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유전자
리처드 도킨스 지음, 야나 렌조바 그림, 이한음 옮김 / 을유문화사 / 202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몸은 유한하지만 유전자는 영원하다!

『불멸의 유전자』는 『이기적 유전자』로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리처드 도킨스의 최신작으로, 『이기적 유전자』의 연장선 상에 있으면서 더 확대된 개념의 유전자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저자는 『이기적 유전자』에서 인간(생물)은 단지 유전자가 살아남기 위해 생물을 임시 탈것으로 이용한다고 했다. 그러면 유전자는 죽지 않고 사본의 형태로 생존하고 번식할 수 있다. 『불멸의 유전자』가 되는 것이다. 이 책은 DNA 서열을 읽는 게 아니라 동물 자체, 동물의 몸과 행동, 즉 '표현형'을 통해서 DNA의 메시지를 간접적으로 읽으려고 한다. 우리의 유전자는 '팰림프세스트'와 비슷하다. '팰림프세스트'는 양피지를 아끼기 위해 양피지에 쓴 글을 지우고 그 위에 겹쳐 쓴 양피지를 뜻하는데, 우리의 유전자도 그렇다는 것이다. 우리의 유전자에는 과거 우리가 어떤 모습에서 어떻게 진화했는지 고스란히 담겨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표현형을 통해서도 진화의 과정을 추측할 수 있고, 앞으로 어떻게 변할 것인지 예측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그림 자료가 풍부하다. 그림을 그린 작가의 이름이 함께 표기될 정도이니 그림의 지분이 어느 정도인지는 짐작할 수 있으리라. 덕분에 직접 검색해야 하는 수고로움과 잘못 검색해서 얻을 수 있는 오류에 대한 우려를 걷어낼 수 있다.



동물을 읽을 때, 우리는 사실상 과거 환경을 읽고 있다. 내가 '사자死者'라는 말을 쓴 이유도 그 때문이다. 우리는 고대 세계를 재구성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우리 현생 동물을 빚어내는 유전자들을 대대로 대물림한, 오래전에 세상을 떠난 우리 조상들이 살던 세계들이다. 지금은 어렵겠지만, 미래의 과학자는 미지의 동물을 보았을 때 그 몸과 유전자를 그들 조상들이 살았던 환경을 상세히 기술한 책으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_10쪽


유전자가 생물에게 쓰이는 것이 아니라, 유전자가 생물을 이용한다. 유전자는 생물을 임시 탈것으로 이용하며, 미래 세대로 옮겨가는 수단으로 삼는다. 이는 사소한 견해 차이, 결코 단순한 단어 게임이 아니다. 근본적인 차이다. 중요한 문제다. _244쪽


DNA의 정보는 DNA라는 물질 매체가 유한할지라도 영구적일 수 있다. 그리고 이 점이 왜 중요한지를 다시 강조하련다. DNA에 든 정보만이 몸보다 더 오래 살 운명이다. 매우 중요한 방식으로 오래 산다. 대다수 동물은 수명이 몇 달 또는 몇 주, 더 길면 몇 년이다. 극소수만 수십 년까지 살며, 수백 년을 사는 종은 거의 없다. 그리고 물질인 DNA 분자도 함께 죽는다. 그러나 DNA에 든 정보는 한정 존속할 수 있다. _250~251쪽


유전자는 어떻게 '불멸성'을 획득할까? 사본의 형태로 생존하고 번식할 수 있도록, 그럼으로써 다음 세대로 더 나아가 먼 미래까지 성공한 유전자가 전달되도록 몸들의 기나긴 연쇄에 영향을 미침으로써다. 성공하지 못한 유전자는 집단에서 사라지는 경향이 있다. 그 유전자가 성공적으로 깃든 몸이 생존해서 다음 세대를 남기는 데, 즉 번식에 실패하기 때문이다. 성공한 유전자는 생존하고 번식하는 데 뛰어난 몸에 깃드는 통계적 경향을 보이는 것들이다. 그리고 몸에 가하는 인과적 영향을 통해서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에 그 통계적 경향을 즐긴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유전자가 능동적 원인이 아니라는 말이 근본적으로 틀린 이유에 다다랐다. 유전자야말로 정확하게 그리고 불가피하게 능동적 원인이다. 그렇지 않다면, 자연선택도 적응 진화도 일어날 수가 없다. _252~253쪽


생물('탈것')은 행동의 단위다. 그러나 유전자('복제자')는 생존하는 단위다. _267쪽


성공한 유전자는 대대로 몸에서 살아가며, 자신이 깃든 몸에 '표현형' 효과를 일으킴으로써 자기 생존의 원인이 된다. _269쪽


우리 자신을 포함해서 한 종의 유전자 풀은 저마다 미래로 여행하려고 굳게 결심한 바이러스들의 거대한 군집이다. 그들은 몸을 만드는 사업에 서로 협력한다. 번식한 뒤에 죽으며 차례차례 이어지는 일시적인 몸들이 시간을 관통하는 그들의 수직 그레이트 트렉에 최고의 탈것임이 입증되어 왔기 때문이다. 당신은 득실거리고 뒤섞이면서 시간 여행을 하는 바이러스들이 빚어낸 위대한 협력의 화신이다. _403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루공가의 치부 을유세계문학전집 141
에밀 졸라 지음, 조성애 옮김 / 을유문화사 / 202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고 있는가?

에밀 졸라는 제1제정시대(1830~1848)의 프랑스 사회를 그린 발자크의 '인간 희극' 시리즈를 본떠서 자신이 살고 있는 나폴레옹 3세의 제2제정시대(1852~1870)의 모든 것을 그릴 야심으로 '루공 마카르 총서'를 기획했다. 루공과 마카르 가문의 5대에 걸친 이야기를 매년 한 권씩 20년 동안 20권의 연작소설로 썼는데, 『루공가의 치부』는 이 일대기의 첫 번째 작품이다.


루공과 마카르 가문은 훗날 '디드 아줌마'라고 불리는 '아델라이드'로부터 시작한다. 아델라이드는 플라상(가상도시)에서 제일 부자인 채소 재배업자 푸크 가문의 외동딸로 태어나지만 아버지처럼 머리가 돈 아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그녀의 아버지가 미쳐서 죽자 그녀는 채소 재배업자 루공과 결혼한다. 하지만 '루공'이 15개월 만에 일사병으로 죽자 이번에는 '거지 마카르'를 정부로 삼는다. '루공'과의 사이에서는 아들 피에르를, '마카르'와는 아들 앙투안과 딸 위르쉴을 낳는다. 이렇게 '루공 마카르 가문'이 탄생한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외손자 실베르와 그를 사랑하는 미에트다. 미에트는 과거 아델라이드의 소유였던 집에서 살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미에트-실베르는 아델라이드-마카르와 겹쳐지는 부분이 많다.


에밀 졸라가 '기원'이라고 덧붙인 첫 번째 이야기는 가계도를 그리면서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 디드 아줌마는 83세로 등장하는데, 마지막 이야기인 『파스칼 박사』에서는 105세로 등장한다고 한다. 몇 년 전부터 이 '루공 마카르 총서'를 한 권씩 읽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발표된 작품은 9권이 전부이다. 그동안 이 이야기가 시작된 첫 번째 작품을 읽을 수 없어서 아쉬워하고 있던 중이라 이 책이 더더욱 반가울 수밖에 없다. 안타깝게도 마지막 이야기인『파스칼 박사』도 정식으로 출간된 적이 없어서 읽을 수가 없다. 개인적으로 을유문화사에서 이 총서를 모두 출간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마지막으로 왜 이 책의 제목이 『루공가의 치부』가 되었는지 궁금하다. 원제는 'La Fortune des Rougon'이다. 'la Fortune'는 운명, 행운, 횡재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치부'라는 제목이 붙었다. 이야기는 루공가의 '치부'도 될 수 있고 '행운'도 될 수 있지만 원제를 고려한다면 '행운'이 더 맞을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책과 구별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추측해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술 없는 밤
서한나 외 지음 / 글항아리 / 202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술이 없어도 밤을 새롭게 하는 법!

『술 없는 밤』이라니. 어떻게 내가 이런 제목의 책을 읽지 않을 수가 있을까. 다른 사람들은 술 없이 밤을 어떻게 보내는지 궁금했다.

내가 이렇게 반가워하는 이유는 바로 '후천적 알쓰'이기 때문이다. 알코올을 분해하지 못하는 유전자를 물려받은 것도 아니고, 한때는 주량을 열심히 키워나가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맥주 한 잔이면 기분 좋게 취해버리고, 회식 자리에서도 꿋꿋하게 콜라를 마시고, 치맥이 생각나는 날에는 알코올이 전혀 없는 제로 맥주를 마신다.


그런데 왜 난 술을 안 마시지? 글쎄…… 그냥 싫다? 무엇보다 술에 취한 기분이 싫다. 취하면 어지러운데 그게 기분이 좋은 건가. 어지러운 건 어지러운 거다. 비틀거리는 건 비틀거리는 거고, 오바이트는 오바이트다. 의도하지 않은 이야기들이 통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입 밖으로 나오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술주정이라야만 헛소리가 가능할까. 노트북만 앞에 있으면 아무 말이나 할 수 있는데? 시간이 아까워서 사람들과 웃고 떠들기 싫고,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얼른 집으로 돌아가고 싶고. _156~157쪽, 오한기, 「나의 즐거운 알쓰 일기」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간질간질했던 목구멍을 싹 긁어주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술을 한 잔도 먹지 않는 오한기 작가가 술에 관한 에세이 쓰기를 수락한 이유는 술을 먹지 않는 1인으로서 할 이야기가 많기 때문이란다. (맨정신으로 모두 다 말해줘. 얼마든지 읽어줄게!) 작가와 초등학생 때부터 친구로 지낸 JJ는 술을 마시지 않으면 진솔한 대화가 되지 않는 것 같다며 작가에게 술을 권했다. "아니, 술을 마셔야만 진솔한 대화가 되는 거야?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도 와플을 먹으면서도 가능하지 않아"(168쪽) 술김에 하는 이야기가 진솔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시답잖은 거 아닌가.


오한기 작가와 반대로 음악가 오지은은 술을 마시지 않으면서도 술자리를 좋아해서 참석하는 사람이다. 주정뱅이들이 허공에 날려버리는 말을 계속 듣고 싶어 한다.

이 책에는 작가, 번역가, 음악가, 영화감독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6명이 쓴 '술 있는' 혹은 '술 없는' 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마치 술에 취한 상태로 쓴 것 같은 글도 있고, 술과 문학을 연결 지어 쓴 글도 있고, 알쓰의 일기 같은 글도 있다. 무엇보다도 술을 찬양하거나 술자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많지만 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의 이야기는 흔하지 않아서 좋았다.


술을 먹기 시작한 것은 새롭고 생경한 순간에 이르기 위해서였다. 이젠 술이 없어도 밤을 새롭게 하는 법을 터득했다. _198쪽, 김세인 「술이 덜어진 몸은 느슨해졌고 틈새가 벌어지더니 어느 순간 북- 하고 갈라졌다」


우리는 어떤 결핍을 안고 일렁이는 물속 어둠에 잠겨 살고, 세계는 밤 너머에 있다. 쩍 벌어진 그 사이를 술과 허구가 채운다. 밤에 출몰하는 거인이 아닌 밤에 거인을 만들어내는 우리 안의 두려움에 대한 두려움을 술과 허구가 잠재워준다. 그렇게 외부의 물질, 타인의 의식에 "잠겨" 살아가다 보면, 막상 우리 삶의 이야기는 우리 손가락을 빠져나가 망각의 심연으로 떨어져버린다. 하지만 소설을 읽든 술에 취하든 '도망치는' 게 아니라 '다가가기'를 선택할 수도 있다. 소설을 읽든 술에 취하든 '빠져드는' 게 아니라 '갖고 놀기'를 선택할 수도 있다. 도망은 모멸이지만 놀이는 힘이다. _54쪽, 김선형 「술 없는 밤」


밤이 세계가 벌이는 까꿍 놀이라면, 우리는 그 부재의 감각을 반드시 장악해야 한다. 외부에서 주입된 무언가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 창조한" 놀이로 메꿔야 한다. 나의 시로, 나의 소설로, 나의 노래로, 나의 춤으로. 책을 읽더라도 '내'가 읽어내는 책의 의미를 알고, 술을 마시더라도 '내'가 마시는 술맛을 똑똑히 알아야 한다. 세계가 부재하는 밤의 공간, 불확정성의 공간, 그 미정의 공간을 우리 자아의 창조물로 채우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 공간을 장악하면 수동성의 모멸감이 사라지고 드디어 의도성의 세계가 열린다. _58쪽, 김선형 「술 없는 밤」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들, 그러니까 술이라는 정신의 마취제 없이도 하루하루를 밀고 나가는 사람들은 외부의 힘에 막연한 기대를 하지 않으며, 개인의 진정한 힘과 희망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경험의 축적을 통해서, 즉 자기 앞에 닥친 과제들을 (아무리 고통스럽고 두려운 일이라 해도) 하나하나 해내는 과정을 통해서 얻어진다는 사실을 터득하고 있다. _59쪽, 김선형 「술 없는 밤」


내 인생의 서사에서 나를 구해줄 영웅은 오로지 나 자신뿐이다. 둘째가라면 서러울 주당 헤밍웨이는 "글쓰기와 싸움은 차가운 맨정신으로 해야한다"고 말했다. 글쓰기와 싸움은 어쩐지 동어로 읽힌다. 이 필사의 전투를 치른 후 비로소 우리는 성숙한 평화에 가닿는다. _60쪽, 김선형 「술 없는 밤」


그러니 어쩌면 어두운 밤 우리에게는 술에 앞서 철학이 필요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밤의 술을 한껏 향유하고 술 없는 밤을 의연하게 건너기 위하여. _61쪽, 김선형 「술 없는 밤」


간절하게 잊고 싶었기에 블랙아웃이 조금이라도 더 빨리 오기를 바라며 삼 년이 넘도록 폭음을 일삼았고, 정작 그 일을 제외한 모든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_187쪽, 김세인 「술이 덜어진 몸은 느슨해졌고 틈새가 벌어지더니 어느 순간 북- 하고 갈라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뭐든 하다 보면 뭐가 되긴 해 - 루마니아의 소설가가 된 히키코모리
사이토 뎃초 지음, 이소담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루마니아의 소설가가 된 히키코모리!

루마니아의 소설가가 된 히키코모리. 이 책을 읽게 만든 건 이 한 줄의 문구였다. 무언가에 빠진 히키코모리라면 뭐든 할 수 있겠지만, 왜 하필 루마니아일까? 한국 드라마에 빠져서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에서 활동하는 사람을 여럿 보아온 터라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루마니아에 어떤 매력이 있는 걸까? (드라큘라밖에 모르는) 내가 모르는 매력이 분명 있을 테지.

놀랍게도 이 책의 저자 사이토 뎃초는 방구석에서 루마니아어를 습득했다. 일본에서 출간된 딱 두 권뿐인 루마니아어 교재를 사서 온라인으로 사전을 찾아보며 루마니아어를 공부했다. 루마니아어가 지원되는 영화를 봤고, SNS를 통해 루마니아 친구들을 만들었다. 그렇게 루마니아어를 공부하다 보니 루마니아 출신의 영화감독이나 작가에게도 끈이 닿아 일본에서 만나기도 하고 SNS를 통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그들 중에 한 명이 저자가 쓴 글을 출판 편집자에게 보냈고, 그렇게 저자는 루마니아어로 쓴 소설을 루마니아에 발표하게 된다. 이쯤 되면 루마니아에 한 번쯤 갈 법도 한데 저자는 크론병이라는 불치병(장거리 여행이 힘들다)을 갖게 되어 집 밖을 나가는 것도 힘든 상태다.

믿어지는가? 방구석에서 독학으로 배운 루마니아어로 소설을 써 루마니아의 소설가가 됐다는 사실이. 놀랍게도 사실이다. 물론 저자는 자신을 대학교도 겨우 다닌 히키코모리라고 소개했지만, 사실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했고 언어 습득력이 뛰어난 편이다. 게다가 루마니아어는 일본어처럼 희귀 언어이긴 하지만 로망스어군에 속한다. 즉 프랑스어나 이탈리아어, 스페인어의 친척이며 루마니아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이탈리아어를 따로 공부하지 않아도 읽거나 들어서 어느 정도 의미를 알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관계다. 또, 루마니아어가 라틴어의 틀을 가장 많이 물려받은 현대어라는 학설도 있다고 하니 이미 영어를 수준급으로 구사하는 저자에게는 막연하게 어려운 언어는 아니었을 것이다. 일본에 출간되어 있는 루마니어 교재나 책이 적었던 것 역시 트위터나 페이스북 친구들을 활용해 극복할 수 있었다. 교재에 실려있는 표현들 중에는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표현들이 있어서, 오히려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통해 현재 사용하고 있는 표현들이나 슬랭들을 배울 수 있었다.

저자에 따르면 루마니아에는 전업 작가가 거의 없다고 한다. 책이 팔리지 않기 때문에 소설가는 다른 일을 하면서 돈을 벌어야 한다. 그런데 높은 빈도로 루마니아 문학이 출판되는데, 이는 자국 문화를 끊기게 할 수 없어서 자선 사업으로 한다고 한다. 일종의 문화 부흥인 것이다. 또 일본은 신인상에 응모해 상을 받으면 프로로 데뷔(우리와 비슷하다) 하는데, 루마니아에는 이런 시스템이 없고 그저 작품이 편집자 마음에 들면 실리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탈락이다. 실리지 않으면 실릴 때까지 다른 곳에 반복해서 보내면 된다. 이런 이유로 일본에서는 한 편의 글도 실을 수 없었던 저자가 루마니아의 소설가가 됐다는 것. (그래도 대단하다.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번역이 아닌 소설을 쓰다니.)

그래도 나는 바로 당신에게 다른 곳에는 없는 가능성이 있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그게 나였으니까, 나 같은 건 형편없다고 생각했던 예전의 나. 외국에 갈 필요가 없다는 소리는 안 할 것이다. 갈 기회가 있다면 가는 게 좋다. 그저 지금 서있는 그 자리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그곳이기에 해낼 수 있는 것이 있다. _252쪽

어디 있는지가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지금 거기 있다는 사실, 그보다 가치 있는 것은 없다. 그러니 나에게는 다른 누구도 아닌 지금 거기 선 당신이야말로 미래다. 어이, 하면 할 수 있어! _253쪽

아니, 이렇게 발전적이고 긍정적인 히키코모리라니! 그동안 내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던 히키코모리의 이미지를 완전히 박살 내 버린 저자. 심지어 책의 내용도 진지한 편이다. 표지를 보고 가볍게 썼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외국어를 공부할 때 가져야 하는 태도나 방법에 대해서는 꽤 진지하다.

나쁜 시인을 더 나쁘게 만드는 것은, 그가 시인들의 글만 읽는다는 사실이다(나쁜 철학자들이 철학자들의 글만 읽는 것처럼). 식물학이나 지리학 책을 읽으면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자신의 분야와 멀리 떨어진 분야를 자주 접해야만 풍요로워질 수 있다. 물론, 이것은 자아가 강렬하게 작용하는 분야에서만 사실이다. 에밀 시오랑, 『태어났음의 불편함』 121쪽

_204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움받을 용기 2부작 북케이스 세트 - 전2권 (10주년 한정판) 미움받을 용기
기시미 이치로.고가 후미타케 지음, 전경아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개인적으로 프로이트 이론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할 수만 있다면 강하게 반박하고 싶다. 지금 우리의 마음 상태가 불안한 이유가 모두 트라우마 때문이고, 어릴 때 당했던 학대나 어떤 기억 때문이라니. 도저히 납득할 수 없고 더이상 이런 류의 상담은 듣고 싶지도 않다.

이 책을 좀 더 일찍 읽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나는 아들러가 프로이트, 칼 융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심리학의 3대 거장'인 줄 몰랐다. 프로이트가 싫어서 심리학을 피했던 이유 때문일지도 모르겠는데, 이 책은 아들러의 사상을 '청년과 철학자의 대화'라는 형식으로 엮은 책이다. 아들러는 프로이트의 원인론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현재의 목적을 위해 행동한다는 목적론을 제시한다. 그 목적을 위해서라면 사람은 변할 수 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 마주할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 그러니까 우리가 겪고 있는 심리적인 어려움들이 프로이트처럼 과거의 일 때문이 아닌 지금의 나 때문에 생기는 일이므로 지금의 나를 바꾼다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아들러를 좀 더 일찍 만났더라면, 심리학을 멀리하지는 않았을텐데.


국내 200만부판매 기념으로 스페셜 에디션이 나왔다. 전 세계에서 1000만 부나 팔린 베스트셀러라니. 청년과 철학자의 대화 형식으로 쉽게 풀어쓴 것이 이 책을 베스트셀러로 만든 요인 중 하나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1권에서는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타인에게 미움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고, 2권에서는 3년 뒤 찾아온 청년에게 사랑할 수 있는 사람만이 스스로 설 수 있다며 자립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두 권 모두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문제들을 짚고 있다. 결국 모든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내 자신이고, 선택의 문제이다. 미움이든, 사랑이든, 용기가 필요한 것은 마찬가지. 용기를 내보라!


우리는 '어떻게 보고 있는가'라는 주관에 지배 받고 있고, 자신의 주관에서 벗어날 수 없다네. 지금 자네의 눈에는 세계가 복잡기괴한 혼돈처럼 비춰질 걸세. 하지만 자네가 변한다면 세계는 단순하게 바뀔 걸세. 문제는 세계가 어떠한가가 아니라, 자네가 어떠한가 하는 점이라네. _ 1권 19쪽


개인이 사회적인 존재로 살고자 할 때 직면할 수 밖에 없는 인간관계. 그것이 인생의 과제네. _ 1권 133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