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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장소 - 유럽 속 이슬람 유산
박단,이수정 외 지음,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기획 / 틈새의시간 / 2025년 5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냉전이 끝나고 세계는 평화가 올 줄 알았다. 그러나 인간은 원래 전쟁의 동물인지 여러 이유로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특히 우리네 삶에 공포를 드리우게 하는 것은 '테러'다. 게다가 그 테러가 특정 건물이나 상대 군대를 겨냥한 것이 아닌 불특정 다수의 민간인에 대해 일어나고 있어서 정말 일상이 깨지고 있다.
테러가 일어나는 이유는 여러가지 있지만 종교와 관련해서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것이 서구 유럽으로 대표 되는 기독교와 중동의 아랍으로 대표 되는 이슬람이다. 사실 기독교와 이슬람의 대결은 하루 이틀 일어난 것이 아니라 수 백 년에 걸쳐 일어나서 쉽게 손 대기 힘든 상황이다. 증오가 쌓이고 상대를 존중하지 않은 상태에서 평화란 멀기만 한 것 같다. 서로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없다면 이런 험악한 상태는 언제 끝날 지 모르는 것이다.
그런데 원래 기독교와 이슬람은 적대적이었나. 아니 적대적일 수 밖에 없었나 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하게 된다. 대체 어떤 사이였길래 서로 화합하고 포옹할 수가 없단 것인가. 과거에 서로 잡아 죽이고 미워하는 상황이 지금까지 계속되어서 그런 것일까. 이 질문에 답을 하자면 '아니오' 이다. 사실을 말하자면 기독교 문화와 이슬람 문화는 서로 따로 발전한 것이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발전을 했고 서구 유럽 곳곳에 이슬람의 유산이 있다는 것이다. 미워한다면 어찌 그럴 수 있겠는가. 이 책은 유럽 속에 많은 이슬람 유산을 이야기하면서 결국 상대를 이해하고 존중하면 궁극적으로 갈등을 줄일 수 있음을 역설하고 있다. 상대를 모르니까 전쟁을 하는 것이다.
사실 인류의 발전이라는 것이 따로 따로 진행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서로 서로 좋은 점을 주고 받으면서 발전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독창적으로 혼자만 발전하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역사를 조금 아는 사람이라면 유럽의 역사에서 이슬람이 이바지한 것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 것이다. 지금은 서양 유럽이 중동 이슬람보다 여러 면에서 앞서고 있지만 수 백 년 전에는 이슬람이 문명의 중심지였다. 말하자면 이슬람이 선진국이었던 것이다. 서양은 이슬람의 선진 문명을 받아들이고 스스로의 노력으로 결국 더 큰 문화를 발전시키게 되어 상황을 역전 시켰다. 아직도 유럽 곳곳에는 이슬람의 흔적들이 있다. 이 책에서는 총 4가지 관점에서 유럽 속의 이슬람을 설명하고 있다.
첫 장 '종교의 기억'에서는 우선 헝가리의 이슬람 문화를 이야기 한다. 헝가리는 과거 기독교 국가였지만 이슬람 제국이었던 오스만의 통치를 받았다. 무려 150년에 걸쳐서 오스만이 헝가리를 통치 했는데 당연하게도 사회, 문화 등 전 방면에 큰 영향을 주었다. 책에서는 '가지 카심 모스크' 를 통해 이슬람의 영향을 설명한다. 오스만 제국이 세운 이 건축물은 후에 로마 가톨릭 교회인 성모 마리아 교회로 개조 되었다고 한다. 그런 변화에도 원래의 오스만 건축 요소를 대부분 유지하고 있다. 이 건물을 통해 헝가리와 오스만 제국의 역사적 관계와 두 문화의 융합을 잘 보여주고 있다.
헝가리는 오랜 역사적인 기간을 통해 서로 합쳐졌다면 영국은 비교적 최근에 이슬람 문화가 많이 들어왔다. 그 대표적인 것이 '샤 자한 모스크' 다. 이 모스크는 과거의 기억을 보존하면서도 다문화 사회를 구성하는 영국 사회의 정체성을 잘 보여주는 건축물이다. 이미 400만명을 넘긴 이슬람 인구는 더 이상 대립의 종교가 아니라 서로 이해하고 화합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2장 '문화의 기억'에서 첫 이야기는 '엘 시드의 노래' 다. 중세 스페인의 서사시인 이 이야기를 통해 아랍의 스페인 통치, 그리고 이슬람을 상대로 한 저항의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이때 저항은 과거 전통으로부터의 완전한 단절이 아니라 이베리아 반도에 기독교와 이슬람 공동체가 공존하던 중 발생한 복잡한 문화적인 상호 작용을 말하는 것이다. 7세기에 걸친 아랍의 지배였기에 배타적인 저항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예로 알람브라 궁전을 이야기한다. 13세기 이슬람 나르스조의 수도로 건설되었지만 이후 가톨릭 세력이 궁전을 차지했다. 그러나 이 궁전에서 보여주는 이슬람 문화의 정수는 아직도 많은 관광객을 불러 일으킬 정도로 찬란하다.
이밖에 이탈리아의 시칠리아아 베네치아에서도 이슬람의 흔적은 쉽게 발견이 된다. 이들 지역은 이슬람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또 발전시켜서 기독교- 이슬람교의 융합 적인 문화를 키워냈다. 교역 뿐만 아니라 외교와 순례에서도 서로 간의 교류가 있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종교 문화가 충분히 평화적으로 교류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때로 전쟁도 있었지만 평화롭게 접촉한 시간이 더 길 정도로 서로 간에 적대감이 쌓이진 않았다.
3장 '언어의 기억'에서 주목받아야 할 인물은 '이븐 할둔' 이다. 그는 19세기 초에나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한 역사 서술의 학문화를 이미 14세기 말에 제창했다고 한다. 책에서는 그의 업적이 무엇인지 설명하고 있는데 여러 분야에서 방대한 서술을 했고 여러 사상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그는 실제적으로 유럽의 여러 역사, 사상의 아버지로 봐야 한다는 논의까지 있다. 너무나 뛰어난 인물이어서 지금까지도 연구가 되고 있다고 한다.
책은 이밖에 좀 더 전문적인 이야기로 독일어나 스페인어 속에서 아랍어의 잔향을 말해 주고 있다. 수 백 년 동안 교류를 했는데 언어에 영향이 없을 리가 없다. 좀 어려운 부분이지만 이들 국가에서 아랍어를 발견하는 것도 흥미롭다.
마지막 4장 '일상의 기억' 편에서 우선 '플라멩코'가 나온다. 음악과 노래, 춤으로 이루어진 스페인의 공연 예술인 플라멩코는 스페인 안달루시아의 집시에 의해서 탄생했다고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아랍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랍 안달루시아 춤이라고 할 수 있다. 플라멩코라는 단어 자체가 아랍어에서 나왔다고 아랍인들은 주장한다. 이 플라멩코를 탄생시킨 모리스코인들은 이베리아 반도에서 이슬람 세력이 물러난 뒤에도 떠나지 않고 남아 있었다고 한다. 책은 이슬람을 몰아내기 위한 기독교 세력의 투쟁을 이야기하면서 결국 이 춤 자체가 유럽과 이슬람의 융합임을 말하고 있다.
독일의 국민 거리 음식은 '되너 케밥' 이라고 한다. 케밥은 튀르키예의 유명한 전통 음식 이름인데 이중에 독일에서 널리 퍼지게 된 국민 음식이 되너 케법이라고 한다. 이 음식은 비교적 최근에 독일 음식이 되었는데 2차 대전으로 남성의 노동력이 부족해진 독일에 많은 튀르키예 노동자들이 이주하면서 탄생했다. 튀르키예에서 기원했으나 독일식으로 만들어진 케밥이라고 하겠다. 실제로 독일에서는 튀르키예에는 없는 독일만의 대중 음식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유럽에 만연한 반이슬람 정서와 무슬림 이주민에 대한 편견을 고려할 때 별다른 저항 없이 독일 음식이 된 사례를 통해 일상에서 이슬람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책은 여러 각도에서 유럽과 이슬람이 대립과 배척만 했던 것이 아님을 알려주고 있다. 때로 전쟁을 하기도 했지만 더 많은 기간 평화롭게 공존했고 서로의 장점을 살려서 더 크게 융합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영향이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고 흔적은 곳곳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잘 살았는데 오늘날의 이런 대립은 결국 서로를 이해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서로 싸우는 것은 여러 가지 복잡한 것들이 뭉쳐져서 그렇긴 하다. 그러나 과거에도 잘 협력했고 서로 평화로왔으니 아주 실마리가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조금씩 서로 노력한다면 미래의 유럽은 좀 더 달라질 수도 있을 텐데 가능성은 모르겠다.
큰 주제 아래 여러 명의 글쓴이가 있어서 조금 통일성이 아쉬운 부분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책에서 이야기 하고자 하는 뜻은 대체로 잘 이야기하는 것 같다. 책을 통해 기독교 세계와 이슬람 세계가 사실은 더 협력하고 평화로왔음을 더 잘 알게 되었다. 문명은 충돌하기만 하지 않는 다는 것을 잘 알려주는 책. 유럽과 이슬람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