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 없는 작가
다와다 요코 지음, 최윤영 옮김 / 엘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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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언어, 한 세계에만 고정되어 있지 않고 세계를 자유롭게 훨훨 유영하는 작가!

독일어와 일본어로 글을 쓰는 이중 언어 작가인 다와다 요코의 『영혼 없는 작가』가 오랫동안 절판되어 있다가 개역 증보판으로 나왔다. 2011년 처음 출간된 초판본에는 14편의 글이 수록되어 있었는데, 개역 증보판에는 9편의 글이 추가되어 '다와다 요코의 세계'를 더욱 공고하게 구축하고 있다.

1960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난 작가는 와세다대학교 러시아문학과를 졸업한 뒤 독일로 건너갔다. 1982년부터 현재까지 함부르크와 베를린에 거주하며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모어에서는 단어들이 사람과 꼭 붙어 있어서 도대체 언어에 대해 유희를 하는 재미를 느낄 수가 없다. 모어에서는 생각이 단어에 너무 꼭 들러붙어 있어서 단어나 생각이나 자유롭게 훨훨 날아다닐 수가 없다. 외국어를 쓸 때는 스테이플러 심 제거기 같은 것을 갖게 된다. 이 제거기는 서로 바짝 붙어 있는 것과 단단히 묶여 있는 것을 모두 떼어놓는다. _48~49쪽


모국어로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글을 쓰는 것도 쉽지 않은데, 작가는 두 언어의 세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한 세계만 알고 있는 사람들은 결코 발견할 수 없는 것들을 이야기한다. 특히, 파울 첼란의 시를 일본어로 번역하며 풀어쓴 「번역가의 문 또는 첼란이 일본어를 읽는다」는 작가처럼 이중 언어를 구사하지 않는다면 절대 발견할 수 없는 이야기다. 작가는 일본어로 번역된 텍스트에서 한자 '門'이 부수로 들어간 문자들을 하나씩 들여다보며 독일어 텍스트와 연결시키는데, 일본어는 전혀 모르고 한자는 읽을 줄 아는 내가 보기에도 '門'을 찾아내는 과정이 인상적이었다.


이처럼 작가는 단어 하나조차 허투루 지나치지 않는데, 독일어 'Ich' 역시 그중 하나다. 일본에서는 성별이나 나이에 따라 자신을 지칭하는 말이 다른데, 남자아이들은 '보쿠', 여자아이들은 '아타시'라고 지칭한다. 어른들은 성 중립적인 '와타시'를 쓸 수 있었지만, 아이들은 소년이나 소녀 중 하나를 골라야 했다. 그러나 독일어는 아주 간단하게 'Ich(나)'라고 말하면 된다.


만약 내가 ─ 예를 들어 독일어 같은 ─ 다른 언어를 말했다면 내 유년 시절은 얼마나 간단했을까. 나는 아주 간단하게 그냥 "이히(ich)"라고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히"라는 말을 사용할 때는 자신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느낄 필요가 없었다. _233~234쪽


최근 노벨 문학상 후보로 자주 거론되면서 한국에서도 다와다 요코의 작품들이 여럿 발표됐다. 다와다 요코처럼 한 곳, 한 언어에만 고정되어 있지 않고 세계를 유영하며 이중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이 아닐까.


누구에게나 태어날 때 고유한 원본 텍스트가 주어진다는 기본 생각에서 출발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이 원본 텍스트가 보존되는 장소를 영혼이라고 부른다. _55쪽


나는 영혼이 없는 사람처럼 보인다. 내 영혼은 항상 어딘가 떠돌아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_57쪽


다른 글자와 같이 살아가는, 외국에서 온 수많은 관광객들과 노동자들도 이에 속한다. 이들의 눈에 도시의 모습은 수수께끼이거나 베일에 싸여 있다. _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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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개의 말·프라하, 사라져 가는 시
밀란 쿤데라 지음, 김병욱 옮김 / 민음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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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가는 체코문학이 다시 타오르길 바라며! 부디 사라지지 말지어다!

2023년 7월 11일, 프랑스 파리에서 94세의 나이로 밀란 쿤데라가 별세했다. 해마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됐지만 끝끝내 수상하지 못했다. 『89개의 말ㆍ프라하, 사라져 가는 시』는 그의 2주기에 맞춰 출간된 유고집으로, 두 편의 산문이 실려 있다.


앞서 밀란 쿤데라는 에세이 『커튼』을 통해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먼 나라"의 작가로 살아가는 어려움과 고민을 토로한 적이 있는데, 이 책 역시 그런 고민들이 담겨 있다. 밀란 쿤데라는 자신만큼 "번역 문제로 몸살을 앓는 작가"(16쪽)는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1968년 러시아 침공이 있기 전까지는 프라하에서 그의 작품들이 출판될 수 있었지만, 그 이후에는 더 이상 체코슬로바키아(1993년에 체코슬로바키아 연방이 해체되고 체코 공화국이 탄생했다)에서 출간될 수 없었다. 게다가 체코가 점점 더 러시아 지배권역의 변방으로 전락함에 따라 체코어에 관한 관심이 줄어들었고, 외국의 많은 출판사에서는 프랑스어 번역본을 바탕으로 번역하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원칙적으로는 거절했지만, "그들 나라에 체코어 번역자가 없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17쪽) 이것이 그의 고민이었고, 이런 이유로 잡지에 발표하는 글과 평론은 프랑스어로 직접 쓰기 시작했다.

『농담』은 1968년과 1969년에 서구의 모든 언어로 번역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슬플 수가. 프랑스에서는 번역가가 나의 문체를 완전히 바꿔 소설을 거의 다시 쓰다시피 했다. 영국에서는 편집자가 내적 성찰이 이어지는 모든 단락을 짧게 자르고, 음악학적인 장들을 없애 버리고, 부部들의 순서를 바꾸어 소설을 재구성했다. 또 다른 어느 나라. 번역자를 만나 보니, 그는 체코어를 단 한 마디도 모른다. "번역을 어떻게 하셨나요?" 나의 물음에 그가 "마음으로요."라고 대답하며, 지갑에서 내 사진을 꺼내 보여준다. 그의 태도가 너무도 호의적이어서 나는 마음의 텔레파시로 번역하는 게 진짜 가능한 줄로 믿을 뻔했다. (…) 아르헨티나 번역자가 그랬듯이, 그도 프랑스어판 '다시 쓰기' 판본을 번역한 것이었다. _13쪽

하지만 밀란 쿤데라는 이내 깨닫는다. 사유를 하는 것과 이야기를 하는 것은 서로 다른 일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소설까지 프랑스어로 쓰지는 못할 것 같다고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프랑스어 판본을 온전히 그의 텍스트로 여길 수도 없었다. 「89개의 말」은 밀란 쿤데라의 고민을 알고 있었던 피에르 노라(1980년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지식층을 상대로 한 격월간지 《데바》 창간)의 제안으로 시작되었다. 참고로 이 개인 사전의 일부는 에세이 『소설의 기술』 한 부部(6부 소설에 관한 내 미학의 열쇠어들)에도 실려 있다.

"그 모든 번역본을 검토할 때, 단어 하나하나에 대해 깊이 숙고할 수밖에 없었을 거야. 그렇다면 자네의 개인 사전을 써보면 어떻겠나? 자네가 중요시하는 말들, 자네를 골치 아프게 하는 말들, 자네가 애착하는 말들을 모은……?"(18쪽)

「프라하, 사라져 가는 시」에는 "서구 운명의 비극적이고 고통스러운 중심인 프라하가 자신이 한 번도 속한 적이 없는 동유럽의 안개 속으로 서서히 사라져 가고 있"(97쪽)는 것을 보며 느낀 작가의 고뇌가 담겨 있다. 그는 "체코의 언어, 외국인의 접근을 불허하는 체코어가 아주 오래전부터 프라하와 다른 유럽 사이에 불투명한 유리창처럼 가로놓여 있다"(98쪽)고 말한다. 다른 작품에서도 여러 번 토로한 적이 있는 고민이라 작가의 안타까움이 더더욱 와닿는다.

소국들의 유럽은 다른 유럽이며, 다른 시선을 가지며, 그 사상은 종종 대국들의 유럽과 완전한 대위를 이루기도 한다. _99쪽

1914년 세계 대전 직후, 유럽 문학이 미래에 대한 찬란한 비전과 혁명의 종말론에 매혹되는 경향을 보일 때, 이들 프라하 출신 작가들은 진보의 숨겨진 얼굴, 위협적이고 병적인 그 검은 얼굴을 누구보다도 먼저 꿰뚫어 보았다. (…) 언제나 사건의 주체라기보다 대상이었던 소국들과 소수파들인 이 다른 유럽이 가진 환상 없는 시건이 그것이다. 여러 민족들에 둘러싸여 고뇌에 찬 고독을 경험한 유대인 소수파의 시선(카프카), 그 정치와 전쟁이 자신들과는 전혀 무관한 오스트리아 제국에 병합된 체코 소수파의 시선(하셰크), 자신들에겐 의견조차 묻지 않고 다음 재앙을 향해 달려가는 유럽 강대국들 한가운데서 소수파로 남은 신생 체코 국가의 시선(차페크) 등. _104~105쪽

1968년의 러시아의 침공은 60년대 세대 전체를 쓸어내 버렸고, 더불어 그 이전의 현대 문화 전체를 쓸어내버렸다. 우리의 책들은 프란츠 카프카나 체코 초현실주의자들의 책들과 같은 지하실에 갇혀 있다. 죽은 자가 된 산 자들과 두 번 죽은 자가 된 죽은 자들이 나란히 갇혀있다.

이제는 사람들이 알까. 프라하에 더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단지 인권과 민주주의와 정의 등등만이 아니라는 것을. 지금 거기에서, 하나의 위대한 문화 전체가 불타고 있다는 것을,

시가 사라져 가는,

불길에 휩싸인 종잇장처럼. _130~1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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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유전자
리처드 도킨스 지음, 야나 렌조바 그림, 이한음 옮김 / 을유문화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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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유한하지만 유전자는 영원하다!

『불멸의 유전자』는 『이기적 유전자』로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리처드 도킨스의 최신작으로, 『이기적 유전자』의 연장선 상에 있으면서 더 확대된 개념의 유전자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저자는 『이기적 유전자』에서 인간(생물)은 단지 유전자가 살아남기 위해 생물을 임시 탈것으로 이용한다고 했다. 그러면 유전자는 죽지 않고 사본의 형태로 생존하고 번식할 수 있다. 『불멸의 유전자』가 되는 것이다. 이 책은 DNA 서열을 읽는 게 아니라 동물 자체, 동물의 몸과 행동, 즉 '표현형'을 통해서 DNA의 메시지를 간접적으로 읽으려고 한다. 우리의 유전자는 '팰림프세스트'와 비슷하다. '팰림프세스트'는 양피지를 아끼기 위해 양피지에 쓴 글을 지우고 그 위에 겹쳐 쓴 양피지를 뜻하는데, 우리의 유전자도 그렇다는 것이다. 우리의 유전자에는 과거 우리가 어떤 모습에서 어떻게 진화했는지 고스란히 담겨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표현형을 통해서도 진화의 과정을 추측할 수 있고, 앞으로 어떻게 변할 것인지 예측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그림 자료가 풍부하다. 그림을 그린 작가의 이름이 함께 표기될 정도이니 그림의 지분이 어느 정도인지는 짐작할 수 있으리라. 덕분에 직접 검색해야 하는 수고로움과 잘못 검색해서 얻을 수 있는 오류에 대한 우려를 걷어낼 수 있다.



동물을 읽을 때, 우리는 사실상 과거 환경을 읽고 있다. 내가 '사자死者'라는 말을 쓴 이유도 그 때문이다. 우리는 고대 세계를 재구성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우리 현생 동물을 빚어내는 유전자들을 대대로 대물림한, 오래전에 세상을 떠난 우리 조상들이 살던 세계들이다. 지금은 어렵겠지만, 미래의 과학자는 미지의 동물을 보았을 때 그 몸과 유전자를 그들 조상들이 살았던 환경을 상세히 기술한 책으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_10쪽


유전자가 생물에게 쓰이는 것이 아니라, 유전자가 생물을 이용한다. 유전자는 생물을 임시 탈것으로 이용하며, 미래 세대로 옮겨가는 수단으로 삼는다. 이는 사소한 견해 차이, 결코 단순한 단어 게임이 아니다. 근본적인 차이다. 중요한 문제다. _244쪽


DNA의 정보는 DNA라는 물질 매체가 유한할지라도 영구적일 수 있다. 그리고 이 점이 왜 중요한지를 다시 강조하련다. DNA에 든 정보만이 몸보다 더 오래 살 운명이다. 매우 중요한 방식으로 오래 산다. 대다수 동물은 수명이 몇 달 또는 몇 주, 더 길면 몇 년이다. 극소수만 수십 년까지 살며, 수백 년을 사는 종은 거의 없다. 그리고 물질인 DNA 분자도 함께 죽는다. 그러나 DNA에 든 정보는 한정 존속할 수 있다. _250~251쪽


유전자는 어떻게 '불멸성'을 획득할까? 사본의 형태로 생존하고 번식할 수 있도록, 그럼으로써 다음 세대로 더 나아가 먼 미래까지 성공한 유전자가 전달되도록 몸들의 기나긴 연쇄에 영향을 미침으로써다. 성공하지 못한 유전자는 집단에서 사라지는 경향이 있다. 그 유전자가 성공적으로 깃든 몸이 생존해서 다음 세대를 남기는 데, 즉 번식에 실패하기 때문이다. 성공한 유전자는 생존하고 번식하는 데 뛰어난 몸에 깃드는 통계적 경향을 보이는 것들이다. 그리고 몸에 가하는 인과적 영향을 통해서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에 그 통계적 경향을 즐긴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유전자가 능동적 원인이 아니라는 말이 근본적으로 틀린 이유에 다다랐다. 유전자야말로 정확하게 그리고 불가피하게 능동적 원인이다. 그렇지 않다면, 자연선택도 적응 진화도 일어날 수가 없다. _252~253쪽


생물('탈것')은 행동의 단위다. 그러나 유전자('복제자')는 생존하는 단위다. _267쪽


성공한 유전자는 대대로 몸에서 살아가며, 자신이 깃든 몸에 '표현형' 효과를 일으킴으로써 자기 생존의 원인이 된다. _269쪽


우리 자신을 포함해서 한 종의 유전자 풀은 저마다 미래로 여행하려고 굳게 결심한 바이러스들의 거대한 군집이다. 그들은 몸을 만드는 사업에 서로 협력한다. 번식한 뒤에 죽으며 차례차례 이어지는 일시적인 몸들이 시간을 관통하는 그들의 수직 그레이트 트렉에 최고의 탈것임이 입증되어 왔기 때문이다. 당신은 득실거리고 뒤섞이면서 시간 여행을 하는 바이러스들이 빚어낸 위대한 협력의 화신이다. _4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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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공가의 치부 을유세계문학전집 141
에밀 졸라 지음, 조성애 옮김 / 을유문화사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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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고 있는가?

에밀 졸라는 제1제정시대(1830~1848)의 프랑스 사회를 그린 발자크의 '인간 희극' 시리즈를 본떠서 자신이 살고 있는 나폴레옹 3세의 제2제정시대(1852~1870)의 모든 것을 그릴 야심으로 '루공 마카르 총서'를 기획했다. 루공과 마카르 가문의 5대에 걸친 이야기를 매년 한 권씩 20년 동안 20권의 연작소설로 썼는데, 『루공가의 치부』는 이 일대기의 첫 번째 작품이다.


루공과 마카르 가문은 훗날 '디드 아줌마'라고 불리는 '아델라이드'로부터 시작한다. 아델라이드는 플라상(가상도시)에서 제일 부자인 채소 재배업자 푸크 가문의 외동딸로 태어나지만 아버지처럼 머리가 돈 아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그녀의 아버지가 미쳐서 죽자 그녀는 채소 재배업자 루공과 결혼한다. 하지만 '루공'이 15개월 만에 일사병으로 죽자 이번에는 '거지 마카르'를 정부로 삼는다. '루공'과의 사이에서는 아들 피에르를, '마카르'와는 아들 앙투안과 딸 위르쉴을 낳는다. 이렇게 '루공 마카르 가문'이 탄생한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외손자 실베르와 그를 사랑하는 미에트다. 미에트는 과거 아델라이드의 소유였던 집에서 살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미에트-실베르는 아델라이드-마카르와 겹쳐지는 부분이 많다.


에밀 졸라가 '기원'이라고 덧붙인 첫 번째 이야기는 가계도를 그리면서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 디드 아줌마는 83세로 등장하는데, 마지막 이야기인 『파스칼 박사』에서는 105세로 등장한다고 한다. 몇 년 전부터 이 '루공 마카르 총서'를 한 권씩 읽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발표된 작품은 9권이 전부이다. 그동안 이 이야기가 시작된 첫 번째 작품을 읽을 수 없어서 아쉬워하고 있던 중이라 이 책이 더더욱 반가울 수밖에 없다. 안타깝게도 마지막 이야기인『파스칼 박사』도 정식으로 출간된 적이 없어서 읽을 수가 없다. 개인적으로 을유문화사에서 이 총서를 모두 출간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마지막으로 왜 이 책의 제목이 『루공가의 치부』가 되었는지 궁금하다. 원제는 'La Fortune des Rougon'이다. 'la Fortune'는 운명, 행운, 횡재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치부'라는 제목이 붙었다. 이야기는 루공가의 '치부'도 될 수 있고 '행운'도 될 수 있지만 원제를 고려한다면 '행운'이 더 맞을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책과 구별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추측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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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없는 밤
서한나 외 지음 / 글항아리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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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이 없어도 밤을 새롭게 하는 법!

『술 없는 밤』이라니. 어떻게 내가 이런 제목의 책을 읽지 않을 수가 있을까. 다른 사람들은 술 없이 밤을 어떻게 보내는지 궁금했다.

내가 이렇게 반가워하는 이유는 바로 '후천적 알쓰'이기 때문이다. 알코올을 분해하지 못하는 유전자를 물려받은 것도 아니고, 한때는 주량을 열심히 키워나가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맥주 한 잔이면 기분 좋게 취해버리고, 회식 자리에서도 꿋꿋하게 콜라를 마시고, 치맥이 생각나는 날에는 알코올이 전혀 없는 제로 맥주를 마신다.


그런데 왜 난 술을 안 마시지? 글쎄…… 그냥 싫다? 무엇보다 술에 취한 기분이 싫다. 취하면 어지러운데 그게 기분이 좋은 건가. 어지러운 건 어지러운 거다. 비틀거리는 건 비틀거리는 거고, 오바이트는 오바이트다. 의도하지 않은 이야기들이 통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입 밖으로 나오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술주정이라야만 헛소리가 가능할까. 노트북만 앞에 있으면 아무 말이나 할 수 있는데? 시간이 아까워서 사람들과 웃고 떠들기 싫고,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얼른 집으로 돌아가고 싶고. _156~157쪽, 오한기, 「나의 즐거운 알쓰 일기」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간질간질했던 목구멍을 싹 긁어주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술을 한 잔도 먹지 않는 오한기 작가가 술에 관한 에세이 쓰기를 수락한 이유는 술을 먹지 않는 1인으로서 할 이야기가 많기 때문이란다. (맨정신으로 모두 다 말해줘. 얼마든지 읽어줄게!) 작가와 초등학생 때부터 친구로 지낸 JJ는 술을 마시지 않으면 진솔한 대화가 되지 않는 것 같다며 작가에게 술을 권했다. "아니, 술을 마셔야만 진솔한 대화가 되는 거야?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도 와플을 먹으면서도 가능하지 않아"(168쪽) 술김에 하는 이야기가 진솔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시답잖은 거 아닌가.


오한기 작가와 반대로 음악가 오지은은 술을 마시지 않으면서도 술자리를 좋아해서 참석하는 사람이다. 주정뱅이들이 허공에 날려버리는 말을 계속 듣고 싶어 한다.

이 책에는 작가, 번역가, 음악가, 영화감독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6명이 쓴 '술 있는' 혹은 '술 없는' 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마치 술에 취한 상태로 쓴 것 같은 글도 있고, 술과 문학을 연결 지어 쓴 글도 있고, 알쓰의 일기 같은 글도 있다. 무엇보다도 술을 찬양하거나 술자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많지만 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의 이야기는 흔하지 않아서 좋았다.


술을 먹기 시작한 것은 새롭고 생경한 순간에 이르기 위해서였다. 이젠 술이 없어도 밤을 새롭게 하는 법을 터득했다. _198쪽, 김세인 「술이 덜어진 몸은 느슨해졌고 틈새가 벌어지더니 어느 순간 북- 하고 갈라졌다」


우리는 어떤 결핍을 안고 일렁이는 물속 어둠에 잠겨 살고, 세계는 밤 너머에 있다. 쩍 벌어진 그 사이를 술과 허구가 채운다. 밤에 출몰하는 거인이 아닌 밤에 거인을 만들어내는 우리 안의 두려움에 대한 두려움을 술과 허구가 잠재워준다. 그렇게 외부의 물질, 타인의 의식에 "잠겨" 살아가다 보면, 막상 우리 삶의 이야기는 우리 손가락을 빠져나가 망각의 심연으로 떨어져버린다. 하지만 소설을 읽든 술에 취하든 '도망치는' 게 아니라 '다가가기'를 선택할 수도 있다. 소설을 읽든 술에 취하든 '빠져드는' 게 아니라 '갖고 놀기'를 선택할 수도 있다. 도망은 모멸이지만 놀이는 힘이다. _54쪽, 김선형 「술 없는 밤」


밤이 세계가 벌이는 까꿍 놀이라면, 우리는 그 부재의 감각을 반드시 장악해야 한다. 외부에서 주입된 무언가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 창조한" 놀이로 메꿔야 한다. 나의 시로, 나의 소설로, 나의 노래로, 나의 춤으로. 책을 읽더라도 '내'가 읽어내는 책의 의미를 알고, 술을 마시더라도 '내'가 마시는 술맛을 똑똑히 알아야 한다. 세계가 부재하는 밤의 공간, 불확정성의 공간, 그 미정의 공간을 우리 자아의 창조물로 채우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 공간을 장악하면 수동성의 모멸감이 사라지고 드디어 의도성의 세계가 열린다. _58쪽, 김선형 「술 없는 밤」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들, 그러니까 술이라는 정신의 마취제 없이도 하루하루를 밀고 나가는 사람들은 외부의 힘에 막연한 기대를 하지 않으며, 개인의 진정한 힘과 희망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경험의 축적을 통해서, 즉 자기 앞에 닥친 과제들을 (아무리 고통스럽고 두려운 일이라 해도) 하나하나 해내는 과정을 통해서 얻어진다는 사실을 터득하고 있다. _59쪽, 김선형 「술 없는 밤」


내 인생의 서사에서 나를 구해줄 영웅은 오로지 나 자신뿐이다. 둘째가라면 서러울 주당 헤밍웨이는 "글쓰기와 싸움은 차가운 맨정신으로 해야한다"고 말했다. 글쓰기와 싸움은 어쩐지 동어로 읽힌다. 이 필사의 전투를 치른 후 비로소 우리는 성숙한 평화에 가닿는다. _60쪽, 김선형 「술 없는 밤」


그러니 어쩌면 어두운 밤 우리에게는 술에 앞서 철학이 필요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밤의 술을 한껏 향유하고 술 없는 밤을 의연하게 건너기 위하여. _61쪽, 김선형 「술 없는 밤」


간절하게 잊고 싶었기에 블랙아웃이 조금이라도 더 빨리 오기를 바라며 삼 년이 넘도록 폭음을 일삼았고, 정작 그 일을 제외한 모든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_187쪽, 김세인 「술이 덜어진 몸은 느슨해졌고 틈새가 벌어지더니 어느 순간 북- 하고 갈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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