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고 있는 오늘은 선선해서 좋네요. 이틀 전인 월요일은 산들대는 바람에 조금은 서늘했습니다. 그날은 공부하기 딱 좋은 날이었어요. 페미니즘 북클럽 레드스타킹이 주최한 ‘페미니즘 스쿨’ 첫 번째 강연이 시작된 날이었거든요.

 

 

 

 

 

 

 

 

 

 

 

 

 

 

 

 

 

 

* [페미 스쿨 첫 번째 교재] 오드리 로드 《시스터 아웃사이더》 (후마니타스, 2018)

 

 

 

사실 지난주 월요일(7월 1일)에 열린 세미나가 ‘페미니즘 스쿨’의 시작을 연 첫 번째 일정이었습니다. 그날 세미나에서는 오랜만에 얼굴을 보인 레드스타킹 멤버들과 페미니즘 스쿨에 등록한 새로운 분들이 참석했습니다. 페미니즘 스쿨을 등록한 세 명을 포함해서 총 열다섯 명이 세미나에 참석했습니다. 3주 동안 읽게 될 오드리 로드(Audre Lorde)《시스터 아웃사이더》 (후마니타스)에 대해서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눠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틀 전 월요일에 진행된 첫 번째 강연의 주제는 ‘교차성 페미니즘(intersectional feminism)입니다. 이 날 강연은 교차성 페미니즘이 탄생하게 된 배경과 교차성 이론을 둘러싼 다양한 정의와 방법론들에 대해서 알아보는 시간이었습니다.

 

‘교차성’이라는 용어는 1989년에 미국의 페미니스트 법학자 킴벌리 크랜쇼(Kimberlé Crenshaw)가 처음으로 사용했습니다. 정확히 30년 전에 나온 학술 용어인데, 이 사실만 보고 교차성 페미니즘의 역사가 생각보다 짧다고 느껴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몇몇 학자들은 크랜쇼가 교차성이라는 개념을 제시하기 전에도 이미 페미니즘 안에서 교차성 담론이 형성되었다고 주장합니다.

 

 

 

 

 

 

 

 

 

 

 

 

 

 

 

 

 

 

 

* [2018년 레드스타킹 일곱 번째 선정 도서] 패트리샤 콜린스 《흑인 페미니즘 사상》 (여성문화이론연구소, 2009)

 

 

 

교차성 페미니즘을 논할 때 가장 먼저 언급해야 하고, 잊어선 안 될 인물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소저너 트루스(Sojourner Truth, 1797~1883)입니다. 그녀는 네덜란드인 지주가 운영하는 미국 농장의 노예로 태어났습니다. 본명은 이사벨라 바움프리(Isabella Baumfree)였습니다. 그녀는 노예 출신 흑인 남성과 결혼하여 아이를 낳았습니다. 1826년에 딸을 데리고 탈출을 감행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노예제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남부에서 북부로 이주하는 노예들이 많았어요.

 

노예제가 적용되지 않은 뉴욕에 정착한 바움프리는 1843년에 ‘소저너 트루스’라는 새로운 이름을 만들어 노예제 폐지 운동과 여성 인권 운동에 참여했습니다. 트루스는 1851년 미국 오하이오주에 열린 여성 권리 대회에 참가했는데요, 그녀는 이 대회에서 노예 해방 운동 역사와 페미니즘 역사에 길이 남을 명연설을 합니다.

 

 

 저기 있는 저 남자 분은 여성은 마차에 탈 때 도움을 받아야 하며 구덩이에서 나올 때도 남자가 들어 올려 주어야 하고 모든 곳에서 가장 좋은 곳을 차지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아무도 내가 마차를 타거나 진창을 지나야 할 때 도와주지 않으며 아무도 내게 가장 좋은 곳을 내어주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여성이 아니란 말입니까?(Ain’t I a Woman?) 나를 보십시오! 이 팔을 보십시오! 나는 어느 남자보다도 더 많이 쟁기를 끌었고 씨를 뿌렸으며 곡물을 거두어 곳간에 넣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여성이 아니란 말입니까? 나는 남성과 똑같이 일할 수 있고, 충분한 음식이 있다면 남자만큼이나 많이 먹고, 채찍질을 견딜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여성이 아니란 말입니까? 나는 열세 명의 아이를 낳았으며 이 아이들 모두가 노예로 팔려가는 것을 보아야 했습니다. 내가 어머니로서 슬픔에 겨워 울 때 주님 말고는 아무도 제 슬픈 울음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여성이 아니란 말입니까?

 

 

(박미선 옮김, 《흑인 페미니즘 사상》, 44쪽, 밑줄은 cyrus가 내용을 강조하기 위해 표시한 것임)

 

 

 

사회적 약자로서의 정체성을 여러 겹 지닌 트루스는 ‘흑인’과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하는 백인들을 향해 “나는 여성이 아닙니까?”라고 되물었습니다. 흑인 여성 인권 운동은 19세기 초 백인 여성 인권 운동과 동시에 진행되었지만, 그들이 추구하는 것과 투쟁 노선 방식이 서로 달랐습니다. 흑인 여성들은 인종 차별과 성차별의 이중 억압 아래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노예제 사회에서 흑인의 젠더는 주목받지 못한 명제였고, 먼 훗날 흑인 인권이 부각되었을 때도 ‘인종’이란 대명제에 밀려 더 음습한 곳으로 밀려났습니다. 교차성 페미니즘은 여성을 둘러싼 차별과 불평등 문제를 인종, 계급, 섹슈얼리티와 관련된 억압 문제와 따로 분리해서 보지 않습니다. 서로 ‘상호 연관’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죠. 교차성 페미니즘 담론이 형성되면서 흑인 페미니스트들은 흑인 남성과 백인 여성에 가려져 아주 오랫동안 밀려나있던 흑인 여성들의 삶과 목소리에 주목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교차성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페미니즘 스쿨’ 전담 교사인 전혜은 선생님은 교차성을 ‘차이를 사유하는 방식’과 밀접하게 관련된 개념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자, 이제 교차성이 학문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좀 더 깊이 있게 접근해볼까요?

 

크랜쇼는 인종과 젠더가 교차하는 다양한 방식을 나타내기 위해 ‘교차성’을 제시했습니다. 그녀는 이 개념을 가지고 ‘단일 축 사유’의 한계를 지적합니다. 단일 축 사유란 어떠한 대상이나 존재 또는 문제를 단일하게 바라보거나 규정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를테면 과거에 백인 여성 페미니스트들은 “모든 여성이 겪는 억압은 비슷해. 따라서 가부장제를 공격하려면 여성들을 연대하게 만드는 자매애(sisterhood)가 있어야 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그 유명한 “자매애는 강하다”라는 구호가 나오게 됐죠. 그런데 여성이 겪는 억압을 단일하게 볼 수 있을까요? 또 이 세상의 모든 여성을 ‘자매’라는 이름으로 단일한 집단으로 묘사할 수 있을까요? 이러한 질문이 크랜쇼가 교차성 개념을 제시한 목적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크랜쇼는 ‘자매애’를 강조하는 것만으로는 백인 여성들이 겪어보지 못한 흑인 여성의 인종차별 문제를 포괄하기 어렵다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크랜쇼가 말한 교차성은 유색인 여성들이 겪는 젠더와 인종 문제를 설명할 수 있도록 틀을 짜는 개념입니다. 결국 교차성은 ‘차이에 대한 민감성(전혜은)이 있어야 이해할 수 있는 개념입니다. 교차성의 의미를 이해했으면 ‘침묵 당해온 소수자들에게 목소리를 들려줄 수 있는(전혜은) 방식이 무엇인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지금도 교차성을 주제로 여러 가지 논의들이 나오고 있습니다만, 한편으로는 교차성을 비판하는 의견들도 나오고 있습니다. 장점이 많은 이론이라고 해서 그 이론에 단점이나 한계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에요. 일부 학자는 교차성을 ‘연구 방법론’으로 보기에 빈약하다고 지적합니다. 사실 교차성 이론은 다양한 분과학문의 틀에 맞춰 사용되는 경우가 많았는데요, 이에 대해 학자들은 교차성 이론에 과연 명확하게 규정할 수 있는 정의와 방법론이 있는지 의문을 제기합니다. 오히려 교차성이 지나치게 분과 학문에 의존하고, 거기에 틀에 맞춰 설명하게 되면 정작 중요한 이슈를 지워버릴 수 있다고 비판합니다.

 

여기에 대해 크랜쇼는 반박합니다. “‘교차성은 무엇인가’라고 묻는 것이 뭐가 중요한데?”라고 말이죠. 크랜쇼는 애초에 교차성을 ‘거대 이론’으로 만들 생각이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교차성 이론을 논할 때 ‘교차성이 무엇인지’ 정의를 따지기보다는 ‘교차성이 무엇을 하는지’에 초점을 맞추자고 제안합니다. 즉 우리가 ‘교차성’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해보자는 거죠.

 

지금도 학자와 페미니스트(이제 막 페미니즘을 공부하기 시작한 사람들)들은 궁금해 합니다. “교차성이라는 게 도대체 무엇인가요?” 아마도 사람마다 생각하는 교차성의 정의는 제각각 다를 것입니다. 그렇다면 개념 정의조차 명확하지 않은 교차성 이론은 너무 난해해서 공부할 필요가 없고, 페미니즘을 연구하는데 쓸모없는 이론일까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실번 톰킨스(Silvan Tomkins, 1911~1991)라는 심리학자는 인간이 만든 모든 이론을 ‘강한 이론(strong theory)’과 ‘약한 이론(weak theory)이라는 두 가지 개념으로 설명했습니다. ‘강한 이론’은 문제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보편적인 방법론을 가지고 있는 이론이라면, ‘약한 이론’은 변동하는 문제 상황의 맥락에 따라서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하는 이론을 의미합니다. 교차성은 ‘약한 이론’에 속합니다. 왜냐하면 교차성 이론은 문제를 명확하게 분석할 수 있는 보편적인 방법론이라기보다는 ‘문제의 복잡성을 이해하면서 사유하는 해석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차성 페미니즘을 이해하게 되면 ‘어떤 (여성을 둘러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한 가지 정답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혜은 선생님은 페미니즘이라는 학문도 ‘약한 이론’에 속한다고 말씀했습니다. 페미니즘이 ‘약한 이론’이라고 해서 그것을 학문이라고 볼 수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도 페미니즘을 체계적인 학문으로 취급하지 않으려는 사람일 것입니다.

 

 

 

 

 

 

 

 

 

 

 

 

 

 

 

 

 

 

 

* 정경직, 최성용, 이아름, 정연 《페미니즘 쉼표, 이분법 앞에서》 (들녘, 2019)

 

 

 

《페미니즘 쉼표, 이분법 앞에서》 (들녘)라는 책에 수록된 『속도와 페미니즘을 사유하다』에 나온 문장을 인용해보겠습니다.

 

 

 일각에서는 페미니즘의 비일관성 · 미완결성 · 다양성을 이유로 페미니즘을 비과학적이고 체계적이지 못한 사상으로 평가절하하거나, 심지어는 철학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참으로 재미있는 주장이다. 과연 철학이나 과학은 체계적이고 일관되며, 완결된 학문일까? 답은 명백하다. 소위 ‘과학적인’ 학문의 대표로 여겨지는 물리학이나 경제학 등의 분야에서도 여전히 수많은 이들이 새 논문을 발표하고, 이질적인 가설을 제시하며, 기존의 이론을 반박하는 등 치열한 논쟁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즉, 완결되지 않고 왕성한 토론이 이루어지는 분야는 오히려 가장 생명력 있는 학문인 것이다. 논쟁이 끝나고, 더 이상 연구할 내용이 없는 학문, 문제 제기할 것이 없는 운동, 새로운 해석 없이는 원전만을 읊어대는 교조주의는 체계적이고 일관되며 완결된 것이 아니라, 죽은 것이다.

 

(장경직, 16~17쪽, 밑줄은 cyrus가 내용을 강조하기 위해 표시한 것임)

 

 

 

급진 페미니즘이든 교차성 이론이든 간에 페미니즘의 모든 이론은 ‘약한 이론’입니다. 페미니즘을 부정하는 사람들 눈에는 페미니즘이 무언가 부족해 보이고, 학문 같지 않다고 느껴지겠죠.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당신들이 체계적인 학문을 그렇게도 좋아한다면 왜 다양한 이론으로 설명되는 다른 학문에 대해선 아무 말도 안 하십니까? 유독 페미니즘에만 열을 내면서 학문이 아니라고 폄하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네요. 당신들 논리라면 일관적이지 않는 진화론(자연선택을 믿는 다윈주의자와 성 선택을 믿는 다윈주의자들 간의 논쟁은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도 학생들이 배우면 안 되겠네요.

 

어떤 사람은 ‘페미니스트는 남성을 혐오하는 워마드다’라고 말합니다. 또 어떤 이는 ‘페미니스트 탈출은 지능 순’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말은 ‘남성을 혐오하고 여성만을 챙기려는 페미니스트들은 지능이 부족하다’는 편견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페미니스트들은 어디선가 공부를 하고 있고, 페미니즘 책을 읽으면서 토론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제가 페미니즘 공부를 좋아하는 이유는 페미니즘은 ‘완결되지 않는 학문’이기 때문입니다. ‘완결되지 않는 학문’은 공부하기가 쉽지 않아요. 공부해야 할 페미니즘 이론이 많고요, 서로 대립하고 있는 페미니스트들(트랜스 여성을 여성으로 보지 않는 ‘일부’ 급진 페미니스트들과 트랜스 여성을 옹호하는 퀴어 페미니스트)을 만나면 혼란스러워요. 그러나 저는 페미니즘을 계속 공부할 것입니다. 계속 공부하다 보면 나를 깜짝 놀라게 해줄(아니면 더 혼란스럽게 만드는) 새로운 페미니즘 이론이나 담론이 나오겠죠. 그럴 때 저는 페미니즘 이론의 유용성을 배우면서, 이론의 한계나 단점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그러려면 논쟁은 피할 수 없습니다. 언젠가는 마주해야 할 상황이죠. 논쟁이 없고, 문제 제기나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페미니즘 공부는 재미가 없어요. 그런 일관된 방향으로 나아가는 페미니즘은 서서히 힘을 잃을 수밖에 없습니다. 페미니즘이 계속 발전할 수 있는 원동력마저 사라지게 되는 거죠.

 

‘약한 이론’의 페미니즘은 가장 생명력 있는 학문입니다. 이 학문에 정답은 없습니다. 입장이 다르다는 이유로 외면하거나 배척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반응은 ‘학문’으로서의 페미니즘이 가지고 있는 생명력을 닳게 만듭니다. 레드스타킹의 페미니즘 스쿨은 페미니즘을 살아 숨 쉴 수 있게 만드는 ‘영양분’과 같은 이론들을 배울 수 있는 곳입니다. 이 ‘영양분(페미니즘 장애학, 주디스 버틀러의 이론 등)’이 엄청 어려워 보이지만, 내 삶과 페미니즘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면 기꺼이 시간을 내서 공부하고 싶습니다.

 

 

 

 

 

 

 

 

※ 레드스타킹이 네이버 카페를 만들었습니다. 페미니즘 스쿨에 등록된 분이 아니어도 카페에 가입할 수 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https://cafe.naver.com/redstoc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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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1 09: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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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1 11: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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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3 02: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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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1 12: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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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유대인’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 어떤 이미지가 떠올리나요? 저는 유대인 하면 탈무드(Talmud)홀로코스트(Holocaust)가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아!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나치 독일의 유대인 말살 정책을 피해 가족들과 함께 숨어 살았던 안네 프랑크(Anne Frank)도 있네요. 우리는 영화나 역사책을 통해 과거 유대인이 겪은 아픔을 잘 알고 있습니다. 나치는 게르만인의 우월성을 바탕으로 한 민족주의를 합리화시키기 위해 수백만 유대인을 학살했습니다. 홀로코스트는 원래 ‘전쟁으로 인해 일어난 대참사’를 뜻하는 단어였어요. 그러다가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뜻하는 고유명사가 되었습니다.

 

 

 

 

 

 

 

 

 

 

 

 

 

 

 

 

 

 

 

* [절판] 노먼 핀켈슈타인 《홀로코스트 산업: 홀로코스트를 초대형 돈벌이로 만든 자들은 누구인가?》 (한겨레출판, 2004)

 

* [품절] 노먼 핀켈슈타인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분쟁의 이미지와 현실: 시오니즘 지식 권력은 어떻게 진실을 왜곡했는가?》 (돌베개, 2004)

 

* [절판] 미하엘 브레너 《다윗의 방패: 시온주의의 역사》 (들녘, 2005)

 

 

 

그런데 이 ‘홀로코스트’라는 고유명사를 내세우면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을 은폐하는 유대인 세력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유대주의(Judaism)라고도 일컫는 시온주의(Zionism)를 신봉합니다. 시온주의가 처음 등장했을 때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은 잃어버린 선조의 땅을 되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시온주의자들은 중동 지역을 지배했던 영국이나 미국과 같은 제국주의 국가에 의존하면서 그들로부터 유대인으로서의 민족 정체성을 인정받으려고 했습니다. 지금도 대다수 유대인은 유대 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시온주의를 지지하면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을 옹호하거나 폭력적인 점령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내지 않습니다. 나치가 부활한 듯한 이스라엘 유대인의 팔레스타인 점령을 비판했다가는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망각한 ‘반유대주의자’로 몰릴 수 있거든요. 서구의 유대계 출신 지식인들이 몸을 사리는 이유입니다.

 

 

 

 

 

 

 

 

 

 

 

 

 

 

 

 

 

* 주디스 버틀러 《위태로운 삶》 (필로소픽, 2018)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는 팔레스타인을 점령하려는 이스라엘의 군사 정책 정책을 정당화하는 ‘진리’로 행세하는 시온주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합니다. 《위태로운 삶》에 수록된 『반유대주의라는 비난: 유대인, 이스라엘, 그리고 공적인 비평의 위험부담』이스라엘과 친 이스라엘 시온주의자들에 대한 공적 비판을 뭉뚱그려 반유대주의라고 오명을 덮어씌우는 발언의 문제점을 검토한 글입니다.

 

그렇다면 유대주의를 비판적으로 분석한 버틀러의 글과 페미니즘은 어떤 관련이 있을까요? 버틀러는 핍박의 세월을 오랫동안 견뎌온 피해자로서의 민족 정체성을 쉴 새 없이 강조하는 시온주의를 비판합니다.

 

 

 유대인이 언제나 희생자로만 여겨지는 존재일 수는 없다. 그럴 때도 분명 있지만, 어떤 때는 분명 그렇지 않다. 어떤 정치적 윤리도 유대인이 희생자의 지위를 독점한다는 가정에서 출발할 수는 없다. “희생자”는 재빨리 바뀔 수 있고 순간순간 바뀌어서, 버스에 탄 자살폭탄 테러리스트에 의해 살해된 유대인일 수 있고 이스라엘의 총격에 무참히 살해된 팔레스타인 어린이일 수도 있다.  (151~152쪽)

 

 

미국 내에 활동하는 친 이스라엘 시온주의자들은 실제 다른 소수민족에 비해 불이익을 거의 당하지 않았는데도 미국 사회 안에서 자신들의 민족 정체성을 ‘희생자’로 꾸몄습니다. 앞에서 인용한 문장을 봤을 때 작년에 읽은 《피해와 가해의 페미니즘》이 생각났어요.

 

 

 

 

 

 

 

 

 

 

 

 

 

 

 

 

 

* [레드스타킹 여섯 번째 책] 권김현영, 루인, 정희진, 한채윤 《피해와 가해의 페미니즘》 (교양인, 2018)

 

 

 

이 책에서 정희진은 ‘피해자’로서 여성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여성 운동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타자와 연대하는 페미니즘을 제안합니다. 피해자 정체성이라는 ‘땔감’을 구하면서 가해 세력을 처벌하는 여성주의와 시온주의는 각각 여성과 유대인도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상황을 인식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피해자 중심주의의 여성 운동과 시온주의 운동은 ‘피해자의 말이 곧 진리’이며 피해자 편을 들라는 뜻으로 오용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피해자의 지위를 독점하면서 이스라엘을 옹호하는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시온주의 운동의 한복판에서 복잡 미묘한 유대인 문제를 예리하게 들여다본 버틀러의 통찰이 용기 있게 느껴졌습니다.

 

 

 

 

 

 

 

 

 

 

 

 

 

 

 

* 강영안 《타인의 얼굴: 레비나스의 철학》 (문학과지성사, 2005)

* 콜린 데이비스 《처음 읽는 레비나스》 (동녘, 2014)

* 임옥희 《주디스 버틀러 읽기》 (여성문화이론연구소, 2006)

 

 

 

책의 마지막 글인 『위태로운 삶』에서 버틀러는 독일의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Emmanuel Levinas)의 타자 윤리학을 바탕으로 타자를 인정하지 않고, 타자에 대한 공적 애도가 무시되는 문제를 분석합니다. 대부분 사람은 낯선 타자를 만나면 공포와 불안을 느낍니다. 이 불안한 감정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은 무력을 앞세워 타자를 공격합니다. 레비나스는 이러한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투쟁하기 위해서 타자 윤리학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필자는 이 글을 읽기 전에 레비나스의 철학에 대해서 알아봤는데요, 솔직히 말해서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위태로운 삶』이 제일 어렵게 느껴졌어요. 이번에 제가 쓴 후기가 내용면에서 빈약하기 때문에 제 후기에 만족스럽지 못한 분들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런 분들을 위해서 『위태로운 삶』을 알기 쉽게 설명한 《주디스 버틀러 읽기》[주]를 권합니다.

 

‘《위태로운 삶》 읽기’ 마지막 모임에 온 5명의 레드스타킹 멤버들은 『위태로운 삶』의 내용과 상관없이 각자 나름대로 글을 읽으면서 느낀 것들을 자유롭게 말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공독(共讀)을 마무리한 뒤에 다음 달부터 시작하게 될 ‘페미 스쿨’에 대한 논의를 했습니다. 다음 주 월요일에도 이 논의가 이어질 것 같습니다. 레드스타킹이 열심히 준비한 페미 스쿨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주] 이 책에 ‘옥에 티’가 있는데요, 저자는 조르조 아감벤(Giorgio Agamben)이 제시한 ‘호모 사케르(Homo Sacer)‘호모 사커’라고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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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9-06-19 1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 인들의 행위를 보면 홀로코스트니 반 유대주의하고 이스라엘인들이 외쳐도 그닥 공감이 가질 않더군요.

cyrus 2019-06-20 16:41   좋아요 0 | URL
그래도 나치가 자행한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세력들을 경계해야 합니다. 독일을 포함한 몇몇 유럽 국가에서는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행위를 법률로 금지하고 있어요.
 

 

 

문화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주관하는 ‘2019년 청년 인문 상상 프로젝트 지원’ 사업에 ‘레드스타킹’이 선정되었습니다. ‘청년 인문 상상 프로젝트’는 지역에서 자생적으로 운영하는 인문 단체들의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프로그램입니다.

 

 

 

 

 

 

 

레드스타킹은 비영리 민간단체로 등록되었습니다. 그래서 레드스타킹은 대구에 페미니즘을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목표로 ‘엄청난 프로젝트’를 준비했습니다.

 

 

 

 

 

 

레드스타킹이 ‘페미니즘 스쿨(페미 스쿨)을 개설했습니다. 페미 스쿨은 대학원 수준의 페미니즘 이론을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싶은 분, 페미니즘 공부를 통해 자신이 나아갈 방향을 찾고 싶은 분들을 위해 만든 대안적 학습 공간입니다.

 

 

 

모집 인원은 ‘입금 완료’를 기준으로 선착순 6명입니다. 수강료는 7만 원입니다.

 

수강 신청은 여기 링크에 하면 됩니다.

https://bit.ly/2ILBCyw

 

 

 

참여 조건은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싶은 분이라면 누구나 환영합니다. 페미 스쿨에 참여하게 되면 2주에 한 번 A4 한 장 분량의 글을 작성하여 네이버 카페(개설 예정)에 등록합니다. 그리고 교육이 끝나는 마지막 날에 ‘졸업 에세이’를 발표합니다.

 

 

페미 스쿨 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 기간: 2019년 7월 1일 월요일 ~ 2019년 10월 28일 월요일 (총 15주)

 

* 교육 일정: 강의 6회 + 글쓰기 피드백 1회 + 세미나 6회 + 워크숍 1회 + 졸업 에세이 발표 1회 (총 15회)

 

* 일정은 변경될 수 있습니다.

 

* 강의 시간(빨간색 글씨)에는 강사와 함께하며, 나머지 시간은 수강생들끼리 진행됩니다.

 

* 총 15주의 교육 일정 중 10주 이상 참석(70% 이상)하고, 졸업 에세이 1편을 작성해야 수료증을 받을 수 있습니다.

 

* 교육 장소는 ‘카페 스몰토크’입니다. 매주 월요일 오후 7시 30분부터 시작해서 10시(그날 교육 진행 상황이나 분위기에 따라 종료 시각이 짧아질 수 있고 길어질 수 있습니다)까지 진행됩니다.

 

 

 

 

 

 

 

 

 

 

 

 

 

 

 

 

 

* [품절] 전혜은 《섹스화된 몸: 엘리자베스 그로츠와 주디스 버틀러의 육체적 페미니즘》 (새물결, 2010)

 

* [페미 스쿨 교재] 전혜은, 루인, 도균(비사이드 콜렉티브) 《퀴어 페미니스트, 교차성을 사유하다》 (여성문화이론연구소, 2018)

 

 

 

 

* 강사는 전혜은 선생님입니다. 전혜은 선생님은 퀴어 이론과 퀴어 페미니즘 장애학을 공부하는 연구가입니다. 저서로는 《섹스화된 몸: 엘리자베스 그로츠와 주디스 버틀러의 육체적 페미니즘》이 있고, 현재 ‘아픈 사람’과 퀴어, 장애와 행위성에 관한 주제로 글을 쓰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작년에 《퀴어 페미니스트, 교차성을 사유하다》의 집필진으로 참여하여 책의 서문, 『장애와 퀴어의 교차성을 사유하기』, 『‘아픈 사람’ 정체성』을 썼습니다.

 

 

 

 

 

 

 

 

 

 

 

 

 

 

 

 

 

 

 

 

* [페미 스쿨 교재] 오드리 로드 《시스터 아웃사이더》 (후마니타스, 2018)

* [페미 스쿨 교재] 주디스 버틀러 《젠더 허물기》 (문학과지성사, 2015)

* [페미 스쿨 교재] 주디스 버틀러, 아테나 아타나시오우 《박탈》 (자음과모음, 2016)

 

 

 

 

* 전혜은 선생님과 함께 4개월 동안 ‘교차성 페미니즘’, ‘퀴어 페미니즘 장애학’, ‘주디스 버틀러’라는 이 세 가지 주제로 강의를 듣고, 책을 읽고, 토론하고, 글을 쓰는 시간을 가집니다. 수업 관련 교재는 오드리 로드의 《시스터 아웃사이더》, 전혜은 선생님이 공저로 참여한 《퀴어 페미니즘, 교차성을 사유하다》, 주디스 버틀러의 《젠더 허물기》《박탈: 정치적인 것에 있어서의 수행성에 관한 대화》, 총 4권입니다.

 

 

대구에서, 그것도 여성학과 대학원 밖에서 고급 수준의 페미니즘 이론을 배울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습니다. 이번에 레드스타킹이 야심차게 준비한 페미 스쿨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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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9-06-18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정말 좋은 기회다. 수강료도 싸고.
경쟁를이 좀 있겠는데? 너도 수강하지?ㅋ

<섹스화된 몸>은 나도 읽어보고 싶다.
근데 왜 벌써 품절이래.ㅠ
그도 그렇지만 상품화된 몸도 문제 아니겠니? 같은 맥락일 것 같은데?

cyrus 2019-06-19 12:51   좋아요 0 | URL
네, 저도 페미 스쿨 학생이에요. <섹스화된 몸>을 도서관에 가서 읽어보려고 하는데 하필이면 서고에 보관되어 있어요. 사서한테 직접 이 책을 달라고 얘기해야 되는데 말을 할 수가 없네요... (부끄부끄) ^^;;

stella.K 2019-06-19 14:07   좋아요 0 | URL
그때는 마스크하고 썬글라스 끼고
사서한테 조용히 책 제목을 적은 쪽지를 내밀면 되지.ㅎㅎㅎ

cyrus 2019-06-20 16:51   좋아요 0 | URL
그러면 사서가 이상한 눈빛으로 저를 쳐다보겠는데요.. ㅎㅎㅎㅎ

2019-12-21 00: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12-23 22:02   좋아요 0 | URL
멤버들이 하자고 하면 해야죠. ^^
 

 

 

 

 

 

 

 

책방 ‘서재를 탐하다’가 2019년 6월 21일로 문을 닫는다. 책방은 3년 동안 머물렀던 동네(대구 북구 침산동)를 떠나게 된다. 책방뿐만 아니라 책방의 이웃인 옷 수선 가게와 떡 가게도 떠난다. 책방과 소규모 가게들이 사라진 자리에 40층짜리 아파트가 들어선다. ‘서재를 탐하다’는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다시 태어날 뿐이다. 빠르면 다음 달에 원대동에서 ‘서재를 탐하다’ 두 번째 인생이 시작된다.

 

동네도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생로병사의 변화를 겪는다. 따라서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동네에서는 끊임없이 창조와 파괴가 일어난다. 오래된 건물들이 철거돼 새로운 모습으로 재개발되는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재개발로 한층 젊어진 동네의 부동산 가치는 높아졌을지 모르지만 이곳에 거주하던 주민들은 또 다른 삶의 터전을 찾아 떠나야 한다.

 

책방은 도시의 오아시스다. 책방은 너무나 빠른 도시의 속도에 지친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달래주는 휴식처다. 그러나 자주 가던 책방이 항상 그 자리에 있을 거라고 확신해서는 안 된다. 잠시 발길을 끊었다가 다시 찾으면 셔터가 내려 있거나, 다른 간판이 걸려 있는 경우가 너무 많다. 특히 오래된 책방(헌책방)은 동네 책방보다 가장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오랜 세월 동안 제자리를 지킨 책방도 ‘책의 맛’을 아는 독자들이 주로 찾는 노포(老鋪). 노포가 사라지면 다른 곳에서는 맛볼 수 없는 음식들이 잊히는 것처럼 오래된 책방이 사라지면 그곳에 있는 책들도 사라진다.

 

 

 

 

 

 

 

 

 

 

 

 

 

 

 

 

 

 

* 오 헨리 《마지막 잎새》 (펭귄클래식코리아, 2010)

 

 

 

 

내게 오래된 책방은 오 헨리(O. Henry)의 단편소설에 나오는 ‘마지막 잎새’와 같다. 담쟁이덩굴을 자신의 생명과 같이 생각하는 소녀는 마지막 잎새가 다 떨어지면 자기도 죽는 것으로 생각한다. 이것을 안타깝게 여긴 늙은 화가는 비바람을 무릅쓰고 마지막 잎새를 벽에다 그려놓고 세상을 떠난다. ‘마지막 잎새’와 같은 오래된 책방이 사라지면 그 속에 있는 책들의 생명도 끝이 난다. 책의 일부는 다른 책방으로 이동하게 되지만, 팔지도 못하는 책들은 폐휴지로 전락한다. 오래된 책방이 살아남으려면 책방을 운영하는 젊은 주인이 있어야 하고, 책방을 찾는 손님들이 조금 많아져야 한다. 그러나 도시의 ‘마지막 잎새’를 지켜줄 (젊은) 애서가와 독자들이 많지 않다.

 

 

 

 

 

 

 

 

 

 

 

 

 

 

 

 

 

 

* 야마시타 겐지 《서점의 일생》 (유유, 2019)

 

 

 

‘가케쇼보(벼랑 책방)’라는 이름의 책방을 11년 동안 운영하다 다른 곳으로 옮겨 ‘호호호좌(웃음소리가 있는 곳)’라는 새 간판을 단 야마시타 겐지《서점의 일생》에 보면 이미 책방 폐점을 경험한 일본인의 글을 인용한 내용이 나온다. 야마시타 겐지는 ‘가케쇼보’ 책방을 문 닫을지 고민한 적이 있었다. 그는 책방을 운영한 적이 있는 하야카와 요시오라는 가수를 직접 만나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는다. 그런데 하야카와는 책방을 그만두니까 “편안해졌다”라고 말한다. 하야카와도 책방에 대한 글을 썼는데, 그 글의 제목은 「폐점한 날」이다. 야마시타는 자신의 책에 「폐점한 날」의 일부를 인용한다.

 

 

 폐점한 나는 울고만 있었다. 눈물이 끝없이 나왔다. 책장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손님과 말을 주고받는 것만으로 눈물이 났다.

 폐점을 알고 매일 오는 손님이 있다. 이제 우리 가게는 그 사람이 살 만한 것은 남아 있지 않다. 그런데 무엇인가 찾아 간다. [중략] 이와나미 문고가 반품되지 않았다는 걸 알고 그것만 사 가는 손님도 여럿 있었다. 전별금을 놓고 가는 사람도 있었다. 그분은 친한 사람도 아니었다. 가게 앞에 멈춰 서서 들어오자마자 “너무 서운해요”라면서 울음을 터뜨렸다. 예순 살 정도의 사람이다. 다른 손님이 일제히 이쪽을 바라본다.

  뜻밖이었다. 흔히 말하는 단골이나 친한 손님(물론 안타까워해 줬지만)보다도 별로 눈에 띄지 않는 사람, 한 번도 이야기한 적이 없는 사람이 아쉬워했다.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다. [중략]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작은 감동이 책방에는 매일매일 있었던 거다. 감동은 예술의 세계에만 있지 않고, 아무것도 아닌 일상생활에도 비슷하게 있는 거다. 나는 그것을 폐점 일에 손님에게 배웠다.

 

(《서점의 일생》 중에서, 256쪽)

 

 

책방을 제 집처럼 드나드는 단골손님뿐만 아니라 어디선가 저만치 떨어져서 책방을 몰래 지켜보는 사람들도 책방이 사라지는 것을 아쉬워한다. 그들은 책을 좋아하지 않아도 안에 들어가기만 해도 마음이 푸근해지는 책방의 분위기를 좋아한다. 책방에 자주 오지만, 책을 사지 않는 손님을 삐딱하게 바라봐선 안 되고 쫓아내서도 안 된다. 그들은 책방의 아늑한 분위기, 그리고 책방에 가득한 사람들의 따스한 온정을 느끼고 싶어서 그곳에 찾아오는 것일 수도 있다.

 

책방의 친숙함과 편안한 분위기를 외면할 사람은 없다. 그들은 새로운 것의 가치 못지않게 오래된 것의 가치를 잘 안다. ‘오래’라는 수식어가 붙여지면 민망할 수도 있지만, 빨리빨리 변하는 현재 도시의 속도를 생각하면 책방이 3년 이상 유지되는 것도 대단한 일이다. 도시의 속도에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줄 책방이 많아졌으면 한다. 책에 대한 애정에 상관없이 누구나 편하게 올 수 있고, 사람의 온정이 느껴지는 도시의 오아시스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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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17 11: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6-17 16:59   좋아요 0 | URL
원대동이 행정구역상 서구에 속한 곳이에요. 제가 어렸을 때 비산 1동에 살았는데요, 비산지하도를 건너면 원대동이에요. 책방을 새로운 곳으로 이전하는 일이 쉽지 않은데, 새삼 책방지기님이 대단하다고 느껴져요.

레삭매냐 2019-06-17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읽는 이들이 점점 사라지는 시대,
책방은 과연 어떻게 생존하게 될 지
궁금하네요.

저부터도 동네책방에서 책을 사본
기억이 다 가물가물하네요.

사라지는 노포... 아쉽네요.

서점이 사라지고 고층 아파트가 들어
선다는 소식이 서글프네요.

cyrus 2019-06-17 17:02   좋아요 0 | URL
동네에 만화책 대여점을 찾는 것도 어려워졌어요. 제가 군대를 갔다 오고 나니까 집 근처에 있는 만화책 대여점이 폐점되었어요.

stella.K 2019-06-18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옮겨서라도 계속 한다니 다행이긴 하다.
하지만 너의 마지막 말대로 되기는 왠지 어렵지 않을까 싶다.
그러면 사람들은 술 한 잔 꺾으러 가지 책 읽으러 가지는 않거든.
옛날 방식 가지고는 안 될 거야.
주인이 인품이 좋던가 술이나 차와 같이 팔던가 뭐 그런 다양한 형태로
가야겠지. 이미 그런 영업 방식을 구가하는 책방도 있는 것 같고.
암튼 참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는 것 같아. 우리는.ㅠ

근데 저 그림은 누가 너...?

cyrus 2019-06-18 16:42   좋아요 0 | URL
책방 그림은 서재를 탐하다 책장지기님이 직접 그린 거예요. ^^

요즘 책방들은 책도 팔고, 취미 생활을 공유할 수 있는 소규모 모임을 만들어서 운영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렇게 운영하려면 돈이 있어야 해요. 책방 입장에서는 운영비를 최대한 줄이면서 책방에 사람들을 모일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고민을 많이 할 거예요. 정말 책만 파는 책방은 오래 가지 못해요.. ㅠㅠ

맑은 생각 2019-06-22 14: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으면 마음의 위로와 삶에 생기가 있어서 각박함이 없을것입니다.

cyrus 2019-07-08 17:51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저 같은 경우 책을 읽으면 지루하다는 생각이 나지 않아요. 며칠 동안 책을 안 읽으면 무언가 허전한 마음이 들어요.

뒷북소녀 2019-07-07 1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전하면 저도 한번 찾아가 봐야겠어요.
온라인에서 보기만 하고, 한번도 가보지 못했네요.

cyrus 2019-07-08 17:53   좋아요 0 | URL
뒷북소녀님은 대구에 사시는가 보군요. 지금쯤이면 책방 이전이 거의 다 완료되었을 거예요. 이번 달 독서모임 장소가 새로운 곳에 정착한 책방에서 하거든요. 조만간 새로운 책방이 문 열게 되는 소식이 책방 인스타를 통해서 나오게 될 것입니다. 시간 나면 꼭 가보셔요. ^^
 

 

 

 

 

 

 

 

※ 레드스타킹 공식 인스타그램에도 공개된 글입니다. 정말 오랜만에 공식 후기를 써보네요. 《경계 없는 페미니즘》은 한동안 절판된 책이었는데요, 몇 달 전에 레드스타킹 멤버 한 분이 여성문화이론연구소(여이연) 출판사에 직접 전화를 해서 재고가 남아 있다고 물어본 적이 있어요. 그때 출판사 측은 재고가 남아 있지 않다고 답변을 했었는데요, 다행히 그 분의 의견이 출판사 측이 반영했는지 지난달부터 알라딘에 책이 판매되고 있습니다. 언제 절판될지 모르니 관심 있는 독자는 꼭 구입하시길.

 

 

 

 

 

추위와 따뜻함이 반복되는 변덕스러운 봄 날씨는 감기에 걸리기 쉬운 날씨입니다. 제 주변에 감기나 몸살 증세를 호소하는 분들이 많아졌습니다. 이 글을 보고 있을 분들 모두 감기 조심하시기를 바랍니다.

 

 

 

 

 

 

 

 

 

 

 

 

 

 

 

 

 

 

 

지난 월요일(25일)찬드라 탈파드 모한티(Chandra Talpade Mohanty)《경계 없는 페미니즘》 첫 번째 읽기 모임이 있는 날이었습니다. 첫 번째 시간에는 1부 1, 2장을 읽었습니다. 모한티는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인도 출신의 여성학자입니다. 그녀는 미국 내 유색인 여성 차별 문제, 탈식민주의 페미니즘 등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책 제목인 ‘경계 없는 페미니즘(Feminism without borders)’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일단 먼저 ‘경계’가 무슨 뜻인지 간략하게 설명하겠습니다. 경계는 젠더, 섹슈얼리티, 계급, 인종, 종교, 장애 등 인간의 일상생활 영역을 명확하게 구분해주는 기준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여러 가지 경계선을 가지고 세상을 구분합니다. “세상을 둘로 나누어 본다”는 강력한 믿음은, 일상생활을 가로지르는 투명한 ‘경계’에서 나옵니다. 이 경계는 때론 차별을 초래하기도 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피부 색깔로 인종을 구분하는 인종차별주의입니다. ‘국민-비(非)장애인-이성애자-정상’과 ‘난민-장애인-성 소수자-비정상’으로 나누어 판단하는 것 또한 보이지 않는 경계가 만들어내는 이분법적 구분입니다. 이러한 구도는 모한티가 허물려고 하는 ‘장벽’입니다. 따라서 ‘경계 없는 페미니즘’은 수많은 개인과 사회집단의 경험을 관통한 다차원적인 경계들을 극복하는, ‘해방의 잠재력을 지닌 페미니즘’[주1]입니다.

 

저자는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페미니즘의 분석 방법으로 탈식민주의와 반자본주의적 비평을 제시합니다. 탈식민주의는 ‘서구-비서구’를 가르는 틀, 그리고 서구의 제국주의가 피식민지 비서구를 바라보며 재현하는 방식 등을 비판하는 이론입니다. 반자본주의 비평은 사회 전반에 걸쳐 작동하고 있는 자본주의 체제를 비판하고 반대하는 비평 방식입니다. 그래서 탈식민주의는 ‘제3세계’로 명명되는 비서구를 착취한 서구 제국주의 및 식민지 문화를 문제 삼는다면, 반자본주의적 비평은 제3세계를 착취하는 전 지구적 자본주의에 주목합니다.

 

흔히 ‘제3세계’라고 하면 가장 많이 떠오르는 이미지는 ‘아프리카’, ‘가난한 나라’, ‘(정치적으로, 또는 성적으로) 억압받는 민족’입니다. 그런데 저를 포함한 대부분 사람은 한국이나 일본, 중국과 같은 아시아를 제3세계 국가라고 인식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레드스타킹 멤버 중에 대학원에서 여성학을 공부하는 분이 있습니다. 그분이 배우고 있는 제3세계 여성을 다룬 과목은 중국 · 재중동포(조선족) 여성에 관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서구 여성, 서구 페미니스트들이 생각하는 제3세계 여성 이미지는 주체적으로 자기 권리를 주장하는 서구 여성 이미지와 대비됩니다. 저자는 제3세계 여성을 ‘서구 식민화의 피해자’, ‘남성 폭력의 피해자’, ‘가부장적 친족체제에 벗어나지 못하는 종속적인 여성’ 등으로 일방적으로 규정해버리는 서구 페미니즘 담론을 비판합니다. 이러한 서구식 담론은 제3세계 여성의 주체적인 목소리와 그녀들 고유의 역사를 생략해버립니다.

 

제3세계 여성을 ‘피해자’로 묘사하는 서구식 담론의 문제점은 우리나라에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레드스타킹 멤버들은 우리 일상생활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서구식 제3세계 담론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멤버들이 가장 많이 언급한 예는 국제 구호단체의 기부금 모집 광고였습니다. 구호단체의 광고를 보면 굶주림에 시달리거나, 절망 어린 눈빛을 한 중동 · 아프리카 난민들의 모습이 많이 나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피해자로서의 난민’ 이미지를 지나치게 부각하는 광고는 ‘가난하고 꾀죄죄한 난민’이라는 고정관념을 만듭니다.

 

아프리카 일부 지역에 성행하고 있는 ‘여성 음핵 절제술’은 제3세계 여성의 생명권을 위협하는 악습입니다. 여성 음핵 절제술 근절에 앞장서는 서구 페미니스트들의 관심과 참여는 훌륭한 일입니다. 하지만 여성 음핵 절제술의 위험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제3세계 여성을 ‘남성에 의해 성적으로 억압받는 무기력한 피해자’로 규정하는 입장에 한계가 있습니다. 저자는 제3세계 여성에 대한 온정주의적 태도에 ‘서구가 우월하다는 이념의 헤게모니(hegemony)[주2]가 스며들어 있다고 말합니다.

 

 

 

 

 

 

 

《경계 없는 페미니즘》을 함께 읽은 레드스타킹 멤버들은 제3세계 여성을 설명하는 서구식 담론과 헤게모니에 익숙해진 것에 대해 반성을 했습니다. 그리고 제3세계 여성 같은 타자의 정체성을 일방적으로 단정하게 만드는 ‘일상 속 권력’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가해자’의 위치에 서서 연대해야 할 타자를 ‘피해자’로 대상화했을 수도 있습니다. 무지는 연대를 형성하지 못하도록 만들 뿐 아니라, 타자들의 고통을 가중하는 커다란 함정이 됩니다. 이 책에 언급된 ‘성찰적 연대(reflective solidarity)[주3]에 공감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연대의 필요성을 말하기 전에 ‘나’와 ‘타자’의 관계가 제대로 상호작용하고 있는지 ‘성찰’해야겠습니다. ‘성찰’이 빠진 연대는 타자의 아픔을 제대로 품을 수 없습니다.

 

 

 

 

[주1] 찬드라 탈파드 모한티, 문현아 옮김, 《경계 없는 페미니즘》, 여이연, 14쪽.

 

[주2] 같은 책, 69쪽.

 

[주3] 같은 책, 22~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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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3-27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싸이러스 브로는 가히 페미니즘 전문가로
등극하실 것 각입니다 !!!

전 리베카 솔닛의 책을 두어권 사긴 했는데
딴 데 정신이 팔려서리...

이른바 白禍의 시대에 서구석 관점에서부터
탈피하는 게 가장 우선이 아닌가 싶습니다.

cyrus 2019-03-28 17:12   좋아요 1 | URL
‘페미니즘 전문가’가 되고 싶지 않아요.. ㅎㅎㅎㅎ ‘남성 페미니스트’라는 말이 없듯이 ‘남성 페미니즘 전문가’도 없어요. 저는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마음으로 공부하는 사람으로 남고 싶습니다. ^^

비연 2019-03-27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 참 대단. 엄지척!

cyrus 2019-03-28 17:13   좋아요 0 | URL
대단하지 않습니다. 매주 월요일에 만나는 분들이 저보다 뛰어나고 정말 열심히 공부하는 분들입니다. ^^

페크pek0501 2019-03-30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 비를 맞는 사람에게 우산을 주는 것보다 더 좋은 게 함께 비를 맞는 것, 이라는 말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함께, 라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주는 자와 받는 자로 나뉘는 게 아니라 함께...

cyrus 2019-04-08 05:58   좋아요 0 | URL
“비를 맞는 사람에게 우산을 주는 것보다 더 좋은 게 함께 비를 맞아야 한다”라는 말에 대해서 다르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요.

비를 맞으면 옷이 젖고, 감기에 걸리기 쉬워요. 결국 비를 맞는 것은 유쾌한 일은 아니에요. 고통이 생기는 일이죠. 내가 타인과 함께 비를 맞는 것은 타인을 힘들게 하는 경험을 함께 하면서 그가 느끼고 있는 고통을 이해한다는 뜻입니다. 좋은 방법입니다. 하지만 타인과 ‘나’ 모두가 비를 ‘안’ 맞는 방법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고통을 주는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적극적인 일을 시도하는 거죠. 저는 ‘비를 맞는 사람’은 고통을 감수하기만 하는 피해자 정체성을 가진 사람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비를 안 맞으려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

페크pek0501 2019-04-14 12: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함께 비를 맞는다는 의미를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비를 안 맞을 수 있으면 더 좋겠지만 비를 맞아야만 하는 상황인 거예요. 예를 들면 어느 농성장에서 텐트를 치고 잠을 자며 며칠 동안 농성을 한다고 할 때 이것이 비를 맞는 상황인 겁니다. 이럴 때 이들을 도울 수 있는 건 함께 비 맞기. 즉 텐트에서 자고 농성을 하며 동고동락함이 되는 것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