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동네 책방 ‘읽다 익다’에서 ‘로쟈’ 이현우 님의 <문학 강연>이 진행되었습니다. 이날, 신간 《로쟈와 함께 읽는 문학 속의 철학》(책세상, 2017)을 로쟈님과 함께 프리뷰(preview)했습니다.
* [읽다 익다] 홈페이지 https://ikdda.modoo.at/
* [읽다 익다] 블로그 http://ikdda.com/
* [읽다 익다]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ikdda_books/
* 문화공동체 ‘우주지감’ http://cafe.naver.com/ej2013
강연 후기 먼저 강연 장소인 ‘읽다 익다’에 대해 짧게 소개하겠습니다. 원래는 강연 시작 10분 전에 책방에 일찍 도착하려고 했습니다. 책방 내부 모습을 사진으로 찍으면서 사고 싶은 책이 있는지 살펴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어제는 교통 체증이 심했어요. 강연이 시작한 지 10분 후에 도착하고 말았습니다. 책방 내부가 궁금하신 분은 ‘읽다 익다’ 공식 홈페이지에 접속하여 확인하면 됩니다. 책방에서 진행되는 각종 행사, 독서 토론 모임 등에 관한 사항은 블로그, ‘우주지감’ 공식 카페에 확인할 수 있습니다.
늦게 도착한 바람에 제일 끝에 있는 의자에 앉았습니다. 그래서 책방 내부 전체를 둘러볼 수 있었습니다. 로쟈님이 신작을 소개하는 와중에 저는 딴짓을 했습니다. 책방에 무슨 책이 있는지 눈동자를 신나게 이리저리 굴렸습니다.
* 박우수 역 《햄릿 (제1사절판본)》 (휴북스, 2017)
* 이현우 역 《햄릿 (제1사절파본)》 (동인, 2007)
* 최종철 역 《햄릿》 (민음사, 1998)
* 노승희 역 《햄릿》 (펭귄클래식코리아, 2010)
* 박우수 역 《햄릿》 (열린책들, 2010)
* 이경식 역 《햄릿》 (문학동네, 2016)
* 설준규 역 《햄릿》 (창비, 2016)
처음에는 로쟈님은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를 소개하다가 자연스럽게 셰익스피어의 《햄릿》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로쟈님은 《햄릿》이 ‘수수께끼가 많은 텍스트’라고 했습니다. 《햄릿》의 판본은 다양합니다. 발표 연도순으로 소개하면 제1사절판, 제2사절판, 제1이절판이 있습니다. 세 가지 판본에 나오는 내용(작중 인물의 대사)이 조금씩 차이가 있어서 어느 판을 번역하느냐에 따라 텍스트를 다양한 관점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제1사절판은 읽기용이 아니라 ‘무대 공연용’으로 만들어진 판본이라서 오탈자가 상당히 많은 편입니다. 우리가 읽고 있는 《햄릿》 판본 대부분이 제2사절판과 제1이절판입니다. 로쟈님은 《햄릿》을 ‘복수지연극’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왜냐하면, 이야기 전개상 부왕을 죽인 숙부에 대한 햄릿의 복수가 지연되기 때문입니다. 로쟈님은 흥미로운 질문을 던집니다. 과연 《햄릿》은 분량이 긴 작품일까요, 아니면 분량이 짧은 작품일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햄릿》을 감명 깊게 읽은 독자들 또는 언젠가 《햄릿》을 읽게 될 독자들의 몫입니다.
그 밖에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의 소설 속 인물 관계, 장편소설과 단편소설의 차이점 등에 대한 얘기가 나왔습니다. 어제 강연에서 제일 인상 깊은 내용은 ‘책을 읽고 독해하는 과정의 중요성’이었습니다. 로쟈님은 철학이라는 주제를 빌려 와 고전, 즉 문학을 재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한 사유의 결과물이 바로 《로쟈와 함께 읽는 문학 속의 철학》입니다. 이 사유가 가능해지려면 ‘논리적 일관성’이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독창적인 해석이라고 해도 논리적 일관성이 부족하면 글에 구멍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이 구멍이 생기지 않으려면 텍스트를 여러 번 읽어야 하고, 글을 쓰기 전에 텍스트를 재해석하기 위한 철학적인 전략이 타당한지 검증해야 합니다. 로쟈님은 책을 읽고 해석하는 수준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 지금까지 해왔던 독서와 글쓰기의 문제점이 뭔지 깨달았습니다. 제가 철학 지식이 빈약하고, 대부분 글에 논리적 일관성이 떨어진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 [어떻게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2017년 6월 24일 작성
http://blog.aladin.co.kr/haesung/9415205
강연이 끝난 뒤에 질의응답 시간이 진행되었습니다. 저는 《햄릿》의 오필리아에 대한 질문을 했습니다. 예전에 오필리아의 작중 행적과 성격을 분석한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저는 오필리아도 햄릿만큼이나 새롭게 조명할 필요가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로쟈님이 오필리아를 어떻게 봤는지 궁금했습니다. 로쟈님은 작품 전체로 봐서는 오필리아의 내적 상태를 가늠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로쟈님의 설명에 따르면 셰익스피어 작품에 등장하는 여성 인물들은 정확하게 규정하기 어려운 ‘모호한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필리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셰익스피어는 작품 속 여성 인물을 ‘부수적인 존재’로 설정했고, 그들의 내적 상태를 ‘대충’ 묘사했습니다.
9시 조금 지나서 강연이 종료되었고, 로쟈님은 서울로 돌아갔습니다. 이제 저도 집으로 돌아가려는 찰나, ‘우주지감’ 독서모임 회원님이 제게 먼저 말을 걸어왔습니다. 그분은 제가 알라딘 서재 블로그에 글을 쓰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조금은 부끄러웠지만, 무척 따뜻하게 대해주셔서 그분과 좀 더 대화를 나눠 보고 싶었습니다. 덕분에 ‘우주지감’ 독서모임이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훈훈한 분위기가 무르익어가면서 대화가 잘 진행되고 있는데, 저는 바보같이 부끄러운 질문을 하고 말았습니다.
(해맑게) “혹시 독서모임이 끝나고 나면 뒤풀이(2차) 하나요? 예를 들면, 술을 마시면서 대화를 한다든가…‥.”
회원님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면서 절대로 그런 일은 없다고 말씀했습니다. 순간, 이 질문을 괜히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제 집에 가서 자기 전에 ‘이불 킥’을 했습니다…‥.
한 시간 동안 ‘읽다 익다’ 책방지기인 오은아 님을 포함한 독서모임 회원 몇 분과 함께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다들 인상이 좋고, 말씀하실 때마다 책을 좋아하는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정말 이런 행복한 느낌은 3년 만에 느껴봤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분들끼리 대화를 나눠보면 어색함이 눈 녹듯 사라져요. 이분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3년 동안 잊고 있던 독서모임의 즐거운 분위기가 살짝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목요일 오후 7시 30분에 시작하는 독서모임이 있습니다. 모임에 늦더라도 한 번 참석해야겠습니다. 독서모임을 통해서 글쓰기만으로 채울 수 없는 정(情)과 소통의 진정성을 느껴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