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록작품 : E.T.A. 호프만  「황금 항아리 : 새로운 시대의 옛 이야기(Der golden Topf」 (1813년)

 

 

 

괴테《파우스트》를 완성한 다음 해인 1832년 3월 22일, 82년 6개월의 생을 마감했다. 이 작품은 구상에서 완성에 이르기까지 무려 60여 년이 걸렸다. 이뿐만 아니라 괴테는 왕성하게 활동하며 시와 소설, 희곡과 산문 등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작품을 남겼다. 괴테의 대표작으로 우리는 항상 《파우스트》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두 작품을 먼저 언급한다.《파우스트》가 괴테의 작가 인생 후반기를 장식하는 스완 송(Swan Song)이라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젊은 괴테 앞에 작가로서의 길을 터준 출세작이다. 나폴레옹도 읽을 정도로 18세기 유럽의 베스트셀러가 된《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덕분에 괴테는 평생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괴테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쓰게 된 것은 소설 속 남자주인공처럼 약혼자가 있는 여성 샤를로테 부프를 사랑한 체험에서 비롯됐다. 그녀에게 실연당한 괴테는 괴로움을 잊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 후에 괴테의 친구 예루살렘이 친구의 아내를 사랑하다가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랑의 실패에 비관하다가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친구의 극단적인 결정이 이미 쓰디쓴 사랑의 실패를 맛본 괴테 입장에서는 가슴이 철렁했을 것이다. 자신도 정말 죽고 싶을 정도로 괴로워했던 적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괴테는 친구의 자살에 의외의 인물이 개입된 사실을 알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 친구에게 권총을 빌려준 사람은 결정적으로 괴테에게 정신적 상처를 안겨준 샤를로테의 약혼자였다. 사랑 하나로 인해 생긴 악연과 실제 체험을 토대로 괴테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를 완성했다. 괴테와 예루살렘이 합쳐진 베르터는 로테에게 약혼자가 있다는 것을 알고 실의와 고독감에 빠져 끝내 권총자살을 한다.

 

이 소설은 출간 즉시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무명작가였던 괴테를 단숨에 유명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를 유명하게 만든 베르터 열풍은 곧 당시 사람들이 소설 속 베르테르의 죽음을 모방해 자살하는 데까지 영향을 주게 된다. 그 높던 교황과 황제의 권력과 권위도 이미 무너졌거나 무너져 가던 18세기 유럽은 이미 자살을 죄악이라고만 생각하던 시대를 한참 지나 있었다. 괴테의 이 소설은 낭만주의 문학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을 뿐 아니라, 낭만주의 영향 속에서 문학과 예술에서 나타나는 자살은 더 이상 추한 모습이 아니었다.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의 경험을 기억하는 것 자체가 무척 괴로울 법한데 작가나 예술가들은 오히려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그걸 작품 소재로 삼는다. 운이 좋으면 전업 작가로 발돋움할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기도 한다. 독일 낭만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호프만도 괴테처럼 사랑의 좌절을 겪고 난 뒤에 본격적으로 펜을 잡기 시작했다. 《Phantasiestücke in Callots Manier》(칼로 풍의 환상화집)은 호프만이 처음으로 내놓은 작품인데 여기 수록된 동화 「황금 항아리」는 가장 많이 알려졌다.

 

주인공인 대학생 안젤무스는 현실 세계와 사랑과 환상 세계의 사랑 사이에서 방황하고,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망상에 시달린다. 그는 우연히 정향나무 아래서 초록 황금빛을 띤 세 마리의 뱀을 발견한다. 세 마리의 뱀은 불의 정령(현실 세계에서는 궁정 사서관 린트호르스트로 등장한다)의 딸인데 안젤무스는 세 자매 중 막내인 세르펜티나를 짝사랑하게 된다. 그렇지만 교감의 딸 베로니카는 안젤무스를 좋아하고 있었다. 안젤무스는 베로니카에게 자신이 추밀고문관이 되면 그녀와 결혼하겠다는 약속까지 하고 만다. 복잡한 삼각관계에 성격이 고약한 마녀가 사과장수 노파로 분하여 개입한다. 이 마녀는 불의 정령 린트호르스트와 적대적 관계이고, 이야기 초반부에 안젤무스는 사과장수 노파로 둔갑한 마녀의 광주리를 밟고 지나가는 바람에 자신의 지갑을 마녀에게 빼앗겨버린 악연이 있었다. 안젤무스를 차지하고 싶은 베로니카는 마녀의 도움을 받게 되는데 안젤무스와 린트호르스트를 괴롭히기 위한 마녀의 음모였다. 한편 안젤무스는 세르펜티나를 만나기 위해서 린트호르스트의 집을 방문하는 일이 잦아지고, 린트호르스트 밑에서 필사 작업을 하게 된다. 이 과정을 완수하면 세르펜티나가 소유하는 황금 항아리를 혼수품으로 얻을 수 있다.

 

「황금 항아리」의 안젤무스는 현실 세계를 벗어나 환상 세계로의 진입을 추구한다. 이 동화에서 그가 보여주는 망각, 우울 증세는 병적이다. 특히 안젤무스가 정향나무 밑에서 초록뱀 세 자매를 만나는 환상을 겪는 장면은 일상을 초월하는 광기에 가까운 분열된 정신 상태를 묘사하고 있다. 호프만은 감수성이 예민하고, 상상력이 풍부했다. 그는 「황금 항아리」를 집필하기 전에 사랑의 실패에 극단적인 정신 상태를 보였으며 한때 자살에 대한 생각에 이른 적도 있었다고 한다. 「황금 항아리」는 호프만의 아픈 기억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안젤무스는 호프만이 사랑했던 율리아 마르크의 생일과 관련된 수호성자의 이름이다. 안젤무스가 사랑하는 세르펜티나는 율리아 마르크, 베로니카는 호프만의 아내 마샤에게서 나온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호프만의 현실 세계는 정식으로 마샤와 결혼한 부부로서 한집에 살게 된다. 그렇지만 이루어지지 못한 채 그대로 남아버린 반쪽짜리 사랑을 늘 가슴에 품고 살았을 것이다. 그의 환상 세계 속에는 또 다른 집이 있었고, 그 집에 율리아 마르크가 살고 있다. 현실 세계의 사랑을 상징하는 베로니카를 외면하고 환상 세계의 세르펜티나를 만나기 위해 린트호르스트의 집을 매일 찾아가는 양상을 떠올려본다면 이 동화를 통해 호프만의 심정을 짐작할 수 있다. 반쪽짜리 사랑을 잊지 못한 호프만은 자신을 동화의 주인공으로 만들어 어려운 현실을 극복하여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사랑을 끝내 성취한 영웅으로 그렸다. 사실 주인공 이름만 봐도 동화의 결말을 알 수 있다. 세르펜티나를 원하는 안젤무스는 율리아 마르크의 수호성인이 되고 싶은 호프만의 간절한 마음이며 드디어 율리아 마르크와 닮은 세르펜티나와 결혼하는 데 성공한다.

 

실패한 짝사랑의 증상은 고통스러운 열병과 같다. 처음에는 기쁨으로 사랑을 하다가 이내 마음을 졸이게 되고 마침내 숯검정처럼 속이 타들어 간다. 짝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하면 증상은 더욱 심각해진다. 헤어나기 힘든 절망적인 상황으로 몰고 갈 수 있다. 어떤 심리학자는 짝사랑 증상이 심하면 상대방이 자기 안에서 너무 크게 미화돼 자신도 모르게 환상을 그린다고 말한다. 호프만은 괴테보다 반쪽짜리로만 남은 짝사랑 후유증에 고생했다. 율리아 마르크가 호프만 곁에 없어도 그녀는 아름다운 황금색 빛깔을 내는 초록색 뱀 세르펜티나가 되어 안젤무스가 된 호프만을 끊임없이 유혹했다. 그러나 이 환상은 호프만 스스로 만든 것이다. 동화 「황금 항아리」의 안젤무스는 행복했지만, 호프만은 평생 현실을 도피하려는 도망자 신세로 살아야 했다. 그에게 유일한 안식처는 환상이었다. 호프만의 환상소설은 호프만 본인에게 허락된 마약이다. 

 

 

 

 

 

 

 

 

 

 

 

 

 

 

 

 

 

 

 

※ 호프만의 「황금 항아리」는 단편 선집이나 동화 모음집에 단골로 수록되는 작품 중 하나이다. 간혹 ‘황금 단지’라는 제목으로 소개되기도 한다. 물의 요정을 주제로 한 낭만주의 문학작품을 모은《물의 요정의 매혹》(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2007)에 수록된 호프만의 동화 제목은 ‘황금 단지’다. 오래전에 개정판마저도 절판된 《호프만 단편집》(경남대학교출판부, 2002)에서는 ‘금항아리’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다. 그런데 절판된 《호프만 단편집》의 서평에 의하면 번역은 최악이라고 한다. 「황금 항아리」가 수록된 《환상문학 걸작선 1》(자음과모음, 2013)을 추천한다. 이 책에 호프만의 노벨레 「왕의 신부」도 있는데 다른 호프만의 작품들에 비해 덜 알려졌지만, 이야기가 무척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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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물감 2015-02-23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프만의 글은 저는 못읽어봤네요.
괴테의 파우스트는 저를 좌절하게 만든 책이고요. ㅠㅠ

cyrus 2015-02-23 23:47   좋아요 1 | URL
외국 단편소설 모음집에 간혹 호프만의 단편 한 편 정도는 수록되어 있는데 찾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그나마 많이 알려진 단편이 ‘황금 항아리’와 ‘모래 사나이’입니다. 예전에 파우스트를 읽다가 중도에 포기한 적이 있어요. 언젠가는 꼭 다시 읽어보려고 합니다.
 

 

 

한가위가 되면 하늘을 바라보지 못할 정도로 바쁘게 산 도시인도 밤하늘에 뜬 보름달을 보려고 한다. 작년 한가위에 뜬 보름달은 ‘슈퍼 문’(Super Moon)이라서 밝고 둥그스름한 형태의 보름달을 마음껏 볼 수 있었다. 한가위에 보름달을 본다면 설에는 해돋이를 봐야 한다. 설은 수천 년 이어져 내려온 우리 풍습인데 역사적 기록들을 통해 이미 정월 초하룻날에 제사를 지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일제 강점기에 양력설 정책이 도입되기 시작했고, 조선총독부는 1월 1일 설을 구정(舊正)이란 말로 격하시키기에 이른다. 설을 못 쇠게 하고, 흰옷과 흰 떡국조차 못 만들게 하면서 신정(新正)을 정하여 강제로 쇠게 했다. 구정은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진 언어라서 일상적으로 거의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1월 1일이 되면 새해 인사를 하고, 한 달 지난 설에도 새해 인사를 하는 이 아이러니한 상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가슴 아픈 역사가 관통한 설의 유래를 알 수 있다. 만약에 설이 구정과 신정으로 나누어지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설은 1월 1일에 해돋이를 바라보는 날이었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한 해 동안 기상 쇼와 우주 쇼를 볼 수 있는 민족 최대의 명절을 보냈을 수도 있었다.

 

설 연휴동안 거의 집에만 있기에 갑갑하게 느껴진다면 연휴 막바지인 일요일에 펼쳐지게 될 우주 쇼를 감상하면 좋다. 22일 초저녁부터 화성과 금성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시시하게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이게 전부가 아니다. 화성과 금성이 만나는 현상은 화려한 우주 쇼를 알리는 서막에 불과하다. 화성과 금성 위로 밤하늘의 터줏대감 초승달이 등장한다. 동쪽 하늘에는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귀한 손님 목성도 특별히 얼굴을 비친다. 실제로 화성과 금성을 바라보면 우리 눈에는 그저 노랗고 조그만 점으로 보일 뿐이지만 살면서 밤하늘에 화성, 금성, 목성, 달을 한자리에 모인 현상을 육안으로 보는 날이 또 있을까. 화성과 금성은 매우 밝기 때문에 해가 진 뒤에 서쪽 하늘을 보면 쉽게 찾을 수 있다.  

 

목성은 태양계 내에 있는 8개의 행성 중에서 가장 크다. 그 크기가 어느 정도냐면 태양계 8개 행성을 모두 합쳐 놓은 질량의 2/3 이상을 차지한다. 목성의 영어명은 주피터(Jupiter). 로마에서는 유피테르, 그리스에서는 제우스로 알려졌다. 금성은 누구나 잘 알다시피 비너스(로마 명 Venus, 웨누스 혹은 베누스 / 그리스 명은 Aphrodite : 아프로디테)를 상징하는 행성이다. 화성의 영어명은 호전적인 전쟁의 신 마르스(Mars, 로마 명 / 그리스 명은 Ares : 아레스)에서 유래되었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말은 남자와 여자의 사고방식 차이를 요약하는 일종의 관용어구가 되었다. 그런데 알고 보면 남성과 여성이 이처럼 심리적으로 큰 차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남자와 남성성, 여자와 여성성을 각각 묶어 구분하려는 성향이 있다. 일반적으로 여성은 감성적이고 섬세하며 꼼꼼하고, 남성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며 논리적이라는 고정관념은 성별에 따른 차이가 클 것이라는 믿음에서 비롯된 부풀려진 결과물이다. 아직도 잘 팔리는 존 그레이의 출세작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동녘라이프, 2006) 때문에 우리는 지금까지 남자와 여자가 같은 공간에 있어도, 서로 너무나도 다른 동물이라고 인식하면서 살아왔다. 그렇지만, 진짜 화성 남자와 금성 여자를 한 방에 가둬 놓으면 찰떡궁합일 것이다. 올림포스를 발칵 뒤집어 섹스 스캔들에 휘말린 비너스와 마르스의 정사를 생각한다면 말이다. 

 

 

 

 

 

 

 

 

 

 

 

 

 

 

 

 

 

 

제우스가 여기저기 자신의 씨앗(?)을 마음껏 뿌리고 다닐 정도로 여성 편력을 자랑했다면, 비너스도 미와 사랑의 여신답게 여러 남자를 홀리고 다니는 관능적인 여신이기도 했다. 비너스는 제우스의 장난으로 인해 추한 외모에 절름발이인 대장장이의 신 불카누스(그리스 명은 헤파이스토스)와 결혼한다. 가장 예쁜 여신과 가장 못생긴 남신의 결혼은 신들 사이에서는 화젯거리가 되기에 충분했다. 그렇지만, 비너스는 지아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람기를 잠재울 수 없었다. 특히 불카누스가 에트나 화산 밑에 있는 대장간에서 주로 시간을 보내는 동안 비너스는 사랑을 늘 받지 못해 독수공방으로 살아야 했다. 외로운 여신은 자신의 애욕을 채우기 위해 남성미가 넘치고 용감무쌍한 마르스에게 유혹의 손길을 내민다.

 

 

 

 

 

 

틴토레도  비너스와 마르스를 불시에 덮치는 불카누스」  16세기경 

 

 

두 사람의 밀애를 태양의 신 아폴론(그리스 명은 헬리오스)은 목격하게 되고, 이 사실을 바로 불카누스에게 알린다. 아내가 자신 몰래 바람을 피우는 사실에 알게 된 불카누스는 분노에 눈이 멀어 아내와 마르스를 제대로 엿 먹이려는 음모를 꾸민다. 두 사람의 동침 장면을 덮치기 위해 눈에 보이지 않는 실로 만든 튼튼한 올가미를 만들었고 비너스의 침대에 설치했다. 제아무리 힘이 센 건장한 마르스도 손재주 좋은 불카누스가 만든 투명 올가미에 걸리면 빠져나올 수 없게 되었다. 마르스와 비너스는 항상 서로를 부둥켜안으면서 누운 침대에 투명 올가미가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결국, 이들의 밀회는 불카누스가 설치한 투명 올가미에 의해 발각되고 말았다. 불륜의 현장에 불카누스와 올림포스의 신들이 모여들었다. 투명 올가미 안에 몸부림치는 벌거벗은 비너스와 마르스의 모습은 신들에게는 아주 재미나는 구경거리였다. 그러자 구경하는 신 중 한 사람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자기도 벌거벗은 상태에서 올가미 안에 비너스와 함께 갇혀봤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섹스 스캔들이 발각된 이후로 비너스와 마르스와의 관계는 지속하였는지 알 수 없다. 엉큼한 상상이지만, 이들이 서로를 사랑했다면 불카누스의 눈을 피해 몰래 만났을 것이다. 새벽 5시가 화성과 금성의 거리가 가장 근접한 시간이다. 태양의 신 아폴론이 없는 늦은 새벽에 마르스와 비너스는 별이 되어 은밀하게 만난다. 그런데 하필 이들의 밀애를 방해하는 불청객이 등장하는데 목성이 된 제우스다. 비너스와 함께 갇히길 원했던 신이 바람둥이 제우스일 가능성이 높다.  

 

화성남자와 금성여자가 만나는 날은 2월 22일이다. 숫자 2와 이를 좌우로 뒤집은 2를 하나로 붙이면 ♡ 모양이 된다. 거 딱 연인들이 사랑하기 딱 좋은 밤하늘이네. 해 뜨기 전에 뜨겁게 사랑을 나눠도 괜찮잖아? 혹시 썸 타는 이성이 있는 남자는 화성과 금성의 우주 쇼와 그리스 신화 한 꼭지인 비너스와 마르스 이야기를 기억해서 같이 밤하늘을 바라보는 시간을 만들어봐도 좋을 듯하다. 이 수법이 너무나도 유치하고 이성에게 전혀 통하지 않을 거로 생각하겠지만, 일단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시간이 생긴다. 당신도 알퐁스 도데의 단편소설 ‘별’에 나오는 주인공 양치기가 될 수 있다. 양치기가 밤하늘에 관심이 없었더라면 몰래 짝사랑하는 주인집 아가씨는 무척 지루했을 것이다. 밤하늘에 환하게 빛나는 화성과 금성 그리고 목성과 달의 우주 쇼 아래에 사랑하는 영혼의 두 사람만이 나란히 앉아 있는 풍경. 낭만적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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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한 작가의 드라마 ‘압구정 백야’는 한 편 한 편이 방송으로 전파되고 나면 화젯거리가 생긴다. ‘압구정 백야’ 한 편이 방송되고 나면 그 다음 날까지 드라마와 관련된 단어와 임성한 작가가 포털사이트 인기 검색어 순위에 오른다. 그녀의 드라마를 한 번도 보지 않는 사람도 ‘압구정 백야’가 ‘막장 드라마’라는 사실을 다 안다. 임성한 작가의 드라마에 ‘막장’이라는 수식어가 붙게 된 이유는 일반 드라마에선 볼 수 없는 파격적 소재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죽음, 미신, 귀신과 같은 현대 과학과 동떨어진 자극적인 소재를 즐겨 사용한다. 이미 2011년에 방영된 ‘신기생뎐’은 점점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할머니 귀신과 빙의 장면 횟수가 많아졌고, ‘신귀생뎐’이라는 시청자들의 조롱이 섞인 우스운 별명도 나왔다. ‘오로라 공주’는 그간의 죽음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인물이 죽거나 하차했다.

 

‘압구정 백야’도 이전에 나온 작품들과 끔찍하게 닮았다. 등장인물들이 연달아 죽어나간다. 지난주 84회(2월 10일 방영)에 여주인공 백야(박하나 분)는 남편과 친오빠를 잃은 충격으로 자살 시도를 하기 위해 바닷물에 뛰어들어 외친 대사가 압권이다. “신이 있나요? 있다면 나랑 맞짱 한 번 뜨세요.” 작가는 영화 <러브레터>의 ‘오겡끼데스까?’와 맞먹는 인상 깊은 명대사 하나 남기고 싶었던 것일까. 아무튼 신과 싸우자고 선전포고하는 여주인공의 대사 한 마디 덕분에 지난주도 대중의 이목을 드라마로 향하는 데 성공했다.

 

‘임성한 월드’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사람의 삶과 죽음, 팔자가 모두 신의 소관이라고 여기는 듯하다. 간혹 드라마 대사 속에 ‘신’이 언급될 정도이니 작가의 종교관이 무척 궁금하다. 작가의 가치관이 작품에 투영될 수 있다지만 대놓고 시청자들에게 주입하려 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풍긴다.

 

 

 

 

 

 

 

 

 

 

 

 

 

 

 

 

반면 소설가 로드 던세이니‘페가나 월드’에 사는 신들의 팔자는 시간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던세이니는 기존의 신들이 나오는 이야기의 전형적인 플롯을 파괴한다. 신들은 자신들을 숭배하지 않거나 모독하는 인간에게 벌을 내리고, 인간의 운명을 결정하는 중대한 역할을 한다. 올림포스의 제왕 제우스는 신의 영역을 넘는 자에게 벼락을 내리치고, 그의 아버지 크로노스는 시간을 지배했다. 페가나에 사는 신들도 그리스 신화 속 신들처럼 인간의 인생 하나하나에 영향을 끼치는 힘을 지니고 있다. 그렇지만 던세이니는 평화로운 신들의 세계를 파괴하는 무시무시한 인물 하나를 불러들인다. 1905년에 발표된 단편집 《페가나의 신들》(페가나북스, 2011)에 처음으로 등장한 최고의 신 마나-유드-수샤이보다 더 무서운 존재다. 그것은 바로 ‘시간’이다.

 

 

 

 

 

 

 

 

 

 

 

 

 

 

 

던세이니의 두 번째 단편집이자《페가나의 신들》의 속편인 《시간과 신들》(Time and the Gods, 페가나북스, 2012)은 전작에 비해 신이 많이 나온다. 그렇지만, 이 소설의 진짜 주인공은 ‘시간’이다. 페가나의 신들은 자신들이 시간과 세상의 주인이라고 믿는다. 여기까지만 보면 당연히 페가나의 신들이 이야기를 진행하는 중요 인물이다. 하지만 신들의 자만심은 오래가지 못한다. 이야기 초반부에 시커먼 모습에, 양손에 피투성이고 붉은 검이 매달린 시간이 등장해서 신들에게 경고한다.

 

시간은 슬그머니 그 얼굴을 훔쳐보고는 핏방울 떨어지는 손으로 칼자루를 쥐고 신들을 가리켰다. 그러자 신들은 자신들의 도시를 멸망시킨 그가 언젠가 자기들마저 죽일지 모른다는 새로운 두려움을 느꼈다. 그리하여 새로운 울부짖음이 황혼 속을 퍼져갔다. 신들은 꿈의 도시에서 바치는 만가(輓歌)를 불렀다. (로드 던세이니 《시간과 신들 1》 중에서, 11쪽)

 

《시간과 신들》에 나오는 시간의 모습은 흡사 크로노스와 유사하다. 한 손에 거대한 낫을 들고 다니는 모습으로 많이 알려졌다. 크로노스의 낫이 시간을 베어버리듯이 페가나 월드를 지배하는 시간은 역으로 신들의 운명과 그들이 사는 세계마저 검으로 파괴한다. 시간이 모든 것들을 ‘무’(無)로 만들어버린다면, ‘운명’과 ‘우연’이라는 두 기사가 신들의 세계를 움직인다. 《시간과 신들》 2권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두 기사는 체스와 비슷한 게임을 한다. 체스판 위에는 게임의 말은 신이고, 먼지는 신들이 사는 세계가 된다. ‘운명’과 ‘우연’의 기사가 게임의 말을 옮기면 신들도 따라 움직인다. 먼지가 피어오르면 세계는 해가 뜨고 지면서 하루가 지나간다. 페가나의 신들은 이 먼지가 자신들이 흩뜨렸다고 말한다. 신들은 자신의 머리 위에 조종하는 거대한 불가항력이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의 의미가 무색해지는 장면이다.

 

《시간과 신들》의 이야기 구성 방식을 보면 먹는 것과 먹히는 대로 순서대로 연결한 먹이사슬 비슷한 구조가 눈에 띈다. 삶과 죽음이 하나로 연결된 인간과 신들은 피식자-포식자 관계에 놓여 있다. 인간은 신의 영역을 거스르거나 함부로 미지의 세계를 알고 싶어 한다. 그들의 위험한 호기심은 신들의 세계를 위협한다. 신들은 인간보다 월등하고 초인적인 존재이기에 인간의 호기심을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신보다 더 센 놈들이 있었으니 바로 검을 들고 다니는 ‘시간’, 그리고 ‘운명’과 ‘우연’의 기사다. 제아무리 위대한 신이라도 세 명 앞에서 쩔쩔맨다. 페가나를 지배하는 주신 마나-유드-수샤이도 예외가 아니다. 신마저도 폐허로 종착 되는 운명의 순리를 피하지 못하는 무력한 존재가 된다. 《시간과 신들》의 줄거리를 간단하게 먹이사슬 과정을 피라미드 형태로 그린다면 제일 밑에 있는 것이 인간, 중간은 신, 제일 꼭대기에 ‘시간’, ‘운명’, ‘우연’이다.     

 

 

 

 

 

 

 

 

 

 

 

 

 

 

 

 

인간뿐만 아니라 신도 ‘시간’, ‘운명’, ‘우연’처럼 모든 것을 지배하는 힘을 갖기를 원한다. 그렇지만 안 될 걸 잘 알고 있기에 자신이 위대한 것처럼 여기는 정신승리에 쉽게 도취한다. 1912년에 발표된 《The Book of Wonder》에 수록된 ‘추부와 셰미시’(Chu-Bu and Sheemish)라는 짤막한 소설은 추부와 셰미시라는 두 명의 신이 인간의 숭배를 받기 위해 서로를 조롱하고 충돌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신이라고 말하기에는 그들의 행동은 너무나도 초라하고 우습다. 작은 지진이라도 일으키면 위대한 신이 내리는 기적 행세를 할 수 있지만, 어처구니 없게도 둘 다 지진을 일으키지 못한다. 우연히 일어난 지진 덕분에 추부와 셰미시는 자신들의 체면을 가까스로 살리는 데 성공한다.

 

 

 

 

 

 

 

 

 

 

 

 

 

 

 

 

 

만약에 니체가 《시간과 신들》을 읽었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니체는 신이 죽었음에도 인간은 수 세기 동안 신의 그림자가 떠도는 동굴 속에 살았다고 주장했다. 인간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기보다 자신들이 만든 임의의 기준과 척도에 따라 존재를 파악하려고 한다. 정작 자신이 그 같은 인식상의 오류에 사로잡혀 있다는 사실은 깨닫지 못한다. 페가나의 신들은 시간의 무시무시한 힘을 알면서도 이를 뛰어넘는 영원불변의 존재로 남고 싶어 한다. 시간, 운명, 우연의 존재가 있다면 맞짱 한 번 뜰 기세다. 그렇지만 그들은 이 싸움에서 절대로 이길 수 없다. 막연한 두려움을 억누르기 위해서 신들은 불가항력의 힘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인간 앞에서 센 척한다. 그리고 페가나가 영원할 것이라고 믿는다. 페가나의 신들은 니체의 표현을 빌리자면 ‘지적 양심이 결여’되어 있다. 마치 스스로 날조해낸 것에 지나지 않은 천상의 세계를 꿈꾸는 인간의 모습과 꽤 닮았다. 니체는 던세이니의 판타지 소설을 읽었다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그것 봐, 신은 죽었다니까! 신이 살아있으면 나랑 맞짱 한 번 뜨자!”

 

 

 


※ 페가나북스에 번역한《시간과 신들》은 완역이 아니다. 원작은 총 2부로 이루어졌는데 1부는 두 권의 전자책에 수록된 작품들이, 2부는 ‘왕의 여행’이라는 외전 성격의 중편이 실려 있다. 페가나북스는 2부에 있는 중편을 제외하고 원작을 번역했는데, 2부의 중편을 페가나 세계관을 다룬 단편들만 모은 작품집에 따로 선보일 예정이라고 한다.

 

※ ‘추부와 셰미시’는 황금가지 환상문학전집 19번째 책 《톨킨의 환상 서가》(황금가지, 2005)에 수록되어 있다. 그런데 이 작품을 설명하는 내용에 오류가 있다. 던세이니의 《The Book of Wonder》를 1921년에 나왔다고 소개했는데 숫자가 뒤바뀌었다. 정확한 발표연도는 1912년이다. 1918년에 《The Book of Wonder》라는 동명의 책을 출간했는데 이는 《시간과 신들》과 1912년에 발표된 작품을 합본한 것이다. 유일하게 던세이니의 작품을 전자책으로 많이 만든 페가나북스 출판사는 던세이니의 작품 목록(시, 희곡, 에세이 등 제외)을 부록으로 실었는데 《The Book of Wonder》의 발표연도를 정확하게 소개했다. 페가나북스는 던세이니의 작품을 많이 출간하는 것을 목표하는 1인 전자책 출판사다. 알라딘에 검색하면 페가나북스에서 만든 일부 전자책에 출판사명으로 ‘유페이퍼’라고 나온다. 하지만 공식 명칭은 페가나북스가 맞다. ‘유페이퍼’는 페가나북스 공식 홈페이지의 도메인 이름이다. 장르문학 전문 출판사가 하지 않은 일, 그리고 돈 되지 않은 일을 하는 페가나북스의 노고가 장르문학 마니아들에게 많이 알려졌으면 한다. 페가나북스에서 지금까지 전자책으로 펴낸 장르문학 작품은 공식 홈페이지에 확인할 수 있다.

 

 

페가나북스 공식 홈페이지 http://www.upaper.net/peg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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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 러브크래프트 전집, 박스에 꽂기

 

 

 

 

 

 

어제 박스 케이스에 꽂힌 러브크래프트 전집 외전편 6권을 읽어보려고 꺼내는 순간, 하얀 책표지에 까만 얼룩이 묻어 있는 걸 확인했습니다. 설 연휴 전날에 책을 받았을 때 얼룩이 없었습니다. 검은 얼룩의 정체는 《클라크 애슈턴 스미스 걸작선》 책표지에서 나온 검은색 염색약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책을 과도하게 힘을 줘서 박스 케이스에 꽂는 과정에 마찰이 생겨 검은색 염색약이 하얀 책표지에 묻은 것 같습니다. 러브크래프트 전집 표지재질이 종이라서 험하게 책장에 꽂으면 구김 자국이 생기거나 찢어질 수 있습니다. 또 색깔이 하얀색이라서 오래 보관하면 때가 타기 쉽고요. 예전에 도서관에서 있는 러브크래프트 전집을 선뜻 읽고 싶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책이 너무나 더러웠으니까요. 그 이후로 러브크래프트 전집은 꼭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박스 케이스 안에 특별판을 포함해서 7권의 책이 다 꽂힐 수 있다 하더라도 6권과 특별판을 너무 오랫동안 꽂아두거나 자주 책을 꽂고 빼는 횟수가 많아지면 6권 앞표지에 검은색 염색약의 흔적이 남을 수 있습니다. 세실님의 말씀이 맞았습니다. 검은색 표지의 책은 박스 케이스 밖에 따로 보관하는 것이 낫습니다. 특별판을 박스 케이스에 절대로 꽂으면 안 된다는 분명한 사실도 다시 한 번 확인했습니다. 어차피 박스 케이스 안에 특별판이 들어갈 자리가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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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도전! 러브크래프트 전집, 박스에 꽂기
    from factory 2015-02-21 14:38 
    지난주에 개암나무님의 서재 블로그에 올린 러브크래프트 전집 박스세트 관련 글을 보자마자, 저도 주문했습니다. 한 달 전에 황금가지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러브크래프트 전집 박스세트 발간 소식을 접했기에 박스세트 인증 사진을 먼저 확인한 뒤에 주문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박스세트 사진이 있는 개암나무님의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개암나무님이 올린 박스세트 사진을 보면 박스 특별판인 《클라크 애슈턴 스미스 걸작선》이 박스 케이스에 들어가지 못해 따로
 
 
붉은돼지 2015-02-21 1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박스케이스 특별판을 사면 박스는 다 버려요..넣었다 뺏다 귀찮기도 하고..책꽂이에 박스케이스에 이중인것 같아서요...

cyrus 2015-02-21 23:48   좋아요 0 | URL
저도 붉은돼지님처럼 같은 생각이에요. 박스 케이스가 쓸모없는 장식품 같아요... ^^;;
 
아름다운 책 이야기 - 중세사본에서 윌리엄 모리스까지
이광주 지음 / 한길사 / 2014년 4월
평점 :
품절


 

옛날 사람들은 종종 책을 위험하다고 했다. 진시황제는 분서갱유 사건을 일으켰고, 중세 교회는 많은 책을 이단으로 몰아갔다. 책 때문에 살인을 저지른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갖고 싶은 책과 자신의 목숨을 바꾼 사람도 있다. 데모랭이라는 철학자는 가난했지만, 책을 사랑했다. 빵과 우유로 간신히 연명하는 생활을 했지만, 그가 사는 다락방 안에는 책이 가득 찼다. 어느 겨울날 마지막 푼돈으로 허기를 채우려던 그는 서점에서 책 한 권을 발견했다. 그동안 그토록 손에 넣고 싶어 했던 바로 그 책! 그는 주저 없이 책을 샀다. 그러나 이 책은 데모랭이 마지막으로 산 책이 되고 만다. 이 책을 손에 쥔 그는 이후 기력이 다해 다락방에서 생을 마쳤다.

 

이들에게 책은 ‘사랑’의 대상이다. ‘책을 사랑한다’는 건 책의 내용이나 책 읽는 행위를 사랑한다는 의미를 넘어 책이라는 사물 그 자체를 사랑한다는 뜻이다. 흔히들 ‘애서가’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들은 책에 담긴 지혜보다 멋진 표지와 장정을 더 좋아한다. 책들을 모아 책꽂이에 쌓아두는 것만이 관심이다. 책을 보관할 때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다. 소설가 장정일은 누가 방에서 담배를 피우고 가면 책 위에 쌓인 담뱃재들을 일일이 닦았다고 한다. 애서가 앞에서 라면 냄비 받침이나 베개 대용으로 사용한다고 말했다간 무슨 사달이 벌어질지 모르겠다. 선인들은 책에 미친 사람을 서치(書癡)라고 불렀다. 더 나아가, 글을 읽고 책을 들추는 일을 지나치게 즐기는 이를 서음(書淫)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음란한 지경에 이르도록 책을 탐한다. 그러나 애서가들에게 그 음란은 아름답다.

 

탐나는 책을 손에 넣기 위해 살인도 불사하던 엽기적인 애서가들이 집착한 책들은 어떤 책이었을까. 그 책들은 왜, 어떻게 쓰이고 만들어졌으며, 어떤 모습으로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책 자체를 예술품으로 즐기는 것이 다소 낯설게 느껴지는 세상에 이광주 선생의 《아름다운 책 이야기》는 말라르메의 멋들어진 문장에 어울리는 한 권의 헌사와 같다. 애서가의 세계는 한 권의 《아름다운 책 이야기》에 이르기 위해 이루어졌다. 요즘 세상에야 흔하디흔한 것이 책이지만 중세유럽의 사본문화에서 비롯된 ‘아름다운 책’은 정말 진귀하고 값비싼 것이었다.

 

종이가 보편화하기 전엔 파피루스와 밀랍을 칠한 목판, 점토판, 양피지에 직접 글을 적어야 했다. 손으로 옮겨 적는 일을 하는 사람을 필경사라고 한 것은 밭을 가는 것처럼 힘들었기 때문이다. 마치 농부가 농사를 짓기 전에 땅을 만들듯이, 기초를 다진다는 의미가 바로 교양의 뜻이다. 성서를 손으로 베껴 쓸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성직자뿐인데 책의 등장을 예고하는 사본문화의 토양이 처음으로 다져진 곳이 교회였다. 책은 귀족이나 고위 성직자 등 극히 한정된 계층만 읽을 수 있고 소장할 수 있었다. 중세엔 성서 한 권을 얻는 대가로 넓은 포도밭을 내놓는 희생을 감수해야만 했다. 책은 단순한 읽을거리가 아니라 신분 과시용이요 교양계층 유산계층으로서의 정체성을 확인해주는 귀중품이었다. 그래서 최대한 아름답게 장식했고 고풍스럽게 만들어졌다.

 

시간은 모든 사물에서 젊음의 신선함을 앗아가는 가차없는 파괴자이지만 때로 그중 일부를 고풍스러운 향수의 대상으로 만드는 마법을 부리기도 한다. 현재성이나 효용성이 증발해버린 후에도 그 사물은 과거 한 시대 한 시절의 기념물로 남아 지나가 버린 그때 그 순간의 감미로움을 일깨우는 촉매로 작용한다. 어떤 사람에게는 책이야말로 그러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 떠나는 순례의 가장 친근한 동반자가 되기도 한다.

 

책이 지닌 미학적 본질을 선호했던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고, 아름다운 책을 만드는 데 노력한 사람이 바로 윌리엄 모리스다. 말년에 시작된 것이라 뒤늦은 감은 있지만, 모리스가 책 제작 순례를 하게 한 동반자는 책이었다. 모리스는 죽기 전에 완벽하게 인쇄된 책을 만드는 것이 소원이었다. 그가 인쇄하고 싶은 책은 항상 자신 곁에 두면서 읽고 싶은 책이었다. 장정, 서체, 문양 등이 긴밀한 조화를 이뤄 비로소 한 권의 책으로 완성되는 제본 과정을 모리스는 ‘또 하나의 건축’이라고 불렀다.

 

 

 

 

 

 

모리스는 1891년 출판공방 켐스콧 프레스를 설립하고 온 에너지를 쏟아 53종 66권의 책을 빚어냈다. 새로운 서체를 개발하고 머리글자 장식, 책 테두리 장식을 직접 디자인했다. 한정으로 출간된 책들은 부호나 이름난 장서가들도 쉽게 손에 넣을 수 없다. 구텐베르크의 『42행 성서』와 함께 장서가들이 가장 가지고 싶은 책이 모리스가 만든 『초서 작품집』이다. 젊은 시절 모리스는 초서의 글을 탐독했고, 그곳에서 잃어버린 중세의 미를 발견했다. 모리스에게 초서의 글은 ‘아름다운 책을 위한 건축’을 위한 멋진 기자재였다. 중세 영국의 시인 제프리 초서의 작품을 모은 이 책을 위해 모리스는 초서체를 별도로 개발했다. 당대 최고의 화가이자 모리스의 친구인 번 존스의 아름다운 삽화도 들어 있다. 애초 300권을 찍기로 했으나 애서가들의 강력한 요구로 400권을 찍었다고 한다.

 

흔히 수제 책이라면 요즘 한참 부각되고 있는 북아트를 연상하지만, 책을 예술 활동의 대상으로 삼는 북아트에 대한 인식은 부족한 편이다. 소수 계층만 향유하는 예술로만 국한되어 있다. 몇 년 전에 가격이 비싼 예술장정 문집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이름난 금속공예 작가가 은으로 세공한 케이스를 만들고 한정판으로 제작, 그 희소성을 돈으로 따지기 어려울 정도라 했다. ‘아름다운 책’은 무조건 값비싸고 화려해야만 할까. 혹자는 그저 눈으로 바라봐야만 하고 내용이 아닌 디자인에 치중한 ‘아름다운 책’의 가치에 회의적으로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사실 모리스는 책의 예술성에 관심이 많은 탓에 텍스트의 중요성을 소홀했다. 본문을 임의로 편집하거나 각주를 붙이는 것을 싫어했다고 한다.

 

하지만 모리스의 책을 화폐 가치로 환산하려는 시선이 많을수록 모리스가 추구한 책의 정신을 경시한다. 이미 시인, 예술가, 사회주의자로 이름을 드높인 노작가가 남은 열정을 모두 쏟아 부었을 만큼 책 만드는 일은 매력 넘치는 일이다. 내 손으로 직접 만들어 간직하고 선물하는 수제 책에는 책 소유자에 대한 정성 어린 마음이 담겨 있다. “예술이 낳은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아름다운 건축이라고 답하리라. 그 다음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아름다운 책이라고 말하리라.” 아직도 책에 대한 일말의 숭배의 감정이 남아 있는 사람이라면 모리스의 잠언으로도 충분히 포만감을 느낄 만하다. 책은 단순히 지식의 전달을 위한 종이로 된 물건이 아니다. 책은 수집가를 유혹하는 ‘금단의 과실’과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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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15-02-20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금단의 과실_ 유혹이 지나치게 크오. 앗 라면 먹어야지 불겠다 ^^

cyrus 2015-02-21 11:13   좋아요 0 | URL
야밤에 라면을! 건강을 생각하십시오. 누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