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유레카(yureka01)님 블로그에 공개된 반성문을 보신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저도 어제 박진성 시인이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이상하게도 이 소식이 포털사이트 뉴스 메인에 많이 노출되지 않고 있습니다. 만약 어제 기사를 못 봤거나 유레카님이 반성문을 공개하지 않았으면 사건의 진실을 영영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작년에 성폭력 혐의를 받은 박 시인은 1년 간 법정 분쟁 끝에 무혐의 처분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박 시인의 무혐의 처분 소식을 전달한 뉴스가 그리 많지 않았어요. 시간이 지나면 취재 대상에 대한 관심을 접고, 또 다른 먹잇감을 노리는 언론인들, 또 후속 기사를 내지 않는 언론인들. 그들의 잘못이 크지만, ‘약자(弱者)’악자(惡者)’라고 판단하여 돌을 던져 놓고도 관심을 잊은 익명의 군중도 책임이 있습니다. 제가 박 시인에게 돌을 던졌던 익명의 군중에 속했던 사람입니다. 오늘 유레카님의 반성문을 읽으면서 사실 검증을 하지 않은 다수 여론에 편승하여 돌을 던진 제 행동이 부끄러웠습니다.

 

알라딘 서재는 폐쇄적인 커뮤니티입니다. 이렇다 보니 올바르지 못한 편견은 쉽게 공개되고 삭제(혹은 비공개)되지 않는 이상, 오랫동안 전시됩니다. 또 커뮤니티 안에 형성된 다수 여론에 크게 휩쓸리기 쉽습니다. 다수 여론 분위기에 익숙하게 되면, 개인은 다수 여론에 적합한 기준에 따라 특정 인물을 평가하게 됩니다. 다수 여론이 커뮤니티 전체를 지배하는 분위기가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 있지만, 위험 신호를 알아차리기가 힘듭니다. 위험 신호를 감지한 사람은 소신 있게 다수 여론의 문제점을 비판합니다. 그러나 비판할 용기가 부족하고, 자신의 발언에 대한 후폭풍이 두려우면 끝내 침묵하게 됩니다.

 

우리 주변에 관심거리가 아주 많습니다. 그래서 어떤 것에 관심을 가져도 새로운 관심거리가 등장하기 때문에 기존의 것에 금방 흥미를 잃어버립니다. 또 인간은 망각의 동물입니다. 좋은 거든 나쁜 거든 자신이 상대방에게 했던 언행을 까맣게 잊어버립니다. 시간이 지나면 제가 저지른 잘못은 잊힙니다. ‘지저분한 잘못은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에 씻어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 잘못으로 인해 (간접적/직접적) 피해를 본 당사자는 죽을 때까지 고통의 시간 속에 지내야 합니다. 그들에게 시간은 이 아니라 입니다. 피해자가 처한 상황을 생각하면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남몰래 잘못을 숨기는 일은 비겁한 짓입니다. 따라서 저도 유레카님처럼 반성문을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제 잘못을 공개한 게시물이나 댓글은 웬만하면 삭제하지 않습니다. 알라딘이 망하거나 제 서재 블로그가 완전히 폐쇄되지 않는다면 이 반성문을 끝까지 보관할 생각입니다.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2017-12-04 16: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2-05 11:16   좋아요 0 | URL
‘반성’도 독행일치를 실천하는 태도라고 생각해요. 사소한 잘못도 이게 왜 잘못된 것인지 짚고 넘어가야 해요. 상대방이 지적하지 못한 잘못은 자신이 스스로 살펴봐야 합니다. 그냥 놔두면 ‘고정관념’이 됩니다.

2017-12-04 18: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04 18: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2-05 11:07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답글이 늦었습니다.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에 신중하게 제 견해를 밝히고 싶었습니다. 답글을 ‘비밀’로 할 것인지, 아니면 공개할 것인지 고민했습니다. 제 블로그에 비밀 댓글이 많이 달리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어떤 대화를 나누든지 간에 투명성 있게 대화를 나누고 싶었어요. 소신 있게 제 입장을 밝히겠습니다. ***님의 의견들을 일일이 확인했습니다. 저도 박진성 시인 관련 사건에 대한 언론 자료를 더 찾아보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상세한 답변을 하지 못한 내용 몇 개가 있을 거예요. ***님의 의견을 회피하거나 무시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여전히 제가 모르는 것이 많고, 제대로 확인하고 나서 답변을 정리하고 싶습니다만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1. 시인이 ‘자살하겠다’면서 협박했다는 피해자의 진술은 알고 있습니다. 시인의 언행은 잘못됐고, 가벼운 농담으로 볼 수 없습니다.

2. 정말로 그런 목적으로 자살을 시도했다면 비판받아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저는 시인이 자신의 억울한 상황이 답답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봤습니다.

3. 시인이 성폭력을 저질렀다고 제기한 피해호소인 A는 무고죄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고, 또 다른 B는 허위 글 작성으로 명예훼손죄로 인정됐습니다. 지금까지 내용은 언론에 보도된 것들입니다. ‘그들이 없는 사실을 지어낸 것이 아니다’고 볼 수 있을까요?

4. 박 시인이 송 시인을 고소했다는 내용이 보도된 기사가 딱 한 건 있군요. 올해 1월 24일에 한겨레가 보도했습니다. 검색해야만 찾을 수 있는 기사입니다. 송 시인이 자신의 트위터에 박 시인의 자살 시도를 비꼬는 발언을 했습니다. 그게 ‘비판’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송 시인의 반응이 지나쳤습니다. 송 시인의 문제 발언은 무조건 악의적으로 공격하는 안티페미니스트들의 성격상 집중 공격을 받을 만했어요. 박 시인 무혐의 처분 판결 이후로 안티페미니즘 여론이 커진 건 사실입니다. 페미니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더 확산되는 건 아닌지 걱정됩니다. 안티페미니스트들은 박 시인을 ‘페미니스트들에게 억압받는 남성들’을 대변하기 위해 희생한 영웅 급으로 미화할 수 있어요. 그건 정말 잘못된 생각입니다. 오히려 박 시인을 두 번 죽이는 일입니다. 앞서 3번 답변에 언급했지만, 박 시인은 안티페미니스트들의 목소리를 높이려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 아닐 겁니다.

5. 성범죄 가해자가 마음만 먹으면 피해자의 고소를 허위 고소로 몰아세울 수 있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 더 논의하고 싶지만, 솔직히 제가 법학 관련 지식에 빈약해서 제 입장을 밝힐 수가 없었습니다. 너그러이 이해해주길 바랍니다.

6. 제 반성문에 언급된 ‘익명의 군중들’이 ‘문단 내 성폭력 공론화를 주도한 페미니스트’를 의미한 것이 아닙니다. 제가 독자에게 혼동을 줄 수 있는 표현을 썼군요. 저는 사실 확인도 없이 다수 여론에 동참하는 일반 대중의 반응을 비판했습니다.

***님의 의견에 일일이 답변해드리지 못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최대한 ‘가짜 뉴스’와 ‘선동’을 피하면서 사건의 진실을 제대로 알아보려고 노력해봤지만,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고, 무엇이 사실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박 시인 사건을 기점으로 안티페미니스트의 역풍이 더욱 거세질 것입니다. 이 분위기를 어떻게 대응해야할지 막막합니다.

2017-12-04 20: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sprenown 2017-12-04 20: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기사를 보지 못해 박진성 시인 사건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이렇게 떳떳하게 반성문을 게재하는 것도 용기입니다. 자신의 잘못과 오판에 대해 반성하고, 성찰하는게 중요하지 않을까요? 꼰대같은 얘기지만 너무 자책 하지 마시고, 저도 그렇지만 좀 더 신중하고, 비판적인 안목과 시각이 필요하리라 봅니다.

cyrus 2017-12-05 11:25   좋아요 1 | URL
SNS나 블로그에 정치 및 사회적 현황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떳떳이 밝히는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그런데 문제는 이런 사람들이 편견이나 다수 여론에 쉽게 빠져들어요. 또 식견이 있는 ‘전문가’처럼 행세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어제 제 글쓰기를 ‘딜레탕트’, ‘스노비즘’이라고 언급한 거 기억하시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자만에 빠지면 글의 문제점을 보지 못해요. 언론 보도를 인용하는 글쓰기를 자제할 생각입니다. 그냥 리뷰나 열심히 써야겠어요. ^^;;

sprenown 2017-12-04 2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좀전에 인터넷 검색을 해서 기사를 찾아보니 박시인이 얼마나 억울했으면 하는 생각이 드네요“리트윗 1000이면 그게 학설이 됩니다. 트위터에서 리트윗 2000이면 그게 기사가 됩니다. 트위터에서 리트윗 3000이면 그게 진실이 됩니다.” 이게 언론과 SNS의 폐해라는 생각이 듭니다. 냄비근성....

sprenown 2017-12-05 11: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경험하시는 것 같네요..너무 의기소침하지 마시고, 앞으로도 깊이 있고, 알찬 리뷰 기대할게요^^.

cyrus 2017-12-05 11:40   좋아요 0 | URL
‘좋은 경험(잘못을 저지르고, 혼자 반성하는 루트 반복)‘이 많아져서 문제입니다. 이러면 반성의 진정성이 떨어지거든요.. ^^;;

sprenown 2017-12-05 11: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반성문을 진심을 담아 공개하는데 진정성이 떨어지겠어요? 더 심한 욕을 하고, 무책임하게 비난하였던 자들은 반성의 기미도 보이지 않는데..다들 그 마음 알거예요.. 좋은 하루 되시길.^^.!
 

 

 

데생(dessin), 드로잉(drawing), 그리고 소묘. 이 세 가지 용어는 모두 같은 뜻이다. 화가의 성향과 관계없이 소묘는 창작하면서 기본적으로 거쳐야 할 필수과정이다. 즉 그림을 그리기 위한 사전 준비 단계라 할 수 있다.

 

 

 

 

 

 

 

 

 

 

 

 

 

 

 

 

 

* 조르조 바사리 이태리 르네상스의 미술가 평전(한명출판사, 2000)

 

 

 

최초의 미술사학자인 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는 소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회화, 조각, 건축 이 세 가지 분야의 공통분모로 소묘를 꼽았으며, 소묘에 예술가의 감정 등 본질적인 것이 반영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바사리의 표현에 따르면 소묘라는 아버지로부터 태어난 자매가 회화와 조각이다. 그런데 어째서 소묘가 아버지일까? ‘어머니는 어디에 있는가? 바사리는 회화와 조각의 아름다움을 여성으로 비유했다. 그의 말 속에는 여성을 배제한 남성 중심 미술이라는 편협성이 깔렸다. 애초에 여성을 ‘(능동적) 창작자가 아닌 ‘(수동적) 창작 소재로 설정하고 있다. 남성 중심 미술에 대한 각성이 일어나기 전까지 여성은 그림 교육을 받을 기회를 얻지 못했고, 여성 화가들의 업적은 높이 평가받지 못했다.

 

남성 중심 미술에 대한 비판은 다음에 다뤄 보기로 하고, 본 주제로 들어가도록 하자. 흔히 소묘를 연습용 그림 정도로 생각하기 쉬운데, 절대로 그렇지 않다. 소묘를 아버지라고 비유한 것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화가 지망생은 소묘의 가치를 알아본 바사리의 말을 반드시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미술을 가르치는 사람들은 학생들에게 소묘 훈련을 시킨다. 소묘를 그리는 일은 그림(출품작)’이라는 실전을 위한 연습이다.

 

 

 

 

 

 

 

 

 

 

 

 

 

 

 

 

* 피에르 코르네트 드 생 시르, 아르노 코르네트 드 생 시르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들(시공아트, 2012)

 

 

 

거장들은 소묘 그리기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들이 남긴 소묘에서 그림 한 점이 탄생하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소묘는 창작의 흔적을 따라가 볼 수 있는 연구 대상이며 완성된 작품보다 더 높게 평가받는다. 대충 그린 듯한 소묘도 컬렉터들이 노려볼만한 수집품이며 최고 경매가를 기록하기도 한다.

 

 

 

 

 

 

 

 

 

 

 

 

 

 

 

 

 

 

* 세계 거장 드로잉 컨셉북 : 고야, 달리(CK북스, 2014)

* 세계 거장 드로잉 컨셉북 : 와토, 호퍼(CK북스, 2014)

* 세계 거장 드로잉 컨셉북 : 렘브란트(CK북스, 2014)

    

 

 

소묘에 대한 관심이 적은 편인지 국내에서는 화가의 소묘집이 잘 나오지 않는다. 소묘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교육용 책은 많다. 요즘 나오고 있는 드로잉북은 일반 독자가 소묘를 해볼 수 있도록 만들어진 일종의 스케치북이다. 소묘를 볼 수 있는책이 그리 많지 않다. 2014년에 세계 거장의 드로잉 컨셉북이라는 이름을 단 소묘집 세 권이 출간되었다. 이 시리즈는 와토, 호퍼, 고야, 달리, 렘브란트로 구성되었다. 앙투안 와토(Antoine Watteau)는 프랑스 로코코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이고,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는 미국의 대표적인 사실주의 화가이다. 정말 특이한 조합이다. 귀족풍 느낌이 물씬 드는 화려하고 섬세한 로코코(rococo) 양식과 무심하면서도 서늘한 호퍼의 화풍에 특별한 연관성이 있는 것일까? 고야, 달리는 꽤 괜찮은 조합이다. 왜냐하면, 두 사람 모두 같은 스페인 출신 인데다가 개성 넘치는 그로테스크(grotesque)를 구현한 작품을 남겼기 때문이다.

 

 

 

 

 

 

 

 

 

 

 

 

 

 

 

 

 

 

* 고야, 영혼의 거울(다빈치, 2011)

* 함순용 상처입은 지성, 그로테스크 고야(함박누리, 2017)

 

 

 

 

필자가 고야와 달리에 관심이 많아서 공공도서관에 소장된 고야, 달리를 볼 수 있었다. 도판이 눈에 확 들어올 정도로 시원시원한 판형이다. 도판에 대한 세부 설명은 없다. 마음 편하게 소묘를 감상하면 좋겠지만, 그래도 화가가 소묘를 통해 무얼 나타내려고 했는지 이해하려면 화가의 삶을 소개한 관련 도서를 참고해야 한다. 특히 고야, 달리에 고야의 판화집 로스 카프리초스(Los Caprichos)에 포함된 작품의 소묘 몇 점이 수록되어 있어서 먼저 이 판화집의 제작 배경을 알아두는 것이 좋다. 고야의 판화를 확인할 수 있는 책으로는 고야, 영혼의 거울(다빈치, 2011), 상처입은 지성, 그로테스크 고야(함박누리, 2017) 등이 있다. 참고로, 상처입은 지성, 그로테스크 고야로스 카프리초스에 수록된 모든 판화 작품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책이다. 고야, 영혼의 거울같은 경우, 판화집 일부만 소개되어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상처입은 지성, 그로테스크 고야의 도판 상태다. 적지 않은 작품을 보통 판형의 책 한 권에 모두 담으려는 바람에 도판의 선명함이 사라졌다. 한 점도 누락하지 않고, 스케치북만한 판형으로 만들어진 로스 카프리초스완전판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고야, 달리에 소묘 감상을 방해하는 몇 개의 오식이 보인다. 4카프리코스카프리초스의 오식이다. 50쪽에 앙다르시아의 개가 나오는데, 정확하게 고치면 <안달루시아의 개(Un Chien Andalou)>이다. <안달루시아의 개>는 달리와 루이스 부뉴엘(Luis Bunuel)이 공동 제작한 전위영화다.

 

 

 

 

 

 

 

다른 건 그렇다 쳐도 달리의 친구로 알려진 시인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Federico Garcia Lorca)페테리코 카르시아 로사라고 표현하는 건 문제 있다.

 

 

 

 

 

 

 

내가 아는 로사는 절대로 남자가 아니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7-12-03 16: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2-03 17:03   좋아요 1 | URL
저는 소묘 실력이 형편 없어서 그림 그리기를 포기했어요.. ㅎㅎㅎ

sprenown 2017-12-03 1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 미술평론 하세요 신춘문예 곧 있어요^^.

cyrus 2017-12-04 14:42   좋아요 0 | URL
저는 제 글쓰기를 딜레탕트(아마추어), 스노브(지적 허영) 스타일이라고 생각해요. 얼핏 보면 깊이 있어보이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요. 책을 참고해서 내 입맛에 맞는 내용을 조잡하게 편집하는 거예요. 비평 수준의 글을 쓸 능력이 없어요. ^^

sprenown 2017-12-04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예요.. 님은 충분한 능력과 자격이 있는 것 같은데요..본격적으로 좀더 준비하시고, 한번 도전해 보세요.. 이 좁은 알라딘 서재에서만 활동하기에는 아까운것 같아요.^^

cyrus 2017-12-04 16:03   좋아요 0 | URL
제가 능력과 자격이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리고 지금부터 준비하는데 투자해야 할 시간이 부족해요. ^^;;

sprenown 2017-12-04 19: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무래도 직장생활하면서 시간내기는 좀 힘들것 같습니다만, 길게 보고 준비하는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덕업일치‘를 이루는 삶이 얼마나 좋습니까?

cyrus 2017-12-05 11:11   좋아요 0 | URL
‘덕업일치’를 실천하신 분들이 존경스러워요. 그 분들은 의지가 강해요. ^^
 
- 섹스와 아름다움과 생존에 대한 이야기
가브리엘 글레이저 지음, 김경혜 옮김 / 토트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옛날 사람들은 서양 백인을 보면 코쟁이라고 했다. 솟아 있는 서양인의 콧날 때문에 이런 별명이 생겼다. 하지만 코쟁이는 인종차별적인 단어다. ‘코쟁이에 신체적 특징에 대한 편견과 조롱의 의미가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코쟁이가 불편한 단어로 느껴지지 않는다면 동양인을 비하하는 눈 찢기동작을 생각하면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오뚝한 코 모양을 선호한다. 이미지 변신을 위해 눈 성형 다음으로 많이 하는 것이 코 성형이다.

 

가브리엘 글레이저(Gabrielle Glaser)(토드, 2010)를 읽어 보면, ‘유행은 돌고 돈다라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왜냐하면, 수백 년 전 사람들도 못생긴 코를 원하지 않았고, 코의 크기와 모양에 관심을 가졌다. 이미 유럽에서 코 성형 수술이 성행했다. 코 성형 수술에 대한 기록에 근거하면, 16세기 이탈리아에 피부를 이식하여 인조 코를 만드는 성형 수술이 이루어졌다. 코는 절대로 없어선 안 될 신체 기관이다. 코가 없으면 입으로만 숨을 쉬어야 하는데, 호흡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는다. 게다가 입이 벌린 상태가 지속하면 턱이 길어지는 안면 변형이 일어난다. 코가 없어서 후각마저 상실된다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다. 의 저자는 한동안 냄새를 맡을 수 없는 증상을 겪어 고생한 적이 있다.

 

인류와 악취와의 전쟁은 절대로 끝나지 않는 영전(永戰)이다. 향수는 악취와의 전쟁에 승리하기 위해 노력한 인류의 땀과 눈물이 들어가 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좋은 향기가 신의 땀과 눈물에서 나온 것으로 생각했다. 악취를 피하고 싶은 마음은 세계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다. 종교의 힘이 막강했던 시대에 악취는 악마의 향기로 인식되었다. 14세기 중반 유럽에 페스트(Plague, 흑사병)가 창궐했을 때 도시 전역에 악취가 진동했다. 그 당시 사람들은 페스트를 신의 징벌로 해석했고, 수도사를 페스트를 막아주는 수호자로 생각했다. 관상학이 유행하면서 코 모양으로 사람의 성격을 읽는 법이 등장했다. 프랑스인들은 상대방의 지성을 칭찬할 때 탁월한 코를 가졌어.”라는 표현을 썼다. 유럽 남성들은 코를 사람들 앞에 공개하는 페니스라고 생각했다. 옛날 유럽인들은 코와 페니스의 상관관계를 정설인 것처럼 믿었다.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을 선호하는 독자에게 를 추천하고 싶다. 정말 코에 관한 흥미진진한 내용이 많다. 그런데 저자는 이 책 한 권을 완성하기 위해 3년 동안 준비했다던데, 집필 기간에 비교하면 결과물의 내용이 많지 않다. 번역본 분량이 총 238쪽이다. 문학과 예술 소재로 사용된 에 대한 내용이 없어서 아쉽다. 저자가 조금만 더 심혈을 기울여서 집필했으면 풍성하고 알찬 코의 문화사한 권이 나왔을 것이리라.

 


댓글(8)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7-12-03 13: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2-03 16:39   좋아요 1 | URL
유럽의 악취가 얼마나 심했냐면 문 밖으로 나가는 순간, 악취를 피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 시대 사람들은 외출을 어떻게 했을까요? ^^;;

겨울호랑이 2017-12-03 1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 관상법에서도: ‘코‘의 중요성은 다른 여느 기관보다 월등한 것 같더군요^^

cyrus 2017-12-03 16:40   좋아요 1 | URL
맞아요. 허영만 화백의 <꼴>에 코 관상에 대한 내용이 있던 걸로 기억해요. ^^

sprenown 2017-12-04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정말 ‘알아두면 쓸데 있는 신비한 잡학‘이네요.^^. 갑자기 킁킁 거리면서 거울보고 싶어지네요.ㅎㅎ

cyrus 2017-12-04 14:43   좋아요 0 | URL
코가 잘 막히는 편이라서 괴롭습니다. 겨울에 코감기 걸리면 삶의 의욕이 나지 않아요.. ^^;;

데미안 2017-12-05 2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 다큐에서도 말했습니다. 후각이 맛을 결정한다고! 코는 결국 즐거운 생활의 기본적 요소가 아닐까요?

cyrus 2017-12-06 13:19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냄새 없이 음식의 맛을 본다면 앙꼬 없는 진빵을 먹는 기분일 거예요. ^^;;
 

 

 

고야(Goya)는 궁정화가라는 정상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자신이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렸다. 혹자는 권력에 빌붙어 그림을 그리는 고야를 못마땅하게 여긴다. 사실 고야는 다소 이중적인 행보를 보였다. 생계를 위해 왕족과 귀족의 초상화를 그렸으며 귀족들과 어울리면서 사냥을 즐겼다. 그렇지만 고야는 스페인에 유입된 계몽주의에 경도된 일루스트라도(Ilustrado, 스페인어로 학식 있는’, ‘계몽주의를 뜻한다)’라는 단체에 가입했다. 고야의 이중성을 나쁘게 볼 필요가 없다. 고야가 활동했던 스페인의 복잡한 사회적 분위기를 생각하면 그는 어중간한 태도를 보일 수밖에 없었다. 무능한 왕족들은 권력을 보전하기 위해 서로를 견제했으며 민중을 짓누르는 종교의 힘은 막강했다. 불안정한 상황을 틈타 프랑스군은 스페인 국경을 무단 침범했다. 일루스트라도는 처음에 프랑스군의 스페인 입성을 환영했으나 스페인 민중을 잔혹하게 진압하는 프랑스군의 호전적 행보에 실망했다. 나폴레옹(Napoleon)은 자신의 친형을 스페인 왕으로 즉위시켰다. 스페인 사람으로서 자존심에 상처 입은 일루스트라도는 프랑스 지지를 철회했지만, 고야는 스페인 왕관을 쓴 프랑스인의 궁정화가로 활동했다.

 

 

 

 

 

 

 

 

 

 

 

 

 

 

 

 

 

 

 

 

 

 

 

 

 

 

 

 

 

 

 

 

 

 

 

 

 

 

 

 

 

 

 

 

 

* 츠베탕 토도로프 고야, 계몽주의의 그늘에서(아모르문디, 2017)

* 함순용 상처 입은 지성, 그로테스크 고야(함박누리, 2017)

* 웬디 버드, 새라 메이콕 그림 디스 이즈 고야(어젠다, 2016)

* 로제 마리, 라이너 하겐 고야(마로니에북스, 2010)

* 줄리아노 세라피니 고야 : 혼란의 역사를 기록하다(마로니에북스, 2009)

* 파올라 라펠리 고야 : 검은 관능의 시선(마로니에북스, 2009)

* 엘케 폰 라치프스키 프란시스코 데 고야(랜덤하우스코리아, 2006)

* 새러 시먼스 고야(한길아트, 2001)

* 자닌 바티클 고야 : 황금과 피의 화가(시공사, 1997)

 

 

 

고야의 성격을 분석한 츠베탕 토도로프(Tzvetan Todorov)의 견해는 고야의 이중성을 위한 변명이 된다. 토도로프는 고야를 공적 예술과 사적 예술을 철저히 분리하는 데 성공한 화가로 평가했다.

 

 

고야의 변화에서 결정적인 사건은 자신의 창작 행위를 둘로 나누고 공적인 예술과 사적인 예술 사이의 분리를 감수하기로 한 것이다. 이것은 고야 이전에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양분(兩分)의 세계였다. 그는 한쪽 삶에서는 계속해서 사회에서 용인되는 규범에 따라 그림을 그리고 작품으로 돈을 벌었다. 그리고 다른 한쪽 삶에서는 대중의 의견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탐색을 이어 갔다. [1]

 

 

나는 그의 견해에 동의한다. 고야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피상적 세계(스페인 궁정, 귀족들의 모임, 민중의 축제)뿐만 아니라 그 뒤에 숨겨진 인간의 어둡고 모순된 본능(판화집 변덕들(Los Caprichos), 전쟁의 참화들, ‘검은 그림’)도 보여주려고 했다. 그러나 화가가 공적 예술과 사적 예술 사이의 분리를 시도하는 일이 고야 이전에 없었던 것은 아니다. ‘양분의 세계속에서 그림을 그린 화가는 고야 말고도 또 있다.

   

 

 

 

 

 

 

 

 

 

 

 

 

 

 

 

 

 

 

 

 

 

 

 

 

 

 

 

 

 

 

 

 

 

 

 

 

 

 

 

 

 

 

 

 

 

 

 

 

 

 

 

 

 

 

 

 

 

 

 

* 프란체스카 데볼리니 레오나르도 다 빈치 : 르네상스의 천재(마로니에북스, 2008)

* 루차 아퀴노 레오나르도 다 빈치(예경, 2008)

* 엔리카 크리스피노 레오나르도 다 빈치 : 신화가 된 르네상스 맨(마로니에북스, 2007)

* 프랑크 죌너 레오나르도 다 빈치(마로니에북스, 2006)

* 토마스 다비트 레오나르도 다 빈치 : 영혼의 표정을 그린 화가(랜덤하우스코리아, 2006)

* 알레산드로 베초시 레오나르도 다 빈치(시공사, 1999)

* 박경성 엮음 레오나르도(서문당, 1992)

* 찰스 니콜 레오나르도 다 빈치 평전(고즈윈, 2007)

* 마틴 켐프 레오나르도(을유문화사, 2006)

* 마이클 화이트 최초의 과학자 레오나르도 다 빈치(사이언스북스, 2003)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는 밀라노의 왕족 루도비코 스포르차(Ludovico Sforza) 공작의 전속 화가이자 군사 기술자로 활동했다. 공작의 후원에 힘입은 레오나르도는 뛰어난 걸작을 남겼고, 다양한 학문에 대한 관심을 키워나갔다. 뛰어난 재능에 수려한 외모까지 겸비한 레오나르도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칭송받는 인기인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탐구 작업을 남들에게 공개하지 않았다. 레오나르도는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글을 썼다. 그가 쓴 일명 거울 문자는 오른쪽에서부터 왼쪽으로 쓰인 뒤집힌 문자다. 이 문자를 제대로 보려면 거울이 있어야 한다.

 

 

 

 

 

 

 

 

 

 

 

 

 

 

 

 

 

 

* 장 폴 리히터 엮음 레오나르도 다 빈치 노트북(루비박스, 2014)

 

 

 

코덱스 레스터(Codex Leicester)’로 알려진 공책, 그리고 습작 용도로 사용된 스케치북은 레오나르도가 꽁꽁 숨겨두었던 사적 예술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흥미진진한 자료이다. 모나리자완벽한 아름다움을 표현한 공적 예술을 대표하는 작품이라면 공책과 스케치북은 레오나르도 개인의 지적 탐구심이 허용된 사적 예술의 결과물이다.

 

 

 

 

 

 

 

 

 

 

 

 

 

 

 

 

 

* 볼프강 카이저 미술과 문학에 나타난 그로테스크(아모르문디, 2011)

 

 

 

레오나르도는 인간을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는 법칙을 찾으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인체 구조를 탐구하면서 진정한 아름다움은 획일적인 법칙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다양성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스케치북에는 그로테스크한 얼굴로 알려진 그림들이 남아 있다. 레오나르도는 얼굴의 형태를 일부러 왜곡시켜 우스꽝스러운 그로테스크를 표현했다. ‘그로테스크한 얼굴의 특징으로 주걱턱, 매부리코, 축 늘어진 피부 등이 있다.

 

 

 

 

 

 

레오나르도는 이 습작을 바탕으로 인간의 추함을 생생하게 묘사하려고 했다. 미완성 작품으로 남았지만, 성 히에로니무스는 해부학적 특성이 잘 반영된 걸작이다. 이 작품이 2012년에 국내에 전시된 적이 있었는데, 직접 눈앞에서 볼 기회가 있었다. 늙은 성인의 표정은 모나리자의 미소만큼이나 기묘한 느낌을 준다. 일반적으로 대부분 그림 속 성자는 온화한 표정을 짓고 있다. 세상과 단절된 채 고행의 길에 오른 성자들의 표정이 편안해 보인다. 마치 그들이 편하게 살아가는 현실 도피로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레오나르도가 묘사한 성자는 지쳐 보이는 표정을 짓는다. 성자의 얼굴에 생긴 주름은 외롭고도 처절한 고행이 지속한 세월의 흔적이다. 우리는 이 성자의 표정에서 익숙하고 편안하지 않은 고행의 길이 얼마나 험난한지 느낄 수 있다. 성 히에로니무스에 구현된 레오나르도식 그로테스크는 관람객이 체험하고 느낄 수 없는 미지의 무엇을 구체화[2]시킨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고야. 확실히 그들은 자유자재로 양분의 세계를 드나들면서 독창적인 예술을 선보였다. 그리고 각자 자신만의 그로테스크를 연출하여 희극적인 것과 고통스러운 것이 혼합된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그들의 그림에는 희극과 비극으로 명확히 나누어져 있거나 때론 공존하고 있다. 서로 대립적 위치에 있는 이중 세계에 지나치게 몰두하다 보니 종종 성격과 신념이 배치되는 행동을 했고, 사적 세계를 철저히 숨기려는 모습을 보였다. 고야는 귀족들과 함께 사냥을 즐기면서도 민중의 문화를 이해하려고 했다. 말년에 궁정화가 일을 그만두고 귀머거리의 집에 은거했다. 레오나르도는 새장에 갇힌 새를 풀어줄 정도로 동물이 느끼는 고통을 이해했으면서도 전쟁에 활용될 수 있는 대량 살상 무기를 구상했다. 우리는 이들의 이중생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남들과 다른 길을 혼자 외롭게 걸은 그들에게 박수를 보내야 할까, 아니면 겉과 속이 다른 양면성에 손가락질해야 할까. 두 거장에 대한 평가는 그들의 삶과 예술을 충분히 이해한 독자들의 몫이다.

 

 

 

 

 

[1] 츠베탕 토도로프 고야, 계몽주의의 그늘에서290

[2] 볼프강 카이저 미술과 문학에 나타난 그로테스크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7-12-02 17: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2-03 10:53   좋아요 0 | URL
소묘도 경매품이 되고, 최고 경매가를 기록하기도 합니다. 이 세상에 없는 화가들은 자신들이 남긴 어쭙잖은 소묘가 엄청난 금액으로 매겨진 것을 보면 어떤 심정일지 궁금해요.

sprenown 2017-12-02 2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술사가나 미술펑론가 수준이네요!

cyrus 2017-12-03 10:53   좋아요 0 | URL
그 정도까진 아닙니다.. ㅎㅎㅎ
 
고야, 계몽주의의 그늘에서
츠베탕 토도로프 지음, 류재화 옮김 / 아모르문디 / 2017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말과 글, 그림과 사진 중 강력한 메시지를 보여주기 위해 가장 좋은 수단은 단연 그림과 사진이다. 고야(Goya)의 판화 작품 전쟁의 참화들이 백 마디 말보다 더 강렬하게 전쟁의 참혹상을 보여주는 까닭이기도 하다. 참상의 한복판을 보여주는 이미지에 대하여 우리의 뇌는 분노로 대응한다. 그러나 그것이 시신경을 자극할 때 우리는 관음증적인 쾌감의 유혹에 사로잡힌다. 남의 고통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틀림없이 윤리적 문제를 동반하는 일이지만, 때때로 그것은 자극적인 이미지로 변환되어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진다. 수잔 손택(Susan Sontag)은 타인의 고통을 감상하고 소비하는 시대를 경고했다. 그녀의 경고는 현실로 굳어졌다.

 

폭력과 잔혹함을 보여주는 이미지가 범람하는 이 시대에 우리는 전쟁의 참화들을 어떻게 봐야 할까? 전쟁의 참화들은 절대로 편하게 볼 수 없는 그림이다. 그의 그림은 폭력과 광기가 어둠의 무게로 덧칠해져 있는 절망적인 보고서이다. 스페인의 철학자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Jose Ortega y Gasset)는 고야를 괴물이라고 평가했다. 가세트의 평가에 동의하는 사람들은 고야가 잔혹한 도상을 그리는 일을 즐기는 악취미를 가졌다고 오해할 수 있다. 고야는 괴물이 아니다. 고야의 판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이야말로 괴물이다. 판화 속 인물들은 이성이 벗겨진 상태다. 전쟁의 만행과 학살은 이성 뒤에 가려진 인간의 광기를 불러일으켰다. 고야는 인간 정신의 어두운 측면을 괴물로 보고 이를 화폭에 생생하게 담아낸 최초의 화가였다.

 

츠베탕 토도로프(Tzvetan Todorov)는 고야의 그림 속에서 사상을 추출한다. 그림에서 사람과 사물은 어떻게 배치되어 있고, 빛은 어디에서 나와 어디를 비추며, 인물의 표정이나 팔다리 그리고 몸의 자세는 어떤가에 사실 많은 것이 들어있다. 거기에는 화가의 기술적 숙련성은 말할 것도 없고 그 관심이나 성격 그리고 문제의식까지 배어 있다.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그림 속에 배어 있는 화가의 흔적, 즉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와 세상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이게 고야의 그림에서 보아야 할 고야의 사상이다. 토도로프는 고야가 그림을 통해 보여주고자 한 사상이 무엇인지 살펴본다. 이런 점에 비추어 볼 때 고야, 계몽주의 그늘에서(아모르문디, 2017)는 계몽주의 시대를 진실 된 눈으로 바라보고 그린 사상가로서의 고야를 새롭게 자리매김하는 책이다. 따라서 고야를 '붓을 쥔 사상가'라 할 수 있겠다.

 

고야는 일찍 실력을 인정받아 꽤 젊은 나이에 왕가의 초상화를 주로 그리는 전속 궁정화가가 됐다. 고야가 궁정화가로 활동하는 동안 유럽의 구체제에 반대하는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다. 고야는 궁정화가로서 순탄한 삶을 살았지만, 프랑스 혁명에 영향을 받은 자유주의자들과 어울렸다. 그러나 혁명의 이상에 끌려 있던 고야에게 불행이 닥쳤다. 그는 원인 모를 병으로 청력을 잃어 귀머거리가 됐다. 깊은 상실감에 빠진 고야는 귀머거리의 집으로 알려진 저택에서 어두운 그림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귀머거리가 된 이후로 고야가 광기에 대해 관심을 가졌고, 어두운 그림을 그렸다고 해서 그를 미치광이로 규정할 수 없다. 또 검은색이 지배한 고야의 그림이 단지 불편함을 준다는 이유만으로 외면하는 것은 부당한 일이다. 예술혼은 절망 속에서 피어난다. 고야의 귀가 닫히는 순간, 그의 눈과 정신은 더 총명해졌다. 그렇게 고야는 다시 태어났다. 그는 혁명의 열기와 전쟁의 포화가 휘몰아치던 격변의 스페인 사회를 미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자신의 방식대로 그려냈다. 고야는 프랑스 나폴레옹 군대가 스페인 민중을 유린하는 상황과 그에 맞서 대항하는 민중의 처절한 저항 의지를 전쟁의 참화들에 담아냈다. 전쟁터 한가운데서 그는 인간의 정신 속에 숨어있는 광기를 목격했다. ‘전쟁의 희생자는 당연히 스페인 민중이다. 하지만 전쟁의 참화들은 전쟁의 희생자에 처한 고통을 극단적으로 부각시켜 적군의 추악한 행동을 고발하는 작품이 아니다. 고야는 중립적인 입장에서 전쟁의 진실을 묘사했다. 고야가 목격한 전쟁의 진실은 생텍쥐페리(Saint Exupery)의 말과 부합된다.

 

 

왜 우리는 타인을 미워하는가? 우리는 서로 굳게 결속되어 있다. 같은 별에 사는 이웃이고 한 배를 탄 선원이다. 새로운 통합을 이루기 위해 문명이 서로 대립하는 것은 좋다. 하지만 문명이 서로를 잡아먹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1]

 

 

고야는 건강하고도 합리적 이성을 예찬하는 계몽주의에 열광했다. 고야와 자유주의자들은 부패한 권력과 무지몽매한 종교를 반대했으며 계몽주의 사상의 진원지인 프랑스를 적극 지지했다. 그러나 그들의 생각은 헛된 희망이었다. 프랑스의 스페인 침략은 건강한 이성을 믿었던 스페인 자유주의자들이 좌절할만한 희대의 사건이었다. 고야는 스페인 전역에 드리운 계몽주의의 그늘을 확인했다. 계몽주의의 그늘 속에 스페인과 프랑스, 두 문명은 서로를 잡아먹고 있었다. 그것이 인간 본성의 그늘이기도 하고, 고야가 그리고자 했던 전쟁의 진실이었다.

 

보기 불편하더라도 전쟁의 참화들은 인간이라면 꼭 봐야 할 작품이다. 고야는 자신이 목격한 진실이 여전히 세상 곳곳에 있다는 것을 똑똑히 보여준다. 그리고 관람자에게 무언의 질문을 던진다. 폭력을 부추기는 광기에 조종당한 인간이 인간을 얼마나 뼛속 깊이 증오할 수 있는가?. 그림에서 시선을 돌려도 그 이미지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뇌리에 남아 다시금 느끼게 하고 또 돌아보게 한다. 도대체 이것이 인간인가?

 

 

 

 

[1] 생텍쥐페리 인간의 대지(펭귄클래식코리아, 2009) 206~207

 

 

 

 

 

 

Trivia

 

 

 

미술관은 모든 사물을 벽의 쇠시리에 걸어 변형시킴으로써 미적인 관조의 대상으로 삼는데, 하물며 뒤샹의 <소변기>까지 그렇게 했다. (140)

 

 

저자의 실수인가 아니면 번역가의 실수인가? 현대미술을 언급할 때 절대로 빠져선 안 되는 뒤샹의 레디메이드 작품을 소변기로 보다니 유감스럽다. 이 작품에도 이름이 있다. 소변기의 이름은 (Fontaine)이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prenown 2017-12-02 12: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이 소변기를 보면 자동적으로 똥캔이 연상되더군요..ㅎㅎ

cyrus 2017-12-02 16:34   좋아요 1 | URL
피에르 만초니의 ‘예술가의 똥’, 그것도 정말 충격적인 현대미술 작품이죠. 똥이 담긴 캔 한 개가 엄청 비싸다고 합니다... ㅎㅎㅎ

페크pek0501 2017-12-02 13: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어떤 책에서 모든 게 다 예술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 저런 비슷한 예를 든 걸 본 적이 있어요. 이를 테면 소변기도 무조건 소변기로 보는 고정관념을 깨면 샘으로도 볼 수 있다, 가 될 것 같아요.(이건 제 해석이에요.ㅋ)

cyrus 2017-12-02 16:36   좋아요 0 | URL
정확한 해석입니다. 뒤샹이 전시회에 소변기를 출품한 의도를 잘 이해했습니다. ^^

2017-12-02 14: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2-02 16:42   좋아요 1 | URL
네, 손탁 언니의 경고는 틀리지 않았어요. 사람들이 전쟁뿐만 아니라 재난 사고 소식에도 무감각해졌어요. 재난 사고 소식을 외면하는 사람들은 ‘무(無) 사고’ 세상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요? 그런 세상에 근접하려면 재난 사고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고,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철저히 반성해야 합니다. 반성과 추모 없이 그냥 넘어가려는 사람들을 보면 지나치게 희극을 갈망하는 것 같아요. 무조건 비극을 부정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