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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안 사회 - 제국과 식민지의 번안이 만든 근대의 제도, 일상, 문화
백욱인 지음 / 휴머니스트 / 2018년 8월
평점 :
역사를 올바르게 인식한 사람은 과거와 현재, 미래의 흐름 속에서 ‘현재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해 고민한다. 그래서 역사에 기록될 자신의 행적을 두려워하며 자신이 나아갈 방향을 정하기 마련이다. 반면에 역사를 제대로 인식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행적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는다. 눈앞에 있는 이익에 현혹되고, 진실을 조작하고, 과거를 미화한다. 진실을 외면하면서도 역사가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기록될 거로 생각한다.
과거사 청산 운동은 결코 과거에 얽매인 퇴행적 사고에서 추진되는 운동이 아니다. 우리 민족사의 재정립을 위해서 역사의 치부에 대한 객관적 반성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 일각에는 아직도 식민지 근대화론을 들먹이며 과거사 규명을 부정적으로 보는 세력들이 다수 존재하고 있다. 친일파와 그 추종자들은 학연으로 맺어진 굳건한 인맥으로 정치계, 문화예술계 등 각계에서 주류로서 기득권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한 우리나라 역사는 만주군 장교 출신의 대통령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대통령의 군사내란을 고스란히 모방한 독재정권이 등장했다. 그렇게 역사의 비극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었다.
국민교육헌장은 어떤 이유로 만들어졌나. 우리나라 최고 국립대학은 왜 성균관이 아니라 서울대학교가 됐나. 건빵은 어떻게 국군의 전투식량이 되었나. 이러한 질문에 대해 의문을 품어본 적이 있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혹자는 ‘그걸 알아서 뭐하게?’라고 말하면서 시큰둥한 반응을 보일 것이다. 《번안 사회》를 쓴 사회학자 백욱인은 책 속에서 그 이유에 대해 집요하게 분석한다. 저자는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이 한국 근대를 관통한 ‘번안 문화’의 흔적이라고 주장한다.
식민 통치라는 왜곡된 형태를 통해서이긴 하지만, 1930년대 조선은 서구화와 근대화의 물결을 타기 시작했다. 1930년대 조선은 근대와 전근대의 모습이 혼재된 시대였다. 암울했던 식민지 시기였지만 댄스, 중절모와 양장 스커트, 자유연애 등 새로 유입된 서양식 문화에 대한 설렘도 공존했다. 이 시기에 일제가 번안한 서양문물은 철썩이는 파도처럼 식민지 조선을 침습했고, 식민지는 일본식 서양문물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서양문화를 받아들였다.
조선은 일본식 서양문물을 다시 번안했다. 다시 말해 일본이 번안한 서양을 조선이 다시 번안한 셈이다. 이러한 이중 번안을 통해 만들어진 문화는 과거의 전통을 때리면서 부수어버렸다. 그런데도 조선은 일본식 번안 문화를 서구의 참모습으로 착각했다.
최고 국립대학인 서울대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조선 통치를 목적으로 만든 경성제국대학이 모태다. 이미 메이지 유신(明治維新)으로 독자적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은 서양 정보를 수집하고 양서를 번역하는 기관인 요가쿠쇼(洋學所)를 설치했다. 세계열강에 되기 위해 근대화를 서두르던 일본은 차례차례 서양식 교육체계를 도입했고, 양학소를 관료 중심의 제국대학으로 재편성했다. 이 과정에서 도쿄제국대학이 세워졌다. 일본은 자신들의 역사와 사회제도, 그리고 식민으로서의 식민의식을 양성하기 위해 조선에 경성제국대학을 설립했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근대적 대학 시스템은 일본이 식민지 조선에 이식한 일본식 번안 교육제도의 영향을 받으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반쪽짜리 근대’의 모습은 해방 이후에도 변함이 없었다. 해방 후 한반도는 남과 북으로 갈라졌고, 미군이 남한에 주둔하면서 미국식 서양 문화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미국풍 서양문화의 강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본식 서양문화의 영향력은 줄어들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해방 후 조선에는 ‘두 개의 서양’이 공존하고 있었다. 일본식 서양과 미국식 서양. 박정희 정권은 ‘반공’과 ‘민족중흥’이라는 이념을 강조하면서 국민교육헌장을 반포했다. 반공주의와 민족주의는 쌍두마차로 1960년대 근대화 시대를 이끌었다. 국민교육헌장의 등장은 국민이 국가에 종속됨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국민교육헌장은 천황의 절대 권력을 정당화하고 천황에 대한 충성을 강요했던 일제강점기의 ‘교육칙어’를 그대로 모방한 것이다. 시대만 달라졌을 뿐 국가는 권력 그 자체였다. 유신헌법 공포로 이어지면서 국민교육헌장은 대한민국 교육의 이념이 됐고, 박정희 대통령의 사진은 학교 교무실은 물론이고 각급 학년 교실에까지 게시됐다.
건빵은 6·25전쟁 이후에 등장한 전투식량이다. 건빵은 일본 제국주의 군대의 전투식량을 국군이 물려받은 것이다. 6·25전쟁 당시 한국군 육군참모총장이었던 백선엽 장군은 건빵을 생산하여 전 부대에 보급하도록 지시했다. 장군은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만주군 ‘간도 특설대’ 소속 중위 출신이다.
《번안 사회》를 읽으면 우리가 생각했던 조선의 근대화는 일본식 근대화의 축소판이었다는 점을 확인하게 된다. 저자는 일상생활 속에 파고든 일본식 번안 문화들의 기원을 추적하고, 이를 통해 1930년대와 1960년대 근대화의 풍경이 어떠했는지, 더 나아가 우리 문화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보여준다. 독자들은 우리 고유의 것으로 생각했던 일본식 번안 문화가 지금도 우리 일상 속에서 재생산되는 과정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일본식 번안 문화의 뿌리는 너무나 깊다.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식민지 흔적이 남아 있고, 완전히 청산하지 못하고 있다. 과거사 청산을 진즉에 해야 했으나 시대적 불운과 급격한 시대의 흐름에 번번이 부딪히는 바람에 실행되지 못했다.
구호와 생각으로는 일본을 부정하지만 생활 속에는 일본을 따르는 이런 모순은 해방 이후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반일 구호에 파묻힌 사람들이 생활 속에 침투한 식민주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들은 근대와 직접 마주하지 못한 채 이미 일본이 번안한 근대를 쉽게 따라 하면서 그 속에 숨은 식민주의를 알아채지 못했다. “일제의 급격한 몰락과 해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새로 짜진 세계 질서”, 한국전쟁과 급속한 산업화도 생활 속 식민주의 청산을 지연하는 원인이었다. (154~155쪽)
과거사 청산이 지연된 원인을 시대 탓으로만 돌릴 수 없다. 또 이런 입장에 대한 동의 여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이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그동안 우리는 ‘숨은 식민주의’를 알아채지 못한 점과 그에 대한 고민과 성찰이 우리 사회에 부족한 점이다. 역사를 알아야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를 보는 눈이 떠진다. 그런 점에서 사회 전반에 드러나 있는 일제의 잔재를 벗어날 뿐만 아니라, 그 뿌리까지 도려내려고 계속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일반 독자인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반쪽짜리 근대’로 남게 된 어두운 역사를 알고, 그로 인해 생겨난 현재의 문제들에 직면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