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문학은 독자 성향에 따라 작품의 호불호가 극단적으로 나뉜다. 연쇄살인마가 등장하거나 인간의 어두운 본성을 탐구하는 현실 밀착형 공포를 선호하는 독자가 있는가 하면 미지의 존재나 귀신 같은 초자연적 공포만을 찾는 독자도 있다.

 

 

 

 

 

 

 

 

 

 

 

 

 

 

 

 

 

 

 

* 리처드 매드슨 《나는 전설이다》 (황금가지, 2005)

* 김은희 《킹덤: 김은희 대본집》 (김영사, 2019)

 

 

 

 

몇 년 전부터 ‘좀비(zombie)가 공포물의 소재로 주목받고 있다. 미국 드라마 <워킹데드(The Walking Dead)> 시리즈가 인기리에 방영되었고, 2016년에 영화 <부산행>은 천만 관객을 동원한 한국형 좀비 영화의 시발점으로 평가받았다. 올해 초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공개된 한국판 좀비 사극 <킹덤(kingdom)>은 탄탄한 스토리와 액션, 화려한 영상미 등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 리처드 매드슨(Richard Matheson)《나는 전설이다》(황금가지)는 좀비를 소재로 한 공포소설 중 하나로 손꼽힌다.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동명의 영화가 나올 정도로 유명한 작품이지만, 원작을 읽을 때 좀비 떼들이 달아나는 인간을 쫓아가서 물어뜯는 잔혹한 영화 장면을 기대해선 안 된다. 《나는 전설이다》는 좀비들에게 둘러싸인 인류 마지막 생존자의 고독과 절망적인 공포의 깊이를 묘사한 소설이다.

 

 

 

 

 

 

 

 

 

 

 

 

 

 

 

 

 

 

 

* 브람 스토커 《드라큘라》 (열린책들, 2009)

 

 

 

 

좀비물이 언제까지 유행할지 모르겠으나,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는 오컬트 소재가 등장하게 되면 좀비물 인기는 조금씩 사그라질 것이다. 좀비물이 유행하기 전에는 뱀파이어물이 많이 나오던 시절이 있었다. 브람 스토커(Bram Stoker)의 장편소설 《드라큘라》는 20세기 이후에 출현한 다양한 뱀파이어물의 원본이다. <노스페라투(Nosferatu)>에서 프란시스 코드 코폴라(Francis Ford Coppola)의 <드라큘라>에 이르는 뱀파이어 영화들은 스토커의 소설에 빚지고 있다.

 

 

 

 

 

 

 

 

 

 

 

 

 

 

 

 

 

 

* [품절] 정진영 옮김 《뱀파이어 걸작선》 (책세상, 2016)

* [절판] 로렌스 A. 릭켈스, 정탄(=정진영) 옮김 《뱀파이어 강의》 (루비박스, 2009)

* 한혜원 《뱀파이어 연대기》 (살림, 2004)

 

 

 

 

 

스토커의 《드라큘라》가 나오기 전에 흡혈귀 전설이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있었으며 스토커가 태어나기 훨씬 전에 활동한 몇 몇 작가들은 흡혈귀를 소재로 한 작품을 썼다. 흡혈귀가 처음으로 ‘뱀파이어(Vampire)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영국의 시인 조지 바이런(George Byron)의 주치의 겸 비서인 존 폴리도리(John Polidori)의 동명 단편소설에서였다.

 

폴리도리는 바이런과 함께 이탈리아와 스위스 등의 유럽을 여행하고 있었는데, 1816년 스위스에서 메리 셸리(Mary Shelley)와 그의 남편이자 시인인 퍼시 B. 셸리(Percy Bysshe Shelley)를 만났다. 바이런과 폴리도리, 그리고 셸리 부부가 스위스에 머무르고 있었던 기간의 날씨는 최악이었다. 며칠 내내 비가 내렸는데, 훗날 기상학자들은 1813년에 폭발한 이탈리아 베수비오 화산에 나오는 화산재가 유럽 전역에 확산되면서 1816년 스위스의 날씨가 나빠졌다고 보고 있다. 외출을 할 수 없었던 네 사람은 모여서 대화를 나누던 중 자신들 중에 누가 제일 무서운 이야기를 만드는지 내기를 하게 된다. 그래서 폴리도리는 《뱀파이어》를, 메리 셸리는 그 유명한 《프랑켄슈타인》을 만든다. 폴리도리의 소설에 뱀파이어로 나오는 루스벤 경(Lord Ruthven)은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바람둥이다. 폴리도리의 《뱀파이어》는 1819년에 발표되었다. 올해는 뱀파이어가 세계문학사에 처음으로 진입한 지 200주년이 되는 해이다. 《뱀파이어》가 발표되기 일 년 전에 《프랑켄슈타인》이 메리 셸리의 이름으로 발표되었다. 그러나 《뱀파이어》는 그 이야기를 만든 폴리도리가 아닌 ‘조지 바이런’의 이름으로 발표되었다. 《뱀파이어》를 처음으로 실은 잡지의 편집자가 당시에 가장 유명한 시인이자 명사였던 바이런의 이름을 쓴 것이다. 《뱀파이어 연대기》(살림)에서 폴리도리는 ‘바이런의 명성에 의해 가려진 작가’로 소개되어 있다. 그러나 대학에 뱀파이어 영화와 관련 문학작품들을 비평하는 강의를 개설한 로렌스 A. 릭켈스(Lawrence A. Rickels)폴리도리가 바이런이 이미 구상한 작품[주1]을 표절했다고 주장한다. 《뱀파이어》를 처음으로 구상한 작가가 폴리도리인지 아니면 바이런인지 지금도 의견이 분분하지만, 현재로서는 《뱀파이어》의 원작자는 폴리도리로 알려지고 있다. 폴리도리의 《뱀파이어》는 《뱀파이어 걸작선》(책세상)에 수록되어 있다.

 

 

 

 

 

 

 

 

 

 

 

 

 

 

 

 

 

 

 

 

* [e-Book] 브람 스토커 《드라큘라의 손님과 기이한 이야기들》 (왓북, 2019)

* [e-Book] 브람 스토커 《판사의 집》 (올푸리, 2019)

 

 

 

 

《드라큘라》가 워낙 유명해서 스토커는 ‘원 히트 라이터(one-hit writer)로 알려져 있다. 《드라큘라》를 쓰기 전에 이미 여러 편의 장편과 단편소설을 썼지만, 《드라큘라》만큼 성공적인 인기를 얻지 못했다. 스토커는 27년 동안 영국의 연극배우 헨리 어빙(Henry Irving)의 비서 겸 어빙이 소유한 극장 지배인으로 일한다. 스토커가 영국에서 살았다는 이유로 그를 영국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스토커는 더블린(Dublin)에서 태어난 아일랜드 인이다. 1912년에 스토커가 세상을 떠난 후에 그의 아내(스토커와 결혼하기 전에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가 그녀에게 구애한 적이 있었다. 스토커와 와일드는 같은 아일랜드 출신이며 대학 동문이다)가 남편이 쓴 중 · 단편을 모은 《드라큘라의 손님과 기이한 이야기들》을 1914년에 출판한다. 이 소설집에 총 아홉 편의 작품이 실려 있는데, 이중에 가장 많이 알려진 작품은 『드라큘라의 손님(《뱀파이어 걸작선》에 수록), 『판사의 집』(《영국의 괴담》에 수록), 『스쿼(squaw, 《세계 호러 단편 100선》에 수록)』, 『쥐들의 장례』[주2] 등이다.

 

 

 

 

 

 

 

 

 

 

 

 

 

 

 

 

 

 

 

 

* 르 파뉴 《카르밀라》 (초록달, 2015)

* [e-Book] 르 파뉴《에인저 거리에서 일어난 기묘한 소동에 대한 기술》 (올푸리, 2018)

 

 

 

 

『드라큘라의 손님』은 원래 《드라큘라》 초고의 초반부에 해당한 내용이었으나 초판에서 삭제되었다. 『판사의 집』은 17세기 영국에서 활동한 악명 높은 ‘교수형 담당 판사’가 살았던 집에서 일어나는 초자연적인 현상에 관한 소설이다. 이 소설의 결말은 공포의 절정을 이룬다. 과거에 죽은 교수형 담당 판사가 무시무시한 유령으로 등장하는 플롯은 1851년에 발표된 조지프 셰리든 레 파누(Joseph Sheridan Le Fanu)《에인저 거리에서 일어난 기묘한 소동에 대한 기술》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레 파누 역시 아일랜드 출신이며, 스토커는 레 파누가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던 언론 매체의 연극 비평가로 활동하였다. 레 파누는 초자연적인 존재 및 현상을 소재로 한 소설을 썼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작품은 1872년에 나온 《카르밀라(Carmilla)다. ‘카르밀라’는 소설에 나오는 ‘레즈비언 흡혈귀’의 이름이다. 《카르밀라》는 스토커의 《드라큘라》에 영향을 준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 [품절] 정진영 옮김 《세계 호러 걸작선》 (책세상, 2004)

* 정진영 옮김 《세계 호러 단편 100선》 (책세상, 2005)

* 안길환 옮김 《영국의 괴담》 (명문당, 2000) [주3]

 

 

 

 

《드라큘라의 손님과 기이한 이야기들》 완역본을 전자책으로 읽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완역본에 수록된 아홉 편의 소설 중 단 네 편(『드라큘라의 손님』, 『판사의 집』, 『스쿼』, 『쥐들의 장례』)만 번역되어 나왔기 때문이다.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종이책에 있는 공포문학 작품들을 접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공포문학도 공포영화와 마찬가지로 유행을 탄다.

 

 

 

[주1] 미완성 소설이라 ‘미완의 소설’이라는 제목이 붙여지게 됐다. 《세계 호러 단편 100선》에 수록되어 있다.

 

[주2] ‘쥐의 매장’이라는 제목으로 《세계 호러 걸작선》에 수록되어 있다. 종이책은 절판되었고, 현재는 전자책으로 판매되고 있다.

 

[주3] ‘판사의 집’이 수록된 단편 공포소설 선집. 영국, 아일랜드 출신 작가들이 쓴 단편 공포소설들이 실려 있다. 그러나 번역체에 한문이 많아 가독성이 떨어진다. 참고로 이 번역본을 만든 ‘명문당’은 동양 고전을 많이 펴낸 출판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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