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에는 정말 별 이상한 사람들의 정신 상태를 보여주는 글과 사진들이 떠돈다. 안 보고 싶어도, 어쩔 수 없이 보게 된다. 생판 모르는 사람이 올린 글과 사진에 페이스북 친구가 ‘좋아요’를 누르면, 페이스북 친구인 나도 그걸 볼 수 있다. 생각해 보면 끔찍한 일 아닌가. 내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과 사진이 ‘페이스북 친구’ 관계도 아닌 사람 또한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나는 일주일에 두 번 정도 페이스북을 접속한다. 하루에 두세 번 이상 페이스북을 접속한 적이 없다. 정말 할 일 없을 때 불필요한 정보만 가득 널려있는 페이스북을 접속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책 이야기 가득한 북플을 접속하는 것이 더 낫다고 본다. 북플도 어느새 페이스북처럼 일상을 찍은 사진이 있는 글이 많아졌지만, 아직까지는 참을 만하다.
각설하고, 어제 페이스북에 접속하면서 어떤 사람이 캡처해서 자신의 타임라인에 올린 사진을 보게 되었다. 페이스북 친구가 누른 ‘좋아요’ 덕분에 아주 어이없는 사진을 봤다. 출처가 어딘지 잘 모르지만, 어떤 여자가 답변을 구하려고 인터넷 게시판에 질문을 올렸다. 그 질문이 가관이다. 연봉 3,200만 원을 버는 27세 남자친구를 둔 여자가 결혼하면 맞벌이를 안 해도 되는지 물어봤다. 이 여자는 돈 잘 버는 남자를 만나 결혼해서 안락한 생활을 누리고 싶은 마음을 아주 솔직하게 표현했다. 남자의 경제적 형편을 믿고 결혼을 고민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사실 남자 또한 교제하는 여성의 경제적 조건을 고려하면서 결혼을 고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혼한 여자가 일하는 것을 ‘성폭행’이라고 생각하는 그녀의 발언이 심히 걱정된다. 이 문제가 되는 발언은 여성을 ‘김치녀’라고 말하면서 극도로 혐오하는 자들에게 좋은 먹잇감이 된다. 남자를 조금이라도 무시하는 듯한 발언만 보면 득달같이 달려드는 여성 혐오 남자들은 이 여자를 전형적인 ‘김치녀’의 전형이라고 비하할 것이다. 페이스북에도 여성 혐오 남자들의 글이나 재미로 ‘김치녀’라는 단어를 쓰는 사람의 글을 종종 보게 된다.
그러나 여자의 발언에 분노하고, 혐오한다고 해도 이것을 정당한 비판으로 볼 수 없다. 일단 이 여자가 생각하는 ‘성폭행’의 의미가 왜곡되었음을 알려주어야 한다. 이러한 설명 없이 무조건 ‘김치녀’라고 욕하는 태도는 옮지 않는다. 최근 성과 관련된 각종 사건이 빈발하면서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 ‘성폭력’ 등 다양한 단어가 난무하고 있다. 이들 용어는 개념이 각각 다르고 그 행위에 대한 책임에도 차이가 있다.
‘성폭행’은 강간과 강간 미수를 말한다. 당연히 여자의 ‘성폭행’ 발언은 논리적으로 성립할 수 없다. 여자는 맞벌이 생활을 좋아하지 않는다. 맞벌이 생활을 제안하는 남편이 못마땅하다. 여자는 ‘성폭행’을 남자가 여자에게 일하는 것을 강요하는 일인 것처럼 너무 단순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렇다면 ‘성폭력’은 ‘성폭행’의 의미와 무슨 차이가 있을까.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성폭력’을 ‘성을 매개로 해서 상대방의 의사에 반해 이뤄지는 모든 가해행위’라고 정의한다. 성희롱이나 성추행, 성폭행 등은 모두 성폭력의 개념에 포함된다. 여기까지는 헌법에서 규정하는 ‘성폭력’의 일차적 의미다. 요즘에는 여성에 대한 폭력도 ‘성폭력’으로 포함하기도 한다. 여성을 ‘인격체’로 대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성욕을 표출하거나 성적 수치심을 불러일으키는 행위를 ‘성폭력’으로 본다. ‘성폭행’의 의미를 착각해서 오용한 여자를 향해 무심코 ‘김치녀’라고 비하하는 행위는 언어폭력이다. ‘김치녀’ 발언은 여성을 ‘인격체’로 대하지 않는 혐오를 기저에 깔고 있다. 이 단어의 의미를 모르면서 마치 유행어처럼 농담으로 사용하는 아이들이 많아질까 봐 걱정된다. 장담하건대, 분명히 이 캡처 사진은 여기저기 공유되면서 떠돌다가 일베 사이트로 향하게 될 것이다. 이 글을 보고 ‘열폭’하는 일베 회원이 비로그인 상태에서 댓글을 남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