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터 아웃사이더 딕테 시리즈 1
오드리 로드 지음, 주해연.박미선 옮김 / 후마니타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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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오드리 로드(Audre Lorde)를 알게 된 것은 패트리샤 힐 콜린스(Patricia Hill Collins)《흑인 페미니즘 사상》(여성문화이론연구소, 2009)을 통해서였다. 이 책은 흑인 여성의 경험을 분석의 핵심에 두고, 수많은 흑인 여성 운동가를 광범위하게 인용한다. 특히 “억압이 매일 먹는 음식처럼 일상적인 미국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우리는 항상 감시자가 되어야 했다”[주]는 오드리 로드의 인용 구절은 성 · 계급 · 인종 차별의 삼중 고통에 시달리는 흑인 여성의 시각을 잘 보여주고 있다. 흑인 페미니즘은 인종 차별, 성차별 등 인간에게 가해지는 모든 폭력과 억압을 비판한다. 집단적인 행동을 통해서 인종, 계급, 젠더, 섹슈얼리티에 따른 억압에 저항하고, 지속적인 제도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은 ‘흑인 여성의 힘 기르기(empowerment)를 강조한다.

 

오드리 로드는 1970~80년대 백인 여성 주류의 페미니즘과 흑인 남성 중심의 흑인 민권운동에 맞선 시인이자 레즈비언 페미니스트이다. 1970~80년대 이 시기 페미니즘이 일구어낸 성과는 대단했지만, 비판의 목소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벨 훅스(Bell hooks)는 백인 페미니스트들이 ‘백인 여성의 입장’에서 여성 억압 문제에 접근한 나머지 여성들의 목소리를 외면했다고 말한다. 백인 페미니스트들은 여성 억압의 원인이 젠더에 있다고 주장하면서 인종 문제를 간과했다는 것이다. 여성이라고 해도 그 사람이 어떤 계급, 종교, 인종, 성 정체성과 성적 지향 등을 지니는가에 따라 처한 상황은 다르다. 이런 차별과 억압의 교차성에 대해 고려하지 않는 이상, 그 어떤 분석도 흑인 여성들이 종속되어 온 복잡한 억압 구조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로드는 페미니스트 공동체에선 흑인으로, 흑인 공동체에선 여성으로, 이성애자들 앞에선 레즈비언으로 싸웠던 자신의 행적을 글로 표현했다. 《시스터 아웃사이더》는 로드가 1970~80년대에 쓴 글과 연설문을 모은 책이다. 자신을 ‘흑인, 레즈비언, 어머니고 전사이자 시인’이라고 말한 그녀는 인종차별, 성차별, 성소수자 차별 등 다양한 문제에 대한 입장을 드러냈다. 로드의 글을 읽기 전에 그녀의 개인사를 먼저 이해하는 것이 좋다. 로드는 서인도 제도 출신 이민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열두 살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 시는 그녀의 정체성과 사상을 확립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준다. 백인 게이 남성과 결혼해 딸과 아들을 가졌고, 이혼 후 백인 레즈비언 여성과 살면서 두 아이를 길렀다. 1978년에 유방암 진단을 받았지만, 투병 중에도 자신의 정체성과 사회적 위치를 시, 에세이, 연설을 통해 끊임없이 증언했으며 흑인 여성 해방 운동과 성소수자 해방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이번에 출간된 《시스터 아웃사이더》는 한 편의 글을 제외하고는 1984년 초판을 번역한 것이다. 여기에 2017년에 쓴 사라 아메드(Sara Ahmed)의 추천사와 세 편의 연설문이 추가되었다. 로드는 흑인 여성의 정체성과 경험으로 ‘페미니즘’과 ‘성소수자 문제’라는 어려운 두 가지 담론을 구체적이고 설득력 있게 풀어낸다. 그녀는 페미니즘 운동의 긍정적인 성과들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긍정적 전망을 잃어가고 있는 페미니즘을 위해 과감한 비판의 수혈을 했다. 로드가 생각한 저항과 투쟁을 위한 ‘힘 기르기’는 ‘흑인 여성의 삶과 경험을 말하기’와 글쓰기, 즉 ‘침묵하지 않기’다. 그녀에게 시는 ‘혁명적인 무기’이자 ‘생명줄’이다.

 

『시는 사치가 아니다』라는 글에서 로드가 정의한 시는 인종, 계급, 성 정체성, 학력, 나이 등에 따라 성별에 맞춰 특정한 역할을 강요받는 억압들과 그에 직면하면서 얻은 감정을 분명한 언어로 표현하는 장르이고, 그것에 대해 사유할 수 있도록 해준다. 로드는 상호교차성 이론이 나오지 않았던 시기에 차별은 절대로 단순하지 않으며 각각 다른 차별의 합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깨닫고 있었다. 그러면서 여성 혐오와 동성애 혐오가 인종차별, 계급차별 등과 맞물려 작동하면서 서로를 단단하게 만드는 권력 구조를 분석한다.

 

주류 집단은 자신들의 편의에 따라서 타자가 원하는 것, 또는 생각하는 것을 정의한다. 갈수록 그런 일은 보편화하고 표현도 당당해진다. 그들이 타자의 이름으로 말할 때 다른 생각과 감수성을 가진 또 다른 타자들은 자연히 주류가 정의하는 타자의 개념에서 배제되고 소외감을 느낀다. 변화를 추구하는 집단 내부에서조차도 차별과 배제는 항상 있었다. 미국 흑인 민권운동에 참여했던 흑인 여성들은 흑인 남성들과 함께 민주시민으로 살 수 있는 평등권을 위해 투쟁했다. 그러나 흑인 여성들은 흑인 공동체 내부에 존재하는 또 다른 억압인 성차별을 인식했다. 여성에 대한 흑인 남성의 가부장적 억압은 인종차별주의와 같은 사고방식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로드는 『성차별주의 : 흑인 가면을 쓴 미국의 병폐』에서 흑인 남성이 누리는 특권을 정면으로 비판했고, 흑인 여성도 민권운동의 주체적인 존재임을 강조했다.

 

서구 페미니즘 운동 역사에서도 차별과 배제는 마찬가지로 존재했다. 인종 · 계급간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채 보편적인 백인 여성의 억압만을 강조해온 서구 백인 중산층 중심의 여성 운동은 흑인을 비롯한 제3세계 유색 인종 여성이 경험하는 다중적인 억압을 인식하지 못했다. 백인 중산층 여성들이 일할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하고 있을 때 그들의 집에는 하녀로 일하고 있는 흑인 여성들이 있었다. 백인 여성의 입장과 제3세계 여성의 입장은 달랐으며 중산층 백인 여성이 여성의 이름으로 이야기할 때 그것은 제3세계 여성을 대변하지 못했다. 보부아르(Beauvoir)의 《제2의 성》 출간 3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열린 학술대회에서 연설한 로드는 백인 특권층 여성들이 생산한 페미니즘 이론의 한계를 지적한다.

 

 

 최근 강연에서 애드리언 리치가 지적했듯이, 지난 10년간 백인 페미니스트들은 그토록 어마어마한 양의 공부를 했다면서, 도대체 왜 흑인 여성에 대해서는, 또 우리 사이의 차이에 대해서는 공부를 안 하는 건가요? 바로 거기에 페미니즘 운동의 사활이 걸려 있는 이 시기에 말입니다.

 

(『주인의 도구로는 결코 주인의 집을 무너뜨릴 수 없다』, 180쪽)

 

 

 

로드는 페미니즘 운동과 민권운동 내에 존재하는 모순과 차별, 억압을 사유하면서 ‘차이’의 의미를 확인한다. 그러면서 그녀는 페미니즘이 무엇보다 ‘차이’를 보듬는 언어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우리에게 생존은 모두가 잘 지낼 수 있는 세상이 어떤 세상일지를 상상하고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타자들, 즉 구조 바깥에 존재하는 아웃사이더들과 공동전선을 구축하는 법을 배우는 일입니다. 우리에게 생존은 우리의 차이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우리의 힘으로 벼리는 법을 배우는 일입니다.

 

(『주인의 도구로는 결코 주인의 집을 무너뜨릴 수 없다』, 178쪽)

 

 

 

페미니즘은 수많은 여성에게 ‘말할 수 있는’ 언어와 ‘행동하는’ 힘을 제공했다. 그러나 차별에 관하여 설명하는 언어와 방식이 ‘인종’과 ‘젠더’ 범주 내에서 가장 특권화 된 계층이 겪는 차별만을 포함하고 있어서, 이보다 더 주변화된 범주의 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배제하고 있다. 오드리 로드의 글과 목소리는 인종차별과 성차별을 가로지르는 구조를 드러내고 정확하게 지적하였다. 인종차별과 성소수자 차별을 언급하는 페미니즘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상호교차성 이론이 여성들 간의 연대를 돈독히 하기는커녕 오히려 자신의 피해만을 강조하여 분열을 일으킬 것이라고 우려한다. 하지만 로드가 말했듯이 ‘깨져야 할 침묵’은 너무 많다.

 

 

 우리는 두려움이 엄습해 오더라도 각자가 할 일을 하고 할 말을 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중략]

 우리가 여기 모여 있다는 것, 그리고 제가 이런 말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바로 그 침묵을 깨고 우리의 차이 사이에 다리를 놓으려는 시도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손발을 묶고 있는 것은 차이가 아니라 침묵입니다. 그리고 깨져야 할 침묵은 너무나 많습니다.

 

(『침묵을 언어와 행동으로 바꾼다는 것』, 53쪽)

 

 

억압당한 이들이 자신의 부당한 경험을 이야기할 때, 이러한 목소리가 억압 주체가 속한 집단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러한 불편함이 ‘침묵’으로 남아서는 안 된다. 주변화되어 더욱 억압받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소거하는 페미니즘은 복잡하게 교차한 다양한 ‘차이’를 외면한다. 로드는 ‘차이’ 자체가 억압의 구조를 부수는 창의적인 무기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앞으로 우리 사회의 페미니즘이 더 넓고 깊게 발전하려면, 나와 타자 사이에 선 위치에서 각자의 차이를 인정하고 그 차이로 인한 차별과 소외는 없는지 살펴볼 수 있어야 한다.

 

 

 

 

※ Trivia

 

* 1940, 50년대 되면 추천 도서 목록에서 대부분 삭제되었다. (역주, 287쪽)

→ ‘50년대가 되면’을 ‘50년대에 들어서면서’로 고쳐야 한다.

 

* 흑인 여성인 우리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일은 “흑인은 아름답다” 단순화된 주장을 넘어선다. (336쪽)

→ ‘은’을 ‘라는’으로 고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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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7 14: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10-18 07:14   좋아요 1 | URL
관용이 위험한 이유는 타자에 대해서 알지 않았으면서도(무관심했으면서도) 타자의 입장을 존중한다면서 말하기 쉽다는 점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위선이죠.

syo 2018-10-19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앙도서관에 이 책 들어와 있는 게, 혹시 사이러스님 작품인가요 ㅎㅎㅎㅎㅎ

cyrus 2018-10-19 11:45   좋아요 1 | URL
중앙도서관에 있는 <시스터 아웃사이더>는 제가 신청하지 않았고요, 서부도서관에 있는 책은 제가 신청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