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하지현분 삭제
“여성단체는 모두 페미니스트다” 여성단체와 페미니스트 모두에 대해 일반인들이 가지고 있는 편견이다. 그 외에도 몇 가지 오해가 더 있다. 여성단체와 페미니스트는 여성의 권리가 불리한 문제가 발생하면 길거리 시위를 한다. 그들은 여성의 이익만을 주장한다. 심지어는 자기주장이 강한 드센 여자들이 모인 곳이라고 생각한다. 페미니스트는 여성과 남성이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사람들이다. 크게는 여성의 인권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이다.
<리얼뉴스>의 헤드라인, 그리고 문제가 많은 헤드라인을 자신의 트위터에 리트윗한 하지현 씨는 페미니스트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을뿐더러 오히려 그 편견을 강화하고 있다. 페미니즘 반대론자, 여성 혐오자, 일베 회원들이 페미니스트를 비난할 때 쓰는 흔한 레토릭(rhetoric)이다. 그리고 어설프게 페미니스트를 흉내 내는 남자들이 가끔 저지르는 논리적 오류이기도 하다.
<리얼뉴스> 헤드라인을 삼단 논법으로 재구성하면 이렇다.
대전제 : 여성 단체와 페미니스트는 강남역 살인사건에 분노했다.
소전제 : 흑산도 여교사 성폭행 사건은 강남역 살인사건처럼 여성을 상대로 남성이 저지른 범죄다.
결론 : 그러므로 여성 단체와 페미니스트는 흑산도 여교사 성폭행 사건에 분노해야 한다(관심을 가져야 한다).
<리얼뉴스> 헤드라인을 뽑은 기자는 페미니스트의 이중성을 지적한다. “페미니스트들은 흑산도 성폭행 사건을 알고 있느냐?”, “강남역 피해자를 추모한 사람들이 왜 흑산도 성폭행 사건 피해자에게는 위로하지 않는가?” 해당 헤드라인을 읽은 사람들, 그리고 페미니즘 반대론자, 일베 회원들은 강남역 살인사건에 분노했던 페미니스트들의 반응을 부정적으로 본다. 금방 쉽게 식어버린 페미니스트들의 ‘냄비 근성’이라고 비판한다. 하지현 씨는 페미니스트가 흑산도 성폭행 사건에 대해서 일말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드러내지 않았다는 이유를 가지고 페미니스트를 ‘쓰레기’로 비유하면서 ‘정의롭지 않은 사람’으로 매도한다.
반 페미니즘 정서를 부추기는 잘못된 생각이다. 강남역 살인사건과 흑산도 성폭행 사건은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될 천인공노할 일이다. 성별, 이념의 차이를 떠나서 인간이라면 가해자들의 만행에 용납을 못 하며 분노를 느끼고, 피해자에게 연민을 느낀다. 이건 보편적인 반응이다. 이러한 감정적 반응을 ‘포스트잇 시위’ 같은 행동으로 드러나지 않았다고 해서 페미니스트와 여성 단체를 겨냥해서 지적하는 것은 부당한 논증이다. 애초에 흑산도 성폭행 사건에 침묵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문제로 삼으려면 ‘포스트잇 시위’를 하지 않는 대중의 태도를 지적해야 한다. 그런데 ‘포스트잇 시위’를 하지 않는 수많은 사람 중에 유독 페미니스트만 거론하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리얼뉴스> 헤드라인은 ‘쓰레기’라고 생각하며 하지현 씨의 입장에 절대로 동의하지 않는다.
만약에 페미니스트와 여성 단체가 흑산도 성폭행 사건을 자주 언급하면서 남성이 저지른 성 범죄 사건의 심각성을 부각시켰다면, 과연 남자들이 어떠한 반응을 보일지 자못 궁금하다. 여러 가지 반응을 예상할 수 있다.
“요즘 여성들은 성 범죄 사건 일어나면 심각하게 과민 반응을 보인다.”
“페미충들이 또 다시 미쳐 날뛰기 시작합니다.” (일베 회원의 반응, 페미충은 페미니스트를 비하하는 일베식 표현)
여성이 피해를 보는 성 범죄 사건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고 싶은 여자를 만나면, 남자는 불편한 심경을 드러내면서 물어본다. “너도 페미니스트였어?” 페미니스트를 잘 모르는 남자는 페미니즘에서 느끼는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 그것은 페미니즘에 대한 편견 혹은 공포에서 비롯된 오해이다. 선입견이 사라지지 않으면 여성 차별 문제에 대해서 함께 고민하고 연대하는 기회가 사라진다. 하지현 씨가 페미니스트인지 아닌지 논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적어도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페미니즘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스스로 물어볼 필요는 있다. 어설픈 논리로 페미니스트를 비판하는 사람은 여성의 내면과 요구를 이해하지 못하는 여성차별주의자만 못하다. 여성(페미니스트)에 대한 편견을 인정하는 사람은 대화와 설득이 가능하지만, 여성을 잘 안다고 착각하거나 페미니스트를 무시하는 사람은 손 쓸 도리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