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루미(Me)
No. 5
<Kim Yun Shin>
장소: 국제갤러리
전시 시간: 2024년 3월 19일 ~ 2024년 4월 28일
2024년 4월 27일 토요일 오전 10시경에 만남.
합이합일 분이분일(合二合一 分二分一). 서로 다른 둘이 만나면 하나가 되고, 하나는 다시 둘이 된다. 동양고전에 나올 법한 이 여덟 글자는 조각가 김윤신의 연작 제목이다. 김윤신은 1970년대부터 <합이합일 분이분일> 연작 조각 작품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조각 작품의 재료는 오래되고 못생겨서 쓸모없는 나무다. 작가는 전기톱으로 나무를 잘라서 작품을 만든다. ‘합이합일’은 작가와 조각 재료인 나무가 하나가 된 상태다. 작가는 나무를 자르고 쪼갠다. ‘분이’는 나무는 작가의 톱질에 분해되는 과정이다. ‘분일’은 새로운 형태의 작품이다.
* 후지하라 다쓰시, 박성관 옮김 《분해의 철학: 부패와 발효를 생각한다》 (사월의책, 2022년)
합일합이 분이분일은 자연계의 모든 물질이 순환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서로 다른 재료를 조합하면 새로운 물건이 완성된다(합일합이).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물건의 상태는 변하고, 물건의 품질이 떨어지면서 분해된다(분이분일).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분해’는 상당히 어두운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부정적인 현상이다. 모든 존재가 분해되면 갈라지고, 부서지고, 썩어가고, 파괴되고, 쓸모없는 상태가 된다. 한마디로 말하면 사물이 분해되면 쓰레기가 된다. 하지만 생태학 관점에서 바라보는 분해는 긍정적인 현상이다. 분해된 것은 망가진 것도, 쓸모없는 쓰레기도 아니다. 언제든지 재사용하거나 재활용할 수 있다. 분해돼서 남은 자연의 여분은 새로운 사물 또는 생명체가 탄생하는 데 이바지한다.
환경사를 전공한 일본의 철학자 후지하라 다쓰시(藤原辰史)는 《분해의 철학》에서 돈이 되는 사물을 만들어서 생산하는 사회를 ‘덧셈과 곱셈의 세계’로 비유한다. 하지만 모든 것은 분해되고 부패해서 쓰레기가 되거나 완전히 소멸한다. 분해가 일어나는 세계는 ‘뺄셈과 나눗셈의 세계’다.
김윤신
『합이합일 분이분일 2002-789』 (2002년, 맨 왼쪽)
『합이합일 분이분일 2002-790』 (2002년)
『합이합일 분이분일 2016-3』 (2016년)
『합이합일 분이분일 1978』 (1978년, 맨 오른쪽)
후지하라 다쓰시는 부패가 ‘더 미적이고 더 역동적인 작용(《분해의 철학》 51쪽)’이라고 말한다. <합이합일 분이분일> 나무 조각 연작은 ‘생태학적 조각’이다. 작가의 나무 조각에 분해와 재생이 새겨져 있다. 못 쓰는 나무는 자연적으로 부패하거나 인간에 의해 분해돼서 생긴 부산물이다. 작가를 만난 죽은 나무 조각들은 살아있는 조각품으로 다시 태어난다.
김윤신
『합이합일 분이분일 2019-14』
2019년
지난달 4월에 종료된 국제갤러리의 김윤신 개인전에 톱으로 자른 나무 조각들을 쌓아 올려서 만든 목재 조각 작품과 색을 입힌 나무 조각들을 이어 붙인 작품들이 공개되었다(회화 작품도 전시되었다). 하지만 작가의 목재 조각 작품 재료에 나무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합이합일 분이분일 2019-14>의 재료는 폐목과 못이다.
* 프랜시스 마르탱, 박유형 옮김 《숲 아래서: 나무와 버섯의 조용한 동맹이 시작되는 곳》 (돌배나무, 2022년)
* 멀린 셸드레이크, 김은영 옮김 《작은 것들이 만든 거대한 세계: 균이 만드는 지구 생태계의 경이로움》 (아날로그, 2021년)
나무 조각에 박힌 못은 마치 썩은 나무에 자란 버섯 또는 ‘균류(菌類)’를 연상시킨다. 버섯은 죽은 나무에 무리를 지어 자라며 죽은 나무의 영양분을 먹는다. 버섯은 균류에 속하는데, 균류는 동물도 식물도 아닌 독립된 생물군(群)으로 분류한다. 균류는 생태계에서 아주 중요한 일을 한다. 바로 ‘부패’다. 균류는 죽은 나무와 동물의 사체에 있는 영양분을 흡수한다. 분해와 부패를 일으키는 균류는 무기질과 같은 여러 화학물질을 만든다. 무기질을 만드는 균류 덕분에 흙은 비옥해지고, 새로운 식물이 흙의 영양분을 먹으면서 자란다. 균류가 없으면 지구는 사람이 버려서 썩지 않는 쓰레기와 자연이 남긴 쓰레기(썩지 않은 동물 사체와 죽은 식물)가 흘러넘치는, 아주 지저분한 별이 되고 만다. 최근에 식물학자들은 지구 생태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게 해주는 역할을 하는 나무와 버섯 또는 균류의 공생 관계를 주목한다.
김윤신의 목재 조각 작품은 ‘공(功)든 탑’이다. 하지만 목재 조각 작품 또한 시간의 흐름과 오직 무질서로 향하는 엔트로피(entropy)의 보이지 않는 힘을 피할 수 없다. 목재 조각 작품을 제대로 보존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분해되고, 파괴될 것이다(목재 조각 작품은 불에 약하다). 작품이 해체되는 과정은 작품 제목인 <합이합일 분이분일>의 ‘분이분일’에 해당한다. 가수의 운명이 가수가 직접 부른 노래 제목에 따라가듯이, 김윤신의 목재 조각 작품은 <합이합일 분이분일>이라는 제목을 따라간다. 합쳐진 둘이 분해되면 하나가 되지만, 이 하나마저 분해되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空). 완전히 소멸되는 상태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가 맞이하게 될 진정한 ‘분(分)’이다. 공(空)든 탑은 무너진다.