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에는 정말 별 이상한 사람들의 정신 상태를 보여주는 글과 사진들이 떠돈다. 안 보고 싶어도, 어쩔 수 없이 보게 된다. 생판 모르는 사람이 올린 글과 사진에 페이스북 친구가 좋아요를 누르면, 페이스북 친구인 나도 그걸 볼 수 있다. 생각해 보면 끔찍한 일 아닌가. 내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과 사진이 페이스북 친구관계도 아닌 사람 또한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나는 일주일에 두 번 정도 페이스북을 접속한다. 하루에 두세 번 이상 페이스북을 접속한 적이 없다. 정말 할 일 없을 때 불필요한 정보만 가득 널려있는 페이스북을 접속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책 이야기 가득한 북플을 접속하는 것이 더 낫다고 본다. 북플도 어느새 페이스북처럼 일상을 찍은 사진이 있는 글이 많아졌지만, 아직까지는 참을 만하다.

 

각설하고, 어제 페이스북에 접속하면서 어떤 사람이 캡처해서 자신의 타임라인에 올린 사진을 보게 되었다. 페이스북 친구가 누른 좋아요덕분에 아주 어이없는 사진을 봤다. 출처가 어딘지 잘 모르지만, 어떤 여자가 답변을 구하려고 인터넷 게시판에 질문을 올렸다. 그 질문이 가관이다. 연봉 3,200만 원을 버는 27세 남자친구를 둔 여자가 결혼하면 맞벌이를 안 해도 되는지 물어봤다. 이 여자는 돈 잘 버는 남자를 만나 결혼해서 안락한 생활을 누리고 싶은 마음을 아주 솔직하게 표현했다. 남자의 경제적 형편을 믿고 결혼을 고민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사실 남자 또한 교제하는 여성의 경제적 조건을 고려하면서 결혼을 고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혼한 여자가 일하는 것을 성폭행이라고 생각하는 그녀의 발언이 심히 걱정된다. 이 문제가 되는 발언은 여성을 김치녀라고 말하면서 극도로 혐오하는 자들에게 좋은 먹잇감이 된다. 남자를 조금이라도 무시하는 듯한 발언만 보면 득달같이 달려드는 여성 혐오 남자들은 이 여자를 전형적인 김치녀의 전형이라고 비하할 것이다. 페이스북에도 여성 혐오 남자들의 글이나 재미로 김치녀라는 단어를 쓰는 사람의 글을 종종 보게 된다.

 

그러나 여자의 발언에 분노하고, 혐오한다고 해도 이것을 정당한 비판으로 볼 수 없다. 일단 이 여자가 생각하는 성폭행의 의미가 왜곡되었음을 알려주어야 한다. 이러한 설명 없이 무조건 김치녀라고 욕하는 태도는 옮지 않는다. 최근 성과 관련된 각종 사건이 빈발하면서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 ‘성폭력등 다양한 단어가 난무하고 있다. 이들 용어는 개념이 각각 다르고 그 행위에 대한 책임에도 차이가 있다.

 

 

 

 

 

 

 

 

 

 

 

 

 

 

 

 

 

성폭행은 강간과 강간 미수를 말한다. 당연히 여자의 성폭행발언은 논리적으로 성립할 수 없다. 여자는 맞벌이 생활을 좋아하지 않는다. 맞벌이 생활을 제안하는 남편이 못마땅하다. 여자는 성폭행을 남자가 여자에게 일하는 것을 강요하는 일인 것처럼 너무 단순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렇다면 성폭력성폭행의 의미와 무슨 차이가 있을까.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성폭력성을 매개로 해서 상대방의 의사에 반해 이뤄지는 모든 가해행위라고 정의한다. 성희롱이나 성추행, 성폭행 등은 모두 성폭력의 개념에 포함된다. 여기까지는 헌법에서 규정하는 성폭력의 일차적 의미다. 요즘에는 여성에 대한 폭력도 성폭력으로 포함하기도 한다. 여성을 인격체로 대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성욕을 표출하거나 성적 수치심을 불러일으키는 행위를 성폭력으로 본다. ‘성폭행의 의미를 착각해서 오용한 여자를 향해 무심코 김치녀라고 비하하는 행위는 언어폭력이다. ‘김치녀발언은 여성을 인격체로 대하지 않는 혐오를 기저에 깔고 있다. 이 단어의 의미를 모르면서 마치 유행어처럼 농담으로 사용하는 아이들이 많아질까 봐 걱정된다. 장담하건대, 분명히 이 캡처 사진은 여기저기 공유되면서 떠돌다가 일베 사이트로 향하게 될 것이다. 이 글을 보고 열폭하는 일베 회원이 비로그인 상태에서 댓글을 남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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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08 23: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9-09 18: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9-08 23: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9-09 18: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인디언밥 2015-09-10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첫 sns가 북플이어서 다행히 저런 글은 보지 못했지만.. 흔히 자작글이라고, 위와 같은 식으로 만들어서 유머 게시판에 올리는 경우로만 알았는데.. 그런 것만도 아니었군여

cyrus 2015-09-10 15:30   좋아요 1 | URL
저런 글도 자작글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자작글이나 광고를 올려서 ‘좋아요’ 수를 많이 얻으려는 사람들이 많아요. 페이스북을 안 하신다니 정말 잘하신 겁니다. 페이스북에 접속하면 정신건강을 해롭게 만드는 게시물이 하루에 두 개 정도는 보곤 합니다. 안 보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보게 됩니다. 정말 북플은 청정지역이에요.
 

 

 

 

 

 

 

 

 

 

 

 

 

 

 

 

 

 

 

“아름다움은 저주받을 그 무엇이다. 타인과의 만남에서 아름답다는 것은 중요한 부분이다. 사람들은 아름답게 보이려고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아름다운지의 여부는 타인의 눈으로 결정된다는 것이다. 아름답기를 소망하는 일 자체는 즐거움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정해진 기준에 맞아야만 아름다울 수 있다면 기분은 나빠지고 병이 날 수도 있다. 아름다움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시대를 초월해 아름답다는 평가를 들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름다움은 표현과 감상의 테두리 안에 있는 현상이다.” (23쪽)

 

외모가 아름다운 사람들은 양면적인 위치에 있다. 그들은 사람들의 평가적인 시선을 피할 수가 없다. 여성들은 타인의 시선을 잘 감지한다. 여성들은 자신을 남들의 시선으로 바라보곤 한다.
“자신의 아름다움을 확인하길 원하지만 동시에 자신을 객관적 대상으로 체험하고 싶지 않은 마음은 서로 모순이다. 아름다움을 내보이고 성적인 신호를 발산하면서도 남의 눈에 띄고 싶지 않다는 마음, 그것이 여성들의 모순된 심리이다.” (23쪽)

 

좋아서 자발적으로 몸을 연출해보이는 것과 마지못해 꾸미는 것은 분명 다르다. 강박과 괴로움이 시작되는 지점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이때부터는 아름다움이 병이 된다.
“외모를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것에 대해선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런 노력이 즐거움을 주며 개성을 확장시켜 주는 한에서는 말이다. 하지만 그것이 개성을 억압하고 제한한다면 분명 문제가 있다.” (33쪽)

 

초기 페미니스트들은 여성미라는 개념과 여성 육체의 성적 대상화를 비판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외모를 꾸미는 노력이 여성운동에 대한 배반이라고 보았다. 그들은 브래지어를 공개화형시켰고 성적인 느낌이 들지 않는 옷을 입었다. 이런 저항적 행위는 물론 여성운동의 정치적 전략의 일부분이었다. 여성들은 봐란 듯이 외모를 꾸미지 않음으로써 남성들과 동등한 선에 서려고 했다. 존중받기 위해 아름답게 꾸밀 필요가 없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었다. 하지만 어느 사이엔가 이 전략의 효과는 떨어졌다. 왜냐하면 화장과 치장을 거부하는 해방적 행위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은 여전히 자신의 육체를 불만스럽게 여겼기 때문이다. 미국의 심리학 잡지 <사이콜로지 투데이>의 조사에 따르면,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여기는 여성들의 39%가 자신의 육체에 만족하지 못한다고 대답했다. 아름다움에 대한 욕구가 있는 한, 여성미에 관한 규범적 고정관념을 거부하는 일도 해결책이 될 수는 없었다. (35쪽)

 

“여성들에게 외모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래서 외모는 정체성을 위협하는 가장 강력한 요인이기도 하다. 수많은 여성들이 상상 속에서 자신의 몸을 심하게 왜곡시킨다. 자신의 몸에 대해 부정적으로 일그러진 이미지를 갖는 것은 여성들에게는 흔한 일일 뿐, 특이하거나 예외적인 일이 아니다.” (137쪽)

 

자기 외모를 부끄러워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그 불안은 아름다움이나 여성다움을 인정받지 못하면 어떻게 할까 하는 불안과 연관이 있다. 그리고 더 깊은 곳에는 이 모든 것 때문에 사랑받지 못하면 어떻게 할까 하는 두려움이 있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많은 여성들이 자진해서 적응을 하게 되며 스스로의 해방을 어렵게 하게 된다. 즉 아름다움의 신화를 남들이 정의하는 것으로 인식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욕구로 여기게 되기 때문이다. (164쪽)

 

아름다우려면 마땅히 노력을 해야 하고, 일단 아름다워진 다음에는 그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아름답고자 하는 여성들의 열망은 너무도 큰 나머지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몸을 스스로 마구 훼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179쪽)

 

여성들이 거울을 보는 것은 허영심이나 자아도취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스스로를 비판적으로 평가, 검토하기 위해서이다. 거울 속의 자기 모습을 보고 도취되는 여성은 거의 없고, 오히려 부족한 점을 확인하곤 한다. 거울을 볼 때 여성은 자기의 모습을 자신의 눈으로뿐 아니라, 타인의 눈으로도 본다. 거울은 타인의 시선이기도 한 것이다. (1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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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5-09-08 2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늘부터 난생처음 페미니즘 책 읽고 있습니다. 나중 다 읽고 의견 교환 기대됩니다. ^^

cyrus 2015-09-08 22:43   좋아요 1 | URL
어떤 책을 읽고 있으신지요? 궁금합니다. ^^

yureka01 2015-09-08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본주의와 결합된 섹스와 미용과 성형 산업은 이젠 종교 같아요..

cyrus 2015-09-08 22:47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요즘 남자들도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산업 종교에 빠지고 말았어요.
 

 

 

 

 

 

 

 

 

 

 

 

 

 

 

 

 

 

 

 

 

 

 

 

 

 

 

 

 

 

 

 

 

이 세상에 절대로 읽어선 안 되는 ‘저주의 책’이 존재하고 있을까? 상상 속에서나 존재할 법한 책이 실제로 있다고 믿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네크로노미콘>은 지금까지도 논란의 중심에 선 비밀의 책이다. 이 책은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에서 등장한 가상의 책이다. ‘미치광이 시인’이라고 불리던 압둘 알하즈레드가 쓴 불길한 책으로 알려졌다. 물론, 압둘 알하즈레드도 러브크래프트가 만들어 낸 가공의 인물이다. 러브크래프트는 『네크로노미콘의 역사』라는 제목의 페이크 논픽션을 남겼는데, 일부 독자들은 이 글을 근거로 <네크로노미콘>이 진본이라고 믿는다. 이 글을 보면 러브크래프트이 <네크로노미콘>이 번역되는 과정 그리고 보관된 장소까지 사실적으로 기록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네크로노미콘의 역사』에 따르면, <네크로노미콘>이 그리스어로 번역되면서 유럽에까지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종교 기관은 끔찍한 내용을 담은 책에 금서 처분을 내려 모조리 불태워버렸다. 화염 구덩이 속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네크로노미톤>은 총 11권. 이 중에 아랍어 원본에 가까운 책은 불과 다섯 권이다. 다섯 권의 원본이 있는 장소는 다음과 같다.

 

대영박물관, 프랑스 국립도서관, 하버드대학 위드너 도서관,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 미스캐토닉 대학 도서관

 

이걸 진짜로 믿는 사람이 없으리라 생각한다. 이 정보 또한 러브크래프트가 진실처럼 꾸미게 한 트릭이다. 매사추세츠 주의 아캄이라는 도시에 있는 미스캐토닉 대학 도서관은 러브크래프트 소설의 배경으로 자주 언급되는 가상의 장소다. 러브크래프트는 <네크로노미콘>에 정확히 어떤 내용이 있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네크로노미콘의 역사』는 허구와 진실의 경계를 무의미하게 만들어 책의 신화를 더욱 공고하게 해준다. 비밀에 가까운 설정은 러브크래프트 추종자들의 호기심과 상상력을 부추겼다. 이 가상의 책 한 권으로 러브크래프트 추종자들은 원작을 뛰어넘은 ‘크툴루 신화’를 만들어냈다.

 

가상의 금서 그리고 허구와 진실의 구분을 불분명하게 만드는 이야기. 독자의 판단을 흐트러뜨리는 러브크래프트의 상상력은 독창적인 것은 분명하나 그에게 영향을 준 작가를 잊어선 안 된다. 로버트 윌리엄 체임버스. 러브크래프트의 명성에 가려진 미국 공포문학 작가다. 그의 대표작인 《노란 옷 왕》은 『The Repairer of Reputations』과 『The Yellow Sign』을 포함한 총 10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러프크래프트는 《노란 옷 왕》(The King in Yellow)을 ‘공포와 광기, 기괴한 비극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작품’으로 평가했다.

 

 

 

 

 

'노란 표적'을 들고 있는 노란 옷 왕

 

『The Repairer of Reputations』, 우리말 제목으로 ‘명예 수선공’ 또는 ‘명예회복 해결사’로 부른다. 이 작품과 ‘노란 표적’으로 알려진 『The Yellow Sign』에는 공통적인 모티프가 등장하는데, <노란 옷 왕>이라는 불가사의한 책이다. 이 가상의 책은 희곡 작품이다. 그런데 어떠한 내용인지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는다. 다만, 이 책을 읽는 사람은 원인을 알 수 없는 광기에 휩싸인다. 그리고 노란 표적을 가진 사람은 ‘노란 옷 왕’의 저주를 받는다. 노란 옷 왕과 노란 표적은 미지의 고대 도시로 알려진 카르코사에서 왔다고 전해졌을 뿐,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나오지 않는다. 소설에 잠깐 언급되는 ‘하스티르(Hastur, ‘하스터’, ‘해스터’라고 부르기도 한다)’라는 단어 또한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가 없다. 불가사의한 현상과 사물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은 설정은 독자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공포감을 조성한다. 이러한 효과는 러브크래프트가 생각하는 공포, 바로 ‘미지에 대한 공포’에 부합한다.

 

그런데 《노란 옷 왕》에 나오는 ‘카르코사’, ‘하스티르’, ‘할리 호수’ 등과 같은 가상의 지명은 체임버스가 만든 것이 아니다. 앰브로스 비어스가 쓴 단편소설 『카르코사의 망자』와 『양치기 하이타』에 먼저 나왔다. 『양치기 하이타』에서 하스티르는 선량한 목신으로 등장한다. 『카르코사의 망자』는 인용문으로 시작되는데 그 인용문을 쓴 사람의 이름이 ‘할리’다. 체임버스는 『The Repairer of Reputations』에서 ‘할리’를 가상의 호수 이름으로 만들었다. 재미있게도 러브크래프트의 소설 『어둠 속에서 속삭이는 자』에 ‘하스티르’, ‘할리 호수’, 그리고 노란 부적을 언급한다. 러브크래프트 문학을 널리 알린 어네스트 덜레스는 세 사람이 사용한 공포 소재를 새로운 ‘크툴루 신화’에 편입시킨다. 이렇다 보니, 체임버스의 ‘노란 옷 왕’과 노란 부적이 러브크래프트로부터 영향을 받아서 만든 창작물로 오해를 받기도 한다.

 

비어스의 『카르코사의 망자』와 『양치기 하이타』, 그다음에 체임버스의 《노란 옷 왕》, 러브크래프트의 소설 순으로 읽어보면 세 사람이 공통으로 보여주고자 한 ‘공포’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비밀의 베일에 싸인 초자연적인 현상을 다룬 그들의 작품이 재미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하지만 공포영화가 등장하지 않은 시대에 활동했던 세 사람은 소설을 통해 미지의 세계가 전달하는 차원 높은 공포를 자아내는 데 성공했다.

 

 

 

 

※ 이 글에 소개된 비어스, 체임버스,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이 수록된 책은 다음과 같다.

 

 

* 로버트 W. 체임버스

《노란 옷 왕》(아티초크, 2014) - 명예회복 해결사, 노란 표적

《세계 호러 걸작선》(책세상, 2004) - 옐로 사인

《러브크래프트 전집 6》(황금가지, 2015) - 명예 수선공

《The King in Yellow - 영어로 읽는 세계문학 272》(eBook / 내츄럴, 2014) -

원작에 있는 열편의 작품 모두 수록되어 있음

《세계 호러 단편 100선》(책세상, 2005) - 장례 (Pompe Funebre, 1897년에 발표한 단편소설집 <The Mystery of Choice>에 수록된 작품)

 

 

* 앰브로즈 비어스 『카르코사의 망자』

《노란 옷 왕》(아티초크, 2014)

《아울크리크 다리에서 생긴 일》(더스타일, 2013) - ‘카르코사의 주민’

 

 

* 앰브로즈 비어스 『양치기 하이타』

《러브크래프트 전집 6》(황금가지, 2015)

 

 

* 러브크래프트

《러브크래프트 전집 1》(황금가지, 2009) - 『네크로노미콘의 역사』

《러브크래프트 전집 2》(황금가지, 2009) - 『어둠 속에서 속삭이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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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비 2015-09-06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러브크래프트는 예전에 단편으로 살짝 맛을 보고 계속 읽어야지....하면서도 미루고 있네요. 그러면서도 가끔씩 공포소설이나 만화속에 크툴루 신화가 등장하거나 언급되면 빨리 읽어봐야지..하는데도 선뜻 손이 안갑니다. 이상하게 숙제같은 책이예요. 읽긴 읽어야하는데.. 언제 읽을지는 모르겠어요. 이렇게 cyrus님의 페이퍼를 보면 또 읽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서도 자꾸 피하게 되는것이 이상해요. ㅎㅎ

cyrus 2015-09-08 17:57   좋아요 0 | URL
솔직히 말하자면, 책 읽기를 미룬다면 안 읽는 것이 낫습니다. 러브크래프프의 소설은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립니다. 저처럼 옛날 호러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은 러브크래프트를 즐겨 읽는다면, 현대 공포물에 익숙한 사람은 러브크래프트의 스토리텔링에 재미를 느끼지 못할 겁니다. 그러니 보슬비님의 마음을 믿고 따르십시오. ^^

보슬비 2015-09-11 00:26   좋아요 0 | URL
사실 그 단편이 전 좋았어요. ㅎㅎ
기묘하고 끈쩍끈적한 불쾌함이 좋았던것 같은데, 그 기분을 지속적으로 감당하려면 마음의 준비가 필요해서 계속 미루고 있나봐요. 한번 날 잡긴해야할것 같아요. 조금 더 스산해지는 늦가을에서 초겨울 사이쯤... ^^

물고기자리 2015-09-06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러브크래프트 전집을 클릭해보니 cyrus 님 리뷰가 많네요^^ 장르소설을 정말 좋아하는데 언제 꼭 읽어봐야겠어요 ㅎ

cyrus 2015-09-08 17:57   좋아요 0 | URL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을 재미있다고 말은 안 하겠습니다. ㅎㅎㅎ

에이바 2015-09-08 2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트루 디텍티브 시즌 1도 언급해주세요!! ㅎㅎ 카르코사 노란 옷 왕!!

cyrus 2015-09-08 22:49   좋아요 0 | URL
그 미드를 보려고 다운로드 사이트를 확인하고 있습니다. ㅎㅎㅎ
 

 

 

 

 

 

 

어제 헌책방에서 구한 책. 발트라우트 포슈의 《몸 숭배와 광기》(여성신문사, 2001)는 여성의 육체가 ‘아름다움’을 숭배하는 사회 현상에 옥죄는 상황을 날카롭게 분석한 책이다. 2004년, 같은 출판사에서 새로운 표지로 개정판이 나왔지만, 이 책 역시 절판되었다. 밑줄이 많이 그어져 있지만, 구판이라도 구한 게 어딘가. 헌책방에서 만나는 절판본 중에는 재출간되었으면 바라는 좋은 책이 많다. 《몸 숭배와 광기》도 마찬가지다. 어제부터 읽기 시작해서 거의 절반까지 다 읽었는데, 남자인 내가 봐도 정말 공감되는 내용이 많았다. 이 책은 1999년에 오스트리아에서 출간되었다. 그런데도 십여 년 뒤에 펼쳐지게 될 ‘아름다움’에 맹신하는 사회를 보여주고 있다. 늘 변함없이 아름다운 여성성을 바라는 이 세상에 꼭 읽어야 할 책인 건 분명하다.

 

 

 

 

밑줄은 자로 잰 상태로 반듯하게 그어져 있다. 밑줄을 아주 정결하게 그은 거로 봐서는 여성 독자가 남긴 독서의 흔적인 것 같지만, 확실하게 단정하지 않겠다. 깔끔한 상태를 좋아하는 남성 독자가 자로 밑줄을 그을 수도 있으니까. 그렇지만 밑줄 흔적을 남긴 사람이 여성 독자라는 사실 쪽에 기울이는 이유가 밑줄 친 내용 대부분이 여성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몸 숭배와 광기》를 다 읽으면 밑줄 친 내용만 따로 소개하겠다.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알라딘 서재 이웃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사진 관련 책을 고르지 않았을 것이다. 볼프강 켐프의 《세계의 사진가 24인이 집필한 현대사진미학 1945-1980》(해뜸, 1988)은 사진 매체의 개념을 규명하는 논문, 비평문의 일부를 발췌한 내용을 모은 책이다. 사진에 문외한인 나에게 적합한 책이라고 생각해서 골랐는데, 역자는 이 책을 사진 전공 학도들에게 유용한 이론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썼다고 한다. 전체적으로 훑어봐서는 어렵지 않게 느껴진다.

 

 

 

볼프강 켐프의 책이 원래는 총 3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1권은 1839년에서 1918년까지, 2권은 1912년에서 1945년까지의 사진 관련 글로 다루어졌는데, 저자명을 검색해보니까 《현대사진미학 1945-1980》 이외에는 더 이상 나오지 않는 거로 봐서는 아직 완역본이 나오지 않은 것 같다. 이 책에 수록된 글을 쓴 필자들이 화려하다. 앙드레 바젱《영화란 무엇인가》(사문난적, 2013)의 저자로 알려진 프랑스의 영화평론가다. 결정적인 순간을 완벽한 구도로 포착해 사진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앙리 까르띠에-브레송은 너무나도 유명하다. 게슈탈트 심리학의 창시자 루돌프 아른하임, 대중적으로 널리 읽히고 있는 사진 비평서로 정평이 난 《사진에 관하여》(On Photography / 이후, 2005)를 쓴 수잔 손택의 글도 보인다. 나머진 필자들은 잘 모르겠다. 혹시 사진을 공부하는 데 알아두어야 할 사람이 있으면 댓글로 알려주셔도 된다.

 

해뜸은 1984년에 설립된 사진 전문 출판사다. 2010년에 사진 책 세 권을 출간한 이후로는 출간 소식이 뜸해졌다. 이 출판사가 처음으로 손택의 <On Photography>을 번역했다. 《사진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1986년에 출간되었다. 《사진 이야기》와 《현대사진미학 1945-1980》은 각각 ‘사진시대총서’ 시리즈 2번째, 11번째로 나온 것이다. ‘사진시대총서’는 총 26권으로 구성되었다. 이 시리즈의 9번째 책은 20세기 전설적 종군기자 로버트 카파의 <Slightly Out Of Focus>다. 이 책은 2006년에 《그때 카파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으로 재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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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5-09-06 2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 읽으면 밑줄친 내용만 따로 소개하겠다`는 말씀은 이전 소유자의 밑줄 친 내용을 언급하신 건가요? 그렇다면 이전 소유자의 내용으로 리뷰 쓰신다는 아주 흥미로운 방식 될 듯 합니다. 기대됩니다. ^^

cyrus 2015-09-06 21:52   좋아요 0 | URL
네, 맞습니다. 밑줄 덕분에 책을 금방 읽을 수 있었습니다. 생각보다 밑줄 친 내용이 많았습니다. 좋은 내용만 따로 분류해서 정리하겠습니다. ^^

AgalmA 2015-09-06 21: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몸과 사진이라면 존 퓰츠 <사진에 나타난 몸>도 읽을만 하죠.
19세기 사진기술의 초창기 초상사진의 인종차별적 성격부터 해서 에로티시즘-모더니즘-사회성(대공황과 세계대전)-정치성(베트남전쟁과 페미니스트)-포스트모더니즘(소비사회와 동성애) 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도판도 많고, 유익한 내용이 많아요. 읽고 계신 책과 어느 정도 겹치는 지 모르겠는데, 몸에 대한 주제로 인문학적으로 훑어보기 좋아 cyrus님이 관심 가지실 만한 책이라고 생각해서 추천^^

cyrus 2015-09-06 21:56   좋아요 1 | URL
좋은 책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초창기 사진 역사부터 언급되는 책이니 꼭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전에 아갈마님이 사진에 관한 주제로 글을 쓰신 적이 있던 것 같은데, 저 같은 사진에 대해서 알려고 시작하는 독자를 위해 읽어볼만한 책이 있으면 알려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

2015-09-06 22: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5-09-08 18:00   좋아요 0 | URL
사실 제대로 안 읽고, 중간에 덮은 책도 많습니다. 제가 한 권 붙잡고 완독하는 독서 스타일이 아니고, 여러 권 한꺼번에 읽는 산만한 독서 스타일입니다. 블로그에서 열심히 읽는 척 하는 것이지요. ^^
 
지금 여기 페미니즘 - 함께 공부하는 여성권 강의 사회운동 작은책 2
이유미 지음 / 사회운동 / 2015년 3월
평점 :
절판


 

 

 

페미니즘은 억압과 불평등의 구조적 모순을 해체하는 명제를 전제하고 있다. 그러므로 기존의 왜곡된 가치 질서를 붕괴시키고 평등한 세상으로 바꾸려는 실천적 성격이 강하다. 이로 인해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는 종종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가장 큰 이유는 TV나 영화 등 미디어가 페미니즘, 페미니스트에 대한 이미지를 왜곡해 왔기 때문이다. 미디어를 통해 묘사되는 페미니스트들은 주로 못생기고, 과격하고, 남성을 혐오하는 이미지가 대부분이었다. 어느 팝 칼럼니스트는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IS보다 페미니즘이 더 위험하다”는 칼럼을 기고하여 페미니즘을 ‘무뇌아적’이라는 오명을 덧씌웠다. 그는 칼럼 논란 사건을 통해 스스로 페미니즘에 대해 얼마나 비뚤어진 시각을 가졌는지를 보여줬다. 여권이 많이 신장한 요즘 남자들이 페미니즘에 대해 고깝게 생각할 수도 있다. 일부 편향된 페미니즘이 여성에게 우월적 지위를 주거나 최소한 남성에게 상대적 불이익을 주는 경우가 아예 없는 게 아니다. 그러나 페미니즘이 ‘남성혐오’와 동등한 단어로 오해받는 상황은 너무나도 불행한 일이다. 이것은 페미니스트에 대한 지독한 모욕이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사회적 역할이 크게 확대되고 있지만, 남성 중심적인 문화가 견고한 분야에선 여전히 여성의 사회 참여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물론 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각종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고 있다. 그러나 여성은 동등한 존재로서가 아닌, ‘남성에 의해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라는 인식 역시 뿌리 깊게 남아 있기도 하다. 법적으로 명문화된 공식문서들은 성별에 의한 차별 없이 그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명시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의 교육이 공식적, 명시적 차원에서 남녀에게 동일한 교육목적과 가치를 고양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우리 사회에 고착된 ‘여성스러움’과 ‘남성스러움’이라는 큰 틀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성의 영역은 가정이라는 사적 영역이며, 소비의 주체이고, 가사노동 전담자라면, 남성은 국가와 사회를 책임지는 공인으로서 다양한 경제활동영역에 참여하는 생산자로 등장한다. 여성 또는 남성이라는 이름의 울타리는 여전히 사리지지 않았다.

 

《지금 여기 페미니즘》은 새로운 내용으로 채워져 있진 않다. 어디선가 한번 들었음 직한 그런 얘기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도 식상하지 않은 이유는 그동안 살면서 페미니즘의 렌즈로 남녀 문제를 바라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페미니즘의 렌즈를 착용하는 것이 낯선 이유가 바로 단순히 ‘페미니즘의 과잉’ 탓이 아니다. ‘페미니즘의 과소’가 원인이다. 제도적인 측면에서 여성의 권리가 많이 신장하였다고는 하나, 페미니즘과 여성 운동은 그동안 남성혐오의 그늘에 가려져 ‘여성의 시각’의 필요함을 역설하지 못했다. 왜 여성은 끊임없는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일하지 않는 존재’로 인식되는지, 왜 여성이란 이유만으로 취업, 승진 순위에서 늘 밀려나는지, 왜 여성은 강간을 당하고도 그 불합리함을 소리 내어 말 못하는지, 이런 문제 제기의 목소리를 잊혔다.

 

《지금 여기 페미니즘》을 읽는 동안 이론서 속의 여신이었던 페미니즘이 그 높은 데에서 걸어 들어와 내 머릿속으로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머리는 페미니스트이되 생활 속에서는 자기도 모르는 성차별주의자로 살아가는 나를 위하여 이 책은 그렇게 다가왔다. 여성 노동운동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이유미는 이 책을 통해 페미니즘과 소원한 남녀 독자들에게 페미니즘의 핵심을 설명한다. 저자는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여성권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은 독자에게 말을 걸고, 질문을 한다.

 

사람마다 각기 다른 인식의 틀을 갖고 살듯, 그보다 더욱 다양한 방식으로 인간의 삶은 그려지고 있다. 그러기에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오는 차이와 다양성은 곧 더욱 복잡한 사회 구조와 더 많은 분리를 낳게 된다. 결국, 우리가 차이를 차별로 귀결시키는 편견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선 우리의 사고를 결정짓는 인식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여성권이 보장받기 위한 운동은 편한 삶을 지향하지 않는다. 이것은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일들을 머리 맞대고 의논하는 힘든 삶이다. 차별과 편견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고 끝까지 고민하는 삶이다. 새롭고 더 나은 대안을 고민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화시킬 수 없음을 아는 어려운 삶이다. 머릿속의 운동이 너무 편한 것만 쫓고 있는 건 아닌지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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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5-09-05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양한 책 읽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누구든 휴머니스트라면 페미니스트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 둘을 동의어로 이해합니다.

cyrus 2015-09-06 20:11   좋아요 0 | URL
좋은 말씀입니다. 제가 쓴 글을 단 한 줄로 정리하셨군요. 남성과 여성은 같은 인간이기에 절대로 한 쪽만 차별해서도, 혐오감을 가져선 안 됩니다.

단발머리 2015-09-07 0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사회가 페미니즘의 렌즈를 착용하는 것이 낯선 이유가 바로 단순히 ‘페미니즘의 과잉’ 탓이 아니다. ‘페미니즘의 과소’가 원인이다.

이런 글을 쓰는 `남자들`을... 저는 기다립니다.
정희진씨 말처럼, 여성으로서 자신의 삶을 직시하게 된다면 어느 여성이든 여성학에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남자로서는 입장이 다를수도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페미니즘=남성 혐오라고 이해하는 남자들이 의외로 많으니까요.
항상 그렇지만,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cyrus 2015-09-08 18:02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페미니즘의 과소’을 심각하게 여기는 남성 페미니스트가 많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