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란 무엇인가
김영민 지음 / 어크로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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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란 대학에 가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대학에서 하는 것이며,

대학에 가서는 무엇을 어떻게 배우면 좋은지에 대한 논의들이었다.

김영민, 『공부란 무엇인가』 248쪽

표지 속 공간은 어디에 있는 곳일까? 실제로 존재하는 곳일까? 예전에 비슷하게 꾸며놓은 곳을 본 적이 있는데, 섬뷰(island view)는 아니었다. 현재 김영민 교수의 공간은 아닐 것이다. 어떻게 저런 뷰를 가진 곳에서 글을 쓸 수 있겠는가. 아무튼 한참을 들여다보게 만든 표지다.

'추석이란 무엇인가'라는 칼럼으로 SNS에 이름을 알린 김영민 교수가 이번에는 『공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일부 독자들이 저자의 <추석이란 무엇인가>라는 글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라는 편집자의 기대"로 제목이 붙여진 "이 책에 담긴 글들은 다 공부의 각 측면에 대한 것이며, 그 글들을 통해서 공부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생각해보기를 권하고 있다."(67쪽) 특히, 공부를 잘해서 가는 '대학'이 아닌 공부를 하기 위해 가는 '대학', 그런 '대학'에서 어떻게 잘 배울 것인가, 그런 측면에서의 공부에 대해 세세하게 다루고 있다.

애초 이 책을 읽는 와중에 작가의 어떤 문체에 꽂혀서 내 나름으로 신랄하게 리뷰를 써서 임시 저장해 두었었다. 그런데 「멍청한 주장에 대해 멍청한 비판을 하지 않기 위해서」라는 제목의 글을 읽고나니 도저히 리뷰를 수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글의 내용은 이렇다.

상대 주장의 약점보다는 강점과 마주하여 비판적인 논의를 해야 한다. 상대의 핵심 주장에 강점이 있음에도 상대가 보인 약점에 탐닉한 나머지 그것을 상대의 '본질'이라고 간주해서는 안 된다. 하수들일수록 상대의 하찮은 약점에 탐닉한다. 형사무레서 시체가 등장하면, 그 시체를 둘러싼 드라마에 집중해야지, 시체 역을 하는 배우가 얼마나 꼼짝 않고 있는지만 집요하게 살필 필요는 없는 것이다. 아무런 강점도 없는 경우는 어떡하냐고? 완벽하게 못생긴 사람이 없듯이, 완벽하게 오류로만 점철된 주장은 드물다. 기를 쓰고 상대 주장의 강점을 찾아내서 언급할 필요가 있다. 그러지 안으면, 단점을 찾아내 즐기는 페티시(fetish)가 있다고 오해받을 수 있다. 상대의 주장에서 강점을 영 찾을 수 없으면, 이토록 형편없는 주장을 공개적으로 발표하는 용기 자체를 칭찬하면 된다. 211쪽

그랬었다. 어떤 한 부분이 마음에 거슬리자, 작가가 전달하고자하는 전체적인 내용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 부분을 토해 내지 않고서는 이 책을 제대로 읽을 수 없을 것 같아서, 책읽기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리뷰를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부분이 마음에 거슬러서 전체를 볼 수 없었던 게 아니라 내가 전체를 보지 못해서 그 부분이 자꾸 신경 쓰였던 게 아니었을까?

김영민 교수는 책을 읽고 그 책에 관하여 쓰는 서평이 기본적인 기능을 하려면 가장 먼저 적절한 요약이 필요하다고 한다.

하나의 전체로서 책에 대해 말하기

김영민, 『공부란 무엇인가』 147~149쪽

책을 소개하는 글이라면, 하나의 전체로서 그 책이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요약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책 부분마다 흥미로운 포인트는 많다. 그러나 하나의 전체로서 그 책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서평은 이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책이 그러한 답을 가능케 하는 통일성을 결여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런 책을 굳이 소개할 필요가 있느냐는 회의가 들기는 하지만, 그때는 왜 그 책이 그런 상태에 이르고 말았는지를 보여주는 것도 좋은 내용 소개가 될 수 있다. 147~148쪽

깊이 있는 서평은 내용 소개에만 그치지 않는다. 본격적인 비평이 담긴다. 서평 대상이 된 책이 제공하는 정보 중에 잘못된 것을 바로잡을 수도 있고, 그 책이 담고 있는 주장들의 논리적 결함을 지적할 수도 있고, 그 책의 논의가 암묵적으로 기대고 있는 전제들을 문제 삼을 수도 있다. 물론 설득력 없는 비판을 늘어놓으면 서평자 자신의 얼굴에 검은 먹을 바를 뿐이다. 주례사 같은 서평도 문제지만, 근거 없는 비판으로만 일관한 서평도 문제다. 단순히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창의적인 질문을 던져서 그 책의 새로운 면모를 증명할 수도 있다. 148~149쪽

최악의 서평 중 하나는 서평을 단순히 자기 이야기의 발판으로 삼는 경우다. 물론 서평도 결국 자기 이야기를 담긴 담지만, 대상이 된 책을 섬세하고 충실하게 경유해야 한다는 장르의 규칙이 있다. 대상이 된 책 내용을 후다닥 요약한 뒤, 자기 이야기만 주절주절 늘어놓으려거든 다른 글의 형식을 취하는 게 좋다. 149쪽

한 권의 책을 요약하기란 쉽지 않다. 그나마 줄거리가 있는 문학들은 요약하기가 쉬운 편인데, 이 책처럼 칼럼 형식의 글들이 나열되어 있으면 전체를 아울러 요약하기란 보통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꼬투리를 잡고 늘어졌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 책은 (이 글 도입부에 이미 적어둔) 저자가 한 문장으로 요약해 놓은 것이 있으므로, 그것으로 대신하면 될듯하다.

마지막으로, 읽는 도중에 서평을 쓰게 만든 문체에 대해서 아주 살짝 이야기 해보겠다. (원래는 이 포스팅을 가득 채울만큼 방대했다.)

내 나름대로는 끊임없이 '지적 변화'를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지적 자극을 받아볼 수 있을까 싶어서 이 책을 선택했다. 전작을 읽지 않았기 때문에 전작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내 기대에는 미치지 못하는 '지적 자극'이었다. 특히, '꿀벅지' 같은 단어를 책 속에서 마주치는 순간 기대가 와르르 무너졌다. 어떤 느낌으로 그런 단어들을 사용하는지도 알겠고, 요즘 독자들이 좋아하는 문체라는 것도 알겠지만, 거슬리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좋은 문체를 보여준답시고 과한 표현을 남발하지 않는 일이다. 냉정한 분석이 이루어져야 할 국면에서 정서적 오지랖이 질질 흐르는 표현을 처발라서는 안 된다. 주장의 논리와 명료함이 논술문의 주된 승부처라고 할 때, 그런 표현은 독자가 논지에 집중하는 것을 오히려 방해할 뿐이다. 이를테면, 인간의 소화기관을 설명하는 학자가 배고픔 혹은 허기에 대해 서술할 때는 '배고프다', '허기진다'와 같은 간명한 표현이면 족하다. 배고픔이라는 생리 현상을 서술하면서 '인간이 평생 가장 자주 느끼는 결핍감, 그것은 바로 허기'와 같이 멋을 잔뜩 부린 표현을 구사할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그저 건조하게 문법에 맞게만 쓰는 게 능사일까. 사실, 화려하지는 않아도 비문과 오타 없이 문법에 맞게만 글을 써주어도 감지덕지할 일이다. 그것만 갖추어져도 글을 읽다가 인생에 대한 회의를 느끼지 않을 수 있다. 202~2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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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0-09-14 1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해요, 조금더 고상한 아재개그라서 좋아했는 데, 이번 책은 그냥 아재... ㅠㅠ
 
스토너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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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슬픔과 고독을 견디며

오늘도 자신만의 길을 걷는 당신을 위한 이야기

사는 모습은 달라도, 우리는 누구나 스토너다.

『스토너』 뒷표지

늦은 밤, 잠을 청하려고 책을 폈쳤다. 어느새 잠은 달아나버렸고, 5시간동안 꼼짝도 하지 않은채 읽어버렸다. 한 권의 책을 단숨에 읽어버린 건, 참 오랜만이다. 잠도 물리칠만큼, 『스토너』가 매력적인 인물인가? (줄리언 반스는 처음 제목을 들었을 때,모로코산 금과 콜럼비아산 금의 장점에 관한 열띠고 장황한 설명이 있는 책이려니 생각했단다. 나는 표지 덕분에 그런 오해를 하지 않아도 됐는데, 최근 이 책의 표지가 바뀌었다. 1965년 미국에서 처음 발행됐을 때의 표지라고 하는데, 내용이 초판본도 아니고 표지가 초판본이라니. 책을 읽는데 크게 의미있는 것 같지는 않다.)

윌리엄 스토너는 1910년, 열아홉의 나이로 미주리 대학에 입학했다. 8년 뒤,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그는 박사학위를 받고 같은 대학의 강사가 되어 195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강단에 섰다. 그는 조교수 이상 올라가지 못했으며, 그의 강의를 들은 학생들 중에도 그를 조금이라도 선명하게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가 세상을 떠나자 동료들이 그를 추모하는 뜻에서 중세 문헌을 대학 도서관에 기증했다. 이 문헌은 지금도 희귀서적관에 보관되어 있는데, 명판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영문과 교수 윌리엄 스토너를 추모하는 뜻에서 그의 동료들이 미주리 대학 도서관에 기증."

가끔 어떤 학생이 이 이름을 우연히 발견하고 윌리엄 스토너가 누구인지 무심히 생각해볼 수도 있겠지만, 그 이상 호기심을 충족시키려고 애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 스토너의 동료들은 그가 살아 있을 때도 그를 특별히 높이 평가하지 않았고, 지금도 그의 이름을 잘 입에 올리지 않는다. 노장교수들에게 스토너의 이름은 그들을 기다리는 종말을 일깨워주는 역할을 하고, 젋은 교수들에게는 과거에 대해 아무것도 일깨워주기 않고 동질감을 느낄 구석도 전혀 없는 단순한 이름에 불과할 뿐이다. 8~9쪽

작가는 이 책의 주인공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첫문장부터 개괄해서 보여준다. 어떻게 보면 지극히 평범한 삶인 것도 같고, 또 어떻게 보면 실패한 것도 같은 스토너의 삶. 분명 숨겨진 비밀이 있을거라 기대하며 읽기 시작했다.

요즘말로 하면, 스토너는 흙수저다. 그의 부모는 젊었지만 척박한 땅을 일구며 살다보니 가난한 삶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나이보다 더 들어보였다. 교육을 좀 더 받으면 농사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가난한 살림에도 스토너를 컬럼비아에 있는 미주리 대학에 보내기로 결정한다. 스토너는 친척 집에서 일을 도와주며 학교를 다녔다. 동급생들보다 많은 나이에 학교에 입학한 스토너는 수업을 따라가기가 힘들었다. 특히, 필수과목인 영문학 개론은 그에게 생전 처음 느끼는 고민과 고뇌를 안겨주었다. 처음에는 점수가 어떻든, 다음 학기에도 수업을 들을 수 있을 정도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는 점점 영문학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런 그에게 아처 슬론 교수가 제안한다. 졸업 후 다른 계획이 있는게 아니라면 좀 더 학교에 남아서 공부를 해보라고, 자신이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이다. 스토너는 고향에서 자신만 기다리고 있는 부모님이 마음에 걸렸지만, 부모님은 스토너가 하고 싶다면 그렇게 하라고 했다. 결국 스토너는 8년 만에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아처 슬론 교수 대신 영문학개론 수업을 맡게 됐다.

이때는 전쟁 때문에 대학을 떠났던 동료들이 대학으로 돌아올 때였다. 대학에서 아처 슬론과 가깝게 지냈던 친구가 둘 있었는데, 데이비드 매스터스는 전사했고, 고든 핀치는 돌아왔다. 전쟁터에서 돌아온 동료들을 축하하기 위해 열린 리셉션에서 스토너는 학장의 사촌 아가씨 뻘인 이디스 엘레인 보스트윅을 만나게 된다. 스토너에게 이런 면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이디스에게 적극적이었다. 잠시 컬럼비아에 머물기 위해 온 이디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 그녀에게 청혼까지 한 스토너. 다행히 스토너는 그녀의 부모를 설득해 몇 개월 뒤 결혼에 성공한다.

한 달도 안 돼서 그는 이 결혼이 실패작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1년도 안 돼서 결혼생활이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버렸다. 그는 침묵을 배웠으며, 자신의 사랑을 고집하지 않았다. 그가 애정을 담아 그녀에게 말을 걸거나 몸을 만지면, 그녀는 그를 외면하고 내면으로 숨어 들어가 아무 말 없이 견디기만 했다. 그러고 나서 며칠동안 전보다 한층 더 힘들게 새로운 한계까지 자신을 혹사했다. 107쪽

이제 삶이 순탄하게 풀릴 것 같았던 스토너. 그러나 스토너는 한 번도 이디스에게서 사랑을 느낄 수 없었고, 이디스가 그레이스를 낳은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육아에도 열성적이지 않았던 이디스는 스토너가 조교수로 승진하고 종신교수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마당이 있는 넓은 집으로 이사 가기를 원했다. 스토너는 은행장인 장인에게 대출까지 얻어 무리하게 집을 샀다. 스토너는 무리하게 대출한 빚을 갚으려고 더 오래 일을 했고, 퇴근 후에는 이디스 대신 육아와 집안인까지 병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토너는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해냈다.

사실 스토너는 가정에서 뿐만아니라 대학에서도 어려움을 겪었다. 동료 교수(홀리스 로맥스)가 지도하고 있는 대학원생(찰스 워커)에게 정당한 사유로 F학점을 줬는데, 찰스 워커가 문제 제기를 했고 지도 교수인 로맥스는 처음부터 스토너가 편견을 가지도 찰스 워커를 대했다고 주장했다. 얼마 후 로맥스가 영문과 학과장이 되었고, 종신교수라서 해임할 수 없는 스토너에게 불합리하게 강의 시간을 배정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세미나를 열었고, 꽤 인기있는 강의를 해왔던 그에게 초보 강사에게나 어울릴 법한 강의를 배정하다니. 심지어 일주일에 6일 동안 아주 묘한 시간에 강의가 잡혀 있어서 연구를 하거나 퇴근해서 육아를 하기에도 어정쩡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토너는 역시 묵묵히 강의를 해냈다.

한편 오랫동안 육아에 관심 없던 이디스가 그레이스의 교육에 집착하게 되면서 스토너는 딸과도 시간을 가질 수 없게 된다. 그가 그레이스와 대화라도 하려고 하면 이디스가 날카롭게 그레이스를 다그쳤기 때문이다. 그러던 와중에, 마흔셋이라는 늦은 나이에 스토너는 처음으로 완전한 사랑을 느꼈다. 상대는 그가 강의했던 대학원 세미나를 청강했던 같은 학교의 젊은 강사 캐서린 드리스콜이었는데, 그녀의 논문을 봐주면서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스토너는 그녀의 좁은 방에서 사랑을 나누고, 책을 읽고, 학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나 그들의 관계는 이내 소문이 나버렸고 그를 탐탐치 않게 여겼던 학과장 때문에 그녀는 떠날 수 밖에 없었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학과장으로부터 불합리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조교수에서 더이상 승진할 수 없었음에도, 그는 강의를 계속하며 대학을 떠나지 않았다. 그렇게 그는 대학에서 '캠퍼스의 괴짜'로 '전설'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가 대학에서 전설이 되어 가고 있을 때, 그레이스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주리 대학에 진학하게 된다. 스토너는 그레이스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길 원했지만, 그레이스는 뭘하든 상관없다는 식으로 자신의 삶을 체념하게 된다. 그레이스가 선택한 것은 '임신'이었다. 그녀는 이디스가 그랬던 것처럼 결혼을 통해 감옥같은 집(특히, 엄마 이디스)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했다. 결혼 후 이내 남편이 죽고 혼자 아이를 키우게 됐지만 그레이스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고 시부모 집 근처에 머물며 살았다.

"제 생각에 저는 일부러 임신했던 것 같아요. 그때는 그걸 몰랐지만요. 제가 여기서 도망치는 걸 얼마나 간절히 원했는지, 그것이 얼마나 저한테 필요한 일이었는지도 몰랐던 것 같아요." 349~350쪽

이디스 역시 그랬다. 그녀는 스토너를 사랑했던 게 아니라 다만 집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다. 이디스의 부모는 '그래야만 하는 것들'을 가르쳤고 강요했다. 그녀는 스토너가 자신을 만지는 것도 싫어했지만, 결혼 후 아이가 있어야 할 때가 되자 적극적으로 아이를 갖기 위해 노력했고, 평소에는 아무런 의욕이 없다가도 사람들이 집을 방문할 때마다 적극적으로 아내 역할을 해냈다. 진짜 쇼윈도 부부가 따로 없다. 이디스의 아버지가 자살한 이후, 그녀가 머리를 짧게 자르고 다른 모습으로 변신을 시도한 것 역시 그런 연장선 상의 일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그제서야 아버지의 억압으로부터 벗어났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녀 역시 부모의 모습을 그대로 닮아 있었다. 자신의 부모가 자신에게 그랬던 것처럼, 이디스 역시 그레이스에게 그런 것들을 강요했다. 스토너가 그레이스에게 만들어 준 회색빛 책상을 핑크색으로 색칠한 것, 스토너 옆에서 책을 읽고 대화를 하는 대신 리본이 치렁치렁하게 달린 옷을 입고 피아노를 배우고 아이들과 사교적으로 놀게 만든 것까지.

만약 스토너가 이디스와의 관계에서 좀 더 능숙하고, 유연성이 있는 사람이었다면 이디스와 그레이스도 달라질 수 있었을까.

그들은 서로에게 입힌 상처를 용서하고, 자신들의 삶이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 될 수도 있지 않았을지 생각하는 일에 빠져 있었다. 383~384쪽

넌 무엇을 기대했나? 그는 자신에게 물었다.

『스토너』 388쪽

나는 스토너가 한번쯤 통쾌하게 승리하기를 바랐다. 이만하면 스토너의 삶이 좀 더 편안해지고, 교수로서 성공해야 하지 않을까. 스토너를 부당하게 괴롭히는 학과장은 왜 추락하지 않고 계속 학과장 자리에 있는가. 한 명쯤은 기사처럼 나타나 스토너를 도와줘야 하는게 아닐까. 그러나 스토너의 삶이 끝날 때까지 그런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다. 기대했던 반전은 절대 일어나지 않았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자신에게 반문했던 스토너처럼, 난 무엇을 기대했을까? 그의 삶에서. (아니면 우리 삶 속에서)

그나마 다행인 것은, 소극적이긴 하지만 고든 핀치가 스토너 곁에서 끝까지 떠나지 않고 그가 교수로 마무리할 수 있게 도와줬다는 것. 그리고 그를 또다른 위기에 빠트리긴 했지만 캐서린 드리스콜 덕분에 짧게나마 진정한 사랑을 경험할 수 있었다는 것 정도.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서, 이렇듯 그리 성공적이지 않은, 평범한 삶을 살다간 '스토너'의 매력은 무엇일까? 스토너의 매력은 바로 그 '평범함'이 아닐까. 사는 모습은 조금씩 다르지만, 결국 우리도 스토너와 다르지 않다는 것. 우리는 누구나 스토너였고, 스토너가 될 수 있다.

영문학개론 시간에 아처 슬론이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를 낭독했을 때, 자극 받은 스토너의 상태를 묘사한 것도 인상적이었지만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구절은 가장 마지막에 등장한다. 스토너는 이렇게 문학적으로 사라져갔다.

그는 책을 펼쳤다. 그와 동시에 그 책은 그의 것이 아니게 되었다. 그는 손가락으로 책장을 펄럭펄럭 넘기며 짜릿함을 느꼈다. 마치 책장이 살아 있는 것 같았다. 짜릿한 느낌은 손가락을 타고 올라와 그의 살과 뼈를 훑었다. 그는 그것을 어렴풋이 의식했다. 그러면서 그것이 그를 가둬주기를, 공포와 비슷한 그 옛날의 설렘이 그를 지금 이 자리에 고정시켜주기를 기다렸다. 창밖을 지나가는 햇빛이 책장을 비췄기 때문에 그는 그곳에 쓰인 글자들을 볼 수 없었다.

손가락에서 힘이 빠지자 책이 고요히 정지한 그의 몸 위를 천천히, 그러다가 점점 빨리 움직여서 방의 침묵 속으로 떨어졌다. 3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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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졸려 2020-09-14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스토너를 이렇게 잘 요약해 주시니까 다시 생각 나게 하네요,
이책을 다 읽고나서 알수없는 눈물을 흘렸다는 사람들이 많더군요.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시선으로부터,
정세랑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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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자살은 가해였다.

아주 최종적인 형태의 가해였다.

178쪽

전쟁 때 학살로 가족들을 모두 잃은 시선은 고향으로 돌아갈 수가 없어서 누군가의 '사진 신부'가 되어 하와이로 향한다. 하와이에서 고된 노동으로 하루 하루를 버티고 있을 때 마티아스 마우어를 만난다. 독일의 유명 화가였던 그는 영수증에 낙서처럼 그린 그녀의 그림을 보고는, 자신과 함께 독일로 가자고 한다. 마티아스가 가는 곳마다 그런 제안을 해 데려온 여자가 여럿인 줄 몰랐던 시선은 공부를 하고 싶은 마음에 그를 따라 뒤셀도르프로 향한다. 뒤셀도르프에 도착하고나서야 마티아스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된 시선은 폭력적인 마티아스로부터 도저히 벗어날 수가 없었다.

다행히 그녀 앞에 작은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는 요제프 리가 나타난다. 그는 시선이 진짜 화가로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준다. 이것을 알게 된 마티아스는 더욱 교묘하게 시선을 괴롭혔고 급기야 시선은 마티아스를 떠나기로 한다. 시선이 떠나자 마티아스는 유서를 남겨놓고 자신의 집 4층에서 뛰어내려 죽는다.

사랑했기에 나의 배신을 견딜 수 없었다 썼고, 그럼에도 그림과 집과 모든 재산을 내 앞으로 남겼으므로 나는 온 유럽의 증오를 받아내야 했다. 재능 있는 화가를 파멸로 몰아넣은 아시아 마녀가 되었다. 미디어는 지금보다 느렸지만 그때 사람들도 지금 사람들 못지않게 가십을 사랑했다. 조롱헤서 폭력으로 넘어가는 시간은 훨씬 짧았고 말이다. 창문으로 날아드는 깨진 판석, 집 앞에 버려지는 오물, 길에서 마주치는 사소한 위협들이 도를 넘어섰다. 마티아스가 바란 대로였다. 아무도 그의 의도를 해득하지 못했고, 돌바닥에 깨진 그의 머리가 마지막으로 계획한 것들은 차곡차곡 실행되었다. 어떤 자살은 가해였다. 아주 최종적인 형태의 가해였다. 그가 죽이고 싶었던 것은 그 자신이기도 했겠지만 그보다도 나의 행복, 나의 예술, 나의 사랑이었던 게 분명하다. 그가 되살아날 수 없는 것처럼 나도 회복하지 못했으면 하는 집요한 의지의 실행이었다. 178쪽

"유명세는 모든 걸 왜곡시켜버리는 경향이 있어"(61쪽)서 사람들은 마티아스의 유서만 믿었고, 시선이 어떤 일을 당했는지는 보려하지 않았다. 시선은 그 시달림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요제프 리와 함께 도망치듯 한국으로 돌아온 것이다.

『시선으로부터,』는 시선의 10주기를 앞두고 흩어져 살고 있던 가족들이 하와이로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다. 절대 자신의 제사를 지내지 말라고 했던 시선의 뜻을 거스르지 않기 위해, 10년만에 처음으로 그들만의 특별한 '제사상'을 준비한다. 그들은 한때 시선이 머물렀던 하와이를 여행하며 각자 가장 소중하고 의미있는 것들을 제사상에 올리기로 한 것. 그들은 그렇게 각자의 '시선'을 추억하며 그녀의 생각을 더듬어본다.

지금 생각해보면 '시선'의 삶은, 20세기를 살았던 여느 여성들과는 달리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다. 마티아스와의 관계가 억압적이고 폭력적이었지만, 비록 그 관계 때문에 더이상 그림은 그릴 수 없게 됐지만, 여느 여성들이 도달할 수 없었던 지점에 이르지 않았던가. 그가 없었다면 매일 육체 노동만 하는 일상에서 벗어나기 힘들었을 것이다. '시선' 자신 또한 그 삶을 부정하지 않는다. 실제로 '심시선'이라는 이름은 정세랑 작가의 돌아가신 할머니 이름에서 한 글자를 바꾼 것이라고 하는데, "할머니가 가질 수 없었던 삶을 소설로나마 드리고자 했다"(「작가의 말」)고 한다.

20세기를 살았던 대부분의 여성들은 그런 '운'을 가지기 힘들었다. 작가가 진짜로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시선'처럼 살 수 없었던 20세기 여성들의 삶일 것이다.

가해자가 피해자인 척할 때의 역겨움

173쪽

한편, 함께 여행을 간 가족들 중에는 시선의 손자 '규림'이 있다. '규림'은 최근 친구들 사이에서 있었던 사건 때문에 학원을 그만두고 학교를 옮기고 싶어했다. 규림은 '도영'과 여사친 '한빛'이 부딪칠 때마다 특별한 입장을 취하지 않았는데, 규림의 휴대전화가 꺼져있던 사이 규림 역시 포함되어 있던 단톡방에서 사건이 터졌다. 도영이 한빛의 사진을 합성해 남자 아이들이 있던 단톡방에 올린 것이다. 도영의 행동이 잘못됐다고 지적하는 친구들도 있었는데, 그것을 보지 못한 규림은 아무것도 모른채,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한빛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규림에게 서운함을 표현했다. 규림이 억울하다고 하자 한빛은 평소 그의 태도를 지적하며, 두 사람이 부딪칠 때마다 "무마시키는 미소였다고, 도영보다도 꼴 보기 싫었다고"(172쪽) 한다.

그 죽은 남자가 사촌 큰누나에게 염산을 던졌을 때, 가해자가 피해자인 척할 때의 역겨움을 온 가족이 똑똑히 이해할 수밖에 없었고 규림 자신은 도저히 같은 짓을 할 수 없었다. 가해와 피해의 스펙트럼에서 스스로가 가해에 더 가까웠음을 인정해야 했다. 방전된 배터리와 나쁜 타이밍 이전에 멍청하고 멍하게 방조하고 있었음을 말이다. 173~174쪽

어떤 인과는 명확히 기억되어야 한다.

303쪽

최근 정치, 문학 쪽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에서, 아직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혹은 균형적인 시각을 유지한다는 명목으로 피해자 대신 "피해 호소인" 혹은 "문제 제기하신 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보며 나 또한 이런 쪽이 아니었는지 생각해 보게 됐다. 여기저기 휩쓸리지 않고, 나만의 냉정함을 유지한다는 명목 하에 판단을 유보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그게 맞다고 생각했는데, 2차 가해를 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이 한 권의 책에, 최근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던 일련의 사건들에 대한 모든 입장이 담겨 있는 것 같아 반갑다. 당연히 그 입장은 내가 조리있게 정리할 수 없었던 내 생각들과 일치하는 것이다.

"쓰는 게 뭐 대단한 것 같지? 그건 웬만큼 뻔뻔한 인간이면 다 할 수 있어. 뻔뻔한 것들이 세상에 잔뜩 내놓은 허섭스레기들 사이에서 길을 찾고 진짜 읽을 만한 걸 찾아내는 게 더 어려운 거야." 166쪽

이런 문장도 마음에 들었고, 세심하게 출처를 밝힌 작가의 태도도 마음에 들었다. 이 소설 속에는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직업들이 여럿 등장하는데, "직업과 관련하여 인터뷰를 해주신 분들께 감사를 전하고 싶지만 혹 누가 될까 소중한 이름들을 가려두고자 한다"(「작가의 말」)는 이런 마음 씀씀이도 좋았다. 사적으로 나눈 대화를 그대로 소설에 쓰거나 소설로 타인의 삶을 강제로 아웃팅한 작가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전혀 신경쓰지 않았던 부분들이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작가로서 그녀의 문장들이 아직 완숙되지 않았다는 것. 읽다보면 매끄럽게 연결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었고, 이해할 수 없는 표현들이 튀어나왔다. 지금껏 조금 다른 장르의 글들을 써왔고, 나와 관심사가 달라서일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요즘 젊은 작가들의 작품들을 읽다보면 그런 경우가 종종 있다. (아무래도 영화와 미디어를 즐기지 않는 탓일까.) 앞으로 나아갈 그녀의 행보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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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밖의 모든 말들
김금희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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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지내십니까」 _157쪽

원래부터 집순이는 아니었다. 주말이 되면 산으로, 바다로 꼭 뛰쳐나가야 했고 계절마다 색색이 피는 꽃들을 모두 보고와야 했던 사람이었다. 요즘처럼 매일 집과 회사를 쳇바퀴처럼 돌고 있어도 답답하지는 않았는데, 6월에는 꼭 제주도를 가보고 싶었다. 6월이면 곳곳에 만개하는 수국을 보고 싶었고, (원래는 생일에 맞춰 올라가고 싶었지만 제주도의 장마는 좀 더 일찍 찾아온다고 하니) 장마가 오기 전에 한라산도 다녀오고 싶었다. 이때쯤이면 끝날거라고 생각해서 예매해뒀던 비행기 티켓을 취소했다. 내년 6월에는 꼭 다녀올 수 있기를 바라며. (사진으로 볼 수 밖에)

이달 대중교통 이용 요금은 '0'원일지도 모르겠다. 자가용만 이용해서도, 일 없이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서도 아니다. 되도록 동네 밖으로 나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 평소와 다른 일상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 장기화되면서 시간이 더 지나더라도 예전 같은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하리라는 생각마저 든다. 이전의 일상이 점, 선, 면의 방식이었다면 선은 지우고 면은 축소해 '점'의 방식으로 살아야 하는 요즘. 관계와 사회적 접촉면의 확장 속에 있던 우리는 이제 일상의 다른 국면을 맞았다. 157쪽

몇 달 째 나의 대중교통 이용 요금은 '0'원이다. 집과 회사 근처에서 감염경로를 알 수 없는 무증상 확진자들이 계속 나오고 있어서, 우리 동네를 벗어나서 어딘가를 방문하는게 조심스럽다. 내가 아니라 '나 때문'이 될까봐.

우리가 4월에도 물리적 거리 두기를 유지해야 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유행은 피할 수 없더라도 대량의 환자가 발생해 의료 시스템이 붕괴되는 비극을 막기 위해서다. 조금 불편해지고 외롭거나 막막해졌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특히 의료진들이 이 어려운 시기를 사명감으로 버티며 통과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자세를 고쳐보게 된다.

하지만 인간이란 말할 수 없이 나약하기도 한 존재라서 다시 이렇게 글을 쓰려고 혼자 앉아 있으면 어쩔 수 없이 나는 단절감이 무겁고, 많은 사람에게서 나로 이어졌던 관계의 선과 함께 공유했던 장소와 시간들이 그리워진다. 159쪽

 

 

 

「안녕이라고 말해주지 못한 이별들」_206쪽

지난주에 이모가 돌아가셨다. 지속적인 치료와 돌봄이 필요해서 요양원에 계셨는데, 몇 달 동안 면회금지 조치가 내려지는 바람에 한달 전부터 아무것도 못 드시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찾아뵐 수가 없었다. 평소에도 입맛이 없으셔서 잘 못 드셔서 가족들이 찾아갈 때마다 겨우 드셨는데, 코로나 때문에 더 일찍 기력이 쇠하신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엄마와는 18살이나 차이가 나서 외할머니 같았던 이모. 마침 장례식장도 코로나 거점병원 안에 있어서, 아주 가까운 친지들을 제외하고는 조문도 받지 않았고 집집마다 대표로 1명만 조문을 받아서 나는 갈 수가 없었다.

코로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사람을 이렇게 외롭게 만든다. 가족이, 가족다울 수 없게 만드는 코로나.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더 큰 피해를 줘서 잔인한 바이러스"라고 한 정은경 본부장의 말이 생각난다. '안녕이라고 말해주지 못한' 나의 이별.

할머니와의 이별이 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엄마는 할머니에게 누구 보고 싶은 사람 없어? 하고 물었다고 했다. 엄마가 그렇게 말했을 때 나는 그 답이 나일 리는 없다고 여기면서도, 어떤 대답이든 좀 마음이 서운할 수 있다고 예감하면서도 누구였어? 라고 물었다. 엄마는 할머니가 "다 보고 싶다"라고 대답했다고 전해주었다. 다 보고 싶다. 21쪽

 

 

 

「사랑하죠, 오늘도」_115쪽

"지금 사랑하는 것 같아서 그렇게 말했는데, 내일은 또 어떨지 모르니까요."

"사랑한다며?"

"네, 사랑하죠."

"그런데 내일은 어떨지 몰라?"

"네."

"사랑하는 건 맞잖아. 그렇잖아"

"네, 그래요."

"내일은?"

"모르겠어요."

─ 김금희, 『너무 한낮의 연애 』 22쪽

김금희 작가의 글 중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구절이다. 이렇게 담담한 고백이 또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직 오지도 않은 내일의 사랑을 확신하며 말하는데, 나는 그러지 않았고 믿지 않았다. 이 구절 때문에 나는 이 에세이를 읽기 시작했다. 소설이 아닌 일상 속 그녀 모습이 너무 궁금했기 때문이다. 소설 속 양희처럼, 그녀 역시 담담하게 보내는 일들이 많았고 멋부리지 않는 글들이 좋았다.

2020년 1월, 문학상 수상을 거부하며 권위와 관행에 맞섰던 그녀에게 응원을 보낸다.

그런 말들이 차고 넘치는 하루하루가 아니었다면 이런 이야기를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세상은 형편없이 나빠지는데 좋은 사람들, 자꾸 보고 싶은 얼굴들이 많아지는 것은 기쁘면서도 슬퍼지는 일이다. 그런 사람들을 사랑했다가 괜히 마음으로 거리를 두었다가 여전한 호의를 숨기지 못해 돌아가는 것은 나의 한계이기도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사랑하죠, 오늘도, 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오늘은 채 끝나지도 않았지, 라고. 117~1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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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0-06-08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글프네요. 지인이 돌아가셔도
문상도 못하는 상황이라니.

포스트코로나 시대는 디스토피
아의 전초가 아닐지...

어제 다녀온 화성 궁평항 가는
길의 들꽃들은 정말 이뻤습니다.
 
전염의 시대를 생각한다
파올로 조르다노 지음, 김희정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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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미친 비선형 세상에서, 날수를 세면서!

1982년 이탈리아 토리노 출생.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았고,『소수의 고독 』이라는 (우리나라에서도 발표된 적이 있는) 소설을 발표해 이탈리아에서 권위있는 문학상도 받았다고 한다. 코로나가 중국을 넘어 이탈리아에서도 급속도로 퍼지기 시작한 2월 29일. 도시 전체에 봉쇄 조치가 내려진 상태에서 그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전에 그의 작품을 읽은 적도 없고, 그의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지만 이런 사실들의 나열만으로도 나는 그에게 친밀감을 느낀다. 왜냐하면 우리는 지금껏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전염의 시대'를 함께 겪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글을 쓰며 이 공백기를 보내기로 했다. 뉴스 예보를 주시하면서 눈앞에 펼쳐진 현실을 이해하고 싶어서다. 때때로 글쓰기는 균형을 잡기 어려울 때 땅에 발을 디디고 서 있게 하는 바닥짐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이유도 있다. 나는 이 전염이 우리 자신에 대해 폭로하는 것에 귀를 막고 싶지 않다. 두려운 비상사태가 종료되면, 우리의 일시적 자각은 순식간에 사라질 것이다. 이것이 질병의 본질이다. 10쪽

코로나가 우리 도시를 덮쳤을 때,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사람들을 만나거나 외출을 할 수 없어서 집에서 머물며 평소보다 책 읽을 시간이 훨씬 많아졌음에도 불구하고 활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즈음 내가 가장 주의 깊게 본 것은 매일매일 늘어가는 '숫자'들 뿐이었다. (참고로 4월 28일, 오늘이 우리나라에 코로나 환자가 처음 발생한지 100일째 되는 날이라고 한다. 정말 우리는 미치도록 숫자만 세고 있구나.)

거리는 멀지만, 이탈리아 사람들도 다르지 않았나보다. 심지어 이 책을 쓴 작가까지도.

아마 전염의 시대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수를 세는 것 외엔 없기에 그 구절이 생각났을 것이다. 우리는 감염자와 완치자, 사망자의 수를 세고, 입원자의 수와 학교 결석 일수를 센다. 주식 시장에서 날아간 수십억과 마스크 판매 수, 진단 시약의 결과가 나오는 시간을 센다. 감염원으로부터의 거리, 예약 취소된 호텔 방 수를 세고, 우리의 유대 관계와 단념한 것들을 센다. 그리고 날수를 세고 또 센다. 특히 이 비상사태가 시작되고 서로 떨어져 지낸 날수를 센다. 75~76쪽

몇 년 동안 보려고 미뤄뒀던 영화들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지만 특보 외에는 아무것도 볼 수 없다. 밤 늦도록, 완전히 지칠 때까지, 계속해서. 81쪽

그는 지금의 시대를 '미친 비선형 세상'이라고 표현한다. 확진자의 증가세가 선형적으로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불규칙적이고 폭발적으로, 비선형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자연은 본래 비선형적이다.(21쪽)

이렇게 확진자가 '폭발적'으로 발생하게 된 것은, 이탈리아가 중국을 주시하지 않았고, 밀라노는 지방 도시를 신경 쓰지 않았으며, 남부 이탈리아는 북쪽을 보지 않았고, 나머지 유럽은 이탈리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충분히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투명하지 않은 정보 제공, 자극적인 제목만 뽑는 언론들, 전염병처럼 유포되는 가짜 뉴스들, 이런 것들도 도움이 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날수를 세면서, 슬기로운 마음을 얻자. 그리고 이 모든 고통이 헛되이 흘러가게 놔두지 말자. 77쪽

작가는 3월말까지 글을 썼으며, 편집은 4월 7일까지도 진행 중이었다. 길지 않은 글들이지만, 지구 반대편에서 똑같은 전염병을 겪고 있는 작가의 글을 이토록 신속하게 책으로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이 나는 놀라웠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이렇게 빨리 돌아갈 수 있구나. 그러니까 전염병의 확산속도도 그렇게 빠를테지만.) 무엇보다 양심적인 책값도 마음에 든다. 심지어 인세는 코로나 감염자를 치료하는 이탈리아 현지 의료단체와 구호단체에 전액 기부될 예정이라고 한다.

어서 빨리 '전염의 시대'가 끝나고, 예전처럼 서로 왕래하며 지내는 시대가 오길 바라며.

여태껏 일상생활이 이처럼 중요한 의미로 다가온 적은 없었다. 정확히 그 실체가 무엇인지도 알지 못했던 정상 상태가 한순간에 우리가 지닌 가장 신성한 것이 되었다. 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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