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만든 가장 완벽한 도형, 나선
외위빈 함메르 지음, 박유진 옮김 / 컬처룩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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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것만으로도 소름 끼치는 만화가 있다. 이토 준지(伊藤潤二)《소용돌이》는 기괴한 이미지와 상상력이 돋보이는 공포만화이다. 쿠로우즈라는 작은 마을에 사는 소녀 키리에는 남자친구인 슈이치로부터 “아버지가 이상하다”는 말을 듣는다. 슈이치의 아버지는 소용돌이 모양에 집착하고, 그 후 마을에서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소용돌이와 나선 모양에 광적으로 집착하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마을 전체가 거대한 소용돌이 모양으로 변해버린다. 이 만화에서는 손가락 끝의 지문, 귓속 달팽이관, 하늘로 오르는 연기까지 황당할 만큼 온갖 군데서 소용돌이가 발견된다. 이토 준지는 우리 삶에 흔히 찾을 수 있지만 의식하지 못하던 그 단순한 형태를 공포의 소재로 삼았다.

 

슈이치의 아버지는 소용돌이의 매력에 빠져 결국 자기 자신이 소용돌이가 돼 죽는다. 슈이치의 아버지처럼 다양한 자연현상에서 나선을 찾는 데 열을 올리고 있는 과학자가 있다. 노르웨이의 고생물학자 외위빈 함메르(Øyvind Hammer)는 나선형 화석을 연구하다 나선의 매력에 푹 빠진 ‘나선 마니아’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여기저기서 나선형이 보이고, 그것에 대해 남들에게 얘기하지 않으면 참지 못하는 증상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리하여 이 노르웨이의 나선 마니아는 거대한 세상이 품고 있는 크고 작은 나선의 실체와 그 신비스러운 매력을 알리기 위해 책 한 권을 쓰게 됐다.

 

아주 오랜 옛날에 슈이치의 아버지와 같은 과학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자연계 속에 있는 나선이 세상의 질서일지도 모른다고 인식했다. 기원전 3세기 고대 그리스에 활동한 수학자 아르키메데스(Archimedes)는 나선을 수학적으로 정의한 논문을 썼다. 그의 이름이 붙여진 ‘아르키메데스 나선’은 일생 생활 속에서 친숙하게 볼 수 있는 나선의 기본 형태이다. 아르키메데스는 이 나선에 영감을 얻어 펌프를 고안했다. 그의 어이없는 죽음은 너무나도 유명하다. 아르키메데스는 시라쿠사가 로마에 함락된 것도 모르고 땅에 원을 그리며 연구에 몰두하고 있었다. 로마 병사가 자신의 집에 침입하자 화가 난 아르키메데스는 병사에게 “내가 그린 원을 밟지 마라!”라고 외쳤다. 물론, 병사는 칼로 그를 내리쳤다. 만약 아르키메데스가 ‘나선 마니아’였다면, 그가 죽기 전에 땅에 그렸던 것은 원이 아니라 나선이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나선도 ‘완벽한 도형’이기 때문이다.

 

 

 

 

 

 

함메르는 나선처럼 아름답고, 영원한 느낌을 강렬하게 불러일으키는 도형은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가 쓴 책 제목은 《자연이 만든 가장 완벽한 도형, 나선》이다. 얼핏 보기에 나선은 완벽하지 않은 도형인 것 같지만, 인류는 나선 안에 일정한 규칙이 숨어 있으며 그 규칙을 찾아낼 수 있다고 믿었다.

 

 

 

 

 

 

 

실제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는 자연계 속에 있는 나선을 찾아낼 수만 있다면, 자연현상의 원리를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물이 흐르면서 생기는 소용돌이를 예리하게 관찰하여 자신의 노트에 스케치로 남겼다. 그는 나선이 마음에 들었는지 다양한 형태의 나선을 그림에 그려 넣었다.

 

이 책에 나선과 관련된 수학 공식이나 수학적인 내용이 나오긴 하지만, ‘고생물학자가 쓴 수학책’은 절대로 아니다. 저자는 우리를 포위하고 있는 수많은 나선을 소개하고 있을 뿐이다. 이 책을 보고 있으면 하루에 수십 개 정도의 나선을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선 형태만 보고도 ‘아르키메데스 나선’과 ‘로그 나선’를 구별할 수 있다. 당신이 어느 날인가부터 나선과 소용돌이 형태에 의식하기 시작했다면, ‘나선에 대한 광기’에 전염됐다고 봐야 한다. 독자는 이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저자의 ‘음흉한 계획’을 알아차린다. 노르웨이의 나선 마니아는 자신의 증상을 전염시키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한다. 그는 책 머리말에서 이미 독자들에게 경고했다. 감수성이 예민한 분은 이 책을 읽지 않는 편이 좋을 것이라고. 그렇다면, 이 책의 정체는 무엇일까? 수학책인가 아니면 생물학책인가? 그것도 아니면 나선에 대한 광기를 전염시키는 마도서(魔導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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