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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늑대 - 바이킹의 역사
라스 브라운워스 지음, 김홍옥 옮김 / 에코리브르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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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킹의 역사, 특히 정복과 약탈을 집중적으로 다룬 책이다. 하나의 주제에 집중한 덕분에 많지않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밀도가 높다. 특히 바이킹의 습격이 유럽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이 책을 통해 바이킹에 대한 나의 인식이 얼마나 협소했는가를 깨닫는 동시에 새롭게 바이킹이라는 매력적인 관심주제를 얻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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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역사를 통해 배우는 지정학
다카하시 요이치 지음, 김정환 옮김 / 시그마북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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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전쟁사나 지정학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던 사람에게는 추천하고 싶지 않다. 내용의 깊이는 세계사 교과서 수준이라고 봐도 될 듯하다. 차라리 한 나라의 경우만 깊이있게 봤으면 좋았을텐데, 너무 많은 케이스를 맛보기 수준으로 훑기만했다.
그리고 은연중에 드러나는 ˝일본인˝ 저자의 입장이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요약: 다 아는 내용을 굳이 책으로 다시 곱씹은 느낌. 이래서 광범위한 내용을 한권에 담은 책은 사는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굳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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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트러몰로지스트 1 - 괴물학자와 제자
릭 얀시 지음, 박슬라 옮김 / 황금가지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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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한 희망은 있다.' 라는 말처럼 어리석고 기만적인 충고 도 없지...."
 <몬스트러몰로지스트>의 과학철학자이자 괴물학자인 워스롭 박사의 말이다. 이 말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서도 우리의 고개를 끄덕이게 하지만, H.P.러브크래프트의 작품 속 세계에서는 진리나 마찬가지다. 인간의 이성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고, 존재 자체가 신성모독적인 존재를 마주한 인간이 느끼는 처절한 무기력과 공포가 그 작품들의 핵심적인 소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몬스트러몰로지스트>는 이와는 달랐다. 굳이 구분하자면 소설 전반부의 느낌은 러브크래프트적이라고 부를만한 부분이 많이 있었지만, 후반부와 결말부분에서는 아니었다. 하지만 러브크래프트와 다르다는 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사실 러브크래프트 소설에서는 100년이라는 세월의 간극이 크게 느껴진다. 그래서 인물의 심리묘사가 단선적이거나 문체가 지루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고전이 겪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이다. 
 릭 얀시는 그런 점에서 러브크래프트보다 유리한 상황에서 소설을 썼다. <몬스트러몰로지스트>는 러브크래프트의 작품보다 훨씬 우리에게 익숙하다. 소재, 묘사, 플롯 모든 것이 100년 전보다 세련되고 우리의 눈에 익은 것들이다.

 지금까지 러브크래프트와 릭 얀시의 작품을 비교하는 식으로 <몬스트러몰로지스트>를 평가했다. 하지만 두 작품을 완벽하게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두 작품 사이에 "장르적 유사성"은 있지만, 품고있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의 핵심적인 요소는 "공포"와 "무기력"이다. 특히 인간이 알 지 못하고, 알 수도 없는 것에 대한 "공포"와 "무기력"이 그의 작품 대부분에서 드러난다.

 따라서 러브크래프트의 소설 속 화자들은 대개 관찰자 또는 체험자의 입장을 취한다. 그들은 엄청난 것을 보고 경험하며, 그 공포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그 공포에 압도당한다. 결국, 공포의 희생양들은 몸을 웅크리고 그 끔찍한 것들이 자신을 지나쳐 가기를 바랄 뿐이다.

 반면 <몬스트러몰로지스트>의 "공포"는 러브크래프트의 "공포"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공포의 근원은 과학은 물론이고 인간의 이성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것들이다. 초자연적이고 비이성적인 설명이 아니고서는 그것들의 정체를 파악조차 할 수 없다.

 그러나 <몬스트러몰로지스트>의 워스롭 박사는 과학자이다. 그는 이성의 노예가 되고자 하며, 모든 판단을 근거에 기반하여 논리적으로 내리려고 한다. 그렇기때문에 그는 작품 내 "공포"의 근원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역할을 맡는다. 러브크래프트의 "공포"가 비이성적이고 절대적인 것이라면, 릭 얀시의 "공포"는 이성적으로 설명이 가능한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러브크래프트의 "공포"는 결정되어 있는 운명이지만, 릭 얀시의 "공포"는 객관적인 사실일 뿐이다. 

 장황하게 설명했지만, 간단하게 줄이자면 러브크래프트는 미지의 공포를 마주한 인간이 얼마나 무기력하고 비참한지에 집중하며 공포심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몬스트러몰로지스트>는 모든 공포는 이해할 수 있는 것이고, 해결할 수도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한다. 

 하지만 러브크래프트와 <몬스트러몰로지스트>의 가장 큰 차이점은 역시 등장인물의 성격일 것이다. 특히 워스롭 박사가 매우 흥미롭다. 소설 초반부의 워스롭 박사는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미치광이 박사의 모습을 드러낸다. 이때문에 상대적으로 후반부보다 전반부가 러브크래프트적인 분위기를 더욱 진하게 풍기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후반부 클라이맥스 부분에서 워스롭 박사가 잠깐동안 드러낸 모습은 굉장히 신선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평가해보자.




그렇습니다.....저는 2권을 샀습니다....


*이 리뷰는 황금가지 서평단 이벤트를 통해 제공받은 <몬스트러몰로지스트 1>을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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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6-15 1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Postumus님의 리뷰를 보게 되군요. 이 책이 러브크래프트의 영향을 얼마나 받았는지 궁금했습니다. Postumus님의 리뷰를 읽으니까 궁금증이 풀렸습니다.

Postumus 2017-06-15 18:53   좋아요 0 | URL
러브크래프트의 향이 은근하게 느껴지는 장르소설입니다. 러브크래프트보다 훨씬 읽기 편한건 당연하고요ㅎ.저는 1권 읽고나서 무조건 4권까지 다 구매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혹시 이 책을 읽어보신다면 비슷한 느낌의 작품 좀 추천 부탁드립니다^^
 
미스 함무라비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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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법대로 할 수 있습니까?


 "법대로 해!"라는 말은 '나는 당신과 합리적인 방식으로 타협할 생각이 없고, 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생각은 더더욱 없다'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선언이다. 이 표현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상대방이 법대로 하지 못할 것을 잘 알기때문에 이러한 방식의 최후통첩을 한다. 우리는 이 표현을 통해 우리 사회에 법이라는 것이 얼마나 일반인들의 삶과 동떨어져 있는가를 알 수 있다. 이 한마디가 "법이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하는" 것이 바로 일반인들의 삶이라는 뜻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법원의 모습은 어떨까? 근엄한 차림과 표정의 판사가 높은 재판장석에 자리하고, 일반인들은 알아듣지도 못하는 법률용어가 오고간 후에 판사가 판결봉을 땅땅땅 두들기는 곳. 이것이 일반인들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법원의 이미지이다. 또, 판사들은 세상물정을 모르거나 너무 잘 아는 사람들로서, 현실과 동떨어진 판결을 내리거나 매우 정치적인 판결을 내놓는 사람들로 여겨진다. 이러한 오해 역시 우리가 얼마나 법에 대해 무지한가를 보여준다.
 법 아래 살면서도 법대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인 이 사회에서, 법은 소수의 전유물이 되었다. 그리고 법 아래에서 돌아가는 사회에서 법을 모르는 사람은 법을 아는 사람의 좋은 먹잇감이다. 차라리 이 소설에 등장하는 원고, 피고인들은 적어도 "법대로 해결해보려고는 하는", 개중에는 좀 더 나은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법이란 무엇인가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재판정에 판결봉이 없다는 것과 판사가 혼자서 판결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조차도 모르고 있었다. 이렇게 사소한 것도 잘못알고 있는 사람이 법에 대해서는 얼마나 잘 알수 있을까?
 <미스 함무라비>는 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오히려 나는 이 책이 시민을 위한 법률 교양서에 가깝다고 느꼈다. 물론 이 책을 읽는다고 재판이나 법에 대해 속속들이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판결이 어떤 기준으로 내려지고, 판결의 과정이 어떠하다는 것, 그리고 법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어느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법은 단순히 수많은 금기와 처벌만으로 이루어져있지 않다. 각 조문의 바탕에는 철학적인 고민이 깔려있고, 그 사회의 여러 조건이 반영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는 법이라는 바다의 수면 밑으로 들어가 보지 않고 법이 현실세계로 모습을 드러내는 현상인 판결에만 천착한다. 그렇기때문에 일반대중은 법의 작동원리를 이해하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 때때로 정치적인 사법부 논란을 판결의 근거라고 여긴다.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판결이 내려진 이유는, 스스로가 모르는 법리적 사실이나 법의 정신 때문이 아니라 부패하고 고집센 법관들의 잘못 때문이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덮어놓고 사법부를 혐오하는 방식이 그들이 생각하는 정의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정의가 과연 모두 옳은 것일까. 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정의는 명쾌해보이지만 동시에 위험하기도 하다. 법에 이렇게 위험한 방식의 정의관이 반영되기 시작하면 법은 모두를 위험에 빠뜨리게 될 것이다.
 때문에 법은 조심스럽게 다뤄져야 한다. 하지만 법을 모르는 사람은 그것을 조심스럽게 다룰 수 없기에, 법이라는 복잡한 장치를 다루기 위해서 적어도 사용설명서 정도는 읽어봐야 한다. 그 사용설명서는 헌법, 법과 정치 교과서가 될수도 있고, 이 책과 같은 교양서적이 될수도 있을 것이다. 
 법을 다루는 사람은 법관과 국회의원 뿐만이 아니다. 일반국민들도 모두 입법, 법의 집행 등의 과정에 참여해야한다. 따라서 법을 위한 사용설명서는 일부 전문가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읽어야 할 지침서이다. 이것은 민주공화국의 일원으로서 살아가기 위해 지켜야 할 의무이기도 하다. 

소설 <미스 함무라비>

 내가 <미스 함무라비>를 읽으면서 느꼈던 또 다른 점은 이 책이 소설로서도 나쁘지 않았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박차오름이라는 인물의 성격이나 설정이 과하다고 느꼈지만 뒷부분으로 갈수록 박차오름 판사의 캐릭터를 점점 이해하게 되었다. 또, 임바른 판사나 한세상 판사도 어딘가 정이가는 캐릭터들이었다. 게다가 마지막 부분의 그 반전(?)은 이 소설의 백미라고 할수 있을 정도로 좋았다. 웬만하면 책을 읽으면서 웃거나 하지 않는데, 마지막 반전을 알게된 순간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나왔다. 

 이 책을 읽고 난 후의 전체적인 감상을 말해보라고 한다면, 후속작을 읽고 싶은 작품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아무래도 400쪽이 채 되지않는 분량의 소설을 읽으면서도 등장인물들과 깊이 정이 들어버린 것 같다. 아무쪼록 문유석 판사께서 후속편을 한 권이라도 좀 내주십사 할 뿐이다. 44부 판사들과 정보왕 판사를 이렇게 떠나보내기에는 마지막 반전이 너무 매력적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시겠지만, 다크나이트 시리즈는 비긴스부터 라이즈까지 총 3부작이었다. 박차오름 비긴스가 44부 트릴로지의 첫번째가 되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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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1-22 21: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법을 소재로 한 소설인데도 생각보다 재미있었습니다. 정말 후속작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

Postumus 2017-01-22 21:07   좋아요 0 | URL
처음에는 좀 이상하지 않을까 했는데, 굉장히 재밌더라구요.
 
HHhH
로랑 비네 지음, 이주영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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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황금가지 서평단 이벤트를 통해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악마세계에도 행정직은 필요하다.

 이 책의 제목은 <HHhH>이다. <HHHH>도 아니고, <hhhh>도 아니고, <HHhH>요. 그 뜻은 Himmlers Hirn heißt Heydrich, "히믈러의 두뇌는 하이드리히이다.”이다. 보통사람들이 히틀러도 아니고, 히믈러에 대해 많이들 들어보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런데 이 책은 그 히믈러도 아니고 그의 두뇌라고 불렸던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라는 사람을 소재로 다루고 있다. 그럼 우선 이 하이드리히라는 사람에 대해 알아보자.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는 어쩌면 한국에서 대단히 선호하는 인물상일지도 모른다. 1차대전 이후 헬독일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혼란했던 바이마르공화국 시대에 유년기와 청년기를 보낸 그는, 성공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오오력 했다. 그리고 결국 히믈러를 사로잡은 프레젠테이션 실력으로 면접을 통과한 뒤, 각종 음모와 숙청에서 천재적인 능력을 발휘했다. 나치가 원하던 준비된‘인재’였던 것이다. 소설 속에서는 ‘장검의 밤’ 사건에서 그의 천재성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여기서 하이드리히는 조직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많은 음모와 살인을 지휘한다. 그리고 살인을 지휘하는 그의 행동은 미치광이나 무식한 과격주의자와는 거리가 멀어보였다. 오히려 매우 유능한 관료 또는 경영자의 모습에 가까웠다. 이 장면은 후일 그가 보여줄 체계적 인종청소, 포디즘을 적용한 대량학살의 예고였던 것이다.
 
 어쨌든 하이드리히라는 사람을 가장 잘 설명하는 하나의 장면은 바로 이것이다. 능력있는 관료, 조직을 위해 어떠한 일도 서슴치 않는 냉철한 인간. 그러나 동시에 그는 자기애에 가득차있는 인물이기도 했다. 체코의 총독으로 있으면서 하급자들에게 했던 일장연설이나 펜싱, 전투기 조종 당시 있었던 에피소드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 한마디로 하이드리히는 전형적인 나치이면서, 실무적 능력은 갖춘 인물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흔히 나치의 악행을 생각할 때, 현장에서 그것을 직접 수행한 사람들만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보니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나치는 대마왕 히틀러와 졸개 행동대원들로 이뤄진 악마집단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학살을 더욱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던 데에는 행정관료적인 악마들의 공이 더 컸다. 조금이라도 더 빠르게 많은 사람을 죽이기 위한 그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학살은 더디게 진행되었을 것이다. 수용자들을 더 많이 실어나르기 위해 열차시간표를 짜고,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인 살인이 가능할까 고민하고, 어디서 누구를 죽일까 고민했던 그 모든 노력들이 모여서 거대한 악을 이루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수행했던 인간들에게는 그 행동이 악마적인 행동이라는 인식도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현장에서 학살을 직접 집행한 인간들의 경우, 극심한 정신적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학살의 관리자들은 그렇지 않았다. 


소설의 주인공이 작가

 그렇다면 <HHhH>라는 소설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하이드리히? 유인원 작전의 낙하산병들? 아니면 히틀러? 내가 느끼기에 이 책의 진정한 주인공은 작가인 로랑 비네이다. 처음 이 책을 읽을 때는 하이드리히가 주인공인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당시의 나치에 대해 설명하면서 하이드리히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계속해서 알려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서술에 불과하다. 소설에서 가장 핵심적인 소품으로 사용되는 하이드리히라는 인간에 대해 설명하는 과정인 것이다. 
 소설 중반부부터는 낙하산병들이 중심인물로 떠오른다. 그러나 이들도 주인공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존재감이 크지는 않다. 그리고 후반부에 들어서면 그제서야 이 책의 주인공이 작가 자신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작가가 이러한 효과를 노렸을지는 모르겠다. 또, 다른사람들도 이렇게 느끼는지도 알 수 없다. 하지만 내가 느낀바로는 그랬다. 
 작가인 로랑 비네는 계속해서 한 가지에 대해 집착한다. 혹시 자신이 말 그대로 ‘소설’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닐까, 흔히 소설에서 나타나는 작가의 상상에 의존한 서술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다. 작가가 묘사하는 사건 당시 하이드리히가 아침에 콧노래를 불렀는지 아닌지는 기록이나 증언이 없는 한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소설가들은 거기서 소설가의 특권을 행사한다. 자신의 머릿속에 그려지는 장면을 수려한 문장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럼으로써 작가가 원하는 방향으로 인물이나 사건의 이미지를 증폭시킨다. 
 하지만 로랑 비네는 그러지 않는다. 만약 그런 서술을 했더라도, 뒤에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 자신의 상상임을 분명히 드러낸다. 예를들어 “알 게 뭔가?”, “그것은 모를 일이다”, 이런 식으로 사실과 자신의 상상 사이에 분명한 선을 긋는 것이다. 이 때문에도 이 소설의 주인공이 작가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게된다. 여기서 독자는 작가가 제시한 소설 속 세계와 서사를 직접 체험하거나 상상하지 않는다. 서술되는 작가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게 된다. 이렇게 작가 본인의 생각을 서술하는 간접적 방식때문에 작가는 계속해서 독자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게 된다. 


소설이냐, 수필이냐, 정체를 밝혀라

 위에서도 밝혔듯이 이 소설에서 작가는 소설을 쓰되, “소설”이고 싶지는 않다는 의지를 계속해서 내보인다. 그러기위해서 미친듯이 자료를 수집했던 이야기도 들려주고, 다른 소설에서 “구라”를 섞은 것 같은 내용에 대해서도 말한다. 이러한 서술방식의 효과는, 역사소설의 부정적 효과를 방지하는 것이다. 역사소설 역시 소설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갖고 있다. 즉, 책의 내용에 일정정도의 허구가 섞여있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독자는 어떤 것이 허구이고 어떤 것이 사실인지 파악하기 어렵다. 결국 독자에게 있어서 역사소설은 단지 역사를 소재로 한 소설에 불과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로랑 비네는 <HHhH>와 ‘유인원 작전’이 그런 방식으로만 소비되기를 원하지 않았던 것 같다. 특히 소설 말미에 작가가 등장인물들을 향해 드러낸 감정을 생각해보면 더더욱 그렇다. 

410쪽
 -용감한 무비시, 영웅 얀 쿠비시, 하이드리히를 죽인 사람, 쿠비시가 죽는 장면을 쓰기까지 힘들게 몇 주가 걸렸지만 전혀 즐겁지가 않다. 남는 게 무엇일까?

414쪽
 -사실대로 말하면 이 이야기를 끝내고 싶지 않다. 지하실에 있는 낙하산병 네 명이 포기하지 않고 터널을 파기로 하는 순간에서 이야기를 영원히 멈추고 싶다.

 그리고 나치게 희생당한 사람들에 대한 서술에도 작가의 안타까운 감정이 드러난다. 로랑 비네가 유인원 작전을 다룬 소설을 쓰기로 마음먹었던 이유는 이러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자신의 글로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두께는 중요하지 않아요

 <HHhH>를 읽기 전에 두께만 봤을 떄에는 순간적으로 엄청나게 겁이났다. 거기다가 이렇게 두꺼운 책을 줘놓고 2주안에 다 읽고 서평까지 쓸 생각을 하니 눈 앞이 캄캄했다. 그런데 막상 읽다보니 페이지가 굉장히 빠르게 넘어갔다. 우선, 작가가 자신이 겪은 일들과 스스로의 생각을 적어놓은 부분이 굉장히 쉽게 읽혔다. 그리고 250개가 넘는 챕터로 이뤄져 있어서 책의 밀도가 낮았기 때문에 그다지 부담스럽지도 않았다.  또, 페이지가 빠르게 넘어가다보니 성취감이 들어서 더욱 신나게 책을 읽었던 것 같다. 앞으로 책을 고를 때 페이지 밀도를 참고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하이드리히 암살사건이라는 소재를 알고 있는 독자로서는 책이 다 끝나가는데도 하이드리히 암살작전이 나오지 않아서 뭐지?하며 불안한 마음으로 읽어나가기도 했다. 그렇다고해서 그 과정이 지루하지는 않았다. 워낙 관심있는 분야를 소재로 하고 있는데다가 문장도 매끄러워서 걸리적 거리는 부분이 많지 않았고, 스토리 자체도 흥미로웠다.

 하지만 이 책에서 아쉬운 점도 물론 있었다. 우선 작가가 얀 쿠비시, 요제프 가브치크,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 세 사람에게 말하는 듯한 장면이 있었다. 그런데 프랑스어로는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지만 한국어판에서는 그대는...그대는...그대는...이런식으로 문장이 이어졌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문장에서 불편함을 굉장히 많이 느꼈다. '그대는'이라는 말이 반복되면서 답답하고 목에서 단어가 걸리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그랬던 것 같다. 그밖에는 그다지 불만이 없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가장 내 마음속에 남은 문장은 하이드리히의 죽음을 서술한 장면에 있지 않았다. 그렇다고해서 유인원 작전의 영웅들과 관련된 것도 아니다. 그것은 우리와 관련있는 문장이었다. 죽은자를 기억해야하는 이유를 우리에게 말해주는 문장이었다.

238쪽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다.우리가 아무리 경의를 표해도 죽은 사람들은 모른다. 하지만 우리,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는 의미 있는 일이다. 기억은 당사자인 죽은 사람들에게는 아무 도움도 되지 않지만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도움이 된다. 

 그렇다. 죽은사람들을 기억하는 것은 죽은사람보다도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더욱 필요한 일이다. 그들을 기억함으로써 우리는 위로받을 수 있고, 우리의 과거를 되짚어 볼 수 있다. 역사라는 것이 원래 죽은자들을 기억하는 방법에 관한 것이 아닐까 싶어졌다. 죽음이 오래되었다고 해서, 너무 많이 회자되었다고 해서 기억할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을 기억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를 위한 일이기 때문이다. 2016년이 끝나가는 지금, 우리는 또다시 죽음과 관련된 증언들을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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