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돌보지 않는 나에게 - 정여울의 심리테라피
정여울 지음 / 김영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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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물어보자. 나는 어떤 사람이냐고. 나는 심리적으로 부정적인 반응에 빠져드는 경향이 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작할 때도 그렇다. 나는 시작하기도 전에 내 문제점을 생각한다. 그리고 어떻게든 그것을 고치려는 노력부터 먼저 한다. 마치 옷에 묻은 얼룩을 지우기 위해 물을 묻힌 손수건으로 벅벅 문지르듯이 나는 내 문제점을 얼른 찾아내서 고치려고 애쓴다. 손수건으로 세게 문지를수록 얼룩은 점점 더 번진다. 안 그래도 보기 싫은데 점점 뚜렷해지는 문제점을 보면 더 싫어진다. 여기서부터 내 일은 꼬이기 시작한다. 생각이 너무 많아지니까 일에 진척이 없다.

 

내 속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비판하는 제2의 자아가 살고 있다. “넌 왜 이렇게 못해?” “그렇게 열심히 노력했는데 결과가 왜 이러냐?” “좀 더 잘할 수 없었니?” 주변에서 괜찮아”, “잘했어라고 말해줘도 나는 여전히 만족스럽지 않다. 내가 검열관으로 임명한 제2의 자아의 지적을 피하려고 애쓴다. 아무래도 나는 자아비판이 지나쳐서 내 장점보다는 문제점을 더 보려는 습관이 몸에 뱄다. 그래서 피곤하고 지친다. 무엇보다 자존감이 떨어져 있다.

 

나를 돌보지 않는 나에게. 책 제목이 마치 나를 부르는 것 같아서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오랜만에 에세이를 읽었다. 작가는 심리학과 정신분석 이론을 공부하면서 왜 그렇게 자신을 가혹하게 대하면서 살아왔는지 살핀다. 그러면서 독학과 글쓰기를 토대로 자기혐오의 원인과 과정을 찾아내어 더는 자신을 비난하지 않고 나를 돌보는 방식을 발견한다. 작가는 심리학을 내 문제를 비춰보는 유용한 프리즘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내면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심리학자의 분석에 의존한다. 그러나 심리학은 내면의 문제를 명쾌하게 해결해주는 학문이 아니다. 작가는 심리학을 통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힌트를 얻어야 한다고 말한다.

 

작가가 본인의 내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발견한 힌트는 (Carl Gustav Jung)의 그림자 이론이다. 모든 인간의 내면에 그림자가 있다. 그림자는 자아, 즉 인간의 어두운 면이다. 이 그림자는 자신의 일부이면서도 스스로 거부해온 콤플렉스와 정신적 외상(trauma)이다. 나를 돌보려면 내면의 그림자를 외면하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나로 인정하면서 만나야 한다. 작가는 글쓰기를 통해 그림자를 대면했다. 처음에 쓴 글의 주제는 내가 나를 싫어하는 이유를 썼고, 다음 주제는 그래도 나를 사랑하고 아껴야 하는 이유였다. 작가는 이런 방식으로 글을 쓰면서 그림자를 돌보면서 어루만져준다. 이것이 작가가 강조하는 마음 챙김이다. 그러면 그림자도 자신을 가치 있는 존재라고 여기며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 내 안에 있는 검열관 이 녀석의 정체는 그림자다. 나는 그림자를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 이 책의 1장 제목은 제대로 사랑하는 법을 몰랐기 때문에. 나는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 그림자를 사랑하지 않았다.[1] 그림자를 제대로 사랑하는 법을 몰랐기 때문에.

 

앞서 언급했듯이 심리학은 우리의 내면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는다. 그림자를 따뜻하게 안아줘도 언젠가는 다시 내 포옹을 거부할 것이다. 그러면서 또다시 나를 괴롭힐 것이다. 작가는 상처 입은 치유자(wounded healer)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내 안의 그림자와 상처 둘 다 없이 산다면 정말 행복한 삶일까. 그리고 그런 삶을 사는 사람의 내면은 건강할 것일까. 나는 그림자와 내면의 상처 없이 산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본다. 내면의 상처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생기기 때문이다. 정말로 내면의 상처를 받지 않으면서 살려면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가야 한다. 그러나 세상과 타인을 내면을 위협하는 적으로 간주하면서 극단적인 고독을 선택하는 삶은 고통스럽다.[2] 오히려 그런 삶이 내면을 병들게 한다. 결국 인간은 죽을 때까지 그림자를 안으면서 내면에 상처를 달고 살아야 한다. 상처 입은 치유자는 그림자의 괴롭힘에 무기력한 피해자가 아니다. ‘상처 입은 치유자는 나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내면에 상처 입은 사람도 다른 사람의 내면 상처를 치유하는 능력이 있다. 상처 입은 치유자들은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면서 차츰차츰 각자의 아픔을 치유해간다.

 

나로 살아간다는 건 결국 나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살아야 할 시간이 아직 남았는데 벌써 남에게 인정받지 못해, 남에게 사랑받지 못해, 남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고 자책만 할 수 없다. 그냥 그럭저럭 그런 삶이어도 괜찮다. 나를 사랑하자. 젊은 나를 위하여.[주3] 나 자신을 사랑하면서 살다 보면 언젠가는 나를 인정해주고,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리라. ‘마음 챙김은 내 삶의 밝음을 확장하는 즐거운 놀이다. 이 즐거움으로부터 긍정적인 기운을 받는다면 내 안의 그림자까지 챙길 수 있다. 일본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신문기자>로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받은 배우 심은경은 인터뷰에서 앞으로 연기 활동에 대해 소박하면서도 당찬 포부를 밝혔다.

 

 

 그저 지금처럼 즐겁게, 저 자신이 더 높은 곳을 바라보려 하지 않았으면 싶다. 묵묵히 내 길을 가고 싶다.”

 

 

나도 그녀의 말처럼 어떤 신경도 쓰지 말고, 즐거운 마음으로 나 자신을 사랑하면서 살아가고 싶다.

 

 

 

 

 

 

[1] 기형도의 시 질투는 나의 힘마지막에 있는 시구를 차용했다.

 

[2] 라르스 스벤젠 외로움의 철학, 청미, 2019.

 

[주3] 잼(ZAM)의 노래 <우리 모두 사랑하자>에 나오는 노랫말(우리 모두 사랑하자. 우리의 젊은 날을 위하여)을 변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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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gela 2020-03-15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은 완벽주의자시네요~

cyrus 2020-03-15 18:19   좋아요 0 | URL
칭찬인가요, 비판인가요? ㅎㅎㅎㅎ 네, 맞아요. 제가 사소한 결졈을 그냥 지나치지 못해요. ^^;;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 이 문장은 알고 있는 당신은 분명 미술과 예술작품을 보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연배가 꽤 있는 옛날 사람일 수도 있다.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오픈하우스)는 미술평론가 손철주1998년에 펴낸 책이다(초판을 만든 출판사는 도산되어 사라진 생각의 나무).

    

 

 

 

 

 

 

 

 

 

 

 

 

 

 

 

 

* 손철주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오픈하우스, 2017)

 

 

 

이 책은 22년 동안 세 번의 개정을 거친 미술 교양서의 스테디셀러다. 이 책을 잘 모르는 젊은 독자들이 있을 것 같지만,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제목은 그림 읽기의 공식처럼 알려졌다. 그런데 그림이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해서 밑줄을 쳐가며 공부하듯이 미술책을 정독할 수 없는 노릇이다. 미술평론가나 미술사학자들의 작품 해석을 참고하지 않아도 기본적인 감상 방식만 알면 그림 보는 일은 어렵지 않다.

 

사람들이 그림 볼 때 제일 간과하기 쉬운 것은 내 마음을 믿는 일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만약 당신이 그림을 보다가 마음에서 무언가 느껴졌다면 그림을 제대로 보고 있다. 대부분 사람은 과연 내가 그림을 보고 느낀 것이 화가의 의도에 맞는지 스스로 의심한다. 나도 한때 그랬다. 이런 생각은 그림을 안 보이게 만든다. 이러면 미술은 어렵다라는 편견을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손철주는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에서 모든 예술작품 감상이 주관적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림 감상에 정답은 없다. 그림 감상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림을 보면서 느끼고 생각하면 되는 거다. 그림 (내가) 느낀 만큼 보인다.

 

    

 

 

 

 

 

 

 

 

 

 

 

 

 

 

 

* 존 버거 다른 방식으로 보기(열화당, 2012)

* [품절] 오시안 워드 TABULA: 현대미술의 여섯 가지 키워드(그레파이트온핑크, 2017)

* 오시안 워드 혼자 보는 미술관(RHK, 2019)

 

    

 

 

사실 오래전에 주관적인 예술작품 감상의 중요성을 강조한 미술 전문가가 있었다. 그 사람은 바로 다른 방식으로 보기(열화당)를 쓴 존 버거(John Berger). 이 책은 처음에 이렇게 시작한다.

 

 

 말 이전에 보는 행위가 있다. 아이들은 말을 배우기에 앞서 사물을 보고 그것이 무엇인지를 안다. (9)

 

 

다른 방식으로 보기의 핵심을 함축한 문장이다. 이 책에서 버거는 회화를 비롯해 사진 · 광고 등 우리를 둘러싼 이미지를 다르게 보는 방식에 주목한다. 그는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방식이 하나의 정형화된 상식으로 알려지는 것에 경계한다. 그러면서 상식으로 굳어진 예술작품을 보는 방식에 의문을 제기한다. 이러한 상식은 우리가 그림을 보면서 느낀 것들과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그림 한 점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느낌은 제각각이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과 알고 있는 것과의 관계는 항상 변한다. 그러므로 예술작품을 보려면 그것(우리가 보고 있는 것)과 관련된 상식과 전문가의 의견들(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분리해야 한다. 그 순간에 우리는 말(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배우지 않은 어린아이가 되어 예술작품을 본다.

 

오시안 워드(Ossian Word)다른 방식으로 보기의 핵심을 이어받아 현대미술 작품과 고전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방식을 제시한다. 그는 TABULA: 현대미술의 여섯 가지 키워드(그레파이트온핑크) 혼자 보는 미술관(RHK)을 썼다. 이 두 권의 책에 나오는 핵심 키워드는 백지상태를 의미하는 단어인 타불라 라사(TABULA RASA). 예술작품을 감상하려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출발해야 한다. 타인의 견해에 눈치 보거나 비교하지 않고 내 시선과 감각을 믿으면서 예술작품을 보는 것이다.

    

 

    

 

 

 

 

 

 

 

 

 

 

 

 

* 케네스 클라크 그림을 본다는 것(엑스오북스, 2012)

 

  

 

모든 미술 전문가가 주관적 작품 감상을 선호하는 것은 아니다. 케네스 클라크(Kenneth Clark)는 자신의 책 그림을 본다는 것(엑스오북스)에서 미술을 막대사탕처럼 한순간 기분 좋게 만들어 주는 게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림이 주는 기쁨을 오랫동안 느끼려면 그림에 관해 배우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케네스 클라크의 그림 감상 방식은 처음에 그림을 꼼꼼하게 살펴보면서 시작한다. 여기까지는 오시안 워드의 그림 감상 방식의 시작 단계와 비슷하다.

 

그림 전체와 세밀한 부분까지 다 살펴봤으면 그림에 대한 약간의 정보(화가의 생애, 그림이 화가의 생애에서 어느 정도 위치를 차지하는지 알 수 있는 정보 등)를 찾아본다. 이런 지식을 참고하면서 다시 한 번 그림을 본다. 그러면 혼자 그림을 보면서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것을 알게 된다. 케네스 클라크가 제시한 그림 감상 방식은 나쁘진 않다. 하지만 그림을 제대로 보면서 즐기려면 그림에 대한 정보가 꼭 있어야 하는가. 이것은 마치 그림이라는 문제를 보다가 내가 제대로 본 게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정답(정보)을 찾아보는 상황이다. 예술작품을 실컷 보다가 전문가의 작품 해설을 접하고 나면 허탈감이 느껴져서 그림을 계속 보고 싶은 마음이 나지 않을 것이다. 케네스 클라크의 그림 감상 방식은 미술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지 않다.

  

미술 교육의 단점은 예술작품을 내 방식대로 보고 즐기는 방식을 가르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이들은 그림을 눈으로 보기에 앞서 교과서에 나온 그림 감상법을 배운다(다른 방식으로 보기의 첫 문장을 변형했다). 이러면 그림 보는 일에 흥미가 생기지 않는다. 틀려도 좋으니 즐겁게 논다는 생각으로 편안하게 그림을 보자. 그림을 보는 것은 정말 재미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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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2020-03-14 1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딱 맞히셨어욥! 저, 연배가 좀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지만 확실히 옛날 사람은 맞아요. 심지어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 구판 책으로 수업도 했었고 페이퍼도 작성했던 것 같아요. 사이러스 님이 짚어주신대로 그림은 느낀만큼 보인다고 저도 동감해요^^

cyrus 2020-03-14 23:46   좋아요 0 | URL
저는 나이만 젊은 ‘애늙은이’입니다. 저랑 같은 나이의 사람들이 뭘 좋아하는지 잘 몰라요. 그래서 나쁘게 말하면 시대와 유행에 뒤쳐진 사람이에요. 이래서 저도 ‘옛날 사람’이죠. ^^;;
 
아주 특별한 사랑
루이자 메이 올콧 / 창작시대 / 199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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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하버드 대학교 도서관 열람실에 붉은색 노트가 발견되었다. 그 노트 표지 안쪽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힌 쪽지가 붙여져 있었다.

 

17세에 쓴 내 최초의 소설, 하이 세인트 보스턴에서.

 

노트 제목은 ‘The Inheritance(상속)이다. 이 노트를 쓴 사람은 루이자 메이 올컷(Louisa May Alcott)이다. 노트의 정체는 올컷이 열일곱 살이었던 1849년에 쓴 첫 번째 소설의 원고였다. 이 소설은 아주 특별한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번역되었다. 번역자는 현재 여성문화이론연구소(여이연) 공동 대표로 활동 중인 여성학자 임옥희.

 

 

 

 

 

 

 

 

 

아주 특별한 사랑17세기 소녀가 썼다고 믿을 수 없으리만치

훌륭한 성공작이다.

아름다운 한 편의 동화와도 같은, 상큼하기 그지없는 소설!

(Publisher’s Weekly)

 

 

작은 아씨들과 같은 성인 소설적 요소는 물론,

고딕풍의 세기말적 우수까지 묻어나는 감동적인 소설!

(New York Times)

 

 

 

 

아주 특별한 사랑의 여성 주인공 에디스 애들런은 가난한 가정교사다. 그녀는 해밀턴 부인의 저택에 살면서 일을 하는데, 부인의 조카 아이다 해밀턴은 귀족 남성들로부터 사랑받는 에디스를 미워한다. 하지만 에디스는 귀족 남성과의 연애에 관심이 없다. 그녀는 아이다의 계략에 빠져 절도범으로 오해받아 해고당할 위기에 처한다. 하지만 아이다가 에디스에게 누명을 씌운 사실이 알려지면서 해밀턴 부인은 해고 결정을 취소하고 에디스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 그리고 에디스를 둘러싼 출생의 비밀도 밝혀진다. 에디스는 해밀턴 가의 상속자라였다. 그리하여 에디스는 해밀턴 가의 혈육이 된다. 에디스가 친구로 지내온 월터 퍼시 경의 구애를 받아들이면서 소설은 행복한 장면으로 끝난다.

 

아주 특별한 사랑은 전형적인 로맨스 소설의 공식을 따르고 있지만, 에디스는 가부장적인 남성과 젠더 위계에 순응하는 로맨스 소설의 여성 주인공의 모습과 거리가 멀다. 그녀는 자신보다 신분이 높은 남자의 구애를 거절하는 이유를 소신 있게 밝힌다. 그러자 그녀의 말을 듣고 있던 퍼시는 자신이 차라리 농부였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한다. 에디스는 남성들에게 늘 보호받는 아리땁고 연약한 여성이 아니다. 산책하다가 절벽에 떨어질 위기에 처한 해밀턴 부인의 딸 에이미를 구한 사람이 에디스다. 재미있는 점은 그녀들과 동행한 남자들의 반응이다. 퍼시와 함께 산책한 아서는 에이미의 친오빠다.

 

 

  그들은 황급히 소리가 들려 온 쪽으로 뛰어갔다. 에디스가 시체처럼 핏기 없는 얼굴로 절벽에 무릎을 꿇은 채 머리를 벼랑 아래로 내밀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가파른 절벽의 옆구리는 강물과 맞닿아 있었다. 그리고 까마득한 낭떠러지 아래쪽에 에이미가 가느다란 넝쿨을 잡고 매달려 있었다. [중략]

  “어떻게 에이미를 구하지?”

  아서는 어쩔 줄 몰라 하며 절망적으로 손을 휘둘렀다.

  “저기까지 어떻게 내려가지? , 맙소사, 퍼시! 손놓고 앉아 죽는 걸 보고만 있어야 하다니!”

  “진정해, 아서. 에이미를 겁먹게 해서는 안 돼.”

  퍼시 경은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위아래로 열심히 살펴보면서 친구를 달랬다.

  “저 넝쿨에 의지해서 아래로 기어 내려갈 수도 있을 거야. 아니야, 에이미가 있는 곳까지 내려가기는 힘들어. 신에게 맡기는 수밖에 없나? 별다른 방법이 없을까?”

  “있어요.”

  에디스가 벌떡 일어나면서 단호하게 말했다.

 

(제4장 41)

 

 

남자들이 혼란에 빠져 있는 동안 에디스는 내면에 숨겨진 용기와 번뜩이는 기지로 에이미를 구하는 데 성공한다. 퍼시는 용감한 에디스에게 한눈에 반한다. 이 장면을 보면서 통쾌함이 느껴지지 않는 페미니스트가 있을까. 열일곱 살 올컷은 남성 주인공이 위험에 빠진 여성 인물을 구출하는 기존 로맨스 소설의 통념을 비튼다. 남성 주인공보다 용감한 여성 주인공. 그리고 남성 주인공은 여성 주인공의 외모가 아닌 용감한 모습을 보고 사랑에 빠진다.

 

올컷은 청빈하고 엄격한 청교도 집안에서 자란 경험을 바탕으로 소설을 썼다. 아주 특별한 사랑에서도 청교도적 가치를 강조하는 장면들이 나온다. 이 소설은 올컷의 습작기에 나온 작품이다. 기존의 유명한 문학 작품을 참고하면서 글 쓴 작가의 흔적이 역력하다. 출생의 비밀, 청교도적 가치를 행동으로 실천하는 삶, 죽음의 위기에 처한 인물을 구해내는 용기, 부유한 남성과 결혼한 가정교사. 에디스의 이런 행적은 샬럿 브론테(Charlotte Brontë)가 창조한 제인 에어(Jane Eyre)와 흡사하다. 어린 올컷은 처음 써본 중편소설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원고를 세상에 공개하지 않았던 것일까. 첫 번째 소설이 되어야 할 아주 특별한 사랑148년 동안 올컷의 책상 서랍과 도서관에 잠들게 된 이유는 아직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하지만 올컷은 자신의 소중한 첫 작품을 외면하지 않았다. 그녀는 중편 가면 뒤에서(Behind a Mask, 1866)를 쓸 때 아주 특별한 사랑의 뼈대를 가져왔다.

 

 

 

 

 

Trivia

 

* 125

피그맬리언갈라티아

피그말리온(Pygmalion)갈라테이아(Galat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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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gela 2020-03-15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에 <작은 아씨들> 신판이 나와서 구입했는데, 이 책도 구하고 싶네요.^^

cyrus 2020-03-15 18:17   좋아요 0 | URL
이 책 두 권이 알라딘 중고서점에 있어요. 그곳에 직접 가지 않고도 인터넷으로 주문할 수 있어요. 가격이 정말 싸요. ^^

비로그인 2020-05-15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렴한 중고는 온라인으로 주문하면 택배비가 더 나가는 게 흠이죠. 그건 그렇고 이 작품이 별 3개정도 밖에(6점 정도?) 안 되나요? 치명적 사랑도 그리 높은 평점이 아니던데.. 작은 아씨들이야 어떤 출판사에서 나온 것과 관계 없이 8점대 이상은 기본인데말이죠..
 

 

 

 

왜 위대한 여성 예술가 3명은 없는가?” 나는 단숨에 읽는 여성 아티스트(시그마북스)의 한 줄 평을 이렇게 쓰고 싶다. 이 책에 나온 여성 예술가는 총 57명이다. 3명만 더 소개했으면 좋았을 텐데‥…. 저자가 57명을 선정한 기준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책에 없는 3명의 여성 예술가를 찾는 일은 독자의 몫이다.

    

 

 

 

 

 

 

 

 

 

 

 

 

 

 

 

 

* 플라비아 프리제리 단숨에 읽는 여성 아티스트(시그마북스, 2020)

 

 

 

사실 나는 단숨에 읽는 여성 아티스트를 읽으면서 책에 포함되어야 할 여성 예술가를 네 명 정도 생각했다. 이 네 명 중의 한 명을 제외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3 플러스 1(3+1)형식으로 여성 예술가를 소개하겠다. 소개 순서는 예술가들이 태어난 연도순이다.

 

 

 

 

1. 카미유 클로델(Camille Claudel, 프랑스, 1864~1943)

    

 

 

 

 

 

 

 

 

 

 

 

 

 

 

 

* 카미유 클로델 카미유 클로델(마음산책, 2010)

* 도미니크 보나 위대한 열정(아트북스, 2008)

* [절판] 안느 델베 카미유 클로델(투영, 2000)

 

 

 

카미유 클로델은 오랫동안 스승이자 연인이었던 오귀스트 로댕(Auguste Rodin)의 그늘에 가려져 있었다. 그녀는 로댕과 함께 조각 작품을 제작하며 실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그녀는 예술가로 인정받지 못한 채 30년 동안 정신병원에 갇혀 지내다가 눈을 감았다. 로댕은 위대한 조각가로 알려져 세상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지만, 카미유는 실력이 뛰어난 비운의 여인으로 기억되고 있다. 시대는 카미유의 뛰어난 재능과 넘치는 열정을 이해하지 못했다. 카미유를 지치게 만드는 시대의 벽, 이 거대한 벽을 그녀 혼자서 넘어서기에 힘겨웠다.

 

카미유 클로델(마음산책)은 로댕을 포함해 가족과 지인과 주고받은 편지들을 모은 책이다. 위대한 열정(아트북스)은 카미유와 그녀의 남동생 폴 클로델(Paul Claudel)의 관계에 주목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카미유를 불행하게 만든 사람으로 폴을 지목한다. 카미유와 폴의 어머니는 남편의 유산이 장녀 카미유에게 상속되는 것을 막기 위해 딸을 정신병원에 감금하려고 한다. 폴은 어머니의 계획에 동의한다. 그는 로댕이 누이의 삶을 망가뜨렸다면서 비난한다. 하지만 폴도 로댕 못지 않게 누이를 힘들게 한 적이 많다. 갑갑한 정신병원에 생활한 카미유는 폴에게 조각하고 싶다면서 말했지만, 폴은 그녀의 요청을 무시했다.

 

 

 

 

 

 

 

 

 

 

 

 

안느 델베(Anne Delbée)카미유 클로델1989년에 어떤 여자(출판사는 예하’, 역자는 성옥련)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처음 번역된 카미유 전기(傳記). 1989년은 이자벨 아자니(Isabelle Adjani)가 카미유로 열연한 영화 <카미유 클로델>이 국내에 개봉된 해이다. 영화의 인기에 힘입어 그 해 말에 카미유 클로델(정음사, 역자는 강명호)도 나왔는데, 제목만 다를 뿐 저자명과 내용은 동일하다. 이 책의 앞표지와 뒤표지 모두 영화 <카미유 클로델>에 나오는 장면이다. 어떤 여자(Une femme)는 원래 카미유의 삶을 극화한 연극 제목이다. 안느 델베가 이 연극의 공연을 연출했다. 영화 원작은 안느 델베가 쓴 전기가 아니라 폴의 손녀가 1984년에 발표한 전기다.

 

 

 

 

 

 

 

2. 케테 콜비츠(Kathe Kollwitz, 독일, 1867~1945)

    

 

 

 

 

 

 

 

 

 

 

 

 

    

 

* 민혜숙 케테 콜비츠(재원, 2009)

* 조명식 케테 콜비츠(재원, 2005)

 

    

 

독일의 판화가 겸 조각가 케테 콜비츠는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의 삶에 관심이 많았다. 그녀는 사회 문제의 실상을 판화로 기록하여 세상에 알리려고 했다. 케테는 1980년대 우리나라의 민중미술에 큰 영향을 주었다. 사회주의자인 케테는 초기에 농민 항쟁이나 파업을 주제로 한 동판화를 제작한다. 1차 세계 대전 중에 그녀의 아들이 전사한다. 그 후로 케테는 전쟁의 참상과 전시 속에 고통 받는 민중의 모습을 주로 표현한다. 불행하게도 두 번째 세계 대전이 일어나 손자까지 전사한다. 아들과 손자의 죽음은 지켜본 케테는 말년에 죽음을 주제로 한 판화를 제작한다.

 

실천문학사 출판사에서 나온 케테 콜비츠 평전은 절판되었다. 그녀의 생애와 예술론을 함께 기술한 책으로는 케테 콜비츠(재원)이 유일하다.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동명의 책이 있다. 책을 참고하거나 구매하기 전에 저자명과 목차를 잘 확인해야 한다. 일단 2005년에 나온 케테 콜비츠(재원)는 도록 형식으로 된 책이다. 작가 소개와 작품 설명에 대한 내용이 많지 않다. 2009년에 나온 케테 콜비츠는 분량이 얇지만, 그래도 작가의 생애와 예술론이 간략하게 잘 정리되어 있다.

 

 

 

 

3. 메레 오펜하임(Méret Oppenheim, 독일, 1913~1985)

    

 

 

 

 

 

 

 

 

 

 

 

 

 

 

 

  

* 로라 톰슨 초현실주의(시공아트, 2014)

* 카트린 클링죄어 르루아 초현실주의(마로니에북스, 2008)

    

 

 

메레 오펜하임은 초현실주의 그룹에 활동한 초현실주의자다. 그녀의 대표작은 털로 덮인 아침식사. 이 작품은 찻잔과 받침, 찻숟가락 세트를 모피로 감싼 오브제(objet). 그녀는 카페에서 우연히 만난 피카소(Picasso)와 대화를 나누다가 모피로 덮인 찻잔 세트를 생각해낸다.

 

 

 

 

 

 

 

 

    

오펜하임은 그저 관객을 놀라게 해주려고 이런 기괴한 오브제를 선보인 것은 아니다. 그녀는 사물을 바라보는 우리의 인식(‘저것은 찻잔 세트다’)과 사물의 용도마저 모피로 덮어버린다. 그러면서 우리가 사물을 인식하는 상황을 의심한다. 이 오브제 작품은 모피 찻잔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졌다.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가 파이프 한 개를 그려놓고선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Ceci n’est pas une pipe)라고 뻔뻔하게 말했듯이(그림 제목은 이미지의 배반이다) 오펜하임은 모피 찻잔을 관객들 앞에 들이대면서 이렇게 말한다. 이것은 찻잔이 아니다.” 찻잔이 아니라면 무엇인가 말인가. 오펜하임이 설정한 사물의 배반을 바라본 관객은 혼란스럽다. 

 

 

 

 

 

 

+1 바바라 크루거(Barbara Kruger, 미국, 1945~ )

 

    

 

 

 

 

 

 

 

바바라 크루거는 지금도 활동하고 있는 예술가다. 크루거는 사진이나 그림 위에 문장을 넣은 포토몽타주를 만들었다. 가장 많이 알려진 그녀의 대표작은 나는 쇼핑한다, 고로 존재한다(I Shop, therefore I Am), 당신의 몸은 전쟁터다(Your Body is a Battleground)이다. 후자의 작품은 여성의 임신 선택권 보장을 촉구한 미국 페미니스트들의 시위가 벌어졌던 시기에 나왔다. ‘당신의 몸은 전쟁터’는 지금도 페미니스트들의 시위 구호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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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놀로지의 덫 - 자동화 시대의 자본, 노동, 권력
칼 베네딕트 프레이 지음, 조미현 옮김 / 에코리브르 / 2019년 9월
평점 :
품절


 

 

인류 발전의 역사는 기술 발전의 역사라 할 수 있다. 인류는 기술을 습득할 줄 알며 기술과 관련된 정보를 사회 속에서 전달하여 축적한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가 항상 기술이 발전하는 방향으로 이뤄진 것만은 아니다. 기술이 발전하는 추세는 분명하지만, 기술 발전을 막으려는 시도도 있었다. 1811년에서 1817년 사이에 걸쳐 영국에서 일어난 러다이트(Luddite Movement)는 방적 기계의 도입을 막기 위해 일어난 운동이었다. 요즘은 인공지능(AI) 기술과 로봇이 사람의 일자리를 위협하고, 인간 존재 자체에 도전할지 모른다고 주장하는 새로운 러다이트 운동이 나타나고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모든 기술은 사회에 정착되는 데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기술을 막으려는 세력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새로운 기술의 도입은 기존의 정치 세력과 노동자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이들의 저항은 이제 막 발전하려는 기술의 발목을 잡는 으로 작용한다. 테크놀로지의 덫은 수천 년간 기술이 무궁무진하게 발전했음에도 경제 성장이 더딘 이유를 주목한다. 그 이유는 새로운 기술의 힘이 두려운 세력들의 지속적인 활동이다. 정치적 힘을 가진 러다이트는 민중주의자(populist)가 되어 혁신을 거부하는 시민들의 지지를 얻는다. 민중주의자로 변신한 러다이트는 새로운 기술 확산으로 인해 사회에 혼란을 일어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사실 시민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건 정략적 의도로 새로운 기술에 대한 공포를 조장하는 민중주의자들이다.

 

우리는 러다이트를 지배계급에 저항하는 세력으로 생각한다. 테크놀로지의 덫은 우리의 편견을 깨뜨린 책이다. 지배계급이 노동을 대체하는 기술의 발전 속도를 늦춰왔다. 그들이 노동 대체 기술을 도입하면 이득보다는 손실이 더 크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노동 대체 기술 도입으로 급부상한 신흥 산업 계급을 반기지 않는다. 이 사실을 증명해주는 사례가 18세기 산업화 시대이다.

 

산업혁명이 시작된 영국에서는 신흥 산업 계급이 강력한 정치 세력으로 등장했다. 그러면서 기계화가 경제 성장과 정치적인 헤게모니(hegemony)의 중대한 변수가 된다. 신흥 산업 계급은 자신들의 정치적 · 경제적 기반을 확실히 다지기 위해 기술을 보급하는 일에 노력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구세대의 지배계층도 영국 사회의 대세가 된 신흥 산업 계급의 편이 된다. 기계가 있는 공장이 우후죽순 들어서면서 가내 공업 노동자들은 위기의식을 느끼게 되고, 기계화에 반대하는 입장을 드러낸다. 기계화의 경제적 효과가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고, 생산성이 향상하면서 공장 노동자들의 임금이 인상되었다. 정치적 힘이 없던 러다이트는 오래 가지 못했다. 공장에 일하기 위해 도시로 몰려온 노동자들이 많아지면서 대중의 기계 기피증은 사라졌다.

 

기계화가 이루어진다고 해서 대중의 기계 기피증이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건 아니다. 저자는 기계화 같은 기술 발전의 혜택을 받는 노동자가 많아져서 혁신에 대한 거부 반응이 사라졌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근거가 된 시기가 2차 산업혁명이 일어난 20세기다. 미국에서 시작된 2차 산업혁명의 특징은 가정의 기계화다. 이 시기에 가정에 전기가 들어오기 시작했고 가전제품이 등장했다. 제조업이 발전하면서 미국인들은 급료가 나쁘지 않고, 덜 힘든 작업장이 있는 공장 일을 선호했다. 미국인들에게 기계화는 공포가 아니라 축복이었다. 그래서 20세기에 러다이트는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우리는 지금 인공지능과 로봇 보급에 주목하는 자동화 시대에 살고 있다. 이 시대를 사는 당신은 새로운 기술의 등장을 환영하는가, 아니면 기술의 등장을 두려워하는가. 언젠가 우리 사회가 인공지능과 로봇 산업에 다시 주목한다면 분명 러다이트가 나타날 것이다. 21세기의 러다이트는 18세기의 러다이트처럼 금방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민중주의자로 변신한 러다이트의 존재를 가볍게 볼 수 없다. 정부가 러다이트의 편에 서는 경우도 있다. 저자는 자동화의 흐름에 역행하는 정치인으로 우리나라 대통령을 언급한다. 우리 정부는 고용 우려 때문에 로봇공학 및 자동화 투자에 대한 세금 우대 정책을 축소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미국, 영국에서도 자동화 기술 도입을 지연하거나 아예 막기 위해서 정치적 의제로 내세운 정치인들이 등장하고 있다.

 

저자는 자동화 기술에 열광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너무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그는 자동화 기술에 대한 두려움을 과장되게 선전하는 민중주의자들의 등장을 경계한다. 그들의 행보로 인해 잘못된 경제 정책이 나올 수 있고, 너무 방관하면 경제 발전을 더디게 하는 치명적인 덫이 될 수도 있다. 인공지능 기술과 로봇이 노동자보다 많아지는 시대가 온다면 분명 고용에 불이익을 받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하지만 저자는 자동화 기술의 경제적 효과와 그에 따른 혜택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말한다. 자동화 기술의 경제성에 주목하는 저자의 입장은 기업가들의 편에 선 정치인들이 엄청 좋아하는 낙수 효과(Trickle Down)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이 책을 정말 끝까지 읽지 않으면 저자의 주장을 오해할 수 있다. 테크놀로지의 덫은 두꺼운 책이다. 읽는 내내 지루하다고 해서 책을 덮으면 안 된다. 완독을 못 하더라도 이 책 474쪽의 마지막 문장에 반드시 주목해야 한다(사실 이 책의 서론과 결론만 잘 읽어도 책의 핵심을 충분히 파악할 수 있다). 이 책의 마지막 장에 저자는 일자리를 창출하지 않고, 부만 늘리는 기술이 등장하는 세상에서 사는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로 분배 문제를 언급한다. 소득 분배가 나빠지면 불평등도 심해진다. 과연 현재 인류는 기술 혁신을 촉진하면서 동시에 분배 불평등 문제를 개선할 수 있을까.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과제가 너무 어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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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e 2025-01-18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