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가 되면 하늘을 바라보지 못할 정도로 바쁘게 산 도시인도 밤하늘에 뜬 보름달을 보려고 한다. 작년 한가위에 뜬 보름달은 ‘슈퍼 문’(Super Moon)이라서 밝고 둥그스름한 형태의 보름달을 마음껏 볼 수 있었다. 한가위에 보름달을 본다면 설에는 해돋이를 봐야 한다. 설은 수천 년 이어져 내려온 우리 풍습인데 역사적 기록들을 통해 이미 정월 초하룻날에 제사를 지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일제 강점기에 양력설 정책이 도입되기 시작했고, 조선총독부는 1월 1일 설을 구정(舊正)이란 말로 격하시키기에 이른다. 설을 못 쇠게 하고, 흰옷과 흰 떡국조차 못 만들게 하면서 신정(新正)을 정하여 강제로 쇠게 했다. 구정은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진 언어라서 일상적으로 거의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1월 1일이 되면 새해 인사를 하고, 한 달 지난 설에도 새해 인사를 하는 이 아이러니한 상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가슴 아픈 역사가 관통한 설의 유래를 알 수 있다. 만약에 설이 구정과 신정으로 나누어지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설은 1월 1일에 해돋이를 바라보는 날이었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한 해 동안 기상 쇼와 우주 쇼를 볼 수 있는 민족 최대의 명절을 보냈을 수도 있었다.

 

설 연휴동안 거의 집에만 있기에 갑갑하게 느껴진다면 연휴 막바지인 일요일에 펼쳐지게 될 우주 쇼를 감상하면 좋다. 22일 초저녁부터 화성과 금성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시시하게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이게 전부가 아니다. 화성과 금성이 만나는 현상은 화려한 우주 쇼를 알리는 서막에 불과하다. 화성과 금성 위로 밤하늘의 터줏대감 초승달이 등장한다. 동쪽 하늘에는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귀한 손님 목성도 특별히 얼굴을 비친다. 실제로 화성과 금성을 바라보면 우리 눈에는 그저 노랗고 조그만 점으로 보일 뿐이지만 살면서 밤하늘에 화성, 금성, 목성, 달을 한자리에 모인 현상을 육안으로 보는 날이 또 있을까. 화성과 금성은 매우 밝기 때문에 해가 진 뒤에 서쪽 하늘을 보면 쉽게 찾을 수 있다.  

 

목성은 태양계 내에 있는 8개의 행성 중에서 가장 크다. 그 크기가 어느 정도냐면 태양계 8개 행성을 모두 합쳐 놓은 질량의 2/3 이상을 차지한다. 목성의 영어명은 주피터(Jupiter). 로마에서는 유피테르, 그리스에서는 제우스로 알려졌다. 금성은 누구나 잘 알다시피 비너스(로마 명 Venus, 웨누스 혹은 베누스 / 그리스 명은 Aphrodite : 아프로디테)를 상징하는 행성이다. 화성의 영어명은 호전적인 전쟁의 신 마르스(Mars, 로마 명 / 그리스 명은 Ares : 아레스)에서 유래되었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말은 남자와 여자의 사고방식 차이를 요약하는 일종의 관용어구가 되었다. 그런데 알고 보면 남성과 여성이 이처럼 심리적으로 큰 차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남자와 남성성, 여자와 여성성을 각각 묶어 구분하려는 성향이 있다. 일반적으로 여성은 감성적이고 섬세하며 꼼꼼하고, 남성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며 논리적이라는 고정관념은 성별에 따른 차이가 클 것이라는 믿음에서 비롯된 부풀려진 결과물이다. 아직도 잘 팔리는 존 그레이의 출세작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동녘라이프, 2006) 때문에 우리는 지금까지 남자와 여자가 같은 공간에 있어도, 서로 너무나도 다른 동물이라고 인식하면서 살아왔다. 그렇지만, 진짜 화성 남자와 금성 여자를 한 방에 가둬 놓으면 찰떡궁합일 것이다. 올림포스를 발칵 뒤집어 섹스 스캔들에 휘말린 비너스와 마르스의 정사를 생각한다면 말이다. 

 

 

 

 

 

 

 

 

 

 

 

 

 

 

 

 

 

 

제우스가 여기저기 자신의 씨앗(?)을 마음껏 뿌리고 다닐 정도로 여성 편력을 자랑했다면, 비너스도 미와 사랑의 여신답게 여러 남자를 홀리고 다니는 관능적인 여신이기도 했다. 비너스는 제우스의 장난으로 인해 추한 외모에 절름발이인 대장장이의 신 불카누스(그리스 명은 헤파이스토스)와 결혼한다. 가장 예쁜 여신과 가장 못생긴 남신의 결혼은 신들 사이에서는 화젯거리가 되기에 충분했다. 그렇지만, 비너스는 지아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람기를 잠재울 수 없었다. 특히 불카누스가 에트나 화산 밑에 있는 대장간에서 주로 시간을 보내는 동안 비너스는 사랑을 늘 받지 못해 독수공방으로 살아야 했다. 외로운 여신은 자신의 애욕을 채우기 위해 남성미가 넘치고 용감무쌍한 마르스에게 유혹의 손길을 내민다.

 

 

 

 

 

 

틴토레도  비너스와 마르스를 불시에 덮치는 불카누스」  16세기경 

 

 

두 사람의 밀애를 태양의 신 아폴론(그리스 명은 헬리오스)은 목격하게 되고, 이 사실을 바로 불카누스에게 알린다. 아내가 자신 몰래 바람을 피우는 사실에 알게 된 불카누스는 분노에 눈이 멀어 아내와 마르스를 제대로 엿 먹이려는 음모를 꾸민다. 두 사람의 동침 장면을 덮치기 위해 눈에 보이지 않는 실로 만든 튼튼한 올가미를 만들었고 비너스의 침대에 설치했다. 제아무리 힘이 센 건장한 마르스도 손재주 좋은 불카누스가 만든 투명 올가미에 걸리면 빠져나올 수 없게 되었다. 마르스와 비너스는 항상 서로를 부둥켜안으면서 누운 침대에 투명 올가미가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결국, 이들의 밀회는 불카누스가 설치한 투명 올가미에 의해 발각되고 말았다. 불륜의 현장에 불카누스와 올림포스의 신들이 모여들었다. 투명 올가미 안에 몸부림치는 벌거벗은 비너스와 마르스의 모습은 신들에게는 아주 재미나는 구경거리였다. 그러자 구경하는 신 중 한 사람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자기도 벌거벗은 상태에서 올가미 안에 비너스와 함께 갇혀봤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섹스 스캔들이 발각된 이후로 비너스와 마르스와의 관계는 지속하였는지 알 수 없다. 엉큼한 상상이지만, 이들이 서로를 사랑했다면 불카누스의 눈을 피해 몰래 만났을 것이다. 새벽 5시가 화성과 금성의 거리가 가장 근접한 시간이다. 태양의 신 아폴론이 없는 늦은 새벽에 마르스와 비너스는 별이 되어 은밀하게 만난다. 그런데 하필 이들의 밀애를 방해하는 불청객이 등장하는데 목성이 된 제우스다. 비너스와 함께 갇히길 원했던 신이 바람둥이 제우스일 가능성이 높다.  

 

화성남자와 금성여자가 만나는 날은 2월 22일이다. 숫자 2와 이를 좌우로 뒤집은 2를 하나로 붙이면 ♡ 모양이 된다. 거 딱 연인들이 사랑하기 딱 좋은 밤하늘이네. 해 뜨기 전에 뜨겁게 사랑을 나눠도 괜찮잖아? 혹시 썸 타는 이성이 있는 남자는 화성과 금성의 우주 쇼와 그리스 신화 한 꼭지인 비너스와 마르스 이야기를 기억해서 같이 밤하늘을 바라보는 시간을 만들어봐도 좋을 듯하다. 이 수법이 너무나도 유치하고 이성에게 전혀 통하지 않을 거로 생각하겠지만, 일단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시간이 생긴다. 당신도 알퐁스 도데의 단편소설 ‘별’에 나오는 주인공 양치기가 될 수 있다. 양치기가 밤하늘에 관심이 없었더라면 몰래 짝사랑하는 주인집 아가씨는 무척 지루했을 것이다. 밤하늘에 환하게 빛나는 화성과 금성 그리고 목성과 달의 우주 쇼 아래에 사랑하는 영혼의 두 사람만이 나란히 앉아 있는 풍경. 낭만적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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