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번과 마녀 - 여성, 신체 그리고 시초축적 아우또노미아총서 31
실비아 페데리치 지음, 황성원.김민철 옮김 / 갈무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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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Marx)《공산당 선언》에서 구체제를 뒤흔드는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유럽에 출몰하여 결국은 전 세계적인 권력을 잡아갈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수백 년이 넘게 지난 지금, 공산주의가 아닌 ‘신자유주의’라는 괴물이 전 세계적인 권력을 잡아가고 있다. 신자유주의는 시장에 의해 주도되는 ‘자본 축적’의 새로운 양식이다. 시장은 겉으로는 자유로운 개인들 간의 거래와 교환의 장소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선택, 서열화, 배제의 원리가 작동한다. 그 결과 상품 및 인간관계를 특권화하거나 황폐화한다. 특히 자본 축적을 위해 신자유주의는 인간을 포섭한다. 신자유주의는 노동의 착취를 이윤으로 바꿔버린다. 인간의 노동력은 자본이 유통되기 위한 도구로 전락한다.

 

신자유주의적 축적의 핵심은 자본의 자유가 역사상 어느 때와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강화되었고, 자본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축적 과정이 허용됨으로써 인간적 삶의 틀 자체가 바뀌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자본 축적은 자본주의가 이행되는 역사와 함께할 만큼 오래됐고 해결이 어려운 문제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에서 자본이 피와 오물을 뿜어대면서 지상에 나타났다고 썼다. 그에 따르면 자본의 태동 과정인 ‘시초 축적(primitive accumulation)농민 공유지에 대한 야만적 약탈에서부터 시작된다. 자본 축적 역사의 첫 장면에 나오는 공유지 약탈은 ‘인클로저 운동(enclosure movement)으로 알려진다. 역사적으로 인클로저 운동은 크게 두 차례 일어났다. 15세기 지주들은 자기 땅을 가지기 위해 공유지에 울타리를 쳤고 그 땅에서 일하던 농민들을 쫓아냈다. 땅을 강제로 빼앗긴 농민들은 빈민층으로 전락했다. 19세기에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 전개되었다. 땅을 빼앗긴 농민들은 도시로 건너갔다. 이들이 직면한 도시는 이미 자본주의의 물결이 퍼지고 있는 세계였다. 즉, 자신의 노동을 팔아야 생존이 가능한 세계인 것이다. 마르크스는 시초 축적 개념을 언급하면서 궁핍과 실업의 공포에 떠는, 도시 노동자와 빈민 들이 늘어났다고 주장했다.

 

자본주의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사람들의 공동체를 해체해야만 가능한 제도였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주의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농민 공동체, 마을 공동체를 가차 없이 때려 부수고 공장이 아니면 살아갈 수 없는 빈곤한 노동자들이 있어야 했다. 그런데 실비아 페데리치(Silvia Federici)마르크스가 시초 축적을 설명하면서 ‘중대한 사실’ 하나를 놓쳤다고 지적한다. 그 중대한 사실이란 15~17세기 유럽에서 일어난 ‘마녀사냥’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유럽에 행해진 마녀사냥을 악마와 마법에 대한 집단적 적대감이 만들어 낸 광기의 역사 정도로 인식한다. 그러나 페데리치는 마녀사냥을 자본주의의 도입과 이행 과정이라는 역사적 맥락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기존에 알려진 마르크스의 시초 축적 개념을 보충한다.

 

그동안 마르크스를 포함하여 자본주의를 연구한 학자와 역사가들은 농민이었던 남성들이 도시 노동자가 되어 가는 과정들만 언급했다. 그러나 인클로저 운동 이후 여성은 임신과 육아, 그리고 신체적으로 약하다는 이유 등으로 이주할 수 없었고 따라서 여성은 남성처럼 상업 공간에 진출하기 어려웠다. 이에 따라 여성의 활동은 재생산 노동(출산, 보육, 가사 노동)에 한정되었고, 여성이 남성처럼 일한다고 해도 그에 따른 임금을 받지 못했다. 따라서 여성은 프롤레타리아 계급(무산계급)이나 다름없었으며 자유롭게 사회생활을 할 수가 없었다. 여성에 대한 착취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자본주의는 태어나지 못했다. 그런데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에 남성과 여성을 구분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고, 자본주의를 설명하는 데 있어서 여성의 노동이 착취된 사례를 언급하지 않았다.

 

페데리치는 마녀사냥이 자본주의가 확산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현상, 즉 ‘시초 축적’의 사례라는 점에 주목한다.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 이행되는 과정에서 남성의 노동과 생산성을 중시하는 ‘임금 가부장제’가 확립되면서 여성은 남성과 자본주의를 떠받치는 ‘생산 기계’가 되었다. 여성의 역할은 그저 집에서 머무르며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뿐이었다. 이러한 재생산 노동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지려면 출산과 무관한 성행위와 피임을 막아야 한다. 중세의 여성들은 약초를 이용한 피임 방법을 알고 있었다. 이러한 출산 통제를 위한 지식은 여성 공동체 내부에서 공유되어 전해졌다. 그렇지만 공유지가 사라지면서부터 여성의 출산 통제에 대한 인식은 달라졌다. 공동체가 해체되면서 삶의 희망을 잃은 농민들은 땅을 강제로 약탈한 지배 계급에 저항하기 시작했다.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고픈 지배 계급은 여성을 탄압하는 전략을 이용해 자신들에게 저항하는 농민들을 효과적으로 통제했다. 여성을 ‘마녀’로 몰아세우는 것이다. 이로 인해 빈민 또는 범죄자가 된 남성들은 자신들이 불행해진 이유를 ‘마녀의 사악한 힘’에서 찾으려고 했다. 남성들은 여성을 화풀이 대상으로 삼아 비난했고, 죄 없는 여성을 마녀라고 지목하면서 화형대 위로 올려세웠다. 그 결과, 국가는 여성의 신체를 완전히 통제하는 데 성공했다. 이로써 노동하는 인구를 늘리기 위해 여성의 사적 영역인 출산에 개입하는 근대적 통치술이 등장한 것이다. 미셸 푸코(Michel Foucault)는 개인의 신체를 통제하는 권력의 실체를 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역시 마르크스처럼 마녀사냥을 주목하지 못했다. 페데리치는 푸코의 입장도 비판한다.

 

여성의 신체를 통제하고 억압하는 통치술은 자본주의가 전 지구적으로 확장될수록 위력을 떨친다. 제국주의의 기세가 만개를 떨치던 시기에 유럽인들은 토착민을 강제로 몰아내어 식민지를 약탈할 때도 이 통치술을 이용했다. 이 책의 제목에 있는 캘리번(Caliban)셰익스피어(Shakespeare)의 희곡 《템페스트》에 등장하는 마녀의 아들이다. 자본주의는 자신에게 저항하는 반자본주의적, 반식민지적인 세력을 ‘캘리번’과 같은 괴물로 묘사했다. 자본주의는 자신들이 착취하는 대상을 깎아내릴 뿐만 아니라 그들의 존재마저 지우려고 했다. 자본주의는 부에 대한 탐욕을 버리지 못해 ‘신자유주의’라는 괴물이 되고 말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적인 괴물은 수많은 사람을 몰아내거나 잡아먹고 있다. 그것이 우리에게 빼앗은 것은 안정적인 삶뿐만 아니다. ‘희생양’을 만들어내어 그것을 공격하게 만드는 또 다른 괴물들을 태어나게 했다. 전 세계적인 신자유주의의 영향력이 확산하면서 여성 혐오, 성소수자 혐오, 난민 차별 문제가 더해지고 있다. 여성, 성소수자, 난민이 '괴물'로 오해받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된다. 이로 인해 정의롭지 못한 사회체제에 저항하는 연대의식과 응집력, 그리고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인간성마저 괴물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캘리번과 마녀》는 신자유주의가 가져다준 풍요에 눈멀고, 신자유주의가 만든 희생양에 속기 쉬운 이 세상에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이 책이 우리의 삶을 좀 더 성찰하게 하고 거대한 세상의 구조를 다시 살펴보게 만드는 거울이라면 우리는 거울을 다시 꺼내 들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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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8 14: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10-19 11:28   좋아요 1 | URL
네, 맞습니다. 일본의 여성학자 우에노 지즈코도 그 점을 지적했고, 여성 간의 경제력 차이가 여성 간의 갈등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2018-10-18 14: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10-19 11:30   좋아요 0 | URL
마르크스, 푸코의 이론이 언급된 책이라 내용이 어려울 수 있지만, ‘마녀사냥’을 재해석한 책의 3, 4장을 읽어보셔도 좋습니다. ^^
 
시스터 아웃사이더 딕테 시리즈 1
오드리 로드 지음, 주해연.박미선 옮김 / 후마니타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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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오드리 로드(Audre Lorde)를 알게 된 것은 패트리샤 힐 콜린스(Patricia Hill Collins)《흑인 페미니즘 사상》(여성문화이론연구소, 2009)을 통해서였다. 이 책은 흑인 여성의 경험을 분석의 핵심에 두고, 수많은 흑인 여성 운동가를 광범위하게 인용한다. 특히 “억압이 매일 먹는 음식처럼 일상적인 미국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우리는 항상 감시자가 되어야 했다”[주]는 오드리 로드의 인용 구절은 성 · 계급 · 인종 차별의 삼중 고통에 시달리는 흑인 여성의 시각을 잘 보여주고 있다. 흑인 페미니즘은 인종 차별, 성차별 등 인간에게 가해지는 모든 폭력과 억압을 비판한다. 집단적인 행동을 통해서 인종, 계급, 젠더, 섹슈얼리티에 따른 억압에 저항하고, 지속적인 제도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은 ‘흑인 여성의 힘 기르기(empowerment)를 강조한다.

 

오드리 로드는 1970~80년대 백인 여성 주류의 페미니즘과 흑인 남성 중심의 흑인 민권운동에 맞선 시인이자 레즈비언 페미니스트이다. 1970~80년대 이 시기 페미니즘이 일구어낸 성과는 대단했지만, 비판의 목소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벨 훅스(Bell hooks)는 백인 페미니스트들이 ‘백인 여성의 입장’에서 여성 억압 문제에 접근한 나머지 여성들의 목소리를 외면했다고 말한다. 백인 페미니스트들은 여성 억압의 원인이 젠더에 있다고 주장하면서 인종 문제를 간과했다는 것이다. 여성이라고 해도 그 사람이 어떤 계급, 종교, 인종, 성 정체성과 성적 지향 등을 지니는가에 따라 처한 상황은 다르다. 이런 차별과 억압의 교차성에 대해 고려하지 않는 이상, 그 어떤 분석도 흑인 여성들이 종속되어 온 복잡한 억압 구조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로드는 페미니스트 공동체에선 흑인으로, 흑인 공동체에선 여성으로, 이성애자들 앞에선 레즈비언으로 싸웠던 자신의 행적을 글로 표현했다. 《시스터 아웃사이더》는 로드가 1970~80년대에 쓴 글과 연설문을 모은 책이다. 자신을 ‘흑인, 레즈비언, 어머니고 전사이자 시인’이라고 말한 그녀는 인종차별, 성차별, 성소수자 차별 등 다양한 문제에 대한 입장을 드러냈다. 로드의 글을 읽기 전에 그녀의 개인사를 먼저 이해하는 것이 좋다. 로드는 서인도 제도 출신 이민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열두 살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 시는 그녀의 정체성과 사상을 확립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준다. 백인 게이 남성과 결혼해 딸과 아들을 가졌고, 이혼 후 백인 레즈비언 여성과 살면서 두 아이를 길렀다. 1978년에 유방암 진단을 받았지만, 투병 중에도 자신의 정체성과 사회적 위치를 시, 에세이, 연설을 통해 끊임없이 증언했으며 흑인 여성 해방 운동과 성소수자 해방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이번에 출간된 《시스터 아웃사이더》는 한 편의 글을 제외하고는 1984년 초판을 번역한 것이다. 여기에 2017년에 쓴 사라 아메드(Sara Ahmed)의 추천사와 세 편의 연설문이 추가되었다. 로드는 흑인 여성의 정체성과 경험으로 ‘페미니즘’과 ‘성소수자 문제’라는 어려운 두 가지 담론을 구체적이고 설득력 있게 풀어낸다. 그녀는 페미니즘 운동의 긍정적인 성과들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긍정적 전망을 잃어가고 있는 페미니즘을 위해 과감한 비판의 수혈을 했다. 로드가 생각한 저항과 투쟁을 위한 ‘힘 기르기’는 ‘흑인 여성의 삶과 경험을 말하기’와 글쓰기, 즉 ‘침묵하지 않기’다. 그녀에게 시는 ‘혁명적인 무기’이자 ‘생명줄’이다.

 

『시는 사치가 아니다』라는 글에서 로드가 정의한 시는 인종, 계급, 성 정체성, 학력, 나이 등에 따라 성별에 맞춰 특정한 역할을 강요받는 억압들과 그에 직면하면서 얻은 감정을 분명한 언어로 표현하는 장르이고, 그것에 대해 사유할 수 있도록 해준다. 로드는 상호교차성 이론이 나오지 않았던 시기에 차별은 절대로 단순하지 않으며 각각 다른 차별의 합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깨닫고 있었다. 그러면서 여성 혐오와 동성애 혐오가 인종차별, 계급차별 등과 맞물려 작동하면서 서로를 단단하게 만드는 권력 구조를 분석한다.

 

주류 집단은 자신들의 편의에 따라서 타자가 원하는 것, 또는 생각하는 것을 정의한다. 갈수록 그런 일은 보편화하고 표현도 당당해진다. 그들이 타자의 이름으로 말할 때 다른 생각과 감수성을 가진 또 다른 타자들은 자연히 주류가 정의하는 타자의 개념에서 배제되고 소외감을 느낀다. 변화를 추구하는 집단 내부에서조차도 차별과 배제는 항상 있었다. 미국 흑인 민권운동에 참여했던 흑인 여성들은 흑인 남성들과 함께 민주시민으로 살 수 있는 평등권을 위해 투쟁했다. 그러나 흑인 여성들은 흑인 공동체 내부에 존재하는 또 다른 억압인 성차별을 인식했다. 여성에 대한 흑인 남성의 가부장적 억압은 인종차별주의와 같은 사고방식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로드는 『성차별주의 : 흑인 가면을 쓴 미국의 병폐』에서 흑인 남성이 누리는 특권을 정면으로 비판했고, 흑인 여성도 민권운동의 주체적인 존재임을 강조했다.

 

서구 페미니즘 운동 역사에서도 차별과 배제는 마찬가지로 존재했다. 인종 · 계급간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채 보편적인 백인 여성의 억압만을 강조해온 서구 백인 중산층 중심의 여성 운동은 흑인을 비롯한 제3세계 유색 인종 여성이 경험하는 다중적인 억압을 인식하지 못했다. 백인 중산층 여성들이 일할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하고 있을 때 그들의 집에는 하녀로 일하고 있는 흑인 여성들이 있었다. 백인 여성의 입장과 제3세계 여성의 입장은 달랐으며 중산층 백인 여성이 여성의 이름으로 이야기할 때 그것은 제3세계 여성을 대변하지 못했다. 보부아르(Beauvoir)의 《제2의 성》 출간 3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열린 학술대회에서 연설한 로드는 백인 특권층 여성들이 생산한 페미니즘 이론의 한계를 지적한다.

 

 

 최근 강연에서 애드리언 리치가 지적했듯이, 지난 10년간 백인 페미니스트들은 그토록 어마어마한 양의 공부를 했다면서, 도대체 왜 흑인 여성에 대해서는, 또 우리 사이의 차이에 대해서는 공부를 안 하는 건가요? 바로 거기에 페미니즘 운동의 사활이 걸려 있는 이 시기에 말입니다.

 

(『주인의 도구로는 결코 주인의 집을 무너뜨릴 수 없다』, 180쪽)

 

 

 

로드는 페미니즘 운동과 민권운동 내에 존재하는 모순과 차별, 억압을 사유하면서 ‘차이’의 의미를 확인한다. 그러면서 그녀는 페미니즘이 무엇보다 ‘차이’를 보듬는 언어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우리에게 생존은 모두가 잘 지낼 수 있는 세상이 어떤 세상일지를 상상하고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타자들, 즉 구조 바깥에 존재하는 아웃사이더들과 공동전선을 구축하는 법을 배우는 일입니다. 우리에게 생존은 우리의 차이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우리의 힘으로 벼리는 법을 배우는 일입니다.

 

(『주인의 도구로는 결코 주인의 집을 무너뜨릴 수 없다』, 178쪽)

 

 

 

페미니즘은 수많은 여성에게 ‘말할 수 있는’ 언어와 ‘행동하는’ 힘을 제공했다. 그러나 차별에 관하여 설명하는 언어와 방식이 ‘인종’과 ‘젠더’ 범주 내에서 가장 특권화 된 계층이 겪는 차별만을 포함하고 있어서, 이보다 더 주변화된 범주의 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배제하고 있다. 오드리 로드의 글과 목소리는 인종차별과 성차별을 가로지르는 구조를 드러내고 정확하게 지적하였다. 인종차별과 성소수자 차별을 언급하는 페미니즘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상호교차성 이론이 여성들 간의 연대를 돈독히 하기는커녕 오히려 자신의 피해만을 강조하여 분열을 일으킬 것이라고 우려한다. 하지만 로드가 말했듯이 ‘깨져야 할 침묵’은 너무 많다.

 

 

 우리는 두려움이 엄습해 오더라도 각자가 할 일을 하고 할 말을 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중략]

 우리가 여기 모여 있다는 것, 그리고 제가 이런 말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바로 그 침묵을 깨고 우리의 차이 사이에 다리를 놓으려는 시도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손발을 묶고 있는 것은 차이가 아니라 침묵입니다. 그리고 깨져야 할 침묵은 너무나 많습니다.

 

(『침묵을 언어와 행동으로 바꾼다는 것』, 53쪽)

 

 

억압당한 이들이 자신의 부당한 경험을 이야기할 때, 이러한 목소리가 억압 주체가 속한 집단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러한 불편함이 ‘침묵’으로 남아서는 안 된다. 주변화되어 더욱 억압받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소거하는 페미니즘은 복잡하게 교차한 다양한 ‘차이’를 외면한다. 로드는 ‘차이’ 자체가 억압의 구조를 부수는 창의적인 무기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앞으로 우리 사회의 페미니즘이 더 넓고 깊게 발전하려면, 나와 타자 사이에 선 위치에서 각자의 차이를 인정하고 그 차이로 인한 차별과 소외는 없는지 살펴볼 수 있어야 한다.

 

 

 

 

※ Trivia

 

* 1940, 50년대 되면 추천 도서 목록에서 대부분 삭제되었다. (역주, 287쪽)

→ ‘50년대가 되면’을 ‘50년대에 들어서면서’로 고쳐야 한다.

 

* 흑인 여성인 우리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일은 “흑인은 아름답다” 단순화된 주장을 넘어선다. (336쪽)

→ ‘은’을 ‘라는’으로 고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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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7 14: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10-18 07:14   좋아요 1 | URL
관용이 위험한 이유는 타자에 대해서 알지 않았으면서도(무관심했으면서도) 타자의 입장을 존중한다면서 말하기 쉽다는 점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위선이죠.

syo 2018-10-19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앙도서관에 이 책 들어와 있는 게, 혹시 사이러스님 작품인가요 ㅎㅎㅎㅎㅎ

cyrus 2018-10-19 11:45   좋아요 1 | URL
중앙도서관에 있는 <시스터 아웃사이더>는 제가 신청하지 않았고요, 서부도서관에 있는 책은 제가 신청했습니다. ^^
 
번안 사회 - 제국과 식민지의 번안이 만든 근대의 제도, 일상, 문화
백욱인 지음 / 휴머니스트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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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올바르게 인식한 사람은 과거와 현재, 미래의 흐름 속에서 ‘현재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해 고민한다. 그래서 역사에 기록될 자신의 행적을 두려워하며 자신이 나아갈 방향을 정하기 마련이다. 반면에 역사를 제대로 인식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행적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는다. 눈앞에 있는 이익에 현혹되고, 진실을 조작하고, 과거를 미화한다. 진실을 외면하면서도 역사가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기록될 거로 생각한다.

 

과거사 청산 운동은 결코 과거에 얽매인 퇴행적 사고에서 추진되는 운동이 아니다. 우리 민족사의 재정립을 위해서 역사의 치부에 대한 객관적 반성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 일각에는 아직도 식민지 근대화론을 들먹이며 과거사 규명을 부정적으로 보는 세력들이 다수 존재하고 있다. 친일파와 그 추종자들은 학연으로 맺어진 굳건한 인맥으로 정치계, 문화예술계 등 각계에서 주류로서 기득권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한 우리나라 역사는 만주군 장교 출신의 대통령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대통령의 군사내란을 고스란히 모방한 독재정권이 등장했다. 그렇게 역사의 비극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었다.

 

국민교육헌장은 어떤 이유로 만들어졌나. 우리나라 최고 국립대학은 왜 성균관이 아니라 서울대학교가 됐나. 건빵은 어떻게 국군의 전투식량이 되었나. 이러한 질문에 대해 의문을 품어본 적이 있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혹자는 ‘그걸 알아서 뭐하게?’라고 말하면서 시큰둥한 반응을 보일 것이다. 《번안 사회》를 쓴 사회학자 백욱인은 책 속에서 그 이유에 대해 집요하게 분석한다. 저자는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이 한국 근대를 관통한 ‘번안 문화’의 흔적이라고 주장한다.

 

식민 통치라는 왜곡된 형태를 통해서이긴 하지만, 1930년대 조선은 서구화와 근대화의 물결을 타기 시작했다. 1930년대 조선은 근대와 전근대의 모습이 혼재된 시대였다. 암울했던 식민지 시기였지만 댄스, 중절모와 양장 스커트, 자유연애 등 새로 유입된 서양식 문화에 대한 설렘도 공존했다. 이 시기에 일제가 번안한 서양문물은 철썩이는 파도처럼 식민지 조선을 침습했고, 식민지는 일본식 서양문물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서양문화를 받아들였다.

 

조선은 일본식 서양문물을 다시 번안했다. 다시 말해 일본이 번안한 서양을 조선이 다시 번안한 셈이다. 이러한 이중 번안을 통해 만들어진 문화는 과거의 전통을 때리면서 부수어버렸다. 그런데도 조선은 일본식 번안 문화를 서구의 참모습으로 착각했다.

 

최고 국립대학인 서울대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조선 통치를 목적으로 만든 경성제국대학이 모태다. 이미 메이지 유신(明治維新)으로 독자적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은 서양 정보를 수집하고 양서를 번역하는 기관인 요가쿠쇼(洋學所)를 설치했다. 세계열강에 되기 위해 근대화를 서두르던 일본은 차례차례 서양식 교육체계를 도입했고, 양학소를 관료 중심의 제국대학으로 재편성했다. 이 과정에서 도쿄제국대학이 세워졌다. 일본은 자신들의 역사와 사회제도, 그리고 식민으로서의 식민의식을 양성하기 위해 조선에 경성제국대학을 설립했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근대적 대학 시스템은 일본이 식민지 조선에 이식한 일본식 번안 교육제도의 영향을 받으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반쪽짜리 근대’의 모습은 해방 이후에도 변함이 없었다. 해방 후 한반도는 남과 북으로 갈라졌고, 미군이 남한에 주둔하면서 미국식 서양 문화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미국풍 서양문화의 강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본식 서양문화의 영향력은 줄어들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해방 후 조선에는 ‘두 개의 서양’이 공존하고 있었다. 일본식 서양과 미국식 서양. 박정희 정권은 ‘반공’과 ‘민족중흥’이라는 이념을 강조하면서 국민교육헌장을 반포했다. 반공주의와 민족주의는 쌍두마차로 1960년대 근대화 시대를 이끌었다. 국민교육헌장의 등장은 국민이 국가에 종속됨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국민교육헌장은 천황의 절대 권력을 정당화하고 천황에 대한 충성을 강요했던 일제강점기의 ‘교육칙어’를 그대로 모방한 것이다. 시대만 달라졌을 뿐 국가는 권력 그 자체였다. 유신헌법 공포로 이어지면서 국민교육헌장은 대한민국 교육의 이념이 됐고, 박정희 대통령의 사진은 학교 교무실은 물론이고 각급 학년 교실에까지 게시됐다.

 

건빵은 6·25전쟁 이후에 등장한 전투식량이다. 건빵은 일본 제국주의 군대의 전투식량을 국군이 물려받은 것이다. 6·25전쟁 당시 한국군 육군참모총장이었던 백선엽 장군은 건빵을 생산하여 전 부대에 보급하도록 지시했다. 장군은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만주군 ‘간도 특설대’ 소속 중위 출신이다.

 

《번안 사회》를 읽으면 우리가 생각했던 조선의 근대화는 일본식 근대화의 축소판이었다는 점을 확인하게 된다. 저자는 일상생활 속에 파고든 일본식 번안 문화들의 기원을 추적하고, 이를 통해 1930년대와 1960년대 근대화의 풍경이 어떠했는지, 더 나아가 우리 문화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보여준다. 독자들은 우리 고유의 것으로 생각했던 일본식 번안 문화가 지금도 우리 일상 속에서 재생산되는 과정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일본식 번안 문화의 뿌리는 너무나 깊다.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식민지 흔적이 남아 있고, 완전히 청산하지 못하고 있다. 과거사 청산을 진즉에 해야 했으나 시대적 불운과 급격한 시대의 흐름에 번번이 부딪히는 바람에 실행되지 못했다.

 

 

 구호와 생각으로는 일본을 부정하지만 생활 속에는 일본을 따르는 이런 모순은 해방 이후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반일 구호에 파묻힌 사람들이 생활 속에 침투한 식민주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들은 근대와 직접 마주하지 못한 채 이미 일본이 번안한 근대를 쉽게 따라 하면서 그 속에 숨은 식민주의를 알아채지 못했다. “일제의 급격한 몰락과 해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새로 짜진 세계 질서”, 한국전쟁과 급속한 산업화도 생활 속 식민주의 청산을 지연하는 원인이었다. (154~155쪽)

 

 

과거사 청산이 지연된 원인을 시대 탓으로만 돌릴 수 없다. 또 이런 입장에 대한 동의 여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이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그동안 우리는 ‘숨은 식민주의’를 알아채지 못한 점과 그에 대한 고민과 성찰이 우리 사회에 부족한 점이다. 역사를 알아야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를 보는 눈이 떠진다. 그런 점에서 사회 전반에 드러나 있는 일제의 잔재를 벗어날 뿐만 아니라, 그 뿌리까지 도려내려고 계속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일반 독자인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반쪽짜리 근대’로 남게 된 어두운 역사를 알고, 그로 인해 생겨난 현재의 문제들에 직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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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6 23: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10-17 12:45   좋아요 1 | URL
저는 건빵이 일본의 전투식량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 알았습니다. 우리가 서양(미국식) 문화라고 생각했던 것 대부분이 일본에서 나온 것이에요.
 
자연이 만든 가장 완벽한 도형, 나선
외위빈 함메르 지음, 박유진 옮김 / 컬처룩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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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것만으로도 소름 끼치는 만화가 있다. 이토 준지(伊藤潤二)《소용돌이》는 기괴한 이미지와 상상력이 돋보이는 공포만화이다. 쿠로우즈라는 작은 마을에 사는 소녀 키리에는 남자친구인 슈이치로부터 “아버지가 이상하다”는 말을 듣는다. 슈이치의 아버지는 소용돌이 모양에 집착하고, 그 후 마을에서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소용돌이와 나선 모양에 광적으로 집착하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마을 전체가 거대한 소용돌이 모양으로 변해버린다. 이 만화에서는 손가락 끝의 지문, 귓속 달팽이관, 하늘로 오르는 연기까지 황당할 만큼 온갖 군데서 소용돌이가 발견된다. 이토 준지는 우리 삶에 흔히 찾을 수 있지만 의식하지 못하던 그 단순한 형태를 공포의 소재로 삼았다.

 

슈이치의 아버지는 소용돌이의 매력에 빠져 결국 자기 자신이 소용돌이가 돼 죽는다. 슈이치의 아버지처럼 다양한 자연현상에서 나선을 찾는 데 열을 올리고 있는 과학자가 있다. 노르웨이의 고생물학자 외위빈 함메르(Øyvind Hammer)는 나선형 화석을 연구하다 나선의 매력에 푹 빠진 ‘나선 마니아’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여기저기서 나선형이 보이고, 그것에 대해 남들에게 얘기하지 않으면 참지 못하는 증상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리하여 이 노르웨이의 나선 마니아는 거대한 세상이 품고 있는 크고 작은 나선의 실체와 그 신비스러운 매력을 알리기 위해 책 한 권을 쓰게 됐다.

 

아주 오랜 옛날에 슈이치의 아버지와 같은 과학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자연계 속에 있는 나선이 세상의 질서일지도 모른다고 인식했다. 기원전 3세기 고대 그리스에 활동한 수학자 아르키메데스(Archimedes)는 나선을 수학적으로 정의한 논문을 썼다. 그의 이름이 붙여진 ‘아르키메데스 나선’은 일생 생활 속에서 친숙하게 볼 수 있는 나선의 기본 형태이다. 아르키메데스는 이 나선에 영감을 얻어 펌프를 고안했다. 그의 어이없는 죽음은 너무나도 유명하다. 아르키메데스는 시라쿠사가 로마에 함락된 것도 모르고 땅에 원을 그리며 연구에 몰두하고 있었다. 로마 병사가 자신의 집에 침입하자 화가 난 아르키메데스는 병사에게 “내가 그린 원을 밟지 마라!”라고 외쳤다. 물론, 병사는 칼로 그를 내리쳤다. 만약 아르키메데스가 ‘나선 마니아’였다면, 그가 죽기 전에 땅에 그렸던 것은 원이 아니라 나선이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나선도 ‘완벽한 도형’이기 때문이다.

 

 

 

 

 

 

함메르는 나선처럼 아름답고, 영원한 느낌을 강렬하게 불러일으키는 도형은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가 쓴 책 제목은 《자연이 만든 가장 완벽한 도형, 나선》이다. 얼핏 보기에 나선은 완벽하지 않은 도형인 것 같지만, 인류는 나선 안에 일정한 규칙이 숨어 있으며 그 규칙을 찾아낼 수 있다고 믿었다.

 

 

 

 

 

 

 

실제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는 자연계 속에 있는 나선을 찾아낼 수만 있다면, 자연현상의 원리를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물이 흐르면서 생기는 소용돌이를 예리하게 관찰하여 자신의 노트에 스케치로 남겼다. 그는 나선이 마음에 들었는지 다양한 형태의 나선을 그림에 그려 넣었다.

 

이 책에 나선과 관련된 수학 공식이나 수학적인 내용이 나오긴 하지만, ‘고생물학자가 쓴 수학책’은 절대로 아니다. 저자는 우리를 포위하고 있는 수많은 나선을 소개하고 있을 뿐이다. 이 책을 보고 있으면 하루에 수십 개 정도의 나선을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선 형태만 보고도 ‘아르키메데스 나선’과 ‘로그 나선’를 구별할 수 있다. 당신이 어느 날인가부터 나선과 소용돌이 형태에 의식하기 시작했다면, ‘나선에 대한 광기’에 전염됐다고 봐야 한다. 독자는 이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저자의 ‘음흉한 계획’을 알아차린다. 노르웨이의 나선 마니아는 자신의 증상을 전염시키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한다. 그는 책 머리말에서 이미 독자들에게 경고했다. 감수성이 예민한 분은 이 책을 읽지 않는 편이 좋을 것이라고. 그렇다면, 이 책의 정체는 무엇일까? 수학책인가 아니면 생물학책인가? 그것도 아니면 나선에 대한 광기를 전염시키는 마도서(魔導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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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는 주로 집에서 책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냅니다. 외출을 해봤자 도서관이나 서점, 헌책방에 가보는 정도입니다. 지난주 토요일에도 도서관에 갔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도서관에 있는 책들을 살펴봤거나 읽고 싶은 책 몇 권 빌렸습니다. 그렇지만 이날은 책을 읽으려고 도서관에 간 것은 아니었어요. 도서관에 큰 행사가 진행되었는데, 그 행사에 참여한 지인들을 만나려고 갔습니다.

 

 

 

 

 

 

 

 

 

 

지난주 토요일 대구 범어도서관에서 ‘수성인문학제’가 열렸습니다. 이 행사에 ‘서재를 탐하다’ ‘읽다 익다’ 책방을 소개하는 부스가 마련되었습니다. 그밖에도 ‘물레책방’‘시인보호구역’도 수성인문학제에 참여했습니다. 네 개의 책방 모두 다 가봤던 곳입니다. 범어도서관 건너편에 수성경찰서가 있는데요, 경찰서 지나는 길을 따라가면 물레책방을 만날 수 있어요. 시인보호구역은 정훈교 시인이 문을 연 책방이에요. 이곳은 지역의 젊은 예술인들이 모이는 ‘인문 예술 공동체’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서탐’과 ‘읽다’가 야외 부스 행사를 통해서 소개된 건 처음입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서탐’과 ‘읽다’는 대구를 대표하는 책방입니다. 책방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크고 작은 문화행사와 다양한 소모임을 열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책방 부스 행사는 정오부터 오후 4시까지 진행되었습니다. 이 행사를 위해 ‘서탐’과 ‘읽다’ 책방지기 두 분뿐만 아니라 가족들도 함께 아침부터 분주히 준비했습니다. 저는 오후 1시경에 도서관에 도착했습니다. 집에서 점심을 먹고 나섰는데요, 버스를 타고 가면 도서관에 도착하는 데 40분 정도 걸립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일찍 갈 걸 그랬어요. 제가 도서관에 도착했을 때, ‘우주지감’ 독서 모임에 꾸준히 참석하시는 쌤 한 분이 부스를 지키고 있었어요. 지난달 독서모임에 개인 사정이 있어서 참석하지 못했는데, 거의 두 달 만에 ‘우주지감’ 쌤들을 뵙게 되니 무척 반가웠습니다.

 

 

 

 

 

 

 

 

행사가 마칠 때까지 부스를 지켰습니다. 부스 안에만 있으니 기분이 묘했어요. 왜냐하면 그동안 책방 부스 행사에 가면 ‘손님’의 위치에 있었거든요. 부스 안에 있으니 부스 밖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새로워 보였어요. 책방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어서 책방지기님에게 적극적으로 질문하는 손님 한 분을 봤어요. 마치 ‘손님’이 되어 부스를 찾아온 저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어요.

 

 

 

 

 

오전에 일찍 부스를 찾은 ‘우주지감’ 쌤 한 분이 그림엽서 다섯 장을 사주셨어요. 그림엽서는 ‘읽다’에서만 살 수 있는 굿즈입니다. 오늘 월요일은 ‘읽다’ 그림 모임이 있는 날입니다. 엽서에 그려진 그림들은 ‘읽다’ 그림 모임에 참석한 분들이 직접 그렸어요. 저는 그림엽서를 책갈피로 씁니다. ‘읽다’ 책방 전면이 그려진 그림엽서가 제일 맘에 듭니다. 이 그림엽서를 책갈피로 쓰면 책을 읽다가도 책방에 가고 싶거나 책을 사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들겠죠?

 

 

 

 

 

 

 

 

 

 

 

 

 

 

 

 

 

 

이번 달에 나온 《THANKSBOOK(땡스북)》 29호에 ‘읽다 익다’ 책방지기 오은아 님의 글이 실려 있어요. ‘엄마는 꿈 짓는 책방지기’라는 이름으로 은아 님의 글이 연재될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동네서점이 돌아오고 있다 - 읽다익다 책방 편]

땡스기브, 2018년 10월 10일

https://blog.naver.com/tgive/221374766556

 

 

사진은 ‘서재를 탐하다’, ‘읽다 익다’ 공식 인스타그램에서 가져왔습니다. 저도 사진 몇 장 찍었습니다만, 사진을 찍을 때면 제 눈은 ‘똥눈’이 되는지라 그 날의 생생함을 제대로 담지 못했어요.

 

‘서재를 탐하다’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bookstore_daegu/

 

‘읽다 익다’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ikdda_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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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5 12: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10-15 17:13   좋아요 1 | URL
아무 것도 안 했는데도 시간 가는 줄 몰랐어요. 부스 행사가 오후에만 편성되어 있어서 시간이 짧게 느껴졌어요.

2018-10-15 12: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10-15 17:14   좋아요 0 | URL
지기 역할을 했다기보다는 지킴이 역할을 했어요.. ㅎㅎㅎ

세상틈에 2018-10-15 2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단 대구 동네서점부터 쭈욱 투어를!!!

cyrus 2018-10-16 07:49   좋아요 0 | URL
대구에 있는 책방이나 서점을 소개하는 방송을 만들어주셨으면 좋겠어요. ^^

레삭매냐 2018-10-16 0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로컬 서점 붐이 다시 이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정치적 상황과 연관이 있는
게 아닐까요.

모두 부자되세요하던 정권에서는 아
무도 책을 읽으려고 하지 않았으니
말입니다.

cyrus 2018-10-16 11:41   좋아요 0 | URL
경기가 좋아져도 책 읽는 사람은 늘어나지 않을 것 같아요. 책보다 더 재미있는 것들이 많아지니까요. ^^;;

읽다익다 2019-08-16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왜 이 글을 이제서야 읽은걸까요. 꾸준한 관심과 올려주시는 글 넘 감사합니다 샘^^

cyrus 2019-08-16 11:16   좋아요 0 | URL
이 글을 어떻게 찾으셨어요? ㅎㅎㅎㅎ 쌤 덕분에 작년에 쓴 글을 다시 보게 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