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일탈》 읽기’ 첫 번째 모임이 있었습니다. 여성학을 공부하고 계시는 ‘책갈이’ 님이라는 분이 모임 후기를 썼어요. 책갈이 님은 서론1장 『여성 거래 : 성의 ‘정치경제’에 관한 노트』에 대한 내용 정리를 A1 용지 한 면에 다 채웠어요. 정말 대단한 일이에요. 왜냐하면 1장에 나오는 내용들이 엄청나요. 마르크스(and 엥겔스), 프로이트, 라캉, 레비스트로스의 사상이 나오고, 루빈이 네 사람이 주장한 이론을 비판합니다. 아주 깔끔하게 핵심 내용을 요약한 글이라서 《일탈》을 혼자서 읽기 시작한 분들에게 도움이 될 거로 생각합니다. 책을 먼저 읽고 난 뒤에 요약문을 읽으면 훨씬 이해하기 쉽습니다.

 

 

 

 

 

 

 

 

 

 

 

 

 

 

 

 

 

 

 

 

 

무려 900쪽에 달하는 <일탈>의 첫 모임은 거칠게 퍼 붓다가 잠잠해지기를 반복하는 빗발을 뚫고도 지난주 못지않은 인원이 참석했습니다. 그만큼 푸코의 <성의 역사> 이후 가장 급진적인 성 이론 실천가로 알려진 게일 루빈에 대한 관심이 크다는 방증일 것입니다.

 

서론과 1장 ‘여성거래’를 읽고 난 대부분 참석자는 “특히, 서론이 좋았다”라는 느낌을 나눴습니다. 서론에서 게일 루빈은 <일탈>에 게재된 논문이 저자의 삶, 그녀가 살아온 시대적, 공간적 상황 속에서 어떠한 맥락에서 연구 결과가 도출될 수 있었는지를 에세이처럼 풀어놓습니다. 인종차별과 종교적 우익 성향이 지배적인 미국 남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게일 루빈은 남부를 지배하는 세계관과 의제에 익숙했던 자신의 태도를 솔직하게 드러내고, 이후에도 삶의 과정에서 자신의 실수나 오류를 감추지 않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독자로 하여금 저자가 세계와 삶을 바라보는 태도가 ‘변화’에 있으며, 위치성에 대한 분명한 인식과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이라는 페미니즘의 명제를 실천하는 연구자로서 저자에 대한 신뢰를 갖게 합니다.

 

특히, 1970년대 후반 ‘뉴라이트’의 부상과 백래시 현상, 젊은이에 대한 성적 순결을 권장하고, 낙태의 범죄화, 외설과 포르노 논쟁, 동성애 혐오 등은 현재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갈등을 떠올리게 합니다. 또한, 민주주의 국가에서 소수의 이익을 위해 다수가 자신들의 이익과 상반되는 투표를 하도록 설득하는 데 성과 인종에 대한 혐오와 공포가 주요한 수단이 되었다는 부분은 고개를 끄덕이게 합니다.

 

1장 여성거래는 여성 억압의 원인을 분석하는 데 ‘재생산’과 ‘가부장제’라는 용어는 적절하지 않다고 비판합니다. 두 용어는 ‘경제적 체계’와 ‘성적 체계’ 사이의 구분과 성적체계가 일정한 자율성이 있다는 것을 전제합니다. 하지만 루빈이 주장하는 섹스/젠더 체계는 단순히 생산양식의 단순한 재생산적 계기가 아닙니다.

 

 

“섹스/젠더 체계는 한 사회가 생물학적 섹슈얼리티를 인간 행위의 산물로 변형시키고 그와 같이 변형된 성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일련의 제도입니다” (93쪽).

 

 

엥겔스레비스트로스가 주목한 친족체계는 섹스/젠더 체계를 관찰하고 경험할 수 있는 대표적 형태입니다. 또, 레비스트로스는 여성 교환이 사회의 기원을 형성하고 근친상간 금기를 문화와 자연의 경계에 위치시킵니다. 나아가 정신분석학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성적 인격(젠더)을 생산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이고 강제적 이성애 제도를 합리화하는 이론적 배경입니다. 결론적으로 여성 억압의 원인은 여성 교환을 통해 친족제도를 성립시키고 여성 억압을 생물학이 아니라 사회 체계 속에 위치시킵니다. 따라서 여성교환은 섹스/젠더 체계들을 설명할 수 있는 개념의 무기고가 될 수 있으며 섹스/젠더 체계는 불변의 억압 장치가 아니라 정치적 행동을 통해 재조직될 수 있습니다.

 

루빈이 꿈꾸는 페미니즘 혁명은 여성억압의 해방 그 이상입니다. 강제적 섹슈얼리티와 성역할들의 제거, 즉 젠더가 없는 사회에 대한 꿈입니다. 그 꿈에는 한 사람의 해부학적 성이 그 사람이 누구이고, 무엇을 행하며 누구와 사랑을 나누는가 하는 문제와도 무관합니다. 즉, 섹슈얼리티가 사회와 정치적 의제의 중심이 아니라 주변으로 밀려나는 꿈입니다. 여자답다, 남자답다, 엄마답다, 선생님답다, 학생답다 등 “답다”의 구속복을 벗어버리는 꿈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일탈>을 읽고 토론에 참석한 구성원 모두가 꾸는 꿈이기도 합니다.

 

다음 모임은 2장 “인신매매에 수반되는 문제”, 4장 “가죽의 위협”을 읽고 만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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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8-07-10 21: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책들 한 데 모으면 한 사람이 못 들겠네요.

cyrus 2018-07-11 07:51   좋아요 0 | URL
월요일 모임에 안 오신 분들의 책을 포함하면 무게가 어마어마해져요.. ^^;;

2018-07-11 00: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7-11 07:53   좋아요 0 | URL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는 건 아니고요, 읽고 토론할만한 챕터를 선별해서 읽을 예정입니다. ^^
 

 

 

 

 

 

 

<신청 방법>

 

일반인 15명 내외 (선착순)

현재 12분 신청하였습니다. 3분 신청 가능합니다.

 

참여비 : 15,000원

우리은행 : 583-362090-02-008 (김정희)

 

(★ 입금 후 문자 : 참여자 성함/연락처 ★)

 

 

로쟈 이현우 작가님이 대구 작은 책방 ‘서재를 탐하다’에서 문학 강연을 펼치십니다. 작년 11월 책방 ‘읽다 익다’와 ‘서재를 탐하다’에서 강연 이후 두 번째 방문이세요.

 

 

 

* [로쟈와 함께한 불금] 2017년 11월 25일

http://blog.aladin.co.kr/haesung/9732455

 

 

* [책 읽는 수준을 높이자!] 2017년 12월 9일

http://blog.aladin.co.kr/haesung/9762450

 

 

 

이번 강연은 로쟈 이현우 작가로부터 2017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가즈오 이시구로>의 작품세계를 들여다봅니다. 대구지역 문화공동체 [우주지감] 모임인 ‘이 작가의 책’에서 가즈오 이시구로의 작품을 만난 적이 있었는데요.

 

 

 

 

 

 

 

 

 

 

 

 

 

 

 

 

 

* 가즈오 이시구로 《나를 보내지 마》 (민음사, 2009)

* 가즈오 이시구로 《남아 있는 나날》 (민음사, 2010)

 

 

 

함께 읽었던 네 작품 중 좀 더 여운이 남았던 『나를 보내지 마』, 『남아 있는 나날』 두 작품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쳐주실 예정이며, 함께 모인 분들과 궁금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마련됩니다. 

 

이현우 작가님은 러시아문학, 세계문학과 철학, 한국문학, 인문학 강연 등 다방면으로 이야기 마당을 펼치고 계십니다. 작은 공간을 직접 발걸음 해주심에 감사한 마음을 표하며, 더불어 함해 주실 분들을 기다리겠습니다. 대구에 사는 일반인이라면 누구나 신청 가능합니다. 

 

  - ‘서재를 탐하다’ 책방지기 김정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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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4 12: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7-05 06:39   좋아요 1 | URL
강연 듣고 난 이후에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 읽기를 시작하셔도 괜찮습니다.. ㅎㅎㅎ
 

 

 

사람과 사람 사이에 빚어지는 사랑의 감정은 아름답습니다. 그중에서도 불꽃처럼 활활 타오르는 젊은이들의 사랑보다 세월의 뒤안길에서 고난과 역경을 함께 딛고 이겨온 부부의 사랑이 더 끈끈하고 애잔합니다. 부부는 평생을 함께하지만 끝까지 같이 가기는 쉽지 않습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그 속도보다 빠르게 가족의 모습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비혼을 선택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고립된 1인 가구는 질병 · 사고 등과 같은 위험 발생 때 주변의 도움을 받기 어렵습니다. 늙고 병들어서 의지할 상대가 있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입니다.

 

 

 

 

 

 

 

 

 

 

 

 

 

 

 

 

 

* 헬렌 니어링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보리, 1997)

 

 

 

사랑한다는 것은 참고 이해하고 도와주는 일입니다. 스콧 니어링(Scott Nearing)을 사랑한 헬렌 니어링(Helen Nearing)《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보리, 1997)에서 아름답고 위대한 사랑을 펼쳐냅니다. 스콧은 아내와 함께 미국 버몬트(Vermont)와 메인주(State of Maine)에서 자연과 호흡하는 소박한 삶을 실천합니다. 부부는 53년 동안 함께 농사를 지으며 모든 것을 자급자족하면서 강연을 하고 저술 활동을 하며 지냈습니다. 헬렌은 풍족한 집안에서 자랐고, 바이올리니스트를 꿈꾸는 소녀 시절을 보냈습니다. 한때 인도의 사상가인 지두 크리슈나무르티(Jiddu Krishnamurti)의 연인이기도 했습니다. 크리슈나무르티와 결별한 헬렌은 스무 살 연상인 스콧을 만나 또 다시 운명적인 사랑을 하게 됩니다. 그 당시 스콧은 미국 사회의 위선과 폭력을 고발하다 대학교수 자리에서 쫓겨난 신세였습니다. 지식인 사회와 언론에서도 그를 외면했습니다. 그러나 헬렌은 스콧의 사상에 감명 받았고, 스콧이 100세가 되던 해에 스스로 곡기를 끊어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의 동반자로 살아왔습니다.

 

나이 차가 있고, 살아온 배경도 너무나 다른 헬렌과 스콧을 하나로 이어준 연결고리는 무엇이었을까요? 사랑의 힘이었을까요? 이 두 사람의 사랑을 가능케 만든 건 ‘가치 있는 삶을 추구하는 일’이었습니다. 부부는 시골로 들어가 손수 땅을 일궈 농장을 만들고 돌집을 지었으며, 죽는 날까지 자연과 어우러진 검약한 생활을 실천하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얻고 깨달은 바를 이웃에게 나누려고 부지런히 노력했습니다. 스콧을 만나기 전 헬렌은 자유분방한 성격이었습니다. 그런데 스콧을 만나면서부터 그녀의 인생에 커다란 변화가 생겼습니다. 헬렌은 스콧의 반려자가 되면서 소박하고 조화로운 삶을 지향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름다운 삶》은 건강하고 소박하게 사는 법에 대한 진지한 질문과 함께 가능성을 보여주는 책이지만, 스콧과 만남을 진솔하게 그린 자전적 에세이입니다. 저는 이 책을 읽었을 때 한 편의 사랑 이야기를 읽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어요. 간만에 마음이 편안해지는 책을 읽었습니다.

 

 

 

 

 

 

 

 

 

 

 

 

 

 

 

 

 

 

 

 

* 로드 던세이니 《얀 강가의 한가한 나날》(바다출판사, 2011)

* 앨저넌 블랙우드 《웬디고》(문파랑, 2009)

 

 

 

이 책에서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봤던 내용은 헬렌의 독서 취향이었습니다. 그녀는 어린 시절에 만난 상담 전문가들로부터 두 명의 작가를 추천받았습니다. 로드 던세이니(Lord Dunsany, 던세이니 경)앨저넌 블랙우드(Algernon Blackwood)였습니다. 헬렌은 두 작가의 소설이 ‘이상야릇한 공상의 재미’를 줬다고 술회했습니다.[1] 그리고 헬렌은 큰 소리로 읽기를 좋아하는 책으로 던세이니와 블랙우드의 소설을 꼽기도 했습니다.[2] 저도 이 두 작가의 소설을 좋아합니다. 던세이니 경은 아일랜드, 블랙우드는 영국 출신의 작가입니다. 이 두 사람은 주로 환상소설, 공포소설을 썼습니다.

 

 

 

 

 

 

 

 

 

 

 

 

 

 

 

 

 

 

* 엔도 조, 다나베 세이아 《책 읽다가 이혼할 뻔》(정은문고, 2018)

 

 

 

헬렌은 옛이야기, 공상 이야기, 미스터리를 좋아했습니다. 그녀도 ‘책 덕후’ 기질이 보입니다. 그녀는 셰익스피어 작품들의 원작자가 누구인지 호기심을 갖게 되었는데, 셰익스피어에 관한 책을 40권이나 모았다고 합니다. 혹시 헬렌도 ‘셰익스피어는 실존 인물이 아니다’라는 음모론을 믿었을까요? 스콧의 독서 취향은 헬렌과 완전히 달랐습니다. 스콧은 사회운동가답게 사회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는 책을 좋아했습니다. 그는 셰익스피어에 대한 아내의 호기심을 ‘탐정 이야기’으로 취급했습니다. 음, 과연 니어링 부부도 독서 취향이 서로 다른 ‘애서가 부부’ 엔조 도, 다나베 세이아처럼 다투었을까요?

 

이 책을 읽은 우주지감 회원이 말했습니다. 부부는 살면서 단 한 번도 부부싸움을 한 적이 없을까? 책을 보면 아시겠지만, 헬렌은 남편에 대한 존경심을 내비칩니다. 책의 전반부가 헬렌이 과거를 회상하는 이야기라면, 후반부는 스콧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져 있습니다. 스콧도 헬렌을 존경했습니다. 스콧은 헬렌이 가장 좋은 조언자이며 동행자였다고 고백했습니다. 부부의 사랑은 한마디로 말하면, 사상의 공유를 통한 공감과 존경입니다. ‘읽다 익다’ 책방지기 님은 그것이 부부가 지향하는 ‘아름다운 삶’이라고 말했습니다.

 

《아름다운 삶》에 좋은 문장들이 많습니다. 헬렌은 문장을 ‘직접 인용’하는 방식으로 글을 썼습니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책을 읽을 때 인상 깊은 문장을 베끼고 밑줄을 치는 습관을 들였습니다. 그러한 그녀의 독서 습관은 글쓰기 방식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아름다운 삶》에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의 명언이 나옵니다. 부부의 사랑을 대변해주는 말이기도 합니다.

 

 

  “두 개성의 만남은 두 화학물질의 결합과 같다. 반응이 이루어지면, 둘은 변화한다.”

 

 

이 명언의 문제점을 지적한 우주지감 회원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융의 명언이 ‘두 개성의 만남’에 긍정적으로나 부정적으로나 영향을 주는 ‘외부적 요소’를 고려하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남성과 여성, 남성과 남성, 여성과 여성. 현실에 구애받지 않고 서로 마음이 맞아서 사랑할 수 있다면 그 삶은 절대 헛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히는 사랑은 연인에게 좌절을 안겨주고 슬프게 이별로 끝나버리고 맙니다. 연인을 둘러싼 복잡한 외부적 문제는 사랑의 걸림돌이 되기 쉽습니다. 사랑을 현실적으로 보는 사람 입장에서 융의 명언을 본다면 ‘이상적인 사랑 방식’을 그럴듯하게 표현한 말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 앙드레 고르 《D에게 보낸 편지》(학고재, 2007)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헬렌은 고독을 즐기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오히려 그녀는 외롭지 않다고 밝혔습니다. 죽음과 고독을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부부의 모습은 앙드레 고르(André Gorz)와 도린 고르(Dorine Gorz) 부부의 최후와 너무 대조되었습니다. 앙드레 고르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좌파 사상가입니다. 그는 연극 배우로 활동했던 도린을 만나 58년 동안 부부로 지냈습니다. 도린은 척추 수술 후유증으로 인해 불치병을 얻었고, 앙드레는 아내의 회복을 위해 그녀와 함께 농촌으로 내려가 병간호를 자처하고 나섰습니다. 고르 부부도 니어링 부부 못지않게 서로를 무척 존경하고 사랑했었죠. 고르는 도린에게 바친 편지들을 모아 세상에 공개했습니다. 그 편지 모음집이 바로 《D에게 보낸 편지》(학고재, 2007)입니다. 그러나 2007년 고르는 아내와 함께 목숨을 끊었습니다. 고르의 편지를 읽어 보면 그가 아내를 잃을지 모른다는 사실에 얼마나 괴로워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조화로운 삶을 산 니어링 부부에게 있어 죽음이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아름다운 삶》에는 자발적인 죽음을 맞은 스콧을 지켜본 헬렌의 시각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그녀는 죽음 역시 삶의 한 과정이며 죽음에 대한 준비를 통해 모든 속박과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고르도 다가오는 아내의 죽음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아내의 죽음 이후 자신의 삶을 덮치게 될 상실감과 고독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두 부부의 죽음을 비교하면서 누가 더 아름다운 최후를 맞이했는지 평가하고 싶지 않습니다. 죽음을 맞이한 시간과 방식은 달랐지만, 두 부부는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여생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삶 전체가, 일상의 모든 것이 사랑이었습니다. 이들 두 부부가 살아간 인생의 발자취는 사랑을 가볍게 보는 현대인에게 여전히 큰 울림을 줍니다.

 

 

 

 

 

[1] 39쪽

[2] 137쪽. 초판에는 ‘둔세니’라고 표기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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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2 17: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7-03 06:46   좋아요 0 | URL
부부는 채식주의자였어요. 식습관이 닮아서 음식 때문에 싸우는 일은 없었을 거예요.. ㅎㅎㅎ

stella.K 2018-07-02 1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헬렌의 독서 취향이 독특했구나.
전혀 안 그럴 것 같은데 말야.
나도 오래 전 니어링의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정확히 무슨 책인지 기억이 안 나.
그땐 아주 감동스러운 건 아니었는데
지금쯤 다시 읽으면 어떤 느낌일지 모르겠다.
암튼 좋은 글이다.^^

cyrus 2018-07-03 06:50   좋아요 0 | URL
혹시 《소박한 밥상》 아닌가요? 독서모임에 참석한 분이 그 책을 선물로 받았데요. 그런데 재미없었데요.. ㅎㅎㅎ

stella.K 2018-07-03 10:46   좋아요 0 | URL
아, 맞다. 소박한 밥상!
조금 지루하긴 했지.ㅋㅋ

붕붕툐툐 2018-07-02 2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헨렌 니어링의 이 책을 읽고 채식을 시작했더랬죠. 제가 참 좋아하는 책인데 반갑네요~^^

cyrus 2018-07-03 06:55   좋아요 0 | URL
책에 나오는 니어링 부부의 러브스토리와 편지가 좋았어요. 채식은.. 못 따라하겠습니다.. ㅎㅎㅎ
 

 

 

 

드디어 《흑인 페미니즘 사상》(여성문화이론연구소, 2009)을 다 읽었습니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인해 한 주 모임을 빠진 적이 있지만, 독서 진도를 따라가는 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흑페미》 마지막 모임 공식 후기를 썼습니다. 인스타그램에 공개되는 글이라서 최대한 짧게 썼습니다. 책에 벗어난 내용을 언급할 수 없어서 아쉽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오프더레코드(off-the-record)’로 어제 우리 멤버들끼리 주고받은 대화가 흥미진진했습니다.

 

10, 11장을 읽으면서 느꼈던 제 생각은 공식 후기에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이 부분은 제가 따로 글로 쓸 예정입니다.

 

 

 

 

 

 

 

 

대구퀴어문화축제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어제 《흑인 페미니즘 사상》 마지막 모임이 있었습니다. 5월 14일에 처음 시작하여 6월 25일까지 6주 동안 이어진(5월 마지막 주 월요일은 모임 쉬는 날이었습니다), 참으로 길고 긴 모임이었어요. 어제 모임에는 10장(「초국가적 맥락에서 본 미국 흑인 페미니즘」), 11장(「흑인 페미니즘 인식론」), 12장(「힘 기르기의 정치를 향하여」)을 톺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초국가적’은 국가의 경계를 넘어서 발생하는 어떠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오늘날 여성 문제는 어느 한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지구적인 문제입니다. 전 지구적인 여성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여러 억압이 서로 맞물려 작동하는 사회조직 전체에 대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미국 흑인 페미니즘젠더, 인종, 계급, 섹슈얼리티가 중첩된 억압 형태‘지배 매트릭스(matrix of domination)라고 표현합니다. 미국 흑인 페미니즘은 계급, 인종, 성소수자 차별을 양산한 지배 매트릭스를 극복하기 위한 연대를 모색합니다. 미국 흑인 페미니스트 바버라 스미스(Barbara Smith)급진주의(radicalism)를 이렇게 정의했어요.

 

 

“내가 보기에 진정으로 급진적인 것은, 서로 다른 사람과 연대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또한, 인종과 성, 계급, 성 정체성을 모두 동시에 거론하는 것이야말로 급진적이다. 이제까지는 없었던 일이기 때문이다” (388쪽)

 

 

혜○ 님은 이 문장이 좋았다고 했습니다. 요즘 흔히 떠올리는 급진적 페미니즘은 과격한 전략을 구사하는 페미나치(Feminazi)로 오해받습니다. 페미니즘을 비하하는 거 보면 정말 속상해요. 급진적 페미니즘은 과격한 페미니즘이 아닙니다. 기존의 여성 담론을 보다 급진적으로 발전시키는(또는 개선하는) 페미니즘입니다. 미국 흑인 페미니즘의 급진성은 각국의 흑인여성이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치밀하게 고민하고 연대하는 것입니다. 차별과 배제는 불평등과 혐오 문화를 일으킬 뿐만 아니라 연대의식을 훼손할 수 있습니다. 레드스타킹 멤버들은 이구동성으로 여성 문제에 대한 페미니스트들의 입장이 다를지라도 대화와 소통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지식에 대한 전반적인 이론‘인식론’이라고 합니다. 어떤 지식을 동원하여 현실을 분석하고 이해하려면 인식론이 필요합니다. 페미니즘 인식론은 젠더 이분법에 반문하고, 기존의 남성 중심적 시선과 다른 방식으로 사회를 해석하는 것입니다. 흑인 페미니즘 인식론은 이성애 백인 남성 지식인 중심 사회가 배제하고 왜곡했던 흑인여성의 경험을 드러내 그것을 하나의 지식으로 재현합니다. 지식은 세상을 이해하는 유용한 도구지만 한편으로는 편견을 만듭니다. 지식인들의 오류가 거기서 생겨요. 자신의 지식으로 모든 것을 해석하려 들고 그것이 굳어지면 도그마(dogma)에 빠지게 됩니다. 페미니스트도 도그마를 피할 수 없습니다. 레드스타킹 멤버들은 아군과 적군을 구별하는 듯한 페미니스트들 간의 갈등 양상이 확산하는 것을 우려했습니다. 대화와 소통의 기본은 경청이죠. 은○ 님은 경청보다 더 중요한 게 서로 간의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레드스타킹은 《흑인 페미니즘 사상》을 완독하는 데 성공했지만, 여전히 궁금한 것이 많았습니다. 또, 책은 우리에게 한층 더 깊이 생각할 거리를 안겨 줬습니다. 흑인 페미니즘 인식론 중 하나가 ‘개인적 책임의 윤리’입니다. 어떤 문제에 분명한 입장을 밝혔으면, 그것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합니다. ‘개인적 책임의 윤리’에 대한 내용이 어렵다고 느낀 분들이 많았습니다. ‘개인적 책임의 윤리’ 문제는 우리에게 좀 더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진지하게 고민을 해 봐야 할 부분입니다. 책의 주요 내용을 갈무리하는 12장은 다음 주 영화 모임에 이어서 톺아보기로 했습니다.

 

 

 

 

 

 

 

 

 

 

 

 

 

 

 

 

 

 

6주 동안 어렵고 두꺼운 ‘갈색 벽돌 책’을 완독한 멤버들 모두 축하합니다. ‘검정색 벽돌 책’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게일 루빈(Gayle Rubin)《일탈》(현실문화, 2015)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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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8-06-29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독서 모임은 으샤으샤가 잘되는 모임인가 보다.
모든 사람이 완독하기 쉽지 않은데. 훌륭하다.
책걸이 했겠군.
그런데 네 손은 어떤 거냐?

암튼 수고했어.^^

cyrus 2018-07-01 13:56   좋아요 0 | URL
페미니즘 독서 모임이 작년부터 시작했고, 원년 멤버들이 지금도 활동하고 있어요. 그래서 서로 마음이 잘 맞고, 단합이 잘 돼요. ^^

제 손은 사진 오른쪽 중앙에 있어요. 내일 책거리 겸 영화를 보는 날이에요.

stella.K 2018-07-01 14:28   좋아요 0 | URL
저 근육손...?
어쩐지 그럴 것 같더라니...ㅋㅋ

cyrus 2018-07-02 12:02   좋아요 0 | URL
제 손을 실제로 보면 길쭉해요. 마른 체형이라서 손도 말랐습니다.. ㅋㅋㅋ

북프리쿠키 2018-06-30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싸이러스님이 이렇게 후기를 잘 써주셔서 그 모임은 든든하겠는걸요^^

cyrus 2018-07-01 13:58   좋아요 1 | URL
저보다 후기를 열심히 쓰고, 잘 쓰는 분들이 많아요. 독서모임 후기 쓸 때가 제일 힘들어요.. ^^;;
 

 

 

 

‘서재를 탐하다’ 책방대구KBS <라이브 오늘>에 소개됐습니다. 이번 달 초에 방영되었는데, 이 사실을 어제 알았습니다…‥ 비록 화질은 떨어지지만, 책방이 소개된 방송 동영상이 남아 있어서 볼 수 있었습니다. ‘서재를 탐하다’ 공식 블로그에 방송 동영상이 있습니다.

 

https://blog.naver.com/kuki00/221291779183

 

 

 

 

특히 책을 쓰신 ‘그 분’은 이 방송 동영상을 꼭 보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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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8-06-19 20: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 분˝의 책이네요. 우리집에도 있어요.^^
cyrus님, 편안한 저녁시간 되세요.^^

cyrus 2018-06-21 13:47   좋아요 1 | URL
‘그 분‘이 쓴 책을 사서 가지고 있는 독자 대부분은 알라디너일 거예요. ^^

2018-06-19 21: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6-21 13:50   좋아요 0 | URL
아주 정성을 들여서 쓰셨던데요. 책방 리뷰가 ‘알리딘 뉴스레터‘에도 소개되었던데 책방을 전국에 알릴 수 있는 약간의 홍보 효과가 있었을 것입니다. ^^

페크pek0501 2018-06-23 1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레카 님의 책을 보게 되네요. ㅋ

cyrus 2018-06-25 12:30   좋아요 0 | URL
방송에서 유레카님의 책이 나올 줄은 생각 못했어요. 뜻밖의 등장이라 무척 반가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