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문학은 독자 성향에 따라 작품의 호불호가 극단적으로 나뉜다. 연쇄살인마가 등장하거나 인간의 어두운 본성을 탐구하는 현실 밀착형 공포를 선호하는 독자가 있는가 하면 미지의 존재나 귀신 같은 초자연적 공포만을 찾는 독자도 있다.

 

 

 

 

 

 

 

 

 

 

 

 

 

 

 

 

 

 

 

* 리처드 매드슨 《나는 전설이다》 (황금가지, 2005)

* 김은희 《킹덤: 김은희 대본집》 (김영사, 2019)

 

 

 

 

몇 년 전부터 ‘좀비(zombie)가 공포물의 소재로 주목받고 있다. 미국 드라마 <워킹데드(The Walking Dead)> 시리즈가 인기리에 방영되었고, 2016년에 영화 <부산행>은 천만 관객을 동원한 한국형 좀비 영화의 시발점으로 평가받았다. 올해 초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공개된 한국판 좀비 사극 <킹덤(kingdom)>은 탄탄한 스토리와 액션, 화려한 영상미 등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 리처드 매드슨(Richard Matheson)《나는 전설이다》(황금가지)는 좀비를 소재로 한 공포소설 중 하나로 손꼽힌다.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동명의 영화가 나올 정도로 유명한 작품이지만, 원작을 읽을 때 좀비 떼들이 달아나는 인간을 쫓아가서 물어뜯는 잔혹한 영화 장면을 기대해선 안 된다. 《나는 전설이다》는 좀비들에게 둘러싸인 인류 마지막 생존자의 고독과 절망적인 공포의 깊이를 묘사한 소설이다.

 

 

 

 

 

 

 

 

 

 

 

 

 

 

 

 

 

 

 

* 브람 스토커 《드라큘라》 (열린책들, 2009)

 

 

 

 

좀비물이 언제까지 유행할지 모르겠으나,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는 오컬트 소재가 등장하게 되면 좀비물 인기는 조금씩 사그라질 것이다. 좀비물이 유행하기 전에는 뱀파이어물이 많이 나오던 시절이 있었다. 브람 스토커(Bram Stoker)의 장편소설 《드라큘라》는 20세기 이후에 출현한 다양한 뱀파이어물의 원본이다. <노스페라투(Nosferatu)>에서 프란시스 코드 코폴라(Francis Ford Coppola)의 <드라큘라>에 이르는 뱀파이어 영화들은 스토커의 소설에 빚지고 있다.

 

 

 

 

 

 

 

 

 

 

 

 

 

 

 

 

 

 

* [품절] 정진영 옮김 《뱀파이어 걸작선》 (책세상, 2016)

* [절판] 로렌스 A. 릭켈스, 정탄(=정진영) 옮김 《뱀파이어 강의》 (루비박스, 2009)

* 한혜원 《뱀파이어 연대기》 (살림, 2004)

 

 

 

 

 

스토커의 《드라큘라》가 나오기 전에 흡혈귀 전설이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있었으며 스토커가 태어나기 훨씬 전에 활동한 몇 몇 작가들은 흡혈귀를 소재로 한 작품을 썼다. 흡혈귀가 처음으로 ‘뱀파이어(Vampire)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영국의 시인 조지 바이런(George Byron)의 주치의 겸 비서인 존 폴리도리(John Polidori)의 동명 단편소설에서였다.

 

폴리도리는 바이런과 함께 이탈리아와 스위스 등의 유럽을 여행하고 있었는데, 1816년 스위스에서 메리 셸리(Mary Shelley)와 그의 남편이자 시인인 퍼시 B. 셸리(Percy Bysshe Shelley)를 만났다. 바이런과 폴리도리, 그리고 셸리 부부가 스위스에 머무르고 있었던 기간의 날씨는 최악이었다. 며칠 내내 비가 내렸는데, 훗날 기상학자들은 1813년에 폭발한 이탈리아 베수비오 화산에 나오는 화산재가 유럽 전역에 확산되면서 1816년 스위스의 날씨가 나빠졌다고 보고 있다. 외출을 할 수 없었던 네 사람은 모여서 대화를 나누던 중 자신들 중에 누가 제일 무서운 이야기를 만드는지 내기를 하게 된다. 그래서 폴리도리는 《뱀파이어》를, 메리 셸리는 그 유명한 《프랑켄슈타인》을 만든다. 폴리도리의 소설에 뱀파이어로 나오는 루스벤 경(Lord Ruthven)은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바람둥이다. 폴리도리의 《뱀파이어》는 1819년에 발표되었다. 올해는 뱀파이어가 세계문학사에 처음으로 진입한 지 200주년이 되는 해이다. 《뱀파이어》가 발표되기 일 년 전에 《프랑켄슈타인》이 메리 셸리의 이름으로 발표되었다. 그러나 《뱀파이어》는 그 이야기를 만든 폴리도리가 아닌 ‘조지 바이런’의 이름으로 발표되었다. 《뱀파이어》를 처음으로 실은 잡지의 편집자가 당시에 가장 유명한 시인이자 명사였던 바이런의 이름을 쓴 것이다. 《뱀파이어 연대기》(살림)에서 폴리도리는 ‘바이런의 명성에 의해 가려진 작가’로 소개되어 있다. 그러나 대학에 뱀파이어 영화와 관련 문학작품들을 비평하는 강의를 개설한 로렌스 A. 릭켈스(Lawrence A. Rickels)폴리도리가 바이런이 이미 구상한 작품[주1]을 표절했다고 주장한다. 《뱀파이어》를 처음으로 구상한 작가가 폴리도리인지 아니면 바이런인지 지금도 의견이 분분하지만, 현재로서는 《뱀파이어》의 원작자는 폴리도리로 알려지고 있다. 폴리도리의 《뱀파이어》는 《뱀파이어 걸작선》(책세상)에 수록되어 있다.

 

 

 

 

 

 

 

 

 

 

 

 

 

 

 

 

 

 

 

 

* [e-Book] 브람 스토커 《드라큘라의 손님과 기이한 이야기들》 (왓북, 2019)

* [e-Book] 브람 스토커 《판사의 집》 (올푸리, 2019)

 

 

 

 

《드라큘라》가 워낙 유명해서 스토커는 ‘원 히트 라이터(one-hit writer)로 알려져 있다. 《드라큘라》를 쓰기 전에 이미 여러 편의 장편과 단편소설을 썼지만, 《드라큘라》만큼 성공적인 인기를 얻지 못했다. 스토커는 27년 동안 영국의 연극배우 헨리 어빙(Henry Irving)의 비서 겸 어빙이 소유한 극장 지배인으로 일한다. 스토커가 영국에서 살았다는 이유로 그를 영국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스토커는 더블린(Dublin)에서 태어난 아일랜드 인이다. 1912년에 스토커가 세상을 떠난 후에 그의 아내(스토커와 결혼하기 전에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가 그녀에게 구애한 적이 있었다. 스토커와 와일드는 같은 아일랜드 출신이며 대학 동문이다)가 남편이 쓴 중 · 단편을 모은 《드라큘라의 손님과 기이한 이야기들》을 1914년에 출판한다. 이 소설집에 총 아홉 편의 작품이 실려 있는데, 이중에 가장 많이 알려진 작품은 『드라큘라의 손님(《뱀파이어 걸작선》에 수록), 『판사의 집』(《영국의 괴담》에 수록), 『스쿼(squaw, 《세계 호러 단편 100선》에 수록)』, 『쥐들의 장례』[주2] 등이다.

 

 

 

 

 

 

 

 

 

 

 

 

 

 

 

 

 

 

 

 

* 르 파뉴 《카르밀라》 (초록달, 2015)

* [e-Book] 르 파뉴《에인저 거리에서 일어난 기묘한 소동에 대한 기술》 (올푸리, 2018)

 

 

 

 

『드라큘라의 손님』은 원래 《드라큘라》 초고의 초반부에 해당한 내용이었으나 초판에서 삭제되었다. 『판사의 집』은 17세기 영국에서 활동한 악명 높은 ‘교수형 담당 판사’가 살았던 집에서 일어나는 초자연적인 현상에 관한 소설이다. 이 소설의 결말은 공포의 절정을 이룬다. 과거에 죽은 교수형 담당 판사가 무시무시한 유령으로 등장하는 플롯은 1851년에 발표된 조지프 셰리든 레 파누(Joseph Sheridan Le Fanu)《에인저 거리에서 일어난 기묘한 소동에 대한 기술》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레 파누 역시 아일랜드 출신이며, 스토커는 레 파누가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던 언론 매체의 연극 비평가로 활동하였다. 레 파누는 초자연적인 존재 및 현상을 소재로 한 소설을 썼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작품은 1872년에 나온 《카르밀라(Carmilla)다. ‘카르밀라’는 소설에 나오는 ‘레즈비언 흡혈귀’의 이름이다. 《카르밀라》는 스토커의 《드라큘라》에 영향을 준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 [품절] 정진영 옮김 《세계 호러 걸작선》 (책세상, 2004)

* 정진영 옮김 《세계 호러 단편 100선》 (책세상, 2005)

* 안길환 옮김 《영국의 괴담》 (명문당, 2000) [주3]

 

 

 

 

《드라큘라의 손님과 기이한 이야기들》 완역본을 전자책으로 읽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완역본에 수록된 아홉 편의 소설 중 단 네 편(『드라큘라의 손님』, 『판사의 집』, 『스쿼』, 『쥐들의 장례』)만 번역되어 나왔기 때문이다.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종이책에 있는 공포문학 작품들을 접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공포문학도 공포영화와 마찬가지로 유행을 탄다.

 

 

 

[주1] 미완성 소설이라 ‘미완의 소설’이라는 제목이 붙여지게 됐다. 《세계 호러 단편 100선》에 수록되어 있다.

 

[주2] ‘쥐의 매장’이라는 제목으로 《세계 호러 걸작선》에 수록되어 있다. 종이책은 절판되었고, 현재는 전자책으로 판매되고 있다.

 

[주3] ‘판사의 집’이 수록된 단편 공포소설 선집. 영국, 아일랜드 출신 작가들이 쓴 단편 공포소설들이 실려 있다. 그러나 번역체에 한문이 많아 가독성이 떨어진다. 참고로 이 번역본을 만든 ‘명문당’은 동양 고전을 많이 펴낸 출판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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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는 왜 책을 사랑하는가? - 예술에서 일상으로, 그리고 위안이 된 책들
제이미 캄플린.마리아 라나우로 지음, 이연식 옮김 / 시공아트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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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독서의 역사는 곧 인류의 지성사이며 문화사다. 알베르토 망겔(Alberto Manguel)《독서의 역사》에서 ‘독서’를 ‘책에 담은 의미를 알아내는 행위’라고 말했다. 세상을 이해하는 행위로 그만큼 독서의 의미가 크고 깊다는 뜻이다. 책은 애서가 또는 작가의 전유물로 여겨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책을 좋아하는 예술가도 있었다. 반 고흐(van Gogh)앙리 마티스(Henri Matisse)는 다독가였다. 책은 모든 장르의 그림에 카메오로 등장했다. 초상화에 그려진 인물의 학식이 어느 정도 갖추어져 있는지 암시해주고, 비싼 장식품으로도 그려지기도 했다. 몇몇 애서가는 농담으로 사놓고도 읽지 않은 책들을 장식품으로 취급한다고 말한다. 과거 예술가와 책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했다. 유럽은 중세 이래 책을 아름답게 꾸미는 전통이 있었다. 그래서 책은 귀족이나 고위 성직자, 교수 등 극히 한정된 인텔리만 읽을 수 있고 소장할 수 있었다. 단순한 읽을거리가 아니라 신분 과시용이요 유산계층으로서의 정체성을 확인해주는 화려한 장식품이었다. 그림에 책을 그려 넣은 예술가들은 책이 장서가의 정체성과 사회적 지위를 증명해주는 소품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책이 등장하면서 예술가는 자신의 정체성과 사회적 지위를 확립할 수 있었다.

 

《예술가는 왜 책을 사랑하는가?》‘도판이 풍부한 독서의 역사’라고 보면 된다. 책의 원제는 ‘The Art of Reading’이다. 《예술가는 왜 책을 사랑하는가?》는 중세부터 오늘날에 이르는 독서의 거대한 역사를 예술가들이 남긴 다양한 그림을 통해 보여준다. 이 책의 공동 저자는 책이 그려진 그림들을 살펴보면서 책을 대하는 예술가들의 생각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해왔는지 알아본다.

 

책을 많이 읽은 예술가는 그리 많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예술가와 책이 서로 무관한 관계라고 단정할 수 없다. 왜냐하면 앞서 언급했듯이 책의 등장으로 ‘무명의 장인’으로 취급받았던 예술가의 지위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에 활동한 화가 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는 1550년에 <예술가 열전>(국내에서는 ‘르네상스 미술가 평전’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다)이라는 책을 썼다. <예술가 열전>은 예술가의 생애와 작품에 대한 최초의 체계적인 기록물이다. 이 책이 나오지 않았다면 르네상스 예술가들의 그림은 ‘작가 미상의 그림’으로 알려져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을 것이다.

 

책이 상류층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시절은 절대로 다시 오지 않는 책의 황금기이다. 이때 책은 상류층의 권위를 발산하는 그림을 장식하는 데 절대로 빠져서는 안 될 필수 소품이었다. 하지만 시대에 따라 유행이 변하듯이 책을 대하는 대중의 태도와 그 책에 의미를 부여하는 예술가들의 생각도 조금씩 달라졌다. 17세기 유럽에 인생의 허무함을 강조하는 정물화인 ‘바니타스(vanitas)가 유행했다. 바니타스를 즐겨 그린 화가들은 책을 유한하고 덧없는 인간의 삶을 의미하는 상징물로 인식했다.

 

근대에 들어서면서 지식이 대중화되고, 책의 개인 소유가 가능하게 되면서 책은 상품으로 거듭났다. 아, 물론 이때도 여전히 책은 기득권층의 지위를 돋보이게 해주는 소품으로 활용되었다. 전근대의 책이 왕족, 귀족, 기독교 수도사들의 지위를 드러나게 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었다면, 근대의 책은 부르주아의 전유물이었다. 앞서 나는 책과 독서의 역사를 인류의 지성사라고 언급했는데, 이를 비판적으로 해석하면 책과 독서의 역사는 ‘기득권 중심의 지성사’로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사회를 지배하는 기득권층은 자신의 권위를 유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책을 이용했다. 역사적으로 책은 기득권층의 대변인 역할을 해온 것이다. 결국 책은 기득권층이 승인한 지식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예술가는 왜 책을 사랑하는가?》를 번역한 미술사가 이연식‘독서는 위험하다. 특히 예술가에게 위험하다’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그는 독서 자체를 피해야 할 행위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책 읽는 사람은 분명 그저 읽기만 하는 수동적인 존재인 것은 아니다.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된 지식은 부당한 세상에 맞서는 무기를 만들 때 필요한 재료가 된다. 독서가 축복인지 저주인지는 우리가 그 속에 있는 재료를 어떻게 쓰느냐(어떻게 읽고 소화하느냐)에 달려 있다. 책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 책은 위험하지 않다. 책 속에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사람들이 위험하다.

 

 

 

 

※ Trivia

 

* 278쪽에 미국의 작가 거트루드 스타인(Gertrude Stein)의 동성 연인의 이름이 나온다. 그런데 그녀의 이름이 ‘앨리스 토클러’라고 되어 있다. ‘앨리스 토클러스/토클라스(Alice B. Toklas)라고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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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03 11: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8-03 11:45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책을 너무 안 읽는 사람도 문제고, 또 책을 너무 많이 읽는 사람도 문제에요. 전자는 글 한 줄 못 쓴다면, 후자는 잘못된 신념을 강조하는 글을 너무 많이 써요.

라이너스 2019-08-04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체가 담고 있는 내용도 중요하지만 수용자의 태도 또한 중요하다는 것이군요~ 읽어보고 싶은 책이네요. 좋은 서평 감사합니다.

cyrus 2019-08-05 16:25   좋아요 0 | URL
주제와 내용이 어렵지 않아서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
 

 

 

 

초등학교[주] 시절 노트 위에

나의 책상과 나무 위에

모래 위에 눈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내가 읽은 모든 페이지 위에

모든 백지 위에

돌과 피와 종이와 재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중략]

 

되찾은 건강 위에

사라진 위험 위에

회상없는 희망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그 한마디 말의 힘으로

나는 내 삶을 다시 시작한다.

나는 태어났다 너를 알기 위해서

너의 이름을 부르기 위해서

자유여.

 

 

(엘뤼아르, 오생근 옮김, 『자유』 중에서)

 

 

 

프랑스 시인 폴 엘뤼아르(Paul Eluard)가 쓴 유명한 시 『자유』의 원래 제목은 ‘단 하나의 생각’이었다고 한다. 엘뤼아르는 이 시의 맨 마지막 문장에 자신이 사랑하는 두 번째 부인의 이름(Nusch, 뉘쉬)을 쓸려고 했다. 엘뤼아르에게 사랑이란 ‘자유’의 동의어다. 『자유』라는 이 시 한 편이 너무나 유명해서 대부분 사람은 엘뤼아르를 ‘저항 시인’으로 생각하겠지만, 그를 유명하게 만든 건 초현실주의자 그룹에서 활동한 이력이다.

 

 

 

 

 

 

 

 

 

 

 

 

 

 

 

 

 

 

* [품절] 엘뤼아르 《이곳에 살기 위하여》 (민음사, 1994)

* 앙드레 브르통 《초현실주의 선언》 (미메시스, 2012)

 

 

 

 

초현실주의는 이성과 합리주의로 대변되는 서구 문명 전반에 대한 반역을 꿈꾸는 예술 운동의 하나였다. 꿈과 무의식의 세계, 공상 등의 비현실적인 세계와 이성에 속박되지 않고 상상력의 세계를 회복시키며 인간 정신을 해방하는 것을 큰 목표로 하였다. 초현실주의자들은 삶도 예술의 연장선으로 여겼다. 자유연애는 기본이었고, 주목받기 위해 기행도 일삼았다. 1924년에 『초현실주의 선언』을 발표한 앙드레 브르통(Andre Breton)은 처음으로 초현실주의의 개념을 명확히 정의하려고 하였다. 그는 프로이트(Freud)의 정신분석학에 영향을 받아 꿈, 광기의 가치를 높이 평가했다. 하지만 프로이트는 초현실주의자들이 무의식의 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정신분석학을 이용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프로이트는 정신분석학으로 인간의 원초적 무의식, 즉 꿈을 ‘해석’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 캐서린 잉그램, 앤드류 레이 그림 《This is Dali》 (어젠다, 2014)

* 돈 애즈 《살바도르 달리》 (시공아트, 2014)

* 크리스티아네 바이데만 《살바도르 달리》 (예경, 2009)

* 피오렐라 니코시아 《달리: 무의식의 혁명》 (마로니에북스, 2007)

* 장 루이 가유맹 《달리: 위대한 초현실주의자》 (시공사, 2006)

 

 

 

 

초현실주의자들은 현실에서 도피하는 몽상가는 아니었다. 의외로 그들은 정치와 현실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였다. 브르통은 공산주의자였다. 그는 1930년대 말에 멕시코를 방문해 그곳에서 망명 생활을 하고 있던 레온 트로츠키(Leon Trotsky)를 만나기도 했다. 브르통 이외에도 시인 루이 아라공(Louis Aragon),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 등도 공산주의자였다. 이념에 심취하다 보니 초현실주의자들 사이에 이견이 있었고 이로 인해 불거진 갈등으로 인해 초현실주의 그룹을 떠나는 화가들이 속출했다. 브르통은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돈에 환장한 사람(Avida Dollars)이라는 별명을 붙여가면서 비난했고, 그를 초현실주의 그룹에서 제명했다. 브르통이 달리를 조롱하면서 만든 별명은 달리 이름의 철자를 바꾼 것이다. 달리는 노골적으로 자본주의와 파시즘을 찬양했다. 파시즘을 지지하는 달리의 망언은 파시즘에 반발하며 자유를 갈구하던 초현실주의자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엘뤼아르는 스페인 내전과 두 번의 세계대전을 지켜보며 ‘저항 시’의 필요성을 깨닫는다. 그때부터 쓰인 시에는 전쟁으로부터 해방된 자유에 대한 갈망이 드러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이후에 엘뤼아르는 독일군에 맞서는 레지스탕스(Resistance) 활동에 적극 참여했으며, 작가 단체의 책임자가 돼 독일을 비방하는 비밀 출판물을 만들었다. 엘뤼아르는 『시는 구체적인 진실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라는 시에서 저항 시를 쓰지 않는 동료 시인을 비판한다.

 

 

 

왜냐하면 자네들은 목적도 없이 걷고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 세계를 변혁하기 위해서 인간은

뭉쳐야 하고 희망하고 투쟁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네

 

 

(엘뤼아르, 오생근 옮김, 『시는 구체적인 진실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중에서)

 

 

엘뤼아르는 이 시에서 ‘사랑’을 주제로 한 순수시를 쓰는 일에 몰두한 동료 시인을 ‘까다로운 친구들’이라고 부르면서 세계를 바꾸려는 희망과 투쟁심이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시인은 그들의 한계를 지적하면서도 그들을 진짜 현실 속으로 걸어나가도록(참여시 또는 저항 시를 쓰는 일) 인도한다. 재미있는 건 반전이 있는 이 시의 구조다. 엘뤼아르는 1연부터 4연까지 순수시를 쓰는 척한다. 5연부터 시의 분위기를 반전시킨다. 5연은 저항 시를 쓰고 있는 시인의 행보와 순수시를 쓰는 시인들을 비교한 내용이다. 엘뤼아르는 ‘조국을 거침없이 노래하고 있다면’, 동료 시인들은 ‘사막 같은 곳’으로 가려고 한다. ‘사막 같은 곳’은 현실에서 도피하는 시인들이 원하는 유토피아 또는 공상의 세계이다. 엘뤼아르도 한때 초현실주의자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사막 같은 곳’을 지향했던 적이 있었다. 그는 7연에서 자신을 ‘힘이 없는 존재’로 살아왔다고 말한다. ‘힘이 없는 존재’는 초현실주의에 심취했던 시인의 과거 모습을 의미한다. 전쟁의 참화를 목격한 이후로 엘뤼아르는 인간으로 살아가면서 있어야 할 가장 중요한 정신적 가치는 꿈과 무의식의 세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눈앞에 있는 현실을 해방해야 찾을 수 있다는 점을 깨닫는다. 『시는 구체적인 진실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자신과 다른 길을 걷고 있는 동료 시인들에게 바치는 시로 알려졌지만, 이 시는 초현실주의에서 시작해 현실주의(realism)로 변모하는 엘뤼아르의 참 모습이 그려진 ‘자화상’으로도 볼 수 있다.

 

엘뤼아르는 ‘초현실주의 시인’과 ‘저항 시인’, 이 두 가지 모습으로 오랫동안 기억되어야 한다. 그는 ‘초현실’ 속에 있는 인간과 ‘현실’ 속에 있는 인간이 공통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를 담아낸 시를 썼다. 그 공통된 가치란 바로 ‘자유’였다. ‘자유’는 엘뤼아르의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소중한 가치였다.

 

 

 

[주] 민음사 번역본에는 ‘국민학교’라고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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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02 12: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8-03 06:46   좋아요 0 | URL
지금까지 댓글을 통해 하신 말씀 중에 정말 좋았어요. 사유와 행동을 일치하면서 살아가는 일이 쉽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유와 행동이 서로 반대가 된 상태에서 살아갈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사는 것은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을 둘러싼 주변 인물을 속이는 행위입니다.

책을 읽으면 내가 믿고 싶은 생각들이 하나둘씩 많아져요. 그러면 이전에 내가 생각했던 것들이 한계가 있었다는 점을 인정하게 됩니다. 성찰하면서 책을 읽는 것이죠. 이런 과정을 글로 기록하고 싶습니다.
 
다윈의 실험실 - 위대한 《종의 기원》의 시작
제임스 코스타 지음, 박선영 옮김 / 와이즈베리 / 2019년 4월
평점 :
절판


 

 

요즘 서점을 둘러보거나 온라인 서점에 서핑하면 올해 과학계와 출판계가 누구를 가장 주목하는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그 사람은 바로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이다. 다윈의 저서 《종의 기원》을 번역한 책, 진화론 입문서와 그의 이론을 지지하는 책들이 나오고 있다. 올해는 다윈이 태어난 지 210주년, 《종의 기원》 초판이 출간된 지 160년이 되는 해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명사(名士)의 생일이나 기일, 심지어 기념비적인 책이 처음 나온 날을 기리는 데 익숙해졌다. 과학계에서도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과학자를 기념하는 일만큼은 절대 빠지지 않는다.

 

그런데 다윈은 이상하리만큼 인기 없는 과학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아인슈타인(Einstein)처럼 천재로 주목받지 않았으며 리처드 파인먼(Richard Feynman)처럼 재미있는 후일담이 많은 과학자도 아니다. 다윈은 과학 교과서에 나오는 이론들을 정리한 책들을 썼지만, 그렇다고 정재승이나 김상욱처럼 글을 재미있게 쓰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다윈은 어떤 사람인가? 대부분 사람은 다윈을 ‘진화론의 창시자’로만 알고 있지, 실험 결과나 지식을 여러 사람과 공유하면서 소통한 지식인으로 살아왔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그리고 다윈은 현장 실험을 선호했다. 그가 살았던 집 주변의 정원은 교과서에 나와 있는 축적된 과학적 발견을 검증하고,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는 공간이다. 이미 누군가 발견하여 잘 정리해놓은 실험 결과를 재확인하는 것은 진정한 현장 실험으로 보기 어렵다. 아무도 도전해 보지 않은 실험을 시도하는 실험실에서 기존에 나온 지식은 참고용 지식일 뿐, 실천적인 지식이 될 수 없다. 다윈에게 실험실은 ‘매일매일 새로운 지식이 시험되고 태어나는 공간’이었다.

 

《다윈의 실험실》은 현장 실험을 중시한 다윈의 삶을 온전하게 알리고, 현장 실험을 하면서 새롭게 확인된 정보를 뼈대로 삼아 진화론이 형성하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책이다. 다윈은 20대 때부터 5년간 해군 측량선 비글호(Beagle)를 타고 세계 일주를 하며 박물학자로 거듭났다. 비글호는 다윈에게는 미지의 자연을 만나게 해주는 연구실이나 다름없는 공간이다. 그렇지만 다윈이 학문적으로 성숙하게 만드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준 실험실은 다운 하우스(Down House)이다. 비글호 여행을 마치고 영국으로 돌아온 다윈은 정신적 동반자인 엠마 웨지우드(Emma Wedgwood)와 결혼했고, 다윈 부부는 평온한 시골 마을 다운에 정착한다. 다윈 부부는 40년 이상 다운 하우스에 살았다. 다운 하우스의 정원은 ‘다윈에 의한, 다윈을 위한, 다윈의 거대한 실험실’이었다. 그곳에는 다윈이 직접 구입한 여러 품종의 비둘기가 있는 비둘기장이 있었으며 온실에서는 끈끈이주걱과 파리지옥의 식충 습성에 대한 실험이 진행되었다. 다윈은 일반인과 어린 아이들도 참여할 수 있는 실험을 즐겨 했다. 다윈의 일곱 자녀는 다윈의 든든한 조수가 되어주었다. 다윈의 자녀들을 가르친 가정교사도 다윈이 계획한 실험에 참여했다. 캐서린 솔리는 10년 동안 다운 하우스에 지내면서 다윈의 자녀들에게 프랑스어와 무용, 음악 등을 가르쳤다. 평소 식물 이름을 알아맞히는 것에 관심이 많은 그녀는 아이들과 함께 식물을 관찰하기도 했다.

 

정원에서 현장 실험을 한 다윈은 기존 학자들이 고수해온 ‘실험실 안에 있는 지식’이라는 고정관념을 허물었다. 다윈은 동료 생물학자와 박물학자와 다르게 흙을 손에 묻혀가면서 실험하는 것을 좋아했다. 《종의 기원》은 현장 실험이 이루어진 다운하우스 정원의 열매이다. 이 열매가 완전하게 맺어지길 원했던 다윈은 신중하게 진화론을 만들었다. 그는 확실한 증거를 확보할 때까지 실험을 반복했으며 자신의 생각을 단정해서 주장하기보다는 자신을 지지하는 동료 학자들에게 공유하면서 검증받기를 원했다.

 

《다윈의 실험실》은 다운하우스에서 진행된 역사적인 현장 실험을 복원할 뿐만 아니라 다윈의 실험에 직간접으로 도움을 준 주요 인물들도 소개한다. 다운하우스 안에는 다윈의 가족과 가정교사가 다윈 실험실의 보조 연구원으로 활약했다. 다운하우스 밖에서는 다윈의 지적인 스파링 파트너(sparring partner)이자 식물학자인 조지프 후커(Joseph Hooker)가 있었다. 후커는 미흡한 진화론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제시하면서 이론의 약점을 보완해주는 동료였다. 다윈은 자기 생각을 검증받기 위해 후커와 서신을 주고받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의 역사는 논문이나 교과서 혹은 연구 노트 등에 기록된 실험 결과들이다. 그러나 실험 결과에 초점이 맞춰진 과학의 역사에는 ‘기록되지 못한 것’이 있다. ‘기록되지 못한 것’이란 실험실 안에서 수행된 실험 방법이나 소소한 경험들이다. 과학기술학(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 용어로 로 과학 지식을 분류하여 설명하자면 문자로 남겨진 모든 과학 지식‘명시 지식(明示 知識, Explicit Knowledge)이고, 기록되지 못한 경험 및 상황 중심적인 지식‘암묵 지식(暗默 智識, Tacit knowledge)이다. 따라서 암묵 지식은 학자의 개인적 관심사와 관련되어 있거나 실험실에서 학자가 실험을 수행하면서 알게 된 지식이다. 《다윈의 실험실》은 과학 교과서에서 볼 수 없거나 《종의 기원》에 언급되지 않은 다윈의 암묵 지식을 소개한 책이다. 지루한 《종의 기원》에 무모하게 도전하는 것보다 《다윈의 실험실》을 먼저 보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다윈의 실험실》을 읽으면 다윈을 인기 없는 학자라고 여기는 통념이 틀렸음을 알게 될 것이다.

 

 

 

 

※ Trivia

 

* 조지 허버트 웰스는 이 글을 읽고 영감을 얻어 그로부터 몇 년 뒤 <기묘한 난초의 개화>라는 제목의 단편소설을 발표했다. (356쪽)

 

 

허버트 조지 웰스(Herbert George Wells)의 오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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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9-08-04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상욱 교수 책이 재밌다는 데 동의 못합니다ㅎㅎ 김상욱 교수 글은 다윈과라고 저는 생각하는데ㅎ

cyrus 2019-08-05 16:27   좋아요 1 | URL
제가 김상욱 교수의 책을 한 권만 읽어서 그 분의 글쓰기 스타일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 같아요... ㅎㅎㅎㅎ 다시 생각해보니 제가 착각했네요... ^^;;
 
팡타그뤼엘 제5서
프랑수아 라블레 지음, 권국진 옮김 / 신아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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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프랑수아 라블레(Francois Rabelais)《팡타그뤼엘 제5서》가 번역돼 나왔다. 이 작품은 1979년 을유문화사에서 번역본이 나온 뒤 오랫동안 절판됐다. 라블레의 대표작인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은 작자 미상의 대중소설 ‘가르강튀아 대연대기’에서 착안한 작품이다. 라블레는 1532년에 ‘팡타그뤼엘’을, 1534년에 ‘가르강튀아’를 발표했는데, 이 두 작품을 합본한 책은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이라는 익숙한 제목으로 알려져 있다.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은 거인국의 왕 팡타그뤼엘(Pantagruel)과 그의 아버지 가르강튀아(Gargantua)의 행적을 다룬 연대기 형식의 소설이다. 거인 부자는 음식을 실컷 먹고, 술을 벌컥 마시고, 실없는 대화를 하는 등 소란스러우면서도 유쾌하게 살아간다. 지상의 기쁨을 누리는 데 여념이 없는 거인들의 우스꽝스러운 행보는 금욕적이고 천상의 정신적 가치를 중시하던 중세 사회에 대한 비판이다.

 

‘팡타그뤼엘’과 ‘가르강튀아’는 외설스럽고 반종교적인 작품으로 낙인찍혔지만, 그때는 중세의 낡은 관행들을 뚫고 근대 세계가 서서히 움트던 시대였다. 대중은 새로운 세계에 대한 유토피아적인 희망이 담긴 라블레의 소설을 좋아했다. 소설의 인기에 힘입어 라블레는 1546년에 《팡타그뤼엘 제3서》, 1552년에 《팡타그뤼엘 제4서》를 발표한다. 라블레는 1553년에 세상을 떠났는데, 1564년에 저자명이 라블레로 되어 있는 책이 나온다. 그 책의 제목은 ‘선량한 팡타그뤼엘의 영웅적 언행록에 관한 다섯 번째 그리고 마지막 책’이다. 이 책이 바로 《팡타그뤼엘 제5서》이다. 라블레가 쓴 거인 연대기는 총 5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어째서 《제5서》가 전작들과 비교해 많이 주목받지 못하게 되었을까? 그 이유는 그동안 《제5서》가 ‘위작’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현재 《제5서》와 관련된 판본으로 확인된 책은 총 세 권이다. 세 권 모두 라블레가 세상을 떠난 뒤에 나왔다. 세 권의 판본을 연도순으로 정리하면, 1562년에 ‘종이 울리는 섬’이라는 제목의 책이 나왔고, 1564년에 결정판인 《제5서》가 나왔다. 나머지 판본은 연대 미상의 필사본이다. 이 필사본은 라블레 사후에 활동한 무명작가가 썼을 것으로 추정된다. 《제5서》의 진위에 대한 학자들의 논점은 크게 세 가지 입장으로 나누어진다. 첫 번째, 《제5서》는 라블레가 쓴 작품이 맞다. 두 번째, 라블레가 《제5서》를 쓰는 도중에 세상을 떠난 바람에 《제5서》는 미완성된 작품이 된다. 그러나 라블레의 필체를 잘 이해하고 있고, 종교개혁 정신을 가진 무명작가가 소설을 완성시켰으며 이 과정에서 약간의 가필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세 번째, 전작과 너무나 다른 문체로 봐서는 《제5서》는 위작이다. 세 번째 입장은 오랫동안 《제5서》를 설명할 때 꼭 거론되었고, 다수의 학자에게 지지받아왔다. 이렇다 보니 《제5서》는 읽을 가치도, 연구할 가치도 없는 작품으로 취급받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제5서》에 대한 학자들의 평가가 달라진다. 《제5서》가 라블레의 초고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에 위작이 아닐 수 있다는 의견에 공감하는 학자들이 많아졌다.

 

《제5서》는 《제3서》와 《제4서》의 주인공이자 팡타그뤼엘의 친구인 파뉘르주(Panurge)의 결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술병 신(神)의 신탁을 받으러 항해하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 당연히 이 책도 기존에 나온 전작처럼 산만하고 소란스러운 대화가 전개되고, 인물들은 기이한 섬에 당도하면서 황당한 소동에 휘말린다. 그리고 이 책에 나오는 섬 주민들은 ‘새 인간’에 가까운 모습인데, 권력을 남용한 종교인들을 풍자하는 알레고리(allegory)로 볼 수 있다.

 

《제5서》에는 전작에서 볼 수 없는 ‘특별한 글’이 있다. 그것은 바로 ‘칼리그램(calligram, 상형 시)이다. 칼리그램이란 ‘글자로 만든 그림’을 뜻한다. 라블레가 직접 만든 것인지 아니면 《제5서》를 가필한 무명작가가 만든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독특한 글임은 분명하다. 《제5서》 44장에 ‘에필레미’라는 노랫말이 술병 형태의 그림 안에 들어 있다. 에필레미는 포도를 수확할 때 주신 바쿠스(Bacchus)를 찬양하면서 부르는 익살스러운 노래를 말한다.

 

 

 

 

 

 

“오, 신비로 가득 찬 술병 신이여,

난 한쪽 귀로도 그대의 목소리를

듣겠나이다. 당장에, 내 마음이 간구

하는 말을 베풀어주소서. 이처럼

거룩한 성수(聖水)에 인도를 정복한 바커스를 모든 진실을 간직하도다. 성스러운 신주(神酒)여, 그대가 있는 곳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시오. 모든 허위와 모든 기만은 노아의 시대에는 극도의 기쁨이 되지만 그대가 그 비법을 우리에게 베푸나이다. 원하건대, 내 고통을 삭혀주는 아름다운 말을 베풀어주소서.

                 이처럼 한 방울도 잃어버리지 않게 하겠나이다.

                                흰 것이나 붉은 것이나 모두.

오, 신비로 가득 찬 술병 신이여,

난 한쪽 귀로도 그대의 목소리를

듣겠나이다. 당장에.”

 

 

(권국진 옮김, 212~213쪽)

 

 

 

그런데 《제5서》의 역자는 《제5서》의 실제 판본에 실린 칼리그램에 대해서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제5서》가 번역되기 한참 전에 유석호 연세대 불문과 교수는 자신의 라블레 연구서에 《제5서》의 칼리그램을 언급한 적이 있다.[주] 책 14쪽 역주에 ‘호메르스’라는 이상한 단어가 있다.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인 호메로스(Homeros)의 오자이다.

 

 

 

[주] 유석호 《라블레, 새로운 글쓰기의 모험》 (연세대학교출판문화원,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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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이슬 2024-12-30 22: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을유문화사판 《제 5서》에도 에필레미를 번역했지, 칼리그램이란 언급은 없습니다.
권국진 역이 2019년에 나왔는데도 2016년에 유석호가 언급한 칼리그램 설명이 빠진 걸 보면, 무얼 참고했는지 감이 오네요.
을유문화사판 번역은 이렇습니다.

오, 신비에
넘치는
술병 신이여
나는 한쪽 귀로도
그대의 소리를 듣는다.
당장에
나의 마음이 의지할
말을 내리라.
이처럼 거룩한 성수(聖水)에
인도를 정복한
박쿠스는
모든 진실을
간직하도다.
성스러운 신주(神酒)여
그대보다 멀리
  떨어져 있으라
모든 허위,
  모든 기만(欺瞞)은.
노아의 심령(心靈)은
  기쁨에 싸이나
그 비법(秘法)을 그대는
  우리에게 베풀도다.
염원컨대
  나의 괴로움을 제거하는
아름다운 말을
  내리소서.
이처럼 귀한 것이라면
  한 방울도 헛되게 하지 않으리
희고 붉은 것도 모두.
오, 신비에
  넘치는
성스러운
  술병이여,
나는,
  한쪽 귀로도
그대 소리 듣겠노라,
  당장에.

(민희식 옮김, 814~815쪽)

cyrus 2024-12-25 23:00   좋아요 0 | URL
을유문화사 <제5서>가 상당히 오래된 책이고 절판본이라서 구하기가 쉽지 않아요. <서점극장 라블레>라는 세계문학 전문 책방에 있는 을유문화사 <제5서>를 본 적이 있어요. 세로쓰기로 되어 있어서 그 자리에 읽지 못했는데, 다음에 그곳에 가면 시간을 내서 읽어봐야겠어요. 제가 몰랐던 내용을 알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