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루미(Me)
No. 3
<실패를 목적으로 한 정상적 질서>
장소: 국제 갤러리 서울
전시 기간: 2024년 2월 1일 ~ 2024년 3월 3일
2024년 3월 1일 오전 11시 20분에 첫 만남
완벽(完璧)의 원래 의미는 ‘흠 없는 구슬(玉)’이다. 완벽은 고대 중국에 존재했다는 ‘화씨의 구슬’이라는 진귀한 보물에서 유래된 단어다. 완벽의 반대말은 ‘하자(瑕疵)’다. 하자는 구슬의 얼룩진 흔적을 뜻한다.
* 플라톤, 김유석 옮김 《티마이오스》 (아카넷, 2019년)
* 마이클 벤슨, 지웅배 옮김 《코스미그래픽: 인류가 창조한 우주의 역사》 (롤러코스터, 2024년)
완벽한 상태는 아름답고, 완전해야 하며 조화로운 질서에 가깝다. 일단 무조건 좋은 것이어야 한다. 플라톤(Plato)에게 완벽함이란 천상에 있는 ‘이데아(idea)’다. 그는 지상에 있는 모든 것은 이데아를 모방한 불완전한 것들이라고 인식했다. 플라톤의 저서 《티마이오스》에 데미우르고스(demiourgos)라는 거인이 나온다. 이 거인은 우주를 창조한다. 플라톤은 데미우르고스가 만든 우주 역시 이데아를 모방한 것이라고 봤다. 그에 따르면 물질의 네 가지 원소인 물, 불, 흙, 공기는 무질서한 상태다. 데미우르고스는 네 가지 원소에 각각 정다면체 형태를 부여하면서 우주를 만든다. 플라톤은 우주가 정십이면체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고 주장한다. ‘플라톤 입체’라고 알려진 우주론은 예술가와 천문학자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독일의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Johannes Kepler)는 자신이 쓴 책 『우주의 신비』에서 플라톤 입체를 이용해서 행성의 공전 궤도를 설명하려고 했다. 그는 정다면체 형태로 된 우주가 질서와 조화를 이루는 세계로 이해했다.
도예가는 완벽한 도자기가 나올 때까지 계속 굽고, 마음에 안 들면 망치로 깨뜨린다. 일반인이 보면 멀쩡해 보이는 도자기를 부수고, 처음부터 다시 만드는 도예가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솔직하게 인정하자. 누구나 완벽한 것을 선호한다. 예술가가 아니더라도 본인이 생각하는 완벽한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 한 번쯤은 노력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나는 어렸을 때 별 하나를 완전한 형태로 그리려고 애쓴 적이 있다. 내 눈에는 별이 비뚤비뚤해 보여서 만족스럽지 못한 것이다. 원을 그릴 때도 마찬가지다. 보기 좋게 동그란 원이 나오지 않으면 여러 번 그리곤 했다. 여러 번 시도해도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우리 마음 한구석에 ‘실현 불가능한 벽’을 세우려고 애쓴다. 그 벽의 이름은 ‘완벽’이다.
마음속에 세우고 있는 완벽을 무너뜨리려면 결국 실패를 받아들여야 한다. 실패를 순순히 받아들여서 허무주의와 패배주의에 굴복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실패의 가치를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보는 것도 아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속담을 언급하고 싶지 않다. 실패를 경험한다고 해서 무조건 성공이 따라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실패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완벽해지기 위해 애쓰는 일을 멈추는 것이다.
김홍석
『시지프스의 돌』
2024년
김홍석의 개인전 <실패를 목적으로 한 정상적 질서>는 우리가 그토록 추구하는 완전하고 완벽한 삶(또는 예술)은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완벽과 조화로움과 거리가 먼 김홍석의 작품들은 성공과 실패로 명확히 나누려고 하는 이분법적 사고를 거부한다.
김홍석
『믿음의 오류(운석)』
2024년
『믿음의 오류(운석)』는 국제갤러리 K3 관에 따로 설치된 작품이다. K3 관에 흘러나온 음악은 『주춤거리는 행진』이었다.
김홍석
『A Star』
2011년
관람객이 김홍석의 작품을 조금이라도 이해했다면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김홍석은 관람객이 단번에 이해하기 쉬운 완벽한 작품을 만들지 않는다. 이런 작가가 관람객의 마음에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난해한 작품을 선보였다고 해서 단순히 개인전을 실패로 규정할 수 없다. 따라서 김홍석의 작품들은 성공과 실패라는 경계가 무의미한 ‘뒤엉킴(entanglement)’을 보여준다. 전시 제목은 ‘정상적 질서’에 가까운 완벽함을 단호하게 거부하는 메시지로 읽을 수 있다. 절대로 완벽할 수 없기에 실패하더라도 무언가를 계속 표현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완벽해지지 말자. 되는대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