론 패널로 참여한 변희재는 일베를 유해매체물로 지정하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므로 접속차단 등의 조치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일베 회원들을 극우주의자로 보는 시각에 동의하지 않는 입장을 보였다. 일본 정부는 표현의 자유라는 이유로 혐오 발언 규제에 미온적인 반응을 보였다. ‘표현의 자유’는 혐오 발언 규제에 반대하는 우익들이 불리할 때 사용하는 유일한 보루다.

 

‘표현의 자유’와 ‘인권 침해’. 누구라도 부정할 수 없는 두 가지 자유 중에서 무엇을 우선시해야 하는가. 혐오 발언 문제의 현황을 고발한 《증오하는 입》의 저자이자 변호사인 모로오카 야스코는 혐오 발언을 법적으로 규제하는 입장에 찬성한다. 다만, 표현의 자유가 침해되지 않는 선에서 혐오 발언의 용례를 정리한 가이드라인이 먼저 마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베 회원 일부는 표현의 자유를 이용해 불특정 다수에게 피해를 준다. 표현의 자유는 누구나 누릴 수 있는 민주적인 보편 가치다. 그런데 일베와 재특회, 일부 극우주의자들은 이런 보편 가치를 자신들만의 특권처럼 사용한다. 그것도 소수의 사회적 약자를 괴롭히는 언어 폭행의 무기로 사용한다. 표현의 자유는 사회적 약자의 자유를 억압하는 무기가 될 수 없다. 이러한 분위기 아래서 표현의 자유 의미가 왜곡되는 상황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건강한 시민사회 구성원이라면 시비를 가리고, 정도를 구분하며,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과 억압에도 예민하게 반응해야 한다. 그리고 거기에 맞서 대항하는 이성적인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소심한 독자 입장에서는 이념 진영을 떠나서 혐오 발언에 관한 더욱 근본적인 고민이 시작되길 바랄 뿐이지만 그것마저 쉽지는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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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06 00: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06-07 07:11   좋아요 0 | URL
일본의 시민운동이 어느 수준 단계에 올라섰으며 역사가 어떤지는 잘 모릅니다. 님 말씀처럼 일본의 시민운동 역사가 비교적 짧은 편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혐한 시위를 반대하는 자발적 시민단체가 등장하니까 일본 언론들은 ‘돌연변이’라는 반응을 보이더군요. 혐한 시위를 반대하고, 거기에 행동으로 맞서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이 있었습니다. <혐오하는 입>을 읽은 뒤에 이일하 씨의 <카운터스>를 읽었는데, 제가 일본을 선입견으로 바라봤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름에 맞춰 공포영화를 개봉하고, 대형 서점들도 여름이면 공포나 미스터리 사건을 소재한 책을 모아 특별 코너를 만든다. 게임 역시 마찬가지라서 이맘때면 공포 게임에 관련된 소식들이 다른 때보다 많이 나온다. 우리는 보통 게임을 할 때 공포를 느끼는 게임을 가리켜 ‘공포 게임’ 혹은 ‘호러 게임’이라 부르며 마치 정형화된 장르처럼 말한다. 그런데 실제 공포 게임을 살펴보면 그렇게 생각하기엔 뭔가 애매하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공포 게임은 장르처럼 불리지만 기존 장르와는 다른 영역에 걸쳐 있기 때문이다.

 

 

 

 

 

 

 

 

 

 

 

 

공포 게임에 관해 이야기를 하다 보면 ‘러브크래프트’라는 이름을 자주 듣게 된다. 러브래크래프트는 크툴루(Cthulhu) 신화라는 세계관에 근거한 다수의 공포 소설들을 쓴 미국의 소설가다. 상대적으로 박했던 생전의 평가에 비해 크툴루 신화에 대한 후대의 평가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크툴루 신화에 깊은 인상을 받은 후대 작가들은 러브크래프트가 죽은 후에도 그의 설정들을 그대로 빌려와 크툴루 신화를 새롭게 창작했다. 여기에 동참한 작가로는 어거스트 윌리엄 덜레스, 로버트 블록(앨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 ‘사이코’의 원작자), 클라크 애슈턴 스미스 등이 있다. 특히 덜레스는 크툴루 신화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일등 공신이다. 그는 러브크래트프의 작품을 출판하기 위해 ‘아컴하우스’라는 출판사를 설립했다. 덜레스의 노력이 결실을 맺어 크툴루 신화는 수많은 서브컬처 마니아에게 영향을 끼쳤다. 공포 장르의 콘텐츠뿐 아니라 SF 판타지와 같은 미국 문화와 다수의 일본 장르문학, 라이트노벨까지 러브크래프트의 영향을 찾아볼 수 있다. 러브크래프트의 영향을 받은 유명한 작가와 영화 제작자로는 존 카펜터, 스티븐 킹, 클라이브 바커 등이 있다. 공포/SF 게임으로는 <어둠 속에 나 홀로>, <악마성 드라큘라>, <퀘이크>, <아케인> 등이 러브크래프트 문학의 영향을 받은 대표적 게임으로 꼽힌다.

 

게임 이야기를 하나 더 하자면, 올해 TRPG <크툴루의 부름> 한국어판이 나올 예정이다. 게임을 안 하는 사람에게는 낯설고 흥미롭지 않은 이야기다. 그러나 게임에 관심 없지만, 러브크래프트 소설을 읽어본 사람에게는 귀가 솔깃한 정보이다.

 

 

 

 

 

 

‘TRPG’는 ‘Table-talk Role Playing Game’의 약자다. ‘RPG', 즉 ’롤플레잉 게임‘은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롤플레잉 게임은 게임 플레이어가 직접 게임 속 주인공 혹은 캐릭터가 되어 게임 내에 주어진 역할이나 규칙을 따르는 방식이다. 사실 RPG의 원조가 TRPG다. 컴퓨터가 없던 시절 여러 사람이 탁자에 모여 각자 맡은 캐릭터를 연기하는 게임이 등장했는데, 그 게임 방식이 바로 TRPG다. 현재는 컴퓨터 롤플레이 게임을 RPG라고 부른다. TRPG를 즐기는 데 필요한 준비물을 간단하다. 주사위, 보드 판, 룰북(게임을 진행하는 데 도움이 되는 규정을 모아놓은 책)을 챙긴 뒤에 사람 여러 명을 끌어들이면 된다.

 

 

 

 

 

<크툴루의 부름>은 러브크래프트의 단편소설 제목으로도 알려졌다. 크툴루가 처음 등장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크툴루 신화에 따르면 크툴루는 우주에서 날아와 지구를 지배했던 고대의 신이다. 생김새는 흉측한 괴물과 비슷하다. 대부분 거대한 문어 머리에 여러 개의 촉수가 꿈틀거리는 형태로 그려진다. 크툴루 신화 속 고유명사는 인간이 발음할 수 없는 외계 언어다. 크툴루는 인간이 발음하기 쉽게 설정한 표기에 불과하다. 그래서 크툴루를 ‘쿠툴후’, ‘크풀루프’, ‘크투루후’ 등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크툴루의 부름 TRPG>는 크툴루 신화를 소재로 한 호러 TRPG다. 게임 진행 방식도 소설 줄거리와 똑같다. 크툴루를 만나거나 그의 울음소리를 들은 자는 공포에 휩싸여 미쳐버리거나 죽게 된다. 게임 플레이어는 크툴루의 존재를 추적하면서 점점 미쳐나가는 과정을 즐긴다. 1981년에 처음 나온 이후로 현재까지 6판까지 나온 TRPG계의 스테디셀러다.

 

<크툴루의 부름 TRPG> 최신판 제작을 담당하는 회사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TRPG 출판사 초여명이다. (알라딘 검색창에 ‘초여명’을 입력하면, 꽤 많은 TRPG 롤북이 나온다) 올해 4월 말에 한국어판 출판을 위한 소셜 크라우드 펀딩을 시작했는데, 시작한 지 30분 만에 목표금액을 달성했다. 그리고 한 달도 안 돼서 모금액 1억 원을 돌파했다. 이 기록은 역대 국내 게임 소셜 크라우드 펀딩 사례 중에선 최고 금액이다.

 

 

 

 

<크툴루의 부름 TRPG> 소셜 크라우드 펀딩 금액 신기록 달성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이다. 공감 수를 많이 받은 댓글 두 개를 보시라. 이 댓글을 보는 사람이 러브크래프트 마니아라면 웃음이 절로 나올 것이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날씨가 무더운 여름밤에 특별한 독서를 원한다면 러브크래프트 소설에 ‘입덕’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힌트는 알려줬다. 황금가지 출판사의 《러브크래프트 전집》을 읽어 보면 댓글 내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 세 번째 댓글의 ‘기어와라 냐루코’는 일본에서 발표된 라이트 노벨 이름이다. 정확한 이름은 <기어와라! 냐루코 양>이다. 라이트 노벨 작가 아이소라 만타는 음침한 크툴루 신화를 명랑한(?) 소녀들이 등장하는 라이트 노벨로 패러디했다. 주인공 냐루코는 크툴루 신화의 사신으로 알려진 니알라토텝을 소녀화한 캐릭터다. 기존의 크툴루 신화를 좋아했던 마니아들은 고대 신들이 미소년, 미소녀로 탈바꿈한 설정에 큰 충격에 빠졌다고 한다. 12권 전권 정식 발매되었다.

 

 

 

 

 

 

 

 

 

 

 

 

 

 

 

 

 

 

 

※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을 읽어도 크툴루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을 구분하기가 어렵다. 크툴루 신화나 관련 용어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책들을 참고하면 된다. 책을 읽어도 허전함을 느낀다면 러브크래트트 전집 번역에 참여한 적이 있는 류지선 씨의 블로그(gaya.egloos.com)를 참고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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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umus 2016-06-04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툴루 신화 정말 기괴하죠ㅎ꼬리꼬리한 치즈 먹는 느낌이랄까요? 이상한데 자꾸 손이 가는

cyrus 2016-06-05 20:06   좋아요 0 | URL
포스투무스님의 표현이 재미있어요. 러브크래프트 소설의 애매모호한 설정 때문에 처음부터 다시 읽은 적이 많았습니다. ^^
 
여성 거세당하다
저메인 그리어 지음, 이미선 옮김 / 텍스트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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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남성들만 겪는 고통 중의 하나가 포경 수술이다. 흔히 고래를 잡는다는 은유적인 표현을 쓰기도 한다. 또래의 친구들이 초등학교 고학년 겨울방학 때 엄마 손에 끌려가 ‘어른이 되는’ 수술을 받고 오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 뒤로 아이들은 1, 2주 동안 통증으로 제대로 걷질 못해 뒤뚱뒤뚱 잰걸음 했다. 한때는 우리나라에서도 태어나자마자 포경 수술을 시키는 것이 유행이었다. 다행히 부모님은 나에게 ‘아들아, 고래 잡자’는 얘길 꺼내시지 않아 마음 편히 지나갈 수 있었다. 수술을 받지 않은 친구들은 또래 친구들한테 남자 취급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나는 유년의 통과의례처럼 치러지는 수술을 받지 않아서 수치심에 괴로운 적이 있었다. 귀두의 포피를 떼어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남자 어른이 되지 않았다’는 우스꽝스러운 자기 검열에 사로잡혔다.

 

포경 수술의 원조는 이스라엘 유대인들의 할례 의식이다. 유대인들은 선택받은 민족의 상징으로 생후 8일째 되는 날, 지금의 포경 수술이라 할 수 있는 할례 의식을 시행했다. 민족별, 지역별로 할례의식의 방식, 문화적 배경이 제각각이다. 남성 유대인은 할례 의식을 ‘신과의 계약’이라고 생각한다. 부족사회에서는 부족의 결속, 결혼 준비, 성기의 성화(聖化) 등 여러 가지 이유에서 할례를 한다. 아프리카 여성의 경우는 남자들과 같은 이유에다가 성감대를 둔화시킨다는 특별한 의미를 추가하고 있다. 아프리카의 여성 할례 의식은 여성들의 성적 욕구를 억눌러 처녀성을 지키고 결혼생활을 안정시킨다는 명목으로 행해져 왔다.

 

여성의 성욕은 병적인 것으로 치부됐다. 프로이트는 여성의 성을 ‘어두운 대륙’이라 불렀다. 여성 할례 폐습이나 프로이트의 음핵 무시에서 드러나듯 클리토리스는 남성성을 위협하는 사악한 부위로 지목돼 왔다. 모든 악과 질병이 비롯됐다는 ‘판도라의 상자’에서 ‘상자’라는 단어가 여성의 질을 가리키는 속어라는 점도 여성 성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연관 지을 수 있다. 음핵이 여성 쾌락의 중심으로 우뚝 서면 성적 파트너로서의 남성은 불필요해진다.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는 데 문제가 생긴다는 두려움이 생긴다.

 

우리나라는 여성 할례 의식이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 여성들도 오랫동안 할례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클리토리스가 아니더라도 몸과 정신에 할례를 받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에 ‘거세당한 여성(female eunuch)’이 너무 많다. 거세(去勢)는 생식 기능을 잃은 상태를 의미한다. 당연히 여성의 생식기도 거세 대상이 된다. 그런데 이 단어를 남성과 연관 지어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거세’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환관(宦官)이다. 프로이트는 아동기에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극복하지 못한 남자는 커서도 성기가 잘리지 않을까 불안을 느끼게 된다며 이를 ‘거세 공포’라 불렀다.

 

여자들만 느끼는 ‘거세 공포’가 있다. 일단 프로이트식 거세 공포는 잊어버리자. 급진 페미니스트 저메인 그리어는 ‘거세당한 여성’은 어린 시절부터 남성적인 욕망 속에 억압받으면서 성장한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여성으로서 자유와 욕망을 자기 검열하고 스스로 배제한다. 여자는 착하고 얌전해야 한다, 똑똑한 여자는 팔자가 세다, 여자는 무엇보다 예뻐야 한다. 이런 사회적 통념들은 가부장적 사회구조에서 여성을 억압하고 여성의 몸과 정신을 거세한다. 여성은 남성들이 만든 고정관념에 얽매여 다른 사람의 눈에 비치는 자신을 늘 의식한다. 남성의 의견에 따르고 남자 앞에서는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지 않도록 조심한다. 인내와 희생은 여성의 미덕이라 여기고 여자운명은 남자 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줄곧 자신의 욕망과 개성을 희생하는 여성은 이타주의와 사랑을 혼동한다. 그녀의 희생은 ‘거짓된 이타주의’에 불과하다.

 

여성은 성적으로 정숙해야 한다는 규범에 얽매여 성적 욕망과 표현을 억제(거세)한다. 여성이 남자에게 먼저 성관계를 요구하거나 성적으로 적극성을 보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스스로 성에 대한 장벽을 쌓고 억제한다. 남자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여자의 영혼까지 지배하고 구속하며 착취하고자 하는 욕망을 서슴없이 드러내곤 한다. 남성 위주의 억압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여자는 선택의 폭이 제한된다.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여성은 제대로 설 자리가 없다. 가부장적 질서 세계 아래 억눌려 있는 여성은 한없이 무기력해진다.

 

저메인 그리어의 ‘거세당한 여성’은 1970년 영국에 처음 소개되었다. 워낙 파격적이고 대담한 내용을 담고 있어 사회적 파문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 시기부터 급진적 페미니즘은 여성 문제를 더욱 중요한 사회적 문제로 크게 부각함으로써 새롭게 급부상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을 읽고 나서 페미니스트가 ‘남성에 대한 적대감과 분노를 가진 여성’이라고 오해하기 쉽다. 그래도 40여 년 전 그녀의 담론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녀는 남성의 편견적인 시선에 벗어나지 못하는 답답한 현실을 살아가는 여성, 특히 남성의 욕망 앞에서 꿈과 자유를 스스로 파기하는 여성의 현실을 지적한다. ‘거세당한 여성’은 사회적, 제도적 억압을 스스로 뚫고 일어서는 여성이 아니다. 저메인 그리어는 남성의 기분을 맞추는 여장 배우가 되는 것을 단호히 거부한다. 그리고 자신은 거세당한 사람이 아니라 ‘여자’라고 남자들을 향해 외친다.

 

‘남성들이 생각하는 여성, 남성들에 대한 고정관념’이 남성과 여성 모두를 불행하게 만든다. 남성의 세계 안에서 만들어진, 남성에게 익숙한 이미지로 재현되는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은 여성들의 구별되는 특징 등을 한데 묶어 여성들의 다양한 능력들을 보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남성들에게 잘못된 환상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우리에게 건강하고 완전한 성(The Whole Woman)이란 없었다. 우리는 규범적 남성성과 여성성이 강요하는 할례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 저메인 그리어는 이미 문화적 할례를 거부했다. 《여성, 거세당하다》를 읽음으로써 완전한 성으로 거듭나는 독자들이 많아지길 바란다.

 

 

 

《여성 혐오가 어쨌다구?》(현실문화)의 ‘언어가 성별을 만든다’(정희진 편) 99쪽 정희진의 주석에 보면 그녀가 권하는 페미니즘 입문서가 소개되어 있다. <거세된 여성>이라는 제목의 책이 있는데, 그 책이 바로 저메인 그리어의 《여성, 거세당하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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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03 21: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06-04 17:59   좋아요 0 | URL
남자도 여자 못지않게 힘들여 기른 장발을 생명처럼 여기기도 합니다. 러시아 표트르 대제 시절에 귀족들이 수염을 길게 길러서 뽐내는 게 유행이었는데, 대제가 구 제도를 타파하려고 수염을 강제로 깎는 제도를 시행했습니다. 귀족들이 반대하자 면도 안 하면 세금을 징수했습니다. 아무튼 남자들은 어느 신체 부위가 갑자기 없어지는 상황을 극도로 싫어하는 것 같습니다. ^^;;

transient-guest 2016-06-04 0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진지한 글을 보면서도 제 머릿속에는 그 언젠가의 겨울이 떠오르네요. 방학을 하면 유행처럼 어디에선가 방학특가로 D/C를 때리고, 이게 아줌마들 사이에서 소문이 나고...동네형과 함께...-_-: 일주일간 고통과 공포에 시달리던 기억이...특히 수술한 다음날엔가, 소변을 보다가 실밥이 터지는 경우가 있다는 유비통신을 듣고 온 동네형 때문에..둘이 벌벌 떨면서..소변을 참던.....-_-:

cyrus 2016-06-04 18:02   좋아요 0 | URL
포경 수술을 안 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같이 놀던 친구가 어느 날 갑자기 안 보이는 날이 있습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포경 수술 받고 나서 집에만 있는 거죠. 밖에 나가면 수술한 사실이 들키니까요. ㅋㅋㅋㅋ

alummii 2016-06-04 0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좀 일찍 일어났는데 갑자기 잠이 확 깨네요 ㅋㅋㅋㅋ 그래도 세상이 많이 변한 듯 해요 이 책 꼭 읽고싶네요

cyrus 2016-06-04 18:04   좋아요 0 | URL
이 책이 30년 전에 나온 것이라서 지금 실정과 많이 차이 나는 내용이 있어요. 그래도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은 점이 있긴 합니다. ^^;;

나비종 2016-06-04 2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착하고 얌전하게 생겼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순종적이고 바보스러운 느낌이 들어 거부감을 느꼈던 기억이 있습니다. 쓰신 글을 읽고 보니, 자기 검열을 하며 스스로의 욕망을 거세시키며 살아왔던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남성과 여성. 생물학적인 이분법으로 성의 구별이 있지만, 결국 완전한 성으로 거듭난다는 건 `인간`이라는 하나의 종으로 동등한 존재임을 인지하는 일인가 봅니다.

cyrus 2016-06-05 20:14   좋아요 0 | URL
여자가 남자보다 주변 시선 눈치를 많이 받습니다. 그래서 상황 대처가 빠르죠. 여자가 말실수를 하거나 잘못된 행동을 하면 그걸 본 사람들이 그냥 지나치지 않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인데 여자 연예인들은 루머와 악성 댓글 공격이 많이 시달리는 것 같습니다. 조금 튄 행동을 했다하면 악플러들이 달려 듭니다.

빨강앙마 2016-06-06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어디선가 이런 여성 의식이 있다는 걸 봤는데.. 거참..--;; 아직도 없어진건 아닌거 같더라구요.. 제목 자체에서부터 호기심이 동하긴 하네요. 그러고보면... 남자들도 굳이 그 포경수술...^^;;;; 암튼..흠흠.. 읽어보면 할 말은 많을거 같은데 제대로 글로 표현이 안될거 같아요 저는..ㅋㅋ

cyrus 2016-06-06 21:40   좋아요 0 | URL
사실 남자들도 포경수술을 원치 않은데도 속마음을 표현하지 못했습니다. 부모님 강제로 하는 경우가 많죠. 두려운 반응을 보이면, 포경수술을 먼저 한 또래 남자들에게 놀림감 받습니다. 그런데 웃긴 건 포경수술을 해도 친구들이 놀린다는 사실입니다. ㅎㅎㅎ
 
대분기 - 중국과 유럽, 그리고 근대 세계 경제의 형성
케네스 포메란츠 지음, 김규태 외 옮김, 김형종 감수 / 에코리브르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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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교과서를 펴 보면 유럽사가 절반 이상을 차지할 만큼 유럽사는 곧 세계사라는 인식이 강하다. 지금까지 서양은 독창적이고 과학적인 합리성과 진보적인 사산을 발판으로 세계의 정상에 우뚝 섰다고 인식하고 있다. 반면 동양은 비이성적이며, 나태하고, 야만적이라는 것이 유럽 중심적인 관점으로 전통적인 오리엔탈리스트에 대한 해석이다. 이러한 시각은 동양을 서양의 수동적인 상대로 묘사해 오로지 서양만이 독자적이고 진보적인 발전을 이룩할 수 있는 주장을 펴기 위한 이론의 틀 역할을 해 왔다. 서구 문명을 예외적으로 특권화하여 격상시키는 서구중심주의는 비서구 문명을 자신들이 만든 잣대로 재단해 격하하는 오리엔탈리즘과 짝을 이룬다.

케네스 포메란츠의 대분기는 지금까지 유럽중심주의적 역사 서술의 문제점을 낱낱이 공개한다. 저자는 서유럽과 중국 경제발전 수준을 비교하여 근대 경제 체제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중국은 1830년대만 해도 세계 제조업 생산의 30%를 차지하는 제조업 대국이었다. 그러다가 19세기 중반부터 산업혁명의 발원지인 영국에 밀렸다. 여기서부터 학자들이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18세기 중국에서는 영국처럼 산업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는가? 이와 관련해 포메란츠는 1800년경까지의 중국은 인구, 농업기술 등 모든 면에서 유럽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되면 서구의 패권 질서가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되는 대분기(The great divergence)’의 시점이 달라진다. ‘신대륙 발견이후 세계로 뻗어 나가던 15세기 전후부터가 아니라 1750년대 중반으로 봐야 한다.

 

15~18세기 기간은 무역에 관한 한 중국이 유럽보다 우위에서 주도권을 행사했다. 그 대표적 사례로 명나라 제독 정화의 남해원정을 통한 무역로 확장을 들 수 있다. 당시 유럽은 이슬람 세력의 견제로 아시아와의 자유로운 무역을 행사하기가 힘들었다. 콜럼버스나 마젤란 같은 항해가들은 위험을 무릅쓰면서 새 교역로를 찾으려고 시도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중국과 인도를 중심축으로 이뤄지던 세계적 무역체제가 역전됐다. 그 순간은 영국 산업혁명과 식민지 경제의 개척을 통해 촉발됐다. 가장 먼저 산업화를 주도한 영국은 면직물 하나로 세계 시장을 지배했다.

 

포메란츠는 이런 서구의 부상이 우연에 가까운 행운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서구와 아시아의 격차가 생겨난 것은 필연적이지 않다는 말이다. 영국 산업화는 석탄, 증기기관 발명 등 우연한 사건 집합체의 산물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영국을 제외한 몇몇 유럽 지역은 자원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낙후한 상태였다. 게다가 폭발적인 인구 증가, 가뭄과 홍수 등 자연재해로 인해 숲이 파괴되었고, 농사지을 땅의 상태도 나빴다. 포메란츠가 수집한 각종 통계 수치 자료들은 근대 유럽의 우월한 신화가 허위였다는 사실을 증명해준다.

 

 

 

 

 

 

이 책의 분량은 두껍다. 어떻게 보면 역사 전공자들을 위한 딱딱한 학술서적처럼 느껴진다. 유럽중심주의를 옹호하는 제도학파 역사관과 이를 수정하려는 캘리포니아학파 역사관에 대한 배경지식 없이 읽으면 엄청 지루하다. 포메란츠의 서술 방식이 독자에게는 불친절하다. 주요 핵심 내용을 후방으로 배치하고, 이와 관련된 각종 자료와 근거들을 장황하게 설명하다. 포메란츠의 대분기2000년에 출간된 책이다. 이미 다른 캘리포니아 학파 역사가들의 책이 국내에 소개된 것에 비하면 꽤 늦게 나온 셈이다. 안드레 군더 프랭크의 리오리엔트(이산, 2003), 로버트 마르크스의 어떻게 세계는 서양이 주도하게 되었는가(사이, 2014)를 먼저 읽었으면 포메란츠의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 (이 책 한 권을 열심히 만든 출판사 편집자, 번역자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완독이 부담스러운 독자는 대분기를 소개하면서와 서론만 읽으면 된다. 아니면 로버트 마르크스의 책을 읽으면서 캘리포니아학파 역사관을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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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종 2016-06-04 2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면가왕>이란 TV프로그램을 아시나요? 복면을 쓴 가수들의 노래 대결에서 99명의 판정단이 등장하죠. 결국 서구의 부상은 거의 대등했던 상황에서의 행운스러운 우연이란 말이군요. 49대 50의 판정 결과로 판세가 갈리는 것처럼요^^

cyrus 2016-06-05 20:19   좋아요 0 | URL
네, 항상 본방 사수합니다. 서양 중심 역사를 반대하는 학자들은 서양이 자원을 활용해서 경제가 성장한 상황을 우연으로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