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오랜만에 대구 북클럽 레드스타킹 관련 소식을 전해 본다. 두 달 동안 새로운 분야에 대해 공부하느라 글을 꾸준히 쓰지 못했다. 물론 바쁜 와중에도 틈틈이 책을 읽었으며 독서 모임 활동(‘레드스타킹’, ‘우주지감’)을 꾸준히 참석하고 있다.

 

전혜은 선생님과 함께한 페미니즘 스쿨10월 말에 종강했다. 나는 개인 사정으로 인해 딱 하루만 결석했다. 복습을 꾸준히 하지 못했지만,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에 대해서 나보다 더 많이 아는 레드스타킹 멤버들이 많아졌으니 언젠가는 그분들과 함께 다시 복습하는 시간이 올 거라 생각한다. 그분들의 능력과 열정을 생각하면 페미니즘 스쿨 2’가 개강할 수 있다고 본다.

 

11월부터 레드스타킹 모임 요일이 변경되었다. 그동안 레드스타킹은 매주 월요일에 진행되었다. 사실 몇 달 전에 모임 요일 변경에 대한 논의가 나온 적이 있었으나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흐지부지되었다. 그러다가 페미니즘 스쿨이 종강되고 난 후 나를 포함한 모든 멤버들이 새로운 시작을 위해 몸과 마음을 재충전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서 모임 요일을 바꾸기로 합의되었고, 이번 달부터 첫째, 셋째 주 금요일(2)에 모임이 진행되었다. 금요 모임의 장점은 모임을 길게 진행할 수 있다는 점이다. 모임 종료 시간은 밤 10시다. 그러나 대화가 길어지게 되면 10시 조금 넘어서 모임이 종료될 때가 있다. 1020분부터 11시 사이의 시간은 대구 시내버스의 막차를 탈 수 있는 골든타임이다. 집으로 가는 버스를 놓치지 않으려면 먼저 자리에 일어서야 한다. 게다가 모임 다음 날이 출근하는 날이라서 모임 종료 이후에 가볍게 술자리를 가지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금요일은 모임하기에 딱 좋은 요일이다. 다음 날이 쉬는 날이라 11시까지 모임을 진행할 수 있고, 모임이 끝난 뒤에 술자리를 가질 수 있다. 아무튼 나는 금요 모임에 만족한다. 그런데 셋째 주 목요일에 우주지감 모임 날이 되는 달이 찾아온다. 그렇게 되면 이틀 연속 저녁 모임에 참석하게 된다. 하지만 이틀 연속 독서 모임은 내게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 김보영, 김보화 스스로 해일이 된 여자들(서해문집, 2019)

    

 

 

2주 전 금요일에 레드스타킹 멤버들과 함께 다큐멘터리 영화 <해일 앞에서>를 시청했다. 올해 제2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와 제8회 대구여성영화제에 공개된 전성연 감독의 작품이다. <해일 앞에서>2016년 서울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에 대학생 페미니스트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페미당당의 활동 과정을 보여준다. 나는 페미니스트 활동가들의 인터뷰를 모은 스스로 해일이 된 여자들을 통해서 페미당당의 존재를 알게 됐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주의 정당을 만들고 싶어 하는 페미니스트들이 만든 페미당당은 여성주의 이슈와 관련된 퍼포먼스를 주최하여 큰 호응을 얻었다.

 

영화에서 나온 장면인데 가장 인상 깊은 퍼포먼스는 낙태죄 폐지를 촉구하고 약물을 통한 임신 중절의 장점을 알리기 위해 설치한 낙태약 자판기였다. 자판기 속에는 젤리와 비타민, 먹는 임신 중절 약미프진(Mifegyne)을 설명하는 소책자가 들어 있다.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지 일곱 달이 지났지만 미프진 도입에 대한 논의는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다.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에도 미프진은 국내에 정식 허가를 받지 못했다. 미프진 사용을 위해서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정식 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임신 중절을 원하는 여성들은 여전히 불법으로 유통되고 거래되는 미프진을 구매한다.

 

<해일 앞에서>는 페미당당이 퍼포먼스를 기획하는 과정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그녀들이 모임 활동을 하면서 느낀 크고 작은 현실적인 고민들까지 들려준다. 누구는 페미니스트로 살아가면서 감당해야 할 외로움을, 또 어떤 이는 이성애 중심의 세상에서 레즈비언 페미니스트로서 느끼는 고민을 안고 있다. 내 입으로 페미니스트라고 말하지는 않지만(나는 남성 페미니스트라는 호칭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거나 그 호칭을 비판하는 일부 페미니스트의 생각에 동의한다. 그래서 남들 앞에 내 자신을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남성이라고 소개하지 페미니스트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녀들이 느꼈을 외로움이 어떤 건지 이해한다.

 

내 여동생은 내 방을 가끔 드나드는데, 내가 구입했거나 도서관에 빌린 페미니즘 책을 보면 항상 오빠는 진짜 페미니즘에 관심이 많네라고 말한다. 그 말의 의도가 뭔지 잘 모르겠다. 페미니즘에 관심 많은 오빠가 대견스러워서 하는 말인지 아니면 페미니즘에 관심 많은 오빠가 평소와 다르게 이상하게(또는 신기하게) 느껴져서 그런 말을 한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래서 나는 그런 말을 들으면 부담스럽다. 다행히도 동생은 내가 어떤 이유로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인지 꼬치꼬치 캐묻지 않았다. 그런 상황이 오면 난감하다. 진지하게 설명하기도 귀찮고, 아무리 열심히 말해도 내 독서의 목적을 이해해줄리 만무하다. 나는 건성으로 요즘 같은 시대에 페미니즘을 모르면 안 되잖니라는 식으로 말한다. 나와 가장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가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의 삶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외로운 감정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다른 페미니스트들과의 관계가 각별하면서도 소중하게 느껴질 것이고, 페미니스트들로 이루어진 공동체 생활을 선호하게 된다. 물론 페미니즘 공동체 생활에 항상 웃음 가득한 날만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녀들도 인간이다. 대화를 나누다 보면 서로의 입장 차를 확인하다가 얼굴이 붉혀질 수 있고, 다른 멤버의 활동에 불만을 가질 수 있다. 또 단합이 잘 되는 공동체 생활에 잘 어울리지 못한다고 자책하는 멤버가 있을 수 있다. 그러면 외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해일 앞에서>는 페미니즘 공동체 생활의 현실적인 모습을 잘 보여준다. 페미니즘 공동체가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간에 멤버들이 치열하게 싸우지 않았다거나 심각할 정도로 다함께 고민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면 멤버 각자가 느꼈을 크고 작은 불만은 계속 누적될 수 있다가끔은 이런 불만들을 울다가 웃으면서 터놓고 말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 좋다.

    

 

 

 

 

 

 

 

 

 

 

 

 

 

 

 

 

* 토니 모리슨 빌러비드(문학동네, 2014)

* [품절] 토니 모리슨 가장 푸른 눈(들녘, 2003)

* 패트리샤 힐 콜린스 흑인 페미니즘 사상(여성문화이론연구소, 2009)

 

    

 

이번 주 금요일부터 페미니즘 문학 작품을 레드스타킹 멤버들과 함께 읽는다. 그 작품은 바로 토니 모리슨(Toni Morrison)빌러비드. 언젠가 이 작가의 소설을 읽어보고 싶었는데 절호의 기회가 왔다. 오랜만에 흑인 페미니즘 사상을 들춰봤다. 이 책은 빌러비드를 포함한 토니 모리슨의 소설들을 언급하고 있다. 예전에 절판된 가장 푸른 눈을 알라딘 서점에 구입했다. 1970년에 발표된 가장 푸른 눈은 백인 문화 중심의 인종차별과 친족 성폭력에 의해 정서적으로 파괴되어가는 열한 살짜리 여주인공의 비극을 그린 토니 모리슨의 첫 번째 소설이다. 지난주에 빌러비드를 읽기 전에 가장 푸른 눈을 먼저 읽었다. 난해하기로 유명한 토니 모리슨의 문학 세계에 서서히 적응하기 위해서다. 그녀의 문학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읽어야 할 소설이 절판된 점이 아쉽다. 내년이면 가장 푸른 눈출간 50주년이다. 이 책이 국내에 재출간되지 않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3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보물선 2019-11-18 2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지십니다!

cyrus 2019-11-20 23:29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

blanca 2019-11-19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틀 연속 독서모임은 나에게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 대목이 왜 이리 부럽고 근사한지... 흑인 여성의 페미니즘은 더 다층적이고 복합적일 것 같아요. 굉장히 의미 있는 독서모임이 될 것 같습니다.

cyrus 2019-11-20 23:30   좋아요 0 | URL
복습하는 차원에서 작년에 읽은 책을 다시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

2019-11-19 15: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11-20 23:32   좋아요 0 | URL
새로운 분야의 일을 하고 싶어서 그 일과 관련된 기술을 배우고 있어요. 저는 <가장 푸른 눈>에 슬픈 장면들이 많이 보였어요. 기회가 된다면 이 책으로 독서 토론을 하고 싶어요.

stella.K 2019-11-19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이야.
토니 모리슨의 소설이 어렵구나. 그렇다면 난 일단 보류...ㅋ
남자가 페미니즘에 관심있으면 멋져 보이던데 왜 그런 생각을 하나?
어깨 피라구.ㅎㅎ

cyrus 2019-11-20 23:34   좋아요 0 | URL
처음에 소설이 잘 읽혀지지 않아서 소설 속 인물들의 성격을 파악하는 데 조금 힘들었어요. 이럴 줄 알았으면 지난주부터 읽을 걸 그랬어요. 내일 모레가 독서 모임이 있는 날인데, 오늘 책을 읽기 시작했어요... ㅎㅎㅎㅎ
 
선량한 차별주의자
김지혜 지음 / 창비 / 201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배우가 비장한 표정으로 기자회견장에 나타나면서 폭탄선언을 한다. 여러분, 저는 차별주의자입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배우의 고백에 기자회견장은 잠시 술렁거리지만,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는 기자들의 손이 바빠진다. 기자석에 앉아 있던 어느 기자는 생각해보니 나도 누군가를 차별한 경험이 있는 것 같은데…‥라며 혼잣말을 한다. 그러자 배우는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으면서 …‥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겠죠?”라고 말한다.

 

방금 나온 배우와 기자의 발언은 실제로 일어난 일이 아니다. 치질 치료제 광고의 한 장면을 패러디한 것이다. 우리는 차별주의자가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누군가가 당신은 지금까지 살면서 한 번이라도 상대방에게 차별을 한 적이 있어요?”라고 묻는다면 대다수 사람은 살면서 그런 짓을 한 적이 없어요라고 대답할 것이다. 실제로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존경의 박수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내가 누군가로부터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차별받았다고 말하는 사람은 많다. 그렇다면 그들을 차별한 사람은 누군데? 차별을 당한 사람들은 많은데 자신이 차별을 한 적이 있다고 반성하는 사람을 눈곱만큼도 찾아보기 힘든 이런 상황을 어떻게 봐야 할까?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심각하지만, 단편적으로 이해하기 쉬운 차별의 의미에 다시 생각해보게 만든다.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서로 반대되는 느낌의 단어를 조합하는 표현 방식인 역설법이 생각나는 제목이다. 선량한 차별주의자라는 표현 자체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불행하게도 이런 사람은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다. 인정하기 싫겠지만, 나 자신이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될 수 있으며 그렇게 살아왔을 수도 있다.

 

이 책은 차별하는 가해자차별받는 피해자라는 이분법적인 구도를 가지고 차별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에 의문을 제기한다. 우리는 상황에 따라 누군가를 차별하는 가해자가 되기도 하고, 차별받는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살면서 차별을 한 적이 없어요라고 떳떳하게 말할 수 없게 된다. 우리는 분명 평등과 정의가 실현되는 세상을 꿈꾼다. 하지만 선량한 마음을 가진 우리는 의도하지 않은 상태에서 차별을 저지른다. 또 가해자의 위치에 서서 차별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이런 사람은 선량한 차별주의자에 속한다. 또 선량하면서도 차별을 당하는 사람들조차 차별 구조에 맞춰 생각하고 행동한다. 그들도 자신이 특권을 누리고 있으며 자신보다 사회적 지위가 낮은 사람을 차별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다양한 연구 결과와 사례를 통해 차별을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이 책을 쓴 저자는 결정 장애라는 은어를 사용했다가 잘못을 시인한 경험을 들러준다. 결정 장애란 행동이나 태도를 정해야 할 때에 망설이기만 하고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상황을 뜻한다. 그런데 이 결정 장애라는 말은 일상에서 무심코 쓰는 혐오 표현이다. 장애인을 부정적으로 보는 의미가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누군가가 자신이 평소에 좋아하는 대상이나 남들이 모르는 사적인 취미를 고백할 때 커밍아웃(coming out)이라는 단어를 썼다고 하자. 커밍아웃은 벽장에서 나오다(coming out of the closet)라는 뜻에서 유래된 말로 성소수자가 자신의 성 정체성을 공개하는 일을 뜻한다. 대부분 비 성소수자(non-sexual minority)는 무언가를 공개하거나 고백할 때 커밍아웃이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그러나 부모와 친구들에게 커밍아웃하고 싶은데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그리고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성소수자들의 상황과 비교하면 비 성소수자들은 커밍아웃을 너무나 편안하게 말한다. 그들은 성소수자를 차별한 적이 없다고 말하는 선량한 차별주의자.

 

상대방이 선량한 차별주의자인지 아닌지 판별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차별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기본적인 목적은 일상 속에서 반복되는 차별의 구조를 이해하고 비판하는 작업을 실천하기 위한 것이지만, 우리가 차별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목적은 따로 있다. 그것은 바로 내가 누군가에게 했을 차별을 스스로 인식할 수 있도록 자기 성찰에 익숙해지는 일이다. 자기 성찰을 하지 않고 차별 가해자를 찾아내 돌을 던지는 사회는 보이지 않는 차별의 구조가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분위기를 만들지 못한다. 우리는 난 누군가를 차별하지 않으면서 살 수 있어라고 안심할 수 없다. 우리는 허점이 많은 인간이다. 착하고 똑똑하다고 해도 누구나 차별주의자가 될 수 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크pek0501 2019-11-12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전혀 차별하지 않고 살고 있다고 자신할 수 없어요.
우리는 자기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죠.
인식과 성찰의 중요성. 동감합니다.

cyrus 2019-11-18 21:56   좋아요 0 | URL
혼자 공부하면 내 행동과 발언이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되돌아보기 힘들어요. 독서모임을 장기간 참석하면서 느낀 건데 성찰에도 한계가 있어요. 여러 사람과 함께 공부하면서 그들의 비판적인 의견을 귀담아 듣는다면 성찰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해요. ^^
 

 

 

근면과 성실을 강요하는 자본주의 사회. 이런 세상에서 게으름뱅이는 비난받는 존재이다. 하지만 노동에 지친 사람들에게 게으름이 주는 쾌락은 조금이나마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부지런함과 성실함을 미덕으로 강요하는 현대 사회에서 게으름에 대한 찬양게으름 예찬은 무척 도발적인 책이다. 그러나 일은 적게 하면서 인생을 한가롭게 살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책들이다.

    

 

 

 

 

 

 

 

 

 

 

 

 

 

 

* 버트런드 러셀 게으름에 대한 찬양(사회평론, 2005)

 

 

게으름에 대한 찬양의 저자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은 철학 · 수학 ·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70여 권의 저서와 수백 편의 논문을 썼다. 평화 운동에도 앞장섰던 러셀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아인슈타인(Einstein) 등 명사들과 함께 핵무기 감축과 전쟁 방지를 위해 노력했다. 그는 아흔여덟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정력적으로 활동했다.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손에서 일을 놓지 않았을 것 같은 그가 게으름을 찬양하는 글을 썼다는 점이 이채롭다.

 

러셀은 게으름에 대한 찬양에서 노동이 인생의 목표가 아니라고 말한다. 예전 기득권층은 노동자들의 잉여생산을 독촉하기 위해 근로의 미덕을 앞세웠다. 기득권층이 만들어낸 고정관념 때문에 노동자들은 열심히 일하는 것이 인간의 본분이라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우리는 노동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며 자아실현의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말 그런가.

    

 

 

 

 

 

 

 

 

 

 

 

 

 

 

 

* 벤저민 프랭클린 벤저민 프랭클린, 가난한 리처드의 달력(휴먼하우스, 2018)

* 새뮤얼 스마일스 자조론(비즈니스북스, 2006)

    

 

 

여기서 잠깐! 노동 숭배의 역사를 간단하게 살펴보자. 예로부터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 말라고 회자하던 노동 숭배는 러셀 못지않게 부지런히 활동한 벤저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시간은 돈이다란 명제를 만나면서 정점에 이른다. 19세기 영국의 사회개혁가로 활동한 새뮤얼 스마일스(Samuel Smiles)자조론이라는 책을 그 유명한 경구로 시작한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스마일스의 자조 정신을 함축한 이 경구는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가장 강력한 메시지로 알려져 있다. 스마일스는 이 책에서 노동자, 기술자, 과학자, 발명가, 군인, 정치가, 예술가 등 가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개인적인 성공과 함께 인류문명의 발전을 성취한 사람들의 생생한 삶을 소개한다. 스마일스는 성공한 위인의 자리에 열심히 땀 흘려 일하는 개인의 근면성과 열정을 대치시키고 있다. 그는 성공에 이르는 기본적인 비결을 개인의 노동과 근면에서 찾는다. 하지만 신분 제약이나 재산 유무와 관계없이 누구나 노력하고 근면하면 부와 성공을 달성할 수 있다는 스마일스의 입장은 노동의 미덕을 지나치게 숭배하는 고정관념에 가깝다.

    

 

 

 

 

 

 

 

 

 

 

 

 

 

 

* 강준만 바벨탑 공화국(인물과사상사, 2019)

 

    

 

산업화 초기만 해도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통용되던 사회였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그런 희망을 말하지 않는다. ‘개천에서 용 난다라는 말은 계층 이동의 가능성을 의미한다. 하지만 고성장 시대가 끝나면서 달라졌다. 부와 행복을 동시에 잡기 위해 노력하려면 누군가와 경쟁해야 하고, 그들의 희생이 전제되어야 한다. 결국 개인은 더 높은 서열을 차지하기 위해 각자도생의 길을 선택한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오직 나의 성공과 행복만 생각하면서 일하는 사람들이 서로 경쟁하게 만드는 한국식 서열 사회를 바벨탑에 빗댄다.

 

타인에게 일을 시키는 사람들, 즉 죽어라 일만 하는 사람들 위에 있는 기득권층이 노동의 가치를 찬양한다. 지금도 자본가들은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일해야 한다는 부르주아적 성실성을 지상 최고의 미덕으로 생각한다. 러셀은 이러한 고정관념 때문에 실업자가 된 노동자는 자신의 게으른 상태에 대해 스스로 죄책감을 느낀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게으름에 대해 느끼는 원초적인 죄책감을 용감하게 떨쳐버려야 사회와 개인이 행복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 로버트 디세이 게으름 예찬(다산초당, 2019)

    

 

 

호주의 작가가 쓴 게으름 예찬게으름에 대한 찬양의 주요 내용을 계승하여 현시대에 맞게 재해석한 책이다. 게으름에 대한 찬양게으름 예찬의 선배 격이라 할 수 있다. 게으름 예찬도 게으름뱅이를 악덕으로 만드는 노동 숭배에 정면으로 대든다. 그런 다음 빈둥거리기를 위한 구체적인 방향을 조목조목 제시한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다. 아무 것도 안 하기, 한가롭게 산책하기, 깃들이기(보금자리를 장만하여 그 내부와 외부를 꾸미는 일) 등이 있다. 이 책에서 제시한 실천 방안들이 그다지 새롭지 않다고 투덜거릴 수도 있겠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런 사소한 일상이 주는 행복을 우리가 얼마나 많이 잊고 사는가를 일깨워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게으름에 대한 찬양게으름 예찬에서 긍정하는 게으름은 각각 여유휴식에 가깝다. 게으름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선택에 관한 문제다. 빠르게 흘러가는 세상 속을 사는 동안 나 자신을 잊어버리지 않을 수 있는 능력과 나만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살아가겠다는 확고한 의지, 이것이 바로 게으름의 미덕이다. 게으름으로부터 우리 마음은 여유로워지고 자신의 내면을 좀 더 깊숙이 들여다볼 수 있으며, 정신적 자유를 가질 수 있게 된다. 행복해지고 싶다면 게으름뱅이가 되자.

 

 


댓글(4) 먼댓글(0) 좋아요(4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Angela 2019-11-04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유와 휴식을 위한 게으름은 필요한 것 같아요. 살럿 에이브러햄스 <오늘도 휘게>에세이도 휴식에 대해 언급한 것으로 알고있어요~

cyrus 2019-11-05 19:45   좋아요 0 | URL
주변 사람들 눈치 때문에 마음껏 쉬기 힘들어요. 저는 아무 것도 안 하고 눕는 것을 좋아하는데 어머니가 이런 저의 모습을 보면 잔소리를 해요. 맨날 누워만 있다고요.. ㅎㅎㅎㅎ

페크pek0501 2019-11-12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게으름에 대한 찬양은 오디오북으로 들어서 내용을 알게 되었어요.
요즘 읽고 있는 책 중 하나가 러셀 자서전이에요. 제목이 <인생은 뜨겁게>.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된다는 게 멋진 일이라는 걸 새삼 느끼게 해 줍니다.

cyrus 2019-11-18 21:58   좋아요 0 | URL
맞아요. 러셀 같이 다방면에 활약한 전문가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에요. ^^
 

 

 

우치다 타츠루(內田樹)대세를 따르지 않는 시민들의 생각법이라는 책에 요시모토 다카아키는 오직 혼자였다라는 글이 실려 있다. 요시모토 다카아키(吉本隆明)2012년에 세상을 떠난 일본의 사상가이다. 그의 이름은 우리에게 낯설지만, 그의 둘째 딸은 국내에 많이 알려진 소설가다. 그녀는 바로 요시모토 바나나(吉本ばなな).

    

 

 

 

 

 

 

 

 

 

 

 

 

 

 

* 우치다 타츠루 대세를 따르지 않는 시민들의 생각법(바다출판사, 2019)

 

    

 

타츠루는 고인이 된 다카아키를 추모하기 위해 요시모토 다카아키는 오직 혼자였다라는 글을 썼다. 다음에 나오는 문장은 타츠루의 글에서 인용했다. 생전에 전후 일본을 대표하는 사상가로 추앙받은 다카아키의 명성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요시모토 다카아키라는 사상가가 우리 세대에 미친 영향은 더할 나위 없이 심오하고 예리하고 압도적이었다. 우리는 요시모토 다카아키의 언어를 본받아 이야기했고, 요시모토 다카아키의 술어를 사용해 논의했고, “, 요시모토 다카아키 책을 읽지 않은 놈이군하고 선고를 두려워했다. 어떤 조직이나 당파에도 속하지 않고 요시모토 다카아키는 오로지 혼자 힘으로 한 시대를 온전히 휘어잡았다고 말할 수 있을 만한 지적 영향을 발휘했다.  (56)

 

 

다카아키는 1960년대 일본 학생운동의 정신적 지주로 주목받았고, 사회적인 문제가 일어날 때마다 앞장서서 싸웠다. 요시모토 바나나는 국내의 어느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아버지를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평생 싸웠고, 말과 행동에 차이가 없었던 존경스러운 분이라고 언급했다. 그녀가 사회적 약자들을 위로하는 소설을 쓰겠다고 생각한 된 데는 아버지의 영향이 크다.

 

다카아키는 마르크스(Marx)자본론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책이라고 극찬했으며 자신을 좌파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정치적인 영향력을 확장하는 일에만 몰두하는 당파의 행보를 반대했고, 전체주의로 변질한 스탈린주의와 내부 비판에 소극적인 일본 좌파 세력을 비판했다. 1968년에 발표된 공동환상론은 다카아키의 대표작이다. 다카아키는 이 책에서 국가의 정의를 새롭게 정의한다.

 

17~18세기의 계몽주의자들은 국가를 사회계약의 산물이라고 주장했다. 마르크스는 국가를 부르주아지 계급이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억압하는 기관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다카아키는 이 두 가지의 입장을 거부한다. 그는 국가가 여러 사람(공동)이 모이면서 만들어진 환상이라고 주장한다. 국가에 대한 그의 입장은 일본이라는 동아시아 국가의 존재에 대한 문제 제기로 이어진다. 개인의 이익보다는 민족 또는 공동체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일본의 사회적 분위기를 고려하면, 국가를 민족이 모여서 세워진 거대한 실체가 아닌 환상으로 호명한 다카아키의 주장은 파격적이었다. 공동환상론은 전후 일본 청년 세대의 필독서가 되었으며 그 책을 가슴에 품고 다닌 일본 여학생과 남학생들이 많았다고 한다.

    

 

 

 

 

 

 

 

 

 

 

 

 

 

  

* 동아시아출판인회의 동아시아 책의 사상, 책의 힘(한길사, 2010)

 

    

 

공동환상론2009년에 한국과 일본, 중국, 홍콩, 대만 등 아시아 5개 지역 출판사들의 모임인 동아시아출판인회의가 공동으로 기획한 동아시아 100권의에 포함되었다. 20세기 후반 동아시아에서 출간된 인문 서적 가운데 학술 가치가 높은 책들이 동아시아 100권의 책에 선정되었다. 동아시아출판인회의는 동아시아 100권의 책을 아시아 5개 지역의 언어로 동시에 출간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그로부터 십 년이 지났지만, 한국어로 된 공동환상론》 출간은 깜깜 무소식이다. 동아시아 100권의 책에 대한 해체를 담은 동아시아 책의 사상, 책의 힘을 참고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공동환상론을 간접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유일한 독서 방식이다.

    

 

 

 

 

 

 

 

 

 

 

 

 

 

 

 

 

* [절판] 요시모토 다카아키 요시모토 바나나의 아버지가 들려주는 내 안의 행복(호박넝쿨, 2003)

 

* 요시모토 다카아키 진짜와 가짜(서커스, 2019)

    

 

 

다카아키는 광범위한 주제에 관한 에세이를 많이 썼다. 제목이 너무 평범하게 느껴지는 내 안의 행복과 다카아키가 세상을 떠나기 일 년 전에 나온 진짜와 가짜(저자명이 요시모토 타카아키로 되어 있다)는 에세이집이다. 내 안의 행복번역본에 요시모토 바나나의 아버지라는 문구가 삽입되었다. 이 번역본이 나온 해가 2003년이었고, 이때가 요시모토 바나나의 책이 한창 인기를 끌고 있었다. 두 권의 책 모두 읽기에는 수월한 편이다. 한 번쯤 세상을 살아가면서 생각해봐야 할 내용을 다루고 있다. 다카아키의 글을 읽어 보면 우치다 타츠루의 글을 읽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두 사람이 쓴 에세이는 읽기 쉽다. 또 그들의 관심사도 거의 비슷하다. 우치다 타츠루도 가끔 자신의 글에 철학으로서의 마르크시즘을 긍정하는 입장을 드러냈는데, 아마도 이러한 생각은 다카아키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우치다 타츠루는 다카아키의 언어와 생각을 본받아 글을 쓰고 있다. 그는 요시모토 다카아키라는 거인의 어깨 위에 서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크pek0501 2019-11-12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우치다 타츠루의 책을 두 권 가지고 있어요. 철학에 조예가 깊은 저자로 느낍니다.
이 페이퍼를 읽으니 ‘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지 말지어다.‘라는 성경? 문구가 생각납니다.
옳은 소수가 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실감합니다.

cyrus 2019-11-18 22:00   좋아요 0 | URL
다수 한가운데서 개인의 솔직한 생각과 의견을 드러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에요. 그 사람들 눈치를 봐야 하죠, 그리고 또 다수 중에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지지해주는 사람을 적어도 한 두 명 정도는 있어야 해요. 소수의 마이너리티가 되는 것은 정말 외로운 일입니다.
 
아버지의 유산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죽음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문이다. 사람은 어느 순간부터 죽음의 문을 통과하게 되는 상황을 준비해나간다고 하지만, 그 거대한 문이 다가설 때까지 아무도 모른다.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그 문의 존재는 누구나 알고 있다. 다만 잊고 살 뿐이다.

 

일상에서 죽음을 떠올리며 산다는 것은 우울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하지만 외면할 수도 없다. 그래서 그 벽이 다가오기 전에 원 없이 세상을 즐겁게 살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또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정리해야 할 일들을 하나하나 짚어 나갈 필요도 있다. 나의 죽음 이후 내 가족과 자녀 간의 분쟁을 일으킬 수 있는 경제적인 문제, 즉 유산 상속에 관한 문제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부모 중 한 사람이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가 생기면, 남아있는 사람들은 슬픔과 동시에 유산 상속이라는 해결과제까지 떠안게 된다.

 

많은 이들이 유산 상속이라고 하면 경제적 가치가 있는 재산을 떠올리고, 그것이 분할되어 내게 얼마나 많이 주어질지 관심을 가진다. 아니면 아버지와 함께 생활하면서 알게 된 생활의 지혜라든가 아버지와 관련된 행복한 추억과 같은 정신적인 유산을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필립 로스(Philip Roth)의 자서전적 에세이인 아버지의 유산을 읽으려는 독자라면 먼저 이 책의 제목에 있는 유산의 의미가 무엇인지 한 번쯤 생각해볼 수 있다. 별것 아닌 일이지만, 책을 읽기 전에 그런 생각을 꼭 해보시라. 책의 후반부(200쪽 이후부터)유산에 대한 우리의 일반적인 통념을 깨뜨리는 반전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 내용을 보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 것이다. 어떤 독자는 아버지의 유산서평에 내가 강조한 그 반전을 언급했던데, 서평을 쓴 독자가 의도하지 않은 스포일러가 될 만한 사실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독자 서평을 안 보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 오히려 그게 이 책이 주는 진실한 교훈을 최대한으로 받아들이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유산86세의 아버지가 뇌종양 판정을 받고 2년 뒤 세상을 떠나기까지의 시간을 기록한 책이다. 작가의 아버지는 유대인 이민자 출신이다. 그는 일상의 숱한 반유대주의를 헤쳐 나왔고 정년퇴임을 할 때까지 보험회사 관리 업무에 종사했다. 필립 로스는 아버지의 남은 삶을 함께하면서 아버지와 나눈 일상적인 대화부터 시작해서 아버지가 숨을 거두기 직전의 모습까지 기록으로 남긴다. 아버지의 유산》에는 아버지에 대한 자식의 애정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기존의 책들과 다른 특별함이 있다. 특별함이 바로 내가 앞서 언급한 이 책의 반전이다. 반전이 없었으면 아버지의 유산은 누군가의 아버지에 대한 평범한 기록으로 남았을 것이다. 이 책의 반전은 작가뿐만 아니라 그의 이야기를 지켜보는 독자들까지 불편하게 만들지만, 한편으로는 절대로 외면할 수 없는 진실이다. 따라서 아버지의 유산은 유산의 물질성을 먼저 떠올리는 모든 아버지의 자식들을 각성하게 만든다.

 

내가 두 번이나 강조한 책의 반전을 막상 읽어보면 누군가는 당혹스러운 반응을 보일 것이고(대부분 사람이 이런 반응을 보인다. 이 책에서 로스가 언급한 유산은 우리가 거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어떤 이는 아주 특별한 유산의 의미를 기대했는데, 별거 아니네라고 생각할 수 있다. 책의 반전을 보면서 두 가지 유형의 감정(내가 언급한 것 이외의 또 다른 감정을 느낀 독자가 있을 것이다) 중 하나라도 느낀 독자가 있다면 그 사람은 한 인간의 죽음이라는 문이 서서히 다가오는 것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 나쁘다는 건 아니다. 이 글을 시작하면서 미리 언급했듯이 죽음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는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 아버지의 유산을 읽는다면 인생의 마지막 문으로 향하는 여정이 어떤 것인지 조금이라도 생각해볼 수 있다. 아버지의 유산은 종이에 남아 있는 작가의 아버지에 대한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다. 책 한 권과 같은 인생을 촤르르 펼치다가 언젠가는 마주하게 될 낯설면서도 익숙한 페이지, 바로 내 아버지에 대한 일상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Angela 2019-11-01 2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산하면 물질적인것만 떠오르는데, 반전이라니 그게 뭘까 기대가 되네요. 읽어보고 싶어요~

cyrus 2019-11-02 17:44   좋아요 1 | URL
꼭 읽어보셔요. 저를 놀라게 해준 책입니다. 반전이 정말 궁금하시다면 다른 분의 리뷰를 보셔도 돼요. 그렇지만 반전이 주는 놀라움을 제대로 느끼려면 책을 읽는 게 낫습니다. ^^

붕붕툐툐 2019-11-03 0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요, 저요~ 저도 정신 번쩍 들고 싶어요~ㅎㅎ

cyrus 2019-11-04 18:26   좋아요 0 | URL
책을 처음부터 읽으면 제가 느꼈던 감정을 조금 이해할 수 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